• 최종편집 2024-06-12(수)
 

지리산에서 온 편지 5

 

내원골 박처사

 

 내원골 박처사를 만난 것은 지리산을 열심히 타던 시절, 아마 30대 후반이거나 40대 초반 쯤이 아니었나 싶다. 계곡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산 구석지의 지저분한 잔설들이 바닥을 드러내는 봄의 초입이었을 것이다. 어느 주말, 지도를 보며 코스를 잡았는데 쌍계사 뒤쪽으로 들어가 내원골을 타다가 불일폭포로 넘어가는 코스였다.

 쌍계사 조금 못 미쳐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 오르면 내원골로 들어서게 된다. 이 내원골을 계속 타고 오르면 내원재를 만나게 되고 내원재에서 왼쪽으로 능선을 타고 오르면 생불재 삼거리를 만난다. 세석평전에서 내려오는 남부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삼거리인데 세석에서 삼신봉을 거쳐 내려오는 길과 불일폭포에서 오는 길과 청학동에서 오는 길이 만나서 생불재 삼거리다. 하지만 사실은 사거리였다. 이 내원재에서 생불재 삼거리에 이르는 능선길이 있기 때문에 사거리가 맞다. 그런데 생불재에서 내원재를 거쳐 원강재, 혜경골로 내려가는 길이 묵어버린 것은 사람들이 모두 유명한 쌍계사나 불일폭포를 찾아오기 때문이고 토착 주민들이 늙고 수가 줄어 내원골은 들어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원재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었고 내원골를 타다가 왼쪽의 능선을 가로질러 바로 불일폭포의 옆 사면길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원골로 들어서 한참을 걸었는데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계곡 왼편 위에 자리 잡은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불일폭포로 가기 위해 계곡을 벗어나 지능선으로 길을 갈아타야 하는 지점이었다. 가까이 가니 낡고 초라한 집이었지만 두 채가 더 있었다. 집을 들여다보니 잡초가 무성한 마당가에 늙은 감나무 하나가 지금은 없는 집주인의 한 때를 상상하게 해준다. 부엌문을 열어보니 먼지가 수북한 낡은 찬장에 아직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젓가락들이 보였다. 거미줄과 함께 벽에 그대로 걸려있는 망태기며 녹슨 호미도 그렇지만 방구들에 까지 올라온 잡초들을 보니 사람이 백년을 산다 해도 저렇듯 흐르는 세월의 한 과정일 뿐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한 집을 보니 초라한 양철 지붕집이지만 집 주변이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담 너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툇마루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고 턱수염이 길게 자란 웬 도인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봄볕을 가득 받은 툇마루에 고적한 산중의 고요 그 자체가 되어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 기운이 도저하여 말 한마디 붙이려는 생각도 못하고 문밖에서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래도 인사라도 나누고 갈 요량으로 사립문 옆에 주저앉아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명상은 꽤 길었다. 깜박 잠을 잤어도 잤을만한 시간이 지나고나니 명상을 끝낸 듯 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기척을 내고 인사를 하니 들어오라 한다. 가까이서 보니 간간히 섞인 흰머리에 수염은 길었지만 노인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몸매에 기름기 없는 건조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맑고 강한 느낌의 이목구비가 반듯한 중년의 사내였다. 먼저 인사를 하니 그는 긴 머리를 뒤로 묶으며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고 묻는다. 불일폭포를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일폭포는 쌍계사 쪽으로 가면 되는데 왜 이 위험한 길을 타려는 거냐고 물어왔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과 너무 흡사했다. 나는 그가 명상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무슨 사연이 있어 살기 좋은 세상을 두고 왜 이런 궁벽한 곳까지 흘러들었는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수록 오히려 그에 대한 의문이 점점 더 많아졌고 흥미로웠다. 그가 바로 박처사라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다시 한 번 찾아올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불일폭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우선 경사가 심했고 그 경사면의 길이 매우 좁고 미끄러워 잘못하면 굴러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관은 참으로 비경이어서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설화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항상 정면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던 불일폭포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 길은 바로 능선에서 폭포의 위쪽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배낭에 쌀 한 말이나 라면 한 박스 등을 넣어가지고 박처사를 찾아가곤 했다. 그러다 조금 친해지는 즈음에 나는 박처사를 구례로 불러 식사 대접을 하면서 술을 한 차례 먹게 되었는데 말수가 적던 그의 말이 봇물처럼 터지고 말았다. 평소 하던 대화는 주로 그가 수련하는 도에 대한 것이나 약초에 대한 것, 지리산 구석구석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그날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 이야기였다. 우리는 오랜 친구나 되듯이 서로 깊어져 많은 술을 마셨다.

 그 후 바쁜 세속의 날들이 지나가고 다시 겨울이 오려는 즈음 내원골의 그를 찾아갔는데 집이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원래부터 박처사의 물건이라고는 옷가지 몇 벌이 전부여서 절방처럼 소박한 살림이었는데 그것마저 깔끔하게 치워진 빈집이었다. 나는 박처사가 떠난 것을 직감하고 편지라도 한 장 남겨놓지 않았나 찾아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왜 말도 없이 떠났을까? 아니, ? 왜 떠났을까. 물론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짐작할 수는 있다. 그는 아마도 나를 만나는 1년 동안 즐겁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가던 길을 멈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잠시 멈추었던 그 길을 갔던 것뿐이다. 진속불이眞俗不二라고는 하지만 그는 아직 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진에 이른 것도 아니었을 것이니 나하고 어울리는 것이 스스로에게는 무척 큰 갈등이었을 것이다. 나는 겨울 초입에 그렇게 그를 잃고 허전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았다.

 

 그리고 그 겨울 어느 날 내원골을 찾았다. 골짜기의 침묵만큼이나 눈이 쌓여 있었다.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그리 겨운지 대숲에 쌓인 눈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후두둑 쏟아졌다. 볕 좋은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깜박 졸았는데 잠 속의 깊은 골짜기에도 세속의 눈은 내리고 처사는 먼 길을 돌아와 토방에서 홀로 눈을 털고 있었다.

 그 뒤에도 몇 번인가 내원골을 찾았지만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나도 언젠가부터 내원골에는 들지 않았고 그 후 지금껏 박처사의 소식조차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의 성품과 의지를 짐작하건데 이미 성통性通을 하고 진속불이眞俗不二의 경지에 이르러 세속의 저자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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