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2(수)
 

진속불일불이 眞俗不一不二


  현재 이 시대의 문명이 보여주는 모순과 위기를 감지한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생명평화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생명평화운동은 조금씩 다른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유기농을 매개로 또는 대안학교를 통해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또는 과학적 관점이나 역사적 관점 등 학문적 접근에서 그리고 정치적, 사상적 관점에서 참으로 다양한 집단과 단체, 개인들이 생명평화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생명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명의 존귀함을 부정하거나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생명평화를 얼마나 ‘나’ 개인의 구체적 삶으로 인식하느냐 이며 생활 속에서 얼마나 깊게 느끼며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살아내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인류는 현대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과학과 산업을 발달시켜왔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일상의 편리와 물질의 풍요를 얻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물량주의와 속도주의의 경쟁 속에서 인간의 ‘욕심’ 또한 꾸준히 키워왔다. 그리고 그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행복해지는 거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그 가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으로 변질되었으며 그 개인화 된 욕심은 이미 ‘나’의 밖으로 나와 상대방을 죽이고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의 ‘나’를 잃었으며 우리의 본래면목과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그동안 인류의 삶을 지탱해오던 많은 사상들은 수식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소유의 논리, 힘의 논리, 공격의 논리, 그 단순한 이익의 논리만이 개인과 그 집단과 그 국가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천박한 영혼, 척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인문학의 저조를 가져왔으며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명상하지 않는 오만한 자아를 키워왔다. 그래서『생명평화결사』에서 내건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슬로건이 대중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이제는 ‘나’가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화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오만과 욕망은 너무 비대해져 버리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모순과 위기 속에서 대안적 삶의 운동으로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은 궁극적으로는 나의 성찰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자는 운동이며 나아가 공존과 조화의 운동이며 공동체 복원의 운동이다. 2004년 시작된『생명평화결사』는 이러한 의지를 로고에 담아 깃발로 올렸다.
 ‘나는 물고기이고 새이며 짐승이고 나무이며 달이고 해이다’ 라는 메시지   를 이미지화 시킨 것인데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 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해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요, 세상에 나무가 없다   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나무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요, 마찬가지로 짐승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며, 네가 없으면 나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그 모든 생명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이러한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부터가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저 도토리나무이고 다람쥐며 까마귀이고 갈치 한 마리라는 생각, 그리고 이것은 결코 관념이 아니고 비유도 아니며 구체적 생명현실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라는 이러한 인식 속에서 출발해야만 세상의 모든 현실적 갈등과 대립을 허물 수 있고 존재의 개별화와 고립을 막고 공존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생명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眞俗不一不二’는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겠으나 眞은 자연의 질서요, 俗은 인간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으며 본래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인간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착취하며 반생명 반평화적이며 자연에 반하는 질서의 그런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眞의 세계가 아니며 俗의 세계 또한 아니다.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무시한 세계, 근본이 가진 가치를 망각하거나 무지한 상태의 세계, 이것은 眞도 아니고 俗도 아닌 탈근본의 세계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생명평화운동은 이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인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것은 ‘나’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고 구체적 생명 현실로 구현해내야 하는 뼈저린 성찰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본래의 우리로 돌아가는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껏 추구해온 편리와 부와 욕망의 반대편에서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나눠야 하고 자신을 존재하게 해주는 모두를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평화운동은 현재의 삶의 시각을 교정하고 가치관을 수정하고 삶의 구체적 생활세계를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며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명평화운동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유기농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소극적적인 자기 살리기이거나 자연에 묻혀 도인이 되자는 것쯤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의 공간이나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특히 도시에서 더욱 필요한 운동이다. 철저하게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도시 속에서도 생명의 순리인 자연의 순환성에 바르게 복무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길은 내가 감으로써 생겨나듯이 이것이 스스로 절실하고 절박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그 길을 갈 것이고 길은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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