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내가 하동에 있는 동네책방 시소의 주인장, 비성을 만난 건, ‘지리산둘레길에서다. 그녀는 볼 때마다 분주했다. 그녀는 사단법인 숲길의 든든한 일꾼이었고, 나는 가끔 지리산둘레길을 걷거나, 간혹 어떤 행사장을 기웃거리는 손님이었다.

몇 년 전, 만나면 반가운 그녀를 구례 용호정 숲에서 만났다. 걷고, 말하는 것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기에 아무 생각 없이(나름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래지않아 그녀가 파킨슨병이라는 걸 알았다. 최비성, 그녀를 생각하면, 용호정 숲을 걷던, 그녀의 약간 기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2022314일 아침부터 비가 뿌리던 날, 그녀의 놀이터 시소를 찾았다.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겸하여, ‘시소를 열게 된 계기, 시소의 운영상황, 뭐 이런 걸 듣겠다는 이유였으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가 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묻고, 비성이 답하고, 김인호 편집장(인터넷신문 지리산인)과 칩코가 거들며 함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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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 ‘시소를 연지 8개월쯤 됐다고 들었는데 동네책방 시소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비성: 책방을 열게 된 얘기를 하려면, 몸이 아픈 얘기부터 해야되거든요. 어렸을 때 꿈이 책방을 해보는 거였어요. 꿈을 잊고 지내다가 파킨슨병에 걸렸잖아요. “지리산둘레길(사단법인 숲길)”을 그만두고 한두 달 쉬고 있는데,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매일 출근하던 곳이 없어지니 그때는 지금 정도로 안 아팠는데도, 제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드라고요.

그때 알고 지내던 시인 선생님이 시를 써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를 조금씩 긁적거리다보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책방을 차리고 싶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날이 벚꽃 핀 날, 저녁이었는데, 벚꽃을 보고 이 앞을 지나가는데 세놓음이라고 붙여놨더라고요. 그때가 밤 9시였거든요. 그냥 전화번호를 눌렀어요. 일주일 전쯤에 여기 세가 나갔다고 했는데 세놓음이라고 돼 있다고 했더니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저 주세요.’ 그랬어요. 얼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저 주세요라고 한 거예요. 그랬더니 주인이 뭐 하고 싶어서 그러냐?’고 해서 책방을 하고 싶은데요.’, 그랬어요.

제가 퇴직금을 딱 천만 원 받았거든요. 12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예요. 500만원은 보증금 내고, 나머지 500만원으로 준비를 하면 딱 되겠다 싶더라고요. 남편한테 손 벌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장생활해가지고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내 공간을 만드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도 안 하고 그 밤에 결정을 해서, 그 뒷날부터 조금씩 준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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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 몸도 아픈데, 책방 내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비성: 남편이 페인트 칠해주고, 아는 목수 분과 그분의 아내가 싱크대해준 거 말고는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혼자서 그냥 하나씩, 싸구려 사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애착이 가요. 하동이 문학의 도시라고 얘기를 하는데 책방 하나 없다는 게 좀 조금 슬프더라고요.

책방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순천에 있는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갔었어요. 그 사장님이 몸이 아프면 하세요.’ 그러면서 잘 안 될 거니, 그 공간에서 독서토론을 한다든지, 문화공간으로 생각하고 재미있게 해야지 안 그러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다.’고 그러더라고.

서성이다는 순천의 중심가에 있고, 도서관에 납품도 하고, 명소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부러웠지만, 저는 저만의 색깔대로 해야겠다 싶어가지고, 책의 전면이 보이게 전시했어요. 책을 이렇게 전시한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요. 제 나름의 전략이었어요. 아는 언니는 왜 사람들한테 부담을 주냐, 책을 막 강매하듯이 진열을 했다라고 하는데, 책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꽂으면 책장 한 칸을 채우는 데도 돈이 많이 들거든요. 책방에 아무리 많은 책이 갖다놔도 손님들이 원하는 찾을 다 갖출 수는 없어요. 그래서 주문 위주로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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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 시소라는 이름,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비성: 놀이터의 시소예요. 시소(see, saw), ‘보다, 보았다는 의미도 있고요. 이곳은 나만의 놀이터인데, 저 혼자면 시소를 탈 수 없으니까 할머니라든지, 선생님들처럼 오시는 분들이 함께 시소 타러 놀러 왔다는 의미로, 제가 의미 부여를 한 거예요.

몸이 안 좋으니까, 중간에 문 닫을 때가 많아요. 마비가 오면, 말이 안 될 때도 있고요. 손발이 안 움직여지기도 하고. 저녁에는 거의 잠을 못 자다시피 해요. 근데 약을 먹고 여기 나오면 몸이 반응을 해요. 참 신기해요. 어제는 집에 있었는데 하루 종일 아팠거든요. 근데 여기 나오면 몸이 이곳을 기억하고, 또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고 하면 약 기운이 약간 늘어나는 거 같아요.

저번에 코로나 백신 1, 2차 맞고 나서 3시간 가던 약 기운이 1시간으로 줄어들어서, 의사 선생님도 놀라고, 약이 안 들어서 일주일 동안 문을 닫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약을 좀 세게 지었는데 그 대가가 커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약을 먹는데 약기운 떨어졌을 때는 굉장히 아프거든요.

어떤 때는 나쁜 생각이 들고 그래요. 우울증은 아닌데, ‘그냥 목숨을 버릴까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고 그렇거든요. 근데 여기 나와 있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져요.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닌데, 책하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치유도 되고요.

 

주옥: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나봐요. 앤과는 언제 만난 건가요?

비성: 중학교 때부터 빨간 머리 앤에 빠졌는데, 앤의 긍정적인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저희 집에 딸이 셋인데 저는 제가 주워 온 줄 알았거든요. 어렸을 때 이웃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요. 이웃들은 장난이었는데, 저한테는 상처였거든요. 그래서 엄마, 아버지가 친엄마, 친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춘기였죠, 그때 빨간 머리 앤을 읽었는데 마치 앤이 나인 것처럼 빙의가 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라든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 캐릭터에 빠졌던 것 같아요. 빠지고,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했는데, 그 뒤에 만화가 나왔거든요. 만화도 보고, 또 보고 막 이렇게 했어요. 닮고 싶은, 내 속의 또 다른 자아가 앤을 닮고 싶다 였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세대들은 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더라고요.

몽고메리라는 그 작가도 너무 매력적인 게, 평생을 빨간 머리 앤하나만 썼잖아요. 그 시대에 앤을 통해서 여성의 자립된 모습이라든지,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쓴 책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앤을 좋아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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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 시소에 있는 책 중,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비성: 지금 있는 책 중에서는, 김서령 작가의 여자전이요. 작가가 직접 만난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거든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이렇게 돼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이 나더라고요. 대단하다이런 분도 계신데, 그까짓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이불 속에 누워서 눈물 흘릴 일이 아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힘을 많이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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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 시소에 오는 사람들은 많은가요?

비성: 일부러 오는 사람들은 제 지인들이고, 아까처럼(인터뷰하려고 기다리는 동안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가셨다.) 할머니들이 오셔요. 여름에는 제가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요. 들어오셔서 좀 쉬었다 가시라고. 오후되면 봉사 할아버지들, 초등학생들 건널목 건너게 해주고, 교통 정리하시는 할아버지들이 계시거든요. 여름에 아이들이 집에 가는 시간, 2시면 엄청 덥거든요. 할아버지들에게 잠시 들어오셔서 물 한 잔 드시고 가라고 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사람을 통해서, 아이들을 통해서 에너지를 받아요. ‘지리산둘레길에서 일하기 전에 논술학원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독서 치료라는 말이 없었을 때인데, 글쓰기 치료, 독서 치료가 자동적으로 돼가지고, 정신적으로 힘든 애들이 제 덕분이 아니고, 책을 통해서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가 됐었어요. 제가 그걸 눈으로 봤기 때문에 굉장히 보람이 컸었거든요. 학원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데리고 다니고, 놀이터에서 놀고, 그렇게 몸으로 익힌 걸 글로 재밌게 쓰게끔 해가지고, 다들 글쓰기 좋아하는 애들로 만들었거든요. 제 자랑이고 보람이고, 그랬어요.

 

주옥: 시소 운영은 어떤가요?

비성: 운영하기는 힘들어요. 인건비는 당연히 안 나오고요. 순소득이 월 6, 7만 원 될 때도 있더라고요. 책이 25% 정도 수익이 남아요. 만 원짜리 책 한권 팔면 2500, 처음엔 이거 큰일 났다 싶었는데, 제가 만약에 요양원에 들어간다고 하면 병원비를 내야 되잖아요. 요양병원비, 비싸더라고요. 여기는 내 놀이터고, 치료 장소다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요. 괜히 욕심을 내면 몸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맘을 편히 갖기로 했어요. 알바 할 게 있으면, 몸 아프지 않게 일해서 월세내고 있어요.

 

주옥: 책방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더 있나요?

비성: 제가 아프고 나서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 책방 내는 것과 타투해보는 거, 벌써 둘 다 했어요. 제 팔목에 있는 생명평화 문양, 이거 할 때 엄마한테 타투하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그러면 병이 낫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니 그러면 해, 많이 해그러더라고요.

또 하고 싶은 건, 시집을 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파킨슨병을 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집을 내고 싶어요. 서울에 있는 파킨슨병에 걸린 분이 있는데, 그분이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둘이나 낳았거든요. 굉장히 씩씩하게 살더라고요.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시집을 냈으면 하는 거죠.

제가 하동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하동에 대한 자료, 사진, 어머니들의 이야기, 하동의 역사, 이런 걸 모아서 기록물을 남기고도 싶어요.지리산둘레길에 있을 때, 하동의 큰 나무들을 조사해서 원고는 다 써놨었어요. 원고도 쓰고 사진도 다 찍고 했어요. 제가 하동을 좋아하는 거는 아버지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하동에 가둬서 키웠거든요. 옛날에는 공부를 조금 하는 친구들은 마산이나 진주로 중고등학교를 가거든요. 근데 오빠, 언니, , 동생들 모두 밖으로 못 나가게 했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하동사랑쟁이에요. 저도 하동을 사랑하고, 그래서 하동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책도 내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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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잘 있었다. 시소는? 시소도 그녀만이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의 놀이터가 되어,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었다. 교과서, 자습서, 참고서말고는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없는 하동, 구례, 산청 등에 동네책방이 생기고, 그곳이 그럭저럭 잘 유지되어 동네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는 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그러니 나는 동네책방 시소가 잘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소의 주인장 비성이, 파킨슨병에 당당히 맞서, 하고 싶은 일은 하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윤주옥.김인호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전체댓글 5

  • 12226
파르티잔

시소 기억해 두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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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

인터뷰글 정독했습니다.
책방지기님도 빨간머리앤처럼 참 씩씩하신 분 같아요,
하동에 가면 저도 방문해볼게요. 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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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사랑하는 비성샘.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앤처럼 씩씩하게 살아가는 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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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지나는 길 방문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부담 없이 차 한 잔 하라며 말씀 주셨는데, 다시 찾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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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비성님,
책방 내고, 타투도 하고 두 개나 이루셨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시집 내는 꿈도 꼭 이루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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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동네책방 ‘시소’의 주인장, 비성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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