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페이스북을 통해 아는 시인 강회진 시인의 시집이다.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페북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찾아봤다. 


무슨 뜻일까? 책 소개에 있는 시를 읽어 봤다. 

아버지를 지탱하던 버드나무를 팔아버린 오빠와 그것을 지켜보는 나.. 



어제 아이와 함께 선생님이 내준 동시를 읽고 시에 담긴 의미와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시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있는 나무나 꽃을 주제로 시를 쓰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포도나무를 주제로 시를 지었다. 

시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소년의 어려서 아빠와 함께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포도나무는 지지대가 있어야 잘 자란다. 

소년의 자신도 부모가 없이는 아직은 홀로 서기가 되지 않는 것을 

보니 부모라는 지지대가 필요하고 그래서 소년은 포도 같다는 의미의 시다. 

막약 시간이 지나고 이 집에 누군가에게 팔려 가거나 포도누무가 사라진다면 

아이도 그 나무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팔려 나가는 버드나무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추억을 감당하던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가는 것은 

보고 어찌하지 못하는 나는 과거의 상냥했던 시대를 그리워 한다. 

그런 아마도 어려서 부모와 함께 버드나무 아래에서 놀던 그 젊은 시절의 기억일 것 같다. 


아래는 출판사에서 올려 놓은 그의 시들이다.


책소개 강회진.jpg

 

 

책 속으로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삼십 년 동안 아비의 생을 지탱해 준

버드나무 한 그루

도대체 얼마나 한다고

오라비는 제멋대로 버드나무를 팔아버렸나

덩달아 뿌리째 뽑혀나가

마구 뒹구는 기억들

버드나무 아래 앉아서

침착하고 내성적인 죽음을 기다리던 아비는

생생한 헛헛함으로 허둥대신다


다 해봤어요

이생에서 더 해볼 게 없어서

버드나무가 돈이 되나 알아봤어요.

귀농한답시고 들어와 다 팔아치우는

오라비는 눈치가 없는 건가요,

배짱이 무궁무진한가요


아비는 아직 살아 있고

오라비는 돈을 벌었어요

실패했다, 라는 문장의 주어는 언제나 저예요

다행이지요

제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매번 지고 말아요

팔랑이던 초록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상냥했던 인생은 이제 바빌론 강가에서나 만날 수 있어요


버드나무 팔려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날,

눈먼 가수가 검은 제비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부르는 노래를 밤새 들었어요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비가 내린다고

혼자인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하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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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와 빨간 기억


깊은 밤 부엉이는 훅훅

상수리나무 젖은 잎처럼 운다

훅훅 허공에 빈 주먹질 한다

훅훅 마른 나무에 입김 분다

나뭇가지에 훅훅 새순 돋는다

부엉이는 나무다 나무는 부엉이다


나무는 훅훅 어둠 속을 날아다닌다

적적한 달 귀퉁이 물고 가다가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에 흘리고 간다

반짝, 무덤에서 피어나는 빛

부엉이는 훅훅 자란다


부엉이는 밤새 여기저기서 훅훅 둥글게 울어쌓고

나는 고향집에 오면 아무 때나 잠이 쏟아진다

머리는 늘 동쪽에 두고 잔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해가 뜨는 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무서운 말

앞산 무덤을 보며 자란, 오래된 습관이 빚어낸 말

누워 있는 방은 오래전 흙집 외양간이 있던 자리


훅훅 나무가 우는 밤이면 떠오르는 시절 하나,

다섯 살 무렵 외양간에 들어가

뽀얀 송아지처럼 훅훅,

어미 소의 젖을 빨아 먹던

빨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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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말


앞집 할매 담장 위로 쑥 고개 내밀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뭣하요?


종일, 무화과나무 아래 놀고 있는 어린 고양이들을 보았어요

고양이를 지키는 어미 고양이를 보았어요

텃밭에 옮겨 심은 상추는 언제쯤 뿌리 내려 와싹와싹 자랄까 생각도 했어요

드디어, 저 멀리 산 아래 기차가 지나는 시간을 적어두었어요

배가 고프면 감자를 쪄서 검은 개와 나눠 먹으며

햇살 잘 드는 마루에 나와 시를 읽어요 그러다가

담장 너머 감나무 잎사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오래 바라봤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따, 마당에 풀이 가득하고만, 할 일이 많겄소


풀을 다 뽑아버리면 풀벌레는 어디서 사나요?

여름밤 풀벌레 소리는 어떻게 듣나요?

그러면 제 귀는 밤새 잠 이루지 못할 텐데요,

마당을 북방의 초원이라 부르고 싶어요

무성해진 그곳에 누워 은하수를 보고 싶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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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조선시대 시집간 딸은 명절이 오면

어머니와 반보기를 했다지

친정어머니가 반, 시집간 딸이 반

중간에서 짧은 만남 후

아쉬운 이별을 했다는 반보기


세상에서 이토록 간절한 말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내가 반을 가고 당신이 반을 오면

반이라도 만날 수 있는가 우리는

너무 멀리 가거나 혹은

미처 이르지 못해

결국 만나지 못하고

당신과 나의 중간은 어디쯤인가

지도에도 없는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세상에서 이토록 슬픈 말

 

 

출판사 리뷰

나무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 자신을 해체한다. 꽃과 열매와 잎을 지우고 끝내 마지막 한 방울의 물까지 땅속으로 밀어 넣는다. 온전한 상태로는 겨울을 건널 수 없는 속성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형상으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자못 성스럽기까지 하다. 강회진 시인의 시가 그렇다. 간단없이 흘러가는 삶의 절망적인 시간을 일순 견딤의 공간으로 환치하려는 어떤 간절함이 얻은 결정체다. 그것은 마치 겨울 계곡의 얼음장과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요컨대 죽음의 형상으로 절망을 견디는 방식이 그의 시의 요체다. 하지만 얼음장이 봄으로 흘러가는 물을 내장하고 있듯이 그의 시도 그리움과 기다림을 앞장세우고 절망의 반대쪽으로 흘러가는 간곡한 마음의 결을 암장하고 있다. 그의 시가 깊이를 지니는 까닭이다.

―안상학(시인)



■ 시인의 말


꽃 피운 나무 한 그루

혹은 꽃 피운 한 그루 나무에 대해 생각한다

이 마음 저 먼 꽃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뭐하나, 꽃은 지고 마는 것을

그러면 또 어떠한가,

그 자리 다시 꽃 피울 것을

그러면 또 어떠한가,

한때 꽃이 피었다는 것을

나무는 잊지 않을 것을

꽃은 꽃의 마음

나무는 나무의 마음

내 마음은 내 마음일 뿐.

안녕, 우리의 작은 꽃잎들이여.


2022.3.

강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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