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우리집 마당에는 찔레나무가 있다. 물론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같이 사는 옆지기가 찔레꽃과 향기를 좋아하는데 찔레나무를 파는 곳이 없었다. 하긴 온 들에 산에 지천인 찔레를 누가 팔까? 그렇다고 야생에서 멀쩡히 자라는 나무를 캐오는 것은 못할 짓이어서 아무것도 안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5년 이른 봄에 유기된 찔레나무를 만났다.

사연인즉 우리 집 옆에 사과 과수원을 하시는 형님이 텃밭에 흙이 필요한지 트렉터로 흙을 담아가고 있었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를 언제나 살갑게 맞아주는 분이라 만나면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건네는 데 그날도 형님이 나를 보자 트렉터를 멈췄다. 흙 퍼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언뜻 보니 흙에 작은 찔레나무가 들어있었다. 물어보니 산에 흙을 퍼오는데 그냥 따라온 것이란다. 올커니! 분명 형님 집으로 가면 버려져 죽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혹시나 심어 키우실 건지 물어보고는 얻어 왔다.

 

요즘 들개 문제가 종종 거론된다. 문제의 시작은 키우다가 여건이 안된다는 이유로 반려견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유기견이 된 것이다. 유기동물의 문제는 들개가 되어 사람과 가축, 혹은 야생동물에게 위해가 되는 것만이 아니다. 정을 주고, 이름을 불러주며 같이 살던 반려자를 버리는 반인륜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교육과 정서의 문제가 더해진다. 정말 심각한 일로 엄격한 규제와 처벌 등의 방안이 하루빨리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칙이라도 있어야하고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버려지는 것이 동물만의 일이 아니라고 본다. 식물에게도 일어난다. 화분에서 키우던 식물을 야산에 심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은 유기이자 생태계 교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식물을 이렇게 유기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내가 유기라고 말하는 것은 길가에서 매번 잘리는 식물이다. 특히 나무는 매년 잘리면 결국 살아갈 수 없다. 같이 살다가 버린 것은 아니지만 깨끗한 길을 위해서, 안전한 길을 위해서 자꾸만 잘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버려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기되는 식물이라 표현한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 찔레는 이렇게 심어졌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면 찔레 순을 따먹던 어린 날을 기억하고, 오월이면 찔레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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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 그 곱고도 아련한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찔레의 어원은 두 가지로 보인다. 찔레나무를 손으로 잡아보려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꼭 한번은 찔린다. 찔레나무의 가시가 너무 굳세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가시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가시로 찌르는 나무인 찔레가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찔레꽃의 향기다. 특히 장사익님의 찔레꽃노래에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고 표현을 한다. 노랫말처럼 슬프게 가슴을 찌르고, 너무 고운 향기가 코를 찌르는 나무라 해서 찔레나무라 불린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이면 우리 집은 찔레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겹으로 꽃잎을 가득 만들고, 꽃의 크기를 키우고, 빨강, 노랑, 파랑 등 현란한 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탐스러운 장미가 아니다. 홑잎으로 꽃을 피워 장미에 비해 크기가 작고 왜소해 보이며 하얀색으로만 피어나는 찔레꽃을 기다린다.

분명 붉은 꽃잎을 지닌 장미는 탐스럽고 어여쁘다. 피어나는 꽃은 싱그럽기도 하다. 그러나 무언가 어색하다.

그 어색함은 꽃을 가만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들에서 만나는 꽃과는 다르게 장미는 꽃잎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 꽃잎을 헤치고 벌이 꽃가루나 꿀을 찾아 갈수도 없을 듯싶다.

이렇듯 엄청난 양의 꽃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화려함과 강렬함이 오히려 장미에게 독이 된 것이다.

장미의 원종은 찔레이다. 찔레는 붉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편안하고 순해 보이는 것은 하얀 색의 꽃잎 때문이지 아닐까? 하얀 꽃을 가진 식물은 많다. 그럼에도 유독 찔레나무의 하얀 빛에 정감이 간다.

 

앞에도 말했듯이 어린 날의 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제주도에서는 찔레를 독꼬리라 불렀다. 그냥 부모님이 부르고, ,누나가 부르고, 주변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다. 독꼬리는 새순이 참 맛있었다. 도톰한 새순을 찾아 가시를 똑똑 분지르고는 껍질을 살짝 벗겨서 입에 넣으면 그 육즙에 향과 보드라움이란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독꼬리는 아마 닭의 꼬리를 말하는 것인 듯싶다. 그때는 무언지 몰랐었지만 찔레나무에는 붉은빛이 도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벌레집일 듯하다. 생김새도 닭을 좀 닮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그것이 닭을 닮아서 독꼬리라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은 닭을 제주 사투리로 부르는 말이다. 달걀을 독새기라고 한다.)

찔레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찔레가 사는 곳이다. 찔레는 숲이 우거진 곳에는 살지 못한다. 가시가 있지만 키 작은 떨기나무이고 햇빛을 좋아해서 다른 나무 밑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숲의 언저리나 교란된 곳에서만 살아간다. 열매는 작고 빨갛다. 숲의 언저리는 작은 동물의 서식처다. 힘없는 작은 새의 서식처다. 얼기설기 얽혀있는 찔레나무와 그 가시는 힘없는 동물이 살아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육즙이 풍부한 붉은 먹이도 제공한다.

나에게는 찔레와 된장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 또 다른 찔레가 있다.

지리산자락으로 귀농하고 처음으로 된장을 담아보았다. 계란을 띄워 소금물 농도를 맞추고, 메주를 넣은 항아리에 붓는다. 빨간 고추 몇 개와 숯을 넣고 대나무를 위에 대주고 깨끗한 돌로 누른다.

시간이 지나서 어찌 되나 한번 항아리 뚜껑을 열었는데 뭔가 하얀 곰팡이가 가득하다.

놀라서 장모님께 전화 드렸더니 장모님께서 응 찔레가 피었어? 괜찮아.’하신다. 저 하얀 곰팡이를 찔레가 피었다고 표현하신다. 다시 옛 어른들의 표현력에 감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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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가장자리에 잘 자라는 찔레는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배부르지는 않아도 먹을 수 있는 하얀 꽃과 새순이 있어 기억 속에 늘 같이 있는 찔레는 하얀색과 연결이 되는 바로 미터였던 것이다.

고향의 그리움이 물씬 나는 찔레가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숲의 언저리에서 찔레나무는 숲을 지킨다. 날카로운 가시로 중무장을 하고, 드러누운 줄기로 아무에게나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짐승과 새들에게는 안전한 찔레성벽이 되었다.

5월이면 어린 기억의 추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떠오르게 하고, 이곳에서는 작은 동물과 숲을 하얗게 지키는 찔레꽃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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