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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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이라 믿는다. 따라서 역사학 처럼 객관과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다. 왜곡과 우김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과거 특정 시간을 딱딱하게 또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느냐에서 분명히 차이는 있다. 얼마나 용감하느냐도 다르다.


100여년 전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을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딱딱하게 혹은 편리하게 몇몇을 신화화/악마화 해서 그들에게 덮는것은 아닐까? 그들을 악마화 하면 고종이나 민비같은 사람들에게는 연민이 생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한없이 우뚝 솟아보이기도 한다. 간단히 설명 가능하고 모두들 편안한 기억이다. 그러나 좀 비겁한 짓이다.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가 나왔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책 서술은 책방주인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1차 자료를 그 시대를 정면으로 겪었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특히 식민지 경제, 강제동원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서 그러했다. 다만 그 근거를 통해서 공동체 기억에 경직됨과 회피를 조용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끄럽게 꾸짓는 형식이니, 왜 이러나 싶었다. 이후 한동안 읽은 책들의 1/3은 이와 관련이었다. 그리고 전에 읽은 책들과 계속 연결시켜 보았다. 돋보이는 책이 있다.

 

김윤희의 '이완용 평전'은 그런 의미에서 옳고 용감한 책이다. 귀하게 읽었다. 2011년 초판부터 2020년 17쇄까지 꾸준하게 '매국노' '악마' 이완용의 본 모습을 보여줌으로 우리 공동체 기억에 그늘과 빈칸을 돌아보도록 조용히 도와 주었다. 역사 전문가 아닌 학자다운 글이고 지식인의 책이다. 2019년 단 한해 1쇄부터 20쇄까지 반짝 요란하다 멈춘, '민족'도 아니고 '종족'이라 시끄럽게 외치는 책과는 그 결이 많이 다르다.

평전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이라 이완용을 평한다. 책방주인은 그저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인 매우 능력 뛰어난, 기민한, 성실한 인간으로 그를 여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지금 합리적인, 유능한, 현실을 평가하기 보다 오롯이 받아들이는 무척 경쟁력있는 인재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진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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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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