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케이블카에서 산악열차까지

지리산 개발을 꿈꾸던 시대는 지나갔다

 

윤주옥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우리에게 지리산은 어떤 곳인가요?

지리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근현대의 아픔이 녹아있는 곳이고, 이상적인 삶과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며 살았던 곳입니다. 백두대간의 최남단에 위치한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리산을 어머니산, 민족의 영산 등으로 부릅니다.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이 지리산둘레길을 만들고, 지리산 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지리산생명평화공동체에 대한 논의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어머니산에서 하나의 지리산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리산국립공원에는 10,653종의 야생동식물이 살고 있으며, 그중 멸종위기야생생물은 42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또한 지리산국립공원에는 80여건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산악경관, 향토경관 등이 200여개가 있습니다.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 지리산국립공원의 생태문화역사적 가치는 밤 새워 논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지리산은 어떤 상황일까요?

 

지리산 케이블카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추석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는 자연공원법을 개정하였습니다. 개정의 골자는 국립공원 중에서도 보전의 강도가 가장 높은 자연보존지구에 설치되는 케이블카 노선의 길이를 기존 2km에서 5km로 완화하고, 상부 정류장의 높이를 기존 9m에서 15m로 완화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제도가 들어온 후 최초로 자연보존지구의 규제를 완화한 정부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반야봉, 설악산국립공원 대청봉 등 우리나라 모든 국립공원의 주요 봉우리까지 케이블카가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주요 봉우리까지 케이블카를 건설할 수 있게 되자 지리산권 4개 지자체(구례, 남원, 함양, 산청)는 노고단, 반야봉, 제석봉 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계획하였습니다. 하나의 지리산에 4개의 케이블카라니, 정말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2021626일 열린 제97차 국립공원위원회는 남원, 함양, 산청, 구례 등 4개 지자체가 추진한 지리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에 대해 "자연공원 삭도 설치 운영 가이드라인""국립공원 삭도시범사업 검토기준"에 맞지 않다며 모두 부결하였습니다. 더불어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는 지자체간에 합의하여 1개의 안을 제출하면 검토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다행이면서도 아쉬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는 지자체 간에 합의하여 단일한 안을 제출하면 그때부터 검토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012626일 이후 지금까지 환경부의 변함없는 지리산 케이블카 정책 방향입니다.

 

노고단대피소 앞에서 진행됐던 케이블카반대 캠페인.JPG

 

구례군의 지리산 케이블카 추진은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한편 조심스럽게, 다른 한편 집요하게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구례군은 작년 11월 말 환경부에 산동에서 출발하여 종석대(성삼재 휴게소 뒤편) 아래를 상부승강장으로 하는 지리산국립공원 계획 변경신청서를 접수하였습니다. 환경부는 올해 63일 구례군의 신청서를 반려하였는데 이유는 반달가슴곰 서식지역이며 지리산권 지자체간의 단일한 안 합의에도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김순호 구례군수는 지리산 케이블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지난 728일 이승화 산청군수를 만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논의했다고 합니다.

지리산 케이블카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될 것 같냐고, 이번에도 여러 곳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정말 안타까워요. 환경부는 구례군의 계획에 대해 검토의 가치도 없다고 답변한 것입니다. 국립공원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고 반려했잖아요. 그런데도 구례군은 반려의 행간을 전혀 읽지 못하고(읽으려는 마음조차 없겠지만요), 케이블카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구례군의 지금 상황은 정책도 없고, 현실감도 떨어지고, 상상력도 부족한, 총체적 난국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안 되는 것에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결국 스스로 능력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죠.’

 

산으로 간 4대강 사업, 산악열차

구례군이 케이블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이 하동군, 남원시는 지리산 산악열차란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산악열차는 2014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식 건의하고, 박근혜 정부가 산악관광 활성화 정책으로 응답하여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 비판 받았던 토건사업입니다. ‘우리나라에 산악열차가 필요한 곳이 있을까란 회의감이 많았지만, 2020년 국토교통부는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 기술 개발 연구용역을 시작합니다.

지리산 산악열차의 선두주자는 하동군이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한걸음모델이라는 사회적 타협모델로 지리산 형제봉에 산악열차, 케이블카, 모노레일, 산상호텔 등을 건설하려는 알프스하동프로젝트를 의제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리산에 산악열차라니 말도 안 된다는 국회, 하동군민, 시민사회, 종교인 등의 목소리에 기획재정부는 한걸음모델 의제에서 알프스하동프로젝트를 제외하였고, 대림건설이 하동군과의 양해각서(MOU)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하승철 하동군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원점재검토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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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열차 시범사업이 지리산을 흔들고 있습니다.

알프스하동프로젝트의 원점재검토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가 현실화되려는 바로 그때,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도연)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이하 산악열차) 시범사업 공모를 하였고, 1차 평가와 2차 평가를 거쳐 2022623일 남원시를 산악열차 시범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이제 지리산 산악열차 논란의 중심은 남원시가 되었습니다. 남원시가 2013년 철도연과 지리산 산악철도 기술교류 협약식을 체결하면서 지리산 산악열차의 꿈을 키웠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남원시는 2015년 전북 남원시 주천면산내면에서 전남 구례군 광의면 일원까지(1구간 18km 육모정~고기삼거리~정령치~달궁삼거리, 2구간 16km 달궁삼거리~성삼재~천은사)를 잇는 산악열차를 약 3,330억 원의 예산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자연공원법(14조의21) 위반으로 가능하지 않은 사업이었습니다. 이는 남원시가 2019년에 수행한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도입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용역에서도 지적되어, 도로교통법과 백두대간보호법에 대한 별도의 해석, 자연공원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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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의 지리산 산악열차 계획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남원시는 육모정에서 정령치까지’(13km)를 산악열차 시범사업 대상지로 정하여 산악열차를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하였습니다. 그런데 남원시가 철도연에 제출한 산악열차 공모제안서를 찬찬히 뜯어보면, 남원시도 대책이 없는 지자체라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로를 폐지하여 지역주민들의 교통권 박탈

남원시는 지리산 산악열차가 산간벽지 주민들의 교통기본권을 개선시킬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원시는 현재의 육모정~정령치 도로(지방도 737호선,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에 산악열차를 놓는 대신 도로는 폐지한다고 합니다. 만약 산악열차가 건설된다면, 육모정~정령치 구간은 산악열차만 통행할 수 있으며, 산악열차가 놓아지는 지역인 고기리 주민들 역시 산악열차만 이용해야 합니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산악열차 운행도 중단되니 주민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남원시는 주민 교통기본권 개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제성 평가

또한 남원시는 지리산 산악열차의 경제성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남원시는 산악열차가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를 통과(1.3km)하므로 50명용 이하의 열차만 다닐 수 있기에 열차의 최대정원이 42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42명을 태워서는 남원시가 ‘2026년에 약 63만 명의 승객(매회 42명씩 만석이 된다 해도)이 탄다고 예측한 결과치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남원시의 경제성 평가는 산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완전 엉터리 계획입니다.

 

쪼개기 편법을 통한 국립공원제도 무력화

게다가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는 13km 9.5km가 국립공원구역입니다. 남원시는 시범사업 중 시범노선(1km)은 국립공원 밖에서 진행한다는 이유로 자연공원법에서 정한 법 절차인 지리산국립공원 계획변경 신청은 2026년 이후에나 하겠다고 합니다. 남원시는 국립공원제도를 무력화하는 가장 악질적인 방법인 쪼개기편법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환경영향평가 등을 최대한 미루고, 시범노선(1km) 건설을 통해 환경부를 압박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참 못된 지자체입니다.

 

지리산 훼손과 반달가슴곰 생존 위협

육모정에서 정령치까지를 차를 타거나, 걸어본 사람이라면 이 도로에 산악열차를 놓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도로는 굴곡이 심할 뿐 아니라 경사도 급하여 열차가 다니려면 추가적인 훼손은 불가피합니다. 더구나 이 지역은 지리산과 덕유산을 오가는 반달가슴곰의 이동통로입니다. 이런 지역에 90데시벨이 넘는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25분마다 한 번씩 오르내리는 산악열차를 놓는다면 반달가슴곰을 포함한 야생동물들은 살아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하여 만차로 운행될 때 54톤이나 되는 중량으로 인한 진동은 야생동물의 삶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정령치도로의 산사태 위험도 높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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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개발을 꿈꾸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철도연과 남원시는 협상과 협약서 조율의 결과를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 보고한 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협약을 체결하겠다고 합니다. 남원시는 산악열차가 지리산을 스위스 융프라우처럼 만들 것이라 떠들어댑니다. 지리산은 융프라우가 아닙니다.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는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지역주민들의 이동, 생활상의 필요로 건설된 열차입니다. 남원시의 계획과는 정반대인 셈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위기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멀리 북극이나 아마존, 알프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이곳 지리산,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기상관측 이래기상 측정 경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날씨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지리산 정상으로 끌어들여 야생동식물의 삶터를 빼앗는 구조물 설치에 힘을 쏟을 시간이 없습니다. 내린 눈을 녹이기 위해 지리산을 열선으로 달구는 멍청한 짓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지리산권 5개 지자체장에게 다시 한번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기후위기시대,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추진이 아니라 지역민의 생존을 위해 노력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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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김인호, 박용훈, 황영필 등이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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