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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숲의 얼음새꽃처럼
- 「섬진강 편지」 - 저 숲의 얼음새꽃처럼 온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봄은 보지 못했네. (盡日尋春不見春) 짚신 발로 온 산을 헤매며 구름만 밟고 다녔네(芒鞋踏遍 頭雲) 집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歸來偶過梅花下) 봄은 가지 끝에 이미 한창이더라(春在枝頭已十分) .......................................................................................... 해마다 입춘 무렵이면 찾아 읽어보는 「尋春」(심춘)이란 선시입니다. 봄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보름 전에 보았던 얼음새꽃 자리를 가보았습니다. 행여 몇 송이 더 피었을까 기대했는데 올라오던 새싹들도 움츠린 채 얼어버렸습니다. 돌아와 보니 마을 쌍산재 매화 몇 송이 반짝이네요. 이 추위 지나면 방긋방긋 터지겠습니다. 혼탁한 이 나라도 저 숲의 얼음새꽃처럼 언 땅을 뚫고 환히 꽃 피는 봄이 오길 기원합니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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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숲의 얼음새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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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3] 바람과 물, 대지의 피
- 바람과 물, 대지의 피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3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물보다 공기 물 다음으로 숲 속의 흙을 살아있게 하는 건 공기와 바람입니다. 제가 앞 글에서 물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글에선 물보다 공기가 더 중요함을 말하려 합니다. 살아있는 흙에는 살아있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살아있는 공기입니다. 도시텃밭에 가보면 물 주기를 열심히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채소 잎사귀에 물 주는 소리가 참으로 좋다고 합니다. 농부는 논두렁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저도 모종 키우다보면 참 물 주는 소리가 좋습니다. 이파리에 물 닿는 차르르 차르르 소리가 마치 즐겁게 채소가 먹는 것 같지요. 그렇지만 물 좋아하길 너무 좋아하면 농사 망치기 십상이에요. 집의 화초도 마찬가지로 초보자의 제일 큰 악덕(미덕의 반대)은 물 많이 줘 물 배 터지게 하는 거잖아요. 물 많이 주면 땅 속에 공기가 부족해져 숨막혀 죽거나 과습 피해로 병들어 죽기 아주 쉽죠. 대개 밭의 경우 만병의 근원은 과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습 상태의 밭을 보면 흙 표면에 이끼가 낀 것처럼 녹색끼가 살짝 돕니다.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힌다고 흙이 호소하는 모습입니다. 흙에 물 대신 공기를 넣어주는 행위는 뭘까요? 바로 호미질입니다. 호미질은 단지 제초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호미질은 풀만 제거하지 않습니다. 풀 없는 곳도 호미질 해주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풀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풀 있는 곳 없곳 작물만 빼고 다 긁어줍니다. 그리고 작물에게 북을 주지요. 그러면 제초 외에도 공기를 넣어주는 효과와 흙 속의 습기가 날아가는 길을 끊어주어 간접적으로 물을 공급해주는 효과, 북주기를 통해 작물에게 양분을 몰아주는 효과까지 있어요. 그래서 풀을 뽑는다고 하지 않고 매준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왜 숲의 공기가 들녘 공기보다 더 살아있는 걸까요? 그 또한 답은 간단합니다. 숲의 공기는 나무들이 뱉어 낸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무야말로 살아있는 공기 정화기에요.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그것의 결과로 산소를 잎으로 배출하죠. 뿌리에서 흡수한 물까지 배출하니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아주 쾌적한 공기를 내뿜습니다. 뿐입니까? 피톤치드라는 방어물질까지 함께 배출하니 나무가 뱉어내는 공기야말로 생명의 공기인 겁니다. 원래 들녘의 논에도 나무가 있었어요.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많았지요.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면서 이 나무들이 다 사라지고 논의 경관은 벼만 남고 말았어요. 이 나무들이 논을 둘러싼 대기(미기후)를 건강하게 해 주었는데 햇빛을 가린다는 이유로 없애버린 겁니다. 나무에 관한 재밌는 시가 있어 소개해볼까 합니다. 다들 잘 아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입니다. 나무 나무가 춤을 주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춤을 추는 게 상식일텐데 거꾸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의 시이기 때문에 아마 나무(민족)의 주체성을 말한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근데 저는 말 그대로 해석합니다. 나무가 춤을 춘다는 건 공기와 물을 잎사귀로 내뿜는 모습이라고 보는 거지요. 한 여름 느티나무 밑 그늘에 가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자연 에어콘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요. 나무가 춤을 추니 바람이 부는 시 그대로의 현장입니다. 이런 바람은 생명을 살리는 바람입니다. 이런 생명의 바람이 풍부한 곳이 바로 숲이지요. 그렇지만 우거진 숲이 최고는 아닙니다. 숲 속 야트마한 동산 밭이거나, 숲과 들녘이 만나는 경계선, 곧 산 밑 밭이지요. 에덴동산에서 흙으로 인간을 빚고는 숨을 불어넣은 바로 그 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신의 숨, 바람 옛 사람들은 바람을 신이 숨쉬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이 화나면 무서운 숨을 쉽니다. 태풍 같이 습한 바람이거나 건조한 바람을 일으켜 때로는 물 난리, 때로는 불 난리를 가져다 주지요. 신은 성난 바람만 불지는 않아요. 곡식의 싹을 틔우고 곡식의 성장을 돕고 이삭을 영글게 해주며 마침내 긴 긴 겨울 생명을 이어주는 식량으로 남게 해 주지요. 그래서 바람을 불어오는 곳에 따라 크게 동서남북에 맞춰 네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해가 뜰 때 부는 바람이라 해서 날 새우는 바람, 곧 샛바람이라 했지요. 날을 새워 동(東)이 트는 바람이니 동풍이고 봄 바람이기도 합니다. 곡식의 싹을 틔워주는 바람이기도 하지요. 서쪽에서 부는 서풍은 하늬바람이라 해서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으로 곡식을 익게 해주는 가을 바람입니다. 남쪽에서 부는 남풍은 마파람이라 하는데 맞바람에서 왔답니다. 맞은편 남쪽에서 불고 주로 여름 장마철에 불어오므로 곡식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 줍니다. 북쪽에서 부는 북풍은 된바람이라 해서 몹시 춥고 세게 부는 뱌람이죠.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몸이 되다’는 말과 상통해 보입니다. 추우니 곡식은 곳간에서 휴면에 들어가 사람에게 소중한 식량이 되어주겠지요. 이 중 샛바람이 백두대간을 넘어오면 높새바람이라 해서 고온건조한 바람이 됩니다. 푄 현상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다에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륙으로 불다 큰 산을 만나면 해안쪽은 비를 내려주지만 산을 넘으면 습기는 말라 건조한 바람이 되어 내륙 쪽에 가뭄을 일으키고 심하면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원도나 경북도 동해안 쪽에선 샛바람이라 하지만 산넘은 내륙쪽에선 높새바람이라 부릅니다. 늦봄에서 초여름, 절기로는 하지 전에 찾아오는 가뭄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보통의 바람은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나무가 뱉어내는 공기와 계곡의 물이 뱉어내는 공기입니다. 그래서 순하고 깨끗하고 농사에 아주 좋은 바람이지요. 반면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은 바다 또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데 이 바람은 세고 들녘의 온갖 것들을 쓸고 오기에 그리 좋은 바람은 아니에요. 김광석이라는 유명한 가수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말에도 이런 차이가 묘사되고 있어 재밌게 되새겨 보게 되더라구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 중략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대의 머리결처럼 부드럽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도가 출렁거려 흔들린다 하잖아요. 그래서 숲에서 부는 바람은 생명의 바람이라는 거지요. 이러한 바람은 흙 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공기(기상)가 됩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직접 흙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흙이 스펀지처럼 대기 중 공기를 빨아들인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흙 속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은 유기물,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호기성 미생물입니다. 호기성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공기를 만들어냅니다. 기본적으로 호기성 미생물들은 공기 중에도 흙 속의 산소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흙 속에 산소가 잘 들어가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하지요. 그 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풍부한 유기물의 존재입니다. 유기물을 단순히 거름이나 비료라고만 이해하면 곤란해요. 유기물의 핵심은 탄소질입니다. 유기물을 정의하기를 탄소화합물이라 하지 않습니까. 유기물의 뼈대라고 이해해도 돼요. 그 뼈에 살처럼 붙는 것이 질소질 재료인데 똥이 대표적이죠. 보통은 거름이나 비료를 똥 중심의 질소질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기질비료를 말하면 대개 계분, 돈분, 우분 등 축분으로 이해하는 게 그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살이지 뼈가 아니에요. 질소질은 작물을 빠르게 잘 키울 수는 있어도 흙을 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흙에 뼈 역할을 하는 탄소질 재료를 잘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럼 어떤 게 탄소질 재료일까요? 톱밥이나 숯가루, 재 같은 재료입니다. 이른바 목질부 재료이지요. 이 중에 리그닌이라는 탄소질 재료가 핵심인데 이유는 앞에서 말한 호기성미생물이 아주 좋아하는 유기물이기 때문이에요. 이 리그닌을 미생물이 먹고 분해하면 접착제를 만들고 이 접착제는 흙 알갱이들을 몽글몽글하게 뭉쳐줍니다. 홑알의 흙 알갱이를 떼알로 만들어주는 거죠. 떼알의 흙에는 틈새가 많습니다. 그 틈새로 공기가 들어오는 거죠. 물론 물도 들어옵니다. 이 틈에 물이 공기보다 많이 들어오면 혐기상태가 많아져 호기성미생물들이 떠납니다. 그 자리에 곰팡이나 병원성 세균이 들어오지요. 그리고 흙은 병이 드는 겁니다. 물론 공기가 더 많으면 흙은 가뭅니다. 흙에 물이 모자라면 흙 속에 있는 영양분을 작물이 제대로 먹질 못합니다. 숲 속의 흙에는 이런 탄소질 재료가 많습니다. 나무 잔가지에서부터 낙엽까지 수도 없지요. 반면 들녘엔 숲이 적어 탄소질 재료는 적고 질소질 재료는 많습니다. 아무래도 인구도 많아 인분도 많고 목축도 많이 해 축분도 많지요. 그래서 당장은 들녘의 땅에서 농사가 잘 됩니다. 탄소질 재료는 비에 의해 숲에서 떠 내려 오지요, 질소질 재료는 많은 사람의 인분, 많은 가축의 축분까지 해서 매년 풍년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들녘의 땅엔 염류집적, 연작피해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에 아주 위험한 구조를 축적해갑니다. 토양의 생산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기후위기로 농사가 되지 않으니 식량위기가 극에 다다릅니다. 토양에 질소질이 많지 않은 숲의 땅에선 풍년이 흔하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흉년도 많지 않습니다. 기후위기가 와도 피해 갈 구멍이 있습니다. 흙도 잘 견뎌 작물 피해도 덜하지만, 야생의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의 식물들은 작물보다 기후위기에 아주 강하지요. 힘이 세서가 아니라 적응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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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3] 바람과 물, 대지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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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6편 정직과 성실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 수현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하지만 수현이 아홉 살 무렵 태풍으로 농사가 망하자, 공장으로 일하러 갔다. 수현에게 아버지는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사는 곳을 직접 가본 것이 수현이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공장에 다녔다. 수현의 아버지는 공장 인근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수현의 아버지가 자취방은 수원의 후미진 달동네 귀퉁이에 있었다. 수현이 사는 곳에서도 이런 집을 본 적이 없었다. 두 평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방안에는 수현의 아버지 석태가 먹고 남은 소주병이 늘어져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옷걸이엔 석태가 입고 다니는 작업복과 집에 내려올 때 입는 잠바 한 개가 걸려 있었다. 낡은 작업복 사이에 흰색 와이셔츠 하나가 유난히 희게 보였다. 수현이 아버지가 자취방 방문을 열었을 때 불쾌한 냄새가 수현의 코를 찔렀다. 수현이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항상 성실한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왜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어린 수현은 알 수 없었다. 수현은 눈물이 났다. “정직과 성실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어린 수현은 세상의 모두 부조리하게 보였다. 학교에서는 늘 근면 성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누구나 열심히 살면 부자로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현이 본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린 수현은 아버지와 아침을 함께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늘 새벽이면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갔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 갔어요. 엄마” “아빠. 일 나가셨어” “벌써요?” “응” “아빠는 매번 이렇게 새벽에 일을 나가요….”“아빤 안 힘들어” “ 야. 너희들 먹여 살리려면 우리 집 농사일로는 힘들어…. 다른 집 일도 해야 하니까 우리 집 일은 일찍 끝내야지. ” 그런 아버지가 가난하다면 세상이 문제가 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그래. 세상은 뭔가 잘못되었다. 바꿔야 해….수현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수현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수현은 아버지에게 존대해야 했다. 10여 년 만에 만난 아들이 낯설기는 석태도 마찬가지였다. 수현의 아버지는 봄 여름 가을에 농사일했다. 수현은 아버지의 함께 농사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버지보다 힘이 센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 무거운 것은 제가 옮길게요!" 수현의 아버지 석태는 자기보다 키가 크고 힘센 아들이 듬직했다. 석태는 겨울엔 공장에서 일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석태는 트럭에서 떨어졌다. 트럭에서 떨어지면서 수현의 아버지는 부상을 입었다. 석태는 부사장이 산재 처리를 하면 공사 발주가 어렵다며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아도 병원비는 모두 부담하겠다고 하자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았다. 수현이 산재 처리를 해달라고 해야 한다고 했지만, 석태는 이런 수현을 말렸다. 수현의 아버지는 몇 번의 개복 수술을 해야 했다. 첫 번째 수술비는 회사에서 부담했지만, 두 번째 수술 이후에는 회사 사람들은 나와 보지도 않았다. 두 번째는 그때 사고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합병증으로 수현의 아버지는 방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수현의 어머니는 아픈 아버지를 챙기고 농사까지 짓느라 힘들어했다. “내가 못나서 미안하다. 수현아..”그 후 수현의 아버지는 매일 술을 먹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길고 긴 겨울이 가고 눈 녹은 물이 지붕에서 떨어질 때 수현의 아버지는 제초제 먹었다. 농약을 먹은 석태는 수현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못난 아비라서….수현의 아버지 석태는 쉰아홉 살 짧은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컴컴한 시골 밤 석태의 상갓집만이 환하게 빛났다. “수현아,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도 없다.” “일제때 부모 다 여의고 혼자서 이제까지.”니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아이고…. 세상도 무심하지…. 덕산댁은 어찌하라고….장례식 내내 수현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정신이 나간 것인지…. 멍하니 땅만 보고 있었다. 강진과 지숙은 수현을 찾아왔다. 별말 없이 그들은 울고 있는 수현을 바라봤다. "기운 내요. 수현 선배" 귀퉁이에 남은 눈을 녹이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석태가 남긴 흔적이라도 지우는 듯이…. ”하늘도 무심하지. 비까지 내리고. 상여꾼들은 꽃샘추위에 비까지 내려 꽁꽁 온 손을 연신 문질렀다. 아버지의 관이 이윽고 땅속으로 들어가자, 수현은 세상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빠….”수현은 이승에서 사라지는 아버지를 봤다. 수현은 흘러내리는 눈물은 훔쳐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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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6편 정직과 성실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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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이유
- 작년 가을에 광고 문자 하나를 받았다. 내가 주로 꽃씨나 구근을 구입하는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지금 구매해서 심어야 봄에 예쁜 꽃을 볼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런 문구에 약하다. 달리기를 하다 보니 운동화나 용품에도 관심이 있지만, 철저하게 계획적으로만 구매한다. 절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나 나무에는 속절없이 당한다. 결국 사이트에 들어가 튤립 구군 삼만 원어치를 구매했다. 튤립은 대부분 몇 년 지나면 열성화되어 꽃이 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꽃이다. [튤립원종] 물론 그 화려하고 상큼한 매력을 가진 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단지 잠깐 만나 사랑만 남겨 두고 떠나는 연인처럼, 이삼 년 예쁜 모습을 보이다가 은근슬쩍 사라져 버리는 튤립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입한 튤립은 개량종과 원종 두 종이다. 원종은 절대 열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원종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튤립은 꽃이 크고 화려한 지금의 개량종들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작고 귀여운 원종 튤립을 보게 되었다. 튤립의 원산지는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의 구릉에서 자라던 매우 강한 식물이라고 한다. 이 식물이 유목민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졌다. 16세기에 투르크 정원사들이 처음 튤립 육종을 시작했다는데, 그 시기에 이미 1,600여 개의 변종을 생산했다고 한다. 17세기 유럽으로 이어져 수천 종의 튤립 품종들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한 개의 가는 꽃대에 크고 화려한 한 개의 꽃만 피도록 육종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원종은 120종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구매한 것은 그중에서 예쁜 몇 품종일 것이다. 물론 개량종도 함께 구매했다. 2월이 되고 햇살이 따뜻해지니 요즘 매일 정원에 나가 튤립 싹을 나왔는지 확인한다. 여기저기 심어 놓은 곳을 살펴보지만, 아직 하나도 올라온 것이 없었다. 처음 튤립을 심을 때 혹시 두더지가 다 먹어버릴까 봐 여기저기 보물 숨기듯 심어 두었는데 어디다 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두더지란 놈이 다 먹은 것은 아닌가? 기억나는 곳이라도 땅을 파볼까 하다가 멈춘다. 기다리면 나오겠지. 먹어 버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도 먹기 좋은 커다란 개량종은 먹었을지 모르지만, 작은 원종은 남아 있을 것 같다. 원종은 증식도 잘 된다고 하니 올해 튤립 알뿌리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도 가져 본다. 봄이 오고 있고 튤립은 붉은색 노란색 물감처럼 진하고 진한 모습으로 화려하게 봄을 채색할 것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때로는 절망적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변하지 않는 자연을 곁에 두고 심신을 달래는 것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룬다."라는 노자의 말이 있다. 내가 기다리는 튤립도 내 마음과 다르게 서두르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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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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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설경 2편
- 「섬진강 편지」 -섬진강 설경 2편 지난 눈 내리는 날 임실 진뫼마을에서 멈춘 설경을 이으려고 남원 오수 지나 섬진강 상류로 달렸습니다. 임실 진안 쪽은 말 그대로 무진장(무주,진안,장수) 눈이 내려 모처럼 눈 덥힌 옛마을 풍경을 보여줍니다. 운암댐 붕어섬이 내려다 보이는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 붕어섬 조망을 하고 진안에 사는 지인과 함께 데미샘을 보러 산행에 나섰으나 데미샘길 통제로 팔공산밑에서 바라만 보고 왔습니다. 아쉬움에 들린 마이산 설경과 노을빛도 좋았지만 이 깊은 산중에서 반겨주는 지인이 있어 대접받은 차는 종일 눈밭에 젖어버린 몸을 덥혀 주어 참 좋았습니다. #붕어섬 #마이산 #섬진강설경 #섬진강편지 -섬진강 / 김인호 -붕어섬 설경 -마이산 설경 -운암댐 붕어섬도 이제 출렁다리가 놓여져 섬이 아니네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가는 길 - 마이산 석양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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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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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설경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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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앗 함께 나눠요. 토종씨드림과 함께 하는 씨앗 나눔 2025.1.17.
- 토종씨앗을 함께 나누는 '토종씨드림'과 씨앗을 나누기 위한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토종씨드림은 1회용으로 만들어진 상업용 종자가 아닌 내가 수확해서 다시 파종을 할 수 있는 토종 종자를 지키고 널리 퍼트리는 단체입니다. http://www.seedream.org/ 00:00 인트로 00:26 토종씨드림 소개 00:53 55가지 토종 씨앗 포장 작업 01:43 왜 토종 씨앗인가 02:43 토종 씨앗으로 농사 지은 분들이 씨앗 나눔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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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앗 함께 나눠요. 토종씨드림과 함께 하는 씨앗 나눔 202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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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법적’ 지리산산악열차, 마땅한가?
- 지리산산악열차, 마땅한가? _농성 일주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 다녀와서 아침 8시 15분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아이가 방학하면 늦게 일어나니까, 아침 먹을 일이 없어서 늦잠을 잘 수 있다. 참으로 게으른, 아니 느긋한 아침이다. 사실 오늘은 보통 때보다 일찍 일어난 편이다.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알람까지 맞추어 번쩍 눈을 떴다. 15분 만에 짐을 챙겨 터미널로 나섰다. 터미널에서 멋쟁이새 차를 타고 전주로 갔다. 차에는 나와 멋쟁이새 말고도 숙과 호이가 함께 탔다. 도착한 곳은 환경부전북지방환경청. 남원시에서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놓겠다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한 터라 지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환경청 앞에서 부동의를 촉구하며 농성하고 있었다. 농성 일주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여는데, 여기에 함께하기로 하여 우리는 구례에서 전주까지 오게 되었다. 도착하니 농성하던 주옥이 있었고, 곧 남원과 함양에서도 사람들이 쏙쏙 모였다. 내 키만 한 현수막엔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부동의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현수막에 적힌 글들이 마땅히 꼭 이뤄지기를 맘속으로 기도했다. 전주환경운동연합 선생님의 외침에 따라 우린 다 같이 구호를 외쳤다. 남원에서 오신 장 목사님은 이 산악열차가 얼마나 탈법적인지를, 얼마나 낭비인지를, 얼마나 쓸데없는지를 낱낱이 늘어놨다. 남원시는 벌써 모노레일로 600억 가까이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적자가 될 이 산악열차를 또 짓겠다고 하니, 남원 시민들은 얼마나 화딱지가 날까. 게다가 산악열차를 놓겠다는 13.22km 모든 자리의 환경 영향을 평가하지 않고 겨우 1km만 시범 사업으로 해 보겠다고 하니, 황당해 말도 안 나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돌아가며 기자회견문을 읽고 자리를 마쳤다. 기자는 한 사람도 없었지만. 환경청 사람들이 부디 꼭 들어 주기를 바라며 한 자 한 자 힘을 넣어 읽었다. 남원에 사는 강은 글을 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보이는 지리산에 산악열차가 놓이면 정말 끔찍하고 슬플 거라고. 우리는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환경청이 이 얼토당토않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부동의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기후위기 시대다. 탈법적 환경영향평가서가 동의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라 이 기후위기 시대에 산악열차를 놓겠다며 세금까지 쓴 남원시장은 처벌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당장 이상기후로 농사도 어렵고 산불이나 홍수 같은 기후재난이 해마다 더 무섭게 찾아오는 이 시기에, 과학자들이 이미 6차 대멸종이 시작되었다고 경고하는 이 마당에, 있는 숲을 지켜도 모자랄 이때, 어떻게 숲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고 숲살이 들살이를 사라지게 하면서까지 산악열차를 놓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 먹을 게 사라졌을 때 그때 가서 산악열차를 뜯어 먹겠다는 건가? 마치 국회에 백골단을 들여보낸 한 의원과 그 의원이 몸담은 당처럼 ‘뇌가 없는’ 발상이 아닌가. 우리나라 법이 정말 제대로 쓰이는 게 맞는다면, 위법한 내란 범죄자와 그 부역자들이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죄에 딱 맞게 벌을 받는 게 마땅하듯, 환경청이 탈법적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일 또한 참으로 마땅하다. 우리는 마땅한 일들이 마땅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그게 다다. 그 어느 골골에서도 위법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어느 골짜기에서도 생명들이 자기 살던 집에서 쫓겨나서는 안 된다. 참으로 마땅하다. 마땅한 일이 마땅하기를 바라는 게 어찌 이리 어려운 나라가 되었나? 부디 환경청은 마땅한 일을 마땅하게 하기를 바란다. 그게 다다. (아래, 오늘 읽은 기자회견문을 붙입니다. 힘주어 함께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자회견문> 전북지방환경청은 ‘탈법적’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즉시 부동의하라! 전북지방환경청 농성 1주일 되는 날에 우리는 매일 말도 안 되는 일을 마주합니다. 대통령이란 자가 내란을 일으키더니, 검찰총장이었으며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은 모든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법부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었음에도, 이를 비호하는 세력은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참으로 화나고 참담하며 부끄럽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가 참혹하고 암담한 오늘,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지리산산악열차로 인한 국립공원 제도의 ‘비정상’을 고발합니다. 환경부의 무능과 전북지방환경청의 어정쩡한 태도, 남원시의 멈추지 않는 개발 욕구로 인해 지리산국립공원이 무너지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지리산산악열차는 지리산국립공원 9.5km가 포함된 총 13.22km에 달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입니다. 이곳은 국립공원이며, 백두대간보호지역이고, 천연기념물 반달가슴곰이 사는 땅입니다. 이곳은 문화재보호구역에 접해 있으며, 주민이 살고 마을이 있으며, 산사태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남원시는 산악열차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남원시가 지리산산악열차를 말하는 그 순간부터 ‘절대 안 된다’를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보전하자고 약속해 놓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며, 생물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에 그들의 삶터를 짓밟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산악열차는 국립공원을 통과하므로 자연공원법에 따른 환경영향평가 협의,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등을 받아야 합니다. 백두대간보호법,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검토와 절차도 요구됩니다. 그러니 애초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원시는 지리산국립공원 밖 1km만을 분절하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꼼수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탈법적 행위입니다. 작년 8월 8일 전북지방환경청이 지리산국립공원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며 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한 것은 바로 이러한 탈법적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판단됩니다. 그런데 남원시는 작년 12월 26일 또다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전북지방환경청이 남원시가 제출한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접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산악열차는 13.22km에 달하는 사업인데, 이것이 어찌 ‘소규모’라는 말입니까? 13.22km를 분절해서 1km만을 사업 구간으로 정하여 협의를 요청했다면, 이를 지적하여 돌려보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전북지방환경청은 또다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접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를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한 농성이 1주일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북지방환경청은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대체 탈법적 환경영향평가서의 무엇을 검토한다는 말입니까? 전북지방환경청은 검토를 중단하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을 멈추기 위해 ‘부동의’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꼼수 사업이 탈법적으로 진행할 수 없게 못을 박아야 합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지자체장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땅은 더더욱 아닙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반달가슴곰 등 그곳에 사는 생명들의 땅입니다. 현세대는 그들에게서 잠시 빌렸을 뿐입니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농성 1주일을 맞이하며, 관련기관에 요구합니다. 환경부는 자연공원법, 환경영향평가법 등을 악용하는 탈법적 행위를 감사하고, 관련기관에 엄중히 경고하십시오. 전북지방환경청은 탈법적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즉각 ‘부동의’하십시오. 남원시는 지리산국립공원을 훼손하고, 주민 의견을 무시하는 지리산산악열차 추진을 포기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진행되는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이곳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와 생명의 이름으로 탈법적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을 훼손하려는 세력에 단호히 맞서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뭇생명의 마지막 피난처’ 국립공원이 이런 허황된 개발사업에 무너지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1월 23일, 전북지방환경청 농성 1주일 되는 날에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글 : 지리산사람들 삵 사진: 멋쟁이새 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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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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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5편 "둘이 서로 좋아하나…?"
- 다시 봄이 되었다. 캠퍼스 안 호수에 심어진 버드나무에 새순이 나왔다. 한없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머릿결처럼 흔들렸다. 호수에 비친 윤슬과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눈이 부셨다. 수현은 2학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수현이 다니는 경제학과는 여학생이 많은 과는 아니었다. 한 학년에 50명인데 그중 1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만난 후배 중에 운동권이 될 만한 신입생들을 골라봤다. 수현이 나름 몇 명을 골라 이야기를 해봤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수현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수현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현은 깨달았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생이 되었으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네. 사회문제요. 선배 제 문제도 해결 못 하는데 무슨 사회문제를 고민해요? “지금 제 앞길이 구만리에요" 취직도 해야 하고 학점 관리도 해야 하고요. 다른 일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어요. 수현이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이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신입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같은 것을 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현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강진도 서클에 신입회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진은 선배들에게 절대 후배들에게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편안한 선배 친절한 선배로 보여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밥과 차를 사주면서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후배들과 친해지면 서클에 데려갔고 함께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지내던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강진이 있는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수현은 신입회원들에게 왜 학생운동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했지만, 귀담아듣는 후배들은 거의 없었다. 변혁, 혁명, 부조리, 노동 탄압, 독재, 농민들의 현실 이런 단어들은 낯설어했다. 유일하게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후배는 지숙이었다. 지숙은 여수에서 올라온 후배였다 “선배 어디 가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지숙이 수현을 붙잡더니 물었다. 점심시간인데. 어디를 가겠냐? 식당에 가야지. 우리 오늘 특별한 음식을 먹어봐요? 우리 오늘 특별한… 너랑 나랑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올해 신입생은 지숙은 평소에 수현과 친분이 있는 후배는 아니었다. 학기 초에 엠티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다들 관심 없어 하던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유일한 신입생이었다. 학생회관 가는 향하는 길에 두 줄로 심어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수현과 지숙은 그 꽃길을 걸어 내려갔다. “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그냥 선배는 따라만 오세요. 그래, 특별하게 갈 곳도 없으니 함께 가보자.” 지숙은 학생 식당을 지나 더 멀리 가고 있었다. 수현이는 앞에 걸어가는 지숙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서클에 들어오려나…” “ 그냥 학생식당이나 가자. 멀리 가봐야 별것도 없는데…. “수현이 말했다. “선배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저랑 특별한 것을 먹어 보자고 했잖아요.” 지숙이 다시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학생회관을 지나 조금 더 멀리 가니 멀리 교수 식당이 보였다. “너 저기 가자고 하는 거야?” “네…” “저기 뭐 특별한 것이라도 파니?” 솔직히 수현은 교수 식당엔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돈이 모자란 수현에게 교수 식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비쌀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교수 식당이지 학생 식당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좀 더 좋은 음식을 파는 학교 식당이라 학생이 가도 되는 식당이었다. “ 거기 가면 뭘 파는데… 가보면 알아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교수 식당 앞엔 분홍빛 꽃잔디가 가득 피어 있었다. 4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이제 갓 20살이 된 지숙의 볼이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숙이가 저렇게 예쁜 아이였나 수현은 지숙을 얼굴은 멀뚱하게 쳐다봤다. “선배…. 어….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뭐 그렇게 민망하게 보고 있어요?” “아. 미안….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고.” ”메뉴는 제가 이미 골랐어요.“ “어 그래…” “뭔 데…” “청어요!” “ 청어…” “물고기 청어 말이야?” “네. 저는 청어구이를 좋아하거든요.” 지숙이 이야기했다. 여기 식당에서 매주 이날만 청어를 구워 주더라고요. “ 아. 그래서 근데 왜 나랑…” “오늘 여기를 특별하게 온 거야…” “ 선배 기억 안 나요?” “무슨 기억…” “그때 엠티 때 제가 선배에게 이야기했잖아요.” 지숙은 대천 바다로 엠티를 갔을 때 수현과 함께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수현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함께 걷는 것이 지숙은 좋았다. 수현이 민중가요라고 불러주던 노래도 좋았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하라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전화카드한장- 지숙은 수현이 불러준 노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불어오던 저녁 바람과 바다냄새 그리고 파도 소리 모든 것이 지숙은 잊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제가 청어구이를 좋아한다고요.” “그랬었나....” 수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억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엠티로 갔던 대천 바닷가에서 잠시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지숙이 자기는 푸른 바다를 닮은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 그래…. 기억난다.” “ 너.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맞아…” “근데 바다를 좋아하는 거야? “ “아니면 청어를 좋아하는 거야?” “선배 그만 묻고 청어를 드시는 것이 어때요?” 지숙은 어느새 청어를 먹기 좋게 살만 발라 놓았다. 야….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네가 꼭 내 색시라도 되는 것 같잖아. 수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깜짝 놀랐다. ”색시가 뭐예요. 여자 친구도 아니고….“” 아…. 미안“ 수현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알았다.“ 수현과 지숙은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한 캠퍼스를 바라보며 청어를 먹었다. 사실 수현은 청어를 처음 먹어봤다. 먹어본 등 푸른 생선은 고등어가 다였다. 수현의 엄마는 장에 가면 항상 고등어를 사 왔다. 고등어를 김치에 넣어 끓여주거나 무와 조려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도 고등어를 좋아했다. 청어를 보자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 청어 구이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숙이랑 앉아 청어를 먹는 시간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선배..”“왜..”“저 다음에 선배랑 다시 청어 먹으러 와도 되나요?” “어.. 그래 청어 맛이 좋은데… “ 지숙과 수현은 청어를 먹고, 다시 봄이 가득한 교정을 걸었다. 교정은 새로운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벚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은 지숙의 머리와 어깨에도 떨어졌다. 수현은 지숙의 머리에 떨어진 벚꽃 잎을 손으로 떼어내며 수현에게 건넸다. “ 꽃이 널 좋아하나 보다?” “네.!”“ 선배 그런 달콤한 말을 자꾸 하시면 제가 좋아하는 수가 있어요.” 지숙이 하얀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지숙과 수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나경은 수현과 지숙이 함께 걸어오는 것을 봤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왜 그러지, 나경은 수현과 지숙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떨어지는 벚꽃들을 보며 나경은 생각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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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2]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한 동안 귀농하려는 분들께 가급적 들녘보다는 숲으로 귀농하시라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농반진반으로 했던 말이지요. 인류 역사상 인간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거의 숲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들녘의 숲이 아니라 야트막한 동산 속 숲 말이죠. 에덴동산이 그렇고 무릉도원, 샹그리라가 그렇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란 책에서 저자가 그리는 곳도 숲 속이고, 하다못해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에서 그리는 이상향 마을도 산 숲속에 있었습니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라도 속세를 떠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공간들 또한 거의 들녘보다는 숲 속 전원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낙향한 유학자가 쓴 대표적인 농사 책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책 제목에서 그리는 곳도 들녘이 아닌 숲이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도 대부분 산의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얘기인 것을 보면 숲 속의 삶은 인류 모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이 숲 속에서 살다 내려와 원초적 고향인 숲으로 돌아가고픈 지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숲에는 흙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왜 숲엔 흙이 살아있다는 걸까요? 그럼 숲이 아닌 곳의 흙은 살아있지 않다는 걸까요? 저는 살아있는 흙과 비옥한 흙을 구별하고자 합니다. 아마 비옥한 흙으로 치자면 당연히 들녘의 흙일겁니다. 특히 삼각주(델타)의 흙 곧 충적토가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일강 삼각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유역, 인더스 강 유역, 황하 화북지방의 토양이 대표적이죠. 이른바 4대강 문명 발원지입니다. 그 외에도 인도차아나 반도의 메콩강, 미 서부평원의 미시시피강, 남미의 젓줄 아마존강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거대 문명을 일군 강 주변의 충적토양은 강 상류지역의 숲에서 영양물질들이 흘러내려와 강의 범람으로 생긴 땅들입니다. 그러니까 강 주변 비옥한 흙도 따지고 보면 숲 속 상류에서 흘러온 것입니다. 그럼 무슨 근거로 숲 속의 흙은 살아있고 강 주변 들녘의 흙은 그렇지 않다는 걸까요? 흙이 살아있으려면 하늘과 소통해야 합니다. 하늘과 소통하는 핵심은 앞 글에서 말한 바람이고 그로 인해 물과 불이 소통을 합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물과 불은 소통하지 않고 싸우기만 합니다. 태풍이 불어 물이 불을 이기면 수재가 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불이 물을 이기면 화재가 납니다. 그러나 흙을 기반으로 하면 물과 불은 소통합니다. 물과 불이 소통한다고 하니 그 말도 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살아있는 흙의 구조를 살펴보면 바위에서 부서져 나온 흙 알갱이 고상(固相)이 반을 구성하고 그 중 반의 반을 물이 액상(液相)을 이루며 또 그 만큼의 공기가 기상(氣相)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외에 5% 이하로 아주 일부인 유기물이 존재합니다. 이런 흙을 떼알의 흙이라고 하고 입단화된 흙이라고도 합니다. 떼알이란 낱알(홑알)의 흙들이 뭉글뭉글 뭉쳐진 흙으로 특징은 틈새(공극)가 많다는 겁니다. 이 틈새가 살아있는 흙의 본 모습이고 이 틈새를 유지해 주는 게 흙 알갱이 표면에 코팅되어 있는 유기물입니다. 여기서 액상은 물이고 기상은 하늘에서 바람이 흙에 스며든 따뜻한 불입니다. 그리고 이 물과 불이 흙에서 만나 소통한 결과가 바로 유기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흙이 숲에만 있는 건 아니죠. 숲이든 들녘이든 농경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생명수의 기원 그러나 숲에는 남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남다른 물과 불, 물과 바람, 물과 공기입니다. 우선 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숲의 물은 어떨까요? 금방 눈치채셨겠지만 깨끗하죠. 왜 깨끗할까요? 그것은 산의 흙과 나무와 풀들이 뱉어낸 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이 깨끗한 것은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 암반수가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지하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많지요. 지하수엔 중금속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겁기 때문이죠.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 지하수엔 철분이 많고 우라늄도 적지 않습니다. 겉으론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수 말고 맑고 깨끗한 물로 증류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이런 물들은 겉만 깨끗하지 실제로는 위험한 물입니다. 반면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야말로 살아있고 그래서 진짜로 깨끗한 물입니다. 이런 물이 생명을 살리고 기르기 때문입니다. 물은 하늘의 비로 시작되기 때문에 물 또한 하늘과 땅의 소통의 산물입니다. 그 하늘의 물이 제일 먼저 내려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설산입니다. 만년설이죠. 굳이 설산이 아니라도 하늘의 물은 산으로 내려와 생명수로 재탄생합니다. 산에는 바로 흙이 있고 나무가 있기 때문이죠. 그 생명수가 산에서 내려오다 용출하는 곳에 에덴동산이 있고 무릉도원이 있고 샹그리라 동막골이 있습니다. 아마 페루의 마추픽추도 그런 곳일 겁니다. 우리의 전통 마을도 그 생명수가 용출하는 곳에 만들어집니다. 다만 다른 점은 산 속은 아니고 산 밑이죠. 들녘과 숲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마을을 동네라 했죠. 동은 한자로 동(洞)입니다. 골짜기죠. 동네는 같은 물을 먹는 사람들인셈입니다. 앞에서 말한 4대강 문명도 다 이런 설산이나 골이 깊은 산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문명은 강에서 발원했을지는 몰라도 인류의 근본 문명은 산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종자학자로 유명한 바빌로프는 강이 아닌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의 기원을 찾았습니다. (게피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 "세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조) 우리 민족의 고향이라는 백두산도 이름을 보면 원래 설산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산, 바로 백두(白頭)산, 설산이란 뜻입니다. 백두산과 같은 산이 알프스의 몸블랑입니다. 몽(Mont)은 프랑스 말로 "산"이고, 블랑(Blanc)은 "하얀 색"이라는 뜻이니 바로 백두산인 것이죠. 화산이 터져 천지가 만들어졌지만 물의 기원은 변함이 없지요. 반면 4대강 유역은 비옥합니다. 산에서 물만 발원한 게 아니라 물이 각종 영양물질을 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과 영양이 풍부해 농사가 아주 잘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먹는 물로 볼 때는 깨끗한 물은 아닙니다. 강물은 농업용수로는 훌륭하나 식용수로는 적당지 않아 사람은 산의 골짜기 물을 직접 받아 먹어야 합니다. 골짜기 물이 있는 산으로 들어가던가, 그 물이 용출되는 곳, 산 밑을 찾아 우물을 파 먹든가 해야 합니다. 그곳과 멀리 떨어진 들녘에서 그 물을 먹으려면 수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수로로 유명한 게 바로 로마의 수도교지요. 예로부터 치수정책의 핵심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에 달려있었습니다. 비옥한 강 유역에서 발달한 거대 문명은 로마처럼 식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교를 설치해서 먼 산의 골짜기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었습니다. 독점한 것이죠. 중국에선 제방을 쌓아 큰 강을 다스리고 운하를 파서 지천들을 연결해 마을 곳곳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 일에 성공해 중국 최초의 왕조를 세운 사람이 바로 우(禹)왕입니다. 수시로 범람하는 황하의 본류를 다스리려면 제방 쌓아 막아서만 될 게 아니라 강의 지류들을 소통시켜 강물을 흐르게 함으로써 범람을 근본적으로 막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류를 다스려 본류까지 다스렸다는 것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 둘 다에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지류를 통하게 해서 식용수 확보도 원활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원경제지라는 백과사전을 집필한 조선 후기 유학자 서유구는 우왕보다 더 근본을 파악한 사람입니다. 본류보다 지류의 치수를 강조한 우왕의 정책을 겨우 홍수만 억제한 것으로 보고 더 근본은 밭 도랑과 밭 주변 물길 다스리는 일이라 했지요. 강의 본류가 대동맥이라면 밭 도랑은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밭 도랑을 잘 다스리면 밭 사이에 물을 고르게 대어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가 내리고 가뭄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물을 잘 저장하면 홍수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밭을 일구게 하는 것은 그 사람들 모두 다 하천을 관리하게 하는 것과 같다 했으니 치수의 근본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세혈관 같은 밭 도랑과 물길이 바로 강, 하천 발원지라 할 산 중턱 숲인 것입니다. 보통 땅심(지력)이라 하면 거름 또는 유기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서유구 선생은 거름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물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땅 속에 거름이 많다 해도 물이 없으면 전혀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비옥한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흙의 관건은 바로 물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지난해 5월11일에 게재한 '흙에서 나고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에 이어 쓰여졌다. 앞으로 안철환 선생의 후속 글을 2주 간격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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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동네책방상품권 발행
- 2025년 푸른 뱀의 해,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지리산인)은 지리산권 5개 시군에 있는 동네책방과 협력하여 <동네책방상품권>을 발행한다. ‘지리산인’이 <동네책방상품권>을 기획, 발행, 유통하는 이유는 글과 기사를 돈이 아닌 방식으로, 돈보다 더 따뜻한 느낌으로 사례하고 싶어서다. 더불어 ‘지리산인’은 <동네책방상품권>을 통해 지리산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고자 한다. <동네책방상품권> 사용 방법과 흐름은 이렇다. ‘지리산인’에 글 나눔을 한 분에게 ‘지리산인’은 <동네책방상품권>을 보낸다. <동네책방상품권>을 받은 분은 찬장과책장(남원), 오후공책(함양), 지금부터판타지(산청), 시소(하동), 봉서리서점(구례) 등 5곳에서 상품권의 금액만큼 책이나 기념물, 먹을거리 등을 구입한다. ‘지리산인’은 동네책방에 회수된 상품권 금액만큼을 동네책방에 송금한다. <동네책방상품권>을 받고(간직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지리산인’에 기자로 등록하여 글을 쓰면 된다. ‘지리산인’이 지향하는 가치를 알고 싶다면 ‘지리산인’에 들어와 게시된 글을 읽어보면 감이 온다. ‘지리산인’은 http://jirisan-in.net으로들어오거나,구글, 다음 등에서 ‘지리산인’을 검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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