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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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와 농사, 선인들의 통찰
    절기와 농사, 선인들의 통찰 이선재 사마천 『사기』 첫 대목인 <오제본기>에 요임금이 절기를 정한 내용이 나온다. 간추리면 이렇다. 요는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시기를 가르쳐주게 했다. 희중을 욱이에 머물게 하고 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봄 농사를 알려주도록 했으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조성(鳥星)이 정남쪽 하늘에 위치한 시각을 파악하여 춘분을 정하게 했다. 희숙을 남교에 살게 하여 낮이 가장 긴 날 화성(火星)이 정남쪽 하늘에 걸친 시각을 판단하여 하지를 정하게 했다. 화중을 매곡이라는 서토에 머물게 하여 허성(虛星)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으로 추분을 정하게 했다. 화숙을 유도라는 북방에 살게 하고 묘성(昴星)이 정남쪽 하늘에 자리한 시각을 관찰하여 동지를 정하게 했다. 이로써 24절기의 네 기둥인 이분이지(二分二至/춘분, 추분, 동지, 하지)가 확립되었다. 이것이 요임금을 성군으로 칭송한 핵심적인 업적이다. 요임금이 치세하던 시대는 기원전 2300년경으로 아직 고고학적으로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다만 사마천의 많은 기록이 현대의 학술적 연구로 그 사실성이 입증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신뢰성이 대단히 높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서 그 시대 절기에 대한 이해가 통치자들과 민중 모두에게 절실하고 현실적인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농사는 태양과 땅, 바람과 물이 짓는 까닭이다. 농사꾼은 자연의 곁에서 돕는 자일 뿐이다. 이분이지가 확립된 이후 다시 사립(四立/입춘, 입추, 입하, 입동)을 정한다. 사립은 태양의 움직임에 대해서 땅이 반응한 결과로 조성된 자연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는 태양을 기준으로 보면 가장 더운 날이지만 실제로 극심한 무더위는 이때로부터 한 달 정도 후에 온다. 태양의 기운을 땅이 받아 데워지고 이 지열이 우리를 더위에 가둔다. 태양이 가장 짧은 동지가 지난 후에야 역시 심한 추위가 시작되고 한 달 보름 정도 이후인 입춘이 되어야 봄이 움을 튼다. 절기는 이와 같이 태양의 움직임이 갖는 규칙성을 중심으로 땅의 반응을 함께 정리한 ‘태양력’이다. 역법에 대한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음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중들은 음력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달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음력이 어로 활동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지만 농사의 경우에는 음력의 쓸모가 많지 않다. 그리하여 음력을 기반으로 하되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이를 보완한 ‘태음태양력’이 우리 조상들이 쓴 달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확한 태양력을 세우는 일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태양과 달, 별을 정확하게 관측하는 일은 민중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력을 민중들에게 배포하고 때에 맞춰 농사를 짓게 하는 일이 통치자들의 연례적인 임무였다. 농가월령(가)을 배포하고 민중들이 이를 숙지하도록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절기를 잘 아는 것은 농사꾼의 기본적인 자질이다. 철을 모르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다. 그렇다고 24절기만이 철을 아는 방법인 것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벌레 소리로 계절을 판별했다. 어떤 이들은 산과 들에 피어나는 나무와 풀의 잎사귀와 꽃의 변화를 보면서 농사철을 알아낸다. ‘조팝꽃이 피면 모내기를 시작한다’와 같이 자연의 변화에서 때를 알 수 있는 징조들은 많다. 자연을 가깝게 느낄수록, 그리하여 시시각각 그 변화가 피부에 와 닿으면 농사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오늘날에는 철모르는 농사가 대세다. 땅이 꽁꽁 언 한겨울 비닐 하우스에 난방을 넣고 여름에나 먹을 수 있는 오이나 딸기를 재배한다. 딸기같은 경우는 오히려 제철에는 먹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사실 석유를 먹고 사는 셈이다. 그 결과 땅은 황폐해지고 기후위기가 심화된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대안적 농법,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해마다 풍년을 이룰 수 있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다시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짜와야 한다. 다시 또 하늘과 땅의 변화를 깊이 관찰하고 선인들의 통찰로부터 가르침을 얻어야 할 일이다.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4-02-10
  • [구인광고] 지리산을 닮은 천년의 숲, 함께 만들어요.
    <구인 광고> 지리산을 닮은 천년의 숲 함께 만들어요. 지난 가을, 지리산골프장 벌목지 주변에서 씨앗을 채종하였어요. 올봄에는 삽목도 할 거고요. 지리산사람들은 골프장으로 헐벗은 벌목지가 숲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나무 씨앗을 뿌리고, 살펴보고, 기르는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함께할 분을 찾습니다. 활동장소 : 지리산골프장 벌목지(채종, 삽목), 한겨레 숲(파종, 모니터링, 기르기) 활동시간 : 일단 화요일로(모인 분들과 상의해서 조정 가능해요.) 모집기간 : 2월 29일까지 물어보기 : 밤구 010-2281-2310
    • 지리산 오늘
    • 씨앗 숲
    2024-02-10
  • [강좌] 천년의 숲, 그 시작은 씨앗에서
    [강좌] '천년의 숲, 그 시작은 씨앗에서' 강좌신청 : https://forms.gle/A6Tecp9Q7ayLZq7u8 구례 사포마을엔 지리산 골프장 불법, 탈법 벌목지가 있습니다. 벌목된 나무들 주변에서 씨앗을 채종해왔습니다. 한겨례숲에서 그 씨앗이 나무가 되는 과정을 함께해보려합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며 나무와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한 강좌를 엽니다. 나무를 잘 알고 나무와 친해지고 싶으신 분들, 파종, 삽목을 배워 나무를 잘 기르고 싶으신 분들, 씨앗에서 나무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함께하실 분들, 모두 환영해요:) ???? 천년의 숲, 그 시작은 씨앗에서 ???? 씨앗에서 나무로, 어떻게 하면 잘 자랄 수 있을까요? 집을 빼앗긴 나무들, 얼마나 될까요, 누구일까요? - 1강 씨앗에서 나무로 3월 2일 (토) 낮 1시 ~ 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 아침꽃 농원에서 안내자 : 고신애 / 오구균 / 이채수 - 2강 집에서 쫓겨난 나무들 3월 9일 (토) 낮 1시 ~ 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 지리산골프장 벌목지에서 안내자 : 못난이 / 정태준 *수강료 : 회차 당 5,000원 물어보기 : 밤구 010-2281-2310
    • 지리산 오늘
    • 씨앗 숲
    2024-02-10
  • 지극정성至極精誠
    지극정성至極精誠 저희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이신 송기득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선생님은 수년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자신의 삶도 이런저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셨는지 그동안 발행해오던 잡지 『신학비평』을 폐간하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주변에서 제자들이며 지인들이 극구 말려서 『신학비평』은 끝났지만 이후 그 여운을 담아내는 부록처럼 『신학비평 너머』라는 제호로 전보다 규모가 작아진 책을 내며 마음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신학비평 너머』 원고를 청탁하시면서 말씀 뒤 끝에 이 『신학비평 너머』도 올해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왠지 그 말씀이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려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신학비평』은 당신의 모든 일상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 같은 것이며 여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할 것인데 이를 그만둔다는 말은 예삿말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도 선생님의 판단인데 내가 이런저런 짐작을 해서도 또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어서 오늘의 행위가 내일을 결정하게 되니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해야만 운명도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신학비평 너머』 폐간 결정이 그러하신 것 같았습니다. 생성하는 것은 반드시 소멸이 따르는 것이라 하니 선생님께서 그 시기를 보시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학비평 너머』를 더 하시라는 말도 못 꺼내고 글이나 더 열심히 써서 보내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지요.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집중하니 성誠이라는 글자 하나가 떠올랐지요. 선생님의 삶 자체를 이 글자 하나가 오롯이 떠받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군 때의 경전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보면 성誠에 대해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誠者 衷心之所發 血性之所守 (성이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誠에 대한 연변대학에 있던 최민자 교수의 해설을 보면 “일념으로 誠을 다할 때 자신의 誠門이 열리면서 스스로의 신성과 마주치게 된다. 매순간 정성을 다하는 것이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요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 ‘하나’님(‘삼일신고’에 나오는 一神降衷의 의미)을 경배하는 것이다.” “정성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며 잊지 아니하는 것이고 쉬지 않는 것이며 지극한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라는 글들이 나옵니다. 내가 송기득 선생님을 자신의 일상 삶 자체를 오롯이 성誠으로 사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수년간의 지극한 돌봄과 그 죽음 이후 현재 삶만 보더라도 그렇고 선생님의 삶 전체를 한마디로 평한다 해도 성誠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듯싶습니다. 젊은 날 구도행의 시절도 성誠이요 학자로서 학문을 할 때도 성誠이요 가르침이나 모든 삶 행위도 성誠이요 사모님에 대한 극진한 모심도 성誠이었으니 그 지극정성의 삶 자체가 이미 참 본성으로 세속을 살아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책 내용에서 “정성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정성이 더욱 깊어져 우리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그것이 각인되는 단계에 이르면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의 전 과정이 정성의 발현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가히 정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역사상 알려졌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은 밝은이(覺者)들이 이에 속한다. 이는 한마디로 ‘나’(에고)를 잊고 ‘나’(참 본성)를 잃지 않는 경지이다.” 라는 대목을 보면 더욱 선생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아파트에서 두유나 과일주스 등으로 식사를 하시며 불편한 몸으로 혼자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려보다가 시를 한편 만들었습니다. 새는 낮게 날아 나무의 그늘로 그늘로만 옮겨 다니며 아무런 지저귐도 없이 폭염을 견디었다. 견딘다는 것은 영역과 영역의 경계를 사는 일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외롭고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경계를 지우고 순일純一한 하늘을 보게 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오늘이겠지. 오늘이겠지. 그렇게 막연한 설렘 하나로 또 하루가 갔다. (박두규의 시 「또 하루가 갔다」 전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02-09
  • 파랑 또는 파란
    파랑 또는 파란 송태웅 뒤뜰을 바다로 깔았다 하여 내 뒤뜰로는 파랑도 끼룩거리는 철새처럼 밀려오는 것인데 나의 배후가 짙푸르게 물들어 끊임없이 출렁인다 해도 당신은 그 어느 피안에서 흰 주단을 덮고 눕길 바란다 생은 한 필지의 주민등록지 위에 내리는 폭우와 싸워나가는 것 내 영혼이 노쇠한 낙타처럼 더 이상은 어디로도 갈 수가 없을 때 비로소 생은 신생 교회의 거대한 십자 네온사인 같은 헛된 경전을 집어던지고 겨우 허름해질 수 있는 것 생애 처음으로 내게 온 남루여 뒤뜰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고요히 내려앉은 파란이여 --------------------------------------------- 지리산 자락에 들어온 송태웅 시인의 삶의 또는 의식의 현주소가 변하는 과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시다.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고 있는 엄정한 현실 속에서 그는 가식과 위선의 헛된 지난 세월을 집어 던지고 허름한 마음으로 현실의 가난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자 그 신산스럽던 가난도 파란만장한 인생도 토란잎의 물방울처럼 고요히 내려 앉아 영롱하다. 그는 달라진 자신의 현실을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 가난이 비로소 ‘삶의 실재’를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오는 빛나는 각성과 성찰이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의 삶의 배후에는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파랑’이 있다고 말한다. 자본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도 아닌 가난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난은 무능함이고 비천함이며 장애라고 말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런 가난에 휘둘리지 않고 가난을 보듬어낼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배후에는 ‘파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 파랑은 바닥을 치고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파랑’은 뒤뜰의 작물들이든 자연이든 농사든 시골이든 무엇이든 어쨌든 생명의 근원에 닿아있는 무엇일 것이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4-02-09
  • 지리산 화엄사 사하촌 황전마을 남보살님. 남덕순 어르신의 화엄사 이야기
    00:00 인트로 00:15 한 식구 맨키로 지낸 화엄사 03:17 화엄사 산내암자에 대한 기억 08:20 화엄사와 함께한 황전마을 09:03 도광스님 이야기 10:42 터만 남은 자리에 새로 지어진 암자들 00:00 화엄사 차 이야 02:23 논농사 짓던 화엄사 스님들 04:41 연기암 종원스님과의 인연 07:29 차가 다니는 연기암 길이 만들어진 사연 08:39 남보살님이 서원하는 화엄사
    • 지리산사람들
    2024-02-09
  • 2023년 지리산사람들 활동보고와 결산안 공유합니다
    지리산사람들 활동을 응원하고 참여해주신 회원님께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지리산사람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회비와 후원금은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2023년 지리산사람들 활동보고안과 결산안’으로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 첨부파일 확인)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061-783-6547, jirisanpp@daum.net 공유한 활동보고와 결산안은 2월 24일 아침9시, 지리산리조트(함양)에서 진행되는 회원총회에서 심의할 예정입니다. 총회를 포함한 회원모두모임은 2월 23일 ~ 24일(1박2일), 산청과 함양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참석을 요청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사람들 총회준비위원회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회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4-02-06
  • 입춘첩
    「섬진강 편지」 -입춘첩 뒷산은 밤새 흰 눈으로 쓴 입춘첩을 성삼재 이어지는 만복대 능선에 내걸었고 앞산은 얼음새꽃빛으로 쓰고 노루귀꽃빛으로도 쓰고 바람꽃빛으로 쓴 삼색 입춘첩을 골짜기에 내걸었다 온 목숨들 立春大吉 하고 建陽多慶 하시라고 .............................................................................................. 밤사이 지리산에 눈이 내려 입춘 설경을 보러 시암재에 올랐습니다. 만복대 능선길은 하얗게 눈이 쌓였지만 성삼재 넘는 바람은 입춘임을 아는 듯 보드랍기만합니다. 마을로 내려서는 밤재에는 솜털 보송한 노루귀가 분홍꽃빛을 터트리고 있고 골짜기 개울가에는 황금잔처럼 빛나는 얼음새꽃, 변산바람꽃이 피어 움츠렸던 숲을 깨웁니다. 마을 앞 쌍산재 매화도 몇 송이 꽃봉오리를 터트려 놓고 나를 부르는 입춘입니다. 그대도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깨워 어여 봄을 맞이하시기를!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02-06
  •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4명의 작가가 집에 대한 글을 썼다. 집은 집인데 위험한 집!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번득들어 이 책을 집었다. 가장 소설같은, 즉 허구스러운 글은 " 누군가 살았던 집" 전건우 가장 현실같은 소설은 "그렇게 살아간다" 정혜연 가장 소설같은 흥미를 주는 글은 " 반송사유" 정보라 가장 흥미 떨어지는 글은 "죽은 집"정명섭 우리는 누군가 살았던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새로 집을 짓는다해도 그 땅에는 누군가 살았을 것이다. 내 앞의 누군가가 그 집에서 무슨짓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아주 해괴한 일을 했고 그 여파가 도배로 싸 발랐다해도 남았을 수 있다. 내가 사는 집의 역사는 대충 알고 있다. 내 이전에 살았던 집 주인과의 짧았던 동거를 떠 올리면 이 집 역시 참 위험한 곳!이다. 또 집 내부의 환경 또한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아무도 내부 진입 금지!(흐흐) 정보라의 이멜 형식을 취한 글도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산 속에 산다는 것이 그렇다. 더 구체적인 야그는 생략한다. '죽은집'은 이미 읽은 김완의 '죽은자의 집청소'에 대해 아는 바라 흥미가 떨어졌다. 무엇을 읽더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글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 읽기 뿐이겠는가, 뭐든 그렇겠지만. 그런 면에서 나의 평가가 다른이에게는 영향이 없기를... 우짰든 독후감이란것 극히 주관적이다. 특히 나의 독후감이 그렇다는 것은 아는 분은 다 아실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소설이라기엔 너무 현실적. 인간의 이중성 혹은 다중성. 아니면 인간 내면의 선과악. 무엇이라 부르던 공감할 수 있다. 공감하는 인간, 나! 내가 무섭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03
  •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대략 '공부'라는 것은 고딩이나 대학까지를 말한다. 그후 학위를 위해 평생 공부한 사람도 있지만. 그 '공부'하던 시절에 외웠던 것들은 평생을 써 먹는다. 최근 뭐를 해도 저장이 되지 않고 그 옛날 공부하던 시절 것만 튀어나온다. 그 시절 엎드려 자지만 말고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왜 하는걸까? 벌써 여기저기서 여러차례 듣고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도서관같은 '한남자'나 작은 책꽂이 같은 '한여자'가 무너질 때가 됐으니 이런 회한 만큼 쓸모 없는 일도 없다. 들으면 알고 돌아서면 모르는 세계사 책을 읽은 소감이다. 인류의 대멸망이나 소멸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한나라 한가족의 멸망이 그러하듯. 지구는 5번의 멸망이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후다. 화산폭발이나 지진, 홍수나 가뭄같은 기후적 요인이 가장 큰 것이다. 5번의 대멸망이 자연 발생적이었다면 예고되고 있는 인류세의 멸망은 인간이 불러온 재앙이다. 결국 인간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버린 쓰레기가 기후위기를 불러오고 인간의 멸망을 부를 것이라는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의 완성이 멀지 않았다는 예고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소수다. 이 책은 인간 역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국가의 수립과 몰락 그리고 그나라의 흥망성쇠를 기후 측면에서 바라본다. 자연 이변 앞에 꼼짝도 못하는 인간이 이제 그 자연을 뒤 흔들다가 함께 멸망하려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남 탓만 하고 있다. 가장 영특하면서도 미련하고 이기적이다. 불과 한세기 100년을 살까말까 하면서 영원을 지배하려한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겠지만 있다면 그건 욕심과 욕망을 버리는 일이다. 가능하지 않다. 인류세는 종말을 맞겠지만 그 때가 그렇게 멀지는 않을지 모른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욕심때문에. 저만 잘 살겠다고. 수많은 지구종말 영화들이 생각난다. 기후나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잘 하자!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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