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10(토)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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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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