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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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화 검색결과

  • 봄이 온다는 그 말
    봄이 온다는 그 말 아내의 투병은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그리고 11월, 12월 두 달 동안 두텁나루숲에 아내가 들어설 자리를 만들었고 해를 넘기기 전에 아내를 데려와 두텁나루숲에서 갑진년 새해를 함께 맞았다. 그리고 2024년 올해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인생의 변화는 주로 내가 아닌 세상의 무엇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변주하는 것은 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 속의 사건은 운명처럼 나에게 오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오로지 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내를 간병하는 두 달 동안 나는 그동안 그려온 그림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이며 강의나 행사, 그리고 회의며 집회 등 그동안 밖에서 했던 일들을 거의 다 줄이고 최소한의 끈들만 남겨두었다.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오르던 물고기가 수족관으로 잡혀 온 것이다. 처음엔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점차 답답해하다가 수족관도 또 하나의 세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고기로서는 혼자서 수족관을 벗어날 수도 없거니와, 새로운 삶의 시작은 이전의 나를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였다. 세상의 변화는 커다란 순환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 그리고 소멸과 파괴의 신 시바, 말하지면 창조, 유지, 파괴 이런 커다란 리사이클 속에 우주 만물과 나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순환의 과정에서 한순간을 반짝이는 것이다. 그래, 인생에서 또 한 번 무언가를 버리거나 잃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맞서지 말고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변주해야지. 봄이 온다는 말은 내가 그만큼 무엇인가를 버리거나 잃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시작되는 나의 봄을 어떻게 꾸려나갈까를 생각했다. 우선 변화된 일상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명상을 통해 멘탈을 더 강화했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배려해야 했다. 아침 식탁을 꾸며내는 것은 일단 성공한 것 같았다. 호두, 아몬드, 볶은 검은콩 등의 적당한 견과류와 바나나, 사과, 당근, 양배추 등을 담은 한 접시의 과일과 야채, 그리고 삶은 달걀 1개와 누룽지 반 공기를 차리는 것이 아침 식사로 굳어졌다. 치료에서 섭생은 운동과 함께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는 것인데 아내의 병은 비위를 상하게 해서 먹는 것을 매우 가렸다. 억지로 먹으면 구토를 하게 되니 그 입맛에 맞춰 잘 먹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아침 식단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내에게 큰 거부감 없이 환자식으로 적절하게 꾸려진 것이 되었다. 이렇듯 나의 현실은 구체적 일상의 손끝에까지 내려와 미시적 세계의 울창한 숲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 숱한 미로를 더듬으며 하루를 꾸려나가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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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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