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지리산 중산리로 향하는 입구 덕산. 덕천강으로 흘러드는 시천천을 따라 중산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외공리 소정골이 나옵니다. 이곳은 1951년 초봄에 민간인 수백 명이 학살당한 곳입니다.

천변에 자리 잡은 외공마을에 조금 못 미쳐 도로변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소정골로 올라가는 길섶에는 안내판이 있어요. ‘지리산 외공(소정골) 민간인 학살 현장’. 안내판의 작은 글씨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지리산 방문객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산리에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전시관이 있어요. 거대한 간판으로 위치를 잘 알려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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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의 산들강을 발로 걸으며, 뭇 생명과 역사를 만나는 프로그램 궁금해 산청 산들강첫 번째 답사지는 바로 이곳, 소정골에서 덕천서원 가는 길입니다. 먼저 매년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대책위에서 주관하는 위령제에 참여하고, 쉼터에서 점심을 먹은 후 덕산의 명소인 덕천서원까지 20, 59번 국도를 걸어갑니다.

덕산농협 앞에서 위령제에 참석하는 삼장면 주민 조재현 님을 픽업했습니다. 차 안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신이 이 부근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조부, 숙모, 두 살배기 사촌 동생까지 몽둥이와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외공 희생자들은 타지 사람들이지만, 비슷하게 희생된 가족들을 그리며 매년 위령제에 참석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쉼터에 차를 주차해놓고 매년 위령제에 참여하시는 분들과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사과, , 떡 등 제물을 나누어 들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배꽃이 피려는 과수원을 따라 가파른 농로를 올라가니 빈터와 묵은 논밭이 나옵니다. 강병해, 강병성 님이 예초기로 총 6기의 무덤(구덩이) 주변을 손보고 있었고, 단속사 주지 자흥스님이 염불을 외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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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가 되어 사람들이 다 모이자 참가자 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청의 인권단체 함께평화 분들과 간디학교 학생들, 산들강 참가자들, 산청, 진주 주민들이 간략히 자기소개를 하고, 위령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큰 구덩이가 있었던 터에서 진상규명 대책위 서봉석 위원장의 진행으로 함께평화 이성락 님과 간디학교 역사동아리 학생과 함께 젯상에 술을 올리고 참배했습니다. 자흥스님이 위령기도를 올려주셨어요.

참가자들이 한 송이씩 국화를 백비에 바친 후, 다른 구덩이로 이동하여 서봉석 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이 장소를 발굴하게 되었지만, 희생자들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실불능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출토된 유품으로 미루어 경기도 인천 쪽 주민들로 추정되고, 여성과 어린이의 유골이 함께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손이 묶여 꿇어앉은 상태에서 총에 맞은 형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신을 대충 덮었기 때문에 산짐승에 의해 골짜기 아래쪽까지 끌려 내려온 몇 구를 주민들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굴 이후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해서 관련 토지를 진상규명 대책위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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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 님은 진실불능 판정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전시 자료를 빌려서 열람했으나 불행하게도 딱 51년도 그 부분이 없었고, 중요 기관들에 묻혀있는 기록이 있지 않을까, 두 번이나 소위 민주정부가 들었는데도 이 부분에 대한 접근권이 없었다는 것을 아쉬워하셨습니다.

 

현장을 보고 증언을 들어도 진실 규명은 문서화된 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면 불가하다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누가 양민이고, 누가 빨치산인지는 규명이 어렵지요. 따지고 보면 빨치산이 대체 뭐가 나쁜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해방이후 자생한 주민 자치 조직을 빨치산이라고 부르며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만든 것이 양민학살사건 아닌지, 나라가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부끄럽게도 동족상잔이라는 가장 수준 낮은 폭력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고대로부터 많은 국가들이 그러했고, 역사는 정복과 침략의 역사이니, 동족상잔과 제노사이드는 국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성인들은 죽이지 말자라는 가르침을 설파했지만, 성인들의 가르침은 종교가 되고, 국가는 종교를 핑계로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사이좋게 살자라는 단순한 생각조차 배척과 학살의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악은 평범합니다. 나는 사람을 안 죽일 거 같지만 힘 있는 자가 시키면 죽이게 됩니다. 안 그러면 내가 죽을 거 같으니까요.

다른 민족들이 서로 죽이는 것도 같은 호모 사피엔스끼리 죽인다는 점에서는 동족상잔입니다(동종상잔이라 불러야 할까요). 생각하는 사람이 맞나 싶어요. 감수성이 높아지면 종간 학살도 꺼리게 되는데, 아직 인류는 동종상잔의 폭력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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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이 어떤 자세였는지 설명하는 서봉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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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학교 역사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온 최보경 교사(간디학교)현 정권에 대한 심판 없이는 이 왜곡의 사건도 진실을 규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피해자의 신상을 떠나서 이곳에 어린이의 유골이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합니다이 비슷한 모든 사건들을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일어난 부당한 폭력임을 인정하고, 동족살해를 이념으로 합리화하지 말았으면 하네요.

 

70년 세월이 흘러 2세대가 더 지났습니다. 폭력을 행한 이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피해자의 유가족도 노년입니다. 기후위기, 종간학살, 생태학살을 멈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로 인류는 우주적 관점에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정신적인 진보를 이루었지만, 현실은 이런 진실 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지리산은 골프장, 산악열차, 케이블카 등 난개발 계획으로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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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 구덩이에 놓인 백비마다 국화를 바친 후 산에서 내려와 십시일반으로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진실규명 대책위에서 도시락을 준비한다고 해서 포장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상상했는데, 비빔밥을 배식해 주셔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일회용품 없는 훌륭한 점심! 만개한 벚꽃 그늘에서 식사를 하니 마치 소풍을 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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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일정으로 바쁜 분들은 먼저 떠나고 산들강 참가자 8명이 남아서 덕천서원까지 걸어갔습니다.

흙을 밟을 수 있는 한적한 산길이 있다면 좋으련만, 20번 국도는 너무 자동차가 많았어요. 자동차를 운전해 올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아이와 함께 찻길을 걷다 보니, 중산리로 가는 자동차가 얼마나 많은지,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위협적인지 실감이 났어요.

 

버스정류소에 서 있던 아저씨가 길 건너에서 우리를 계속 따라왔어요.

어디서 왔소? 왜 버스를 안 타고 걸어가? 버스 타고 가~”

아저씨는 왜 걸어오세요?”

나는 버스를 놓쳐서 걸어가지!”

버스가 몇 분마다 있어요?”

두 시간에 한 번.”

1분에 몇 대씩 지나가는 자가용에 비해 턱없이 적은 대중교통이죠. 도로 옆에 걷기 편한 길이라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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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에도 끄떡없이 봄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었습니다. 참가자 중 숲해설가 선생님이 식물들의 이름을 말씀해 주셨어요.

 

59번 국도에 들어서자, 상황이 좀 나아졌어요. 공중화장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강변 산책길을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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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 도착. 마침 보은문화원에서 단체 관광을 와서 해설을 듣고 있었어요.

덕천서원 건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것을 1920년대부터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변명섭 해설사는 덕천서원에 오면 건물을 보지 말고 땅의 기운을 느껴보라고 합니다. 30분 동안 머물면서 그 기운을 느껴야 한다나요? 덕천서원은 뒤편에는 천왕봉이 정면으로 자리하고, 앞으로는 덕천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전형입니다.

해설사는 마당 양옆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배롱나무 두 그루를 남명 선생과 은진 송씨에게 빗대기도 했습니다. 조식이 은진 송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은진 송씨가 18세 때로, 조식은 이미 50을 넘긴 장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30년이 넘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슬하에 31녀를 두었습니다. 본처인 남평 조씨는 김해에 거주했고, 산청에서 같이 생활한 부인은 은진 송씨라고 하네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실천을 중시하였다는 조식도 누가 밥과 빨래를 해줬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송씨였군요. 송씨는 조식이 죽고 나서도 8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고 합니다. 아무렴, 본처도 송씨도 영감 없는 세상에서 살아봐야죠. 이황 좋아했다는 기생 누구처럼 수절은 안 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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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맡은 편에 한 그루가 더 있다.

 

남명 조식과 양대산맥을 이루었다는 퇴계 이황은 같은 1501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식은 하지 무렵, 이황은 동지 무렵에 태어나서 그런지 사상적으로도 판이했다고 해요. 이황은 성리학의 일인자로 왕을 중심으로 충성하는 면모를 보인 반면, 조식은 민과 함께 하는 실천을 중시하였다고 합니다. 학풍도 현실 참여 vs 학문 이론 중시로 갈라졌는데, 사는 곳이 멀지 않음에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편지로 자주 논쟁을 벌였다고 하네요. 조식이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을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담론하고,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도리어 남에게 사기나 당하고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이황은 제자들에게 "조식은 잘난 척은 심하고 하는 말은 과격하고 노장(老莊)에 물들어 있다. 어떻게 그 사람을 도를 아는 사람이라 하겠는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조식이 시골에 내려와 직접 마당을 쓸어 보고는 잘난 척 좀 했나 봅니다. 그래도 이황과 조식은 말로만 싸웠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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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 은행나무

 

덕천서원 앞에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한 지붕 네 가족이라는 희귀한 공생의 사례입니다. 살아있는 은행나무의 줄기가 갈라진 곳에 찔레와 벚나무, 뽕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벚나무에 벚꽃이 피어있었어요. 우리도 서로 죽이지 말고 저렇게 살아야 할 텐데요.

저 작은 나무들이 더 크게 자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봅니다. 기존의 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 작은 나무들을 베어서 없애게 될까요? 작은 나무들이 저절로 죽게 될까요? 은행나무가 저절로 죽게 될까요? 아니면 의외로 오랫동안 한 줄기에 네 가지 이종 식물이 자라는 희소한 광경을 보게 될까요? 은행나무가 벚나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까요? 한 십년 쯤 지난 후에 덕천서원 앞에 은행나무가 어떤 모습일지, 지리산 마고의 뜻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외공 위령제도 의미 있었지만, 저는 도보 여행자에게 불친절한 20번 국도와 덕천서원 은행나무에 핀 희귀한 벚꽃을 보기 위해서 산들강 답사를 온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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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공리 소정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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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공에서 스러진 영혼들과 덕천서원 공생나무를 만나다 - 4월 6일 '궁금해 산청 산들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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