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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산청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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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해, 산청산들강 5- 함양산청사건추모공원과 왕산 상사폭포를 다녀왔어요.
    안녕하세요~ 산청의 산들강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다섯 번째 답사에서는 금서면 방곡리에 있는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을 방문했다가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왕산 상사폭포까지 걸어갔어요. 산들강 3, 4에서 연속으로 비가 내려 우중 산행을 했었습니다. 우중 산행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만 계곡에 입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 오늘은 맑은 날이길 바랐는데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산청함양사건은 한국전쟁 중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이유로 공산당도 아닌 국군에 의해 산청군 금서면 가현마을, 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에 살던 무고한 민간인 700여명을 처참히 학살당한 사건입니다.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모신 묘역이 바로 이곳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이구요. 합동묘역조성과 위령탑 건립은 2001년 12월 합동묘역조성사업 착공이후 4년에 걸친 공사 진행으로 준공에 이르렀습니다. 건립된 지 20년이 흘렀는데 처음으로 가 보았군요. 무관심에 미안함을 느낍니다. 먼저 전시관에 들러 사건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동영상은 생존자의 증언과 상황재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무고한 주민들이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작전수행의 성과물이 되기 위해 살해당한 사건. 희생자 대부분은 부녀자와 노인이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사건들이 금서, 휴천, 유림 말고도 지리산 자락 곳곳에서 일어났고, 글쓴이가 사는 오부면 일물마을에서도 일어났었답니다. 집 앞에 있는 논에서 주민이 작두에 목이 잘려 본보기로 효수되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일물마을에서는 노약자, 부녀자를 제외한 남자들이 끌려가 학살당했기에, 글쓴이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온 35년 전에는 과부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중장년 마을 원주민들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에게 농사를 배운 분들이었습니다. 산청에서는 8월 14~15일에 함께평화영화제가 있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았어요. 이것도 제주 4.3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이지요. 감독의 어머니는 4.3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아들들을 북한으로 보내게 됩니다. ‘수프’는 영화감독인 딸과 일본인 사위가 집에 오면 어머니가 항상 끓여주시는 닭국인데,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식탁을 의미합니다.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반대편의 이데올로기에 몰입하게 되고, 결국 자녀들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고, 본인도 치매로 기억을 잃고, 딸은 부모를 원망하다가 4.3이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수용과 이해에 이르는 다큐멘터리. 국가는 수프일까요, 이데올로기일까요? 거창함양사건은 이데올로기조차도 아닌, 그저 국군의 성과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주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입니다. 이런 일을 겪고 생존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사실을 말해도 살해당할까봐 두려움에 떨게 될 것 같습니다. 합동묘역이 만들어진 지금은 비교적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억하기 위해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은 어마어마하지요. 병주고 약주고 하는 국가의 실체는 무엇인가 싶습니다. 많은 비용이 투입된 곳이니, 추모공원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쯤 나라를 만든다는 핑계로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기서 나라는 국가 뿐만 아니라 집단, 공동체, 마을이 될 수도 있겠죠. 국가는 사회적인 안전망, 돌봄의 네트워크가 되어야 하는데, 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구성원을 학살한다면, 돌봄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소수 권력집단의 이익을 위한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겠죠. 위령탑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서 둘레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한창 칡꽃이 피는 계절이라, 햇빛이 내리쬐는 시멘트 길에도, 숲속 오솔길에도 향기가 났어요. 산길에서는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상사폭포에 드디어 도착. 물벼락을 맞아봅니다. 땀 흘리며 산에 오른 보람이 있네요. 폭포에서 무지개도 보고, 바위 위에 드러누워 봅니다. 요즘 머릿속이 복잡하고 무거운데 정수리에 물대포를 맞으면서 모두 다 씻겨 흘러가버라~ 하고 기도했어요. 울어서 머리가 가벼워진다면 이 폭포가 다 내 눈물이길. 모든 오해와 상처들도 다 씻겨가 버렸으면 좋겠어요. 폭포에서 내려와 방곡마을 정자에서 숲샘이 준비해온 김민기의 가을 편지를 들었어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누가 나에게도 가을편지를 보내줄까요? 내가 가을편지를 보내도 그 사람은 그 마음 그대로 받아줄까요? 가을엔 아무도 곁에 없는 듯 허전하기만 합니다. 오해 속에 살다가 오해 속에 스러져가는 생명들. 한 때 아름다웠던 우리들 누가 기억해줄까요? 숲샘은 직접 필사한 오세영의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도 읽어주셨어요. 상사폭포를 다녀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무더운 열기도 한풀 꺾인 듯 저녁이 되면 공기가 선선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에어컨 바람이나 계곡이 아니라면 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녹아내리는 여름이 어제 오늘만은 아니었지만, 저는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 때문에 혼이 나갈 만큼 힘들었던 여름방학이었어요. 아이들 방학 중 본가에서 책을 쓰며 머물렀는데, 나를 불편해 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간과 주방에 내가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고, 손님이 오는 날에 나가있으라고 하는 배척과 동선 통제, 사실 왜곡, 정신적 괴롭힘, 언어폭력 때문에 막바지에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는 우울 증상이 생겼어요. 부모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작년에 남편 말고 남자친구가 생겨 이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른 사람,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같이 살 수 없다고 하시네요.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걸까요? 아나키즘을 주장했던 우리 부모님이 당신들은 이제 아나키스트가 아니고 주체사상이라고 하십니다. 옆에 붙어서 보살펴줄 사람은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산들강에 갔었어요. 아름다운 상사폭포가 있는 왕산 자락에서 일어난 참혹한 일.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져 가지만 학살과 폭력은 다른 모습으로 지구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지요. 서로 싫어하고 좋아하는 게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고, 그 모든 게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이라는 걸 인류가 깨닫지 못해 사로 싸우다 절멸에 이르러도, 금서면 방곡리에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지고 지방이 소멸되어도, 상사폭포와 방곡계곡은 계속해서 흘러가길. 함께 걸은 분들과 상사폭포, 가을편지 덕분에 잠시나마 위로 받았습니다. 여담: 이번 주 화요일에는 쓰담 거기가 있었습니다. 경호강변을 따라 쓰레기를 줍다가 카페 한량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림 보존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참여자 중 한 분이 케이블카를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해습니다. 연로한 어머니와 천왕봉에 가보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 할 말이 많았지만 제 순서가 될 때까지 다른 세 분이 발언하는 걸 들으며 기다렸는데, 제 발언 순서 되어 케이블카 이야기를 하자, 내 말을 끊고 케이블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계속 말씀하셨어요. 노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마침 참여자 중 한분이 바꾸고 싶으신 것에 ‘배려’를 적으셔서 그걸 인용하셨네요. 케이블카 찬성하시는 선생님이 제 발언 시간의 2분의 1을 소비하셔서 제가 그래도 말을 마치려고 하자 지속가능협회 회장님이 토론은 여기서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딱 두마디만 했어요. 1. 우리는 인간만 배려할 게 아니라 타 종도 배려해야 한다. 2. 케이블카 예산은 2000억이고, 3억만 있어도 노약자 관광용 헬기를 100번 띄울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도, 아무 말도 안 해도, 그대로 가만히 두어도 아름다운 곳에 굳이 돈이 들여 개악을 시키는 건 무슨 욕심일까요? 케이블카 타고 가지 않아도 되는 왕산 상사폭포가 천왕봉 보다 경치가 좋답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면서 생명들을 울리지 말았으면합니다.
    • 2024 산청의 해
    2024-09-06
  • 궁금해, 산청 산들강 4- 중산리 계곡 두류생태탐방로를 걷다
    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7월 27일)에는 궁금해, 산청 산들강 4가 있었어요. 지리산케이블카 예정지인 중산리 계곡을 답사했습니다. 이날은 일정이 빠듯했습니다. 산청 신안면 중심지인 원지에서 오전에 어린이 아크릴 수업이 있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그림도 같이 그렸어요. 수업이 끝나서는 인근 LH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문학회 동인지 한 박스를 전달해준 후, 김밥과 샌드위치를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중산리로 향했습니다. 비 소식이 있어 우비를 준비해 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맑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자꾸만 날씨를 살피게 되더군요. 원지에서 햇빛이 쨍하니 나서 비가 안 오려나, 했는데, 중산리에 도착하자 하늘이 꾸물꾸물. 중산리에는 ‘빨치산토벌전시관’이 있어요. “얘들아, 좀 시간이 남았는데 전시관 구경 갈까?” “아 싫어~. 저기 가면 이*만 따까리 되는 거야.” 단호한 박달군(초6). “어떻게 해놨는지 보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안 볼래.” 갑자기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어요. 우산을 쓰고 버스 정류소로 걸어가니 숲샘과 참가자 몇 분이 벌써 와 계셨어요. “비가 와도 일정대로 출발합니다.”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 굵은 빗줄기에도 집합시간에 맞게 도착한 참가자들. 간단한 자기소개와 일정설명 후 출발. 오늘의 기수 강병해 님이 지리산 깃발을 들고 당당히 걸어갑니다. 계곡에서의 물놀이로 꼬드겨서 데리고 왔는데 비가 쏟아져서 아이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단야(초3)는 우산을 썼다 벗었다 비를 맞으며 신나게 걸어갔어요. 나중에는 젖은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걸었답니다. 박달 소년은 ‘샤워하며 노래 부르기’가 여름방학 숙제라는데, 비를 맞으며 속으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방학숙제를 했대요. 방학 숙제가 참 훌륭하죠? 가족과 같이 활동하기, 직접 요리하기 같은 숙제도 있어요. 30여 년 전 초등학교에서 야영수련원 가서 비 내리는 날 목청 터져라 ‘호연지기’를 외치며 지리산을 오르던 ‘지옥훈련’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오늘의 코스는 중산리 버스정류소에서 시작되는 두류생태탐방로를 쭉 걸어 올라갔다가,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아스팔트 도로로 탐방안내소 쪽으로 내려와 카페 중산리에 들렀다가 다시 두류생태탐방로로 내려가는 거예요. 두류생태탐방로는 중산리 계곡을 따라 조성된 데크 길인데, 군데군데 야자매트가 깔린 부분도 있어요. 비가 와서 불어난 중산리 계곡의 야성적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집 옆의 조그만 냇물도 불어나 계곡이 되고 폭포가 되어 흐르는데, 중산리 아낙네들의 대중목욕탕이었다는 구시소 폭포는 호우주의보에는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릴 나이야-가라 폭포가 됩니다. 무시무시. 잠시 과거로의 여행. 글쓴이가 단야와 같은 나이인 10살 때 부모님과 함께 제천 덕동에서 열린 ‘자연학교’ 모임에 갔었어요. 덕동계곡 상류 상학동에 흙집이 두어 채 있고 주민은 한 명 뿐인 곳에 수십 명이 텐트를 치고 4박 5일을 했는데, 3분만 걸어가면 운치 있는 계곡과 소가 있어서 어른들이 남탕, 여탕 나눠놓고 신선 놀이를 했었죠. 숲속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야외 결혼식도 있었고, 그 결혼식에 꽃동자 역할을 했었답니다. 모임 막바지에 태풍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계곡이 넘쳐 내려가는 길 위에도 물이 15센티 정도 깊이로 흘렀답니다. 밤중에 번개가 번쩍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조그만 흙집은 이럴 때면 무너지지 않을까, 떠내려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요. 다행히 목숨을 부지했기에 신나는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당시 덕동은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어요. 인근 주민들만 알고 있는 원시 계곡이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가 되었죠. 그때 4박 5일 캠핑을 했던 심심산골 상학동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넓은 주차장과 도로, 두류생태탐방로가 없던 시절의 중산리 모습도 궁금해요. 꿈처럼 안개처럼, 어느 순간 산골에서도 희미해져버린 은하수처럼 아름다웠겠지요. 오늘날의 중산리의 모습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여전히 아름답지요? 케이블카가 생겨도 지리산은 아마 여전히 아름다울 거예요. 그러나 예전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예전이 더 아름다웠어’ 라고 하겠죠. 성형미인이 자연미인이었던 시절을 안다면 누구나 그런 안타까움을 느낄 거예요. 시간 관계상 케이블카 하부 정류장 예정지는 올라가지 않고 바로 아래의 거북이산장에서 상황 설명 후 카페 중산리로 갔어요. 하부 정류장 예정지는 교통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입니다. 그러나 산청군에서 현재 케이블카 노선 변경 용역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류장 위치는 바뀔 가능성이 높아요. 카페에서 쉬면서 음료를 마셨는데 아이들이 청포도 에이드와 레몬차가 너무 달대요. 물을 두 배로 타도 달아서 마시기가 힘들었어요. 우리 가족처럼 원시적인 입맛을 가지고는 생존하기 어려운 세상인가 봅니다. 참가자 중 한 분이 ‘중산리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유럽으로 투쟁의 선진지 견학을 가자, 아이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둬서 되겠냐’는 농담을 하셨어요. 박달 소년은 3살부터 전 세계에 궁금한 장소를 구글맵으로 다 찾아보았으며, 구글맵에서는 에베레스트 꼭대기 풍경도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고 대답해 드렸어요. 요즘에는 우물 안 개구리도 우물에 앉아 하늘에서 찍힌 세상을 봐요. 세상 어디든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피상적인 풍경을 보는 것은 매우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오감 중 시각과 청각에 있어서 인간은 이미 유비쿼터스죠. 시각과 청각 신호가 제한된 프레임과 필터를 통해 들어온다는 게 아쉽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좀 이상한 동물이라, 프레임을 통해 산출된 결과물을 실재보다 더 아름답고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느끼기도 해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 컴퓨터 스크린, TV, 창문, 안경, 자동차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걸까요? 케이블카를 타는 몇 분 동안은 또 케이블카의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계곡을 보겠죠. 우리 눈에 비치는 세상은 이제 거의 항상 렌즈와 프레임을 통해 필터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렌즈와 프레임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하늘과 나무와 햇살과 빗물과 계곡과 흙을 만나는 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경험 아닐까요? 경제적 강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는 평화로운 시간, 소중한 이웃들과 웃고 식사하는 즐거운 시간을 늘려가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고요. 글쓴이는 지금 이 순간 노트북을 내동댕이치고 에어컨을 끄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싶습니다. 남아나는 예산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성형수술 하는데 쓰지 말고, 주민에게 직접 지역화폐로 전달하면 어떨까요? 월요일 아침에 ‘케이블카 반대’ 피켓을 들고 읍의 거리에 서 있었더니, 지나가는 어느 주민이 그러셨어요. “케이블카가 될 거 같아요?” “군에서 추진하고 있고, 환경부에서 안 된다는 말을 확실하게 안하니까 될 수도 있죠. 지금 환경영향평가와 설계 용역에 5억 4천 쓰고 있고요.” “케이블카 만들 만큼 군에 돈이 많아요?” “매년 돈이 남고요. 작년에는 800억 이상 남았어요.” “아니, 그러면 헌 집이나 좀 고쳐주지. 돈 없다고 하던데?” “그러게 말입니다. 매년 돈 남는데 예산 짤 때는 돈 없다고 그래요. 군내버스 한 대 증차하는 것도 2억 든다고, 돈 없어서 안 된다고 하고요.” 매년 난개발에 쓰는 예산을 유효기간이 있는 지역화폐로 주민에게 나누면 관광 케이블카보다 더 절실한 곳에 저절로 돈이 돌아가지 않을까요? 세수 증대와 주민 복지, 자립도 향상에 도움이 되겠죠. 우물 안 개구리와 중산리 계곡의 맹꽁이 들은 목청 높여 노래합니다. 케이블카 말고 기본소득을. 개굴개굴. 난개발 말고 탈성장을. 꽥꽥.
    • 2024 산청의 해
    2024-08-01
  • 간디학교 "팔레스타인의 눈물과 저항, 그리고 연대" 특강...팔레스타인 난민 살레흐 씨, 이정구 교수 참여
    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7월 11일에는 산청 간디고등학교에서 ‘팔레스타인의 눈물과 저항, 그리고 연대’ 라는 제목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흐(28)씨와 부산대 개원연구원 이정구 박사를 초대하여 1부, 2부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특강이 진행되는 간디학교 강당에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응원하는 스티커, 엽서 등 굿즈가 마련되어 있었고, 팔레스타인 국기와 간디 학생들이 그린 한반도와 팔레스타인 형상들, 아나키즘 기호가 걸려 있었어요. 강당에는 간디학교 학생과 교사들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심 있는 지역의 이웃들도 모여 있었습니다. 아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간디학교 학생들의 여는 마당이 있었어요. 젊은 기운이 느껴지는 춤 공연이었습니다. 이어서 살레흐씨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살레흐 씨는 대학시절 영어로 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강연은 영어로 진행이 되었어요. 통역은 간디 학생들이 맡아 주었답니다. 살레흐 씨는 1997년에 가자지구에서 태어나 2022년에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살레흐 씨는 “가자가 팔레스타인 도시인데, 어째서 내가 가자에서 난민이었을까요?” 라는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살레흐 씨 집안은 본래 가자 바깥에 집이 있었는데, 분쟁으로 인해 가자로 피난을 가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래요. 살레흐 씨는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 집으로 놀러 가 삼촌과 놀곤 했는데, 작년 10월에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할아버지 집이 파괴되고, 할아버지와 삼촌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지금 9개월 째 일어나고 있는 집단학살로 35,000명 가량이 사망했고, 1만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된 대부분이 아이들과 여성입니다. 78,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11,000여 명의 부상자들은 치료를 위해 이동해야 했습니다.” “영상은 끔찍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으셔도 됩니다.” 살레흐 씨는 제노사이드의 실상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8개월 전 처참하게 파괴된 가자의 거리와 아이들이 무너진 건물에 깔린 영상, 파괴된 거리를 걷는 세 명의 사람들이 저격당해 죽는 영상, 구급차를 공격하는 영상, 전기가 없어 핸드폰 불빛으로 수술하는 사진. 이스라엘은 병원을 공격해서 의료시스템을 파괴했습니다. 이런 공격 뿐 아니라, 물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55명의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보여드린 건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요? 팔레스타인인들은 75년 이상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영국이 1917년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한 후, 1948년부터 시오니스트들의 이동이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습니다. 살레흐 씨는 점령지의 확장을 ppt로 보여주고, 가자 지구의 상황을 설명했어요. “국경과 해안을 봉쇄하여 주민들이 자유롭게 여행하거나 이동하는 것을 막았고, 하루에 몇 시간만 전기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주민들은 물 같은 기본적인 자원을 제공받지 못하였고, 식수 부족으로 많은 질병이 생겼으며, 요리용 가스 공급 중단으로 사람들이 원시적인 방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살레흐 씨 가족은 매우 운이 좋은 편이라, 전쟁이 시작되고 40일 가량 가자에 있었지만 이집트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번 이상 죽을 위기를 겪었고, 알 시파 병원에 가면서 미사일 파편에 맞는 등 위험한 상황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모와 조카는 아직도 가자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으며, 조카는 전쟁 중에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어요. 살레흐 씨는 대학 시절 학교 사진과 처참한 폐허가 된 현재의 대학교 사진을 보여주며, 최고 우등생이었던 친구가 연락이 두절되었으며,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소원은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지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일상을 사는 것입니다.” 살레흐 씨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1부가 끝나고 포스트잇에 질문을 적는 시간이 있었고, 2부는 부산대 객원연구원 이정구 박사가 자료를 통해 중동의 역사적·지리적 배경과 이스라엘 국가 탄생의 배경과 과정, 시온주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이야기했습니다. 유대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에, 19세기~20세기 초 유럽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으면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으며,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집단 학살이 있었습니다. 드레퓌스에게 프랑스 정부가 간첩 협의를 씌운 일명 ‘드레퓌스 사건’ 이후, 테오도르 헤르츨이라는 유대계 헝가리 언론인은 유대인만의 국가가 필요하다며 ‘세계 시온주의운동’을 제창했다고 합니다. 이정구 교수는 시온주의가 두 가지 의미에서 사악하다고 했습니다. 1. 힘 있는 강대국에 빌붙어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오스만 튀르크 술탄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안 되니까, 영국에 가서 “우리에게 나라를 세워주면 인도 가는 길을 조용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당시의 제국주의에 의존해서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2. 유대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다른 민족과 공존을 거부하였다.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민족주의. 이교수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인도, 중국, 미국에 살던 유대인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나라의 옷을 입고 동화된 모습이었는데요. 지금도 1,300백만 유대인 중 600명이 미국에 살고 있으며, 이들이 팔레스타인에 가지 않는 이유는 시온주의에 동의하지 않고, 이미 정착한 곳을 떠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미국의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유대인은 ‘알리아(상승을 뜻하는 히브리어)’라고 부르며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시온주의자들이 영국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을 만들 때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땅에 가서 사는 거라고 했지만, 그 지역에는 팔레스타인인이 계속해서 살고 있었지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판하면,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위원회에서는 ‘반유대주의’라고 하는데요. 미 대학생들이 팔레스타인 학살을 비판하자, 바이든도 이것을 ‘반유대주의’라고 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홀로코스트와 동의어로 쓰이는 무서운 말입니다. 유대인이 과거 제노사이드를 당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미국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통파 유대인은 ‘메시아가 올 때 까지 국가를 세우면 안 된다’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시온주의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유대인이 이집트를 탈출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왔을 때, 거기에는 블레셋 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블레셋의 땅이라는 뜻이죠. 유대인은 블레셋을 정복했습니다.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골리앗은 블레셋의 장수입니다. 유대인의 역사책인 구약에 이 정복은 성전으로 묘사되지만, 블레셋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봉변도 그런 봉변이 없죠.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어디서 떠돌이 민족이 들어와 여자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땅을 빼앗다니. 고대의 역사가 근대에 와서 반복되고 있는 거지요. 이후 ‘가나안’은 신바빌로니아에 정복되어 유대인은 근대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디아스포라를 겪게 됩니다. 세계사는 정복과 패망, 이주의 역사죠. 디아스포라 상태 유대인들이 근대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을 때(알리아), 팔레스타인인들은 처음에 그들이 정착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정구 교수는 이스라엘 비판을 홀로코스트(제노사이드)라고 부를 수는 없다며, 배타적 민족주의 국가인 이스라엘과 시온주의가 사라져야 하며, 먼저 이스라엘에 어마어마한 무기를 공급하는 미국이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948년 이후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권을 인정하고, 가자와 서안 지구의 점령과 정착지 확장을 종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고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하나의 비종교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서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 국민들이 다 죽은 것도 아니고,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지면서 백인이 다 죽은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사라지고, 비종교적, 비민족적 국가가 건설되어야 합니다.” 이 교수는 팔레스타인 지지 운동과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며, “국제적 연대라고 하는 것은 국제기구들의 활동이 아니라 전 세계 민중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지지하는 거리 시위, 행진, 집회 등의 활동을 말합니다. 집회‧시위 등이 전 세계에서 벌어져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압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살레흐 씨가 보여준 참담하고 절망적인 가자의 사진들을 보면, 멀리 떨어진 우리가 시위, 행진, 집회를 한다고 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을 막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요. 무력武力을 더 강력한 무력武力으로 해결해야 할까요, 무력無力으로 무력화無力化 가 가능할까요? 눈물과 저항, 연대를 통해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는 비종교적 국가가 어렵사리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종류의 계층구조와 차별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배타적 민족주의도 처음에는 이민족의 공격과 침탈로부터 부족을 보호하고 부강해지기 위한 수단이었을 테지만, 민족주의의 주체가 더 이상 약자가 아닐 때는 타민족에게는 악랄한 배척자로, 내부의 약자에게는 지독한 파시즘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사라지고 나면,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인이나 다른 어떤 민족이나 가지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짜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안 죽으려면 죽여야 한다’, ‘내 유전자를 남기려면 경쟁자를 죽여야 한다’, ‘타자는 다 경쟁자고,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일차원적인 두려움에 근거한 폭력성이 인간의 DNA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세상의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질의응답> Q. 유엔은 어떤 활동을 하나요? A. (이정구) 유엔은 있으나 마나 한 기구입니다. 살고 있는 사람을 내쫓으며 UN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세웠어요. 난민구호기구를 만들고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이죠. UN은 약소국에 좋지 않은 일을 합니다. Q. 가자에서 있었던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계시는지요? A. (살레흐) 트라우마 극복은 어렵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무너진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상황을 더 알릴 수 있고, 팔레스타인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Q. 가자에 사는 가족은 안전한지? 연락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A. (살레흐) 가자지구 안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지요. 물과 음식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통신이 자주 끊기기 때문에 일주일에 메시지 한 번 정도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Q. 이스라엘에 왜 직접적인 제지가 이루어지지 않나요? A. (이정구) 이스라엘이 ICC에 제소당해 네타냐후가 전범으로 판정을 받았으나, 네타냐후의 행동을 제지할 수 없습니다. 국제기구를 통해 문제해결을 하는 것은 요원합니다. 미국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네타냐후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중이지만, 이것은 자신들이 전쟁을 너무 많이 벌리고 있기 때문에 말리는 것입니다. 국제기구와 상관없이 팔레스타인지지 운동이 필요합니다. Q.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살육과 전쟁은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식민지를 경험했고, 유대인도 홀로코스트로 고통을 당한 적이 있는데, 시온주의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이정구) 정통파 유대인은 시온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메시아가 올 때 까지 국가를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지요. 또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닙니다. 게르만족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고자, 유대인을 포함한 소수민족 모두를 말살하고자 한 것입니다. 조금 전에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배타적인지 않은 비종교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가 건설되어야 합니다.
    • 2024 산청의 해
    2024-07-15
  • 궁금해 산청 산들강3- 잃어버린 이상향 고운동을 찾아서
    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6월 29일에는 궁금해, 산청 산들강에서 고운동천-등잔봉 구간을 걸었습니다. 고운동천은 산청 양수발전소 상부댐 근처 민박집이에요. 주소는 산청군 시천면이지만, 차편으로 접근을 하려면 산청에서도 삼신봉 터널을 통해 하동군 청암면을 거쳐야 갈 수 있습니다. 고운동은 옛날에는 시천면 반천마을로 난 산길로 걸어 올라갔다고 합니다. 반천마을의 고운동 계곡 초입에는 유명한 배바위와 500년된 참나무가 있어요. 고운동 이름은 최치원의 호를 딴 것으로, 지리산 골짝골짝 최치원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있지만, 그의 이름을 딴 마을은 이곳뿐이라고 해요. 옛사람들이 신선이 사는 이상향, 유토피아로 생각했던 ‘청학동’의 모습을 가장 닮아 있었던 마을이 고운동입니다. 깊은 산속 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돌연 툭 트인 개활지가 나타나고, 그 풍경이 무릉도원과 같았다고 하네요. 가수 한돌이 노래한 지리산의 이상향 고운동은 지금은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오랫동안 가물었는데, 드디어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오면 지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숲샘의 말씀에 따라 비옷을 챙겨입고 고운동천 아래에 모였습니다. 고운동천 주인장인 이도정님은 고운동에서 태어나 살다가 9살 무렵에 부모님이 산 아래의 외공리로 집을 통째로 옮겨서 이사했다고 합니다(산들강 1에서는 외공에서 열린 민간인 학살사건 위령제에 참여했습니다). 옛날에는 고운동에서 누군가 이사를 가면,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집을 해체하여 뼈대를 아랫동네까지 짊어지고 가서 다시 지어다고 하네요. 이도정님이 어릴 때만 해도 고운동에는 30여 가구가 살면서 논밭을 일구며 자급자족을 했습니다. 이도정님은 아름다운 계곡을 오르내리며 학교에 다녔던 유년을 그림같은 추억으로 간직하며 부산에서 살다가, 고향인 고운동에 남은 땅을 상속받게 되어 노후에 들어올 생각으로 민박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먼저 양수발전소 상부댐을 보러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갔습니다. 비가 와서 짙은 안개에 가려 저수지와 반대편 산, 산아래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숲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고운동은 반천리(反川)에 속하는데, 반천은 냇물이 거꾸로 흐른다는 뜻입니다. 하부댐의 물을 거꾸로 퍼올려 상부댐에 저장하는 양수발전소가 생길지 천년 전에 어떻게 알고 이런 의미심장한 이름이 붙었던 걸까요? 등잔봉이라는 이름도 그렇습니다. 천년 후에 등잔처럼 저수지 옆 발전소에 불이 켜질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름을 잘 지은 건지 못 지은 건지, 천년 동안 불렀던 그대로 된 모양입니다.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은 10%라고 하는데, 총 시간의 10%가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래요. 양수발전소는 전기가 풍부할 때 상부댐으로 물을 퍼올려 위치에너지로 저장했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 밑으로 흘려보내서 퍼올렸을 때 소모한 전기의 70% 정도를 생산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포장해서 이야기 하지만, 본질적으로 양수발전소는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소모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원전은 수요에 따라 조절이 불가능하고, 일정하게 생산되는 전기를 소모하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이죠. 요즘엔 심야전기를 많이 사용해서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이 낮은가 봅니다. 이게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어요. 양수발전소란 이름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양수발전소가 아니라, 핵전력소비소라고 부르면 양수댐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왜 존재하는지 초딩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요. 아무튼 양수댐은 핵발전소의 부대시설이고, 지리산의 이상향인 고운동은 그로 인해 아틀란티스가 되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네요. 아, 옛날이여. 이쯤 돼서 ‘고운동 달빛’을 듣고 가야 될 거 같아요. 우리는 등잔봉에 올라서 들었지만, 글과 노래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고운동 달빛/한돌> 마음의 옷을 벗고 달빛으로 몸 씻으니 설익은 외로움이 예쁜 꽃이 되는구나 해맑은 꽃내음을 한 사발 마시고 나니 물 젖은 눈가에 달빛이 내려앉는구나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사랑이 사랑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아프게 사라지지만 산은 울지 않는다 외로운 구름아 어디로 떠나려는가 꽃과 새들의 눈물 속에 산도 지쳐 돌아눕는구나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지리산 지리산아 사랑하는 지리산아 지리산 지리산아 나의 사랑 지리산아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지리산 지리산아)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사랑하는 지리산아)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지리산 지리산아)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나의 사랑 지리산아) 옛 고운동의 모습은 몇몇 사람들의 기억속에 아직도 꿈결처럼 남아 있겠죠? 아프게 사라져도 남은 생명은 살아가야죠. 꽃들의 희망이 잠기고, 새들이 떠나간 고운동의 수면 위에 다시 꽃을 심고 새들을 불러오려는 고운동천. 등잔봉 올라가는 길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돌다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너른 터와 숙소가 나옵니다. 숙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고 촛불을 키고 묵어야 하겠네요. 손님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고요한 숲속의 소박한 쉼터는 잘 알려지지 않아야 좋은 곳으로 남게 되지만, 주인장이 심심치 않을 만큼은 손님이 있었으면 하네요. 고운동천 민박은 명상 수행과 자연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손님에게 알맞을 듯 합니다. 숲샘의 나무 해설을 들으며 산길을 올라갑니다. 숲은 참나무가 주종으로, 하부층은 조릿대가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낙엽이 비에 젖는 냄새가 났어요. 비오는 날에는 산의 초록빛이 마르지 않은 수채화처럼 더욱 선명하고 촉촉해집니다. 오랫동안 가물었다가 비가 내리면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식물이 통통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거칠어졌던 입사귀와 수피들이 물을 머금어 보드라워집니다. 비옷을 입고 산을 오르니 우산에 수관이 가리지 않아 좋았어요. 수피가 두꺼운 코르크층을 이루고 있어 굴피의 재료가 되는 굴참나무, 잎사귀가 넓어 떡을 싸는 데 썼다는 떡갈나무. 짚신 바닥에 깔았다는 신갈나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외제 선생님은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산을 오르셨어요. 조그만 나무비로 표시된 등잔봉. 참여자들의 사진을 한 장씩 다 찍어주신 숲샘. 정상에 올라 잠시 숨을 돌리며 햇살이 가져온 따뜻한 정상차를 마셨어요. 비속에서 호두, 오이 등 소박한 간식을 먹으며 마음을 나누었어요. 숲샘이 고운동 달빛 음원을 찾는 동안 조외제 선생님이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을 들었어요. 이어서 고운동 달빛 감상. 수많은 생명들이 왔다간 그 자리에 꽃은 다시 피고 집니다. 굳이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우리들의 설움과 아픔이 다 녹아서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치환이 부르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도 들었습니다. 지리십경을 만나는 마음의 자세를 그리는 가사가 의미심장해요.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라니’ 감당하기 어려운 대자연의 마음과 만나게 될 테니, 섣불리 오지 말라는군요. 그러게 괜히 와서 울고 가면 어쩌죠. 다행히 오늘은 비가 와서 눈가에 고인 눈물을 웃음으로 감출 수 있네요.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숲샘이 필사한 시 두 편을 들려주셨어요. 빗물에 젖은 나무줄기에 손을 얹어 봅니다. 고개를 들어 초록으로 안구를 채워봅니다. 아낌없는 사랑에 색깔이 있다면, 초록일거라고 믿어요. 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도 한 그루 나무라서, 어느 바람이 있어 우리들의 향기가 살며시 서로에게 닿기를 바래요. 베어져도 꺾여도 아파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나를 내어주는 나무의 사랑을 사람이 흉내내긴 어렵지요. 그런 사랑이 없는 대신 우리는 너나 없는 나무가 아무리 아낌없이 준대도 내 몸처럼 나무와 숲을 아끼고 소중히 지켜주어야 할 거예요. 산에서 내려와 고운동천에서 준비한 시원한 오미자차와 맛좋은 도토리떡, 숲샘이 준비한 삶은 계란을 먹으며 쉬었어요. 지리산 케이블카 현황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최근 경남도에서 케이블카 노선이 산청으로 단일화되었습니다. 숲샘이 며칠 전 MBC경남에서 지리산케이블카산청주민대책위 민영권 집행위원장을 인터뷰한 녹음 파일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어주셔서 낙숫물 떨어지는 정자의 돌 테이블에 둘러앉아 시일지난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마치 과거로 여행한 분위기였어요. 양수발전소, 케이블카, 골프장... 지리산에 왜 이런 일들이 끝없이 일어나는 걸까요? 인간의 영역은 이미 충분하데,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시대라면서 점유면적을 넓히려는 움직임은 무엇인지. 남아나는 전기를 양수댐에 물을 퍼올리는데 쓰고, 정유공장에서 나오는 아스팔트를 버릴 곳이 없어 자꾸 도로를 닦고, 중장비를 놀릴 수 없어 산을 파헤치겠다니. 여분의 에너지와 물질의 열기로 사람이 못 살 정도로 지구가 뜨거워지기 전에 지나친 생산을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비행기, 자동차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관광지 가서 케이블카 타고, 골프 치면서 바쁘게 살다가 아흔 살 쯤 되어 죽어도 그만이지만, 비오는 날 뒷산에서 그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본다면, 괜히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도 놀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사람이 사는데 그렇게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고, 친구가 씌워준 우산과 반찬통에 담아온 오이 한 조각에도 사랑은 있답니다. 누군가 산청에 놀러갈만한 곳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며칠 시간을 내어 고운동에 들러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인류가 자연과의 조화와 지속가능성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위기에 처하다면, 결국엔 늙어죽을 운명일지언정 나 혼자라도 자연과의 조화를 터득해야 하지 않겠어요. 전기 없는 민박집에서 군불을 때고 산나물로 밥을 해먹다 보면 마고 여신이 꿈에 나와 살짝 힌트를 줄지도요.
    • 2024 산청의 해
    2024-06-30
  • [6월 29일] 궁금해, 산청 산들강 3 - 고운동에서 나를 내려놓다
    궁금해, 산청 산들강 3 고운동에서 나를 내려놓다 일정: 2024년 6월 29일 (토) 13:00~17:00 모이는곳: 고운동천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 639-3) 걷는 길 : 고운동~등잔봉 길안내, 숲해설 : 최세현 준비물 : 물과 새참, 참가비 5000원+@ 신청 : 이해성 010-9117-4285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실천단
    • 2024 산청의 해
    2024-06-04
  • [6월7일 낮2시] 마을공동체 방향모색을 위한 세미나
    2024년 6월 7일(금) 낮 2시, 성심원 강당에서 ‘마을공동체 방향 모색을 위한 세미나’가 있습니다. 이 세미나는 열 번째 성심어울림축제 일정의 하나로 산청성심원은 ‘성심원이 바라고, 꿈꾸는 마을공동체!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세미나에는 승묵 스님(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김호열 목사(함양 두레마을), 김명철 원장(힐링, 치유마을), 이상충 과장(장애-비장애 통합마을, 대구 안심마을) 등이 참석합니다. 세미나 전후로 전야 축하공연, 축하 미사, 초여름 밤의 작은음악회 등이 열립니다.
    • 우리마을
    • 산청
    2024-06-03
  • 경호강과 엄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우리강의 어류를 만나다- 궁금해, 산청 산들강 2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의 엄천강은 산청군 생초면 두물머리에서 만나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흐릅니다. 이곳에는 강정마을 자연발생 유원지가 있습니다.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하얀 모래톱이 반짝여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노래가 떠오르는 곳입니다. 강정마을 건너편 상촌리 강변 일대는 2019년 5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여울마자 치어를 방류한 복원지입니다. 여울마자는 낙동강 수계 남강에만 서식하는 고유어종으로, 당시 낙동강청, 산청군, 토속어류보전회,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금서초등학교 학생들과 주민, 군청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치어 1000여 마리를 방류하는 행사를 가지고, 복원지임을 표시하는 입간판을 세웠습니다. 여울마자는 수질변화에 매우 민감한 어종입니다. 하천 중상류의 모래와 자갈이 깔린 물흐름이 빠른 여울에서 사는 특성으로, 하천 바닥에 유기물이 쌓이거나 녹조류 등이 발생하면 여울마자는 살기가 힘듭니다. 여울마자 치어는 알을 낳을 수 있는 성체가 되기까지 약 10개월의 성장기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환경부에서 이곳에 치어를 방류한 것은 당시 어떤 공사 계획이 없어서 치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인데, 매우 안타깝게도 방류한지 5개월만에 산청군에서 하천정비사업 명목으로 민간업체에 골재채취작업을 허가해줘 강변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여울마자 복원사업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현재는 달뿌리풀과 몇가지 외래 침입종이 들어서서 과거와는 다르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궁금해 산청 산들강에서는 여울마자 복원지인 상촌리 강변 일대를 찾아가 그곳에 사는 생명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래톱 위에는 얇게 진흙이 말라 갈라진 흔적이 있습니다. 강사인 최상두 님은 이것이 오폐수 슬러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물이 깨끗하면 강변에 하얀 모래만 보이는데, 물이 더러우면 모래톱이 오염물질을 빨아들여 수위가 줄어 강변이 말랐을 때 슬러지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오염물질의 흔적은 유속이 느려서 물이 얕게 고여 있는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서 놉니다. 허벅지 깊이까지 들어가 가만히 있으면 다리 주위로 물고기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무슨 어종일까요? 문외한으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건져서 먹었다고 할 정도로 경호강에 물고기가 많아서 생초에는 어탕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쭉 들어서 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어획을 하지는 않고 양식하는 민물고기를 재료로 한다고 합니다. 민물고기 식당 건너편에도 소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몇 년 사이 식물이 우거져 볼만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딴곳으로 갔네요. 다시 두물머리로 돌아옵니다. 최상두 님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오염되는 강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주의를 환기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경호강은 남강이 되어 진양호로 흘러들어가 진주시민의 식수가 됩니다. 산청에서는 생초에 취수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먹는 물이 되는 경호강은 그다지 깨끗하지 못합니다. 2021년 9월에는 생초 옆 오부면의 흑*지*농조합법인 농장에서 5500두 분량의 분뇨가 계곡을 따라 경호강으로 흘러들어 토종물고기와 다슬기 등이 떼죽음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방류한 여울마자 치어가 하천정비공사에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두물머리 하류로 헤엄쳐 갔다면 이때 다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 공장식 축사 건너편 상류에 오랫동안 살았답니다. 수 년 동안 악취와 파리로 많은 피해를 보았지요. 계곡을 따라 산책을 갔다가 건너편 벼랑으로 올라가 본 적이 있는데, 액비저장탱크 내부를 관측할 수 있는 구멍이 딸기다라이로 덮혀 있어서 호기심에 열어봤어요. 내부는 국자로 뜰 수 있을 정도로 분뇨가 가득 차 찰랑찰랑했습니다. 삭아가는 딸기다라이는 다시 잘 덮어두었습니다. 그 아래쪽 고체 분뇨 저장고에서는 어떤 정화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로 계곡으로 똥물이 배출되는 검은 관이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산청흑돼지는 전국에서 가장 맛좋은 고기이지만, 마트에서 고기집에서 한번만 더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놀 수 있고, 여울마자가 살 수 있는 맑은 물과 돼지고기는 과연 바꿀 수 있는 것일까요? 간혹 흑돼지를 먹지만, 내가 본 그 장면들이 떠오르면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돼지 영농사업과 여울마자가 공생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아름다운 풍경에 걸맞지 않은 슬픈 이야기를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맑음’이었지만, 사람들이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흐리고 비오는 날에는 정체불명의 물질로 흐려지는 경호강물.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신고하고, 신고에는 즉각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죠? 오늘 엄마 품에 안겨 강변을 찾아 온 아이들이 10년 후에도 거리낌 없이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는 경호강이 지켜지길 바랍니다.
    • 2024 산청의 해
    2024-05-21
  • 지리산은 물이 좋아 천년을 뽑아도 고갈되지 않는다고?
    지리산은 물이 좋아 천년을 뽑아도 고갈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 음료 매출 1위는 무엇일까? 바로 생수다. 생수 시장의 규모는 연 매출 2조원으로, 연간 10%씩 성장하고 있다. 2022년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제주삼다수(제주개발공사) 40%, 아이시스(롯데) 14%, 백산수(농심) 8.6% 등 세 개 업체가 전체 생수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리산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을 생산하고 있을까? 경남 산청에 있는 4개 생수 공장(지리산산청샘물, 엘케이샘물, 산청음료, 화인바이오)의 일일 취수 허용량 합계는 5,264t. 제주삼다수의 일일 취수량인 4,600t 보다도 많다. 지리산 물은 대부분 OEM으로 유통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 먹는 물의 상당량이, 어쩌면 절반 가까이가 지리산 물이라는 이야기다. 어머니 지리산의 젖줄을 짜내는 생수업체들은 지역에 무슨 기여를 할까? 산청의 생수공장들은 공유재인 지하수로 1천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내지만, 경남도에 내는 수질개선부담금과 군에 내는 지역개발세 외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는다. 올해 3월 570만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전달한 것이 전부. 제주삼다수는 당기순이익의 45%를 도민을 위해 환원하고 있는데, 산청의 생수 업체들과 행정은 지하수 고갈로 인한 주민들의 생활 불편, 농업 피해, 생수운반차량에 인한 교통사고 위험을 나 몰라라 하는 중이다. 산청에는 삼장면과 시천면에 4개의 생수공장이 있다. 삼장면의 지리산산청샘물(일일 600톤)과 엘케이샘물(일일 400톤)은 지척에 자리하고 있으며, 실상 같은 회사라는 정보도 있다. 이중 지리산산청샘물이 올해 2월 경남도로부터 600톤 증량의 임시허가를 받아서 추가 취수공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임시허가를 받고 2년 안에 환경영향조사를 해서 별 문제가 없으면 정식허가를 받을 수 있다. 환경영향조사는 취수공과 관측공을 뚫어 취수량에 따른 지하수의 레벨을 측정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환경영향조사 업체는 기업이 선정하고, 기업이 비용을 부담한다. 따라서 기업의 구미에 맞게끔 보고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 환경영향조사나 환경영향평가는 전혀 견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산청샘물은 추가 취수공에 대한 환경영향조사 뿐 아니라, 기존 취수공 연장을 위한 환경영향조사도 하는 중이다. 지난 4월19일 산청샘물에서 환경영향조사 보고서의 심사가 있었다. 심사에는 낙동강유역청에서 추천한 전문가 5인과 군에서 추천한 전문가 1인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리산은 물이 좋아 천년을 뽑아도 고갈되지 않는다’, ‘암반수량을 정확히 알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서 알 수 없다’는 발언을 하여 주민을 분노하게 했다. 전문가들은 주민이 사용하는 100m 깊이 관정을 '지표수'라 부르며 생수공장 '암반수(깊이 300m)'와는 다른 물이라고 주장했다. 지하수 고갈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삼장면 주민들은 이것이 생수공장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삼장면 21개 마을은 산촌이 대부분 그렇듯이 참새미(자연샘)와 마을 공동수도, 개인 관정에서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어 왔으며, 상수도 시설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주민이 몇 백 년 동안 이용한 참새미가 말라버리고, 관정에서도 흙탕물이 나와 세탁기가 돌아가다 멈추는 현상이 일어났고, 농업용수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주민들은 시간제로 물을 사용하고 있다. 소위 전문가의 주장과 주민의 직감 중 무엇이 맞는 것일까? 네이버 백과만 찾아봐도 전문가들이 얼마나 전문적 식견이 부족한지를 알 수 있다. 다음은 네이버 지질학백과 중 ‘대수층’에 관한 글이다. <대수층은 다양한 심도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지표에 가까운 천부 대수층은 생활용수나 관개용수 공급에 사용되며, 강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국내에서는 심도에 따라 천부 대수층을 충적 대수층, 그리고 심부 대수층을 암반 대수층이라 분류하기도 하나, 이는 대수층을 구성하는 지하매질에 기인한 분류이다. 간혹 대부분의 암반대수층이 피압 하에 놓여 있다고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암반대수층은 상부 충적 대수층과 연계되어 있어 피압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기 어렵다.> 심사위원은 주민이 이용하는 ‘지표수’와 생수공장 ‘암반수’는 다른 물이라고 하지만, 지표수는 개울, 강, 호수 등 노출된 물을 말한다. '국내 대부분의 암반대수층은 천부대수층(충적 대수층)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암반수의 취수가 주민이 이용하는 상부충적대수층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사를 참관한 주민이 촬영한 환경영향조사 보고서 PPT를 살펴보면, 함양량 산정을 위해 가져온 적용값이 엉터리다. 함양률을 산청군(8.1)이 아니라 남강댐의 함양률(13.1)을 적용해서 높이고, 산청군의 10년 평균강수량(1479.75mm)이 아니라, 어느 지역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수치(1,719.9mm)를 이용하는 등 함양량 대비 지하수 이용량을 낮추기 위해 별 짓을 다했다. 이렇게 잘못된 수치들조차 허가를 득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환경영향조사는 완벽한 요식행위다. 조사에 사용하는 공식도 문제가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지하수개발가능량을 산정할 때는 평균강수량이 아니라 가물 때의 강수량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폭우가 쏟아질 때에도 빗물은 대부분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만다. 삼장면 주민들은 이를 갈고 있다. “한번 화를 내니까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오는 기라. 사람이 여유가 없어지고 독해져. 내가 눈빛이 변했다니까. 내 이 싸움 죽을 때까지 할끼라.” 생수공장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 표재호 위원장의 말이다. 표재호 위원장은 산청샘물에서 약 700m 떨어진 덕교마을에서 된장, 간장,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표재호 장 연구소’를 운영한다. 장을 담글 때는 물맛이 중요하다. 지난 2020년에 지하수에서 흙탕물 나와 곤란을 겪은 후, 표재호 씨는 자비를 들여 상수도를 설치 중이다. 수돗물을 그대로 장 담글 때 쓸 수는 없어 염소를 날리는 물탱크도 설치할 계획이다. “지하수는 공적자원인데, 산청샘물의 사용으로 왜 이웃이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이런 상황에 취수량을 2배로 늘리겠다고? 절대 안 되지. 연구개발을 통해 기능성 샘물로 부가성을 높이고, 삼장주민과 상생하며 살아가야지.”라고 말한다. 물보존대책위는 삼장주민 65%의 취수공 증설 반대서명을 받아냈고, 주민의 90% 이상이 보존을 원하고 있다. 대책위에 의하면, 삼장면 이장협의회장, 사회단체협의회장, 식수보존회장, 주민자치위회장 4명이 증량에 동의하는 합의서를 작성했고, 주민들 모르게 이장 20명이 여기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일반 주민들은 뒤늦게 증설에 대해 알게 되었고, 도에서는 엉터리 합의서를 보고 임시허가를 내어줬다. 이에 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하여 경남도, 산청군, 삼장면 등 가능한 모든 창구로 주민피해를 호소하고, 산청샘물과도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행정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모르쇠 답변만 받았다. 임시허가를 신청할 때 주민동의, 주민합의가 필수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다. 군이나 면에 민원을 넣으면, 증량 허가는 도청 소관이라는 답이 돌아오고, 도청에 항의하면 주민 불편은 군에 이야기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엉터리 환경영향조사를 지적하면, ‘전문가가 아닌 무식한 주민이 뭘 아냐’는 답이 돌아온다. 관청의 책임 떠넘기기에 주민의 호소는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이다. 생수공장 문제는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화석수의 무분별한 이용은 심각한 환경문제이고, 공유재를 기업이 독식하며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자본주의의 폐해다. 기업이 끼칠 수 있는 피해로부터 주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는커녕, 자기방어에 급급한 행정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공유재인 먹는 물의 개발에 대해서는 민·관·기업의 공동협의체를 구성해서 주민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취수량을 줄이고 지표수와 지하수를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규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산청군, 경남도, 낙동강유역청은 지하수 고갈 현상을 제대로 조사하고, 주민 피해 방지와 자원 고갈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삼장지하수 #산청생수 #지하수개발 #지하수증량 #공유재이용 #지하수관리 #먹는물관리법 #환경영향조사 #환경영향평가
    • 2024 산청의 해
    2024-05-06
  • 대지가 이끄는 길 따라 한 걸음씩
    머컬처 또는 숲밭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은 『가이아의 정원』을 멋지게 번역한 사람으로 이해성을 기억할 것이다. 책이 나온 후 십 년이 넘게 흘렀는데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가이아가 신음 소리를 내며 죽어가고 있기에 이해성이 들려주는 오늘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는 의외로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지금은 지리산 활동가로, 그는 그 사이 한 번도 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문 : 살아온 얘기랄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해성 : 저는 3년 전부터 ‘지금부터 판타지’라고 하는 이 공간을 운영해요. 카페이자 서점이지요. 이 공간 운영하면서 맡고 있는 부수적인 일들이 있지요. 이를테면 지리산케이블카반대 산청주민대책위에서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필봉문학회에서도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어요. 창원에 마을공동체협력지원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프리랜서 일을 했었어요. 기자 비슷한데 마을 공동체 활동을 취재해서 기사를 써서 보내주면 활동비로 고료를 주었거든요. 그래서 가게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 그런 활동, 말하자면 취재를 하고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그걸 가지고 글을 쓰는 작업을 했었어요. 지리산케이블카반대 일은 ‘이로운 식탁’이라는 소셜다이닝 모임이 있었는데 그 회원들의 의견이 다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목소리를내어보자, 반대하는 활동을 해보자 해서 시작이 되었어요. 그렇게 흘러흘러 어떻게 직함을 가지게 되었네요. (웃음) 처음에는 그럴 줄 몰랐어요. - 총선을 앞둔 장날이라 녹색당원들의 선거운동이 있었다. 이해성씨는 비당원 지지자라고 한다. 산청지역에서 녹색정의당은 362표를 득표했다. 울어야할까 웃어야할까. 문 : 산청에서 태어났죠? 해성 : 아니요. 태어나기로는 인천 어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는데 정확히는 모르고요. 산청에는 다섯 살 때 내려왔어요. 부모님이 귀농하시면서. 문 : 자라온 과정이 범상치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해성 :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죠. 문 : 책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가이아의 정원』이라는 책과 함께 이해성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 같은데요? 물론 그 전에 번역한 책도 있지만. 이 책의 반향이 컸죠? 해성 :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어요. 그때 당시에는 반향이 별로 없었어요. 좀 어려운 책이라고 해야 되나, 9~10년 정도 지나니까 지금 반향이 있어요. 읽었다는 분들도 많이 있고 역자를 만나고 싶다고 찾아오는 분도 있고, 만나고 싶었는데 당신이 이 사람이야? 하면서 반가워 하고 그런 분들도 계시고 정원 프로그램에서 추천받았다거나...... 문 : 제가 책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부모님의 깊은 영향이나 아니면 자신의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생태주의를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구나 하는 ‘그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쨓든 다섯 살 때부터 산청에서 쭉 살고 있는 거죠? 산청을 떠난 적은 없는 거죠? 해성 : 예. 여행 차원에서 간 적은 있지만 주소는 그대로였어요. 떠난 적 없다고 봐야죠. 주옥 : 세상으로 나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리산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해성이라는 사람을 몰랐는데 케이블카 반대 활동 속에서 어느 날 정말 혜성처럼 등장을 한 거에요. 저는 어느 신문사 기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모르는 얼굴인데 젊었고 기자처럼 막 왔다갔다 하고 회의하는 자리에도 와서 앉아있고 그래서 누굴까 실은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알게 되는 과정에서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걸까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생각을 했어요. 문 : 청소년기나 성장기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면 좋겠어요. 해성 : 부모님이 귀농을 해서 살게 되신 곳이 오부면 일물마을 입니다.거기가 산청에서도 오지로 소문난 곳이에요. 비탈길을 올라가면 산꼭대기에 평평한 곳이 있어서 밭과 논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이런 산동네에 들어갔는데, 원래 부모님이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쿠오카 마사노부라는 일본분이 계시잖아요. <생명의 농업>이는 책을 쓰신. 그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아가지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연주의적인 삶을 추구하겠다, 자급자족을 하겠다, 이러면서 내려오신 거예요. 진주에 집을 구해 살면서 여기저기 다녀보다가 그 동네를 선택해서 들어간 거지요. 그때 당시에는 동네에 차도 한 대도 없었고 부엌도 싱크대가 없이 부뚜막에서 밥을 해먹는... 전기는 들어왔어요. 문 : 어머니, 아버지가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셔서? 해성 : 일치하셨겠죠. 저는 어렸을 때니까 속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일치하셨으니까 들어오신 거죠. 그 동네는 당시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어서 주민들이 먹거리는 자급을 하고 동시에 환금작물을 재배하거나, 당시에는 양잠을 해가지고 경제를 영위하는 형태의 동네였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그 동네를 선택하셨나 봐요. 문 : 부모님 연세가? 해성 : 60대 후반, 70 이렇게 되셨어요. 그래서 집집마다 누에를 키우는 별채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걸 지어가지고 불을 때고 했는데, 지금은 누에를 안 키우지만 그런 건물들이 남아서 창고로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죠. 잠사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바닥을 흙으로 마감을 했는데 누에를 키우려면 거기에 시멘트를 발라가지고 불을 땔 수 있게 한 거에요. 따뜻해야 누에가 클 수가 있으니까. 어렸을 때에는 누에를 쌓아놓고 투명해지면 골라내고 그런 일들을 동네아주머니들 도와서 하고 그랬죠. 그런 기억이 있어요. 부모님은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들어가서 그게 하나씩 고장날 때마다 하나씩 안 쓰게 되었어요. 처음에 티브이 가지고 들어가서 안테나 부러지면 안 보게 되고 세탁기 고장나면 안 쓰고 냉장고 고장나면 역시 안 쓰는 식이었어요. -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논의가 시작된 이로운 식탁 모임. 왼쪽부터 영권, 해성, 한범, 경옥, 현정. 사진은 현하. 문 : 부모님이 우리나라 생태주의 1세대 이전 0세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소개되자마자 여기에 심취한 경우 같아요. 해성 : 맞아요. 그분 책을 번역한 최성현 선생님과 자연학교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1년에 네번 정도 모임도 하셨어요. 그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고요. 제가 어렸을 때였죠. 그 모임 회원 가운데 실제로 귀농을 하신 분들은 얼마 안 돼요. 문 :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그 모임을 하시면서 부모님께서는 자신들이 생태주의를 실천하셨을 뿐 아니라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셨어요. 뭐랄까 생태근본주의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성 : 모든 것에 자급자족을 추구하셨어요. 먹거리를 자급하고 연료를 자급하고 의료, 문화, 교육까지도 자급을 해보겠다 이런 태도이셨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한계도 있지만... 문 : 부모님한테 어학을 배우신 건가요? 『가이아의 정원』 책 얘기를 해볼까요? 해성 : 이 책을 제가 선정했어요. 친구 집에 가서 이 책을 발견하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소개를 받았어요. 한 챕터를 번역하고 나서 당시 들녘에서 귀농총서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원고를 보냈죠. 검토를 해달라고. 그런데 들녘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이 이 책을 선정해서 옮기고 있다는 거예요. 이은주 선생님이라고, 근데 이분은 농사를 해보지 않으신 전문번역가이시잖아요. 책 내용은 농사와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이고요. 농사와 관련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옮기는 게 낫죠. 그래서 이 두 개의 원고를 비교 검토를 해보고 들녘에서 저로 역자를 바꾼 거지요. 그래도 이현주 선생님이 반절을 옮겼으니까 그 부분은 제가 윤문을 했어요. - '지금부터 판타지'에는 기후위기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귀한 책과 자료들이 쌓여있다. 문 : 이 책을 보자마자 매료가 되었다는 거죠? 데이비드 홀그램이 쓴 『퍼머컬처』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내용이 너무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반해서 『가이아의 정원』은 이야기 전개가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입니다. 퍼머컬처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네요. 해성 : 저도 이 책과 같이 해보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대로 못한 부분들도 있고요. 이 책에서는 관찰 과정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기간이 아주 중요하고, ‘관찰 속에 해답이 있다’라고 하는데 내가 그만큼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관찰의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뭔가 기획하는 것도 의사결정 과정이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민주적이지는 않지요.(웃음) 즉 어떤 한계가 존재한다는 말이지요. 하고 싶지만 못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무경운으로 풀을 둔 채 관리를 하고 있어요. 방치한 게 아닌데, 아버지가 ‘왜 먹는 것도 아닌데 심어놓았냐’고 하시면서 허브를 갈아엎어버린다거나 풀을 다 뽑아버린다거나 이런 일이 발생을 하는 거죠.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좀 멀리 간다거나 접근이 어려운 곳에 가서 해야 하는 거에요. 왔다갔다 하는 일이 힘들잖아요. 이렇게 실제로 해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장벽에 부딪히게 돼요. 문 : 꽤 독특한 교육과정을 거치셨죠? 해성 : 초등학교만 다니고 중등과정부터는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 주경야독인데 정확히는 아침, 초저녁에 일하고 한낮에는 공부를 하는 거였죠. 문 : 의무교육을 안 해도 괜찮아요? 해성 : 이유가 있으면 안 해도 돼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해에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됐어요. 그래서 산청중학교에 적을 두고 계속 입학유예를 했어요. 그걸 3년인가 하면 자동퇴학이 되거든요. 그때는 그렇게 했었죠. 곤란했던 게, 제가 산청중학교에 적을 두지 않으면 학교에두 개 반이 있었는데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간청을 하게 된거죠. 반을 유지를 해야 하니까. 그 시절에는 홈스쿨링이라는 단어가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비행 청소년인 때였어요. 학교 안 가니까 낮에 읍에 돌아다니면 ‘너 왜 학교 안 갔어? 학교 가라’ 이렇게 잔소리가 들어오는 거죠. 그러니까 일종의 대인기피증이 생겨버려요. 설명하기도 귀찮고, 설명하면 ‘너희 부모님은 왜 그러니? 잘못하는 거야!’ 그러면 또 제가 변명을 해야 되는 게 너무 피곤한 거에요. 지금 학교 안 다니는 친구들은 겪지 않는 문제죠. 저는 정말 강력한 태클이랄까 그런 걸 겪었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은 거의 두문불출했었어요. 문 : 책을 세 권 번역했고, 그리고 글 쓰는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네요. 해성 : 그렇죠. 많이 쓴다기보다는, 번역을 하다 보니까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 : 앞에서 요즘 들어 책에 대해서 관심을 표현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죠? 전반적으로 퍼머컬처를 공부하거나 시도하는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겠죠? 해성 : 퍼머컬처도 늘었지만 그뿐 아니라 정원, 시민정원사 과정 같은 게 많이 생겼구요. 정원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프로그램 강사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요. 퍼머컬처를 먼저 알아서 찾아본다기보다는. <가이아의 정원>은 농업분야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조경 디자인 서적이에요. 문 : 산청케이블카반대투쟁에 대한 얘기를 해주시죠. 해성 : 작년 6월 산청군에서 케이블카 신청서류를 환경부에 제출했어요. 이에 우리가 대책위를 조직해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꾸준히 월요일 아침과 수요일 오후 피케팅을 하고 있어요. 공개 질의서를 군에 내고 거기에 대한 답변이 오면 그 내용과 우리의 입장을 기자들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제가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배포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했습니다. 저로서는 이렇게 사무국장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회의록을 작성한다든지 기록하고 관리하는 일을 전에 좀 해봤어요. 다른 분들보다 제가 컴퓨터로 하는 일, 디자인 작업 등을 할 줄 알다 보니까 실무를 맡게 된거죠. 그 결과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죠. 문 : 지역에 케이블카 이외에 생태, 환경 관련 현안은 어떤 게 있나요? 해성 : 덕산댐 관련 이슈가 있는데 지금 추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유튜브 찾아보면 황당한 영상이 올라와 있어요. ‘산청의 천년대계 덕산댐’이라고. 덕산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건 거기 사시는 분들도 반대를 해요. 생수공장 문제도 있어요. 기존에 지리산 산청샘물이라고 있는데 취소공을 더 파려고 하는 것이지요. 근데 공청회도 하지 않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덕천강 물이 마르고 있는데요. 수위가 내려간 게 재작년부터 확연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제가 그쪽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듣기에 그렇습니다. 문 : 함께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싶네요. 해성 :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한다니까 후원을 많이 해주시고 그래요. 지역에 계신 분들 가운데 관청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은 관에서 추진하는 일을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입장이더라구요. 그런 분들은 반대 발언은 하지 못하고 그냥 후원을 하시죠. 주옥 : 지리산을 지키는 활동 속에서 어떤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내주고 어떤 부분은 기필코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요? 해성 : 많은 것들이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일물 마을에 진입하는 도로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몰라요. 아마 다섯 번 정도는 될 거에요. 점점 넓혀지고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려 있으니까 이제는 상황이 종료된 것이겠죠. 근데 이것조차 한번은 우리 집 앞에 언덕을 밀어버리고 직선도로를 내겠다고 해서 반대해서 무산시킨 일이 있어요. 이 일도 지역 주민인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을 따돌리고 공청회를 진행하고 계획을 세웠었어요. 주민이고 내 곁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당연히 막아야죠. 정말 불필요한 일이지만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진행을 해요. 특히 도로공사 같은 경우에. 그리고 바로 아래 동네에 큰 댐을 만들었어요. 저는 몰랐어요. 근데 주민설명회, 공청회를 했대요. 제 경우 윗동네 사람이니까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수몰된 부분이 생기니까 도로를 부수고 다시 내는 건데 사실은 그 저수지도 필요가 없어요. 농업용수라는 핑계가 있지만요. 그게 없어도 다 농사를 지었었거든요. 그래서 어디까지를 양보하고 어디까지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말로 거기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이게 무엇을 위한 것인가 파악하지 않으면 어려운거 같아요. ‘나는 이제 이 땅을 사용할 일이 없을 거야. 이 땅을 팔 수도 없을 거야. 그러니 보상을 받아야겠어’라고 생각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경우에는 사실 필요가 없는데 하는 거죠. 목적이 따로 있는데 다른 핑계를 내세우기 때문에 그걸 확실히 알지 못하면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사건이 많이 있었어요. 문 : 자본이 굴러가고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돈을 벌면 하는 거죠. 해성 : 돈 번다는데 왜 반대하냐 이런 논리가 있잖아요.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다 이런 논리. 저는 지원을 하고 싶다면 1/n로 나눠주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는 인프라가 너무 충만합니다. 주옥 : 이렇게 전면적인 활동에 해성이 뛰어든 내적 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해요. 부모님의 영향이라든지 살아온 과정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극적인 활동가로 나서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계기라든지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 - 인터뷰에 응한 이해성님과 함께 한 주옥, 밤구, 선재 해성 : 활동가 일이 게 제 의견을 표명하는 일이잖아요? 지금으로서는 글 쓰는 활동과 접목해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산만하면 피곤해지거든요. 사회적 활동에 대한 관심은 제가 산속에서 가족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10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어떤 일은 못하게 되는 거죠. 아랫동네에 저수지가 만들어지는데 그것도 모르고, 소식을 못 듣고, 그렇게 됩니다. 내 주변 일들을 알고,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차츰 쌓여온 것이겠죠. 아이들도 충분히 크고 저도 마흔 가까이 되면서 폭발하듯이 전환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이 가게를 하게 되면서. 그게 여러 층위에서 일어났고 사적인 부분들도 있어서 이 인터뷰 자리에서 다 말하기는 어렵네요. 인생이 2막이라고 한다면, 1막에서 경험하고 쌓아온 것들을 2막에서 좀 더 확장된 영역, 의미 있는 일들에 적용하고 싶어요.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있는 것 같아요. 문 : 『가이아의 정원』과 관련된 활동은 있을까요? 해성 : 산청에 ‘042(공간과 사는 이야기)’라는 모임이 있어요. 이 모임 후기를 매번 제가 써서 올리고 있는데, 저저번 모임에서는 이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강연자로 초빙된거죠. 거기서 퍼머컬처 공부하는 모임을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그랬어요. 다만 제가 시간상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자기 정원, 텃밭 좀 봐달라, 컨설팅 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계셔요. 그래서 가서 살펴보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얘기 나누고 그래요. 문 : 홍성에 가보니까 풀무학교가 처음에 만든 정원을 이웃들이 따라하면서 퍼져나가더라구요. 그렇게 생태적 삶의 모델이랄까 그런게 퍼져나가는...... 해성 : 가족 단위의 퍼머컬처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퍼머컬처가 그런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까 소읍이나 도시의 공동 농장이라든가 군데군데 게릴라 가드닝을 한다든가 또는 퇴비장 사업 같은 일에도 관심이 있어요. 제가 이 가게에서 생활을 하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통에 담아서 배출하지 않아요. 이 뒤쪽에 하나로마트 뒷마당이 있는데 거기가 방치가 되어 있어요. 나무들이 몇 그루 심어져 있고 여름이 되면 풀이 우거지고... 거기에서 퇴비를 만들어요. 그 퇴비를 쓰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나무들에게 돌려주면 좋고 해먹을 걸어서 누워있기도 하고요. 고추나 가지를 심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모든 걸 할 수는 없겠지요. 주옥 : 구례에 있는 한겨레생명평화공원도 함께 보고 거기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도 만나면 좋겠어요. 해성 : 예, 갈게요. 저는 일단 이런 것들을 기사화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많이 어떤 정보들이 가닿지 않는 곳에 전해지고, 그때그때 상황이 되는 사람이 적당한 일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가이아의 정원』을 소개시켜준 니코라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거든요. 그 친구는 캐나다에서 공동농장 매니저를 하고 있어요. 여기서 그 친구가 작은 강연회를 했어요. 사람들이 관심도 많고 호기심도 크더라구요. 후기를 제가 써서 올리면 사람들이 그런 곳도 있구나 인식을 하고, 상황이 되면 하겠죠. 그러면 제가 일종의 씨앗이 되는 셈이고... 문 : 조만간 구례에 오시겠군요! 해성 : 실은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함께 하자고 하셔서 거기까지는 못하겠고 그래도 같이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서 첫 번째 월요일은 비웠어요. 가게를 하면서 1주일에 사흘은 여기 나오고 나흘은 농사를 지었어요. 작년에 5일을 여기 나오게 되면서 농사일에서는 손을 뗐어요. 병행이 불가능해요. 언젠가 이 일을 그만 두고 돌아가서 농사를 짓는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경작을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자급자족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거의 세뇌가 된 사람이라서 농사를 안 짓는 생활이 죄책감으로 다가왔어요. 머리로는 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체적으로 느끼는 반응이 있는 거죠. 지금은 많이 벗어났는데, 농사일을 여전히 좋아하긴 합니다. 문 : 예전에 어떤 강의에서 강사분이 말하길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농사짓는 사람과 안 짓는 사람’ 이렇게 말을 했는데, 저도 그때는 그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식의 언술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해성 : 저 역시 그런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 같아서 싫어요. 그런데 좀 완화해서 농사를 한번이라도 지어본 사람과 한번도 안 지어본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겠지요. 문 :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마치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데 그 결과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어요. 문(밤구) : 영성적인 사고나 몸살림같은 거 보면서 산속에서 살면서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게된 계기나 배경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해성 : 몸살림은 아니고 10대 때 요가를 했어요. 원래 제가 몸치였거든요. 일은 해요. 오래 걷기도 해요. 그러니까 지구력은 있어요. 또 보기보다는 힘이 세요. 그런데 춤추라고 하면 못하고 정해진 동작을 따라 하는 것도 잘 못하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극복해보자, 몸치를 벗어나자, 해서 처음에는 요가를 했어요. 요가 선생님한테 거의 세 시간 강의 듣고, 그분이 추천한 『요가 디피카』라는 책을 보고, 책 내용 따라 하고 해서 다리도 일자로 찢어졌었어요. 지금은 못 하지만. 그런데 요가는 정적이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태극권을 했어요. 태극권은 꽤 오래 했죠. 밝은빛 태극권이라는 곳에서 한달의 반은 서울에 있으면서 중국 선생님이 강의한 내용 녹취해가지고 태극권 책 만드는 작업도 돕고 그랬어요. 문 : 앞으로의 계획은? 해성 : 1년 정도의 계획밖에 없어요. 1년 정도는 지금 하던 작업을 계속한다. 그 이후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1년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비전 세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제가 타로를 해요. 한 삼년 정도 밖에 안 됐어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도구로 사용했던 거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래서 이렇게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1년은 더 할 겁니다. 문 : 그리고 지리산인에 한 달에 두 번씩 글을 올리는 것도 계획이잖아요? 5년 동안! 해성 : 5년이요? (웃음) 타로에 대한 책도 써야 돼요. 지금 70% 쓰고 있는데 그 다음에 탁 걸려가지고 안돼요. 그것도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될수록 그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문 : 타로의 방법론에 대한 책인가요? 아니면 인생에 대한 책? 해성 : 타로에 대한 해설서인데요 인생에 대한 책도 되겠죠. 타로 자체가 인생에 관한 것이니까. 인터뷰를 마치며 타로 또는 그가 풀어놓을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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