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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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반새 탐조 다녀온 여여의 방구일기
    새 덕후, 수달 덕후, 그리고 이 두 덕후의 덕후들의 모임에 다녀왔다. 나는 지리산 자연 덕후들의 덕후들(@jirisan_nomad)의 덕후로서 모임에 참여했다. 수달 덕후는 수달의 똥을 추적하고, 수달 덕후의 덕후들은 수달 덕후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나는 수달 덕후의 덕후들의 꼬락서니를 관찰하는 식이었다. 관찰 결과는 흥미로웠다.먼저 새 관찰을 위해 섬진강 변에 모였다. 양수댐에 반대하는 새 모임_‘양반새’라는 이름으로 이미 몇 차례 탐조 모임을 했다는데, 대부분 양반이 목에 망원경 하나씩을 두르고 있었다. 어떤 양반은 새 도감을 옆구리에 끼고 왔고, 어떤 양반은 모든 새 이름을 받아 적겠다는 듯 안경을 추켜올리며 비장하게 노트를 펼쳤다.이들은 전라도 양반답게 새 이름으로 각자의 호를 만들었다. 작명 원리 설명을 듣는데 이들 학식의 깊이에 감탄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자만 이해한다는 동양 철학의 정수! 주역의 원리를 적용해 호를 지었으니! 그것은 바로 ‘뽑기’였......‘한국의 야생 새 도감’을 무작위로 펼쳐 나온 새가 그 사람의 호가 되었는데, 운명을 거스를 수 없듯, 낙장불입이라고 했다. 역시 지리산 호인들은 다르구나 싶었다. 나는 대단하고 특별하고 퐈려하디 퐈려한 새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도감을 펼쳤고! ‘참새’ 라는 호를 받았다. 다시 뽑겠다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다른 양반이 ‘도둑 갈매기’ 호를 받는 것을 보고 입을 쏙 다물었다.본격적인 관찰을 시작했다. 새 덕후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어마어마한 망원경을 딱 펼쳐 세우면, 새 덕후의 덕후들이 아기 새처럼 조르르 쫓아가 줄을 섰다. 관찰 결과, 이 점잖은 양반들이 고상한 평정심을 잃을 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누군가가 망원경 줄을 새치기할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새들의 짝짓기를 목격할 때였다. 꺄르르 꺄르르 소리가 섬진강에 울려 퍼졌다.나는 양반들을 관찰하느라 그만 탐조의 하이라이트인 짝짓기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 순식간이었다. 별똥별보다 빠른 속도로 불꽃이 튄 모양인데 나만 하이라이트를 놓친 것 같아 무척이나 속상했다. 와중에 칩코 양반은 자기는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수달의 짝짓기도 보았다며 자랑을 해댔다. 칩코는 헤어 스타일부터 옷차림까지 스님룩을 고집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명상하는 성실한 수행자 양반이다. 아, 저만큼 수행해야 수달의 짝짓기를 볼 수 있구나… 이런저런 핑계로 수행에 게을러진 나의 방일함을 반성했다.해가 질 무렵, 수달 동네로 이동했다. 양반들은 수달의 똥만 보고도 흥분했다. 수달의 똥을 만지작거리며, “이것은 수달이 맘 편히 쾌변한 건가요? 아니면 주변에 천적이 있어서 끊어 싸기를 한 건가요?” “똥에서 멸치젓갈 냄새가 나는데 이 하천에 멸치가 있나요?” 등등 수준 높은 질문을 했고, 양반들의 학식에 수달 덕후는 꽤 감동한 듯했다.주변이 어두워지고, 수달 똥 관찰이 끝났다. 나도 양반 관찰을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이 양반들은 새 덕후, 수달 덕후뿐만 아니라 나무 덕후, 풀 덕후, 지리산 덕후를 졸졸 쫓아다니고, 최근에는 지리산 개발 덕후들을 쫓아내느라 바쁘다고 한다. 양반새에 입덕한 나도 덩달아 바빠질 듯하다.여여의 방구 일기 끄읕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2-11
  • 올무수거 다녀온 밤구의 방구일기
    나는 오늘 ’반달곰친구들‘에서 열고 ’지리산사람들‘, ’지리산국립공원전남사무소‘, ’국립공원연구원‘ 등의 단체와 자원활동가가 함께하는 올무 수거 활동에 다녀왔다!올무도 창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밭 근처 산에 사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친구들이 밭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덫을 두는 것이라고 한다. 한 번 걸리면 점점 조여오는 올무와 단번에 뼈도 잘라버릴 것 같은 창애를 시작 전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겁이 나서 잔뜩 움츠린 채 돌아다니길 시작했다.생각보다 눈을 부릅 뜨고 찾아야 보인다는 꼬리의 말에 눈에 불을 켠 채 찾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도깨비풀을 잔뜩 묻히면서 활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다들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열심히 찾겠거니 싶으면서도 나 혼자 엉뚱한 곳에 와서 길을 잃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혹여 올무를 놓치게 될까 가던 길을 마저 탐색하고 되돌아갔다.올무가 없는 건 주민들이 더이상 두지 않는다는 뜻이니 좋은 일이건만, 찾고싶은 마음에 올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플로깅을 할 때도 쓰레기가 없으면 사람들이 버리지 않으니 좋은 거지만 왠지 허탕친 기분이 들곤 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는 생각을 하며 미끄러운 내리막을 조심히 내려갔다.다행히 나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올봄에도 이곳에서 수거활동을 했다고해서 이제 안 두시나보다 하고 안심했지만 집결지엔 올무 5점, 창애 2점, 그리고 농약병 2병이 수거되어 있었다.공들인 작물을 나눌 수 없어 불법임에도 계속 덫을 놓는 농부의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올무를 두는 농부, 밭에 내려오는 산 속 친구들, 그리고 올무를 수거하는 우리들. 꼭 이렇게 잔인하게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지, 이 밭과 나무들이 정말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있는 건지, 조금은 슬픈 마음으로 더이상 올무가 놓이지 않길 바라며 활동을 마무리했다.겨울동안 피아골에서 지내게 된 나는 구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참여해야겠다고 당찬 포부를 품었다!! 감사하게도 소식을 전해주시는 선생님과 친절하게 일정을 올려주는 지리산 방랑단 덕에 조금씩 얼굴을 비추는 중이다. 방랑단의 첫 방구일기가 올무수거 활동이던데! 밤구가 방구일기를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앞으로도 자주 만나요~~~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2-11
  • 가여워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게 되기를 바란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3-12-07
  • 사랑 무렵
    사진 김인호 - 지리산 반야봉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12-07
  • 새로운 도전 환타 맛이 나는 새로운 품종 윈터 프린스
    2010년 어느 날 햇살이 좋던 날에 남원 금지면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포도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농장엔 온갖 허브가 자라고 있었다. 허브가 가득한 포도 농장이라니 생각만 해도 근사했다. 잘 익은 포도 향기와 향긋한 허브향에 가득했던 농장을 그와 함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났고 그는 포도 농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로메인과 생채였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채소였다. 로마인의 상추라고 불리던 로메인은 흔히 담배 상추라고 알려진 상추다. 상추보다 크고 깊은 맛이 있다. 생채는 양상추와 비슷한 맛이 나는 상추다. 당시엔 로메인과 생채가 꽤 인기가 좋았다. 많이 나가는 날에는 하루에 100상자 200상자가 판매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났고 상추를 더이상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무농약 호박 농사를 했고 몇 번 호박을 팔기도 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작년쯤 연락을 했다. 요즘엔 레드 향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연락이 왔다. 새로운 품종 윈터프린스를 키운다고 한다. 윈터프린스는 국내에서 개발한 신품종이다. 지난 12월12일 남원 금지면에 있는 농장을 찾았다. 겨울인데 겨울 같지 않은 날이었다. 따뜻했다. 구례에서 금지를 가는 길은 섬진강을 역으로 올라가면 된다. 구례구역 압록 그리고 곡성을 지나 섬진강을 건너면 남원 금지면이 나온다. 한 때는 거의 사무실처럼 매일 다녔던 곳이다. 금지농민들이 사용했던 금지농민들의 사무실은 남원 원협에서 인수를 했다. 그의 농장은 그 사무실에서 멀지 않았다. 농장에 가보니 한 쪽엔 레드향이 한 쪽엔 윈터프린스가 자라고 있었다. 레드향은 작년부터 출하를 했다고 한다. 맛을 보니 아직 출고할 때가 아닌 데도 향과 맛이 좋았다. 제주도 과일 보다 육지에서 출하한 것들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레드향을 둘러보고 윈터프린스 하우스에 들어가 봤다. 가지 마다 예쁜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올해 4년생 나무라고 한다. "어쩌다가 변경했어요?" "호박 농사가 지겨웠는데 남원에서 신규 사업으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바꾸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채소농사보다 쉽고 수익도 좋은 것 같아서 만족해요" "나무를 심는 동안 수익이 줄어서 힘들기는 했죠" 열매를 먹어보니 까기가 쉽고 맛이 좋았다. "맛이 좋은데요" 네 환타 맛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로 먹어보니 환타처럼 상큼했다. 맛이 청량하니 좋았다. 국내에서 재배하는 만감류 레드향 한라봉 같은 품종들은 모두 일본품종이다. 우리 나라에서 개발한 품종이 일본 품종보다 맛이 좋다니 기분이 좋았다. 재배는 어떤 가요? 재배는 다른 귤 키우는 것과 차이가 없어요. 비슷하게 재배하면 됩니다. 윈터프린스가 수세가 좋아서 잘 커요. 귀농귀촌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 한가요? 네. 키워보니 좋은 것 같습니다. 200평 기준으로 천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 수익이 난다고 보면 됩니다. 일도 채소에 비하면 수월 하고요. 나무 관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채소보다 쉬운 편입니다. 출하는 언제부터 하죠 12월 중순부터 수확하면 될 것 같아요. 맛은 다 들었는데 산을 조금 더 빼야 할 것 같아요. 신맛이 좀 남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비파괴 당도 측정기로 측정을 해서 판매한다고 하다. 과일은 맛이 좋아야 하니까요. 매년 많은 농민들이 새로운 품종을 심는다. 많은 품종들이 실패하고 소수만 성공한다. 한 때 인기가 넘치던 샤인 머스켓은 과도한 재배와 품질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만감류도 요즘 여기저기 많은 재배면적이 늘고 있다. 농산물은 넘치면 가격이 급락한다. 적절한 규모의 재배로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의 농사가 그의 마음처럼 잘 되면 좋겠다.
    • 우리마을
    • 남원
    2023-12-06
  • [12월 29일] 지리산국립공원 생일잔치 초대장
    1967년 지리산은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이자 백두대간의 끝점, 멸종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의 삶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있는 곳.. 지리산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묵직하고 아립니다.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그곳이 삶터인 야생동식물의 관점에서, 생물다양성을 우선에 두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시대 인간만이 아니라 미래세대, 이웃생명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리산에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물이 모이는 곳엔 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12월 29일,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날입니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지난 1년, 지리산자락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립니다. 지리산 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날을 열어갈 지혜를 나눕니다. - 언제: 2023년 12월 29일 (금) 지리산국립공원 생일날 - 어디로 : 지리산 형제봉으로 - 준비물 : 낮밥, 따뜻한 물과 새참, 겨울산행 차림 등 - 만나는 곳 : 8시 40분 구례버스터미널, 9시 30분 하동 악양면사무소 걷는 길 : 고소성~신성봉~신선대~형제봉(고유제)~청학사~정서마을 *물어보기 : 010-4686-6547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12-06
  • [12월 22일,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밤이 가장 긴 날, 동지를 지나면 음에서 양으로 흐름이 바뀌고 태양이 다시 살아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시기, 지리산 이웃들 함께 붉은 팥죽 쑤어 먹으며 세상 악귀 몰아내요. 어려운 일은 나누고 서로 등을 도닥여주어요. 길가의 풀들도 숲속의 고라니도 새해를 준비하는 때, 우리들의 새 마음을 이야기해요. 2023년 12월 22일(금) 동짓날 11:30~15:30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11시30분동지팥죽 나누어 먹어요 12시30분지리산권 5개시군 현안 공유 / 「나의 지리산 선언」 갈무리 / 2024년 나와 지리산 물어보기 010-9996-4875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06
  • 지리산 작은 사찰에서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하였다니
    절기로는 대설(大雪)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아침은 늦가을 같았다. 함양 마천면의 임천(瀶川)강 옆 도로에서 지리산 안국사로 올라가는 1.3km의 산길은 맑은 바람의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강 건너 도마 마을의 다랑논이 아침 안개 어린 풍경 속에 그윽하게 보였다. 지리산 임천 풍경[사진 이완우]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851.5m) 자락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는 지리산을 가깝게 바라보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시대 태종 무열왕(603~661) 때인 656년에 창건되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안정된 통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함양 안국사는 그 이름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무열왕의 의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지리산 안국사[사진 이완우] 함양 안국사는 조선 시대 후기에 어린이의 병을 고치기 위한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保幼新編) 편찬하여 민간에 널리 보급한 의미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작은 사찰에 전해오는 이 소중한 역사와 이야기를 찾아보는 탐방을 하였다. 보유신편은 1843년에 성주 독용산성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에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이곳 함양 안국사의 승려 정훈(正訓)이 1844년에 이 초간본 보유신편을 가져와서 이 지역 함양의 유학자인 노광리(盧光履, 1775~1856)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책을 세상의 의자(醫者)들이 실속 없는 책으로 보니 오래 지나면 없어질까 염려됩니다. 이에 재산을 털어 이 책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자 합니다. 선생은 한마디 말씀을 적어주시어 책머리에 올리게 해 주십시오. 집집이 이 책을 소장하고 활용한다면, 어린이는 병을 고쳐서 자비의 배를 타고 장수(長壽)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곳 함양 안국사에서 1845년 칠석날에 노광리의 서문을 붙인 소아과 목판본 의서 보유신편(保幼新編)을 중간(重刊)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그런데 이 보유신편 책자는 성주와 함양의 안국사 두 사찰에서 간행되기 200년 전에 대전에서 신만(申曼, 1620~1669)이 써서 전해오던 책이었다. 논문 '주촌 신만의 보유신편 편찬과 주촌신방'(양승률, 2012)에 보유신편의 저자인 신만과 이 책이 써진 과정이 잘 밝혀져 있다. 대전 지역에는 고려말부터 그 지역의 한 유력 가문에 의해 미륵원이 건립되어 여행자들의 숙식과 의료를 제공하였었다. 이런 적선 활동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서 백성을 위해 약방문과 우리말 약초 이름을 정리하고 복용법 등을 쉽게 제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 전경[사진 이완우] 신만은 병자호란 후 송시열 문하에서 학업 하였는데, 외아들이 천연두에 감염 사망하였다. 그는 향촌민의 질병과 고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실용적인 의약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신만은 미륵원의 적선 전통이 의국(醫局)으로 운영되며 전해오는 대전 지역의 진잠 주촌(현 대전시 유성구 용계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직접 약초 재배와 임상 등을 연구하고 소아의 질병 대처 방안을 많이 처방하여 보유신편을 저술했다. 이렇게 17세기 중반에 쓰인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을 200년 후인 19세기 중반에 상주의 안국사에서 간행하였고, 사찰 이름이 같은 함양의 안국사에서 지방의 유림과 사찰이 서로 소통하고 협조하여 백성들에게 필요한 의서를 간행하여 향촌에 유포하였다. 지리산 안국사 풍경[사진 이완우] 어른 열 명은 고칠지언정 소아 한 명은 고치기 어렵다. 소아는 오장 육부가 취약하고 기혈이 안정되지 않았다. 경락, 혈맥과 숨결이 가는 실과 같아서 허하기도 하며 실하기도 쉽고, 냉했다가 실해지기도 한다. 소아는 증상을 말하지도 못하고, 손으로 아픈 곳을 가리키지도 못한다. 이러한 동기로 17세기 후반에 신만이 보유신편을 집필하고, 19세기 중반에 상주 안국사와 함양 안국사에서 이 책자를 간행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소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우리나라에 안국사(寺)라는 이름의 유서 깊은 사찰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들 사찰은 이름부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염원을 담고 있는데, 나라 국(國)은 왕조 시대에는 임금만을 의미하기도 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발간한 함양 안국사에서는 백성을 위한 진정한 안국(安國)의 마음을 실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는 새롭게 전각을 건립하고 도량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찰 입구에 있는 고색창연한 4기의 부도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홍시가 매달린 낙엽 진 감나무와 색다른 대조를 이루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한 소중한 역사가 전해오고 있는 함양의 안국사는 지리산의 산줄기에 잘 어울리는 마음이 넉넉한 사찰이었다. 지리산 안국사 감나무[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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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6
  • [12월 12일] 구례군청 앞 아침시위 100일 자축 기자회견
    구례군청 앞 아침시위 100일 자축 기자회견 9월 4일 시작한 아침시위 릴레이가 벌써 100일을 앞두고 있어요. 첫날엔 민소매를 입던 날씨였는데 어느새 롱패딩을 껴입는 날씨가 되었답니다. 100일간 거의 매일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도 계시고, 소중한 하루를 채워주신 분들도 계셔요. 가능한 많은 분들이 오셔서 100일째 되는 날을 기려주셨으면 좋겠어요. ✅12월 12일(화) 구례군청 앞 8:00-9:00 붕어빵 나눠주며 피켓시위 9:00-10:30 몸 녹이며 쉼 10:30-11:00 현수막 퍼포먼스 11:00-11:30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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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6
  • 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구름 바다의 남덕유산
    지리산 바래봉 기슭 면양 목장의 봄날 철쭉 개화 풍경이다. 면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철쭉들은 군데군데 남겨 놓았다. 거친 풀섶과 관목이 면양들에 의해 정리되어 잔디를 깎은 것처럼 철쭉 핀 풍경이 단정했다. [단정한 풍경(사진 류요선). 1996년 봄] 지리산 반야봉의 중봉 정상 부근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며 덕유산의 아침 풍경을 기다렸다. 구름 바다 위에 잔잔한 색조의 아침 노을이 펼쳐졌다. 멀리 남덕유산과 무룡산이 은은하고 가까이는 함양의 삼봉산이 고요하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원경(사진 류요선). 1997년 현충일 다음날] 지리산 바래봉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샘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가 자리를 잡고 야영 텐트를 쳤다. 여름날 더위를 식히며 한가로운 산책을 하다고 이 풍경을 만났다. 얼른 텐트로 가서 사진기를 챙겨 왔다. 오른쪽 끝에 노고단이 살짝 보이고 중간에 반야봉이 높이 솟아 구름을 산록에 걸치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토끼봉과 명선봉 등이 구름 띠를 허리에 두르고 한가롭다. [지리산 바래봉 기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여름 운무(사진 류요선).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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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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