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새 덕후, 수달 덕후, 그리고 이 두 덕후의 덕후들의 모임에 다녀왔다. 나는 지리산 자연 덕후들의 덕후들(@jirisan_nomad)의 덕후로서 모임에 참여했다. 수달 덕후는 수달의 똥을 추적하고, 수달 덕후의 덕후들은 수달 덕후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나는 수달 덕후의 덕후들의 꼬락서니를 관찰하는 식이었다. 관찰 결과는 흥미로웠다.

먼저 새 관찰을 위해 섬진강 변에 모였다. 양수댐에 반대하는 새 모임_‘양반새’라는 이름으로 이미 몇 차례 탐조 모임을 했다는데, 대부분 양반이 목에 망원경 하나씩을 두르고 있었다. 어떤 양반은 새 도감을 옆구리에 끼고 왔고, 어떤 양반은 모든 새 이름을 받아 적겠다는 듯 안경을 추켜올리며 비장하게 노트를 펼쳤다.

이들은 전라도 양반답게 새 이름으로 각자의 호를 만들었다. 작명 원리 설명을 듣는데 이들 학식의 깊이에 감탄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자만 이해한다는 동양 철학의 정수! 주역의 원리를 적용해 호를 지었으니! 그것은 바로 ‘뽑기’였......

‘한국의 야생 새 도감’을 무작위로 펼쳐 나온 새가 그 사람의 호가 되었는데, 운명을 거스를 수 없듯, 낙장불입이라고 했다. 역시 지리산 호인들은 다르구나 싶었다. 나는 대단하고 특별하고 퐈려하디 퐈려한 새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도감을 펼쳤고! ‘참새’ 라는 호를 받았다. 다시 뽑겠다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다른 양반이 ‘도둑 갈매기’ 호를 받는 것을 보고 입을 쏙 다물었다.

본격적인 관찰을 시작했다. 새 덕후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어마어마한 망원경을 딱 펼쳐 세우면, 새 덕후의 덕후들이 아기 새처럼 조르르 쫓아가 줄을 섰다. 관찰 결과, 이 점잖은 양반들이 고상한 평정심을 잃을 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누군가가 망원경 줄을 새치기할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새들의 짝짓기를 목격할 때였다. 꺄르르 꺄르르 소리가 섬진강에 울려 퍼졌다.

나는 양반들을 관찰하느라 그만 탐조의 하이라이트인 짝짓기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 순식간이었다. 별똥별보다 빠른 속도로 불꽃이 튄 모양인데 나만 하이라이트를 놓친 것 같아 무척이나 속상했다. 와중에 칩코 양반은 자기는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수달의 짝짓기도 보았다며 자랑을 해댔다. 칩코는 헤어 스타일부터 옷차림까지 스님룩을 고집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명상하는 성실한 수행자 양반이다. 아, 저만큼 수행해야 수달의 짝짓기를 볼 수 있구나… 이런저런 핑계로 수행에 게을러진 나의 방일함을 반성했다.

해가 질 무렵, 수달 동네로 이동했다. 양반들은 수달의 똥만 보고도 흥분했다. 수달의 똥을 만지작거리며, “이것은 수달이 맘 편히 쾌변한 건가요? 아니면 주변에 천적이 있어서 끊어 싸기를 한 건가요?” “똥에서 멸치젓갈 냄새가 나는데 이 하천에 멸치가 있나요?” 등등 수준 높은 질문을 했고, 양반들의 학식에 수달 덕후는 꽤 감동한 듯했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수달 똥 관찰이 끝났다. 나도 양반 관찰을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이 양반들은 새 덕후, 수달 덕후뿐만 아니라 나무 덕후, 풀 덕후, 지리산 덕후를 졸졸 쫓아다니고, 최근에는 지리산 개발 덕후들을 쫓아내느라 바쁘다고 한다. 양반새에 입덕한 나도 덩달아 바빠질 듯하다.

여여의 방구 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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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새 탐조 다녀온 여여의 방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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