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전체기사보기

  • 초록대문집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초록대문집에 산다는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방랑단은 자주 마고할미타령을 하는데.. 뭔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어서 궁금하셨죠? 실은 저도 올해 처음 공부를 해보았습니다.올해 지리산사람들 활동가 깊은강, 윤주옥, 칩코가 마고할미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책자로 펴냈어요. 마고할미설화 유래부터 변천사, 현재 마고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리산권 단체들, 마고할미설화를 담아 재창작한 그림책까지! 마고할미에 대한 정보가 알차게 들어있답니다.책자를 읽어보고 싶으시면 자율보시 후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에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늘 열린 공간이 아니니 오시기 전 연락주세요.) 보시금은 전액 지리산을 지키는 활동에 사용합니다. 후원계좌는 농협301-0214-8860-11(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입니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구례성다양성축제 후원해주신 감사한분들
    구례성다양성축제 아직 끝이 아니에요! 무지개코딱지들은 해마다 축제의 장터수익금 일부와 남은 후원금을 지리산권 개발반대 활동에 기부했는데요! 올해도 축제를 물심양면 후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기부금을 잘 전달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후원금 보내주신 분들 장소영/ 정이어린/ 똥폼/ 우물/ 강혜인/ 조아라/ 국승일/ 느림보/ 새봄여름/ 강효선/ 진명일_백지/ 탱자씨 (이외 칩코차라의 유부어묵탕을 구매해주신 분들????) > 공간과 물품 대여해주신 분들 비온뒤무지개재단/ 서울퀴어문화축제/ 동아시아에코토피아/ 지리산사람들/ 느긋한쌀빵/ 두루다살림장/ 행행행 올해 축제 기부금(총400,000원)은 아래 단체들에 나누어서 전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 지리산사람들 - 새벽이생추어리 사진. 나무(@fishbowl_e )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하편
    -이전 게시글에 이어서 축제 공간을 어디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 축제는 퍼레이드도 인가 없는 논둑길을 걸어왔다. 우리끼리 안전하게 놀기 위함이었다. 무지개코딱지들이 평소 자주 다니는 두루다살림장은 이미 산정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장터를 해왔고, 장터 기획쌤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우리 축제를 환영해주신 분들이셨다. 두루다살림장의 명성에 묻혀서 장터인 척 축제를 해버리자는 게 우리의 얄팍한 꾀였는데, 장터 기획쌤들은 아무래도 이장님께 허락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우린 또 어물쩡 다양성 축제라고 주절댈 심산이기도 했고, 속으론 성다양성축제라고 해도 못 알아들으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장님은 찰떡같이 ‘티비에서 보던 헐벗은 축제’를 알아채셨고, 허락은 하겠지만 마을에서 시끄러운 말이 나오는 게 염려되니 떡이라도 돌리면 어떠냐고 해주셨다. 축제날 마을회관에 무지개떡을 돌린 이유였다. 물론 이장님의 허락도 두루다살림장 쌤들이 아니었다면 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 테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세상 물정을 안 기분이다. 나쁘게 보면 쫄은 거고, 좋게 보면 신중해진 거다. 근데 또 나만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축제 참여자들은 모르는 얼굴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도 우리 축제에는 처음 오셔서 그랬는지 조금은 수줍고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산내 축제에선 공연을 볼 때 무조건 강제 스탠딩석이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서도 람천교가 부서져라 흔들어대는 친구들을 진정시켜 집에 보내는 게 매번 일이었다(실로 퍼레이드 마지막곡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였다.) 구례 축제는 산내의 활기와는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올해 피날레는 퍼레이드가 아닌 강강술래로 했는데, 그게 올해 참여자들 텐션에 딱 맞아 기쁘기도 했다. 강강술래 가락에 맞춰 손잡고 돌다 보면 고요하고 부드럽게 모두 하나가 되었고, 우리만큼 둥글게 차오른 달님을 다들 한동안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을 알고 나니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산내라는 유일무이한 동네도 기적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올해 구례 축제를 도와주던 새로운 이웃들의 다정함도 기적이고, 벽장에서 나와 축제에 놀러와 준 참여자들도 기적이고, 아무 혐오세력 없이 안전하게 축제를 마친 것도 기적이고, 축제날 달이 밝은 것마저 기적이었다. 글이 길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이다. 일일이 헤아리지 못하는 친애하는 존재들이여, 내내 사랑스럽고 퀴어하소서. 나무마고할미불.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상편
    “축제갈 때 마스크 써야 하나 싶었어요.” 이번 축제 참여자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례에서 처음 여는 성다양성축제는 확실히 산내와 달랐다. 애초에 산내 성다양성축제는 우리 놀자고 만든 거였다. 더 많은 퀴어를 만나고 싶다거나,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도 없었다. 산내 축제에선 다 이미 건너건너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놀러 왔다. 또 산내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성다양성 축제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퀴어’란 단어를 모르실까봐 ‘성다양성’이라는 단어로 바꿔 부른 것이었는데, 산내는 대체로 퀴어라고 하면 다 아셨던 것도 같다. 오히려 ‘성다양성축제’라는 이름이 더 낯설어서, 본의 아니게 위장용 이름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구례로 축제 장소를 옮긴 것이 대단한 포부가 생겨서는 아니다. 구례에서 놀거리를 또 찾아야 했을 뿐이다. 다만 어떤 퀴어한 수다를 지껄여도 척하면 척 알아듣던 산내 친구들이 없으니, 더 많은 퀴어 친구를 만나고 싶기는 했다. 지역살이 햇수가 쌓이면서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이면 좋겠다는 소망도 스멀스멀 생겼다. 뭣도 모르던 귀촌 1년 차에는 아예 상상력이 없어서 겁대가리가 없었다. 시골에선 한 명이 어떤 사실을 알면 곧 마을 전체가 다 알게 된다는 것과, 퀴어라고 하면 집주인이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학습한 후, 나랑 애인은 마을 길을 걸을 땐 손을 잡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구례 성다양성축제는 조심성이 많아졌다. 산내라는 다 된 밥상에서 축제를 차리다 보니, 지역 퀴어축제 기획을 너무 물로 본 듯싶다. 나의 집주인은 매우 다정하고 사교적인 기독교인이시다. 환경보호에도 퍽 관심이 있어, 우리가 하는 행사를 요리조리 물으시다 지난 골프장 반대 문화제 땐 놀러 오시기도 했다. 우리가 축제 준비로 정신이 쏙 빠져있자 집주인댁은 무슨 축제냐고 물으셨고, 우린 “다양성 축제요”라고 중요한 단어를 빼먹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셔서 한숨 돌렸는데 다음날 또 오시더니 “근데 뭐가 다양해요?”하고 또 물으셨다. “성...별, 나이, 인종, 뭐든 다양한...”하고 얼버무리니 무릎을 탁 치시며 “아하! 풍습이나 종교도 다양하고요?”라며 해맑게 덧붙이셨다. 나는 급하게 프라이빗 파티인 척 선을 그었고, 그날 우린 집 마당에서 ‘성다양성축제’라고 적힌 대문짝만한 피켓을 칠할 때 집주인이 지나가실까 망을 봐야했다. 또 나는 젊은이들을 너무 납작하게 봐왔다. 내 얕은 경험상, 서울이나 산내나 또래들은 대부분 퀴어거나 앨라이였어서 내 머릿 속엔 ‘젊은이=퀴어축제 짱좋아함’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피어싱을 한 젊은 빡빡이 여성 분과 알게 됐는데 그분은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하셨다고 했다. 나는 또 그분을 납작하게 보고 “담주에 퀴어 축제 놀러오세요!”하며 방방 뛰었는데, 그분은 “퀴어...가 뭐에요?”라고 물으셨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퀴얼... 퀴이얼ㄹ...”하고 몇 차례 다시 발음해주다가 결국 그가 퀴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번 축제 땐 무지개공간을 섭외했는데, 이때도 퀴어를 전혀 모르거나 알지만 정중히 거절했던 몇몇의 젊은 분들에 여러 차례 내심 놀랐다. (물론 내 머릿속 공식을 강화시킨 젊은 퀴어나 앨라이들이 정말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다음 게시글에 이어서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오삼으로부터] 서론부터 좔좔 오열한 칩코의 독후감
    오삼이는 익히 들었다. 그는 지리산에서 태어났으나 거의 한반도 중부이남의 모든 숲을 쏘다닌 전설적인 모험가였다. 오삼이만큼 인가와 도로도 서슴지 않고 넓은 영역을 여행하는 반달가슴곰은 전무후무하다고 했다.주옥쌤과 오삼이의 인연이 끈끈해진 것도 오삼이가 인간이 정해놓은 선 밖을 수시로 넘나든 까닭이었다. 오삼이에겐 어디까지가 당신에게 허락된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인지 보일리 없었고, 지리산은 섬이 아니라 덕유산을 거쳐 설악산과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였다. 오삼이가 상상도 못한 곳에서 발견될 때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야생동물 정책을 관리하는 행정가들은 탁상에 모였다. 주옥쌤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오삼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피켓을 들고 설 수밖에 없었다.올해 <오삼으로부터>책이 나왔다. 책작업이 한창일 때 허무하고도 공교롭게도 오삼이의 죽음이 보도되었다고 했다. 오삼이를 추적하는 발신기 배터리를 교체하려 마취총을 쏘았는데, 오삼이가 몸을 못가누며 이동하다 계곡물에 익사한 채 발견됐다는 전말이었다. 오삼이의 죽음 이후 또 행정가들과 주옥쌤은 비참한 마음으로 탁상에 모여야만 했다.주옥쌤은 수도산에서 잡혀와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에 갇힌 오삼이의 눈빛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누누이 외쳐온 말을 책에서도 말했다. ”2015년 1월 지리산에서 태어나 2023년 6월 경북 상주에서 삶을 마무리한 오삼이는 이 산줄기를 오가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잊힌 야생동물의 길, 끊어진 생명의 길을 연결하라고 말입니다. 반달가슴곰을 인간이 관리하는 동물이 아니라 자연에 사는 야생동물로 여겨달라고 말입니다.“이 책은 앞장부터도 읽을 수 있고 뒷장부터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있다. 앞에서는 주옥쌤이 오삼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리고 뒤에서는 결님이 그린 오삼이의 그림책이 실려서, 가운데서 주옥쌤과 오삼이가 만난다! 현경쌤의 반짝이는 편집실력이 유난히 돋보이는 책이다. 주옥쌤과 결님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지리산 화엄사에서 50년. 진조스님의 화엄사와 암자 이야기 1.
    1975년부터 화엄사에 쭉 머무셨던 화엄사의 역사 진조스님의 인터뷰 첫번째 입니다. 00:00 화엄계곡의 8원 81암자 02:23 조선 학자 남효원의 화엄계곡 암자 기록 04:19 화엄사 사적기 04:57 진조스님의 책 '지리산 대화엄사 이야기'
    • 지리산사람들
    2023-11-21
  •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다시! 지리산』 운동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리산 품고 있는 의미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운동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운동, 지리산댐 반대 운동, 그 후로도 지리산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나부터 돌아보고 지리산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하며 이어져온 지리산운동.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 각자의 언어로 모아 우리 시대에 맞는 지리산운동을 찾아가려 합니다. 함께 만나고 함께 걸어갔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지리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삶의 변화 또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목소리로 <지리산선언>을 만들어주세요.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bNa4pF3EkbdQ-IccJBXWhHE7-A5zpB92Y0xyS4NcFYULVQ/viewform 『다시 지리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gainjirisan/223261506146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11-21
  • 첫눈
    「섬진강 편지」 - 첫눈 어제는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가 그를 찾았는데 오늘은 어두운 산길을 더듬어 그가 나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왔다.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도 싫지 않은 그대 같은 첫눈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1-18
  • 지리산의 아우라를 보려면 이곳을 오르세요!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산내면 사이의 백두대간 능선에 만복대(萬福臺, 1,433m)가 둥두렷이 솟아 있다. 만복대에서 달궁계곡을 지나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산동면과 산내면의 행정 구역 경계는 산자락을 눈으로 가늠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가 된다. 구례군 산동면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넘어서 달궁계곡으로 지역을 뻗쳐 낙동강 수계를 형성한다. 구례 상위마을 산수유 열매,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 마루금 능선길에 이곳 만복대를 오르는 경로로 으뜸은 정령치에서 남쪽으로 2.0km의 능선길이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구례군 산동면으로 넘어가는 지리산 주능선 관통 도로인 861번 지방도로의 성삼재가 있다. 성삼재에서 북쪽으로 작은고리봉을 지나 묘봉치를 거치는 5.5km 능선길이 만복대에 이르는 버금 경로이다.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계곡을 타고 3.0km 올라서 묘봉치에 이르고, 묘봉치에서 2.2km 능선길로 만복대에 이르는 경로도 있다. 만복대 조망, [사진, 이완우] 지리산국립공원은 가을 산불조심 기간을 설정하여,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만복대에 접근하는 탐방로도 통행이 금지되는 구간이다. 지난 14일 늦가을 아침에 산수유 열매가 붉게 물든 산동면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를 거쳐서 습기 머금은 산길의 서릿발을 밟으며 만복대에 올랐다. 너덜지대를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탐방로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미끄럽기도 하였다. 조릿대 군락지, 너덜지대 바윗길과 낙엽 쌓인 푹신한 흙길을 번갈아 지나간다. 해발고도 700m 지점에 이르니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휴게 쉼터와 나무 데크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계곡 물소리가 그친 곳부터 가파른 지형을 탐방로는 나선형으로 등산로 경사를 완화하면서 한 걸음씩 올라간다. 만복대 근경, [사진, 이완우] 묘봉치에 올라서니 만복대를 향하는 능선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며 걷기에 적당하다. 만복대 정상이 멀리서 보인다. 둥두렷한 산봉우리가 너그럽다. 만복대 정상 아래 동남쪽으로 펼쳐진 아늑한 지형의 작은 골짜기가 도장골이다. '도장'은 향토적인 어휘로 곡식을 저장하는 광이나 창고인데 주택의 안방에 붙어 있기도 했다. 지리산 만복대는 지리산에서 복과 덕을 가장 많이 간직한 포근한 곳이라고 한다. 이 만복대 바로 아래에 아늑한 지형의 도장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상으로도 잘 어울린다. 만복대 정상, [사진, 이완우] 만복대 정상에서는 반야봉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고, 만복대 남쪽의 노고단에서 동쪽의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노고단 서쪽으로 차일봉(종석대)의 양쪽 봉우리가 마치 기와집 지붕의 용마루 양쪽의 치미처럼 보인다. 만복대에서 바로 앞에서 뱀사골까지 심마니 능선을 뻗치며 자태가 늠름한 반야봉과 중봉은 지리산 주능선 조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노고단에서 반야봉과 만복대의 사이로 내려오면서 열린 달궁계곡은 뱀사골과 마천면까지 이어지는 큰 골짜기는 백두대간의 종점인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아우라와 지체 구조를 더 돋보이게 한다. 노고단과 차일봉 조망, [사진, 이완우] 만복대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형세가 가파른데, 노고단과 반야봉은 봉우리가 둥두렷이 두텁고 평온하다. 아마 노고단과 반야봉이 천왕봉보다는 더 오래 풍화된 지형으로 보인다. 만복대는 노고단에서 달궁계곡을 따라 함양군 마천면의 임천까지 펼쳐진 웅장한 골짜기 위로 반야봉을 중심에 두고 서쪽 최고봉인 노고단에서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까지 45km의 지리산 주능선이 함께 조망되는 감동적인 전망대 역할을 한다. 달궁계곡과 천왕봉 조망, [사진, 이완우] 만복대와 반야봉 사이의 달궁계곡은 늦가을의 마른 갈색 단풍의 색채와 정적에 잠겨 있다. 달궁계곡은 반달가슴곰의 보금자리로 보호되고 있다. 만복대 정상 가까이에 형성된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만복대의 기슭에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지리산 생태계의 소중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만복대에서 머무르면서 확인한 지리산의 지리산다운 진정한 아우라의 감동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늦은 가을 차가운 바람에 마른 억새의 꽃이삭이 하얗게 물결치는 스산한 정서를 뒤로하고 만복대에서 내려왔다. 봄 여름의 생명력이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만복대를 찾아서 생명력 넘치게 푸른 지리산의 풍요로움에 안겨보리라 다짐하였다. 운봉고원 조망, [사진, 이완우] 만복대에 올라온 경로를 다시 되돌아 묘봉치를 거쳐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로 내려왔다. 묘봉치 아래 계곡에서 상위마을에 가까워지니 계곡을 따라서 계곡 따라서 검정 호스가 줄을 지어 내려온다. 봄에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아랫마을 주민들의 설비였다. 경사진 지형에 다랑논 흔적이 계속 이어지고 경작을 포기한 논바닥 평지에는 산수유와 차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만복대에서 상위마을까지 내려오는 5.2km 산길은 반야봉을 중심으로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감동이 진한 여운으로 계속 남았다. 봄이면 노란 꽃으로 지리산 자락을 물들였던 산수유나무마다 붉은 열매가 가을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구례 상위마을 다랑논 흔적,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1-18
  • 진흥왕의 손자가 지리산으로 피신한 사연은?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는 삼정산(三丁山, 三政山)[1,156m] 정상의 세 봉우리는 상무주암, 문수암과 삼불주암(三佛住庵)을 거느리고 있다. 가운데 문수암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 암자 앞의 산줄기에 막혀서 보이지 않고, 상무주암과 삼불주암에서는 동남쪽으로 10km 직선거리의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삼불주암 천왕봉 전망, [사진, 이완우] 이들 세 암자는 지리산 7암자 코스의 셋째, 넷째와 다섯째 암자로서 지리산 칠암자 코스의 중심 지역에 있다. 삼정산의 남쪽으로 지리산의 도솔암과 영원사가 지리산의 주능선에 가깝게 높은 위치에 있고, 북쪽에 약수암과 실상사가 지리산 북쪽의 람천의 흐름을 지켜보며 지리산 7암자 코스의 시작과 마무리 지점을 이룬다. 11월 중순의 늦가을 지리산 문수암을 거쳐 삼불사 찾아가는 산길은 낙엽 밟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 암자는 도마마을에서 2시간을 걸어와야 하므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조용한 암자이다. 법당에는 ‘삼불주(三佛住)’ 편액이 한가롭게 걸려 있을 뿐이고, 산신각과 요사채 등 사찰 전각들은 황토와 돌을 섞은 돌담 벽으로 이루어져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이다. 지리산 삼불주암 편액, [사진, 이완우] 법당 옆에는 3층 석탑이 서 있는데, 개성적인 양식이 눈에 띈다. 석탑의 1층과 2층의 탑신 네 면에는 불상, 사천왕상과 신장상 등의 부조가 있다. 1층 탑신의 전후 면에 있는 이불병좌상(二佛倂坐像)은 흔하지 않은 양식이고, 옥개석에 기왓골을 표현한 양식 기법은 거의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최근에 조성한 석탑이지만 미래의 석탑 양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리산 풍경을 수십 년간 사진 찍어왔던 류요선(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씨는 20여 년 전에 이곳 삼불주암이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을 때 실상사에서 약수암과 도마마을을 거쳐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가 이 암자에 도착한 봄날 늦은 오후에 뜨락 옆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며, 그때 찍은 금낭화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리산 삼불주암 금낭화(1995년 봄) [사진, 류요선] 이곳 삼불주암의 주지인 효성(曉星) 스님이 류요선 씨에 향기로운 차 몇 잔을 여유롭게 권하였다. 스님은 지리산 천왕봉 너머로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여 인상적이며, 비 내린 후 산자락에 피어나는 운무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표현하는 듯하다고 했다. 밤하늘의 별빛과 고요한 달빛에 환한 도량은 또 얼마나 고적하며 평온하게 아름다울까? 류요선 씨가 효성 스님에게 지리산 풍경 사진 몇 장을 우편으로 보내주기로 약속한다. 스님은 메모지에 암자 아래의 마천면 도마마을 한 집 주소를 써서 건네준다. 이곳 암자에 오는 택배나 우편물은 아랫마을의 한 집에서 수령하여 머물러 있다가, 마을 주민이 이 암자에 올라올 일이 있을 때 가져다준다고 한다. 지리산 암자의 시간은 속세와는 다르게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 삼불주암 법당 벽면 채반, [사진, 이완우] 이곳 삼불주암으로 도마마을에서 올라오는 삼정산 자락이 견성(見性) 골이다. 이 골짜기에는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는 속담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 수수께끼 같은 이 속담은 함축적이며 흥미롭다. 이 속담은 이 지역에 전승하는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불교 활동과 민간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7세기 중반인 신라 무열왕 때에 마적 대사가 이 지역 하천인 용유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삼정산에 문수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중기에는 인오(印悟, 1548-1623) 대사가 이 지역 지리산 영원사에서 수행할 때 함양 장터를 다니며 백성들과 소통하고 교화하면서 함께 산을 넘던 고개(오도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사진, 이완우]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삼정산 아래 기슭인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는 군자사지(君子寺址)가 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567~632, 재위 579~632)이 국왕으로 즉위하기 이전 10살의 어린 나이에 이곳에 피신하여 3년을 지냈다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眞興王 534~576, 재위 540~576)이 승하하자, 진흥왕의 둘째 왕자가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으로 즉위하였다.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태자(銅輪太子, ? ~572)의 어린 아들(후대 진평왕)은 숙부가 왕위를 잇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국경 지대인 지리산 자락의 함양의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진지왕이 즉위 3년만에 화백회의에 의해 폐위되고, 진평왕이 13세의 나이로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여 18세부터 친정하였다. 진평왕 어린 시절의 함양 지리산 자락 피신과 3년 후 화백회의에 의한 진평왕 즉위 등의 역사적 사건은 당시 신라 왕실의 왕권을 향한 권력 투쟁을 암시한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조형물, [사진, 이완우] 국왕이 즉위하기 전에 잠룡(潛龍) 신분으로 거주한 저택을 잠저(潛邸)라고 한다. 진평왕은 어린 시절에 거처했던 함양 지리산 자락의 잠저에 군자사(君子寺)를 건립했다. 이곳 군자사는 조선 시대에 지리산을 유산(遊山)하는 관리나 선비들이 머물렀다가 하동암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주요 거점이었다. 진평왕이 어린 시절에 이곳 지리산 자락에 머물면서 아들 낳기를 지리산 산신에게 기원하여서 이곳 지명을 군자리(君子里)라고 한다는 지명 설화가 전해오는데, 진평왕의 아들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선덕여왕과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딸이며,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진평왕의 외손주이다. 진평왕이 이 지역에 세운 군자사의 사찰 이름에서 군자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진평왕은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 관념을 확립하였으며, 자신의 직계 가족을 부처의 집안과 동일시하였다. 진평왕은 다양한 방법으로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정치 제도를 정비하고 활발한 외교 정책을 펼쳐서 진흥왕에 이어서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다졌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부조, [사진, 이완우] 군자사는 진평왕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국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때를 기다렸던 의미 있는 장소로서 진평왕의 53년 재위 기간에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명에 의해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리산을 오르내렸을 행렬에서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는 이 지역의 속담이 발생하였을 수 있다. 이 속담 속의 까마귀나 까치에서 같은 옷을 입은 단체가 줄지어 산길을 이동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지리산 삼불주암에서 지리산의 천왕봉과 중봉, 하봉을 바라보고, 시선을 돌려 산 아래 견성골 산자락을 찾아본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능선, 골짜기와 계곡에는 역사와 설화들이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 천오백 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오후의 산길은 낙엽이 밟히며 버석거리는 소리와 조릿대 군락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대는 소리로 가득하였다. 지리산 삼불주암 흙집 산신각,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1-1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