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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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수해참사 피해주민 기자회견
    2020년 섬진강 수해피해는 500일이 지나 국가로부터 겨우 48%배상을 받았는데 그나마도 못 받은 곳이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일방적으로 하천 홍수관리지역으로 지정해버린 마을인데 대대손손 살아오던 마을과 땅을 일방적으로 관리지역으로 지정해놓고 수해피해 배상에서 제외시켜버린 것이지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다 수해피해배상에서 날벼락을 맞은 피해민이 60여명으로 피해금액 23억 원에 달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주민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정고시하여 주민들에게 무언의 폭력으로 쓰이고 있는 “하천·홍수관리지역 지정”을 즉각 폐지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정부를 상대로 하천·홍수관리지역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환경 분쟁조정에서 배제된 수해피해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하는 한편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범 군민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했습니다. 하천 및 홍수관리지역 폐지 및 모금운동 선포식 일정 - 일 시: 4월 18일 월요일 오전 11:00~ - 장 소: 계산리 유곡마을 일대 - 참석자: 하천·홍수지역 피해자, 수해 피해주민, 사회단체대표, 입후보자 등 [기자회견문] “국가가 외면한 일 구례가 해결 하겠습니다” 섬진강댐 대량방류로 하루아침에 집과 일상의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피해 주민들이 눈물과 고통 속에서 지내온 지 햇수로 3년, 날수로는 600여 일이 지났습니다.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11개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배상을 청구했던 구례군 환경분쟁조정 신청자는 모두 1,964명입니다. 이중 1차 420명에 이어 2차 조정대상 1,400여명은 개인별 열람을 통한 이의 제기와 재조정 요구, 수정 등 모든 배상관련 행정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2020년 수해 대참사 앞에 그동안 구례군민과 2천여 피해주민들은 5개 댐ㆍ17개 시·군 피해주민 배상투쟁에 구심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원인 규명과 배상에 집중하면서 하천수위 변화로 인한 수해피해에 대해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 배상을 견인했지만 '하천 및 홍수관리지역 피해'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의 이의제기로 배상에서 빠진 채 종결처리 됐습니다. 이 같은 하천·홍수관리지역에 해당되는 구례지역 피해민은 전체 조정대상자의 3%인 62명에 달합니다. 같은 피해에 대해 동일한 배상을 받아야 하는 형평성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는 대대손손 내려오며 형성된 마을과 사유 토지에 일방적으로 선을 그어(2010년) 하천 및 홍수관리구역이라는 이유로 배상에서 제외한 국가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이런 부당한 행위에 대해 환경부ㆍ국토부ㆍ중조위 등 국가기관을 비롯한 국회 및 정치권에 이의를 제기하고 철회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입장 변화 없이 배상에서 배제, 동일한 수해 피해임에도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하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에 구례 군민들은 국가를 비롯한 그 누구도 해결 의지가 없다고 보고 억울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며 우리 스스로 해결에 나서고자 합니다. 환경 분쟁 조정에서 배제된 해당 주민 62명이 신청한 총 피해금액은 23억 원입니다. 지자체의 하천·홍수관리지역 등재 소홀에 따른 책임으로 30% 배상을 산정한 광양시과 순천시를 기준으로 하면 그 배상액은 3.2억 원 입니다. 3억 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입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적은 푼돈이지만 피해자 개인에게는 피 같은 돈입니다. 이런 적은 배상도 외면하고 홍수관리지역을 추가로 확대 지정한 정부 관료의 작태는 향후에도 똑같은 ‘물 폭탄’을 반복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에 우리 군민들은 정부와 국가가 나쁜 의도로 배제시킨 하천·홍수관리구역 피해민의 피해를 일부라도 함께 해결하고 일방적인 하천ㆍ홍수관리지역 지정을 폐지하는 범 군민운동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구례는 다릅니다. 구례는 정부와 국가가 외면하고 해결 의지도 없는 하천과 홍수관리지역 수해 피해액을 함께 분담함으로써 국가나 정부의 책임 회피성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낱낱이 국민 앞에 고발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도 소외됨 없는 구례, 마음과 뜻을 합해 함께 했던 구례, 정부와 국가도 외면한 문제를 우리 스스로 힘으로 해결한 승리의 구례, 자랑스러운 구례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배상을 받는 수재민은 물론 군민 여러분께서도’ 함께 동참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국가와 정부가 외면한 피해 배상 구례가 해결합니다. -끝까지 한 사람도 소외됨 없이 함께하는 구례입니다. 섬진강 수해참사 피해주민 일동
    • 우리마을
    • 섬진강 정보
    2022-04-19
  • 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댓과,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0~30cm이며 잎은 줄기 끝에 돌려나고 타원형이다. 4~5월에 흰 꽃이 줄기 끝에 수상(穗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삭과(果)를 맺는다. 산골짜기의 숲 속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Chloranthus japonicus) .......................................................................................................................... 구별이 어려운 꽃들이 많은데 홀아비꽃대는 그 생김이 독특하여 알아보기가 쉽다. 꽃대라는 식물은 2개의 대가 올라가지만 홀아비꽃대는 하나씩 올라가 홀아비꽃대라 불린다. 봄 숲, 연녹색 잎이 받쳐주는 흰색의 꽃잎이 더욱 희어 보인다. 비슷한 꽃으로는 옥녀꽃대가 있다. 홀아비와 옥녀라!!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저 거제도 옥녀봉에서 발견되어 옥녀꽃대라니 좀 싱겁다 홀아비꽃대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나 옥녀꽃대는 주로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홀아비꽃대는 꽃잎이 굵고 짧은데 비해 옥녀꽃대는 꽃잎이 부드럽고 가늘고 길다. -비교사진 / 옥녀꽃대 -비교사진 / 옥녀꽃대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4-17
  • 함양의 강, 물길따라 걷기 - 첫 줄기 엄천강
    궁금해함양강 1탄 함양의 강, 물길따라 걷기 - 첫 줄기 엄천강 백두대간의 시작, 지리산의 북부 람천에서 동부 엄천강으로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의 생명수가 모이는 물길을 함께 걷고 그곳에 사는 생명과 역사를 알아봅니다. -일시 : 2022년 5월 5일(목) 09:00 ~ 5월 7일 (토) 16:00 -대상 : 20명 (선착순, 2박 3일 전 일정 참여자 우선) -회비 : 15만원 (2박-지리산리조트, 6식) -준비물 : 5일 낮밥, 빈 도시락(6일, 7일 낮밥 담을 용도), 산행과 걷기 좋은 복장, 맛난 새참, 2박 3일 삶에 필요한 것들 등 1일차 오전> 금샘 : 전북학생수련원 ~ 금샘(원점회기) ~ 서어나무숲 오후> 람천 : 서어나무숲~ 운봉읍 ~ 황산 ~ 인월(중군마을) 저녁> 석식 : 18:00~19:00 강이야기와 소감나누기 : 19:00~21:00 2일차 오전> 람 천 : 중군마을 ~ 산내발전보 ~ 산내 소수력 발전소 ~ 실상사 오후> 만수천 : 실상사 ~ 마천 ~ 금계 ~ 용유담 ~ 송문교 저녁> 석식 : 18:00~19:00 강이야기와 소감나누기 : 19:00~21:00 3일차 오전> 엄천강 : 송문교 ~ 새우섬 ~ 운서소수력발전소 ~ 자혜마을 오후> 엄천강 : 자혜마을 ~ 산청 금서소수력발전소 ~ 서주보 ~ 두물머리(엄천강.경호강.남강) 마무리 16:00 소감 다음 일정 안내 * 도로인접 지역은 차량이동 예정입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수달친구들 문의 : 수달아빠(최상두) 010-4740-1915 / 이영애 010-6320-6912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4-15
  • 진달래를 쓰다.
    2015년 12월 28일은 박근혜 정부가 한·일 일본군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날이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데 국가가 임의대로 종결을 약속해버린 것이다. 전국적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곳 남원에서도 소녀상 건립 모금이 시작되었다. 필자도 작은 성금을 보태고 분노와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서글픈 마음을 함께 실었다. 그런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 소녀상이 남원 춘향 테마파크 입구에 서있다. 2018년 전북과학교육원에서 진행하는 남원의 요천 생태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전북의 학교에 재직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으로 바로 현장에서 진행되었다. 선생님들과 만나는 장소는 춘향 테마파크 입구에 있는 소녀상 앞이었다. 소녀상 뒤로 키가 큰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선생님들 중 한 분이 그 나무의 이름을 물어보신다. ‘모과나무에요.’ ‘모과나무가 소녀상에 맞는 건가요? 하고 되물으셨다. 잠시 생각하다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사실 모과나무보다는 진달래가 더 맞다고 봅니다. 모과나무는 우리나라에 예전부터 들어와 모과차로도 유명하여 굳이 외래종이다 아니다를 따지긴 그렇지만 그래도 고유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고, 이 자리에 맞는 나무는 진달래가 좋을 듯합니다.’ 회사에 새로 입사하거나, 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하면 옛날에는 신입사원, 신입생으로 불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새내기’라는 순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단체를 ‘동아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서클이라고 했다. 그리고 MT를 지금은 ‘모꼬지’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달과 가까운 높은 곳에 모여 사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 ‘달동네’라는 말과 함께 모두 고 백기완 선생이 만든 말이다. 그리고 백기완 선생께서는 ‘터널’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갖고 계시다. 1960년대 말 남산 1호 터널을 ‘터널’이라는 외래어 대신 ‘맞뚜레’라는 우리말을 사용하자고 주장하시다가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에 백기완 선생의 강연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이야기 중에 진달래에 대한 이야기만 뇌리에 남아있다. 아마 나도 모르게 나는 나무에 꽂힐 운명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하는 말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노을네, 여울네, 진달래가 바로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노을의 붉은 색체는 깊이가 있다.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듯 아름답다. 여울의 흐름은 생명을 담아낸다. 때로는 아가씨의 맵시로, 때로는 센 물살이 생명을 채찍질하는 어머님의 모습으로도 투영된다. 그러면 진달래는 무슨 의미일까? 진달래는 시가 되어, 노래가 되어 곁에 있다. 영화가 되어 소설이 되어 곁에 있다. 그리고 어린 날의 기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은 일제의 만행을 피해 만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설움을 담고 있다. 삵이라 불리는 주인공은 동포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맞서다 죽임을 당한다. 그는 죽어가면서 붉은 산과 흰옷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고 한다. 고향을 본 것이다. 전쟁과 수탈, 땔감 등으로 황폐해진 산하는 붉은 흙이 드러나 산이 붉게 보인다. 백성들이 즐겨 입은 하얀 옷은 백의민족의 상징이었고 잃어버린 나라 곳곳에서 만나는 그리움이다. 그리고 고향에는 이른 봄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가 있다. 진달래는 해마다 붉은빛으로 피어난다. 초록의 잎이 채 나오기도 전에 꽃을 밀어 올린다. 다른 꽃보다 먼저 피운 꽃으로 이른 봄의 배고픈 곤충을 유혹하여 수정을 하기 위함이지만 겨우내 굶주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에게 이른 봄의 꽃은 영양이 풍부한 먹을거리가 되기도 한다. 기회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다. 그래서 진달래는 독을 품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식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항균물질을 만든다. 피톤치드(Phytoncide : ‘식물의’이라는 뜻을 가진 ‘phyton’과 ‘죽이다’를 의미하는 ‘cide’의 합성어다. ‘식물이 죽인다.’는 의미인데 이 또한 사람의 시선이다. 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 누구를 죽이기 위해 어떤 물질을 만들지 않는다.)라 불리며 균과 포식자에 대해 저항성을 지닌다. 그러나 피톤치드는 인간에게 이로운 물질이다. 그래서 보다 피톤치드를 손쉽게 접하고 얻기 위하여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나무를 상품화하고, 치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숲으로 부른다. 이 과정에서 숲과 나무가 피해를 보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진달래가 품은 독도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 그래서 이른 봄의 부족한 먹거리를 보태기 위해 진달래를 딴다.(2018년 봄에 부산에서 실종된 20대 여성이 8일 만에 구조가 되었는데 산에서 진달래를 따먹으면서 견디었다고 한다.) 동무들과 어울려 진달래를 따먹으러 다닌다. 진달래는 간식이 되고, 놀이가 되어준다. 삼짇날에는 화전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다.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나비가 나타나고,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날이기도 하다. 아직 꽃샘추위가 끝나지 않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른 봄에 이 땅의 민중들은 진달래꽃으로 꽃놀이를 즐기며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먹을 수 있은 꽃은 찔레꽃도 있다. 찔레는 새순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꽃 하면 제일 먼저 진달래꽃을 떠오른다. 이는 초록빛이 완연한 여름에 피는 찔레보다 삭막한 겨울 삭풍이 채 가시지 않은 척박한 시절의 붉은 진달래가 더욱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일 년 중 먹을 것이 없어 가장 절박한 순간에 꽃이 피기 때문이다. 쌀이 떨어져 굶게 생긴 저녁밥을 위해 옆집에 쌀을 꾸러 다니신 어머니처럼 전쟁통에 자식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려 피죽을 끓여 목숨줄을 연명시켜 주었던 어머니의 모성처럼 진달래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꽃이 되어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를 가장 아름다운 여인네라고 표현하신 듯 하다. 진달래 꽃잎은 자신을 내어주고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시는 모성의 절박함과 순결함을 진달래는 닮았다. 소녀상은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당하시고 견디어내신 힘없는 이 땅 여인네들의 상징이다. 이러한 소녀상과 가장 어울리는 나무는 진달래가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진달래는 살아가는 곳도 기름진 땅이 아니다. 물 좋고 볕 좋은 땅을 싫어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곳은 모든 식물이 호시탐탐 노리는 전쟁터다. 진달래는 심한 경쟁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다른 식물이 좋아하지 않는 흙 한 줌 없어 보이는 절벽이나 산성화된 토양, 타감 물질 가득한 소나무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곳에서 다른 식물이 살아갈 땅을 만들어 간다. 생태적으로도 진달래는 다른 식물들이 살아갈 땅을 일구는 선구자 역할을 한다. 어쩌면 이리도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손길을 꼭 닮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어머님의 손길 덕분에 나는 이 봄날 선명한 빛깔을 올리는 저 진달래를 보면서 감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내년도 그러할지니. 사진 : 박계순 / 3월 목동반/ 구룡계곡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4-14
  • 욕망의 인간화
    욕망의 인간화 -닥터 비치의 ‘휴마나이즈(humanize)’를 생각하며 우리 인류는 근대를 진행하는 동안 꾸준히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루었고 과학의 발달을 토대로 산업화가 이루어졌으며 산업화는 자본의 축적을 가져왔다. 그리고 21C에 들어선 지금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만한 문명과 함께 이것들로 인해 역으로 꾸준히 자연은 침탈당해왔음을 본다. 그 결과 자연의 순환질서는 깨지기 시작했고 생명 본성을 거역하는 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며 개인적 삶의 목표들이 부정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며 세상살이의 우울함을 떨칠 수 없다. 이런 사유와 감상의 어느 지점에서 늘 만나는 질문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다. 인류사 속의 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거론해왔던 ‘인간의 욕망’은 이제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진입한 오늘날 최고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일단 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 과학과 자본의 결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 속하지만 비치 선생의 ‘휴마나이즈(humaniz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관한 글을 읽으며 잠시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닥터 비치의 이 두 가지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문명이라는 것이 없었던 인류의 초기에는 자연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고, 심할 때에는 인간이 죽거나 하는 상태도 있었을 것이다. 휴마나이즈 라는 것은 그러한 환경에 대한 극복 요구로부터 서서히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란 인간으로서 위협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가까운 미래에 대하여 세계를 휴마나이즈 (humanize)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휴마나이즈의 제일 기초가 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안전성이라는 것이다.’ 비치 선생의 과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는 인간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인식과 깊은 휴머니즘이 깔려있어서 감동이 있다. 닥터 비치의 생각은 인간의 과학기술 문명의 출발점과 진행 과정과 미래에 대한 것이지만 시종일관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느냐는 휴머니즘적 인식이다. 하지만 요즘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여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며 ‘인간의 욕망’을 넘어선 ‘탐욕’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과학기술의 인간에 대한 기여는 비치 선생의 순박한 생각을 넘어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인류 최고의 적은 과학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고 과학과 자본의 결탁이 만들어낸 ‘탐욕’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문명과 산업자본문명으로 대표되는 근대문명의 진행과정에서 꾸준히 함께 커온 것이 있다면 그건 인간의 탐욕이다. 이 탐욕은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의 속성과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암종으로 굳이 명명하자면 심암(心癌)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자연스럽게 ‘돈’이라는 것으로 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는 이미 이 심암(心癌)이라는 암종이 모든 생활반경에 전이되어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닥터 비치는 서서 진료하던 치과의사들을 앉아서 진료행위를 하게 한 혁명적인 치과 진료대를 발명 제작한 사람이지만 자신은 정작 달랑 집 한 채 가지고 변변치 않게 살아가는 가난한 의사이다. 그 진료대와 다른 발명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기본으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휴마나이즈(humaniz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관한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참으로 인간적인 과학자요 의사인 닥터 비치의 삶에서 현대 문명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을 본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욕망은 끊임없이 휴머니즘적 욕망(욕망의 인간화)으로 묶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이 해답인지도 모른다. -남바람꽃 / 사진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2-04-13
  • 지리산 빨치산 태동의 배경과 몰락
    지리산 빨치산 태동의 배경과 몰락 지리산 파르티잔 이야기는 한반도 해방 국면의 정치적 상황과 민족사적 흐름, 그리고 국민적 정서를 정확히 인식하는 배경에서 다뤄져야 한다. 당시의 모든 항쟁적 사건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진행된 것들이다. 해방 직전 일본의 패망이 짙어지던 1944년에 미국은 당시 막 시작되던 세계적 냉전체제 국면에서 한반도를 미국의 전초 기지화 하려는 계획을 진행하였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해방이 되면 어떤 체제의 국가가 건설되기를 희망하느냐는 질문에 자유민주주의국가 14%, 사회주의 국가 70%, 공산주의 국가 7%, 기타 9% 였다. 이에 미국은 해방 후 승전국의 입장에서 38도 선 남쪽으로 들어와 미군정을 시작했다. 북쪽은 소련이 직접 국가운영을 하지 않고 조력자의 입장에 있었던 반면 미국은 여론을 토대로 사회주의 국가 건립을 우려하여 군정으로 직접 남한을 통솔 운영했다. 그러면서 토지개혁과 일제 잔재 청산, 공평한 사회를 꿈꾸던 민족의 흐름을 역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조선공산당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946년에 대구철도노조가 깃발을 들고 대구 10월 항쟁이 일어난다. 10월 항쟁은 미군정 반대가 가장 큰 이유였다. 이후 10월 항쟁 수배자들은 산으로 들어가 야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파르티잔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후 미군정이 끝날 무렵 1948년 5.10 단선 단정에 반대하는 2.7 구국투쟁이 일어난다. 전국 총파업으로 진행되며 이때도 수배자들이 산으로 들어가며 야산대가 더욱 강화된다. 지역사령부를 두며 체계화 된다. 그리고 이어서 제주 4.3항쟁과 10.19 여순 항쟁이 일어난다. -1948년 10월 여순항쟁 이후 김지회, 홍순석, 지창수 등이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 문수골로 들어옴. 48년 11월 이현상 지리산으로 투입 -1949년 야산대를 인민유격대로 재편성하여 토벌대와 전투. -1950년 한국전쟁으로 8월에 인민유격대는 북한 정규군과 합세하여 작전을 펼침 -1951년 남부군 활동 전성기로 열차습격, 은행습격 등, 하지만 12월 들어 본격적인 토벌로 -1952년 토끼몰이식으로 대성골로 유인하여 박격포, 공군기 투입으로 빨치산 궤멸. 사살 300명, 포로 250명, 혹은 800여명이 죽었다고도 하는 등, 자료의 부정확 -1953년 7월 휴전협정 시 지리산 잔여 빨치산 언급 없음. 이현상 9월 사망 (이현상은 북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지리산에 남음. 북에서 김일성의 권력투쟁으로 남노당 출신의 박헌영, 이승엽 등이 모두 처형 당함. 박현영은 여순때 병력노출 혐의 미군스파이로 몰려 죽음) -1954년 전북도당위원장 방준표, 전남도당 박영발 사망으로 토벌 종료. 5월 정식 토벌대는 해산하고 지역에서 토벌 계속 -1955년 지리산 입산통제 해제 -1956년 43명 빨치산 생존 떠돌이 -1963년 11월 정순덕 총상 입고 체포 -지리산의 여명 / 사진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04-13
  • 지리산에서 온 편지 6
    ☐지리산에서 온 편지 6 선한 바람에 일렁이는 연두와 초록의 물결들 - 왕실봉 칠순 노인네 이야기 모처럼 지리산에 오르니 어린 나무 건 고목이건 모든 나무들이 새잎을 피워 올리고 있다. 온통 연둣빛 초록물결로 산이 일렁인다. 바람이 한번 훑고 지나가면 초록의 파도가 한차례 밀려오는 듯한 서늘함과 그 상큼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초록빛은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색깔이라고 하는데 초여름의 산에 오르면 이 초록의 신록에 묻혀 몸 안에 쌓여 있는 스트레스와 강박과 두려움 등 세속의 삶이 만든 정신적 생채기들이 모두 치유될 것만 같다. 사람들은 보통 몸의 건강을 위해 산을 많이 오른다. 그리고 몸이 건강하고 편해야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오고 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으며 오히려 마음을 잘 다스려 불치의 몸을 극복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선진의학에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정신적인 영역을 치료에 활용하고 있으며 인간의 영성까지 의학은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산행을 했으나 요즘은 산을 오르는 일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일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아무리 바빠도 산행을 한다. 숲의 모든 생명들이 가장 활발하게 생명력을 발현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신록에 묻힌 나도 그 기운에 합류하여 내면의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음’의 순수한 생명력을 깨인 의식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오랜만에 그렇게 왕시루봉에 올랐다. 지리산 왕시루봉 정상 바로 아래에 쯤에 가보면 외국인 선교사들의 산장이 있다. 말이 산장이지 지금은 오래되어 거의 폐허 상태이며 남장로교회 쪽 사람들이 주도하여 문화재 등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외국인 선교사 산장의 문화재 등록은 사실 많은 생태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왕시루봉은 정상이 해발 1240m이니 이 산장들도 해발 1000m는 넘나들 것이다. 원래는 노고단에 있었는데(선교사 산장 터는 노고단 대피소 바로 옆자리에 있었으며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한국전쟁 때 폭파되어 비슷한 고도의 이곳 왕시루봉 자락으로 옮겨와 다시 여러 채의 방갈로를 짓고 삼각형의 조그만 예배당도 만들고 지형을 다듬어 작은 둑을 쌓고 물줄기를 막아 간이 풀장까지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풀장이 연못처럼 남아있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 산장을 지은 것은 외국인들이 무더운 여름에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에어컨 바람 정도의 적정 온도의 높이에 피서지로 지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지리산 호랑이라는 함태식 선생께 들은 이야기인데 구례에 살던 자신이 10대 초반 때 여름에 노고단 외국인 산장에 가면(당시에는 노고단을 동네 뒷산 오르듯 쉽게 올라 다녔다 한다) 놀랄만한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우선 구례 사람들이 노고단 산장의 외국인 선교사 가족들에게 팔려고 나물이며 과일 등 다양한 먹을거리와 잡화를 이고 지고 가져와 작은 장이 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높은 노고단 산중에 발가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비키니 차림의 금발머리 여자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니 그 일제 강점기 시절에 어린 소년의 눈에는 별천지 세상에 온 것만큼이나 놀랐을 것이다. 80년대 후반 즈음이었을까. 내가 왕시루봉의 외국인 선교사 산장에 갔을 때 칠십이 넘은 산장지기 노인 한분이 계셨다.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70대 중후반의 노인이었는데 작은 키에 산에서 다져진 다부진 몸을 가진 노인이었다. 산 아래는 고로쇠 물을 받아내는 2월의 봄이 시작되었건만 이곳은 아직도 한 겨울이었다. 식수로 쓰는 작은 물줄기가 꽁꽁 얼어 아직 다 풀리지 않아서 노인은 도끼로 풀장의 얼음을 깨어 물을 길어와 밥을 짓는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산장지기 노인이지만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신 분이었다. 이 노인은 왕실봉 아랫동네인 토지면에 사시는 분이었는데 젊은 시절 토지에서 왕실봉 산장까지 지게에 외국인 선교사 부인들을 지고 올라왔다고 했다. 70년대만 해도 서울역에서 짐을 나르며 생계를 유지하는 지게꾼이나 리어카꾼들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사람을 지게에 올려 산을 올랐다는 말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게에 널빤지를 올리고 방석을 깔아 편안히 앉도록 해서 종종 선교사 부인들을 산장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했다. 돈벌이가 귀한 시절이라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마다하지 않고 그 일을 했다고 하는데 맨몸으로 오르기에도 버거운 해발 1240m의 왕실봉을 올랐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당히 비만한 선교사 부인을 지게에 싣고 올라가는데 너무 무거워 중간에 쉬는 일이 잦았다. 점심 먹고 한참 후에 오르기 시작했으니 산장에 갔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올 일이 걱정이었다. 어디쯤에서 쉬어 가게 되었는데 부인을 내려놓고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 한참을 하면서 혼자 푸념처럼 ‘아이고 뭘 처먹었는지 디지게 무겁네. 서양 년들은 다 저런가?’ 라고 내뱉었단다. 담배를 다 피우자 저만치에 앉아서 쉬던 선교사 부인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지게에 올랐고 다른 때보다 늦게 산장에 도착하여 내려가다가 지는 해를 볼 것 같았다. 그런데 지게 값을 달라고 하자 같이 올라온 그 선교사 부인이 한국말로 ‘저 사람이 올라오면서 나한테 욕 했어요. 돈 주지 말아요.’ 그러지 않은가. 우선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돈을 안 준다는 말에 사색이 되었다.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는 힘없는 백성이 되어 노인은 터덜터덜 어두워진 산을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멀리 노을이 지는 아름답고 슬픈 섬진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왕시루봉 정상에는 낡은 방갈로들이 산재해 제국의 그늘이 가득하다. 나는 그 그늘 아래서 점심으로 가져온 주먹밥을 베어 물었다. 간단한 점심을 끝내고 지리산의 능선들과 계곡들을 바라보며 그 일을 떠올리니 새삼스레 아메리카라는 나라가 생각 속에 자리 잡는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이라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종주국 아메리카, 한때는 우리도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환상 속에 살았었지. 과연 인간이라는 종이 만들어낸 삶의 정답이 그곳에 있는 걸까? 나이 60을 넘어 알만큼 알고 살만큼 살아온 인생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도 ‘천만에’라고 입을 모을 것이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에 매달려 돈보다 더 훌륭한 가치, 더 아름다운 가치를 모르고 인생을 다 소진한다면 그것 또한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다 가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산을 내려왔다. 저무는 빛을 받아 아스라이 보이는 섬진강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선한 바람에 연두 초록의 물결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삶의 정답은 아마도 이 풍경의 어디쯤에 숨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 -왕시루봉에서 바라본 섬진강 / 사진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04-13
  • 평화의 걸음걸이
    평화의 걸음걸이 나희덕 1. 1950년 늦여름 지리산 어느 마을에서의 일이다 새벽녘 동구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외길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국군과 인민군이 총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양쪽 산자락 사이 좁은 오솔길 주민들은 숨죽이고 총탄의 여울을 건너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외쳤다 아가, 뛰지 마라, 절대 뛰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 외침을 방패삼아 걷고 있는 소년 앞으로 한 청년이 겁에 질려 뛰기 시작했다 문득 총성이 들렸고 청년은 쓰러졌다 숨죽여 걷는다는 일 그것이 소년에게는 가장 어려운 싸움이었다고 한다 2. 평화의 걸음걸이란 총탄의 여울을 건너는 숨죽임과도 같은 것 두려워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두려움과 싸우며 총탄의 속도와는 다른 속도나 기척으로 걸어가는 것 심장을 겨눈 총구를 달래고 어루만져 거두게 하는 것 양쪽 산기슭의 군인들이 걸어 내려와 서로손 잡게 하는 것 그날까지 무릎으로 무릎으로 이 땅의 피먼지를 닦아내는 것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2-04-13
  • 유기농 양파 재배와 양파 크게 키우는 비법
    남원에서 유기농 양파를 재배하는 농가를 만났습니다. 지난번 수해로 인해 집을 잃고 지금은 하우스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개월 전에는 하우스에 불까지 나서 힘든 농가입니다. 그래도 양파는 쑥쑥 자라서 수확할 때가 되었네요. 유기농 양파를 재배할 때 어려운 점과 양파를 크게 키우기 위한 비법을 들어 봤습니다. 올해는 작년 저장 양파 때문에 양파 가격이 낮다고 합니다. 양파는 위에도 좋고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채소죠.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04-13
  • 미치광이풀
    미치광이풀 Scopolia japonica 분류속씨식물 > 쌍떡잎식물강 > 통화식물목 > 가지과 원산지아시아 (일본,대한민국) 서식지깊은 산골짜기의 그늘 크기약 30cm ~ 60cm 학명Scopolia japonica Maxim. 꽃말미치광이 자주색 꽃으로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강한 독이 있는 식물로, 사람이나 동물이 잘못 먹으면 발열과 흥분, 환각 등이 나타나 마치 미친 것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하여 ‘미치광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방에서는 약재로 쓰이며, 진정제, 진통제로 사용된다.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처방에 따라야 하며, 뿌리를 10g 이상 섭취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미치광이풀이 따로 있다. *촬영일자 / 장소 : 2022년 4월 12일 /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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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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