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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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교육 2023년 가을호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윤주옥 대표님의 인터뷰 글이 있어서 자료 공유합니다. ## 녹색교육 2023년 가을호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환생교) ## https://eduhope.net/eBook/2023_2/2023_2konect/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3-11-09
  • 작은 석굴에 천 명이 앉을 수 있다는 깊은 의미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있는 삼정산(1,156m)은 백무동과 한신계곡을 넘어서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 보고 있다. 이 삼정산 정상의 으뜸 봉우리 아래에 문수암이 자리 잡았다. 지리산 칠암자를 잇는 숲길을 찾아 영원사에서 고개를 넘는 제법 힘든 산길을 1.8km 걸으면 상무주암에 도착하고, 대체로 평탄한 숲길을 0.8km 진행하면 바위 절벽 중간에 도량을 마련한 문수암에 이른다. 지리산 삼정산 바위 끝 문수암, [사진]이완우 이곳 문수암에서는 지리산의 중봉이 보이고 천왕봉과 그 오른쪽 지리산 주능선은 앞산 줄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이 암자에서는 함양 방면이 잘 조망되며 멀리 가야산(1,432m)이 보인다. 산의 이름부터 가야 문화를 암시하고 있는 가야산은 불교문화가 시대적으로 일찍 꽃 피웠을 수 있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품에 안은 가야산은 예로부터 뛰어난 지덕을 갖춘 불교 성지로 여겨졌다. 우리나라 불교는 서역과 중국을 통해 북방 경로로 4세기 후반 삼국 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에 전래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해양으로 1세기 중반에 가야에 불교가 전래하였을 가능성이 학계에서 제기되었고, 가야 지역의 문화재와 설화에서 그 방증을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과 천인굴, [사진]이완우 문수암 터전의 바위 굴을 깨달음의 거처로 삼은 수행자들 지리산의 문수암은 신라 시대에 659년(무열왕 6)에 마적 대사가 수행의 도량으로 터 잡았다고 한다. 이곳에 바위의 절리가 풍화되어 틈새가 벌어져 형성된 천연 석굴이 있는데 이 지역 주민들은 전란 때마다 천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하여 천인굴(千人窟)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천연 석굴은 수십 명이 들어앉기도 빠듯하게 보인다. 이 지역 함양의 향토지인 『함양군사』(2012년)에 마적 대사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휴천면 엄천강 상류 용유담 주변의 마적 대사 전설 탐방로를 따라가면 마적동, 마적사 터, 대사 배나무, 바둑판 바위, 대사 우물과 마적대 등 마적 대사와 관련된 설화와 유적지가 풍부하다. 엄천강과 용유담에는 등에 무늬가 있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의 무늬가 마적 대사가 입었던 가사와 같다고 하여 ‘가사어’라 불렸다는 기록이 조선 시대의 문헌에 있다. 이 물고기는 높은 산 깊은 계곡의 차가운 계곡물에 사는 연어과의 열목어로 추정된다.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 천인굴 내부, [사진]이완우 용유담 지역은 지리산의 천왕봉, 노고단과 백무동 등과 함께 지리산 성모 산신 신앙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마적 대사가 용유담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용들을 쫓아내며 던진 바둑판이 조각나면서 이 계곡의 바위가 되어 널려 있다는 설화가 전하는데, 용유담 일대에 마적 대사가 불교를 유입하면서 이런 설화가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엄천강과 용유담 주변에 활동하던 마적 도사가 자신의 활동 지역과 가까운 지리산 자락의 삼정산으로 올라와 천연 석굴에서 수행하고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을 것이다. 혜암(慧庵, 1920~2001)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이다. 그는 가야산 해인사의 해인총림 방장을 지낸 혜암 스님이 가야산이 보이는 이곳 천인굴 앞의 폐허가 된 문수암 터를 발견하고, 1965년에 암자 건물을 다시 세워 수행의 도량으로 삼았다. 하루 한 끼니 식사만 한다. 눕지 않고 오래도록 앉아서 좌선한다.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수행에만 전념한다. 이렇게 혜암 스님은 일종식(一種食), 장좌불와(長坐不臥)와 두타고행(頭陀苦行)에 철저하였다. 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와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일관된 수행 태도는 수행자들의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 천인굴, [사진]이완우 지리산의 수행 방장이었던 천연 석굴, 그 문수사 천인굴의 의미 문수암의 작은 천연 석굴에 천 명이 앉을 수 있다는 천인굴 이름은 비밀을 간직한 만트라처럼 화두가 되어 탐구심을 자극한다. 이 석굴에 천 명이 들어갔다고 과장한 것은 천인굴이 구도와 깨달음의 정신적 터전이며, 이곳이 영향력이 큰 수행자의 거처인 천연 방장(方丈, 수행자의 사방 3.3m 정사각형 방)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유마경(維摩經)에는 재가(在家) 불자였던 유마 거사가 그를 문병한 3만 2천 명을 그의 작은 방장에 모두 앉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방에 수많은 사람이 들어가 앉았다는 설화는 수행자의 교화력이 그만큼 컸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방장을 방문한 문수보살에게 유마 거사가 말했다. “중생에게 병이 있으니, 나에게도 병이 있다. 그들이 나으면, 나도 낫는다. 보살의 병은 자비에서 일어난다.” 유마 거사의 병은 육신의 질병이 아니라 중생들을 교화하고자 하는 자비심의 표출이며 반야의 지혜였다.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의 견성골 조망, [사진]이완우 문수암 천연 석굴 천장에서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인드라의 구슬 그물을 연상한다. 인드라 하늘은 하나의 그물로 덮여 있는데, 그 그물은 줄지어 엮어진 구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모든 구슬 비추고 있다.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로 연결된 다른 모든 구슬도 공명한다. 이 인드라 구슬의 그물은 한 수행자의 깨달음은 많은 사람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공명하게 한다는 비유이다. 자연 현상이나 사물에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닮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하는 프랙탈 구조가 있다. 이렇게 한 수행자의 깨달음이 수많은 중생을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대승적 비유와 상징을 이 천연 석굴에서 찾아본다. 문수암 천인굴 앞에서 지리산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은 맑고 가을 단풍이 고운데, 하늘에는 가볍게 구름이 피어나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지리산은 방장산이라 불리며, 불교에서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의 도량이라고 한다. 지리산 칠암자의 여느 사찰이나 암자의 승방 못지않게 이곳 문수암 천인굴은 수행자가 찾고 싶었던 방장으로 여겨진다. 지리산 문수암의 지리산 주능선 조망, [사진]이완우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1-08
  • [11월 25일] 반달곰과 히어리를 위한 지리산 작은 음악회
    11월 25일 오후 4시 ~6시, 산청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활동을 위한 ‘지리산 작은 음악회’를 합니다. ‘지리산케이블카 반대 산청 주민 대책위원회’에서 활동 기금 마련을 위해 준비한 음악회입니다.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 농협 351-1285-4584-83 이경옥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11-07
  • 지리산 뱀사골 탐방기 - 지리산 뱀사골 이름의 유래와 요룡대
    지리산 뱀사골 탐방기 - 지리산 뱀사골 이름의 유래와 요룡대 이야기 입니다. 00:00 인트로 00:30 뱀사골 유래 1. 뱀이 죽은 골짜기 01:22 뱀사골 유래 2. 계곡이 구불구불 뱀을 닮았다 01:43 뱀사골 유래 3. 배암사가 있던 계곡 02:33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오는 가장 빠른 길 03:07 단풍 이야기 04:18 뱀사골 요룡대 이야기
    • 지리산 오늘
    2023-11-06
  • 화장실을 사찰에서 해우소라고 부르는 깊은 뜻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지리산 자락에 상무주암(上無住庵)이 있다. 지리산 칠암자 숲길을 거느린 삼정산의 정상을 이루는 세 봉우리에서 지리산 주능선인 벽소령을 바라보는 첫째 봉우리 아래에 상무주암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암자는 9세기 중반에 영원 대사가 지리산 영원사와 함께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 삼정산 상무주암, [사진]이완우 영원사를 출발하여 1.8km의 너덜 바윗길을 걸어서 빗기재를 넘으면 상무주암에 도착한다. 11월 초순의 가을 산 낙엽들은 바람결에 흔들리며 서늘한 기운에 잡념이 들 새 없이 가볍게 낙하한다. 봄 여름에 걸쳐 이룬 엽록소의 장막을 걷으며 숲은 환해져 간다. 겨울 산의 추위와 침묵을 예감하며 낙엽들은 쏟아져 내린다. 상무주암 도량을 바라보며 내리막 산길이 평지로 바뀌면서 지리산 주능선 원경이 활짝 열렸다. 지리산 줄기의 봉우리들이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하늘에는 적운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구름은 한 장소에서 20분 정도 바라보고 있으면 천천히 모양이 변하여 없어지기도 한다. ‘머무름이 없다’는 이름의 암자에서 머무름 없이 변화하는 구름을 바라보니 새롭다. 지리산 상무주암 앞 오솔길, [사진]이완우 암자는 입구에 탐방객의 출입을 사양하는 정낭이 걸쳐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지리산 깊은 산중의 작은 암자에서 제주도의 풍물인 정낭의 표식을 보니 친밀한 느낌이 든다. 암자 마당 앞 돌담 축대 아래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이 암자는 공양간 안에 바위 틈에서 물이 고이는 샘이 있고, 탐방객을 위해 암자 앞 오솔길에 약수터가 있다. 암자 앞 내리막 비탈의 다랭이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가 푸르게 가꾸어졌다. 암자 공양간 샘의 물줄기가 약수터에서 흘러내려 웅덩이에 모이고 다랭이 텃밭의 수원지가 되어 채소를 자급자족할 터전을 구성하였다. 암자와 함께 도량을 이룬 다랭이 텃밭을 보니 농사일을 수행으로 여기는 스님들의 하루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지리산 상무주암 다랭이 채마밭, [사진]이완우 매년 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이곳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이 열리고 많은 참배객이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주암, 약수암과 실상사에 이르는 14.5km의 숲길을 즐겁게 고행 삼아 걷는다. 우리나라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할 만하다. 그날에 이곳 상무주암은 참배객들의 점심 공양 장소가 된다. 해마다 이곳에서 수백 명의 점심 공양 한마당이 펼쳐진다고 한다. 상무주암과 경봉 스님 해우소 이야기 암자 앞을 지나가는 돌담 축대 아래 오솔길에서 암자 법당의 상무주(上無住) 편액이 보인다. 이 편액은 20세기 우리나라 불교계 고승인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의 친필로서 그의 법명인 원광(圓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경을 보다가 하루는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스스로에게는 반 푼어치의 이로움도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더 열심히 본질적인 공부에 노력했다고 한다. 지리산 상무주암 지리산 주능선 조망, [사진]이완우 경봉 스님은 사찰의 화장실을 가리켜 해우소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스님이다. 그가 통도사 극락암의 조실이었던 1950년대 어느 날 화장실에 해우소(解憂所)와 휴급소(休急所)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대변 공간이 해우소였고, 소변 공간은 휴급소였다. 자기 자신만의 공간인 해우소에서 마음속의 번뇌, 망상, 근심 등을 다 버리라는 경봉 스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 스님은 세상 살면서 가장 급한 것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인데, 세상 사람들은 별로 바쁠 것 없는 것을 바쁘게 찾으며 산다고 하였다. 그래서 매일 몇 차례 찾는 휴급소는 필요 없이 급한 마음을 쉬어 가라는 뜻이었다. 결국 필요 없는 급한 마음은 멈추고, 진정으로 급한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사찰에서 말해서는 안 되는 세 곳이 삼묵당(三黙堂)인데 승당(僧堂), 욕실(浴室)과 해우소이다. 침묵하라는 것은 신중하게 내면을 성찰하라는 의미이니 삼묵당은 곧 수도의 장소이다. 깊은 산중 사찰의 해우소는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누각식 구조가 많다. ‘정월 초하루에 힘을 주면 섣달그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찰의 해우소는 높낮이가 있는 개성적인 건물이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마음을 정결하게 해 주는 장소이다. 지리산 상무주암 전망바위 바둑판 문양, [사진]이완우 상무주암에서 고려 시대 스승과 제자인 선승 3명의 이야기 고려시대 보조 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은 불교를 혁신하기 위해 신앙 단체인 수선사를 결성하고 이끌었다. 현재의 조계산 송광사는 처음 이름이 정혜사(定慧社)이며 1205년에 왕명으로 수선사(修禪社)로 바꾸었고, 고려 말기에 송광사(松廣寺)로 개칭되었다. 수선사는 보조 국사가 결성한 단체이며, 송광사의 이전 사찰 이름이었다. 1197년에 이곳 상무주암에 보조 국사가 머무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보조 국사의 제자인 혜심(慧諶, 1178년~1234) 선사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지었는데, 혜심의 제자인 각운 선사 역시 이곳 상무주암에서 스승의 저술을 자세히 풀이한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를 저술했다고 하는데, 이들 저술은 고려 시대 선문(禪門)의 필독 서적이었다. 이들 저술의 구성은 수많은 선문(선문답)마다 염송(깨달음 경지의 선시)을 달고 다시 상세히 풀이한 설화(주석, 설명)를 덧붙이는 삼단 구성을 되풀이하는 형식이 기본이었다. 각운 선사가 염송 설화를 엮을 때 오랜 저술로 붓끝이 닳아 자주 못 쓰게 되었다. 어느 날 어디선가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서 꼬리를 내밀었고, 그 꼬리털로 붓을 만들어 『선문염송설화』 30권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자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곳 지리산 상무주암에는 이 사리를 보존하여 쌓았다는 3층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 남아 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염송 설화 저술의 어려움으로 기진한 각운 선사가 쓰러져 세상을 떠나자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고 과장한 극적인 요소의 설화가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 상무주암 바둑판 문양 바위, [사진]이완우 지리산 상무주암에 전해지는 스승과 제자로 이어진 세 선사의 수행과 저술 활동으로 보아 이 암자가 고려 불교의 선풍 진작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혼자 선정에 들었는데 허수아비 같았다. 얼굴은 거미줄이 덮었고, 새 발자국이 무릎에 찍혀 있었다. 이곳 상무주암에 거주하며 수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이 표현은 수행자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구도에 전념했는지를 느끼게 해 주어 숙연해진다. 상무주암 옆의 가파르게 서 있는 바위 서슬을 찾았다. 이곳은 지리산 주능선의 천왕봉, 중봉과 제석봉이 뚜렷이 보이는 전망대로 이 암자의 스님이 가끔 찾아와 휴식하고 명상하는 장소로 보인다. 바위에 기대어 자란 듯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여서 색다른 풍경이었다. 이곳 바위 위에 바둑판 문양이 세 곳에 조각나게 그려져 있다. 바둑판은 형식과 규격에 맞지 않아 바둑을 두기 위한 목적은 아닌 듯하다. 푸른 하늘, 지리산 정상, 소나무 등과 어울리는 운치 있는 바둑판 문양을 살펴보면서 전망대 바위에서 오래 머물렀다. 상무주암을 떠나며 사찰 건물의 규모나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무주암에 머물렀던 역사, 인물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구도자의 마음을 만나고 떠났다. 어느 큰스님은 떠나는 수행자나 신도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뒤돌아 머뭇거리지 말고, 똑바로 앞으로 가거라! 지리산 상무주암 산길 삼정산 조망, [사진]이완우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1-04
  • 구례양수발전소 계획을 멈춰주세요
    00:00 양수발전소 대상지역 주민 인터뷰 00:51 인트로 01:12 지리산방랑단 노래 01:50 양수발전소 반대활동 경과보고 02:23 전국 양수발전소 운영현황 03:11 구례양수발전소를 반대하는 이유 05:42 구례, 곡성 양수발전소가 섬진강을 죽입니다 06:37 발전소 건설에 의한 인구유입 주장은 허구 06:57 소통은 하지 않겠다는 구례군청 07:41 하부댐 예정지 현장 방문 08:20 양수발전소 대상지역 주민 인터뷰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3-11-04
  • [11월 6일] 카누 수상시위할 사람 모여라!
    골프장의 독한 농약도 섬진강으로 모이고, 양수댐의 담수도 섬진강물을 취수해요. 골프장과 양수댐을 모두 막아내서 섬진강을 생명의 강으로 만들어요! 구문척교 아래에서 서시천과 섬진강 합수지점까지 대형 현수막을 드는 퍼포먼스를 하며 카누로 이동해요. ❇일시: 23.11.06(월) 2~4시 ❇장소: 구례읍 양정1길 120-7에서 집합 ❇대상: 선착순 20명(2인 1카누), 전문가님이 동반해주셔서 초보자도 환영해요! ❇신청: 칩코 010-2956-팔11오(문자 주세요)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11-04
  • [11월 19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수상
    (사)세상과함께(이사장 유연스님)가 주관하는 2023년 제4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아래 오체투지 환경상)의 '환경상' 부문 수상자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이 선정됐습니다. 국내외 빈곤층의 지원 활동을 해 온 (사)세상과함께는 지난 2020년부터 오체투지 환경상을 제정해 환경운동가뿐만 아니라 환경에 기여한 교육자, 언론인, 풀뿌리 지역단체, 환경활동 연구기금 등 폭넓고 다양한 방면에서 환경상 공모를 진행해 왔습니다. 올해 '환경상'으로 선정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은 지난 30여 년간 우리 국토 환경의 최후의 보루인 국립공원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힘쓴 점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시상식이 작년 설악산에 이어 올해는 지리산에서 열립니다. 오체투지 환경상 수상을 자축하고,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해온 전국의 활동가 및 단체들을 함께 하는 자리에 우리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4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 - 언제 : 2023년 11월19일 (일) - 어디서 : 지리산 실상사 * 오체투지 신청하기 : https://forms.gle/cKsdRspjWZqxW7Ef6 (약 1시간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 참여문의 : 세상과함께 010-5940-6198, 지리산사람들 061-783-6547
    • 우리마을
    • 지리산 정보
    2023-11-04
  • 물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은 것
    지리산 자락인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한때는 내지리(內智異)에서 사세(寺勢)를 크게 펼쳤던 영원사(靈源寺)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은 9세기 후반에 영원 대사가 창건하여,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 시대에 부용(芙蓉) 영관(靈觀), 청허(淸虛) 휴정(休靜), 사명(四溟), 유정(惟政)과 청매(靑梅) 인오(印悟) 등 수많은 고승이 수행에 전념하여 조선 불교의 명맥을 이어갔다. 지리산 영원사 지리산 주능선 조망, [사진] 이완우 11월 초 단풍이 어우러진 늦가을 숲의 산행은 고즈넉한 정적에 눈과 귀가 맑아져서 사색하며 걷는 길이었다. 양정마을에서 영원사까지 2.5km의 임도가 포장되어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다. 영원사는 지리산을 10km 마주 보고 있는 삼정산(三丁山, 1,156m) 아래 동남향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며, 도솔암에서 실상사에 이르는 지리산 칠암자 산길의 한 사찰이다. 영원사 도량에서 무량수전, 삼영전과 산령각 등 전각을 둘러보았다. 이 사찰에 전해오는 영원 대사의 사찰 창건 연기담, 인오 조사의 수행담과 백초월 스님의 항일 독립운동 등 수행자들의 이야기는 전설, 설화와 역사를 생생하게 전승하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지리산 영원사 무량수전, [사진] 이완우 영원 대사의 사찰 창건 연기 설화 『우리 고장의 전설』(함양문화원, 1994) 책자에 이 사찰을 창건한 영원 대사와 사제간에 얽힌 인연 이야기가 사찰 창건 연기담(緣起談)으로 채록되어 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의 동자승이었던 영원 대사는 지리산으로 수도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의 스승은 제자에게 지리산에 도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동자승은 스승과 범어사가 그리워 고개를 넘으며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리산 영원사 무량수전 앞 돌길, [사진] 이완우 동자승은 지리산에 도착하여 현재의 영원사 터 가까운 곳의 토굴에서 정진 수행하였다. 8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영원 대사는 깨우침을 얻지 못하여 이 산을 그만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 노인이 산에서 숲속의 허공에 낚싯대를 세우고 고기를 낚고 있었다. 노인은 이 산에서 8년 동안 물고기를 기다렸는데 2년은 더 채워보겠다고 했다. 영원 대사는 느낀 바가 있어 다시 토굴로 발걸음을 옮겼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산에서 물고기를 낚는 이 노인은 아마 동자승을 지리산으로 보내고 제자의 득도를 기원하며 기다리는 범어사 스승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영원 대사가 도를 깨우치고 금정산 범어사를 찾아가니, 범어사에 있는 스승은 뱀이 되어서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영원 대사는 자신이 동자승으로 지리산에 올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스승의 금기를 어겨서 스승이 뱀이 된 것을 알았다. 범어사의 스승은 도를 깨우친 영원 대사를 보고는 바로 죽어서 남자아이로 환생하였다. 영원 대사는 지리산 이곳 삼정산 자락에 영원사를 창건하였다. 영원 대사는 범어사의 스승이 환생한 아이에게 승방에서 공부하게 하며, 승방의 작은 창 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지성으로 수행하라고 하였다. 몇 년 지나서 과연 황소가 창 구멍으로 뛰어 들어오며 우레 같은 소리가 났다. 아이가 황소가 들어온다고 외치는 순간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이 영원사 사찰 창건 연기담은 제자의 성공을 바라며 사사로운 정을 끊고 수행에 정진할 것을 당부한 스승의 바람과 제자가 성공하여 다시 스승을 깨우침으로 이끈 사제 간의 끈끈한 정리로 이어진 이야기로서 마음에 닿는다. 지리산 영원사 삼영전, [사진] 이완우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인오 조사 조선 시대 중기에 청매 인오[1548-1623] 조사는 영원사에 거처를 두고, 가까운 산 중턱의 토굴에서 참선 수도하였다. 그는 틈틈이 산죽을 잘라 조리를 만들고 소나무의 관솔을 잘라서, 험한 산길을 걷고 고개를 넘어서 함양의 장터에 내다 팔았다. 그는 장터에서 물건값은 주는 대로 받았다. 팔리지 않은 물건은 그대로 장터에 두고 와서 누군가 가져가서 요긴하게 쓰도록 배려하며 산속 승려로서 백성들과 소통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영원사에서 수도하는 중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능선 허리를 넘어 함양 장터까지 150여 리 길을 하루에 왕래하곤 했는데, 어느 날 오도재(悟道峙)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함양의 오도재는 '인오 조사의 함양 장에 가는 길의 고개'라는 뜻과 '도를 깨우친 고개'라는 뜻의 중의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오 조사가 함양 장터로 오가던 삼정산 기슭에 '견성(見性)골'이 있어서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고 한다. 인오 조사가 함양 장을 다니면서 백성들과 소통하고 교화의 힘이 컸음을 이렇게 지명에 얽힌 설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 영원사 산령각, [사진] 이완우 인오 조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으며, 조선 불교의 중흥에 노력했다. 그는 ‘십무익송(十無益頌)’을 지었는데,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 보지 않는다면, 경전을 읽어도 이익이 없다[心不返照 看經無益]."는 등 수행자들이 참고할 만한 열 가지 경책을 열거한 내용이었다. 인오 조사는 노년에 영원사 조실로 있었다. 그가 열반에 든 날, 절터가 환한 빛으로 둘러싸였다. 영원사 동쪽 능선에 스님의 사리를 모아 사리탑을 지었는데 밝게 빛나서 방광사리탑이라고 불렀다고한다.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수행자 백초월 스님 영원사는 대한민국 일제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초월(白初月, 1878~1944) 스님이 13세에 출가한 수행 도량이었으며 마음의 고향이었다. 초월 스님은 1919년, 3·1운동 이후에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를 발표하였고, 의용승군제를 추진하였다. 그해 7월, 천은사(泉隱寺)와 화엄사(華嚴寺) 등 여러 사찰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였고, 애국청년들을 선발하여 상해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양성하는 길림(吉林)으로 파견하였다. 그는 지속적인 항일 독립운동과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한 뒤에도 미치광이로 행세하며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구속이 되었으나 그때마다 정신이상자로 석방되었으며, 친일 승려를 강하게 규탄하였다. 1939년 초월 스님과 가까웠던 신도가 만주로 탈출하면서 봉천행(奉天行) 화물 열차에서 ‘대한독립 만세’라고 글씨를 쓴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한평생을 항일 독립운동에 노력하였다. 우리나라 정부의 상훈 인터넷 사이트에서 스님의 이름을 검색하면 스님의 건국훈장 애국장의 상훈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 영원사 도량 가을 풍경, [사진] 이완우 영원사 도량에서 동남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조망된다. 영원사 경내는 정성스러운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어 맑고 깨끗한 산사의 풍경이 단아하였다. 영원사의 오후 햇살에 사찰 앞에 드리우는 산그늘이 갈색 풀밭과 초록색 풀밭과 어울리면서, 검은 화강암인 마천석의 큰 바위로 정연하게 쌓은 가람 앞의 축대와도 잘 조화된 풍경이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지리산 삼정산의 유서 깊은 사찰인 영원사에서 수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백견불여일문(百見不如一聞), 백행불여일문(伯行不如一聞)'이라고 되뇌어 보게 된다. 이곳 지리산 칠암자 산길을 걸으며(行) 백 번 산사의 풍경을 보는 것(見)보다 이 영원사 사찰에 전해오는 세 스님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듣는 것(聞)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 칠암자 산길에서 지리산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문화적 자산으로 생명력 있게 전승되기를 바란다. 지리산 영원사 도량 앞 가을 풍경,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1-03
  • [숲샘의 지리산통신] 이 가을, 미술관으로 다가온 실상사
    지리산에서 실상사가 갖는 의미는 아주 각별하다. 지리산 생명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숙 진지함보다는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는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웃 같은 절집으로 느껴지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리산이 위태로울 땐 저항의 구심점이 되어 지리산의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역할을 자임해 온 것도 실상사였다. 이 가을날, 지리산 운동의 심장 그 실상사가 지리산프로젝트란 이름을 달고 울타리 없는 미술관이 되었다. 그림, 사진, 설치미술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실상사 곳곳을 장식하면서 문화 불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우주예술집'이란 제목으로 시작된 지리산프로젝트는 해마다 진행되다가 코로나 등으로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올해 '정의도 빛나고 평화도 빛나라'란 주제로 독일과 일본 작가를 포함해 스무 명의 작가들이 참여, 실상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켜 9월 22일부터 10월 29일까지 작품들을 전시했다. 지리산프로젝트 김준기 예술감독은 “지리산프로젝트2023은 한국 근현대 역사가 만들어 낸 이분법적인 진영 대립 구도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적 시도들에 집중해보고자 한다”면서 “이는 동시대 사회와 예술의 최전방에 위치한 정의와 평화를 다루고자 함이며, 정의의 추구는 곧 평화의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실천의 과정으로서 지리산의 생명 평화 사상과 결합한 다양한 예술 형식을 새로이 모색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번 지리산프로젝트2023의 스태프로 참여한 실상사 수지행은 “실상사를 찾는 분들이 언제부턴가 실상사에 문화재 말고도 볼 것이 많아졌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면서 “절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과 치유의 쉼터로 예술이 가진 성찰의 힘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법문이고 절은 불교 신자들에겐 신행의 공간이자 모든 사람에게도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를 배우고 현재의 삶을 치유하는 열린 문화공간”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프로젝트는 “천년고찰 실상사에 스며있는 문화유산의 가치에 더해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에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는 10월 29일 “윤리와 예술의 관점에서 본 정의와 평화”란 제목으로 진행된 토론회를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필자가 지리산 운동에 발을 디디면서 숱하게 찾았던 실상사였지만 지리산프로젝트2023으로 또 다른 실상사로 다가왔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으면서 실상사의 문화재와 더불어 저 멀리 장쾌하게 펼쳐진 지리산 주 능선과 천왕봉도 작품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산청에서 실상사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 그 길을 수없이 오가면서 엄천강 따라 펼쳐진 가을 풍경 또한 그대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감히 주장한다. 끝으로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를 마감하면서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지리산 케이블카나 산악열차 그리고 골프장 건설 등 시대착오적 개발사업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지리산 전체를 커다란 예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궁리를 해 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자료 출처 : 지리산프로젝트2023 리플렛) 이번 지리산프로젝트에서 스태프로 참여했던 실상사 수지행이 엄혁용 작가의 “‘책 피어오르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리산의 구름, 나무와 책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선재집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는데 담 너머 저 멀리 지리산 주 능선과 함께 천왕봉이 조망된다. 김화순 작가의 “불어라, 생명평화의 바람”은 보광전 뒤 숲속에 걸려있는데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뒷모습으로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불타는 산과 녹아내리는 빙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를 업은 포대기에 그려진 인드라망 생명평화 문양에 눈길이 먼저 간다. 실상사 목탑지에 설치된 한호 작가의 “영원한 빛 코스모스”, 우주의 정원에서 빛나는 별들은 우리가 바라본 먼 세계이며, 인간이 가진 사유의 우주 또한 투영된 자신의 셰계와 연결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저 목탑지 바로 옆에는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소가 자리하고 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팽나무를 배경으로 설치된 홍경태 작가의 “설계”는 인간관계의 의미로 출발하는 격자구조의 철근은 이어짐과 끊어짐 그리고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해주는 지지대의 역할이고 내부의 편지 봉투 형상의 상자는 상호 간의 교류를 의미한다. 절집 주련은 대부분 한자로 새겨져 있지만 실상사 천왕문에는 한글 주련이 있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안상수 교수님의 글씨로 한글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주련을 지나는 필자의 어린 길동무들, 지리산 칠암자길 중 영원사에서 출발해서 실상사까지 여섯 암자를 걸어온... 실내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는 선재집에는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방석이 놓여져 있다. 그 방석에 앉으면 선재집 출입문을 통해 보광전과 천왕문 그리고 저 멀리 천왕봉까지 일직선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에서 이런 풍광을 만날 수 있겠는가. 칠성각 앞 반송 아래에서 “평화를 지키는 고양이 심바”는 권군 작가의 작품으로 이곳을 가상의 산신각 자리로 정하고 지리산을 지키는 호랑이 대신 시대적 현상을 반영해 고양이 심바가 그 역할을 하도록 위치시켰다. 심바의 두 눈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두 눈 사이의 하트 형상은 사랑과 평화를 뻗어나가게 하는 전류와 파동의 중심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선재집 벽면에 걸린 선무 작가의 “손에 손 잡고”는 여덟 명의 어린이가 각각 다른 국기를 달고 있지만 그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한다. 선이 없다는 의미의 ’선무‘는 탈북 작가의 가명인데,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체제들의 경계를 해제시키는 것,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것이 선무 작가의 메시지라고 한다.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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