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전체기사보기

  • 꽃앞에 무릎을 꿇다
    「섬진강 편지」 - 김인호 야생화 사진전 구례에서 라임나무를 키우는 농부들의 구례 라임씨 협동조합에서 지리산 화엄사 가는 길에 만든 "농부 라임C 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상큼달큼 신선한 라임으로 만든 라임에이드, 라임 차, 깔라만시에이드와 우리밀 제과 쑥부쟁이 머핀,쿠키, 라임호두 등을 판매합니다. 또 하나, "농부라임C 카페" 공간은 지역의 문화 사랑방 갤러리를 지향하는데 영광스럽게도 제가 그 사랑방 갤러리 첫 번째 전시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김인호의 야생화 사진전 <꽃앞에 무릎을 꿇다> 우리 들꽃 사진을 2022년 5월 13일부터 7월 말까지 전시하니 지리산, 섬진강을 오가는 길이라면 잠시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12 섬진강 마실장C동 2층 농부카페 라임C http://kko.to/4ARdhL4V2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2-05-12
  • 국립공원 실시간 CCTV 보기
    국립공원 실시간 CCTV보기 => https://www.knps.or.kr/portal/main/contents.do?menuNo=8000168 북한산 국립공원(백운대)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4.html 소백산 국립공원(연화봉)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5.html 덕유산 국립공원(설천봉)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10.htmlhttps://www.mdysresort.com/resort/webcam/webcam.asp?cam_num=7 지리산 국립공원(천왕봉)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1.html 설악산 국립공원(중청)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8.html 설악산 국립공원(울산바위)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3.html 오대산 국립공원(두로령)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11.html 태백산 국립공원(천제단)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6.html 주왕산 국립공원(절재) 바로가기 : http://www.knps.or.kr/common/cctv/cctv9.html 한라산 국립공원 실시간 영상 바로가기 : http://www.jeju.go.kr/tool/halla/cctv.htmlhttps://www.knps.or.kr/portal/main/contents.do?menuNo=8000168
    • 우리마을
    • 지리산 정보
    2022-05-12
  • 노을로 물들어 가는 달뜨기능선 바라보기,
    노을로 물들어 가는 달뜨기능선 바라보기, 산은 강을 건너지 않고강은 산을 넘지 않는다고 했던가.난 구도만 잡고 폰카가 알아서 만들어준 풍경이다. -지리산의 동쪽 경계가 되는 경호강에서...
    • 우리마을
    • 산청
    2022-05-11
  • 남생이탐사단을 모집합니다
    봉서리 남생이가 다니는 길을 탐구하는, <남생이탐사단>을 모집합니다. 신청 : http://forms.gle/gFs9pUoYXqNkEq6N8 문의 : 061-783-6547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5-10
  • 이런저런 지리산 이야기 1
    이런저런 지리산 이야기 1 ◔ 그 옛날,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이 깊은 문수골에 들어왔을 것이다. 나물만 먹고 살 순 없으니 손바닥만한 논배미라도 얻기 위해 함박꽃 지고 단풍잎이 붉게 물들 때까지 축대를 쌓고 계단처럼 논을 올렸을 것이다. 초승달 같은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아슬아슬한 계절을 건넜을 것이다. ◔ 쌍계사 등 뒤로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내원골을 한참 오르다 보면 서너 채의 빈집이 있다. 처사는 수년째 마당의 감꽃을 피우며 한 소식 기다리더니 어느 겨울머리에 나섰나 사립문조차 무너져 있다. 부엌문을 열면 낡은 찬장에 아직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슬프다. 먼지 수북한 망태기며 녹슨 호미도 그렇지만 방구들에 까지 올라온 잡초들의 인정머리가 또한 그러하다. ◔ 지리산 종주등반을 하다보면 전남, 경남, 전북이 만난다는 삼도봉을 지나 ‘화개재’를 만나게 된다. ‘화개’는 저 아래 섬진강 가에 있는데 왜 이곳을 ‘화개재’라고 부르는지가 늘 궁금했었다. 하지만 오로지 두 다리만이 민초들의 교통수단이던 시절, 남원 쪽 마을의 장꾼들에게는 뱀사골을 올라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 목통골로 내려가는 길이 화개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등짐 하나 들쳐 매고 꼭두새벽부터 뱀사골을 올라 주능선을 넘어야 화개를 가니 이 주능선의 ‘화개재’는 뱀사골에서 올라오는 남원 쪽 사람들이 불렀던 이름일 것이다. 이 재에 이르면 쉴 참에 담배 한대 말아 피고 화개장 까지 한달음에 내달았을 것이다. 걸쭉한 탁배기 한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국밥이 생각났을 것이다. ◔ 산을 가다보면 가끔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것은 지정된 등산로 외에는 모두 사람이 다녀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다. 나무하러 다니고, 장 보러 다니고, 능선 너머 이웃동네를 넘나들던 길이고 삶의 일상 속에 있었던 길이다. 지금은 멧돼지 가족들이 다니고 노루가 가다말고 서서 잠깐 뒤돌아보는 길이 되었지만 아직도 다 살아있는 길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잃어버린 길이고 스스로 차단한 길이 되었을 뿐이다. ◔ 왕시루봉에 가면 외국인 산장이 있다. 80년대 후반 즈음이었을까. 그때만 해도 칠십이 넘은 산장지기 노인 한분이 있었다. 젊은 시절 외국인 부인을 지게에 지고 이 정상까지 올라왔다는 노인. 그 산장의 옆에는 물줄기를 막아 만든 풀장이 있다. 물줄기가 얼어버린 겨울이면 도끼로 얼음을 깨고 풀장의 물을 길어 저녁밥을 지었다고 한다. 멀리 노을이 지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왕시루봉 정상에는 제국의 그늘이 가득하고 나는 그 그늘 아래서 점심으로 가져온 주먹밥을 베어 물었다. ◔ 한국전쟁 전에는 외국인 산장이 노고단에 있었다. 풍토병 치료를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수십 채의 산장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올라와 쉴 때는 구례의 아낙네들이 보따리 짐을 싸들고 올라와 장이 섰다고 한다. 어린 함태식은 노고단에 올라 비키니 차림으로 햇볕을 쬐는 서양인들을 보았다고 했다. 한반도가 통째로 신음하던 그 일제식민지 시절의 한 풍경이다. ◔ 장터목은 장이 서던 곳이었다. 지리산 전체가 삼도를 잇는 길이었던 시절, 잠시 쉬던 장꾼들이 모여 서로의 물건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지금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산이 되어 하루를 쉬어가라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장터목은 장터목일 뿐이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다리가 굳어졌을 뿐 장터목은 지금도 장이 서고 싶다. -반야봉 일출 -반야봉 철쭉 -지리산에서 보는 섬진강 -노고단에서 본 구례 <사진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05-10
  • 만물이 지나가는 길
    만물이 지나가는 길 김영석 서리 낀 저녁 하늘 줄지어 철새들이 날아간다 어느덧 내 안의 길을 지나 하늘의 길 따라 날아간다 강물이 내 안 어딘가 물길을 지나 굽이굽이 벌 끝으로 흐르고 노루 사슴이 내 안의 오솔길을 벗어나 어드메 깊고 깊은 산길을 달린다 가랑잎도 바람에 불려 내 안 어느 공터를 구르다가 이슥한 뒤안으로 돌아간다 오늘도 돌탑에 기대어 서서 내가 바로 하나의 길이었다고 다시 한번 조용히 깨닫는다 내 마음의 밝음과 어둠 슬픔과 그리움과 쓸쓸함이 내 안의 길목을 지나가는 한갓 만물의 기척이었다고 다시 한번 조용히 깨닫는다 - 섬진강 노을 사진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2-05-10
  • 니란자 강가의 숨소리
    니란자 강가의 숨소리 나이를 먹으면서 언젠가부터 ‘시간’은 그 많은 의미와 가치를 버리고 ‘늙음’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 나를 따라 다녔다. 그것은 삶의 지층, 그 어느 바닥에서 막연한 어떤 어둠과 절망의 우울한 안개를 뿜어 올리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고 불편했다. 그 ‘시간’이라는 관념을 극복하지 않으면 내 남은 생에 온전한 평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시간’에 골몰해 있을 때 불현듯 오래 전 읽었던 헷세의 소설 『싯타르타』가 생각났다.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시간’과 관련된 무엇인가 소설의 말미를 장식했던 것 같았다. 소설을 다시 읽으며 내가 찾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거였다. 소설 속의 싯타르타는 집을 떠나 스승들을 찾아 구도행을 하다 세속에 들어 돈도 벌고 여인을 만나 사랑도 하고 아들도 얻게 되나 다시 떠돌다 마지막으로 니란자 강가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난다.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과 같은 니란자 강이 삶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면 뱃사공 바수데바는 그 강을 자유롭게 건너다니는 각자(覺者)인데 시타르타는 강에서 그와 함께 보내며 깨달음을 얻는다. 강을 바라보고 강의 깊은 소리를 들으며 시간의 관념을 극복하고서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시간의 집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몸’을 떠나 현존할 수 없으니 나에게 시간은 결코 관념이 아니며 골수에 박혀있는 존재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몸에 대한 해석을 바꾸어 몸을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명상 의학자 디펙초프라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에게는 몸은 새로운 세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뿐이지 노화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렇게 신체 세포는 항상 새것이며 나이 백 살을 먹어도 살아있는 몸의 세포는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항상 새것이라는 것이다. 피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롭게 교체되고 위벽은 5일마다, 간은 6주마다, 골격은 3개월마다 새롭게 바뀌며 한 해가 지날 때면 우리 몸속 원자의 98%가 새것으로 교체된다는 것이다. 흐르는 강처럼 몸은 육안으로는 언제나 같아 보이지만 실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디펙초프라의 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바른 것이며 그러하기에 ‘현존’이라는 개념이 진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몸은 낡은 세포는 버려지고 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그것으로 현존한다. 살아 있는 현재가 생명 자체이고 전부인 것이다. 이 전의 죽어버린 세포나 앞으로 생겨날 세포는 ‘몸’이 아니듯이, 말하자면 생명존재의 개념에서 보면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은 원래 없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은 만들어낸 관념이며 습(習)일 뿐이다. 신체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고 여길 뿐이다. 그래서 강의 비밀은 ‘시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상류의 폭포에도 하류의 나루터에도 강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며 인생은 하나의 강일뿐이다. 흐르고 있으면서도(변화하면서도) 과거나 미래라는 것이 없이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2-05-09
  • 지리산에서 온 편지 8
    ☐지리산에서 온 편지 8 남부능선이 준 옐로카드 틈만 나면 지리산에 오르던 그 시절, 산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힘들게 산에 올라가봐야 도로 내려올 것인디 머하러 그렇게 산에 대니냐?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디.” 나는 어머니께 무어라 할 말이 없어 그냥 “다녀올께요!” 하고 나오곤 했다. 에베레스트 최초 등반을 꿈꾸며 수없이 목숨을 걸고 산에 올랐던 조지 맬러리의 ‘왜 산에 가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였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답이다. 그런 그에게 ‘왜 사느냐’라고 물었다면 아마도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사는 동안 모든 행위들에 이유나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그 이유나 의미가 불분명하면 어떤 행동이든 망설이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행위가 ‘자신의 존재(에고)’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것 때문에 자신의 감옥에 갇히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신형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인류사 속에 성인이라고 하는 분들이 적은 것은 그것을 말해준다. 성인들이야말로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에서 타자를 위해 사신 분들이 아니겠는가. ‘에고’ 없는 순수의식으로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일 터이다. 조지 맬러리는 오로지 에베레스트에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살다보니 그 집중력에서 오는 어떤 순수성을 감지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라는 답변이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말장난이 아닌 일관된 신념의 단순성의 삶에서 나온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리산을 오르게 된 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성을 지닌 빨치산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산에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정신과 육체 모두에 어떤 강한 에너지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당시 처해 있던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과 조건을 극복하고 삶의 의욕과 열정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자주 올랐던 곳이 남부능선의 지능선과 계곡들이었다. 지리산의 남부능선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주능선 상에서 남쪽으로 내리벋은 긴 능선이다. 세석평전에서 시작하여 하동군에 이르는 능선으로 중간에 지능선들을 거느리고 있어 대성계곡과 단천계곡, 선유동계곡, 의신계곡 같은 지리산의 큰 계곡들을 형성하고 있고 그것들을 모두 품고 있는 지리산맥의 중요한 근간능선의 하나이다. 하지만 남부능선의 주능선 산행은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중간에 샘도 별로 없어 매우 지루한 등반로이다. 그렇다 보니 등산객들이 적어 길이 묵고 덤불이 우거졌으며 거미줄이 많아 더 불편하고 힘든 길이 되었다. 하지만 남부능선의 지능선과 골짜기들은 서로 잘 어울려 갈 때마다 새롭고 깊은 감동을 주었다. 어느 여름에 故 박배엽 시인과 함께 남부능선의 지능선에 있는 단천계곡을 타고 삼신봉에 올라 남부능선의 주능선을 따라 쌍계사로 내려오는 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단천골은 현재 비등산로라서 다닐 수 없는 곳이지만 그 당시에도 7부 정도 오르면 길이 없어져서 나침반에 의지해 삼도봉을 향해 직선 구간을 치고 올라가야만 했었다. 어차피 길이 없어지면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라는 길을 걷게 된다. 그 길은 탐방로처럼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예측할 수 있는 길도 아니며 그저 나의 생각과 나의 의지에 따라 가고 있는 길일뿐이다. 그 생각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게 일어나는 순간 없던 길이 비로소 열리며 그 길이야말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로지 나만의 길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세상의 도덕률(야마)과 개인의 도덕률(니야마)이라는 바탕 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세상을 제 홀로 사는 제멋대로의 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단천골을 타고 남부 주능선의 삼신봉에 올랐고 하산을 위해 남부능선을 내려오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청년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물병도 없이 알칼리성 음료 한 개를 달랑 들고 오는 것이다. 배낭은 매었지만 얼핏 보아도 산행 장비가 너무 허술하여 어디 가냐고 물으니 남부능선을 따라 세석평전까지가 오늘 산행이란다. 몇 마디 더 물어보니 산행 초짜들로 내 짐작으로는 그들의 산행이 좀 무리일 것 같았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서 필요할 거라며 가지고 있던 물을 모두 내주었다. 그리고 삼신봉까지 가서 다시 생각해보고 세석까지 무리라고 생각하면 청학동으로 하산하라고 알려줬다. 삼신봉을 지나면 세석까지 가는 동안 하산할 길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지고 쌍계사로 내려가는 생불재(성불재, 상불재 등으로도 불린다) 삼거리에 이르렀는데 박배엽 시인이 여름해가 기니 바로 쌍계사로 내려가지 말고 능선을 더 타고 원강재를 지나 혜경골로 빠지자는 제안을 해왔다. 원강재로 가는 능선은 비등산로여서 길이 살아 있을지도 궁금하고 아직 안 가본 길이니 한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산행과 체력에는 자신감이 있던 때라 원강재 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허리까지 올라오는 무성하게 자란 길가의 풀에 묻혀 길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희미하던 길마저 사라져 순전히 감각으로 능선을 찾아 걷게 되었는데 마침내 해가 기울고 말았다. 렌턴을 꺼내 지도를 보니 옛길은 능선을 타고 원강재를 지나 혜경골로 내려가는 길이 나와 있긴 했으나 현재의 상황에서 그 길을 찾아 내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캄캄한 밤, 길이 사라진 지리산의 능선 위, 비축한 물도 식량도 없이 지치고 허기진 상태였다. 우리는 상의한 끝에 등산로는 어차피 사라졌으니 능선은 그만 타고 지금 이곳에서 바로 하산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신촌마을 쯤에 나침판 지표를 맞추고 화살표 방향으로만 직진하기로 하고 능선을 벗어나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없는 길을 가려니 무성한 가시덩굴지대를 만나 얼굴과 온몸을 긁히고 헤쳐 나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벼랑을 만나 우회해야 했고 물도 못 마시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탈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배가 너무 고파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고 있었다. 낮에 대학생들에게 물을 다 준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물이 없으니 계곡을 찾아 내려가며 물소리가 들리기만을 고대했으나 쉽지 않았다. 없는 길을 헤쳐 나가자니 평소보다 3~4배 정도 더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싶다. 도저히 더 갈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쉬어가려고 앉았는데 어디선가 쫄쫄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때 물 한 모금의 기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원효의 해골물을 알고 마신다 해도 이처럼 꿀맛이었을 것이다. 물줄기를 따라 넓은 계곡으로 나오자 등산로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온 길에 비하면 너무 편한 길이었다. 속도를 내어 신촌마을 근처로 내려오니 거의 자정이 다된 시간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산에 자주 다녀 생긴 자신감이 오만으로 넘어가는 즈음 지리산은 우리에게 자연 앞에서 겸허한 자세를 갖추라고 옐로카드를 꺼냈던 것이다.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05-09
  • 숙은처녀치마
    숙은처녀치마 [ Tubular-flower swamppink ]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식물 > 속씨식물 > 외떡잎식물 > 백합목 처녀치마는 숙근성 여러해살이 풀이다. 잎이 시들지 않고 겨울을 견뎌내어 잔설이 녹아내릴 때쯤 꽃방석처럼 방사상으로 펼쳐진 잎 가운데에서 새로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노고단에서는 4월 말경에 꽃대가 올라와 홍자색의 꽃이 줄기 끝에서 3~10개 정도가 뭉쳐 달린다. 꽃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홍자색에서 짙은 자주색으로 변한다. 처녀치마는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 2종으로 처녀치마(Heloniopsis koreana Fuse, N.S.Lee & M.N.Tamura)와 숙은처녀치마(Heloniopsis tubiflora Fuse, N.S.Lee & M.N.Tamura)가 있다. 처녀치마는 경기도 이북지방에서 보았으나 지리산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숙은처녀치마는 꽃이 지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핀다하여 숙은처녀치마라고 하는데 처녀치마보다 잎의 폭이 좁아 ‘좁은잎처녀치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 노고단 / 2022년 5월 4일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5-08
  • 양수발전소 댐 생기고 아름다운 골짜기 잃었다
    지리산 이야기 (2) 편리함 위해 파헤쳐진 계곡(산청양수발전소) 양수발전소 댐 생기고 아름다운 골짜기 잃었다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필름 대표) (webmaster@idomin.com) 2021년 04월 13일 화요일 정부 친환경에너지 홍보와 달리 삼림·생태계 파괴에 수질악화 편리함·발전 명목 개발만 몰두…회복·치유 등 새로운 대안을 "산청에 양수발전소가 생길 때는 왜 반대운동을 안 했습니까?" 2019년 2월 하동군 화개면 양수발전소 반대 대책위가 활동할 당시 연대를 요청하러 다니는 중에 들었던 이야기다. 산청군에 양수발전소가 들어선 것은 2001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양수발전소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산청에 양수발전소가 생긴다는 것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초등학생이었다. 청소년들도 환경운동에 뛰어들게 된 현재는 기후변화로 인간 문명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때부터 반대운동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양수발전소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화개 사람들은 반대집회 당시 산청양수발전소에 다녀와서 화개면 양수발전소 반대집회 때 후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산청양수발전소는 고운동 계곡에 상부댐, 거림계곡에 하부댐이 위치한다. 상부댐 일부 지역은 하동군 청암면을 접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전력은 가동하는 동안 잉여전력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이용해 양수펌프로 하부댐에 있는 물을 상부댐으로 퍼올려 담아뒀다가 하부댐으로 흘려보내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다. 말하자면 원자력발전소의 잉여전력을 위한 배터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상부댐에 있는 물을 하부댐으로 내려 한번 발전을 하는 데 6~8시간, 반대로 상부댐으로 물을 퍼올릴 때 8~10시간이 소요돼 발전소를 최대한 가동한다고 해도 최대 가동률은 25% 내외라고 한다. 1조 원이라는 건설비용을 생각했을 때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소의 발전단가는 매우 높은 편이다. ▲ 산청군 고운동 계곡에 건설한 양수발전소 상부댐. /배혜원 시민기자 산청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지역주민을 만났다. 하부댐 인근 곡점마을에 터를 잡은 지 19년째라고 소개한 ㄱ 씨는 산청양수발전소에서 산청군과 시천면에 발전기금을 제공하고 있고, 수몰된 예치마을은 인근지역으로 이주해 펜션단지를 조성했으며 상부댐이 있는 고운동까지 도로를 건설해 교통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수질은 확실히 나빠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양수발전소를 신재생에너지, 친환경에너지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과정에서 삼림 훼손, 수계통제로 하천 생태계 파괴와 수질 오염 등을 간과한 이야기다. 시천면에서 나고 자란 ㄴ 씨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다고 이야기했지만 계곡에 이끼가 많아져 눈으로 봐도 물이 오염된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청양수발전소 입구에는 수질 현황판을 붙여놓고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부댐이 위치한 고운동에 40년째 사는 ㄷ 씨는 반천동과 고운동에서 각각 길을 막는 등 반대운동을 했으나 끝내 막지 못했다고 했다. 반천동에서 고운동으로 이어지는 길도 막혀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최치원 선생의 호 '고운'에서 유래한 고운동은 깊은 산속에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분지 지형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다. 여름철 부채도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했던 이곳은 양수발전소 건설 이후 2~3도가량 평균기온이 올라갔고, 전기 없이도 소박하고 고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아름다운 고운동 계곡이 사라졌다고 한다. 집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던 내가 환경운동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자기 집이 수몰된다는데 반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ㄴ 씨는 양수발전소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시천면 일대에 4군데가 넘는 생수공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머지않아 지하수 자원이 고갈될 것이고, 오가는 대형 화물트럭들로 소음과 사고위험이 있고 지역에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나다니는 트럭들을 보며 양수발전소 송전탑들을 보며 지리산의 산수를 파헤치고 생산한 전기와 물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가는 현실을 체감했다. 지역주민들이 혜택을 보는 점도 있고, 생활도 이전보다는 많이 편리해졌겠지만 우리는 고운동과 거림계곡의 이전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다. 나는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주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하동에서는 응모를 포기했지만 홍천은 당시 신규 양수발전소 후보지 중 한 곳이다. 농성장을 강제 철거당한 뒤로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알지도 못하고 쪽수가 없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며 산청양수발전소가 건설될 당시 반대운동의 기억을 떠올렸던 ㄷ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언제까지 편리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소중한 것들을 놓쳐야 할까. 코로나19라는 전염병과 기후위기에 대처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불러왔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는 없을까.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개발과 편리함 속에 고통받고 폭력을 당해야 했던 사람과 동물들, 뭇 생명들은 잊히고 우리는 그들과 단절된 채로 살아간다.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결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아닐지 생각해본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연재 되었던 기사의 재수록입니다.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05-0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