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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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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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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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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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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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오늘 기사

  • 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칩코(지리산 방랑단) 사람 다섯과 개 하나가 도로 위를 걷고 있다. 차들은 그들 옆을 지날 때 구경하듯이 조금 속도를 늦춘다. 옷차림새가 비범하다. 어르신들 말을 빌리자면, '머스만줄 알았는데 가스나'거나 '가스난줄 알았는데 머스마'인 외관이다. 빡빡 머리가 둘이라 스님인 것도 같고, 인도나 태국 따위의 어디 외국에서 온 것도 같다. 개는 허스키나 늑대처럼 생겼지만 진도 믹스라고 한다. 말을 걸어보니 지리산 방랑단이라고 소개한다. 무전으로 여행하며, 지리산의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채집한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전여행이라니. 코로나도 말썽인데 얻어먹고 얻어 잔다니. 그런데 어쩐지 볼살들은 통통하다. 의외로 잘 먹고 다니는 모양이다. 얼굴이 햇빛에 그을러서 활짝 웃는 이가 더 하얘보인다. 그 중 한 사람을 조명해보자. 두 빡빡머리 중에 조금 더 머리가 허옇게 밀린 사람이다. 파란색 누더기 바지를 입었다. 가시나무 한번 스쳤다가는 죽 찢어지고 말 정도로 헤졌다. 한번은 구멍을 기우러 어느 집에 실과 바늘을 동냥하러 갔다. 상냥한 주인집 어르신은 바지 꼴을 보시더니, 그냥 새 바지를 한 벌 주셨더랜다. 바지는 거절하고 반짇고리만을 받아든다. 핫핑크색이라서 그랬던가... 휴지 조각 같은 바지를 입고 다녀도 나름의 취향이랄 게 확고하다. 궁상맞은 취향의 주인은 칩코다. 칩코는 헌 옷만으로도 충분하다. 돈 벌 생각도 많지 않다. 칩코는 엄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 집에 친구를 데려갈 때면, 한 가지 꼭 해명을 해주고 마는 것이 있다. 집 현관문에 붙은 종이다. 종이엔 노란빛 오만원권 사진과 함께 "돈은 나와 하나다"라는 다소 노골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친구가 그걸 안봤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중앙에 붙어있다. 약간 부끄럽다. 오해를 여기서 풀자면, 엄마가 그 종이를 붙인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 엄마는 칩코의 마음수련 스승이자 도반이다. 엄마는 칩코가 누군가나 어떤 것을 미워할 때면, 그와 너 자신이 결국 하나임을 알라고 했다. 둘을 분별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마 돈이었다. 엄마는 돈과 친해지기 위해 그런 사진과 문구를 적은 것이었다. 칩코의 현관문이 있다면 무엇을 적었을까? 돈은 아닐 것 같다. 돈에 관심이 없고, 일단 돈으로 사고 싶은 게 없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쿨해보여서 마음에 들기도 하다. 그래서 지리산 방랑단을 선뜻 시작할 수 있었다. 칩코는 평생 돈이 없는 축에 속했지만, 정말 한 푼도 없이 살아 본 적은 처음이다. 방랑은 참으로 멋졌다. 매일 기적같은 인연들을 만났다. 평소에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 볼 식당이나 민박에서 탁발을 받기도 하고, 돈으로 환산할 수 조차 없는 호의를 경험했다. 돈 없이도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하다니! 당최 돈이 왜 그리 새침하고 콧대 높은지 모르겠는 나날들이었다. 자본주의의 숨겨진 빈틈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방랑단들은 사라진 숲 이야기들을 채집하고 다닌다. 함양의 오도재는 대규모 특화 단풍숲을 조성하기 위해 축구장 80개 면적의 숲을 없애버렸다. 남원은 육모정에서 정령치를 지나 달궁까지 이르는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구례에서는 야생의 숲을 빼앗기고 철창에 갇혀 사는 반달가슴곰과 소들을 볼 수 있었다. 방랑단들은 기억산책에서 이 이야기들을 전하며, 많이 울기도 울었다. 우리는 베어진 나무가 되어 보기도 하고, 갇힌 동물이 되어보기도 했다. 칩코는 그러던 중 한 가지 통찰에 이르렀다! 아픈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정이 다 돈, 돈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단풍숲도, 산악열차도, 반달가슴곰과 소들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이 이미 있지만,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서! 칩코는 희한했다. 돈이랑 엮일 일도 없던 사람인데... 칩코가 찾아다니던 이야기들은 죄다 돈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칩코와 돈이 무슨 징한 인연이 있는 것인가. 칩코는 그제야 별 관심도 없던 돈이 밉다. 칩코는 엄마의 현관문에 붙은 종이를 떠올렸다. 어떤 것이 미워질 때면 그와 나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알라던 엄마의 말. 방랑을 하며 행복했던 이유가 뭐람! 돈을 바라지 않고도, 사람들은 베풀 줄 알았다. 식은 밥 주기가 미안하시다면서, 밥을 새로 지어주던 마음들. 한 데서 어떻게 자느냐며, 빈 방을 청소해 내어주시던 마음들이 있었다. 사랑도 받은 사람이 줄줄 안다고 했던가. 칩코는 분에 넘치는 베품들을 받으면서, 조건없는 베품이란 어떻게 줘야하는 것인지 배웠다. 돈을 미워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뿐! 이는 숲의 방식이기도 했다. 숲에서는 셈할 수 없는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솔향을 품고 멀리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나뭇잎 새로 듬성듬성 쏟아지는 햇살줄기, 고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 이 모든 것들이 눈부신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저 내어줘 본 사람이라면 알았다. 소유란 무용한 것.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을 없애면, 소유는 무용해진다. '내 것'을 내려놓을수록 세상은 더욱 넓어진다. 그래서 소유는 두려움의 다른 말.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두려움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숲은 넓어지고, 다양한 존재들을 품게 된 걸까. 저 멀리 숲 속을 걸어가는 지리산 방랑단이 보인다. 칩코는 숲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숲의 방식으로 방랑할 것. 두려움 없이 더 넓은 세상을 사랑할 것. 아아 숲의 선물들을 정중히 받으려면, 두 손을 언제나 비워둘 것!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1-08-26
  • [8월6일낮1시] 한 걸음 더 행동_ 성삼재․정령치도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한 걸음 더 행동 성삼재․정령치도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으로 가는 첫 걸음! 지리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성삼재․정령치도로는 변해야합니다. 지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역주민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도록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탄소발생을 증가시키는 성삼재, 정령치 주차장은 철거되어야 합니다. - 일시 : 2021년 8월 6일 (금) 낮 1시 - 장소 : 정령치 주차장 생각나누기 행동 성삼재․정령치도로 전환연대 윤주옥 010-4686-6547 / 한승명 010-3936-6080 * 코로나19로 문화제는 취소되지만 행동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8-02
  • 성삼재․정령치도로 전환을 위한 구체적 실천, 이제 시작입니다
    4월 27일 국회 앞 산림비전센터에서는 지리산사람들, 화엄사, 지리산생명연대, 실상사,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등 구례, 남원 등에서 활동하는 기관, 단체 16곳이 참여하여 <성삼재․정령치도로전환연대>(이하 전환연대)를 발족하였습니다. 발족식은 조성천 교무(지리산사람들 대표)의 사회로, 덕문 스님(화엄사 주지), 최세현 대표(지리산생명연대)가 인사말을 하였고, 한승명 처장(지리산생명연대)이 경과보고를 하였습니다. 전환연대는 배성우 회원, 임정숙 회원, 오여주 회원이 낭독한 발족선언문을 통해 ‘기후위기시대, 탈탄소사회로 가는 길에 성삼재․정령치도로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장기적으로 모색함과 함께, 당장의 과제로서, 일반도로인 성삼재․정령치도로를 국립공원도로화하여, 일반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구례와 남원의 주민들이 공동운영하는 친환경 전기버스만 다닐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는 바이다.’라 말하며, ‘이를 위해 모든 개인과 단체, 기관을 만나 이야기하고 협력할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을 사랑하고, 지리산자락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원한다면, 반달가슴곰을 포함한 야생동식물과의 공존을 꿈꾼다면,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탈탄소 사회로 가야한다는 절박함에 동의한다면, 모든 이들이 우리와 함께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라 하였습니다. 발족식 후 진행된 토론회<성삼재․정령치도로의 문제점과 녹색전환 전망>은 오충현 교수(동국대)가 좌장을 맡고, ‘국립공원내 도로 현황과 이후 전망’을 주제로 노윤경 부장(국립공원공단 시설처)과 ‘성삼재.정령치 도로를 둘러싼 논쟁과 전환 제안’을 주제로 윤주옥 대표(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가 발제를 하였습니다. 토론에는 김광일 사무처장(사단법인 녹색교통운동), 신강 이사장(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조우 교수(상지대), 강성구 과장(환경부 자연공원과)이 참여하였고, 남원시와 구례군은 초대는 하였지만 공식 토론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출범식 후 매월 1회 이상 회의를 통하여 이후 활동방향과 목표 등을 논의하고 있는 전환연대는 7월 23일에는 정령치 휴게소에서 퍼포먼스를, 8월 6일에는 성삼재 휴게소에서 캠페인을, 8월 중순이후에는 지역설명회, 간담회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 물어보기 : 윤주옥 010-4686-6547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7-07
  • 지리산국립공원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 계획 중지해야
    <국립공원 대피소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우리의 입장> 지리산국립공원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 계획 중지해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지리산국립공원 세석대피소에 상전이 올라갈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거림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굵은 케이블이 올라간 현장을 목격하였고, 그 케이블은 상전이 아니라 공용기지국 설치를 위한 공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지리산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와 대피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는 지리산, 설악산 등에 총 20곳의 대피소가 있고, 그중 15곳은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이 직영하며, 3곳은 임대, 2곳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립공원 대피소 20곳 중 16곳은 국립공원 용도지구 중 보전의 강도가 가장 높은 자연보존지구에 위치해있으며, 자연보존지구에 설치가능한 공원시설 중 규모가 가장 큰 시설이 대피소이다. 그리고 20곳 중 14곳이 12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있다. 코로나 19로 국립공원 대피소가 폐쇄된 시간, 지리산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를 이용자가 아닌 국립공원과 야생동식물, 사회적 의제인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특히 국립공원 대피소의 에너지원은 어떠한지를 강은미 국회의원의 자료에 기초하여 분석하였다. 국립공원 대피소 중 석유발전을 하는 곳은 장터목대피소, 세석대피소, 치밭목대피소(이상 지리산국립공원), 중청대피소, 소청대피소, 희운각대피소, 양폭발전소(이상 설악산국립공원), 삿갓재대피소 등 8곳이다. 대부분 1400m 이상 자연보존지구,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에 위치한 이 대피소들은 에너지 사용을 이유로 헬기로 석유를 운송한다. 지리산사람들은 환경부와 공단이 다른 어떤 의제에 우선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환경부와 공단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실현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현장에서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립공원 대피소 중 상전이 올라가는 곳은 벽소령대피소, 로터리대피소, 노고단대피소, 피아골대피소, 연하천대피소(이상 지리산국립공원), 수렴동대피소(설악산국립공원), 향적봉대피소(덕유산국립공원), 백운대피소, 도봉대피소(이상 북한산국립공원), 연화봉대피소(소백산국립공원) 등 10곳이다. 석유 발전 대피소만이 아니라, 상전이 올라간 대피소도 국립공원 밖에 있는 석탄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산꼭대기로 올리기 위하여 전선을 공중, 매립 등의 방법으로 설치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상전을 통한 에너지 확보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리산사람들은 공단이 거림~세석구간 공용기지국에서 세석대피소로 상전을 끌어오려고 시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세석대피소 상전 인입은 2017년에도 문제가 됐던 사안이며, 당시에도 사회적 합의를 진행하지 못해 폐기된 사안이다. 탄소중립이 가장 절실한 지금, 국립공원 대피소로의 상전 인입은 더 이상 거론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지리산사람들은 환경부와 공단이 국립공원 대피소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에너지원이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되도록, 국립공원 대피소의 기능과 운영, 에너지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진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21년 7월 7일, 소서에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1-07-07
  • 절망을 말하는 우리
    감자 (지리산필름 대표)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선배들의 안내에 따라 서울에 갔던 나는 그 곳에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고향에 돌아와 살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리산에 와서 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의 터전이 수몰된다는 소식을 듣고 억울한 마음에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도, 지금처럼 살면 지구의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하는데 10년 남짓 남았고 그 후에는 더이상 돌이킬 방법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말하자면 앞으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7.5년 남짓 남았다. 3월 17일, 오랜만에 천왕봉 등반을 위해 중산리로 향했다. 관광객들과 물동량을 늘리기 위해 4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인 19번 국도에서는 많은 벚꽃나무가 잘려 나갔다. 남은 벚나무들에서 예년보다 2주나 빠르게 벚꽃이 터지고 있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샴푸는 왜 쓰고 디젤 차는 왜 타냐’는 질문은 이제 환경운동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비판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동에서 서울까지 4시간이면 갈 수 있고, 2시간이면 지리산을 둘러볼 수 있는 지리산 산악열차를 놓겠다는 계획마저 등장했다. 교통이 빨라진 탓에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빠르게 번졌다. 농산물 가격은 폭등하고 돈이 있어도 마트에 식료품이 없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장면이 세계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갑작스런 한파에 미국의 텍사스 지역에서는 전기공급이 끊기기에 이르렀다. 민영화된 전기공급회사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난방설비를 폐기한 까닭이었다.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이 암에 걸려 죽어나가고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이 유출되어도 전기 공급은 멈출 수가 없다. 수십 년 된 벚꽃나무가 잘려 나가고 이름 모를 생명들이 죽어나가도 도로 확장은 계속 되어야 하고,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비롯한 산악 개발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먹고 살기 위해서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는 숭고하기 때문이다. “산악열차는 이념이다, 인민군과 국방군의 차이와 같다” 남원의 모 시의원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불편하지만 성찰의 지점이 있다. 국내에서 추진한 모노레일사업은 수익성이 알려진 바 없고, 케이블카 사업 역시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바 미미하다. 알프스하동 프로젝트의 시공업체로 선정된 대림건설에서 ‘사업성 저하로 사업추진이 불가하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이념논쟁이라면 국내 산악관광 개발사업 추진은 환경문제와 경제성, 주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과 합리성이 배제된 가치관과 믿음에 대한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념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겁탈할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했던 해방공간의 지리산이 떠오른다. 기후위기와 펜데믹이 덮친 지구에 인민군과 국방군, 인간과 동물,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로 나뉜 것들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기후위기와 펜더믹 조차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나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이념논쟁일까. 하동알프스프로젝트 추진위원회와 하동군수는 산악열차를 비롯한 지역의 관광산업 활성화만이 지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고, 지금이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리산권 뿐 아니라 전국의 인구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지역이 소멸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역의 청년들이 사라지고 인구가 소멸하는 이유는 지역에 산업단지와 대규모 관광 랜드마크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무시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무리하게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벚꽃나무들을 베고 도로를 확장하고, 강을 파헤쳐 돈으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고 돈으로만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돈으로 계산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대규모 토목건축 개발사업만이 우리의 꿈과 희망이라고 우기고 있다. 지역에 공항과 KTX와 같은 교통시설을 건설하는 일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지역에 관광개발을 한다고 해서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 관광객이 빠르게 지리산에 오고 갈 수 있다면 그 지역 안에서의 숙식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 청년들이 일용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시골에 살 이유가 없다. 빈집이 넘쳐나지만 도시 사람들의 세컨하우스 개발사업으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다. 시골에서마저 살만한 집을 구하기 힘들다. 제대로 된 공공병원과 보육시설도 부족하다. 겉으로 청년들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첫째는 얼마, 둘째는 얼마, 셋째는 얼마라는 식으로 신생아마저 가격표를 붙여 돈을 지급하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책임하고 쓸모 없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10여 년 만에 천왕봉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천왕봉에는 데크도 많이 생기고, 지난 수해로 인해 강돌도 많이 들여놨다. 무엇보다 법계사 입구까지 버스도 다닌다. 지리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빨라졌다.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인다면, 지리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지구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시기도 더 빨라질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지역은 이미 자립할 수 없는 상황이고,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구의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성장이나 개발이라는 상상이 가능할까?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땅을 일군다. 자립을 꿈꾼다. 한 줌의 씨앗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다. 역부족이나마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콘크리트 바닥 갈라진 틈 사이로 싹이라도 틔우기 위해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낮 기온이 높았던 탓인지 벚꽃이 더 많이 피었다. 공사장 너머로 활짝 핀 벚꽃은 왠지 쓸쓸하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6-30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숫자의 연대기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19821104를 기억한다. 문화재청은 반달가슴곰을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한다. 19830521을 기억한다. 설악산의 반달가슴곰이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맑은 눈을 뜬 채로 죽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듯한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19960814를 기억한다. 환경부에서는 지리산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음을 발표한다. 20001129를 기억한다. 그동안 흔적과 청문으로 존재가 확인된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MBC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20010908를 기억한다. 지리산국립공원에 반달가슴곰의 안정적 개체군 유지를 위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리산에 없던 곰을 풀어놓았다고 한다.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리산에 사는 곰‘이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10707을 기억한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었다. 20111208을 기억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순환대중교통망 구축을 위한 산악철도 기술개발을 발표하였다. 20130628을 기억한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산400 외 2필지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다. 78.3과 5315를 기억한다. 78.3ha의 숲에는 5315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863과 121그리고 10을 기억한다. 863그루의 주목, 분비나무, 전나무, 소나무가 ‘보호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중 121그루의 나무가 이식되었다. ‘보호가치가 없는’잡목과 보호가치가 있으나 무게가 10t을 넘어 ‘운반이 곤란한’나무들은 베어졌다. 20140609를 기억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산악관광활성화를 위한 3대 분야 정책건의’를 발표하였다. 20150716을 기억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활용한 강원도 산지관광활성화 방안 세미나’를 열었고, 정부에서는 관광산업육성대책회의를 열고 ‘산악관광진흥구역’ 도입을 논의하고,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산악관광활성화’ 대책을 논의하였다. 20151020을 기억한다. 산악관광진흥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20181217을 기억한다. 정부는 ‘산림휴양관광특구 지정’을 경제정책 방향에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였고, 여기에 하동 알프스프로젝트가 포함되었다. 20190415를 기억한다. 하동군과 ㈜삼호는 알프스하동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20200217을 기억한다. 기획재정부는 혁신성장 정책보고에서 산림휴양관광산업 및 한걸음모델 운영 계획을 발표한다. 20200429를 기억한다. 총리실 주재 제1차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10대 산업분야 규제 혁신 방안 중 관광분야 규제혁신 사업으로 산림휴양관광활성화 정책이 발표되었다. 20200526을 기억한다. 총리실 주재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하동 알프스프로젝트를 산림휴양관광활성화 정책의 시범사업으로 선정하였고, 산림휴양관광진흥법(특별법) 제정 추진을 의결하였다. 20200625를 기억한다. 기획재정부의 산림휴양관광활성화 정책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한걸음모델 1차 회의가 열렸다. 20200709를 기억한다. 하동군은 화개면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준비 없이 형식만 갖추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들어온 것들을 싹 색출해서 쫓가내!(힘을 주고 매우 큰소리를 이야기해야 함)’라는 말이 나왔다. 주민갈등은 시작되었다. 20200710을 기억한다. 하동군은 고성과 욕설이 오간 화개면 주민설명회에 이어 악양면 주민설명회를 강행하였고, 역시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주민갈등은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20200815를 기억한다. 사천남해하동을 지역구로 하는 하영제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나는 나설 수 없다. 내가 군수에게 갈 수는 없다. 내가 군수를 오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군수를 존중하고, 군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수가 와서 나에게 설명할 때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군수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이 사안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20200820을 기억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산림휴양관광활성화 정책의 시범사업을 위한 한걸음모델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되었다. 20201029를 기억한다. 기획재정부는 사업대상지 현장답사를 포함한 한걸음모델 5차 회의를 열었다. 하동군청의 정의에 따르자면 ’극소수의 현지인이 아닌 지역주민‘들로 지칭된 사람들은 형제봉 정상에서 한걸음모델 위원들의 방문을 기다렸다. 이를 눈치 챈 하동군청 관광진흥과 과장(답사지원 1호 스타렉스 운전자)은 급히 차를 돌려 다른 현장부터 답사하였다. 그들이 급하게 차를 돌려 찾은 답사 현장에는 군청의 연락을 받고 한걸음모델 위원들을 환영하기 위해 수십 명의 ’대부분의 현지인으로 구성된 지역주민‘들이, 또다시 하동군청의 말을 따르자면 ’우연히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20201119을 기억한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한걸음모델을 규탄하는 농성에 돌입하였다. 하동군청 앞에서도 무기한 일인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20201127을 기억한다. 11명의 국회의원과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그리고 한국환경회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지리산을 지켜준 국회의원 11명의 이름도 기억한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고용진/기동민/김경협/박홍근/우원식/용혜인/장혜영/홍익표 의원 그리고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강은미/양이원영/윤미향 의원. 20201211을 기억한다. 기획재정부는 한걸음모델 논의결과를 발표하였다.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함‘이라는 결론을 발표하였다. 20201216을 기억한다. 형제봉에서, 그것도 사업대상지 內에서 반달가슴곰 한 쌍이 촬영되었었다(20200726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그 반달가슴곰은 오늘 MBC 뉴스데스크에서 그 사실을 알렸다. 20201219을 기억한다. 하동군은 ’형제봉에서 촬영된 반달가슴곰‘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하동 알프스프로젝트는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201219를 다시 기억한다.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은 겨울잠에 들어갔다. 도토리가 제법 풍성했던 올가을을 떠올리면 20200726에 촬영된 그 암컷 반달가슴곰의 뱃속에는 새끼곰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이 ’어미‘의 삶보다 나아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희망하는 ’발전‘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6-30
  •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
    박남준 (시인) 바다가 바다인 것은 바닥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강물을 품어주기 때문이네 산이 산인 것은 지리산이 지리산인 것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네 변치않는다는 것이지 돌 속에서 돌을 꺼내 돌의 자리에 세우고 나무 속에서 나무를 꺼내 나무로 자라게 했기때문이네 제자리에 있어야 하네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반달가슴곰은 반달가슴곰의 자리에 있어야 하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산자락마다 깨알처럼 모여 사는 마을과 마을을 능선과 능선 너머 푸르고 푸른 첩첩의 산 능선을 그리하여 사랑의 처음처럼 거기 서 있는 지리산을 그 곁을 따라 그대와 나의 마른 꿈을 적시며 골짜기마다 풀어놓은 논과 밭을 키우고 흐르는 섬진강을 정녕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산을 향해 걸어가지 않으면 산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을 수 없다네 나무를 죽여 길을 낸 모노레일을 타고는 쇠말뚝을 박고 바벨의 철탑을 올려 산을 정복하려는 케이블카를 타고는 탐욕과 쓰레기 같은 망상으로 능선을 파헤치고 산사태를 일으키며 달리는 산악열차를 타고는 고요한 풍경이 내게 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리도 영혼에 들려오는 그 빛나는 시간 앞에 마주서서 귀 기울일 수도 없네 무릎 꿇을 수 없다네 품 안을 내어주며 지친 걸음들 쉬게 하는 바위에 앉아보지 않고는 돌 속의 돌, 돌 안에 누워있으나 그대의 내면에 교감하여 일어나오는 그대의 모습 꺼내어 보거나 만져 볼 수도 없을 것이네 작은 땀방울이 없이는 길 끝과 다시 또 길의 시작에 펼쳐지는 산과 산, 제자리를 잃지 않고 서 있는 산과 산, 산속의 산, 산 밖의 산, 산 너머의 산을, 지리산 너에게로 가는 설레임이 푸른 길 햇살 속 생명은 꿈틀거린다 손짓한다 춤 춘다 너는 물들이고 나는 노래하네 세상의 어느 산 저 하늘 어디쯤에서든 나는 말 없는 손을 들어 지리산을 가리킬 것이다 저 산으로부터 와서 저 산으로 간다네 내 안의 바로 너 너에게로 가는 한걸음이 너를 지켜내며 함께 가는 또 한걸음이 내딛는 세상의 모든 시작이기를 나누는 사랑이기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6-30
  • 지리산산악열차를 바라보는 아이들 아빠의 시선
    조정수 (악양에 사는 세 아이 아빠. 10년째 초보 농사꾼) 7살 아이의 꿈이 공룡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맨날 공룡책을 본 끝에 그 어려운 이름을 척척 - 사실 그게 맞는지 전 모릅니다 - 말하게 되었으니 꿈이 공룡학자라고 해서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얼마전부터는 동물책을 파듯이 보고나서 그냥 독수리 하면 될 것을 흰머리수리니 검독수리니 뭔가 세부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꼭 동물학자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온갖 곤충이름을 외우고 식물이름을 오물거리니 저는 아, 생태학자가 꿈이구나 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자기 누나들이 비슷해서 맨날 무슨 꽃이름, 풀이름을 외우고 나가서 그 풀을 꺾어오고 무언갈 조물조물 만들어 머리에 꼽고, 유리컵에 담아 오던 것에서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만 자기는 식물로는 누나들을 이길 수 없으니까 여자애들은 보통 관심 밖인 공룡쪽에서 우위를 점해 보겠단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뭐 어쨌든 저는 그 노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는 편입니다. 집안에 풀씨를 흩뿌려 놓아도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이 뒹굴러도 그냥 웃고 맙니다. 아이들이 유식한 말로 자연놀이를 하게 된 건 사는 데가 그런데라 그렇습니다. 하동, 악양. 눈을 들면 산이고 눈을 깔면 들입니다. 밖으로 통하는 길은 섬진강 19번 도로밖에 없습니다. 그런 곳입니다. 골짝골짝 시골은 아니지만 앞 산이 천 미터 뒷 산이 구백 미터니 자연 속에 푹 파묻히기론 골짝골짝골짝입니다. 섬진강에서 피어난 구름안개가 넘실넘실 산허리를 감다가 형제봉 위로 사르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자연이 참 멋지고 아름답다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낮에 넘실대는 구름에 감탄했다면 밤엔 그저 깜깜한 공간감에 감탄합니다. 밤은 이래야 맛이지. 하늘인지 산인지 경계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무경계 안에서 곰도 살고, 노루도 살고, 삵도 살고, 날다람쥐도 살거라 생각하니 여기가 참 자비로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수원을 일군다고 산중턱까지 올라갔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발치입니다. 위쪽에 남아있는 평화로운 공간 덕에 악양이 여백있어 보이고 복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백이 모두에게 복스럽게 보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군수는 그 여백을 개발의 여지로 본 듯 합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산악관광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는 전경련 보고서가 그에게 바이블로 다가간 것이 아닐까. 마치 카피라도 한 듯, 전경련식 산악관광 모델을 실현시키기 위해 국립공원 구역을 한 발짝 비낀 바깥을 도려내어 개발하는 것을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이고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산 정상부근에 민간자본의 힘을 빌어 15만평을 밀어내어 열차길을 내고, 호텔과 미술관과 정거장을 만들어 하동의 100년 먹거리로 삼겠다는 게 그 줄거리입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속으로 노하고 겉으로 비웃었습니다. 헐. 100년 미래를 꿈꾸다니 세상이 어찌 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 수 있는 그 무심함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자연은 뒷전이 되고, 돈과 오락이 남는 형제봉이 될 테지요. 결국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척 제 멋대로 지구를 망쳐왔던 과거의 잘못을 다시 이곳에서 반복하는 셈이 됩니다. 지리산은 보루라 이곳이 무너지면 다른 산도 삽시간 돈과 오락만 남는 곳이 될 것이란 불안에 휩싸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리되도록 두어선 안되겠다 다짐합니다. 아이들에게 남겨져야 할 것은 돈과 오락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자연이 100년 미래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길 바라며 2020년 9월 9일. 기도합니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6-30
  • 지리산 형제봉, 반달가슴곰이 좋아합니다
    윤주옥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이사) 기획재정부의 ‘지리산 산악열차 계획’(기획재정부와 하동군은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라 부름)으로 주목 받고 있는 지리산 형제봉(악양)과 반달가슴곰. 반달가슴곰들은 언제부터 이곳(지리산 형제봉)을 좋아했을까요? 1996년에서 1997년까지 야생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찾아 지리산 곳곳을 다닌 우두성 이사장(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마이타 소장(일본 반달가슴곰연구소)은 형제봉 일대, 특히 산악열차가 통과하는 것으로 계획된 ‘원강재’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다수 발견하였습니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대상지입니다. 붉은 선은 산악열차, 파란 선은 케이블카, 초록 선은 모노레일이며, 세 개의 선이 만나는 곳이 정류장(현재 형제봉 활공장)이고, 검은 색 원이 그려진 곳이 원강재입니다. (정태준 도면작업) 우두성 이사장이 제공한 사진을 보면 1997년 9월 30일, 원강재에서 2~3일 전에 나무를 할퀸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발견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제봉 일대는 반달가슴곰의 삶터입니다. 1997년 9월 30일 원강재에서 발견한 반달가슴곰 흔적 (우두성 이사장 제공) 1996년, 1997년 당시, 화개, 악양, 청암지역 탐문 후 작성한 현장노트 (우두성 이사장 제공)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1-06-30
  • 형제봉 반달곰 프로젝트를 위하여
    최지한 (지리산산악열차대책위 집행위원장) 1. 글을 요청받고, ‘지리산人’에 지리산 연대기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잠시 고민을 했다. 고민이란 것은 이렇다. 하나는 국립공원 5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책에 이미 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전지구적인 기후변화 문제이다. 소식지에 실리게 될 이 글이 인쇄와 배포에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습관적으로 ‘기후문제’를 입에 올리면서 대량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평소 지역 곳곳에 수십 부씩 배포되지만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고 버려지던 모습을 보며 ‘과연 저렇게 계속 찍어대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더욱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2. ‘무릇 진보란 그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J.Nestroy, 피보호자 중에서 마을회관에 가면 ‘행복마을 콘테스트’ 우승 깃발과 상장이 걸려 있다. 그리고 상장의 하단부에는 다음과 같은 직책과 이름이 적혀져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 지난 2017년 겨울,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긴 공방 끝에 들려온 헌법재판관의 판결 선고와 함께 봄은 찾아왔고, 세상이 바뀔 거라는 기대감에 들뜬 사람들도 많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지지하던 대통령의 탄핵 소식에 절망했을런지도 모른다. 항상 오는 봄이지만 특별하고 새로운 것만 같은 봄이 찾아왔고, 대통령 선거를 거쳐 ‘통합과 공존’,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국정운영의 기치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노후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지, 남북정상회담,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격적인 정책으로 추위와 맞서가며 촛불을 들었던 우리들의 바램이 실현되고 많은 문제들의 실마리가 풀려가는 듯 하였다. 국민들은 뜨거운 지지로 화답하였고, 정부와 여당은 압도적인 지지율을 등에 업고 기나긴 세월 동안 적체되어 있던 폐단들을 하나 둘 해결해 나가는 듯 보였다.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 듯한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체불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코로나19’로 불리는 병원체는 우리 사회와 전세계가 바로 직전까지 믿고 따르던 시스템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국경은 폐쇄되었고 경제는 마비되고 전염의 가능성을 근거로 사람들 사이에는 벽이 놓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투명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극단적인 감염 사태가 지나자 우리에게는 경제 문제가 닥쳐왔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규제혁파를 통한 경제 활성화였고 그중에 하나가 관광산업 분야의 산지규제 특례 마련을 통한 ‘산림휴양관광진흥’이었다. 지난 봄 나에게 다가온 ‘진보’는 무엇이었을까? 3. 4대강 사업과 산림휴양관광진흥구역법 그리고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산림휴양관광진흥구역법 제정을 통한 산악관광활성화 대책을 접하고 난 뒤 불현듯 떠오른 4대강 사업의 모습들. 강을 정비하고 일자리 창출로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나라 곳곳의 하천에 가해졌던 그 폭력의 손길들. 습지와 모래톱을 끊임없이 뭉개고 파내던 수많은 굴삭기들이 이제 산으로 오른다. 산림보호법와 산지관리법으로 겨우 지켜지던 그 숲들이 이제 곧 사라진다. 더군다나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심지어 지금 사는 마을 근처에 정류장이 들어선다. 그리고 해발 1100m 형제봉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기찻길이 놓인다. 형제봉이 자리한 지리산 남부능선을 경계로 마주하는 화개 쌍계사에는 화개 쪽 정류장이 들어선다. 그 둘은 형제봉 정상에서 만나고 그곳에는 관광객이 머물 호텔이 들어선다. 누구의 상상일까, 상상미술관도 들어선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데 여기서 삼성궁을 향해 기찻길이 놓인다. 국립공원 구역을 피해서 7부능선을 훑고 구불구불 삼성궁을 향하여... 산악열차 15km, 모노레일 5.8km. 이게 제정신인가.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곳 하동에서 벌어질 일은 시범사업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산에도 얼마든지 열차가 오르고 호텔이 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니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글이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누군가에게 읽혀질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고 있다. 사진. 하동군수가 설치한 형제봉활공장 비행안내판에는 이곳이 반달가슴곰 서식지라 적혀있다 4. 형제봉 반달곰 프로젝트 2015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대관령 일대의 대대적인 개발을 위해 만들어졌던 산악관광진흥 정책이 산림휴양관광진흥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특별법을 제정하여 각종 규제를 풀어준다고 한다. 시범사업의 이름으로 시험대에 오른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발상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을 보면 분명 진보는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것 같다. 지금 하동에서는 산악열차로 대표되는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 사회와 자연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처음 제안한 하동군까지도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 중이다. 우리는 지금 발표된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에는 반대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 이름하여 형제봉 반달곰 프로젝트를 꿈꾼다. 봄이면 정상 아래 북사면 평전을 가득 채우는 박새군락, 능선부 탐방로 주변에 가득 피어나는 철쭉과 노랑제비꽃 그리고 군데군데 군락을 지어 소담한 꽃을 피워내는 산작약 군락지가 숨어 있는 곳. 여름 정상에 서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고, 발아래 짙게 우거진 푸른 숲엔 하늘다람쥐, 담비, 삵, 노루가 뛰어다니는 곳. 가을이면 숲 곳곳에 쓰러진 신갈나무에서 피어나는 온갖 버섯들과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 그리고 옛 원강사지 한구석에서 하얗게 빛나는 주춧돌과 일주문의 초석이 있는 곳. 겨울이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반달가슴곰이 찾아오는 곳. 그리고 그 형제봉에 기대 마실 물과 각종 산나물을 얻고, 위안을 받는 산아래 사람들. 많은 사람들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새로운 시범사업으로 거듭나길, 그리고 새로 제정될 특별법에 반영되어 사람도 자연도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산림휴양관광진흥법’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선택했던 ‘통합과 공존’의 원칙 그리고 그 다짐을 이젠 정부나 기관이 아닌 우리가 실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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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위기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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