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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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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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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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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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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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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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오늘 기사

  • [12월 12일] 구례군청 앞 아침시위 100일 자축 기자회견
    구례군청 앞 아침시위 100일 자축 기자회견 9월 4일 시작한 아침시위 릴레이가 벌써 100일을 앞두고 있어요. 첫날엔 민소매를 입던 날씨였는데 어느새 롱패딩을 껴입는 날씨가 되었답니다. 100일간 거의 매일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도 계시고, 소중한 하루를 채워주신 분들도 계셔요. 가능한 많은 분들이 오셔서 100일째 되는 날을 기려주셨으면 좋겠어요. ✅12월 12일(화) 구례군청 앞 8:00-9:00 붕어빵 나눠주며 피켓시위 9:00-10:30 몸 녹이며 쉼 10:30-11:00 현수막 퍼포먼스 11:00-11:30 기자회견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12-06
  • [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본색
    [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 본색 지난여름의 긴 장마에 잦은 가을비까지 더해져 올해 지리산의 단풍 농사는 영 시원찮다. 단풍나무류의 단풍은 그 어느 해보다 우중충한 민낯으로 가을을 맞았다. 광합성에 최적화된 초록 잎으로 화장을 하고는 햇빛을 열심히 흡수하던 나무들은 이제 동파 방지를 위해 물길을 닫았고 제 몸속에 지니고 있던 본색을 드러내면서 제 가진 것 하나둘 땅으로 돌려보내면서 긴 월동을 준비한다. 단풍 농사가 흉작인 숲에서도 은행나무가 있어 그나마 지리산의 가을 풍경을 남길 수 있음에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 단풍을 사진으로 남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은행잎들이 노랑으로 물드는 시기가 해마다 다르고 또 어떤 때에는 밤새 불어닥친 강풍에 그 노랗던 잎들이 깡그리 떨어져 허탈해하던 적도 있었다. 사랑이 그렇듯 은행나무 단풍 사진 찍기도 타이밍이 좌우한다는 사실,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올가을 노란 단풍이 절정일 때 제대로 알현한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의 풍채는 여전하셨다. 산청 산천재 앞 도로에서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는 동네 할머니의 출연으로 그 색감이 진하게 담겼다. 은행나무가 살아 있는 화석 나무로 불리듯 노란 가을 단풍으로도 그 긴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또 이어가리라. 은행나무 말고도 이 가을의 끝자락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만난 가을의 본색들을 떠올려 본다. 은행나무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메타세쿼이아의 단풍 색감 또한 찬란하단 표현이 절로 나오는데, 수면에 데칼코마니로 투영되는 한 폭의 수채화를 둘레길이 지나는 산청 내리저수지에서 감상할 수가 있다. 그리고 노고단 가는 길에서 만나는 파스텔톤의 붉은 단풍들을 보면서 바람을 견뎌내는 키 작은 나무들의 지혜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리산의 가을빛은 숲에만 깊어가는 건 아니다. 지리산의 중요한 구성체인 지리산의 강들 또한 가을빛 강물로 유장하게 흐른다. 며칠 전 노을이 질 무렵 성철스님순례길을 걸으며 경호강과 양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서도 노을이 더해져 가을빛이 물씬 묻어있는 강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실상사 공양간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들은 또 다른 가을 색감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떠나는 가을의 흔적이 지리산 도처에 스며 있음을 보면서 언제나 단명인 그 가을의 본색을 필자의 졸시로 남긴다. 가을 본색 / 최세현 초록으로 속마음 숨겨오던 숲 그 숲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풍의 남하 속도 하루 25Km 그 속도로... 하지만 알록달록 그 본색을 다 보여주기엔 너무도 단명인 가을이다 일제히 불타올라 장렬히 소신공양하고 나면 온 숲은 바람으로 뒤척거릴 것이다 사람들아, 부디 경배의 절을 올리시라 이 눈부신 가을날에 제 할 일 다 마치곤 각양각색의 본색을 드러내는 저 숲을 향해서... 600년 세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란 단풍 축제를 이어오고 계신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 남명 선생이 말년을 보내신 산천재 옆 은행나무 가로수, 때마침 그 길을 지나는 동네 할머니의 노란 옷과 길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깔 맞춤이다. 실상사에서 함양 마천 가는 길, 지리제일조망 금대암 들머리에서 은행나무 가로수에 홀려 스쿠터를 세우고 사진 한 컷 남기다. 지리산 둘레길 산청 구간 내리저수지의 메타세쿼이아 단풍, 수면에 투영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바람이 잠잠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건진 데칼코마니 숲이 어떻게 바람을 견디며 적응하고 그 생존을 이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고단 가는 길, 키 작은 나무들의 단풍 색감이 파스텔 풍이었다.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11-27
  • 지금 왜 고농서인가
    지금 왜 고농서인가 이선재(한겨레생명평화농장 이사) 오늘 천하의 일 가운데 하루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곡식이다! 시공을 통틀어 신분의 귀천과 지식의 다과에 관계 없이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농사다! <임원경제지> 지금 왜 고농서인가? 트랙터같은 힘센 기계와 효과 좋은 비료, 농약이 넘치는 이 시대에 고농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눈앞의 현실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 영향의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기후위기가 가져올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인류는 기후위기의 쓰나미를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은 이것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기후위기의 고통은 저 기득권자들이 아니라 대다수 민중, 오랜 세월 피압박의 세월을 견뎌온 저개발 국가의 백성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아 피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위기를 불러온 화석 에너지 문명을 끝내고 지구를 살리는 방법, 미래적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치열한 모색과 성찰의 행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전개되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노력들이고 그러기에 얼핏 보기에 모두 다르게 보이지만 생태주의라는 큰 흐름 안에 있다. 퍼머컬처가 그중 하나이고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가장 탁월한 생태주의 철학이자 방법론이라고 믿는다. 화석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사람의 노동력 역시 적게 사용하면서 효율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원칙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의 그 어떤 이론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듯이 퍼머컬처만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과 다른 동양의 생활방식과 자연환경, 작물의 다름에 기인한 많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세부적인 대안들을 연구하고 현실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퍼머컬처가 농사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기계와 비닐,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고농서가 우리에게 유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전통농업은 이 땅에서 아주 오랜 세월 실천해 온 농사법이다. 옛 선인들은 오늘의 농사꾼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비료와 농약 같은 편리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해 한 해 새롭게 바꾸고 대를 이어 발전시킨 것이 전통농업이고 그것이 고농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완벽할 수 없고 일부 내용은 과학이 발달한 현재의 지식으로 판단했을 때 황당한 경우조차 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들을 고려한다면 전통농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땀과 눈물이 깊이 밴 고농서의 내용은 곱씹을수록 참맛이 우러나는 지혜의 샘이다. 나는 생태적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고농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1-26
  •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저는 단 한번도 이 곳에 케이블카가 지어질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은 그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은 그러면 안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카 착공식장 안으로 고급 자동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미 슬퍼지고 있었다. 눈앞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바위와 아마 그 곳에서 부지런히 겨울나기를 준비할 야생동물들을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바위가 많은 설악산 사람은 산을 닮아 꿋꿋하고 우직한가. 이미 오랜시간 싸워왔다는 주민의 말씀이 무너지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맞네. 설악산에 케이블카? 절대 못 오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느새 기세가 등등해졌다. 정부가 바뀌자마자 법과 연구결과를 전부 부정하고, 말을 싹 바꿔버리는 저 사람들은 사실 내보일게 없어서 저렇게 비싼 옷과 차와 경호원으로 제 자신을 두르고 착공식장에 들어가는구나. 어떻게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하냐고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시공사도 안 정해진 2시간짜리 착공식에 3억원을 편성하고, 전체 사업비 1172억원(이게 도대체 얼마여..)을 마련하려고 양양군은 위급상황에 쓰여야할 ‘지방안정화기금’까지 끌어다 쓰겠다고 한다.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나는 지리산에서 기쁨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배웠다. 산에 피는 꽃이 달라지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낮에 햇볕을 쬐고, 노을 물든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탈 때, 둘레길 계곡물을 만두(강아지)가 찹찹거리며 마시면 나도 옆에 앉아 얼굴 씻을 때, 우연히 푸른 논밭을 바람처럼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때, 또 우연히 만난 이웃이 자기네 감을 그냥 쥐어줄 때, 그 감을 깎아 만든 곶감이 처마 밑에서 말라가는 걸 보며 나는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할 때, 반려인이 불피운 구들방 아랫목에 나란히 몸 뉘여 잠들 때. 기쁨과 행복은 오직 감사와 사랑에서 온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면 욕심 부릴 수 없다. 산에 바위가 이끼가 도토리나무가 반달곰과 산양이, 수리부엉이와 꿀벌이 오랜시간 지구에서 제 모습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기에 바로 그 케이블카를 타면서 보고 싶은 맑은 풍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유리창으로 둘러막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20분만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그리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아니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빼앗으며 만든 기계 속에서 아무리 즐거워해보려 해도 잠깐의 자극, 그 이상을 느낄 수는 없다. 그 이상의 것들은 이미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을테다. 반짝 관광지였던 곳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쓸쓸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무성한 채 유령도시가 되어있다. 아직 살아있는 나무들과 꽃과 새들만이 그나마 사람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단언컨대 케이블카를 짓고, 운영하고, 타는 이들은 케이블카를 막겠다고 눈물 흘린 이들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변덕은 죽 끓듯 해도 산은 언제나 거기 있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이들만이 설악산을 제 모습 그대로 끝까지 지켜낼테니까. 사진. 수달아빠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3
  • 초록대문집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초록대문집에 산다는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방랑단은 자주 마고할미타령을 하는데.. 뭔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어서 궁금하셨죠? 실은 저도 올해 처음 공부를 해보았습니다.올해 지리산사람들 활동가 깊은강, 윤주옥, 칩코가 마고할미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책자로 펴냈어요. 마고할미설화 유래부터 변천사, 현재 마고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리산권 단체들, 마고할미설화를 담아 재창작한 그림책까지! 마고할미에 대한 정보가 알차게 들어있답니다.책자를 읽어보고 싶으시면 자율보시 후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에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늘 열린 공간이 아니니 오시기 전 연락주세요.) 보시금은 전액 지리산을 지키는 활동에 사용합니다. 후원계좌는 농협301-0214-8860-11(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입니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구례성다양성축제 후원해주신 감사한분들
    구례성다양성축제 아직 끝이 아니에요! 무지개코딱지들은 해마다 축제의 장터수익금 일부와 남은 후원금을 지리산권 개발반대 활동에 기부했는데요! 올해도 축제를 물심양면 후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기부금을 잘 전달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후원금 보내주신 분들 장소영/ 정이어린/ 똥폼/ 우물/ 강혜인/ 조아라/ 국승일/ 느림보/ 새봄여름/ 강효선/ 진명일_백지/ 탱자씨 (이외 칩코차라의 유부어묵탕을 구매해주신 분들????) > 공간과 물품 대여해주신 분들 비온뒤무지개재단/ 서울퀴어문화축제/ 동아시아에코토피아/ 지리산사람들/ 느긋한쌀빵/ 두루다살림장/ 행행행 올해 축제 기부금(총400,000원)은 아래 단체들에 나누어서 전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 지리산사람들 - 새벽이생추어리 사진. 나무(@fishbowl_e )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하편
    -이전 게시글에 이어서 축제 공간을 어디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 축제는 퍼레이드도 인가 없는 논둑길을 걸어왔다. 우리끼리 안전하게 놀기 위함이었다. 무지개코딱지들이 평소 자주 다니는 두루다살림장은 이미 산정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장터를 해왔고, 장터 기획쌤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우리 축제를 환영해주신 분들이셨다. 두루다살림장의 명성에 묻혀서 장터인 척 축제를 해버리자는 게 우리의 얄팍한 꾀였는데, 장터 기획쌤들은 아무래도 이장님께 허락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우린 또 어물쩡 다양성 축제라고 주절댈 심산이기도 했고, 속으론 성다양성축제라고 해도 못 알아들으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장님은 찰떡같이 ‘티비에서 보던 헐벗은 축제’를 알아채셨고, 허락은 하겠지만 마을에서 시끄러운 말이 나오는 게 염려되니 떡이라도 돌리면 어떠냐고 해주셨다. 축제날 마을회관에 무지개떡을 돌린 이유였다. 물론 이장님의 허락도 두루다살림장 쌤들이 아니었다면 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 테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세상 물정을 안 기분이다. 나쁘게 보면 쫄은 거고, 좋게 보면 신중해진 거다. 근데 또 나만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축제 참여자들은 모르는 얼굴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도 우리 축제에는 처음 오셔서 그랬는지 조금은 수줍고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산내 축제에선 공연을 볼 때 무조건 강제 스탠딩석이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서도 람천교가 부서져라 흔들어대는 친구들을 진정시켜 집에 보내는 게 매번 일이었다(실로 퍼레이드 마지막곡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였다.) 구례 축제는 산내의 활기와는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올해 피날레는 퍼레이드가 아닌 강강술래로 했는데, 그게 올해 참여자들 텐션에 딱 맞아 기쁘기도 했다. 강강술래 가락에 맞춰 손잡고 돌다 보면 고요하고 부드럽게 모두 하나가 되었고, 우리만큼 둥글게 차오른 달님을 다들 한동안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을 알고 나니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산내라는 유일무이한 동네도 기적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올해 구례 축제를 도와주던 새로운 이웃들의 다정함도 기적이고, 벽장에서 나와 축제에 놀러와 준 참여자들도 기적이고, 아무 혐오세력 없이 안전하게 축제를 마친 것도 기적이고, 축제날 달이 밝은 것마저 기적이었다. 글이 길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이다. 일일이 헤아리지 못하는 친애하는 존재들이여, 내내 사랑스럽고 퀴어하소서. 나무마고할미불.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상편
    “축제갈 때 마스크 써야 하나 싶었어요.” 이번 축제 참여자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례에서 처음 여는 성다양성축제는 확실히 산내와 달랐다. 애초에 산내 성다양성축제는 우리 놀자고 만든 거였다. 더 많은 퀴어를 만나고 싶다거나,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도 없었다. 산내 축제에선 다 이미 건너건너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놀러 왔다. 또 산내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성다양성 축제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퀴어’란 단어를 모르실까봐 ‘성다양성’이라는 단어로 바꿔 부른 것이었는데, 산내는 대체로 퀴어라고 하면 다 아셨던 것도 같다. 오히려 ‘성다양성축제’라는 이름이 더 낯설어서, 본의 아니게 위장용 이름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구례로 축제 장소를 옮긴 것이 대단한 포부가 생겨서는 아니다. 구례에서 놀거리를 또 찾아야 했을 뿐이다. 다만 어떤 퀴어한 수다를 지껄여도 척하면 척 알아듣던 산내 친구들이 없으니, 더 많은 퀴어 친구를 만나고 싶기는 했다. 지역살이 햇수가 쌓이면서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이면 좋겠다는 소망도 스멀스멀 생겼다. 뭣도 모르던 귀촌 1년 차에는 아예 상상력이 없어서 겁대가리가 없었다. 시골에선 한 명이 어떤 사실을 알면 곧 마을 전체가 다 알게 된다는 것과, 퀴어라고 하면 집주인이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학습한 후, 나랑 애인은 마을 길을 걸을 땐 손을 잡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구례 성다양성축제는 조심성이 많아졌다. 산내라는 다 된 밥상에서 축제를 차리다 보니, 지역 퀴어축제 기획을 너무 물로 본 듯싶다. 나의 집주인은 매우 다정하고 사교적인 기독교인이시다. 환경보호에도 퍽 관심이 있어, 우리가 하는 행사를 요리조리 물으시다 지난 골프장 반대 문화제 땐 놀러 오시기도 했다. 우리가 축제 준비로 정신이 쏙 빠져있자 집주인댁은 무슨 축제냐고 물으셨고, 우린 “다양성 축제요”라고 중요한 단어를 빼먹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셔서 한숨 돌렸는데 다음날 또 오시더니 “근데 뭐가 다양해요?”하고 또 물으셨다. “성...별, 나이, 인종, 뭐든 다양한...”하고 얼버무리니 무릎을 탁 치시며 “아하! 풍습이나 종교도 다양하고요?”라며 해맑게 덧붙이셨다. 나는 급하게 프라이빗 파티인 척 선을 그었고, 그날 우린 집 마당에서 ‘성다양성축제’라고 적힌 대문짝만한 피켓을 칠할 때 집주인이 지나가실까 망을 봐야했다. 또 나는 젊은이들을 너무 납작하게 봐왔다. 내 얕은 경험상, 서울이나 산내나 또래들은 대부분 퀴어거나 앨라이였어서 내 머릿 속엔 ‘젊은이=퀴어축제 짱좋아함’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피어싱을 한 젊은 빡빡이 여성 분과 알게 됐는데 그분은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하셨다고 했다. 나는 또 그분을 납작하게 보고 “담주에 퀴어 축제 놀러오세요!”하며 방방 뛰었는데, 그분은 “퀴어...가 뭐에요?”라고 물으셨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퀴얼... 퀴이얼ㄹ...”하고 몇 차례 다시 발음해주다가 결국 그가 퀴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번 축제 땐 무지개공간을 섭외했는데, 이때도 퀴어를 전혀 모르거나 알지만 정중히 거절했던 몇몇의 젊은 분들에 여러 차례 내심 놀랐다. (물론 내 머릿속 공식을 강화시킨 젊은 퀴어나 앨라이들이 정말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다음 게시글에 이어서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오삼으로부터] 서론부터 좔좔 오열한 칩코의 독후감
    오삼이는 익히 들었다. 그는 지리산에서 태어났으나 거의 한반도 중부이남의 모든 숲을 쏘다닌 전설적인 모험가였다. 오삼이만큼 인가와 도로도 서슴지 않고 넓은 영역을 여행하는 반달가슴곰은 전무후무하다고 했다.주옥쌤과 오삼이의 인연이 끈끈해진 것도 오삼이가 인간이 정해놓은 선 밖을 수시로 넘나든 까닭이었다. 오삼이에겐 어디까지가 당신에게 허락된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인지 보일리 없었고, 지리산은 섬이 아니라 덕유산을 거쳐 설악산과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였다. 오삼이가 상상도 못한 곳에서 발견될 때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야생동물 정책을 관리하는 행정가들은 탁상에 모였다. 주옥쌤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오삼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피켓을 들고 설 수밖에 없었다.올해 <오삼으로부터>책이 나왔다. 책작업이 한창일 때 허무하고도 공교롭게도 오삼이의 죽음이 보도되었다고 했다. 오삼이를 추적하는 발신기 배터리를 교체하려 마취총을 쏘았는데, 오삼이가 몸을 못가누며 이동하다 계곡물에 익사한 채 발견됐다는 전말이었다. 오삼이의 죽음 이후 또 행정가들과 주옥쌤은 비참한 마음으로 탁상에 모여야만 했다.주옥쌤은 수도산에서 잡혀와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에 갇힌 오삼이의 눈빛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누누이 외쳐온 말을 책에서도 말했다. ”2015년 1월 지리산에서 태어나 2023년 6월 경북 상주에서 삶을 마무리한 오삼이는 이 산줄기를 오가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잊힌 야생동물의 길, 끊어진 생명의 길을 연결하라고 말입니다. 반달가슴곰을 인간이 관리하는 동물이 아니라 자연에 사는 야생동물로 여겨달라고 말입니다.“이 책은 앞장부터도 읽을 수 있고 뒷장부터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있다. 앞에서는 주옥쌤이 오삼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리고 뒤에서는 결님이 그린 오삼이의 그림책이 실려서, 가운데서 주옥쌤과 오삼이가 만난다! 현경쌤의 반짝이는 편집실력이 유난히 돋보이는 책이다. 주옥쌤과 결님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11-22
  •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다시! 지리산』 운동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리산 품고 있는 의미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운동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운동, 지리산댐 반대 운동, 그 후로도 지리산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나부터 돌아보고 지리산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하며 이어져온 지리산운동.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 각자의 언어로 모아 우리 시대에 맞는 지리산운동을 찾아가려 합니다. 함께 만나고 함께 걸어갔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지리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삶의 변화 또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목소리로 <지리산선언>을 만들어주세요.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bNa4pF3EkbdQ-IccJBXWhHE7-A5zpB92Y0xyS4NcFYULVQ/viewform 『다시 지리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gainjirisan/223261506146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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