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감자 (지리산필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에 돌아온 것은 201811월이었다. 부모님이 장기 여행을 떠나며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밥을 챙겨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3개월간 불무장등의 단풍이 지는 모습을 홀로 바라보며 안식과 위로를 얻었다. 더 이상 취업과 내집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자란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늙어 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 하동 형제봉 아래 회강골이라는 골짜기에 있다. 20192, 이곳에 양수발전소라는 두 개의 댐을 짓는 사업설명회 일정이 알려졌다. 계획에 따르면 우리 집은 수몰위기에 처해 있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댐 건설 반대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하동의 유치계획은 철회되었다. 이 때 나는 하동의 화력발전소 인근 명덕마을 주민들을 처음 만나게 됐고, 고전면의 돈사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기의 편리함과 육류소비를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신규 발전소 건설과정에서의 주민갈등, 발전소인근 주민들의 암 발병, 무책임한 공장식 축산업의 팽창으로 인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양수발전소 반대활동 이후 지역의 활동가들과 연결되면서 산내에 하무와 상이, 온빛, 상글을 만나고 교류하기 시작했고, 구례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아라도 함께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가 지리산에서 어떤 삶을 기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일본 미야자키 현의 표주박시장에 다녀오면서 우리의 기대는 구체화되었다. 표주박시장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겐고망 가족이 중심이 되어 한 달 동안 전기와 화석연료, 일회용품 없이 살아가는 캠프이자 자급적인 전망을 내놓기 위한 시장이다. 우리는 각자 표주박시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경험들에 관해 이야기 하던 중 하마터면 댐 건설로 잠길 뻔 했던 회강골 계곡에서의 지리산게더링(혹은 캠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리산게더링은 20206월과 7월에는 23일씩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준비워크샵을 진행했다. 첫 번째 워크샵에서는 계곡의 돌과 흙을 이용한 화덕을 만들고, 이 화덕으로 밥을 지어먹고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두 번째 워크샵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퇴비간과 기존에 있던 생태화장실을 리모델링 하는 작업을 함께 했고, 세 번째 워크샵은 919일부터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모일까라는 주제를 놓고 서클을 열면서 본 캠프를 시작했다. 8월 중순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일정과 참가자들을 어떻게 조율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91일부터 101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일정은 미뤄졌고, 공개적인 홍보보다는 친구를 통해 초대장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어떤 시기에는 20명 가까운 사람이 찾아올 때도 있었고, 어느 날에는 한명, 두 명 정도 캠프를 지키는 때도 있었다. 지리산게더링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모임을 추구하고 정해진 규칙이나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초청장에 안내문을 첨부해 우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캠프에는 기본적으로 비건 요리를 해먹는다던지, 성별/장애/연령 등에 기반한 혐오발언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식사당번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계곡에서는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캠프장소의 뒷산인 형제봉에서 산악열차건설 이슈가 생기면서 산악열차반대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산에 떨어진 밤을 주워 밤조림을 해먹기도 했다. 밤마다 모닥불 앞에 모여 생태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계획보다는 나의 몸과, 친구들과, 자연의 흐름 속에 한번 맡겨보는 생활이었다.

현재 지리산게더링의 고민은 크게 다섯 가지인데, 장소의 관리에 관한 문제와 먹거리를 사거나 얻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방법, 불과 전기 등의 에너지를 자립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리산을 기반으로 생태적인 네트워크를 만날 수 있을까, 생태적 실험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까에 대한 고민이다. 사실 지리산게더링의 실험은 아직 초기단계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지만, 해 볼만 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즐겁게 이어나가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캠프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리산게더링이 환경캠페인이라거나 생존캠프라거나 삼시세끼라거나 하는 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는 자연과, 사람과, 내 몸과 조금 더 연결감을 갖고자 하는 실험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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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숲속에서 불편한 실험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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