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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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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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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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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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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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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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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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오늘 기사

  • [춘분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이야기
    디자인.칩코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산달에게> 산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련이에요! 목련님을 닮았다니 입에 바른 말이라도 기쁘네요. 백목련의 겨울눈은 털이 보송보송하고 엄지손가락만큼 커다란데요. 전 그 겨울눈만 봐도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답니다. 구례는 꽃이 셀 수 없이 피었어요. 매화, 살구, 산수유, 명자나무, 생강나무, 히어리, 목련… 며칠 전엔 냉이 좀 캐다 먹으려 했더니 벌써 꽃대가 다 올라온 거 있죠. 저처럼 빈틈투성이 농부는 구례 같이 따뜻한 곳에서 지내면 봄에 눈코 뜰 새가 없어요. 이틀 전은 햇살이 좋아 섬진강 쪽으로 산책을 하다 이웃 할아버지를 만났는데요. 할아버지께서 냅다 “감자도 안심고 어딜 돌아댕겨?”하면서 호통을 치셨어요. 감자 심는 철에 농부식 인사인가 봅니다. 감자를 안심고는 어딜 돌아댕길 수 없는 것이죠. 결국 어제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감자를 심었어요. 제 씨감자들은 작년에 제가 키운 분들인데, 너무 작아서 제 콧구멍에도 들어갈 지경이에요. 올해는 방울토마토보다는 컸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어요. 산달! 제 어릴 적 별명은 똥개였어요. 사실 가족들은 아직도 저를 가끔 똥개라고 부른답니다. 동네 어린 개가 똥을 초코파이인양 야무지게 먹는 것을 보면 절로 탄식이 나오는 제게, 이 별명은 어디가서 말하기 썩 명예롭진 않은데요. 실은 제가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하도 많아, 이웃집 할머니께서 ‘똥개들은 아무거나 먹어도 건강하니 똥개라고 부르면 낫는다’는 특별처방을 내려주신 유래가 있답니다. 그후 마법처럼 잔병이 덜했대요. 어릴 적 전 제가 정말 똥개인 줄 알았던 것도 같아요. 코딱지도 잘 먹고 종이나 흙도 먹으면서 컸어요. 엄마랑 아빠 몰래요. 그러다 어느 봄즈음에 뒷산 너머 마을로 언니랑 놀러갔다가 길을 잃었어요. 그때 제가 글쎄, 냄새로 집을 되찾아왔어요. 아까 이 근처에서 꽃냄새가 났고, 그 다음에 공사장 냄새, 그 다음에 개울가 물비린 냄새… 냄새를 지도 삼아 그걸 거꾸로 셈하면서 되돌아 온거죠. 그날 저녁 언니가 가족들에게 ‘내 동생이 정말로 똥개가 됐다’며 무용담을 늘어놓았어요. 그날만큼 기분이 우쭐했던 적도 없을 거예요. 이번 주제가 ‘잊을 수 없는 향기’에요. 전 이날이 꼭 색이 바랜 필름사진처럼 기억이 나요. 어떤 냄새였는지 선명하진 않은데 괜히 알 것 같은 기분이에요. 요즘도 구례의 봄꽃이 핀 낡은 마을길을 돌면, 꼭 서울 신림동의 그 판자촌으로 돌아가 있어요. 아마 그 판자촌은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재개발이 됐을 법한 동네였으니까요. 2020년도 섬진강 수해 이후, 구례군은 제방을 높인다고 모든 지천마다 벌겋게 파헤쳤어요. 강변을 걸으면 꽃냄새나 개울가 물비린 냄새는 없고 공사장 흙먼지 냄새만 나요. 포크레인을 피해 떠난 물살이들은 저처럼 냄새로 이곳을 기억하다가는 길을 영영 잃을 지도 모르겠어요.그들의 집도 ‘재개발’된 셈이니까요. 제 이야기가 길었어요. 실은 산달이 바쁘고 지친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아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아는 웃긴 얘기라곤 똥이나 코딱지 얘기 뿐인가 봅니다. 다음 번엔 좀 더 세련된 유머를 고민해볼게요. 그렇지만 설사 다음 번에도 또 방구 얘기 따위를 해도 웃어주기로 해요. 저는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제 편지를 읽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한 편지를 썼다는 산달의 답신이 오기를 응원할게요. 지난 경칩편지의 이야기를 아주 소중하게 읽었어요. 누구에게나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외투를 벗기는 건 햇살이라고 믿다가도, 책을 읽고 문득 세상에 실망하고, ‘네가 너라서 좋아’라고 말하기를 연습하는 이야기요. 치열하면서도 애타게, 또 스스로 엄격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기를 실패하지 않은 이야기 말예요. 전 산달이 스스로를 잘 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자신을 알아차리기란 결코 쉽지 않거든요. 산달은 자신을 선명하게 마주하고도 흔들리지 않아보여요. 지난주에 구례 옆동네 하동에서 큰 산불이 났어요. 주민이 집에서 태우고 남은 잿가루를 산에 퇴비삼아 주시던 게 원인이 되었죠. 숲의 존재들이 무사한지 어제 모니터링을 갔는데요. 산불 현장을 가본 것도, 산불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숲엔 그새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지리산은 소나무만 남기고 키 작은 활엽수를 모조리 잘라내는 인공수림이 아니라서 피해가 적었다고 해요. 활엽수는 불에 타지 않는 물기둥과 같아서, 불기둥과 같은 소나무를 작은 물기둥들이 용사처럼 지켜준 거죠. 도리어 낙엽 카펫을 한 차례 걷어낸 셈이라 그 아래 햇빛을 못보던 씨앗들이 새롭게 자라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요. 전 이 다행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달의 이야기가 겹쳐 보였어요. 어떤 순간에 우리는 ‘내가 알던 세상이 완전히 엉터리였군’하고 느끼곤 하잖아요. 모든 걸 과감히 불태워야하는 순간이 오죠. 산달이 하나하나의 죽음을 가슴에 새겼듯이요. 그런데 건강한 숲에서 그런 대소멸이 찾아오면, 도리어 새로운 생태계가 열리는 문이 돼요. 산달이 하나하나의 삶도 가슴에 새긴 것처럼요. 숲 바닥이 온통 잿가루인데도, 재를 살짝 걷어내면 바로 아래 낙엽은 타지도 않은 채였어요. 전문가 분은 숲에 오히려 잿가루 거름을 뿌린 효과일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전 산달의 지난 이야기가 끝내 성벽을 무너뜨리는 나팔소리가 될 거라고 믿어요. 우린 대소멸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기로 해요. 고단한 새벽까지 산달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주어서 고마워요. 꽃샘추위가 반짝 찾아오는 춘분이에요. 산불이 난 다음날, 춘분다운 강한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쳐서 산불을 크게 막아냈죠. 대소멸 속에서도 지구는 절기에 따라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어요. 산달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세요. 햇살을 쐬면서 꽃 같은 하루를 보내는 일이요! 감자 심고 돌아댕기는 덕복희가 <굳건한 믿음으로, 복희에게> 복희, 봄볕 듬뿍 가득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나요? 저는 오늘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연희동의 궁동산을 올랐어요. 이 좋은 날에 앉아만 있자니 몸이 찌뿌둥해서 안 나고는 못 배기겠더라구요. 그래서 무턱대고 길을 헤매다보니 샛노란 개나리님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나리님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서울의 도시 한복판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봄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일부러 꽃을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제게 선뜻 찾아와주었어요. 참 감사했어요. 봄기운에 떠오른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 옛적에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가 있었대요. 그 나무는 자신에게 꽃을 주지 않은 땅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어요. 꽃을 가지지 못한 나무의 슬픔이 온 산에 퍼져 땅에서는 더 이상 어떤 식물도 꽃을 피울 수가 없었대요. 그러니 봄도 오지 않았구요. 오직,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던 작은 옹달샘 속 연꽃만이 피어났어요. 아무도 없는 산에서 홀로 피어난 연꽃은 나무에게 말했어요. “내가 당신의 꽃이 될 테니, 더 이상 땅을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산에 봄을 돌려주세요.” 말을 마치고 연꽃은 자신의 꽃봉오리를 나무에게 모두 주었어요. 자신을 희생해 꽃을 내어준 연꽃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나무는 슬픔을 거두고 연꽃에게 받은 꽃봉오리를 잔뜩 피워내 산에 봄을 돌려주었답니다. 눈치 채셨나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나무 위에 피어난 연꽃, 목련이에요. 목련은 그래서 봄이 오기도 전에 자신이 꽃을 피움으로써 봄을 불러내요. 꽃을 재우고 나서는 다시 연꽃에게 꽃봉오리를 돌려주었는데, 그래서 연꽃은 봄이 다 가고 난 여름에 그제서야 자신의 꽃을 피운답니다. 방금 막 지어내 봤는데 좀 허접하죠? 목련을 가장 좋아한다는 복희에게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지난 편지에서 복희의 웃음 선물을 정말 기쁘게 받았거든요. 보답하고 싶었어요. 아직 얼어붙은 산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려준 목련처럼 복희의 이야기들이 저를 그렇게 깨워내요. 목련을 닮았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랍니다. 복희는 목련 향을 맡아본 적 있나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목련이 한 그루 있었어요. ‘한빛’이라는 이름의 학교였는데요. 2층에 있는 교실에서 내려다보면 만개한 목련의 정수리가 보이기도 하구요. 밤에는 환한 전등이 까만 밤의 학교 가운데에서 목련을 비추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요. 우리는 풀벌레 소리 들리는 봄밤에 하아얀 목련 꽃 아래 벤치에 앉아 새 학기 새 친구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어요.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목련 꽃을 따오라고 해서, 꽃잎 하나하나를 뜯어가면서 문법을 가르쳐주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 새로이 한빛에 온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기 위해 그런 방법을 생각해내셨겠구나 싶어요. 참 특이하죠? 그래서 그런지 제게 한빛의 봄은 목련 향으로 남아있어요. 목련 향이 나기 시작하면, “아, 이제 또 새로이 시작이구나”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그때의 모든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아요. 다만, 그곳에서 처음으로 학교라는 공간이 이렇게 설렘 가득한 공간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껴보았을 뿐이에요. 아, 제 표현력을 탓해야겠어요.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겠네요. 그럼에도 꽃이 피고 걸친 옷에서 사락사락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저는 가끔 그 향기를 맡아요. 그리고는 그때 그 마음으로 오늘이 살아져요. 사실 한빛을 나와서는 그 감각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고, 세상을 다른 렌즈를 통해 바라보다보니 한빛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많은 친구들이 한빛을 ‘애증의 공간’이라고 부르고는 했어요. 저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곳에서 나와버린 저로써는 그곳이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라 답답한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세상의 아주 일부만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게 참 아쉽고,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그 곳을 미워하는 것이 저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곳에서 다투고 서러워하고 웃고 설레면서 자랐거든요.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그 모든 것들이 이미 제 삶 속에 많이 녹아들어 있어요. 그 안에서 우린 충분히 멋지고 또 아름답게 최선을 다했어요. 이따금씩 저의 공동창조자들을 생각해봐요. 가족들,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동물들과 식물들, 흙, 물, 공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나의 동지들. 그것들이 때때로 저를 아프게 했을지라도 저는 그들 틈에서 부대끼며 숨을 들이쉬었던 거죠. 제가 내쉰 숨은 또 누군가에게 들이마실 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이 모든 들숨과 날숨들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정성을 담아보는 것이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스스로를 누구보다 다정하게 사랑해버리는 것을요. 복희,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나를 미워하는 일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그렇다고 세상 밖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는 일은 결국 나를 만들어온 세상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일이에요. 그럼으로써 우리가 변화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어떤 숨은 서로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어떤 숨은 서로를 붙잡아주기도 해요. 서로가 서로를 구해내기도 해요. 얼마 전에 지리산에 들렀어요. 이 산 어딘가에 복희가 살고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밤새 내린 봄비 뒤 찾아온 냉이님과 쑥님을 찾아냈어요. 비릿한 흙 냄새와 냉이 향이 얼마나 향기로웠는지! 봄은 참으로 향기의 계절이에요. 허겁지겁 손에 흙이 잔뜩 묻는 것을 개의치 않고 잔뜩 소쿠리에 담았답니다. 그걸로 냉이밥과 쑥전을 만들어 먹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땅을 밟고 나무가 자라나고 꽃이 터지는 소리를 듣었어요. 복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산에 산다는 것은 쉴 새 없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풀들을 매일매일 반갑게 맞이하는 일이더군요. 저는 그래서 실컷 웃을 수 있었어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미워할 겨를이 없더라구요. 복희,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절기래요. 춘분이 지나고나서부터는 낮이 밤보다 길어져요. 해님이 점점 더 친절해지니 우리는 더욱 부지런해져야겠어요. 해님이 보여주는 그들을 빈틈없이 담아보려면요! 늘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해내는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그러면서 저 자신도 사랑해볼래요. 복희는 잘 웃고 있나요? 씨감자가 앞으로 복희를 얼마나 웃게 할 지 기대돼요. 유머와 애정어린 이야기 듬뿍 전해줘서 고마워요. 제 서툰 이야기가 복희를 웃게 할 수 있기를 늘 바라요.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게 곧 우리 웃음의 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런 믿음이 있다면 삶을 힘차게 뛰어다녀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복희는 제게 그 믿음에 설득력을 부여해줘요. 함께 지금 이 순간의 봄볕을 잘 기억해보자구요. 또 다른 봄을 불러올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요. 봄볕에 취한 산달이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4-06
  • [춘분 편지 : 참새와 돌] 냄새에 무던한 편이지만
    디자인.칩코 <조금 늦은 춘분의 편지, 돌에게> 돌 이번에는 제 편지가 늦었네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깜박이는 커서를 오래 바라보았어요. 천천히 여유롭게 보내도 된다는 말을 전해듣고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돌이 늦는다 하면 저 또한 자연히 그런 마음이 들고, 그런 말을 했을텐데 막상 제 자신한테는 그런 따뜻한 말 건네지 못하고, 편지를 잘 쓰지 못할 것 같단 생각으로 침울해 하고만 있었네요. 잘 쓰지 않아도 되는데 왜 자꾸 스스로 부담을 가질까 다시 자신을 돌아보았어요. 돌의 관대함에 잠시 기대어 쉬고, 다시 가벼워진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고마워요. 돌의 경칩 편지를 보고 너무 얘기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채식에 몰두할 수록, 성공적일수록 일상에서 어떤 존재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횟수는 줄어든다.’는 문장을 보고, 때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어떤 운동이나 실천의 본질을 짚어주는 것 같았거든요. 나는 과연 잘 그러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게 된 문장이었어요. 또 돌은 어떤 어린시절을 보낸 걸까, 저항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다면 평범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호기심도 생겼고요. 부끄러워질만큼 다시 깨달은 것들도 나누어 듣게 되면 나도 부끄러워질까, 그럼 괴로우려나 싶다가도 작은 무너짐을 여러번 쌓아오면서 그것을 다시 여러번의 일으킴으로 바꾸어내는 돌의 따스한 단단함이라면 기꺼이 닮고 싶어질 것 같아요. 지리산 회동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져가요.ㅎㅎ 돌이 편지에서 말한 ‘바람은 차갑게 불어도 햇빛은 따스한’ 그 날씨, 지리산에서도 느끼고 있었지요. 꽃샘추위가 오면 매번 ‘봄은 아직인가?’ 싶다가도 분명 겨울과 달라진 햇살의 따가움을 느낄 때, 그늘진 곳과 해가 비춘 곳의 온도차이를 느끼게 될 때, 해가 온 힘을 다해 봄을 끌고 오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고마워져요. 여기 남쪽은 이제 바람도 따스하게 불어요. 우리 서울에서 만났을 때는 꽃눈을 들여다 보며 나무들을 만났는데 지금은 길 가에 낮게 피어난 풀꽃과 나무에 핀 화려한 꽃들을 보며 반갑게 이름을 불러보고 있네요. 매화꽃과 살구꽃이 어떻게 다른 지를 배우기 위해 꽃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니 꿀벌들의 붕붕 소리가 귓가에 가득 들려왔어요. 보기만 해도 예쁜 꽃, 달콤한 향과 맛까지 나는 걸까, 괜히 코를 가져다 대 보았어요. 그치만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후각에 좀 둔한 것 같아요. 옆에서 누군가가 ‘와 꽃 향기 난다!’하고 감탄할 때도 ‘잘 모르겠는데?’ 속으로 생각해요. 여름날 밤나무 꽃 향기 빼고는 봄의 은은한 꽃 향기를 알아차리는 일이 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향기로 어떤 순간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멋져보여요. 요새 대신 산책을 시켜주고 있는 이웃댁 강아지 ‘만두’는 산책줄을 매는 순간부터 코를 땅에 바짝 대고,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어요. 인간들은 모를 어떤 재밌는 소식이 그 길에 있는 걸까 궁금해요. 첫 번째 편지에 썼던 제 반려고양이 ‘다리’도 누군가 집에 들어오면 총총 걸어와 바짓단과 가방에 코를 한 번씩 갖다 대며 바깥 냄새를 맡아요. 고양이들은 특이한 냄새를 맡으면 입을 살짝 벌린 채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그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좀 웃긴데. 혹시 돌도 알까요?) 그게 냄새를 기억하기 위한 생리적인 반응이라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또 저는 가본 적 없지만 돌이 가보았다는 비질에서도 멈춘 트럭 안 돼지들이 물을 주는 사람들의 손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죠. 그들도 분명히 무언가를 감각하고, 느끼는 동물이라는 것을 손에 닿은 코의 촉감을 통해 실감하게 되어 슬펐다고 비질에 다녀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딘가를, 누군가를, 무언가를 알아가기 위해서 코의 감각에 집중하는 건 꽤 많은 동물들의 본능적인 행위인 것 같아요. 나는 왜 후각을 잘 못 쓸까? 내가 잘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그런 생각을하다가 코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저도 언젠가부터 코를 가져다대고 깊은 숨을 들이쉬게 하는 것들이 생겼다는 걸 기억해냈어요. 저는 제 고양이 ’다리’한테서 나는 입냄새를 좋아해요. 구내염을 앓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저는 그걸 참아주는 걸 넘어서 그 애의 정수리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그 향기를 찾아 맡아요. 강력한 침냄새를 맡고는 제 옆에서 꽃 향기를 먼저 알아차린 친구가 그러했던 것처럼 “으아, ‘다리’ 냄새다!”하고 경탄해요. 말 그대로 잊을 수 없는 향기이자 언젠가는 너무나 그리워질 향기죠. 저에게 있어서 두 눈을 감고 오롯이 향기를 맡는 건 곁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가장 강력한 표현같아요. 그 다음으로 깊이 들이쉬어 본 향기는 ‘비 내린 다음 날 숲’이에요. 지리산에 오고 매일 같이 둘레길을 가야하던 때가 있었어요. 도시에 살았을 땐 맑은 날을 골라서 산에 갔어요. 그치만 이제 사는 곳 자체가 산 속이기도 했고, 일 터가 둘레길을 따라 가야하는 곳이다 보니 날씨 상관없이 매일같이 숲 길을 걸어야 했죠. 비를 잔뜩 맞은 산의 향기와 색감에 완전히 감탄하며 걸었던 기억이 나요. 나무 기둥들은 검은색을 띄고, 그 기둥들 사이마다 짙은 녹색이 빼곡하게 생기를 뿜어 내고요. 그 초록 잎사귀들이 뿜어내는 촉촉한 생명력이 콧속으로 들어오면 나도 따라서 선명해지는 것 같았어요. 편지를 쓰다보니 올해 봄 가뭄이 심해서 하루 빨리 비가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비 냄새를 맡고 싶어요. 비가 많이 그리운가봐요. 돌이 사는 곳에서는 어떻게 봄을 느끼고 있을지, 돌이 감각하는 세상은 어떨지, 잊을 수 없는 향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돌도 얼마든지 천천히 여유롭게 보내어주세요. 짹짹! <춘분의 편지,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늦은 편지에 더 늦은 답장을 보내요. 지난 참새의 춘분 편지는 잘 읽었어요. 향기에 대해 곱씹으며 날들을 보냈었는데,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생동력이 바닥치는 상태가 되어있어요. 늦은 답장에 사과부터 전할게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요 며칠 답장을 쓸 수 없었어요. 향기에 대해 기쁘게 말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근데 더 미룰 수 없겠다 싶고, 무엇보다 편지에서조차 솔직할 수 없다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 펜을 잡아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사연을 나눌게요. 길어질 이야기에 앞서 양해를 구해요. 사실 3월에 들어서면서 나름대로 균형에 맞추고 있다고 생각 중이었어요. 입춘 편지였나요, 참새에게 계절의 힘으로 무거운 고민들을 넘어가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런가봐! 했어요. 시간을 쓰는 것만 보면 바빠지기는 더 바빠졌지만, 저를 구성하는 것이자 하고 싶은 것을 동시에 해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자아에 대한 불안이 진정되었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 균형을 오래 유지해가고 싶다, 기쁘게 바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밖에서 에너지를 쓰고 또 잔뜩 자극받은 채로 집에 돌아오면, 방에 들어가자마자 방바닥에 딱 붙어버렸어요.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이유없이 그렇게 1-2시간, 길어지면 3시간까지 납작 엎드려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요.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등에 올라타 있는 것 같고, 눈은 도착했을 때보다 더 감겨있죠. 좀 전까지 바깥에서 나누던 의지, 열정, 희망, 반짝이는 눈과 마음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떠밀리듯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면, 누울 수 없는 공간들에서 열심히 제 역할을 하고, 그렇게 시동이 걸린 김에 밀린 일도 슬쩍슬쩍 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자!라며 화이팅을 다진 채로 집에 도착하면 다시 또 납작. 그렇게 누워있다보면, 발 끝부터 허리와 어깨, 눈을 거쳐 정수리까지 우울감이 찐득찐득하게 묻어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제 우울과 무기력을 잘 들어주고, 몸 전체를 가득 채우면 그러도록 놔두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이유가 있겠지, 힘들었구나, 나도 나를 알아야지’ 뭐 그런 마음이었지요. 어젯밤에는 더 이상 그러면 안되겠다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른 이유보다도 그렇게 납작하게 멈춘 시간동안 제가 너무 힘들어서요.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무거운 짐이 되는 시간을 더 방치하고 싶지 않았어요. 분명 제가 힘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잘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만, 당장은 이 우울한 시간 자체를 줄이고 없애는 걸 우선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가능한 밖에 오래 있기로 한 것이 오늘의 다짐이에요. 이상한 해결책이고, 돌아돌아 간대도 우선 해볼게요. 덕분에 편지에 답장할 시간을 마련했어요. 응급 처방같은 오늘의 다짐이 무색하게, 괜히 심연의 문제를 건드리나 싶지만 참새의 편지에도 힌트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왜 잘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침울해 하기만 할까’, ‘왜 자꾸 스스로 부담을 가질까’. 지리산방랑단과 참새가 열어준, 넓은 편지지의 공백을 들여다보아요. 다들 저에게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제 삶의 일부를 나누고 함께 연결되길 바라겠지요. 저도 딱 그만큼만 스스로에게 기대할게요. 고마워요. 꽃샘추위로 확 추웠는데, 풀리자마자 금세 봄의 꽃이 만개했어요. 순식간이라 놀라기도 해요. 벌써 봄이 왔구나! 내가 몰라봤구나, 아 올해 좀 빨리 온 건가? 했어요. 오늘은 참새가 그랬다던 것처럼 꽃의 이름도 떠올려봤어요. 개나리, 목련, 벚꽃이 순서대로 활짝 폈더군요!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의 표정!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집의 건물에는 지하부터 지상으로 연결된 주차장이 있는데요, 이 주차장을 터잡고 지낸지 벌써 6년이 된 길고양이가 있어요. 밥은 옆집에서 챙겨주시고, 저는 주로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는 쪽이에요. 아는 얼굴이라는건지 제가 주차장에 들어서면 웨옹~하며 반겨주는데요, 꼭 가까이 와서 신발이든 바지 끝단이든 냄새부터 맡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가까이 가서 손부터 코 가까이에 대고 인사하게 되었어요. 사실 냄새는 잠깐 맡고 주로 부비적대느라 2-30분을 훌쩍 보내게 되는데, 그 사이사이 냄새 맡는 표정이 재밌어요. 음, 그러고보니. 저에게는 고양이의 냄새보다는 만지고 돌아오면 올라오는 알러지 반응이 더 감각적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저는 비염이 있어서 냄새를 기억하는 일 자체가 익숙치 않은 것도 같아요. 놀랍게도 인상적인 기억이 없네요. 흔히들 대표적인 향수 종류나, 향수랑 핸드크림에 자주 쓰는 향의 이름을 대면 떠올리잖아요. 저는 그런 것도 잘 몰라요.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냄새와 향에 무던한 편인 것 같아요. 그런 제 코가 예민해지는 몇 안되는 조건은 먼지예요. 먼지가 많은 곳에 들어가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다른 무엇보다 코가 제일 먼저 알아요. 간지럽고 텁텁하고 답답하고, 오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붓기도 해요. 특히 미세먼지는 냄새도 있어요. 참새도 알까요? 나무가 가득한 지리산에서는 먼지 냄새를 맡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혼자 짐작해봐요. 제 방은 며칠 청소를 안하면 먼지가 굴러다니는 게 보여요. 저는 여름만 제외하곤 털옷을 즐겨입어서, 옷에서 나온 먼지가 많아요. 그러다 이렇게 며칠 내내 세상을 돌아다니는 미세먼지를 보면 괜히 무섭기도 해요. 내 방에서만도 이렇게 매일 만들어지는데, 온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게다가 이게 다 도로 위 타이어와 매연에서, 건설현장과 공장에서, 우리가 쓰는 물건들에서 만들어졌다니. 자연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인간은 뭘 얼마나 만들어내고 있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흘러가는 사고대로 생각하기를 경계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활짝 핀 꽃 너머로 회색빛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들더라고요. 정말 도시 사람 같네요 하하. 꽃이 활짝 핀 봄에 ‘잊을 수 없는 향기’를 물었는데, 대답이 도시의 미세먼지 냄새라니. 그렇지만 익숙하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흙내음이 가득한 공간이 되고, 곁에 피어난 꽃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게 쉬워지고, 주유소의 석유 냄새보다 비료의 텁텁하고 깊은 냄새가 익숙한 감각을 나눌 날을 그려봐요. 많은 시간이 쌓여야 하지만 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만 해도 작년보다 올해 더 가까워졌는 걸요. 지리산을 마음 한 켠에 품었으니 말이죠. 벌써 3월이 끝나가요. 아픈 봄, 4월이 오고 있네요. 잘 살아내고 싶어요. 방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멈춰있지 말고, 굴러볼게요. 저는 돌이니까요. 굴러야 제 자리에서 저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곁으로 갈 수 있겠죠. 같이 살기는 곁으로 가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참새 덕분에 천천히 숨을 골랐어요. 참새에게도 긴장과 부담보다 회복과 돌아봄의 편지일 수 있길 바래요. 4월에 만나요! 데구르르 특히 더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돌이. 2023년 3월 29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4-03
  • [4월14일] 414기후정의파업 지리산파업단 모집
    <414기후정의파업 지리산파업단 모집> 2023년 4월, 함께 살기 위해 멈춰! 4월 14일 기후정의파업에 함께 갈 ‘지리산파업단’을 모집합니다. - 지리산파업단 신청 링크 : https://forms.gle/4HMe23bD6zyy3aB67 ※ 수요파악을 위해 파업단에 함께 하는 분들은 참가신청해주세요! - 일시 : 4월 14일 (금) - 장소 : 지리산에서 세종정부청사까지 - 모집인원 : 선착순 40명(45인승 버스 1대) - 집합 장소&시간 10:00 구례 섬진아트홀 (구례군 구례읍 구례로 508) 10:30 남원의료원 옆 주차장 (남원시 월락동 251) - 참여 방법 : 신청 양식 작성하고 지리산사람들 계좌로 참가비 입금하면 신청 완료. 4월 14일 아침, 버스 탑승 장소로 시간 맞게 도착. - 참가비 : 1인 2만원 - 참가비 입금계좌 : 농협 301-0214-8860-11 (예금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 - 문의 : 010-2956-8115 <기후정의행진 추진위원 모집> 파업단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보태고 싶으신 분들은 3,000인 추진위원이 되어주세요! - 참여링크 : http://m.site.naver.com/16dhl - 주최 : 414기후정의파업.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준)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04-01
  • [춘분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저는 제 땀냄새가 좋아요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잘지내셨나요? 어제까지였는데 조금 늦어서 미안해요... 기다려줬을 갈토를 생각하면서 빨리 쓰려고 애썼는데 이동이 많았던 이번주는 노트북이랑은 다르게 폰으로 적어야했어서 더 감 잡기가... 어려웠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갈토의 이야기를 듣고 초심을 만들지 않는것도 참 좋은 방법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모습을 그대로 인정해버리는 것! 저도 친구를 여럿 사귀는 걸 좋아해서 모든 관계에 애썼지만, 결국 소수의 소중한 이들만 곁에 남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엔 에너지를 많이 쏟지 않는 편이 되었어요. 그래서 진지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진지함이 있는 관계가 깊이를 만드는 것 같거든요! 저는 지금 구례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한달에 한번씩은 방랑단을 포함한 친구들이나 지리산이 보고 싶어서 내려와요. 2020년 때 처음 지리산살이를 했었는데요. 그 이후부터 이곳에 주기적으로 오지 않으면 향수병에 걸린 듯이 그립더라구요. 아무래도 도시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 때문인것 같아요. 이맘때즈음 나는 냉이향기, 쑥향기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참 설레요. 그 설렘과 지리산의 상쾌한 공기를 담아 편지 써 볼게요. 도시에서는 자동차 매연 냄새나 앞사람이 길 가면서 피는 담배 냄새, 음식점 먹거리 냄새가 주로 나서 그런지역시 자연의 냄새를 맡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심지어 도시에서 살다보면 버스를 놓칠까봐 죽어라 뛰는 날이 많았는데요. 특히 여름철에는 땀이 더 많이나서 몸이 땀범벅에 냄새까지 날까봐 스트레스를 더 받고는 했어요. 도시에서는 제 땀냄새마저 싫어지게 되나봐요. 반면 지리산에서는 땀이 좋아져요. 상쾌한 공기 냄새, 풀냄새, 흙냄새가 산책하다 보면 여기 있다는게 행복해서 방과후 신나게 집가는 아이처럼 걷게 되요. 땀이 줄줄 나도 노폐물이 빠져나가서 좋다까지 생각해요. ㅋㅋ 무엇보다 누구도 저를 더럽게(?)보지 않는 느낌을 받아요. 방랑단때도 기억나는 게, 햇볕이 쨍쨍할 때 걷다보면 1분도 못채우고 줄줄줄 땀이 나더라고요. 바로 그 근처계곡에 몸을 담그고 놉니다. 그럼 땀에게 고마워져요. 그냥 물놀이를 하는 것 보다 땀을 내고 씻을 때 훨씬 개운하고 행복해요. 그래서 제겐 땀냄새가 곧 물놀이 하는 시간으로 연결이 되어 땀냄새도 하나의 체취처럼 받아들여져요. 아무래도 도시와 시골의 인식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평상옷을 입은채보다는 운동복을 입고땀을 흘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잖아요. 도시에서는 똥오줌 더럽게 보듯이 땀도 부정적 인식이 되는 것같네요. 제 땀냄새 이야기가 길었네요... 갈토도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아님 다른 향기가 있나요? 날씨가 참 건조하니 감기 조심하시구요! 느긋한 마음으로 개화를 기다리듯이 갈토의 편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편지가 늦게 도착한지 몰랐어요. 저는 요새 일도 바빠지고, 이사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엄청 없다기 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없네요. 이렇게 바쁘게 안 살려고 한 것 같은데 고새 또 이렇게 여유가 없어지니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나는 노래도 틀어보고 있지만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소설 듣기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시간이에요. 최근에는 '지구 끝의 온실'을 다 듣고, '재능의 불시착'을 듣고 있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은 유우야도 좋아할 것 같아요.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초록이 가득한 곳에서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번 주제가 '잊을 수 없는 향기'네요. 여러 이미지가 생각이 나는데요. 우선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에게 나던 향이에요. 만날 때 가끔 나는 냄새가 좋았는데 로션 냄새라고 하더라고요. 헤어지고 나서 그 냄새가 화이트 머스크라는 걸 알았어요. 로즈향이랑 좀 비슷한 느낌인데, 이 냄새를 우연히 맡게 되면 그 사람이 생각나곤 했어요. 저는 냄새로 그 사람을 좀 기억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지금까지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네 집에 가면 항상 나는 냄새가 있었거든요. 딱 그 집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 막 좋다기 보다는 그 집에 가면 늘 편안했거든요. 친구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그 친구네 집에 가면 누워서 놀고 자고 오고. 그런 추억 때문인지 그 냄새는 편안함으로 기억돼요. 제가 예전에 박물관에서 일할 때 발굴조사에 잠시 참여한 적이 있어요. 발굴조사 초기 단계에는 산 전체가 아니라 유적이 있을 수 있는 일부 구역을 먼저 조사를 하고 무언가 발견하면 구역을 넓히는데요. 마침 제가 간 날 포크레인 작업이 있었는데 포크레인이 흙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땅에서 확 올라오는 냄새가 있어요. 땅 속의 나무와 식물 뿌리가 뒤엉켜 올라오면서 흙의 신선함과 잘려나간 뿌리들에서 나오는 냄새였어요. 그 냄새와 장면에 충격을 받았던 게 잊혀지지 않아요. 숲을 산책할 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거든요. 숲을 파헤쳐야 맡을 수 있는 생명의 냄새거든요. 발굴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무사 안녕을 기원하면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요, 그 장면을 보면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이렇게 흙을 파내는데 토지신이 노여워하지 않길 바라는 인간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 거름이 되어 땅속 생명체들에게 든든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던 땅의 기운, 에너지가 냄새와 함께 공중에 흩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위대한 흙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생태계를 만들겠지만, 한 꺼번에 거대한 양의 흙을 파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 시키면, 그 흙 속에 유기체들이 오랜 시간 자기들이 만들어 둔 공간이 한 순간 사라지는 거잖아요. 포크레인 작업이 많지는 않지만 여튼 그 때 자연이 개발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어요. 단기 알바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발굴과정은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환경에 대한 관점이 생긴 지금 그 때 일을 돌아보면 여러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나름 서울 근교의 경기도였고 한창 개발 바람이 불던 때라 여기 저기 발굴조사하고 유적지가 아니면 마구 짓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그곳은 개발되어야만 하는 곳이었을까란 생각은 그 후 한 참이 흘러 들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거대하게 뻗어나갔네요. 제가 작은 이야기도 거창하게 확장하는 재주가 있답니다. ^^ 유우야가 땀냄새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피식 웃으면서 그 부분을 읽었는데요. 왜냐면, 진짜 부끄러운데 저는 제 땀냄새가 좋아요.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엄마랑 여동생은 저의 땀냄새를 안 좋아해요. 하하하. 우선 저는 땀이 많이 나는 편이 아니고요. 자기애가 강해서 그런가 저는 저의 땀냄새가 싫지 않아요. 딱 한 번 정말 싫었던 적은 이과수 폭포를 당일로 다녀와야 해서 8시간을 내내 더위 속에 걸어서 다녔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평소의 땀냄새가 아니라 쉰내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땀에 쩔면 이런 냄새가 나에게도 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날의 땀냄새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앗, 좀 더러운 얘기였죠. ^^ 또 하나 생각났어요. 제가 청소년들 교육을 할 때, 사춘기 청소년들이 내뿜는 냄새가 있거든요. 진짜............ 그 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땀냄새와 호르몬을 뿜어 내며 나는 그 성장의 냄새. 이건 마치 전쟁같은 냄새랍니다. 나만의 냄새를 만들기 위해 한창 자신의 존재를 냄새로 드러내려는 욕망같은 분출이랄까. 청소년 그룹들 마다 풍기는 냄새가 다른데 유독 자신들의 성장을 냄새로 강렬하게 남기는 그룹들이 있어서 수업 시간 내내 숨을 골라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냄새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 한창 더 쓸 수도 있겠어요. 오늘 꽤 피곤해서 누워있다가 답장하는 건데, 글 쓰다보니 또 재미있어서 글이 길어졌어요. 유우야의 다음 편지는 새로운 공간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사는 집보다 좀더 좋은 집으로 가게 되었고 낯선 동네다 보니 긴장도 되고 설레고 마음이 아주 복잡합니다. 전세 사기 안 당하고 무사히 이사하고 새로운 터전에서 다시 일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행운을 빌어주세요. 긴 하루 유우야에게 편지를 보내며 마칩니다. 참, 오늘 출근길에 개나리가 핀 걸 봤어요. 진짜 이제 봄인 것 같아요. 그럼 이만.. 갈토 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30
  • [숲샘의 지리산통신] 성심원의 애틋한 벚꽃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산청 성심원, 그래서 풍현마을이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지만 긴 세월 육지 속의 고독한 섬이었기에 저 환한 벚꽃들이 더 애틋하다. (2023.03.30)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3-30
  • [4월 3일 낮4시] ‘지리산지키기 연석회의’에 함께 해주세요.
    ‘지리산지키기 연석회의’에 함께 해주세요. 연일, 지리산을 둘러싼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남원시가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산악열차 시범사업에 대한 업무 협약에 서명(작년 12월 30일)하면서, 지리산 산악열차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어 경남도(산청.함양 연계)와 구례군은 지리산 케이블카를 추진(구례군은 관련 용역을 곧 시작합니다)하고 있고, 함양군과 하동군은 벽소령도로를 개설하겠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 지난 3월 11일 하동 대성골(지리산국립공원 안)에서 산불이 났고, 산림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리산국립공원에 임도와 사방댐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보호지역과 국립공원의 상징이며, 반달가슴곰을 포함한 야생동식물의 삶터인 지리산은 토건세력과 공무원들이 야합, 정치인들의 부화뇌동, 인간만의 이익 앞에 힘없이 무너져내릴 것 같습니다. 4월의 첫 월요일에 오늘의 지리산 상황을 이야기하고 협력과 연대의 힘을 모으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시간과 장소 : 4월 3일 (월) 낮4시, 남원제일교회 교육관 남원제일교회 주소 : 남원시 정문길 9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03-28
  • [경칩 편지 : 토토와 가로] 이 슬픔 또한 나의 일부인 것을요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가로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때 매일 다니던 등굣길에는 개나리 꽃이 펼쳐진 언덕이 있었어요. 작고 귀여운 것들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노란 개나리 꽃이 길게 늘어뜨려진 꽃 터널을 지나 걸어내려가면 봄의 생명력이 풍성하게 느껴졌어요. 싱그러운 봄 기운이 상쾌한 아침, 이 길을 지날 때 내가 ‘아, 살아있다’는 감각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어요. 그러면 뜨거운 눈물이 차올라서 순간 그 길이 뿌옇게 흐려졌어요.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꽃망울들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몸에 닿는 포근한 햇살과 바람이 이 맘 때쯤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존재와의 추억이 떠오르게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학교에 갔어요. 중학교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어느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창가쪽 뒷줄에 앉아 교과서로 슬쩍 가린 소설책을 몰래 읽던 저를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어요. 앗, 들켰구나 하는 생각에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밖으로 따라 나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들려온 것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었어요. 그 뒤로 봄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연상시켜요. 3월, 내가 태어난 날을 함부로 축하하는 것도 어찌나 미안하던지.. 생일이면 꽁꽁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겨우내 기다렸던 봄이 반갑지 않게 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오랫동안 봄 날엔 늘 마음이 저릿저릿해요. 언제쯤 마음 놓고 이 따스함을 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이 슬픔 또한 나의 일부인 것을요! 눈물로 등교하던 내면의 아이를 매년 봄날이 되면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수밖에요. 오랜만에 읽는 가로의 편지에 마음이 복잡했어요. 궁금했던 소식에 반가운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허탈한 마음도 있었어요. 펜팔을 통해 내 안에는 상대방으로부터 배려받고 싶었던 마음,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마음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지에 적어내린 진솔한 이야기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발견과 회복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감히 가로의 마음도 나와 일치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네요. 가로가 제 마음에 ‘저도, 그렇고 말고요’ 라고 환하게 답해줄 것 같긴하지만.. 가로만의 펜팔에 대한 기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번 편지에는 조금 더 솔직한 나의 이야기로 용기를 내보고 싶었어요. 사실 가로의 편지를 읽을 때면 나와 닮은 구석을 꽤 많이 발견하곤 해요! 하나씩 나열하자면 한 문장 한 문장 저도 참 할말이 많은데요. 너무 주책맞게 하나씩 ‘저도 그래요! 저도요!’ 라고 하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공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것 같아 조금 자제하려고 해요. 누구나 저마다의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 주머니가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 상대를 훨씬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사뭇 진지한 이야기 같아서 상대가 머쓱할까봐, 행여 분위기가 가라앉을까봐 조바심 나는 마음에 그런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기 보단 유쾌한 이야기들로 산뜻한 분위기를 갖는데에만 애를 쓰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사실 펜팔을 통해서 그 주머니를 하나씩 꺼내보고 싶었는데 가로에게 잘 보이고만 싶었는지 동화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만 써내려가진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이 좋아지는 편지를 쓰고 싶다는 욕심에 행복하고 따스한 것들만 찾으려고 했던 애쓰는 마음이 있지는 않았나하고 살펴보게되었어요. 이런 마음이 혹시나 편지를 시작하는 것을 어렵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가로에게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요? 몇일 전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어요. 툭 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 방에서 나는 많이 힘들었나보더라고요. 가로의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나에겐 왜 독립이 절실했는지, 살기 위해서 왜 떠나야만했는지 하나둘씩 기억이 돌아왔어요. 누군가를 떠올리면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몰래 붉어지는 매일을 숨기면서 살았던 방안에서의 날들을 뒤로하고 살기 위해서 집을 떠나야했던 것 같아요. 울적한 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날들이요. 그 모습들이 나에겐 꺼내기에 창피한 것으로 남아있었어요. 친근한 모습으로만 비춰지길 바라는 마음에 내 안의 이런 모습은 부정하고 싶었나봐요. 요즘은 주변에 소중한 이들에게 조금씩 꺼내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이런 나를 얼마든지 사랑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가는 연습인 것 같아요. 자연에 가까이 있는 시간에 위로받았던 것도 그 이유일지 모르겠어요. 가로의 말대로 자연은 거짓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존재 그대로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니까요. 가로의 솔직한 마음들이 담긴 편지를 (여러번 곱씹으며) 읽으면 기다리며 섭섭했던 마음이 신기한 형태로 변화되는 것을 알게되요.. 새로 이사간 공간에 만족하며 지내는 것 같아서 시장이 머릿속에 그려질만큼 신나게 설명해주는 가로가 귀엽고 행복해보여서 흐뭇하기도, 혼자이지만 따뜻하고 건강한 끼니를 대접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라는 말이 마음에 쓰여 잠시 그 문장에 머무르기도 했어요.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편지에 담아주는 가로에게 고마운 마음도 느꼈어요. 마음이 무거운 날엔 몸을 움직이며 활기를 되찾는 가로가 혼자 살이 안에서도 나만의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주로 어떤 음식을 해먹나요? 가로가 채소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씨앗보물상자를 열어 가로가 심어보고 싶은 것들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어떤 채소를 좋아하나요? 초록생명들에 이름을 지어주는 가로의 모습에도 저는 피식 웃음이 났답니다. 믿지 않겠지만 저도요.. 저도 그런적이 있거든요! 든든한 동반식물들이 생겼다니 저도 기뻐요. 생명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있나봐요. 너를 살게한다는 것은 곧 나를 살게하는 일이 되고, 그 돌봄의 에너지는 우리 모두를 살게하니까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혼자서 기대하고 상처받고..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거에요.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음이 한 없이 감사한 일이다가도 어느 날은 흔적도 없이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어요. 가로의 말처럼 사랑의 방식이 누구나 다르듯이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닐지 몰라요. 혹시 식물들은 우리에게 그런 말을 속삭이고 싶은 건 아닐까요? 조금 더 자세히 서로를 바라보라고, 그리고 상대의 눈빛에 귀기울이라고. 혹시 흙이 메마른건 아닌지 보드랍게 조심히 만져보라고. 가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애정과 관심을 더 많이 보내겠어요! 펜팔 짝꿍을 매칭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먼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났던 분이 가로였거든요. 쑥스럽지만 펜팔을 시작하던 저의 초심을 고백해봅니다. 어느새 이것 저것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들이 생겨났지만, 사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시작을 되돌아보네요. 2월 회동에 가로와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펜팔친구들에게도 많은 아쉬움이었을거에요. 다음 지리산에서의 만남이 더욱 기대가 되요! 우리 그때는 꼭 만나서 뜨거운 포옹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로가 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와주면 좋겠어요. 우리가 편지로 나눈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 만난 펜팔러들과도 내적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다른 펜팔 짝꿍들과 편지 구절을 함께 읽던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가로의 쓰레기더미가 말을 건네와주었다던 구절을 골랐답니다. 있는 그대로의 흔적들을 아름답게 바라봐주는 가로의 마음이 따뜻해서요. 그리고나서는 겨울나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산책을 나섰어요. 봄에 지리산에 온다면 꽃과 나무들이 온 팔을 벌려 가로를 환영할 거에요. 저도 그렇고요. 이번 편지는 저도 많이 늦었어요. 가로가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온 마음을 담아 토토 <토토에게> 토토 저에요 가로, 오늘 제가 우연하게 만난 문장을 토토에게 선물해줘도 될까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저는 오늘 이 문장을 보면서 어쩐지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제가 기다려왔던 누군가는 어쩌면, 저렇게 다짐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아니였을까 하고요. 문장처럼 누군가를, 잃어버린 무언가를 기다리더라도 내 자신과 주변을 가지런히, 내버리지 않고 돌보면서 따듯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해 낼 수 있는 힘을 잃지 않는 나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참 쉽게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좋아하기도 하고요. 왜그럴까요. 토토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웠을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괜찮으니까 상대방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어느날 문득 어떤 불행, 어떤 행복, 어떤 특별한 감정들을 동반한 기억들은 나를 평생동안 떠나지 않고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요. 그래서 이제는 이런 요상한 나를 떠나지도 않고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구나, 참 고맙구나 하고:)는 행복도 불행도 기꺼이 반겨주기로 했어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안녕,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건내는 거에요. 그러면 먼 과거도 뻔뻔하게 그래 안녕했다고 이야기해주더라구요. ‘아휴.. 못산다 못살아, 고맙다. 고마워 또 찾아와줘서!' ㅎㅎ 징글징글하지만 결국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관계들 있잖아요. 혹시 알아요? ㅎㅎ 고운정 미운정 다든 오랜 사이들. 제 이야기가 토토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 되었어요. 요새는 진지한 사람보다 좀 모자라고 웃긴 사람들이 편하고 좋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그런 편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많이 노력중이에요. ㅎㅎ 토토는 앞으로 과거를 어떻게 만나고 싶어요? PS. 토토가 주변에서 발견하는 다정하고 따듯하고 아름다운 반짝이는 소중한 시선들을 나눠줘서 그동안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는걸 알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 그리고 토토 ! 토토의 소중한 봄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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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3-03-26
  • [경칩 편지 : 덕복희와 산달] 나무의 눈을 본 적이 있나요?
    디자인.칩코 <나무의 눈동자를 닮은 산달에게> 산달! 제가 만약 요절한다면 사인은 과로일 거예요. 산달의 고질적인 습관이 미루기라면, 저는 절대 미루지 못하는 강박이 있답니다. 제가 눈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 할 일 리스트’를 적는 거예요. 아니 사실 아침까지도 미루지 못해 전날 밤에 적어두고 자요. 이런 저를 보고 소름끼쳐하는 친구들의 반응이 제법 익숙해요. 새벽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을 떨다가, 초저녁이 되면 충전할 때를 놓친 핸드폰처럼 푱 하고 전원이 나가듯 잠이 듭니다. 산달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은, 성질 급한 저에게 퍽 좋은 처방처럼 느껴져요. 제가 조금 더 느긋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요. 저는 산달이 하루를 통째로 편지를 쓰며 보내는 사람이라서 좋아요. 글을 날쌔게 쓰는 재능을 가진 사람과 편지를 나누고 싶었다면 쇼미더머니에 가서 즉흥랩을 듣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히히. 그러니 새끼 손가락을 걸고 하는 약속은 ‘늦지 않기’보다는 ‘느리고 빠른 서로를 수용하기’로 해요! 산달의 편지를 받은 날도 새벽에 눈을 떴어요.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집회를 가는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내려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잠시 미루었는데요. 그 틈에 메일함을 보니 고작 한 시간쯤 전에 산달의 편지가 도착해있는 거예요! 답신을 해주느라 늦은 잠을 청했을 산달이 고맙고 안쓰러우면서도, 또 겨우 몇 시간 뒤에 무등산으로 간다니 한번 더 고맙고 안쓰러웠어요. 저는 불가피한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는데… 갔더라면 반가운 얼굴을 만났겠다 싶어 아쉬움도 크고요. 잘 다녀왔나요? 그리고 무탈히 돌아갔나요? 집에 가서 미뤄둔 잠을 푹 잤기를 바라요. 저도 2월 회동을 오랫동안 곱씹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웠거든요. 어설프게 준비한 자리였는데도 다들 따뜻하게 웃어주고, 뒷정리도 손을 보태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동네방네 남산을 뛰다니며 사람들에게 한 입씩 맛보게 해주는 산달을 상상해보니 웃음이 나네요. 전 산달을 첫눈에 딱 알아봤답니다! 꽃무늬 양말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예요. 산달의 우표 그림과 꼭 닮은 사람은 한명 뿐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산달과는 어째 눈을 마주치기가 쑥쓰럽더라고요. 그날 수상하게 자꾸 관자놀이로 산달을 흘겨보던 사람을 목격했다면 그게 저라고 여겨주세요. 산달! 새삼스럽지만, 제가 산달의 편지에 얼마나 감동하는지 말했던가요? 산달의 편지를 읽으면 꼭 산달의 머릿속을 산책한 듯해요. 사랑과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산달의 사유들이 들풀처럼 펼쳐져요. 입을 가로막힌 생명들이 충분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세벳돈 봉투에 적힌 마음에 눈물짓고, 왜 저런 옷을 입는지 이해하려고 ‘우리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추하고 날 것의 존재들이 세상을 바꿨다고 말하는… 그 문장에서 저는 ‘그름’을 ‘미움’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느껴요. 이건 제가 아침 산책마다 숲에서 배우는 마음이거든요. 특히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세심한 흔적들은 꼭 정오의 햇살 같아요. 산달에게 존경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제가 꼭 지난 편지에서 거짓말을 부려놓은 양 부끄럽기도 하고요. 한편 산달의 편지엔 꼭 산달의 아픔이 함께 있어서 뭉클해요. ‘오히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것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은 돌에 새긴 것처럼 단단하게 느껴져요. 고민을 거듭할 적마다 단단해졌을 거예요. “그래서? 그 괴로움을 넘어서 넌 어쩜 누군가의 아픔에 존경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됐어?”라는 되물음이 남아요. 저도 그 선물을 돌려주고 싶어서 그래요. 아프고 무가치한 존재들이 세상을 바꾸는 신화가 누군들 궁금하지 않겠어요? 산달이 매일 보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어떤 기획을 주로 하나요?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산달이 가장 좋아하는 하루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떤 날씨와 만남과 음식과 함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요? 전 산달이 왜 기후운동을 하게됐는지도 무척 궁금해요. 산달은 아주 어릴적부터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니면 벼락을 맞은 듯이 산달의 세상이 바뀌었던 건지도요. 이번 경칩의 주제는 ‘내가 잃은 초심’이에요. 산달이 기억하는 ‘처음’을 이야기 하다보면, 다른 질문에도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전 잃은 초심이 많은데 그게 상실로 느껴지는 게 없더라고요. 제가 볼 땐 또 다른 무언가로 초심이 채워진 느낌이에요. ‘잃은 초심’이 아니라 ‘변태한 초심’이랄까요! 제가 기억하는 처음의 저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눈을 갖고 싶어했어요. 핵발전소는 반대하고 싶은데 왜인지 잘 설명하고 싶고, 속치마를 안입고 외출했다고 밥상을 뒤엎던 아빠한테 한 마디 쏘아주고 싶고, 시골로 냅다 향한 게 왜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게 아닌지 해명하고 싶었거든요. 제 행동이 ‘옳지 않다’면 냉큼 바꾸고 싶었고요. 그런데 지금 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눈을 버리려고 애써요. 물론 내 안에 ‘저건 아니지!’하는 습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납득해요. ‘저것도 맞을지도 몰라’하고요. 하루는 제가 좋아하던 한 스님과 논둑길을 걸었어요. 스님은 띠풀을 손으로 훔치며 제게 ‘진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하고 물었어요. 저는 스님을 따라서 풀을 만지작대다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했는데요. 스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죠.’라고 하셨어요. 자연엔 정말이지 맞고 틀린 게 없어요. 우리 모꼬지 때 함께 나무를 만났잖아요. 나무는 마주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데, 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더라고요. 딱따구리는 암수가 육아를 함께 해요. 집도 같이 짓고 알도 같이 품어요. 그런데 동고비는 암수가 역할이 정확히 나뉘죠. 여자가 집짓고 알을 품는 동안, 남자는 보초를 서고 먹이를 구해다주어요. 딱따구리나 동고비 중 어느 한 쪽이 옳은 방식이라고 할 수 없어요. 각자의 방식이 있고, 방식에 따른 장단점이 있겠죠. 산달, 저는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대부분 아빠를 향한 것이었는데, 나중엔 아빠와 닮은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남자들은 죄다 미워했어요. 당시는 누가 툭 치면 꽉 깨물 준비를 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머리를 싹둑 잘랐는데 제가 너무 아빠를 닮은 거예요. 긴머리일 때는 몰랐는데 짧은 머리를 하니 아빠를 빼다 박아논 모양새였죠. 그러더니 공중 화장실에 가면 ‘여기 남자 화장실 아니에요!’하는 소릴 듣지 않나, 동네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와서 ‘여자에요 남자에요?’하고 묻기 시작했어요. 아빠를 본격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하자, 제가 아빠와 똑 닮아져버렸다니 얄궂은 아이러니죠. 남자로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남들이 저를 남자로 대하면 남자로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전 남자가 되기도 하더군요. 산달은 ‘한국에서 지정성별 남성으로 태어나 자란 저는 늘 제가 ‘속해 있는’ 집단의 해로움을 물려받았을 거에요. 괴롭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죠.’라고 말했잖아요. 저는 여성으로 태어난 제 안에도 그 해로움이 있음을 분명히 느껴요. 원래 여성과 남성이 칼로 자른 듯 나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건 해로움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옳고 그른 건 없으니까요. 나무의 눈을 본 적이 있나요? 전 나무의 형형한 눈동자가 마냥 신기했는데요. 이게 알고보니 나무가 스스로 아픈 자리를 치료한 흔적이었다고 해요. 아픔을 치유하고 나면 그곳에서 새로운 눈이 생기는 거죠. 산달의 편지가 제게 감동인 것은 아마 이런 이유일 거예요. ‘그름’을 ‘미움’으로 대하지 않듯이, 자신 안의 ‘해로움’ 앞에서 산달이 오래 서성인 흔적이 제겐 나무의 눈동자만큼 반짝거려요. 그 눈동자를 바로보고 ‘그건 해로움만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 제게 ‘옳고 그름이 없다니! 그건 분명히 존재해’라고 주장한다면, 그 말에조차 고개를 끄덕이길 바라요. ‘네 말이 맞아’라고 말하고 모두를 사랑해버리길 바라고요. 산달! 몸이 찌뿌둥할 땐 햇살을 좀 쐬면 어떤가요? 햇살의 영역은 언제나 옳고 그름을 넘어서니까요. 햇살을 오래 쐰 고양이의 몸에선 햇살 냄새가 나더군요. 다음 편지엔 햇살 냄새가 나는 산달의 하루를 담아줘도 근사하겠어요. 아, 앞서 나열한 질문 폭탄도 잊지 마시고요! 사실 어떤 내용이든 신이 날 거예요. 그럼 안녕히. 편지 하루 미뤄본 덕복희가 <목련을 닮은 복희에게> 복희! 오늘은 제 상태가 별로 좋지 않네요. 문장이 보기에 깔끔하거나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어요. 복희가 요절한다면 사인은 과로일 거라고 했죠. 그 문장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과 동지애를 동시에 느꼈어요. 전원이 나가듯 잠에 든다니요.. 저도 분에 맞지 않을 정도로 일복이 넘치거든요. 저는 왜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일을 떠안고서 괴로워하는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어요. 조금씩 일 사이에 틈을 만드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가야 하죠. 저번 편지에서도 말했다시피 저는 늘 편지를 쓰는 날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규칙이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 규칙을 어겨버렸어요. 하루 종일 신경 써야 하는 업무들과 공부, 모임 참여를 다 끝마치고서야 겨우 복희에게 줄 문장들을 고르고 있어요.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이번만은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는 점이 저를 슬프게 한답니다. 아, 그래서 이번 편지에는 봄볕을 담지 못할 것 같아요. 이틀 동안 집 안에만 있었거든요. 씻긴 씻었는데 어떤 냄새가 담길지 두렵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늘 그래왔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너무 많은 동아리에 참여하다가 동아리 축제 때 맡은 역할을 소홀히 해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었어요. 2학년 때는 학생회를 하면서 시험을 뒷전으로 하기도 했고요. 엄마 아빠와 선생님들은 늘 제게 “어느 하나에 차분히 집중할 수 있는 산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는 했지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참 고집이 센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어요. 감당하기 힘들 때가 되면 그제서야 일을 줄여나가기 시작하다가 금세 또 다른 일들을 찾아서 힘들어하는 일을 반복해요. 그런데 제가 체력은 또 좋아서 결국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내긴 해요. 그래서 습관이 바뀌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이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마음 먹었답니다. 무리하면서 몸이 상하는 것은 둘째치고, 하고싶었던 일들을 즐기면서 할 수가 없더라구요. 나름의 필요를 느끼면서 시작한 일들인데, 어느덧 임무를 수행하는 인공지능 기계장치처럼 일하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그리고 가장 절박한 이유가 있는데요.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이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처럼 무리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꼴이 되기도 하니까요. 친구들에게 진심이 담긴 사려깊은 말들이 아닌 효율적이고 차가운 말들을 건네는 저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써내려가고 있는 말들도 복희에게 고백이 아닌 일방적인 한탄이 될까 조심스러워요. 저는 제 삶의 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늘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고, 그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왔거든요. 저는 어디서나 늘 착한 아이였고, 저를 착하다고 해주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했어요. 착한데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서 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었어요. 늘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내고 하루라도 더 빨리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는데, 왜 나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지? 제 안의 공허함은 늘 배고프다고 소리쳤지만요. 결국 그런 마음이 해소되지 못한 저는 아직까지도 많은 일들을 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어요. 계속해서 더 많은 일들을 하기를 제 안의 어린아이가 바랬거든요. 이런 제 모습이 지금의 세상과 닮아 있다고도 느껴요.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생명을 갈아넣어 성장하기를 그칠줄 모르는 모습 말이에요. 누군가는 먹고 살려면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그게 어떤 희생을 대가로 치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없죠. 우리의 공동체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왜 상상하지 못하냐고 다그쳤는데, 정작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바보가 바로 여기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게 모두 하나의 과정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현실에 안주하고 적응하는 게으른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 마음은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더라구요. 세상은 잘난 어느 한 천재가 바꾸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여럿’이 바꾸니까요.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군대가 아니라 나팔이니까요. 그 마음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후운동을 할 수 있겠어요? 복희, 제가 이번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모를거에요. 복희가 하는 말들 하나하나가 제게 나무의 눈처럼 느껴졌거든요. 제게 앞으로 생겨날 나무의 눈들이 아주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리저리 떠들고 있으니까요. 마치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어요. 복희의 문장들은 제 ‘처음’을 되새기게 만들어주었거든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으로 모두를 품어야겠다는 ‘첫 마음’ 말이에요.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에요. 지치고 때묻은 저의 온 마음들이 씻겨져요. 맞아요. 저는 누가 어떤 말들을 하든, 그게 최소한 그 사람에게는 진실일 거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이의 의견도 귀하게 들으려고 했고, 그들의 진심을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여름방학에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었답니다. 그때만큼 세상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책에는 고기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끔찍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거든요. 저는 이전에는 여태껏 한 번도 내가 먹는 고기들에 대해서 질문한 적이 없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선한 마음만 가지고는 이 죽음을 멈출 수 없겠구나.” 사랑을 말하며 죽음을 외면하던 이들이 참 미웠어요. 그들이 말하는 사랑만 가지고 세상을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제가 외치는 ‘사랑’에 누락된 존재들이 없는지 강박적으로 묻기 시작했어요. 동물의 죽음에서 시작된 부정의에 대한 감각을 이내 곧 여성들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고, 장애인들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여성운동과 “모든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는 동물해방운동,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자는 없다. 단지 듣지 않으려고 해서 들리지 않게 된 존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장애운동의 구호들이 다르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차에 만난 기후운동은 그 모든 존재들이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정치적인 존재가 되기를 말하는 운동이었어요. 모두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운동이 기후운동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렇게 어쩌다보니까 저는 기후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복희. 하나만 해도 힘들어죽겠는데,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아우르려는 시도를 하니 얼마나 가랑이가 찢어졌겠어요. 가장 괴로운 것은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수많은 죽음과 부조리와 슬픔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모든 곳에 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감당해야만 했어요. 복희, 그건 하나하나의 죽음들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었어요. 하나하나의 삶들을 가슴에 새기는 일이었어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학살을 방관하는 일이었어요. 여전히 모른 채하고 부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요. 하지만 복희, 예전에는 그들이 참 미웠는데요. 이제는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맥락과 아픔들을 이제는 상상해보려고 해요. 심지어 학살을 가장 앞서서 자행하는 사람들도요.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무한 번의 선택을 앞두고 있는걸요. 그저 그들의 선택을 함께 할 수 있는 제가 되길 바래요. “그들을 바꾸기 보다는 그들의 세계를 바꾸겠다는” 다짐을 되새겨보아요. 그리고 그 방법은 복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을 사랑해버리는 것일 거에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네가 너라서 좋아”라고 말하면서 매일 천천히, 하나씩, 조금씩 말이에요. 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제 자러가야겠어요. 저부터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겠어요. 저를 사랑하는 일이 곧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요.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저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아빠의 눈빛이 마음에 걸려요. 내일은 바깥 공기도 햇살도 좀 쐬어야겠어요. 지리산엔 꽃들이 피었나요? 여기엔 벌써 목련이 활짝 피었어요! 어떤 환경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식물들이 참 경이롭고 존경스러워요.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요. 복희, 우리도 그렇게 피어난 꽃들이겠죠? 늦잠 자러 간 산달이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24
  • 414 기후정의파업, 왜 지금 세종정부청사에서 기후정의파업인가
    414 기후정의파업, 왜 지금 세종정부청사에서 기후정의파업인가 우리는 매년 기후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 폭우, 한파, 태풍이 반복된다. 갑자기 등장한 재난이 아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재난의 원인이 기후위기임을 분명히 알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여름 폭우는 재난이 불평등의 다른 모습임을 드러냈다.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벗어나자, 에너지 위기가 촉발한 사회경제적 위기가 시작됐다. 고금리와 고물가는 대기업과 부유층을 제외한 모두를 궁핍한 삶으로 내몰았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도 온실가스 배출은 다시 증가했다. 경기를 살려야 한다며 온갖 개발사업들도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불평등, 기후위기, 재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더욱 강고해졌다. 무엇이 우리를 벼랑으로 내몰면서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지도 분명해지고 있다. 자본의 고리를 깨기 위해 불평등에 맞서는 기후정의 투쟁이 펼쳐져야 한다. 불평등에 맞서는 사회공공성이, 생태학살에 맞서는 반개발 투쟁이, 함께 살기 위해 이 세계를 멈추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치솟는 에너지, 교통 요금의 진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수급불안정 이후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와 같은 에너지 공기업의 막대한 누적 적자 문제가 언론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적자는 에너지 공기업들을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기업으로 만들었고 전기, 가스요금 인상은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올해 1월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작년 동월 대비 28.3%가 올랐다. 지난 1월, 2월 가구당 수십만 원 이상 오른 난방비는 그 결과이다.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은 9.5%가 올랐고 가스요금은 2분기부터 다시 오를 예정이다. 그리고 동일한 적자 논리에 따라 이미 인상된 택시요금에 이어 지하철, 버스 요금 대폭 인상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공기업 적자 해소 주장과 함께 값싼 공공요금이 에너지 절약을 가로막는다는 논리가 더해진다. 기후위기이니 전기, 가스요금 인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 사용량 중 가정용은 15%에 불과하다. 우리는 인상 전에도 비싼 가스요금때문에 온갖 방한 용품과 전열기구로 겨울을 났다. 하지만 10대 대기업들은 최근 5년간 4조 2천억원에 이르는 전기 요금 할인 혜택을 받았다. 한전에 전기를 파는 민자발전사들은 작년 상반기에만 2조원에 이르는 이익을 봤다. 우리가 고유가로 고통받는 동안 지난해 정유업계는 13조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냈다. 전기 사용량의 53%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 그 중에서도 대기업들에게 수조 원의 요금 할인 혜택을 주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을 통한 에너지 절약’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자명하다. 난방비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에너지 바우처’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요금을 못 내서 가스가 끊긴 2만 6521건(22년), 전기가 끊긴 32만 가구 대부분은 단열이 되지 않는 부실 주택에 거주한다. 에너지 빈곤은 주거 빈곤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원을 삭감했다. 그 돈으로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매입해주고 있다. 가장 부유한 서울시가 교통공사 적자 7조원을 이유로 지하철, 버스요금 인상을 계획하는 동안 정부는 가덕도, 새만금, 제주2공항, 흑산, 울릉, 백령, 서산 등에 신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비 수십 조원(가덕도에만 30조원 추정)이 소요되는 계획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좁은 국토에 이미 15개 공항이 운영되는 와중에 새로운 공항을 추가로 짓겠다는 것이다. 자가용과 항공기 이용을 대폭 줄이고 철도, 버스 중심의 공공교통을 대폭 확충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공교통을 위축시키고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교통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바로 지금, 기후정의를 향한 에너지/교통의 사회공공성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에너지 위기는 기후위기에서 반복되는 ‘피해와 위기의 전가’이다. 무분별한 에너지 낭비와 교통/토건 사업은 자본과 국가가 결탁해 벌여놓고, 그 결과 드러난 적자와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추위에 보일러를 끌 수도, 대중교통을 안 탈 수도 없는 시민들은 다른 소비를 줄이는 궁핍한 삶을 감내해야 한다. 결국 이번 에너지 위기도 대기업과 부유층에게 더 큰 이윤과 권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의 책임을 정부와 기업에게 분명히 묻고, 기후재난에 사회공동체가 함께 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에너지 위기도 마찬가지다. 에너지와 교통은 삶의 필수재이자 기본권이다. 또한 사회공동체가 함께 생산하고 이용하고 관리해야 하는 공공재이다. 따라서 사고팔아 이윤을 챙기는 상품, 구매력에 따라 접근가능한 상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특히 에너지는 생태적 한계 속에서 민주적 계획에 따른 생산과 소비, 평등한 이용이 더욱 필요한 재화이다. 즉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교통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차는 구매력에 따른 격차만 늘릴 뿐이며, 도로/자가용, 항공 중심의 현재 교통체계는 가장 낭비적인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늘릴 뿐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처럼 노인, 장애인, 지역주민 누구라도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철도와 버스 중심의 공공교통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공공 주도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기본권/주거권 보장’, ‘에너지기업 초과이윤 환수’, ‘시민들의 필수적 전기/가스 요금 인상 철회’, ‘공공교통 확충’, ‘신공항 건설 중단’ 등을 핵심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변화와 정책들이 아니라, 정반대로 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사회적 목소리를 힘차게 모아내고자 한다. 기후위기이니 에너지 요금 인상을 감내해야 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의 에너지 사용 통제와 모두를 위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사회공공성에 입각한 변화가 절실하다. 그리고 이를 이뤄낼 강력한 사회적 투쟁이 더욱 절실하다. 바로 지금,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이윤을 위한 생태학살을 멈추자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기이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앞장서 외치면서 동시에 온갖 개발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토건자본과 결탁한 정부/지자체의 개발 사업은 오랫동안 이어진 문제였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개발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기후위기 대응이든 토건사업이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신공항, 국립공원 케이블카, 산악열차 건설시도가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려고 한다. 그린벨트 해제 권한 지자체 이양은 ‘지역살리기’, ‘관광산업 활성화’를 내걸고 숲과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산업단지, 관광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개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개발은 생태계의 숱한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생태계 자체를 파괴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4대강사업이라는 거대한 토건사업으로 생태학살을 경험했고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속화하는 전국 곳곳의 마구잡이 개발 사업들은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의 삶,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터전을 파괴하고 있다. 하지만 가덕도, 제주도, 새만금 신공항 건설에 맞서고, 국립공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건설에 맞서 싸워온 지역 곳곳의 투쟁들이 있다. 이러한 투쟁들이 지역만의 투쟁일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함께 싸워야 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이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바로 이러한 투쟁들이 기후정의의 기치 아래, 생태학살에 맞서는 투쟁으로 연결되는 현장이 될 것이다. 4월 14일 금요일, 우리의 하루를 멈추고 세종정부청사에 모이자 대통령실과 국회가 있는 서울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정치사회적 투쟁들이 벌어지는 중심적 장소가 되어왔다. 온갖 에너지/폐기장/관광 개발사업이 벌어지는 기후부정의의 여러 현장들은 지역들이지만, 이를 기획하는 권력의 장소가 서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번 414 기후정의파업은 세종정부청사에서 펼쳐진다. 현재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두 축은 자본과 정부이다. 자본주의 성장체제라는 동일한 목표를 위해 달리는 오래된 쌍두마차이다. 이 때 정부는 흔히 정권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5년 선거마다 바뀌는 정권과 다른 의미에서 정부는 ‘관료체계’이기도 하다. 큰 규모의 개발사업은 보통 5~10년에 걸쳐 추진/집행되며, 기후정책은 2030년, 2050년 장기간의 계획이 입안된다. 이러한 밑그림을 그리는 기관이 바로 ‘정부관료체계’이다. 에너지 민영화/시장화는 98년 이후부터 변함없는 정책기조로 진행되어 왔으며, 신공항을 비롯한 온갖 개발 사업들도 이번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바로 이러한 ‘대정부 투쟁’의 현장으로 세종정부청사를 택했다. 4월 14일에는 공공 주도 재생에너지 전환과 고용보장을 외치는 발전노동자들, 농토와 삶터를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게 빼앗긴 농민들, 송전탑/양수발전소와 부정의한 핵발전소/핵폐기장 건설에 맞서 싸워온 주민들, 신공항, 케이블카, 산악열차 건설 시도에 맞서 싸워온 이들이 함께 모인다. 기후부정의에 맞선 투쟁현장의 주체들이면서 동시에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들이다. 에너지/교통의 사회공공성 강화를 외치며, 생태학살 개발사업에 맞선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서 우리도 함께 투쟁할 것이다. 자본과 결탁한 정부 공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4월 14일 금요일, 세종으로 모여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펼쳐내자. 우리의 하루, 일상을 멈추고 기후정의파업 투쟁을 펼치자. 함께 살기 위해, 정부는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고 외치자. 우리에겐 이미 많은 대안과 구체적 요구들이 있다. 이 세계를 멈추고, 이제 다른 방향으로 세계를 움직이자. 414 기후정의파업 대정부 요구 ① 대기업의 에너지 요금을 충분히 인상하며 시민들의 필수적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존엄한 삶을 위한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 ② 대기업에 대한 전력요금 특혜를 중단하고 에너지기업들에게 횡재세를 부과하라. ③ 농어촌파괴·민영화로 추진되는 재생에너지가 아닌 지역주민 참여 아래 공공주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실현하라. ④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과 운영을 당장 중단하라. ⑤ 신규 핵발전소 건설, 수명연장, 핵발전소 내 핵폐기장 건설 당장 중단하고 주민 이주 대책 마련하라. ⑥ 교통요금 인상 전면철회, 대중교통 공영화하고 공공교통을 대폭 확충하라. ⑦ 가덕도, 제주2공항, 새만금, 흑산도 신공항 등 모든 신공항 추진계획을 폐기하고, 건설 예산을 공공교통 확충 예산으로 전환하라. ⑧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만 부추기는 그린벨트해제 권한 지자체 이양시도를 당장 철회하라. ⑨ 농지와 농촌을 파괴하는 기후대책을 중단하고 식량주권 실현과 농민 생존권 보장을 위한 공공농업을 실현하라. ⑩ 동물학살을 초래하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 생산/소비에 대한 사회적 통제 방안을 마련하라. ⑪ 기후위기 가속화하고 생물다양성 훼손하는 개발사업 중단하고, 모든 개발사업에 기후영향평가 실시 및 지역주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라. ⑫ 발전소 폐쇄에 따른 발전 원·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후퇴 없는 고용을 보장하고, 산업전환으로 피해를 보는 모든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라. ⑬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장애인, 이주민, 빈곤층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시혜나 보호가 아닌 존엄한 삶의 권리를 보장하고, 정의로운 전환 주체로서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라.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03-22
  • [경칩 편지 : 참새와 돌] 어떻게 초심을 건넜고, 무엇을 만났나요?
    디자인.칩코 <경칩편지, 돌에게> 돌, 어제까지만 해도 노란 방울같았던 산수유 꽃이 오늘은 활짝 핀 걸 봤어요. 새 계절이 오네요. 차분히 잘 나고 있나요? 우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무를 찾기 위해 가지끝만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 보았던 서울 회동이 벌써 일주일 전이네요. 여러모로 서툴었던 진행에도 서울 펜팔 친구들의 너무 따뜻하게도 함께 도와주어서 긴장되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 믿고, 의지할 수 있었어요. 참 고마워요. 돌의 편지를 보아하니 저를 아직 못찾은 것 같아서 그것도 마음이 놓이고요. 하하. 지리산에서 만나게 되는 날에는 모두가 서로의 정체를 알고, 더 속 시원하게 얘기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돌의 우수의 편지를 받고, 참 고마웠어요. 마치 돌이 제가 편지에 모아둔 문장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소중하게 어루만지는 느낌이에요. 내 말이 당신에게 닿은 덕분에 나 혼자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의미와 가치들을 더 찾아볼 수 있었어요. 제 문장들을 바라봐주어서 고마워요. 편지에서 그 바라봄의 온기가 느껴져서, 이미 돌이 자신이 말한 우아한 사람을 닮았다고 느꼈어요. 사랑과 환대, 위안을 주는 건 이런 느낌이겠구나 했지요. 돌의 글을 보면서 저도 우아함을 연습해볼게요. 그렇지만 사실, 요새 저는 조금은 조급하고, 조금은 무력함을 느껴요. 우아해지기가 쉽지 않아요.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했다는 소식, 지리산에도 정령치 산악열차 공사 시작일이 정해지고, 구례의 케이블카 사업도 손쓸 도리없이 그들만의 정치로 정해지는 듯한 모양새이고, 흑산도 공항, 제주 비자림로 등등 어디서부터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너무 많은 일들이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지고 있네요. 저는 여전히 지리산이 내어준 품 덕분에 산수유 꽃과 매화 꽃이 피어나는 걸 보고, 떼지어 날아가는 참새들이 더이상 동그랗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나도 따라 둘레길을 쏘다니다가 소나무 향기를 가득히 들이마시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섬주섬 주워와 방을 덥히는 안온한 일상을 살며 몸과 마음을 지켜가고 있어요. 다들 산과 바다에게 한 번쯤 위로받고, 고마웠던 순간이 있을텐데요. 또 고마운만큼 잘 해주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일텐데요. 도시에서도 꽃이 피면 기뻐서 구경가고, 우연히 길냥이를 마주치면 귀여움에 관심이 가잖아요. 아니면 사람들은 이제 돈에게 더 고마움을 많이 느껴서 그런걸까요? 저도 배부르고, 등 따신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돈 참 좋아하는데요. 하하. 지금 이 지경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나부터가 미워보이곤 해요. “언제까지 받기만 하고 살래?”하는 마음이죠. 활동가로 살아가는 돌은 좀 어떤가요? 활동가라는 자리와 역할은 돌을 더 가볍게 하나요 혹은 더 무겁게 하나요? ‘내가 잃어버린 초심’은 어쩌면 ‘지키고 싶었던 마음’일거에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지는 마음은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후로 펼쳐지는 일들은 주로 예상밖의 것들이라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요. 저한테는 채식이 그랬어요. 처음 공장식 축산업의 과정을 영상으로 보았을 때는 너무 적나라한 폭력장면과 공포에 떠는 소,돼지,닭들의 눈빛과 몸짓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우리 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누구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 이상 ‘절대 먹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분하고, 조급해지고, 무력했어요. 무엇과도 타협하기 싫었고, 일상이 투쟁이었어요. 돌이 언젠가 편지에 적었던 딱 그 문장이요. 지금도 저는 비건이에요. 그런데 처음과는 분명 다른 마음이에요. 무엇이, 어떻게, 왜 달라졌는지는 아직 정리가 안되었지만 처음과 달라진 지금의 나를 ‘초심을 잃었다’보다 ‘초심을 건넌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아니 건너는 중이라고요. 이 쯤에서 초심의 내가 ‘비건’을 다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주위 스승들에게 한 번 더 지혜를 구하고, 의지하고 싶네요. “어떻게 초심을 건너가고 있고, 그 길에서 당신은 무엇을 만났나요?” 그럼 나는 또 그들 덕분에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겠죠! 돌에게는 어떤 초심이 있었을지, 초심으로부터 멀어진 발걸음은 어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돌의 이야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짹짹! 2023.3.5 참새로부터 <참새에게, 경칩의 편지> 안녕하세요 참새, 돌이에요. 며칠 전까지 한껏 봄이 왔구나 하며 외투를 바꿔 입었는데요. 어제 오늘은 꽃샘추위의 시간이에요. 그렇지만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햇빛의 따스함이 봄을 알려주어요. 얼굴이 그새 좀 탄 것도 같고, 대충 걸쳐도 양달에 몸을 내밀면 따뜻해요. 참새의 초심을 들으며 저 역시 ‘고기를 먹지 않겠어’라고 다짐한 순간이 생각나요. 다큐에서 고통을 느끼는 동물들을 봤고 죄책감에 채식을 선언했어요. 학교에서는 급식이 따로 없었고 몇 달쯤 하다 그만 두었고요. 내 선택이 곧 내 정체성이라 느끼던 나이에 다시 채식을 시작했어요. 지금으로부터 일년쯤 전 비질을 다녀왔는데, 그 돼지들의 얼굴을 보고 기억한 순간부터 비건이 되었고요. 다시 돌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눈을 마주한 순간이었고, 트럭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고, 트럭이 공장 안으로 출발한 후에는 도로 너머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저는 금방 다시 상품으로만 돼지를 만날 수 있는 도시 한 중간으로 돌아왔어요. 그 잔상을 지우지 않고 곱씹었어요.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만큼 더 들으려고 했고, 그중에는 생추어리나 닭과 사는 이의 이야기도 있었고, 또 다른 이의 비질 소식들도 있었어요. 사진, 글, 말을 열심히 듣고자 했고 저에게 주어진 장소를 최대한 활용해 글을 썼어요. 동물을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사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었어요. 그와중에 저는 제 가장 주변의 관계부터 경계하고 날카로워졌고요. 그런 감각이 반복되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즈음 *“근데 채식에 몰두할수록 동물을 먹지 않으려는 노력과 시도가 성공적일수록 내 일상에서 어떤 존재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횟수는 줄어든다. ‘고기'를 동물로 인식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소비재의 변경이 곧 살아있는 존재로 동물을 마주하는 기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도 했었네요. 그런가봐요. 생명을 곁에 두고 같이 살아가야, 그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유지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아요.도시에 사는 건, 지키고 싶은 것들을 멀리서 보고 말하는 일 같거든요. 제가 잃은 초심은 이 지점에 있어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 사회를 인정하기보다 부정하고 저항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어요. 사람이 죽고, 나무가 잘리고, 돈을 이유로 대화조차 할 수 없이 팽개쳐진 현장에 찾아갔고, 그 옆을 지켰고, 목소리 높여 외치며 자랐어요. 연결과 공생, 따뜻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관계 속에 있었고 그게 당연했고, 그래서 이것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이것이 파괴되는 현장들, 부정의한 것을 보고 목소리 내는 경험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말하는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랄 게 딱히 없어요. 거대한 충격보다는 작은 무너짐을 여러 번 쌓아왔어요. 가장 따뜻하게 자라왔음에도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자본의 원리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할 법한 말이 어느새 제 안에도 들어와 있었나봐요. 그래서 폭력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그것 없이 일상의 어느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 대면할 때, 스스로가 부끄러워질만큼 다시 깨달아요. 그럴 때 제가 잃은 어떤 감각을 상기해요. 그래서 저한테 초심은, 어떤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 번 마음을 세우고, 얼굴을 마주하고, 부끄러움을 깨달으면 그 순간으로부터 얼마 간 그 초심으로 살아가요. 생명으로 살 수 있어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저의 의지박약을 탓하기보다,, 3일마다 작심해야겠다고 다짐하려고요.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해, 더 자주 다른 타자를 기꺼이 경험하고 연결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아프고 같이 건너가고 싶어요. 그래서 참새가 건네준 말들이 더 소중하고 감사해요. 무력함이 무력함을 끝나지 않게, 같이 힘내고 싶어요. 우아해지기까지는 어렵더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을 지키는 일을 같이 할게요. 멀리서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잘 듣는 일이라고 혼자 짐작해보아요. 이번 편지에서 나눠준 소식들 덕분에 저도 얼마 간 놓치고 있던 지리산 주변의, 설악산에서의, 제주와 흑산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보았어요. 어려움을 나눠주어 고마워요 참새. 더 잘 들을게요. 돌처럼 듬직하고 단단하게 여기에 있을게요, 데구르르. 경칩의 끝자락에서, 돌 씀. 202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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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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