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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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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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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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실시간 이야기 기사

  •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표지 사진 제목: '어린 사제들 Pretini '=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마리오 자코멜리 작 이 책에는 내가 공감하고 좋아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 모든 인간은 "길 위에 있는 존재이자 순례자이며 나그네"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위안을 준다. 또한 "인간의 삶이 우연성에 좌우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내가 들으려고만 그분은 이렇게 사제를 통해서 작가를 통해서 내 이웃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든 방랑하는 이들의 삶에 진심으로 축복을 기원해야 합니다. 고향을 떠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외롭고 위태로운 떠돌이가 아니라 온전히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길 위에 있는 존재'이자 '순례자'이며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가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은 그러한 연대가 존재할 때 비로서 도래할 것입니다.p237 진실이 아프고 버거워도, 구태와 위선 속에서 사회가 병들어 가거나 내면에서부터 도덕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리고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무참한 피해자가 되지 않게 하려면, '진실의 시간'이 유예되지 않아야 합니다. 로마시대의 문인 겔리우스 이래 '진실은 시간의 딸'이라는 말은 서양에서 하나의 격언이 되었습니다. 시간과 함께 진실이 드러난다는 옛사람의 지혜는 결국 '진실의 시간'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고자 하는 유혹과 위협 속에서도 진실을 시간 속에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치유이자 해방인 시간, 속죄이자 용서인 시간은 오직 '진실의 시간'으로서만 다가옵니다. 진실의 시간은 누구도 홀로 가져올 수 없습니다. 진실의 시간을 위해서는 모두가 각자의 처지에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p251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은 쓸쓸한 일이지만 좋은 약이 됩니다. 우리에게 인생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참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p255 다윗은 우리에게 인간이 겪는 가장 큰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욕망과 오만함이 낳은 죄가 위대하고 고결했던 인물을 죄인의 자리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다윗의 삶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비롯한 인류의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반복해 증언하고 있는 '인간조건'의 생생한 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간조건, 즉 인간의 제약성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는 것, 인간의 삶이 우연성에 좌우된다는 것, 인간이 세상사와 인간관계의 관계망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바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평생 쌓아온 덕망, 겨우 누리게 된 행복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의 죄로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전율하게 합니다. 내가 내 삶을 망치는 원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진실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성서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과 달리 다윗의 죄에 일체의 변명거리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가장 큰 위대함이 인간의 죄가 초래한 비참함의 심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윗을 보며 알게 됩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낮아져서 찢어지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의 무거운 죄가 그를 절망과 죽음으로 이끌지 않은 이유는 다윗이 죄를 회피하지도 또 영웅적 오만함으로 죄의 결과를 혼자 짊어지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본인이 가난한 죄인임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에서 인간의 가장 큰 위대함이 시작됩니다.p265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하느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에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다(1열왕기10,9)'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 구절을 곰곰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구한다고 할 때 사실 내 한 몸 건강히 세상의 풍파를 피하고, 시대의 조류를 잘 타서 가족의 안녕과 직업적 성공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기술을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솔로몬이 가진 지혜의 본 모습은 바로 주님의 뜻인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게 하는 길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지혜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기에 앞서 그 지혜란 바로 정의와 공정의 실천을 의미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p277 우리가 스스로에게만 의지하고 하느님께 길을 묻는 것을 게을리할 때, 우리의 장점과 수완은 더 이상 온전한 삶을 돕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오만함과 자기도취로 이끌어 지혜의 길을 버리게 한다는 사실을 한 때는 화려했으나 불행해진 노년기 솔로몬의 삶에서 다시 한번 배우게 됩니다. p279 세계가 갈기갈기 찢기고 심연을 드러낸 황폐한 시대에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내적 분열 그리고 소리 없는 날카로운 비명을 그린 <절규>는 그려진 지 이미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마치 오늘날을 예언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우리가 이 그림에 전율하면서도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계 곳곳에 불안과 절망과 날카로운 절규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기 대문입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뭉크가 직감한 그러한 불안의 세계상은 많은 현대인이 공유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서와 사유를 수렴하는 실존철학 역시 사람들을 충분히 사로잡을 만 했던 것이지요, 뭉크의 작품을 보며 '나는 실존주의자입니다'라는 명제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실존주의자는 어둠과 불안의 심연을 대면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고뇌와 고통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체험하는 진정성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또한 깊고 멀리 나아가기를 감히 소망하는 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신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보다 더 간절하게 빛을 간구하는 이여야겠지요. p288 시시각각 절망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빛은 생명을 줍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산산 조각난 우리의 삶을 치유하게 합니다. 그러하기에 실존주의자의 삶은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의 빛을 만나 치유되고 완성되는 여정입니다. p289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4-22
  • [방구일기] 골프장 잔디를 먹고 살지 않는 존재들
    괜히 이름을 ‘칩코’로 지었다. 칩코로 불린지 어언 5년차인데, 사실 1년차부터 후회를 반복해왔다. 정확히는 내 이름의 뜻을 물어볼 적마다 후회했다. 인도의 에코페미니즘 운동인 ‘칩코운동’이 있다. 숲에 댐이 건설되려 하자, 숲에 의존하며 살던 마을의 여성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지켜낸 운동이다. 칩코는 ‘끌어안는다’는 뜻의 힌두어라고 한다. 인터넷에 ‘칩코운동’을 검색하면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산나무에 정성껏 금줄을 매단 양, 여성들이 손을 잡고 나이든 나무를 둘러싼 사진들. 이 장면에 반해 분수를 모르고 이름을 덜컥 정해버렸다. 아무래도 이름이 너무 크다 싶다. 내 생각에 난 크게 될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하도 운동을 하러다니니, 한때 엄마는 내가 정치판에 뛰어들까 걱정하셨다. 그때 큰언니는 “쟤는 멘탈이 약해서 안돼”라고 툭 뱉었다. 순간 욱해서 반박하고 싶었으나, 속으로는 나와 그다지 대화도 많지 않은 큰언니의 예리한 통찰력에 눈이 휘둥그레 했다. 맞는 말이었다. ‘존경받는 큰 인물이 되기’란 줘도 마다할 만큼 싫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차라리 산에 사는 꾀죄죄한 은둔자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회의가 늦어진 저녁, 사포마을 주민 두 분이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사포마을은 지리산 골프장 예정지 바로 앞에 놓인, 고작 6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골프장 이슈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근래 구례 곳곳엔 수상한 현수막이 우후죽순 걸렸다. ‘온천골프장 협약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문구도 디자인도 똑같지만, 어디 마을 발전협의회, 어디 골프장협회, 어디 마을청년회 등등 현수막을 설치한 단체만 달랐다. 무려 400개의 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쌍수를 들고 골프장을 환영한 기이한 일이었다. 군에서 현수막은 이미 만들어놓고, 각 단체에서 돈 내고 찾아가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 두 분은 서로 모르는 분이라고 하셨다. 환경운동을 하던 분들도 아니셨다. 주민께서는 눈물을 지으시며 마을 뒤편의 나무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잘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주민께서는 그곳이 매일 자신의 반려견과 다니던 산책길이었는데, 원시림과 같다고 느낄 정도로 자연스러운 숲이었다고 했다. 공사하시는 인부에게 나무를 왜 이렇게 베느냐고 여쭈니 ‘재선충 방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병에 걸렸다는 소나무만 베는 게 아니라 모든 풀과 나무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주민을 찾다가 서로를 알게 되셨다고 했다. 회의를 마친 그 주말에 나도 벌목지를 방문했다. 벌목지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만 벤 것이 아니고, 풀도 밀어버렸는데 완전히 운동장처럼 흙만 남은 꼴이었다. 벌목된 구간은 한 장소에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허허벌판이 된 벌목지는 아찔하게 깎아지른 절벽을 지나 산 능선 반대쪽까지, 그리고 그 반대쪽의 반대쪽까지 이어졌다. 풀뿌리가 없어 밟으면 발이 푹푹 꺼지는 벌목지를, 너무 넓어서 다 걸어서 갈 수도 없는 땅을 허우적대다보니 속이 메스꺼웠다. 벌목지와 벌목을 겨우 면한 숲의 경계에 서면, 그 경계를 따라 새소리의 침묵과 소란이 교차했다. 그 경계의 나무들은 포크레인에 스쳤는지 팔이 하나씩 부러졌고, 풀잎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심장이 몹시 빨리 뛰었다. 발표하기 직전처럼 불안하기도 하고, 계곡에서 발이 닿지 않을 때처럼 몸이 경직되기도 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엉엉 울었다. 방금 보고 온 걸 잘 돌아보고 싶었는데 어려웠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현장에 갔을 때도 여전히 인부들은 일을 하고 계셨다. 나도 인도의 그 여성들처럼 그 앞을 가로막고 나무를 지켜야하지 않았을까? 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메스꺼운 배만 주무르다 왔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하던 마음과 달리 그날 이후 이틀 동안 집안에만 처박혔다. 집밖이 무서웠다. 사실 구례는 골프장만 문제는 아니었다. 지초봉엔 짚라인과 모노레일이 들어섰고, 산동 골프장 예정지는 지리산 케이블카 마지막 정거장이라고도 했다. 섬진강과 모든 지천엔 수해를 막겠다고 제방 공사를 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목격된 지천이나 수해피해가 심하지 않던 지천도 어김없이 제방공사를 피하지 못했다. 봉덕정의 활 쏘는 사로를 넓히겠다고 불법으로 산을 도려냈던 봉성산은, 사로 확장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지리산사람들’에서는 ‘난장판 구례답사’를 열어 이 현장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보를 만들고 홍보도 했지만,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이 아닌 참여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정말 400개 단체만큼의 주민들이 골프장을 환영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난장판 구례답사’ 당일에 한 번 더 벌목지를 방문했다. 처음 방문 때보단 넋이 덜 빠진 채로 숲을 돌아봤다. 죽은 나무들은 값이 나가는 굵은 것들과 돈이 안 되는 가느다란 것들로 분류된 상태였다. 소나무, 편백나무, 덜꿩나무, 때죽나무, 회나무... 아는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면서 애도해보았지만, 죽은 나무들은 포크레인에 잎과 수피가 모두 벗겨져 누구신지 식별하기 어렵기도 했다. 이날도 벌목지에선 인부들이 한창 일을 하고 계셨다. 등산객인 척하며 여기 길이 모두 사라졌느냐고 물었는데, 한 인부께 돌아온 답이 기억에 남았다. “산 좋아하는 분들한테 저 같은 놈들 하는 일이 참 면목이 없어요.” 면목이 없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 인부께서는 내가 전에 살던 옆마을에 사신다고 했다. 사포마을 주민들은 곧 누가 찬성이고 누가 반대이냐에 따라 편가르기를 하게 될 터였다. 20년 전 똑같은 골프장 사업이 발표된 후 숲을 지키겠다고 나선 주민들에겐 업주 측의 폭행과 민형사 손해배상, 재산 가압류가 돌아왔다고 했다. 벌목지 인근의 계곡엔 원인 모를 흰 거품이 일었다. 인부들이 먹은 배달음식 스티로폼 용기가 바람에 날려 숲 곳곳에 흩어졌다. 박새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포크레인 소음보다 더 크게 목이 터져라 지저귀고 있었다. 숲에서 땔감과 풀과 열매를 얻던, 그래서 숲이 사라진다는 말에 기꺼이 달려가서 숲을 끌어안았던 그 옛날의 인도 여인들이 느꼈던 숲과의 연결감을 이제 우린 느낄 수 없게 된 걸까? 골프장이 지어지면 푸른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제초제를 뿌린다던데. 그럼 골프장 아래 사는, 산의 계곡물과 지하수를 먹고사는 주민들은 어떻게 되려나? 멸종을 앞둔 담비와 수달의 똥이 인근 숲에서 발견됐다던데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하지만 찬성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인간들 결정에 관심 없지만 함께 불행해질 다른 존재이든, 골프장 잔디를 먹고 살지 않기는 그 옛날과 달라진 게 없었다. 골프장 예정지 벌목지 사진들 난장판 구례답사 중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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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보이지 않는 도시
    오래전 이미 고인이 되신 한겨레 구본준 건축기자의 블러그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는 출장 중 이태리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이승을 떠났다. 너무 황당해 한동안 그의 블러그를 들락거려 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가 건축 전공도 아닌데 건축물을 보며 쓴 여러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오래된 골목길 이라던지 어느 곳에 있는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 같은 것을 세심히 관찰한 글이었다. 당시 우리 아들이 건축을 전공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고 건축에 관심도 없었지만 그의 글은 나를 최초로 건물을 둘러싼 공간으로 초대했다. 나는 공간 개념이 없어 방향을 헤매고 길도 못 찾는데, 나와는 달리 아들이 건축 디자이너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나는 구기자 덕분에 건물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고 건물이 가끔은 눈에 들어오지만 전문성이 없으니 그저 한눈에 멋있다!고 느끼는 정도다. 우연히 접한 이 책은 건물에 대한 관심을 나에게 조금 더 보태어주었다. 도시에서 늘상 보는 건물에는 인간의 심리가 숨겨져 있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는데 외국에서 살다 보면 자연히 한국과 다른 점이 눈에 띄게 된다. 왜 그렇게 다른지에 대한 고찰은 파면 팔수록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는 그 이유를 알고야 만다.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저자도 밝혔듯이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의 단순 비교를 떠나 그 이유를 촘촘이 들여다 보고 비교하며 설명한다. 사진으로 보여주니 더욱 이해가 간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 건물이 아닌 사람이 보인다. 건물이 사람을 어떻게 행동하게 하고 변화 시키는지 알고 보면 참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군가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라고 말했던가?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그렇게 느낀다. 10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 하나를 골라 쓰려해도 어렵다. 나에겐 모든 장이 흥미롭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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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누가 하늘다람쥐를 죽였나?
    이 소설의 배경은 강원도 대미산인데 내가 지리산 속에 들어와 경험한 것들과 비슷하다. 소설 속 강원도 대미산에는 풍력발전소가 들어온다고하여 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다. 풍력은 친환경에너지이기 때문에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형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멋진 장면 만을 상상한다. 에너지도 만들고 관광자원이 되니 일석이조라 여긴다. 그러나 그 설치를 위해서는 많은 땅이 필요하며 주변에 살던 사람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그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아 가는 소음으로 일단 사람들은 근처에 살지 못한다. 산속 마을인 우리 동네에도 산을 깍아 태양광을 설치하겠다고 해서 주민들 간에 갈등이 생겼었다. 결국 일부 태양광이 설치됐다. 그리고 주변 곳곳 산자락이 나무가 아니라 태양광 판넬로 번쩍인다. 한번 틀어진 주민 사이의 골은 아마도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하동 옆 구례는 산을 깍아 골프장을 만든다고 난장판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은 어디나 수난을 당하고 있다. 한국은 산이 국토면적의 64프로라고 하는데 아마도 5프로 정도는 이미 평지로 바뀐 모양이다. 내가 십여년전 글을 쓸 때는 산지가 70프로라고 했었다. 십년이 또 지나면 아마 산지는 또 십프로 가량 줄었을지 모른다. 모든 산을 깍아 골프장도 만들고 태양광도 설치하고 아파트도 세우면 돈을 많이 벌테니 말이다. 돈이 많고 시간도 많고 골프는 쳐야 하는데 골프장이 없으니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산을 날려버리면 된다. 에너지가 모자라니 산을 깍아 풍력발전소도 세우고 태양광 발전소도 세우면 된다. 그리고 즐거운 인생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맘껏 즐기다 가면 그 뿐이다. 몸으로 하는 노동은 돈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시키고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물이 오염되고 공기가 척박해졌다고해도 돈으로 물도 사고 공기도 사면된다. 돈은 몸하나 안 놀리고도 부동산 팔고 사면되고 돈을 넣다뺐다 금융투자하면 되니 말이다. 몸을 안쓰면 고장나니 돈내고 에어콘 나오는 시원한 짐에 가서 땀 빼면 된다. 모든 오염의 근원은 에너지다. 휘발류차가 오염되니 전기차로 바꾸면 된다. 화석에너지는 오염되니 친환경 에너지로 바꾸면 된다. 과연 그럴까? 전기차의 전기는 어디서 나오며 친환경 에너지는 과연 얼마나 친환경일까?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며 무한정 만들어지고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일까? 단하나의 진리,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걷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편한 만큼 에너지는 소비되고 있다. 에너지 소비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지구에 쓰레기를 쌓아 놓은 일이다.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만들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해결 방법은 단하나, 안 쓰는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이 남아 돌아간다. 너무 많이 버려지고 있다. 안쓰고 안 만들고 안 파헤치고 안 편하면 된다. 나 먹고 쓸 만큼만 내 손으로 준비하고 남는 것은 서로 바꾸면 된다. 너무 지나치게 앞으로 갔으니 그만 스톱하고 한발짝 씩 뒤로 물러서야 한다. 소설 얘기를 하다 에너지 이야기로 빠졌다. 결국 이 소설도 같은 맥락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새봄이라는 아이가 경험한 숲을 통해 하고 있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숲 속의 많은 나무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숲의 모든 것이 다 나같은 생명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풀 하나도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 한다는 것을 약간의 관심으로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고 만물의 영장도 아니며 그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은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하지만 자연과도 더불어 살아야 역사는 이어진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자식을 죽이는 일이다. 하늘다람쥐는 그저 한같 작은 짐승이 아니라 내 자신이며 내 자식이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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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6
  • 지리산 둘레길 그림 편지
    지리산 둘레길 21구간을 두사람이 걸으며 한분은 그리고 한분은 썼다. 구간마다 그림이 있어 한분의 수묵화를 이렇게 많이 감상한 것은 처음이다. 나는 21구간을 대부분 걸었지만 아직 걷지 못한 곳도 있고 여러번 걸은 곳도 있다. 내가 걸었던 낯익은 곳의 그림은 더욱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된다. 수묵화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많이 감상하지도 않았지만 수묵화는 흑백에 익숙하다. 이책에 수록된 수묵화는 대부분 채색 수묵화이다. 산의 둘레이니 만큼 나무색인 초록과 땅색인 흑색이 대부분이다. 그런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자연 속에 마치 떡국위에 혹은 냉면 위에 얹힌 고명처럼 사람이 있다. 자연 속의 사람은 원래 그렇게 작은 존재임을 새삼 실감한다. 마을마다 있는 당산나무의 위용이나 산봉우리의 위엄에 비하면 실로 하찮게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기에 있어 그림이 더욱 빛난다. 아주 작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그 몸짓의 섬세함에 감탄한다. 화가가 그린 실상사의 탱화에 이르러서는 다른 그림과 너무 달라 한분의 작품인가 의구심이 들며 입이 딱 벌어진다. 한폭의 그림으로 모든 것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화가 이호신님 인가 싶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자기의 감상을 적은 책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글을 쓰신 이상윤 님은 지리산 자락에 살며 지리산 둘레를 걸으며 직접 길을 내신 분이다. 길마다 마을마다 구간마다 감상은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존재는 사연을 가진다"고 그가 말했듯 구간마다 길마다 많은 이야기가 있다. 또 자신의 추억도 그 걸음만큼이나 많을 것 같다. 순례자의 따뜻한 시선과 깊은 사색이 있는 그의 편지는 말한다. "지친 우리가 안길 곳은 지리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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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4
  • 질문 빈곤 사회
     저자 강남순은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 교수이다. 미국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철학 석·박사(Ph.D)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쳤다. 2006년부터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에서 자크 데리다 사상,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 등 현대 철학적·종교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등의 사상과 연계해서 코즈모폴리턴 권리, 정의, 환대 등의 문제들에 대해 학문적·실천적 관심을 두고 쓰고 가르치고 강연하며 다양한 국제 활동을 한다. 지은 책으로는 《질문 빈곤 사회》,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2020 세종도서), 《매니큐어 하는 남자》, 《배움에 관하여》, 《용서에 대하여》(2017 세종도서), 《정의를 위하여》,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2019 세종도서), 그리고 《안녕, 내 친구는 페미니즘이야》 등이 있으며, 페미니즘과 종교 3부작으로 《페미니즘과 기독교》(개정판), 《젠더와 종교》(개정판), 《21세기 페미니스트 신학》(개정판) 등이 있다.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시사인》 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2017년 《경향신문》에서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었다.(출판사 글에서 발췌) 강남순은 미국은 몰라도 한국에서 더 인지도가 높을지 모른다(내생각, 난 한국에서의 그녀의 활동 밖에 모르니까). 그녀는 방학마다(아마도) 한국에 와서 강의도 하고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진다.(내가 아는 바로는) 나도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 그녀는 철학자지만 크리스챤이라 그녀의 글을 읽으면 쉽게 공감이 간다. 우파나 좌파가 뭔지 나도 잘 모르지만 난 예수님을 좌파의 두목이라 생각하고 있다.(내 마음대로) 예수님은 언제나 가난하고 사회에서 힘없고 병든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사셨다. 나는 내가 좌파인지 뭔파인지 모르지만서도 굳이 줄을 서라면 좌파일 수 밖에 없다. 청년 예수! 그가 내 애인이니까!. 그런데 강남순의 글은 마치 내가 더 공부를 많이하고 사회에 대놓고 글을 쓴다면 강남순 같은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그래봤자, 그녀의 칼럼과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설래발이라니...옇든 그녀를 존경한다. 시간나는대로 그녀의 책 모두 읽어볼 것이다.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쓴 "아이히만 보고서"에서 아렌트는 '악(evil)'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 아렌트의 이러한 악의 개념 규정은 한국 사회에 이미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잇다. 그렇지만 정작 그 의미가 나 개인의 삶이나 우리가 몸담은 한국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식은 대중화되지 않았다. 소위 '선량한 사람'이 비판과 사유를 하지 않을 때, 왜곡된 정치적 이데올로기 또는 왜곡된 조욕적 가치에 의해 '선동'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인류에 대한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늘 상기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다.p6 변화란 마치 뜨개질을 하는 것과 같아서 완성을 위해서는 꾸준하게 지치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한 번에 한 걸음씩(one step at a time)'의 입장을 지켜내며, 인내심을 가지고 개혁의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변화의 의미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험법에 근거하여 설득했다. p154 그렇다고 해서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환경결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처한 조건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많은 것이 '필연성'이라기보다, '우연성'에 기반하여 벌어지곤 한다. 인간의 삶에서 많은 것이 의도나 능력 또는 노력과 상관없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한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통제 너머에 잇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예를 들어서 절대적 빈곤이 지배하는 나라에 태어나는 것에, 그 어떤 필연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이 능력이 있어서 부유한 선진국 또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고 또는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나라나 가난한 집안에 탱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오로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좌지 우지되는 일은 지극히 제한되어 잇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잇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여러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이런 인식을 하게 되면 고학력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고 높은 연봉으로 보상받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는 태도가 달라진다. 의사, 판사, 검사, 교수, 국회의원 등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진다.p162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곳곳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공평이 숨 쉬는 공기처럼 많은 이의 삶을 파괴하고 ㄲ지게 하고 잇다 .따라서 지금 눈에 보이는 차별과 배제의 현실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어떻게 변화가 가능하가, 라는 근원적 뿌리 물음을 통한 탈자연화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잇는 이 사회에 어떠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의 평등, 다양한 형태의 정의를 확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잇는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p184 미디어가 씨름해야 할 세가지 질문 첫째, 현장이란 무엇인가 둘째, '누구의 진실'인가 샛째, '중앙에 두다'란 어떤 의미인가 p53-54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임신.출산.육아는 길고 힘든 과정이다. 그 과정에 개인적인 기쁨과 희열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고통과 좌절도 있다. 임신.출산의 과정은 단지 여성 개인에게만 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임신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다양한 의미에서 사회정치적 과정이다. 한 인간을 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과정은 결코 개인의 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존재하게 된다. 임신. 출산. 육아가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 남성의 일이며, 개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한 이유다. 이 당연한 상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구체적으로 제도화될 때, 한국 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한 발자국 나아가게 될 것이다. "작은 병회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 인류 역사가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P145 이성애난 동성애 등과 같은 인간의 성적 지향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p216 그렇다. 행복의 추구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보편적 차원의 조건들이 마련되는 것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인 함께 삶을 나누는 '사람과의 관계'에 수렴된다. 삶을 동반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나눔의 기쁨이 있는 삶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다.p290 선진국을 구성하는 가치, 다섯 가지 첫째, 존중의 가치다. 둘째, 인내의 가치다. 셋째, 정직의 가치다. 넷째, 친절의 가치다. 다섯째, 연민의 가치다. p295-298 포장, 전시하는 삶을 던져버리고, "나는 잘 지내고 있지 못해(아이 엠 낫 파인/I am NOT fine)"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구상하는 용기를 작동시키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p305 외로움은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것이다. 반면 고독이란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음'의 상태이다. 동시에 이 세계와 타자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모든 사유는 바로 고독의 공간에서만이 가능하다. 고독은 '나와 나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그 대화가 바로 사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독의 공간에서의 사유란 왜 중요한가. p337 고독의 시간에 자신과 만나는 것은 타자와 '함께-살아감'의 중요한 토대가 되기에, 함께-살아감의 소중한 예식이기도 하다. '고독 연습'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p339 오히려 '어떠한'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나의 삶을 살 것인가, 라는 근원적 물음들을 용감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어떠한 문제들과 씨름하며 살 것이가, 이 근원적 물음과 매일 대면하는 것은, 우리의 살아있음의 과제이다.p346 삶, 무수한 '작심3일'의 축제 그 '작심 3일의 축제' 는 그대 자신 속의 새로운 탄생을 꿈꾸는 자유 희망 그리고 사랑의 몸짓이므로,인간의 삶은 무수한 '작심 3일'들이 만나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므로.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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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4-10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동물권력
    개와 고양이를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는 개는 개의 언어 고양이는 고양이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몰랐을 때는 개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이라는 한 단어 만이 그들의 언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는 개의 소리만 들어도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수 있다. 또 조용한 고양이도 다양한 야옹의 변형으로 의사를 표현하다. 소리외에 몸동작도 그들의 의사 표현의 한방식임은 물론이다. 다른 모든 동물도 그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사회가 있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동물들이 인간과 가지고 있는 연대를 통해 어떻게 소통하고 소통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 알지 못했던, 때론 들어본 적이 있던, 동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알수 있었던 많은 동물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다. 미국에 간지 얼마 안돼 가 본적이 있는 샌디애고 시월드의 고래 이야기는 내가 만났을 고래 일 거라는 생각에 더욱 흥미롭다. 당시는 그저 한마리의 고래가 인간의 훈련아래 물고기 하나 더 먹겠다고 재주 부린다고 별로 특별하지도 재밌지도 않았었다. 고래가 인간의 손동작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뭐가 그리 흥미로울까?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고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불쌍한 고래는 내가 보기에는 '반란', 이 저자의 언어로는 '권력'을 휘둘러 자기의 조련사에게 더 이상 복종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를 죽였다. 이미 책을 통해 읽어 본 적이 있는 임종을 지키는 고양이 '오스카'의 이야기도 있다. 옛 어른들이 고양이를 '영물'이라 칭했는데 바로 오스카 같은 고양이 경우를 두고 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과 함께 살다 더 이상 같이 살지 못하게 되자 인간도 동물도 아닌 비인간으로 처참하게 죽은 침팬지와 오라무탕의 이야기는 인간으로서 죄의식과 미안한 감정이 든다. 인간이 뭐라고... 그들의 삶을 지키지 위해 우리 동네 지리산 사람들이 연대한 지리산 반달 가슴곰 오삼이의 이야기도 있다. 무리와 같은 길이 아닌 '나 만의'길을 가는 인간이 있듯이 끊임없이 지리산을 벗어나 수도산으로 간 오삼이를 인간이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강제로 그를 다시 데려올 권한이 인간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러곳을 헤매다 지리산에 자리를 잡았듯 오삼이도 수도산에 살 권리가 있다. 우리가 모든 이의 사정과 형편과 그 복잡한 머리 속을 알 수 없듯 오삼이의 마음도 알 수 없다. 인간 동물이 인간으로 살듯 비인간 동물도 그들의 뜻대로 살 권리를 인정하면 된다. 점점 동물을 먹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살상을 저지르고도 뭔짓을 했는지 모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책을 잘 대변해 주는 영화 "혹성탈출 3부작'이 떠오른다. 인간 이기심의 끝판이 어떤가를 낯 뜨겁게 보여주는 영화! 때로 우리집 개와 고양이가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인간인 나보다 월등한 능력을 그들에게서 볼 때다. 어쩌다 우리집에 와서 개고생, 냥고생을 하는지... 미안하다. 애들아~~~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4-03
  • [방구일기] 벚꽃이 져야만 하는 이유
    * [방구일기]는 지리산방랑단이 구례에서 하는 일을 기록합니다. 방랑단 활동 외에 구례에서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소개해드리려해요. 참 의미있고 재미난 활동이 많이 벌어져서 알려드리고 싶어요. 가까이 계신다면 함께하셔도 좋고, 멀리서 응원을 보내주셔도 좋고, 소개드리는 단체들에 후원하셔도 좋습니다! 벚꽃이 져야만 하는 이유 글.칩코 조만간 버스타기는 글렀다. 내가 사는 마을엔 하루에 버스가 고작 여섯 번 오는데, 지금 시기가 되면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구례는 바야흐로 벚꽃의 세상이다. 상춘객들로 도로는 주차장과 다름없는 형국이니, 나 같은 뚜벅이가 아니더라도 사정은 같을 것이다.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마음은 설렌다. 들뜬 관광객들에 덩달아 신이 나고, 꼭 내 앞마당에 사람들이 구경오는 듯이 흐뭇하기도 한다. 지난 겨울부터 나무 공부를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진 것도 딱 지난 겨울부터다. 정류장 옆에는 나무가 많다. 숲이 아닌 마을이나 읍내에서도 나무는 적지 않다. 나무의 수피와 겨울눈과 수영을 이리저리 노려보다보면 오히려 버스를 놓칠 뻔도 한다. 겨울이 지나고서는 그 빨갛던 겨울눈이 연두빛으로 차오르더니 마침내 피워낸 꽃을 구경하는 참이다. 버스 안에서 눈부신 벚나무 행렬을 지나치며,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하는구나…’하고 생각한다. 그리곤 문득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하는구나…’하고 생각했을 텐데. 나무공부한지 고작 몇개월이라고 이제 꽃이 아니라 나무가 보인다. 사람들은 나무를 좋아한다.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나무를. 터질듯이 부푼 꽃망울을, 바람에 흩어지는 꽃비를, 그 보드랍고 가볍고 연약한 아름다움을. 꽃이 마사지를 해준 것도 아닌데 목욕탕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말갛고 해사한 얼굴들이다. 물론 꽃이 지고 나면 그게 벚나무인지도 모를 사람이 태반일 테다. 나무공부를 하기 전의 나처럼. 나무공부는 ‘지리산사람들’ 단체에서 하는 ‘겨울나무 특강’을 들으며 시작했다. 나무 전문가 못난이쌤과 나무 학도들 열 몇 명이 구례의 숲을 쏘다니며 나무를 보는 수업이다. 교재는 딱히 없다. 그저 못난이쌤은 죽은 나무를 정성스레 깎아서 만든 삼나무 지팡이만 지휘봉처럼 들고는, “쩌어기 누리끼리 뽕나무 보이시죠?”, “초리 끝이 라면처럼 꼬부라진 나무는 뭐라고 했죠?”하며 질문과 정답을 쏟아낼 뿐이셨다. 처음엔 다소 충격이었다. 내 눈은 일단 뽕나무를 식별할 줄 몰랐고, ‘쩌어기’있는 나무를 자세히 보려한 적도 없었다. 누리끼리한 건 뽕나무고, 푸르딩딩한 건 팽나무라는데 내 눈엔 그냥 다 갈색 나무기둥이었다. 초리 끝이 라면처럼 꼬부라지면 자귀나무인데, 자귀나무는 대체로 키가 나를 8명쯤 세워둔 정도의 높이다. 그렇게 높은 곳에 달린 가지 끝을 가리키는 못난이 쌤을 보자면, 마치 하루살이보다 작게 보이는 시력검사용 숫자들을 읽어보라는 안경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 초리는 가느다란 가지를 뜻한다. 이 말을 못알아들은 것도 당신만은 아니다. 겨울에 나무공부는 쉽지 않았다. 못난이쌤이야 교재도 없이 머릿속에 든 것을 읊으면 되지만 난 우수수 쏟아지는 나무 지식들을 머리에 넣으려면 손가락이 꽁꽁 얼도록 필기해야했다. 또 점점 몸이 데워지는 등산이 아니고, 한두 시간에 고작 1키로를 걷는 정도로 천천히 나무를 보며 숲을 걷다보니 몸도 오들오들 떨렸다. 그런데도 겨울에 나무공부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겨울에도 나무만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숲엔 동물도 풀도 곤충도 숨어버리지만 나무만은 그 자리 그대로 있다. 나무는 겨울이면 나 같은 초보학도에게 더욱 매정해진다. 잎과 꽃이 사라져 누가 누구신지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반대로 겨울에 나무를 동정할 줄 알게되면, 다른 계절에 나무보기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겨울나무는 수피를 보고 주로 식별한다. 수피는 모든 계절 모습이 같다. 모든 계절 ‘수피가 누리끼리한 건 뽕이고 푸르딩딩한 건 팽’이라는 게다. 또 겨울눈도 좋은 힌트가 된다. 겨울눈은 가지마다 쌀알보다 작은 크기로 붙어있는데, 이 쌀알 안에 나무의 꽃과 잎과 씨앗이 모두 들어있다. 그 겨울눈이 움이 터서 봄에 새순이나 꽃이 된다. 나무는 혹독한 추위동안 그 조그만 겨울눈 주머니에 소중한 것들을 보관해둔다. 우리는 겨울 동안 같은 숲을 세 차례나 걸었다. 계속 반복학습을 해야 ‘그 나무가 그 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 역시, 같은 나무가 틀림없어 보이는 세 명의 나무를 보고 못난이쌤이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고 말씀하실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계속 같은 숲을 반복해서 걷다보면, 똑같이 하얗지만 쭉뻗은 느티나무와 구불구불 자라는 사람주나무의 차이를, 똑같이 누리끼리하지만 절대 같은 노란색이 아닌 노린재나무와 개암나무의 빛깔 차이를 구분하게 된다. 그리곤 나무수업을 처음 들은 한 친구가 “윤노리나무랑 대팻집나무랑 똑같이 생겼어”할 때, 나도 모르게 “엥! 전혀 달라!”라고 외치는 건방도 떨게 되었다. 겨울특강이 끝이 아니다. 나무 학도와 못난이쌤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나무까지, 나무의 한 해 모습을 다달이 본다. 수피보단 겨울눈으로 나무를 알아보기가 조금 더 쉬운 편인데, 겨우 외웠던 겨울눈의 모습은 새순이 트면서 다 달라져버렸다. “그래서 수피로 외우라고 한 거예요”라고 못난이쌤은 말씀하시지만, 수피로 동정하는 건 내 수준에선 거의 석사과정이라 어쩔 수 없다. 나무의 봄새순, 여름잎, 가을열매를 몽땅 외워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느냐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수피로 식별할만큼 나무를 들여다보면 결국 사계절 얼굴들을 안 외울래야 안 외울수가 없을 테다. 나무공부는 나무를 보는 내 시선을 완전히 뒤바꿨다. 나무는 결코 다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다. 어떤 나무는 수피가 나비날개 같기도, 다 까진 발뒤꿈치 같기도, 또 단단히 바느질한 모직코트나 바짝 마른 말의 허벅지 같기도 하다. 어떤 나무는 열매자국이 항아리 같기도, 반바지 같기도, 쥐똥이나 빗자루 같기도 하다. 별 볼일 없는 생선가시 같던 겨울의 골담초나무가 샛노랗고 통통한 꽃을 피운 것을 봤을 때는, 꼭 오랜만에 만나 몰라보게 변한 동창에게 반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겨울눈이 꼭 머리 위로 합장한 손 같은 작살나무는 봄에 새순이 나도 그 합장한 손이 그대로 남아있어, 꼭 조카에게 “예전 애기 때 얼굴 그대로네”하는 이모 같은 말을 뱉게 만든다. 난 나무공부가 아니었다면, 나무가 이리 다정한 줄도 몰랐을 게다. 나무가 벌레에게 집을 지어준다는 사실을 아셨는지? 나무는 벌레 때문에 죽기도 하는데,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셈이다. 심지어 꽃눈이랑 구별이 안 갈만큼 근사하고 우아하게 지어준다. 나무 딴에는 집을 지어줄 테니, 더 퍼지지 말고 그 안에만 있으란 의미라고 한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지혜롭고 다정한 방식으로 벌레와 공존하다니! 나무에 벌레집만 있는게 아니다. 나무는 거의 다가구 주택이다. 소쩍새는 나무 속에 집을 짓고, 지빠귀는 가지에 집을 짓고, 버섯과 이끼도 수피에 집을 짓고, 곰은 나무 뿌리 쪽에 커다란 굴을 파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나무 껍질 속에 벌레를 파먹은 자리 안에 거미가 집을 쳐놓은 것도 봤다. 나무는 겁이 많기도 하다. 정원사가 마구 가지치기를 해서 자신이 많이 먹혀버렸다고 생각이 들 때는 몸통에서 마구잡이로 가지를 뽑아내는데 이런 걸 ‘맹아’라고 한다. 그러나 맹아를 키우기엔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결국 그 맹아는 스스로 다시 죽일 수 밖에 없는데, 그 맹아를 치료한 자리는 두툼한 딱지가 지거나 사람 눈동자 같은 흔적이 남는다. 나무는 어쩔 때는 과감해지기도 한다. 자신을 옥죄는 덩굴과 싸울 때는 그 쪽으로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 풍선같은 혹부리를 만들기도 하고, 키 큰 주변 나무와 햇빛 경쟁을 할 때는 냅다 드러눕기도 한다. 못난이쌤의 나무수업은 나무 외형과 이름을 달달 외우는 암기 테스트가 아니다. 나는 나무와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나무가 아프다는 신호는 어떤 모양인지, 나무가 누구랑 싸우다 다쳤는지, 나무가 매연과 소음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건강한 숲에서는 어떤 표정으로 웃는지를 배웠다. 나무껍질의 헤진 자국만 보고도, 고양이가 발톱을 정리하고 갔는지, 다람쥐가 집을 지으려고 껍질을 긁어갔는지, 멧돼지가 가려운 몸을 비비고 갔는지를 살피면서, 나무의 하루를 상상해보는 수업이었다. 못난이쌤의 수업에 기필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은 나무의 ‘효능’이었다. 이 나무는 암치료에 좋고, 이 나무는 집 지을 때 좋고… 못난이쌤은 나무의 효능을 읊는 건, ‘꼭 돼지를 세워놓고 이 돼지는 앞다리랑 뱃살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셨다. 나무를 친구처럼 알아가고 싶다던 못난이쌤의 꿈 속에는 정말로 나무들이 찾아가기도 한다. 못난이 쌤처럼 꿈조차도 나무꿈을 꿀 정도로 나무에 미치려면 나무를 얼마나 들여다 보아야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벚나무는 꽃으로 인간을 황홀하게 만들지만, 꽃이 벚나무의 전부는 아니다. 그 벚나무의 전부가 없다면 오히려 봄에 우린 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못난이쌤은 “꽃은 져야만 한다”고 하신다. 꽃은 벌과 새를 초대하기 위해, 나무가 그들이 좋아하는 향과 색으로 꾸며놓은 사랑스러운 방이다. 벌과 새와 바람 덕분에 씨앗이 만들어졌다면, 이제 나무는 씨앗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해진다. 꽃을 피워 계속 손님을 받다간 기껏 만든 씨앗까지 홀랑 먹힐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무는 필시 꽃을 지게 한다. 손님치레를 멈추고, 아기를 돌보는 방을 고요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요즘은 꽃이 더 오래 필 수 있게 나무를 개량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꽃을 오래보고 싶은 인간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나무는 자신의 할 일을 해야한다. 나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많고도 건강한 열매를 만들어서, 동물과 새와 벌레를 배불리고도 남아, 다람쥐가 씨앗마저 먹어버리고도 남아, 새싹을 틔웠지만 사람 발길에 밟혀서 몇은 죽고도 남아, 다시 당신만한 아름드리 나무로 씩씩하게 성장할 자식을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저를 도와달라고 이웃들에게 친절을 먼저 베푸는 지도 모른다. 벌레에게 집을 내주고, 새와 벌에게 꽃과 열매를, 지렁이에게 낙엽을, 사람에게 그늘을 선물하면서. 나 역시 이 아름다운 벚꽃이 질 때면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꽃은 져야만 한다는 못난이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젠 나무를 축하해주고 싶다. ‘네 할 일을 한 차례 해냈구나. 이제 열매를 살찌우는 일을 응원할게. 꽃이 진 후의 너는 어떤 얼굴로 변할지 또 보러올게.’하는 마음이다. 이 많은 상춘객들이 모두 나무를 축하하는 마음도 한 움큼씩 남기고 간다면 어떨까? 꽃이 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발길을 싹둑 끊어버릴 게 아니라, ‘아무렴, 꽃은 져야지’하는 마음으로 나무의 다음 모습을 기대한다면. 다람쥐는 겨우내 먹기 위해 나무씨앗을 열심히 땅에 묻어 저장한다. 그리곤 땅 위에 떨어진 씨앗을 다 먹고나면 전에 묻어둔 곳을 기억했다가 꺼내먹는다. 그런데 다람쥐는 기억력이 썩 좋지 않아서 저장해놓은 걸 까먹기 일쑤라고 한다. 결국 다람쥐는 씨앗을 심는 나무의 일을 도와주는 셈이다. 나무가 겨울눈과 씨앗을 홀랑 먹히고도 다람쥐를 자꾸 초대하는 이유를 알겠다. 나도 다람쥐 같은 이웃이 되고 싶다. 어린 나무를 밟아 부러뜨리고, 잎과 열매를 왕창 뺏어먹는 무겁고 덩치 큰 동물이지만, 나무 곁에 계속 있고 싶으니까. 내 나름대로 나무에게 필요한 이웃이 되고 싶다. 다람쥐처럼 큰 포부없이도 담백하게 나무에게 필요한 이웃이 되는 건 어딘가 쿨해보이긴 하지만, 난 아무래도 좀 더 질척여야겠다. 나무수업 필기노트의 손때가 벌써 자글자글하다. *’목요일은 나무동무‘ 줄여서 ‘목동반’이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마다 여러 숲을 다니며 나무공부를 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지리산사람들’에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나무에 제대로 미치신 못난이쌤이 환영해주실 겁니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31
  •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이책은 많은 사람들의 짧은 에세이와 시로 구성되어 있고 8장으로 나뉘어있다. 6장은 '느끼기'이며 그중 첫번째 '에쉬 샌더스'가 쓴 '아프다는 것'이 읽은 것 중 가장 동감이 간다.' 아마도 개인적 느낌이 들어간 것이라 느낌적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운동에 열심인 사람 중에는 이글을 쓴 애쉬나 그의 친구 크리스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좀 있겠지만. 환경을 살리기 위해 극한과 극기의 삶을 사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몸과 마음이 다 아픈사람 말이다. 일거수 일투족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가 아픈만큼 내 몸까지 아파오는 사람! 나 같은 사람은 실천을 잘못하니 죄의식에 휩싸일 때도 많다. 다행히 건망증과 망각 증세가 심하다 보니 그럭저럭 대충 살지만... "우리의 감정은 지식에 도달하는 가장 진실한 길이다. -오드리 로드p386 세대와 인종을 망라한 여성 60명-현 시대 기후위기 대응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 언론인, 법조인, 활동가, 농부, 예술가 등의 주장과 분석, 에세이와 시를 담았다. 여성들은 이 책에서 점점 복잡해지는 기후위기의 양상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기후위기에 맞서 사회를 신속하고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다양한 아이디어와 해법을 서술했다. 이는 탄소 배출을 줄일 실질적인 방법부터 생태계 보호와 복원,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시스템까지 광범위한 동시에 구체적이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전문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 저자는 연구와 정책 개입은 물론 직접 행동 등으로 얻은 성과를 공유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폭넓게 보여준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기후운동 또한 활발해지고 있지만 저자들은 변화를 위한 논의와 주체 구성에서 여성이 과소 대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것이 차별을 넘어 인류 전체와 지구에 위협이 될 것이므로 연대와 창의성에 기반한 여성주의 기후 리더십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사회를 바꾸고 위기에서 벗어나 생명을 지키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고 지구 환경을 유지하는 동시에 집단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다진다. 그리고 진실, 용기, 해결책을 갖추고 위기에서 벗어나 공존의 가능성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명의 기후운동 리더가 엮은 이 책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우리를 이끌어준다. (알라딘 책소개) 지금 많은 사람이 청년들이 기후운동의 주역이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청년들은 우리가 먼저 기후운동을 시작한 게 아님을 알고있다. 또 우리는 환경 의식이 레이첼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온 1962년이나 지구의 날이 시작된 1970년에 시작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긴급한 부분을 제기하는 것이다. 2018년 IPCC는 우리에게 최종시한을 주엇다. 지구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C이하로 유지하려면, 10년 안에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p32 내 선조인 오토미-톨텍족은 이 중대한 시기에 요구되는 지침과 원칙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구가 우리를 보살피기에 우리가 지구를 보살핀다는 선조들의 철학과 더불어 자라났다. 선주민들은 수천 년간 그렇게 해왔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자 생활방식이다. 지구의 재생을 위해 일하는 기후정의 활동가나 활경운동가가 되려면 끊임없는 헌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취미가 될 수 없으며, 문화와 사고방식의 변화여야 한다. p33 그 수천명의 선조 가운데는 우리를 이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해 아낌없이 생명을 바친 물푸레나무가 있다. 최초의 인간이 만들어질 때 우리를 사랑스럽게 품어준 대지의 훍,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해준 겸손한 사향뒤쥐도 있다. 이 친척들을 친족 네트워크 안에서 정당한 위치로 복원하면, 모든 생명의 계보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솟아오르고, 우리는 우주의 흐름에 균형을 맞추며 지구를 새로이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프실드든들나바먹(미국 원주민 부족이 기도 말미에 '아멘'과 같이 쓰는 표현이다), 내 모든 친지를 위하여. p68 영혼과 땅은 분리되지 않는다. 바람과 영혼도, 물과 눈물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 펼쳐진 붉은 바위 풍경처럼 깍여나가는 동시에 진화하고 잇다. 우리의 슬픔은 우리의 사랑이다. 공격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가부장 정신의 집단적 광기에서 조용히 벗어날 때 우리의 사랑은 복원될 것이다.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p69 기후변화는 공정한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 중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 즉 기후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디들 중에는 애드섬이 지원하는 핼리팩스의 여성과 어린이, 동아프리카에서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농부, 해수면 상승과 침식으로 땅을 잃은 방글라데시인, 해수면 상승과 영구 동토층 해빙으로 전통을 위협받고 집을 잃은 북극인이 포함된다. 이들의 탄소발자국은 미미하다. 그들은 기후변화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지만, 변화된 기우희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후취약포럼은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85개국이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40%, 사람의 80%를 부담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 p186-187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탄소 배출에 대한 과금뿐 아니라, 법률 및 규제, 대상이 분명한 잇네티브, 기술 발전, 화석연료의 투자 철회와 해법을 위한 재투자, 각성한 주주들의 반란, 화석연료 기업을 상대로 한 승소, 기후에 전념하는 정치인의 선거 승리 등 모든 수준에서의 다양한 행동이 필요하다. 더러운 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 예산을 전환하고, 토양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농업 관행을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건강과 생태계를 해치고, 생물다양성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화석연료 기반의 비료와 살충제, 플라스틱과 기타 합성화학물질을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이 필요하며, 모두가 그것을 요구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p351 화석연료를 태우면 대기가 미세먼지로 가득차 폐와 심장 문제를 일으킨다. 온난해지고 습해지는 온도는 지카 바이러스, 웨스트 나일, 뎅기열 같은 모기 매개 질병과 라임 같은 진드기 매개 질병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 조기 사망의 16%가 대기오염 노출로 인한 것이다. 그 수는 매년 약 900만 명에 달하며, 결핵, 말라리아, 에이즈에 의한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는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며, 우리 모두가 행동에 나서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 p353 바로 이거야, 이렇게 끝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다시 날을 세우게 될까 봐 두려웠다. 사람들 손에서 비닐봉지를 낚아채고, 여자친구에게 집안 온도를 낮추라고 강요하고, 동물 멸종을 일상적인 대화에 끌어올까 봐 두려웠다. 극단적인 순교자가 되어 온갖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려 할까 봐 두려웠다. 나라는 작은 존재와 거대한 문제를 달리 어떻게 조화시킬지 몰랐기 때문이다. p365 기후변화는 흔히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후 누군가가 석유 회사와 정치인들에게 이런 단어들 대신에 적당히 모호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기후변화"라고 바꿔 부르자고 권유했다. p392 고래와 돌고래는 석유회사와 해군이 사용하는 음파탐지기 소음 때문에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 살리시해에서는 바닷물이 너무 빠르게 산성화되어 굴이 껍질을 만드는 것도 힘겹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1950년 이후로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해양 먹이사슬의 기반일 뿐 아니라, 지구 산소의 절반가량을 생산한다. 이 마지막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자연께에 교차하는 위기를 즉시 다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p400 지구상에 일어난 다섯 번의 멸종을 살펴보면, 그 위험은 너무나 자명하다. 특히 폐름기 말에 있었던 대멸종의 경우 대부분 생명체가 전멸했다. 이때의 대멸종은 시베리아 트랩(시베리아와 러시아 전역에 걸친 화산암 지대)에서 나온 온실가스로 촉발되어 기온상승과 기후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순식간에 벌어졌지만, 기온과 온실가스 농도는 지금 우리가 일으키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리게 상승하고 있었다. p401 그저 선하고 자연친화적 인간이 되는 것만으로, 심지어 죽어 없어지는 것만으로 그동안 우리가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치유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고, 우리가 가는 길 또한 바꿔야 한다. 우리에겐 죽기 전에 해야 할 아름다운 일이 있다. p407 가나의 오두마세 크로보 지역의 대모들은 이렇게 충고한다. "당신네 미국인들은 땅에 씨앗을 뿌리면서 기도도, 노래도, 춤도, 헌주도 하지 않죠. 그러면서 어떻게 땅이 여러분을 먹여 살리기를 기대합니까 땅은 상품이 아닌 친척입니다. 그래서 당신들 모두가 병든 거예요!" 심지어 서양 과학조차 우리 질병의 일부가 토양으로ㅂ터 멀러진 것과 관련 있으며, 건강한 토양의 미생물군집에 노출되는 것이 항우울제에 비견될 정도로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한다. 이론운 토양 박테리아인 미코박테리아를 쥐에게 투여하자, 그들의 뇌는 기분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더 많이 분비햇다. 일부 과학자는 정신건강을 돌보려면 흙에서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캌 선주민의 토양 재생 방법을 배우러온 청소년과 성인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농장의 흙이 어떤 이득을 주는지 알 수 있다. 교육 과정은 지렁이 수와 토양 유기물 사이의 상관관계와 같은 지루한 세부 내용을 주로 다루지만, 참가자들은 흙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치유"이며, 집착, 중독, 나쁜 식습관, 고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날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치유 과정을 돕는 것이 단지 토양 박테리아만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아프리카 우주론의 일부는 선조들의 영혼이 지구에 남아 흙과의 접촉을 통해 우리에게 격려와 안내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우리느 지구가 지혜를 전달하는 살아 있고 의식있는 영혼이라고 믿는다 . 하 중의 숲속 토양에도 나무 사이에 당분과 케시지를 전달하는 균사체가 풍부하다는 걸 생각하며, 산림 초개체의 내부 세계와 공유하고 상호의존하는 그 세계의 비밀을 알 수 있다. 땅과의 관계를 치유하며서 우리는 기후와 우리 자신을 치유한다.p474-475 브라질의 과학자 안토니오 도나토 노브레에 따르면 아마존 열대우림 위의 "하늘로 흐르는 강"에 있는 물의 양은 아마존강에 흐르는 것보다 많다. 심지어 가장 건조한 지역에서도 수증기가 넘친다. (생략) 그들은 안개에서 물방울을 포집해 섭취하는 나미브 사막 딱정벌레에세도 영감을 얻엇다. 이 영리한 생물은 다리로 서서 물이 배를 타고 입으로 흘러들게 해 갈증을 해소했다. 레이첼 카슨이 "구름"이라는 에세이에 썼듯이 "저 위에는 또 다른 바다가 있다." p479 우리가 인식하는 물 부족 문제란 땅속에 물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데, 이는 토양이 탄소를 잃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은 토양의 탄소가 고갈된 탓이다. 한 동료가 말햇듯이, "자연은 자신의 탄소를 되찾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가 서 잇는 심리적인 경계도 있다. 세상이 화예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힘으로 충만하다. 우리는 파괴 행위에 연루됐음을 알면서도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로 결심하는 경계에 살고 있다. 지금 일어나는 현실을 생각하기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행동과 무관심 사이를 스치듯 지나간다. 그리고 슬픔과 두려움에 따른 마비 상태와 행동 사이를 오간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든 파괴하는 것이든, 우리가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은 경계에 잇다. 우리의 마음은 도피와 합류, 원칙을 버리는 것과 반격하는 것 사이의 경계에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 경계는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며, 귻에서는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이 중ㅇ하다. 그 경계는 지적인 힘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생태적, 문화적 힘을 담지한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치 우리가 미래를 믿는 것처럼, 마치 우리작자가 씨앗인 것처럼, 당신이 알다시피 그것은 신성하다. 나의 가장 허황된 꿈에서 모든 종의 씨앗이 내게 소리치며 말한다. 땅 위의 모든 헐벗은 자리에 우리를 심고 자라게 하세요. 모든 경계에 씨앗을 심으세요.p490-491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게 몇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하는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변화는ㄴ 우리의 천연자원부터 인간 노동의 결실까지, 지구와 인간으로부터 모든 귀중한 가치를 소수의 사람이 추출하도록 만들어진 경제 시스탬의 가장 끔찍한 증상입니다. 이 시스템이 이 위기를 만든 것죠. 우리가 너무 많이 가져갔음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p506 따라서 우리가 문제를 더 진실한 방식으로 재설정하고 사회 시스템을 더 정의롭게 재구성하면, 남은 일은 자신의 역량을 일깨우고 가장 오래된 종류의 힘을 불러내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특정 지역의 리더십과 전통 지식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출발점으로 생태적 형평성, 기후정의, 인권을 기본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뜻합니다.p508 급격히 변화하고 요동치는 시대, 우리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턱, 현관 또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이 다리는 우리 아래에서 부너지거나, 한 문명이 다른 문명에 자리를 내주는 긴 여명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 걷도록 해줄 수도 있다. -제닌 마리 호겐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생명을 구하는 기반은 서로의 기술에 대한 지식, 서로에 대한 믿음, 이웃을 용서하는 마음, 이웃과 함께 일하고 동원하는 능력이다. 현급 지급기, 물, 식량, 석유, 통신수단 등 모든 것이 무너지면, 신뢰, 존엄, 상호주의라는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을 할용해야 한다. 재난이 닥쳤을 때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당신을 살아남게 할 최선의 기회다. 그때 우리는 이를 깨달았다. 우리가 마주하게 될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동체임을 깨닫는 것이다.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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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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