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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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돌에게>  

 

입춘이네요 돌. 추운 대한 무사히 보냈는지 궁금해요.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다 시피 저는 산책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지난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던 추운날씨에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나갔다가 허벅지가 시뻘개진 것을 보고는 엄청 놀라고, 가벼운 동상인가 싶어 전전긍긍했었어요. 그런데 편지를 쓰는 지금 벌써 봄기운이 살짝 내려온 것 같은 날씨에요. 벌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달까요? 


매 년 왠지 모르게 설레는 감정이 제게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데 그게 참 신기해요. 겨울동안에는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있는데도 더욱 열렬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아 내가 번 아웃이 온 건가?’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괜히 불안했어요. 이렇게 영영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암울하게만 지낼까봐요. 그치만 계절처럼 제 마음도 매 순간 변하고 있었네요. 


돌의 편지를 읽고, 돌에게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아졌어요. 돌이 굴러온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원래의 방식대로 살면 참 편한데 그렇게 살면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을 나도 들어보지 않았던가 떠올렸어요. 제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도 했고요. 돌이 말한 것과 꼭 같은 의미는 아닐 수 있겠지만요. 우리는 변해야 하고, 그것은 불편한 일이 될 테고, 그걸 감수하면서도 나와 함께 하겠느냐고. 그런 얘기를 들었던 저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야?’ 하면서 실망해 떠나는 시늉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늉이라고 얘기한 이유는 내가 그래서 원래의 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있나? 하면 그렇지 않고, 결국 그와 나는 따로가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마치 모든 관계가 지구와 인간의 관계 같아요. 우리가 쓴 반려고양이, 반려다육이 얘기만 보아도 질병과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중요하게 담았던 것 같아요. 그만큼 지구의 위기, 아픔, 고통이 머지않아 나의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데요. ‘불편하게 사느니 같이 살지 않겠어.’하고 지구 밖으로 날아가 버릴 궁리를 하는 사람도 꽤 많아 보여요. 지구도 떠나버릴 생각을 하는데 지구 품에 사는 우리들끼리는 또 얼마나 쉽게 자기를 고집하고, 이별을 고하며 사는가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외면하고, 뒤돌아버릴 수 있는 그 순간에 직면하고, 나의 생김새를 돌아보고, 손을 잡고, 변화의 길목에 들어서는 돌이 참 용감해요. 


입춘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에요. 저는 싸우는 걸 싫어해요. 근데 또 목청껏 ‘투쟁!’하고 외칠 때나 텅 빈 넓은 차도를 뛰어다닐 때면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해서 집회 나가는 데 거부감이 없었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에 도통 가보질 못했는데요.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지리산에 내려오면서 큰 규모의 운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인 일상을 생태적으로 꾸리고, 또 누리는 데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아요. 


작년 9.24 기후 행진이 참 오랜만인 대규모 환경운동 집회 현장이었죠. 여기저기서 알음알음 사귀었던 친구들이 전부 다 모이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고, 풍물패, 퍼커션, 댄서들이 흥을 올려놔서 이게 지금 집회에 온 건지 축제에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어요. 나도 모르게 두 팔과 엉덩이를 앞뒤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고 있더라고요. 홍대 클럽도 이만큼 재밌지는 않았어요. 쓰다 보니 재미보다 ‘즐거움’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네요. 집회를 나갈 때 어떻게 하면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궁리하던 때도 있었어요. 어디선가 공격이 훅 들어와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항상 긴장되어있었죠. 지금은 운동을 하러 나갔을 때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고 싶어요. ‘나는 지더라도 두 번 세 번 이 자리로 나올 거야! 왜냐하면 나는 당당하고, 즐거우니까!’라고 말하고 싶고요.

 

아무래도 제가 노는 걸 너무 좋아하나 봐요. 때때로 밀려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실컷 우는 만큼 또 실컷 웃을 수 있길 바라요. 락 페스티벌에 가기 전날 밤 무슨 옷을 입어야 화끈하게 놀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듯이 환경 운동하러 가기 전날 밤에도 잔뜩 설레며 옷을 고를 거예요.


봄을 기다리듯이 돌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이만! 짹짹.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많이 늦었어요. 미안하다는 말부터 전해요.. 밤낮이 바뀐 채로 지냈어요. ‘띵동! 돌에게 입춘 편지가 도착했어요:)’라는 메일이 알림창에 열흘을 떠있었는데, 매일 새벽 감기는 눈으로 바라만 봤어요. 어떤 얘기가 있을까, 나는 어떤 얘기를 이번에 담을까.. 생각하다 잠들었어요. 기다리며 지치고 실망할 마음이 걱정되는데, 그동안 제가 지나온 시간을 잘 나누면 괜찮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 편지를 열어요. (빨개진 허벅지는 잘 회복되었나요? 참새가 느꼈을 얼얼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흔적을 따라 느껴져요.)

 

온도가 영상에 머무는 날들을 지내며 입춘의 시간도 꽤 지나왔음을 느껴요. 저는 아직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새로움’에 진입하기 전인 것 같아요. 헐레벌떡이 일상이거든요. 활동을 제 일상의 안정보다 우선하고 있어요. 활동이 일이고 일이 곧 저와 제 관계에 구성한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우선 순위를 유지해왔어요.(참새가 물어봐준, 공동체를 의식적으로 구성하는 행위는 이런 마음을 배경해왔을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선 다음, 서로를 살릴 수 있잖아요. 연말부터 연초까지, 겨울잠처럼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이 시간’동안, 스스로 서는 법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찾고 싶었어요. 저에겐 나름 큰 깨달음이고 다짐이었답니다ㅎㅎ 그래서 먼저 해오던 것들을 잘 매듭짓고 싶은데. 끝이 따로 없나봐요. 나와 서로를 분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 두려운 마음이 섞였어요. 그렇게 헐레벌떡이 누적되고, 매듭짓기는 유예시키고 있어요. 약속들이 자꾸 지연되는 와중에 편지도 한참이 지나 열게 되었어요.

 

아직 새로운 시간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참새가 말한 설렘의 기운은 느껴요. 계절이 바뀌는 건 제가 지연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니까요. 계절을 따라, ‘아직 덜 된 거 같은데..!’하는 마음을 가져도 넘어가야만 하니까요. 아쉽더라도, 그 덕에 한발짝 내딛어요. 무겁고 미련도 정도 많은 ‘돌’을 굴리는 이 계절을, 참새의 편지 덕분에 감각해요. 그치, 설렘의 계절이지. 산책하기 좋지 하며 봄맞이를 준비하는 2월이 될래요.

 

전투복이라니! 전투라는 단어랑 친하지 않아서 바로 생각나지는 않아요. 방랑단분들이 주신 이야기를 힌트 삼아 고민해봤어요.

 

‘쎄보여야 할 때’라.. 저는 각진 옷을 자주 찾아요. 어깨가, 소매 끝이, 깃이 반듯한 옷을 입으면 위풍당당하게 걸을 수 있어요. 서울에 사는, 바삐 활동하는, 개인의 능력을 계속 질문받는다고 느끼는 저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런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더라고요. 나를 지키고 유지하려면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어야 해요. 저의 방이나 산 그늘, 숲, 농촌 길거리에서는 그런 반듯함이 오히려 어색하고요. 참새가 지리산에서 보낸 시간, 일상을 생태적으로 꾸리고 누리는 일을 할 때는 경계 짓기가 아닌 허물고 스며드는 방법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밭일용 바지의 엉덩이와 무릎에 든 흙빛과 내음은 어떻게 털고 빨아도 잘 안 사라지잖아요.ㅎㅎ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환경운동은 ’인디언들의 마지막 전투‘였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전투라는 단어가 조금은 이해돼요. 참새는 싸우는 걸 싫어한댔죠. 저도 그래요. 해결하고 대화를 제안하고 중간에 끼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투쟁이라! 저는 왜 싸울까요. 곁을 관계를 생명을 터전을 잃는 일이 더 두렵고 절박해서 ‘지키는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924기후행진이 즐거운 축제였다는 것, 어떤 공격을 걱정하며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정말 반갑고 감사해요. 다행이에요, 924 때 행진을 담당해 준비했거든요! 축제를 바랬어요 정말로. 해방의 순간에 우리는 이런 기분일까 하고 느낄 수 있는 틈새를, 장을 만드는 것이 행진에 담은 여러 마음 중 하나였어요. 투쟁은 뭘까, 어때야 할까 라는 고민에 머리 아팠는데 해방과 축제의 장소를 지키는 것도 투쟁의 중요한 이유라는 걸 참새 덕에 확신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또 다른 전투복은 퀴퍼 옷 같기도 해요. 즐거운 긴장을 주는 화끈함과 무지갯빛의 화려함과 편안함을 주는 옷들요.


나의 투쟁과 싸움은 해치고 짓밟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지키고 나와 너를 연결해 살리는 일이라는 걸 새기고 나니, 전투복도 자랑스러워요! 일상이 투쟁인 서울살이지만 옷장을 열 때, 긴장보다 용기를 얻겠어요.

 

진짜 봄맞이와 함께 다음 편지를 나누고 싶어요. 나중으로 미뤄둔 일들을, 계절의 힘을 빌려 ‘지금’으로 끌고 올래요.

 

오래된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이, 부분적이라도 활동을 떠나는 것 같고 충분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내 의미를 잃는 것 같아 두려웠는데요. 구르는 돌도 땅과 떨어지진 않으니까요. 더 오래 같이 걸어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새기며. 구석에 박힌 돌을 바람이 밀어주길 바라며!

 

참새의 설레는 산책과 축제같은 투쟁을 만드는 일에도 이 계절이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편지를 닫을게요! 데구르르~

 

돌이, 2월 1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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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편지 : 참새와 돌] 이 계절이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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