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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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천하무적 기후운동가 산달에게>


산달! 오늘도 꽃이 수놓인 양말을 신고 나섰나요? 전 사람들이 꽃을 닮은 옷을 입는 게 참 귀엽게 느껴져요. 철쭉과 벚꽃만 남긴 도시에서조차, 사람들은 실은 무지하게 꽃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어느 부부가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도 아이 앞에선 말을 가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꽃 앞에서만큼은 그를 닮아 사랑스러워지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산달의 기후운동용 전투복은 성능이 굉장한 셈이군요. 산달에게 나눌 절복이 생긴다면 기꺼이 주고 싶어요. 방랑단 때 ‘유니클로’라 부르던 헌옷수거함 센터가 있는데, 그곳에 함께 쇼핑가도 좋겠어요. 꽃양말이 어울릴 절복을 잘 수소문해볼게요.

 

지난 편지에 산달이 저와 꼭 가까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잖아요. 입춘 편지를 보니 산달이 저와 엄청 닮은 듯이 느껴져요. 산달의 모든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읽었어요. 어떤 부분이 동감이느냐 물으면, 일일이 고르기 곤란할만큼이요. 도시의 쏟아지는 정보 이야기나, 독을 입고서도 끄떡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왜 그런 옷을 입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나무님을 소개시켜달라는 이야기! 나무님이라니! 저와 말습관이 닮아서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모든 존재에 존칭하기란 남들 앞에선 영 쑥쓰러워서 숨기거든요. 나중에 산달이 소개해주는 나무님들과 정중히 상견례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절복을 칼각으로 다려입고 나갈게요.


그리고 ‘어떤 옷을 입느냐는 선택과 의지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주어지거나 휩쓸리기 쉬운 종류의 것’이라고 했죠. 사랑조차도 그렇다고요. 산달의 답신이 늦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요. 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거죠. 그러니 다음에 또 늦더라도 사과하지 않기로 해요. 왜 편지가 늦었을까 상상해보고, 조금은 아쉬워하고, 늦게나마 도착한 편지를 읽고 배로 기뻐하는 시간을 제게 선물했다고 생각해요.


저를 궁금해해주는 산달이 고마웠어요. 이번 편지에 어떤 말을 실을까 고민했어요. 특히 왜 지리산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말하자면 한 통의 편지로는 부족할 거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걸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할 재주가 없는 까닭입니다. 미욱한 설명이 저를 오해하게 만들까봐 구구절절 덧붙이고서야 마음이 놓일 테니까요. (귀촌수다회를 일박이일로 잡는다면 덜 초조할텐데, 딱 이런 자리가 저를 골몰하게 만든답니다.) 어느 시간이 넉넉한 누군가가 ‘마음껏 헤매며 말해도 좋아!’라며 저를 기다려준다면 용기가 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산달의 소한 편지에 적힌 ‘기다림’이 바로 이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편지에 씩씩하게 써보려해요.


저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공부했어요. 대학을 마칠 쯤엔 주말농장과 광화문 광장을 자주 다니는, 짧은 머리의 채식주의자가 돼있었고요. 공부가 끝난 마당에 이제 운동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어쩐지 더 대단한 머시기가 돼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아하던 프랑스문학을 좇아 프랑스로 훌쩍 떠났습니다. 몇 년은 살 작정으로요. 프랑스에서 전 정신병자가 됐던 것 같아요. 토할 듯이 폭식을 반복했고 집에 혼자 틀어박힐 땐 환청이 들렸어요. 거리에 나서면 누군가 갑자기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고, 일이 마음대로 안풀릴 땐 군중 한복판이라도 괴성을 질러야 분이 삭히곤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인종차별이었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아직 테러가 터진 적 없다는 보기 드문 도시에 있었는데, 저에겐 나날이 테러였어요. 당연히 안전하다고 느끼던 공원에서, 마트에서, 강변에서, 집안에서, 학교에서 매일 갑자기 누군가가 욕이나 성희롱을 하고 지나갔어요. 무슨 좀비영화 같았어요. 방심할 틈도 없이 돌연 누군가 총을 뻥 쏘고 가버리는 기분. 그나마 마음을 열고 지내던 친구가 문득 낄낄거리며 인종차별을 하면 순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돼버린 듯한 기시감. 저처럼 편집증을 앓던 유학생끼리 글모임을 하며 버텼어요.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날것의 글을 쓰자는 의미로 ‘팬티를 벗어버리자!’가 모임의 슬로건이었죠.


유학생 친구들에게 ‘넌 망할 프랑스에 왜 왔어?’하고 물었어요. 저마다 이유가 달랐어요. 프랑스가 와인이 최고니까, 프랑스가 철학이 최고니까. 영화가, 건축이, 음악이, 베이킹이, 패션이, 요리가, 문학이… 다 최고니까. 정말 저 많은 분야에서 다 프랑스가 최고라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매일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이 프랑스에 쏟아져요. ‘망할 프랑스놈들 너넨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욕해주고 싶은데, 왜 오만한지 알만도 하더라고요. 그제야 세상이 요지경처럼 보였어요.


서울의 대학이 최고라니까 인천에서 서울로 꾸역꾸역 올라왔던 스무살의 저처럼, 서울이 교통이든 회사든 학교든 인프라든 다 최고라니까 사람들이 마구 모이잖아요. 서울의 집과 지하철은 스툴처럼 변하고 사람들은 옆 존재를 부리로 쪼고마는 공장식 축산 닭들처럼 쉽게 짜증을 내고 인색해요. 눈이 뻑뻑하도록 유튜브를 새벽까지 보거나 배달음식을 배에 쑤셔넣는 것으로 자학해요. 프랑스가 최고라니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마구 몰려오고 결국 사정은 같아요.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해요. 무시하고 동경하고 방자하고 비참해요. 죽어가요. 


일 년만에 전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불어가능자라 하면 다들 부러워하는 곳으로. 그렇지만 귀국하고 단 한 번도 불어책을 들여다본 적 없는 실패한 유학생으로요. 그리곤 공동체와 에코페미니즘과 퍼머컬쳐 책들을 체할 듯이 뒤져보았어요.귀촌할 돈을 모으려고 농민권과 관련한 일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출퇴근 지옥철 탓인지 건강이 많이 악화됐어요. 장염, 위염, 역류성식도염, 만성비염, 방광염… 온갖 잔병을 다 달고 살다가 퇴사해버렸죠. 머리를 채우는 일은 그만 충분히 한 것 같았어요. 


시골엔 아주 짧은 줄에 개를 묶어두는 이웃이 많아요. 그 개들과 함께 산책하면 대부분 허겁지겁 목줄을 당기면서 안 가본 곳을 딛어보고, 처음 맡는 냄새를 맡고, 나뭇가지를 와작와작 씹어요. 올드보이처럼 당신을 오래 가둔 놈을 찾아가서 족치는 게 아니고, 그분들이 자유로울 때 하고싶은 거라곤 이런 일이죠. 저도 퇴사하고 서울에 침이나 시원하게 내뱉고 귀촌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하자센터 옥상에서 정수리가 뜨거워지도록 직조를 하다가 낮잠을 잤어요. 낮에 해를 쐬는 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이젠 몸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식민주의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으려고 교섭을 시도했대요. 위스키와 보조금을 줄 테니 산과 강을 내놓으라고 한 거죠. 교섭은 성사되지 않았어요. 인디언들은 더 바랄 게 없는 이들이었고, 식민주의자들이 가진 것 중 인디언들이 탐낼 만한 건 무엇도 없었기 때문이라고요. 도시를 떠난 후 제 마음이 딱 이래요.도시엔 제가 탐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리산 품에서 저는 더 바랄 게 없음을 매순간 느껴요. 아, 지리산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공동체가 있어 선택한 곳이에요. 공동체와 썩 나쁘게 이별하고서는 지리산도 떠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도시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지, 굳이 지리산일 필욘 없었거든요. 


공동체에서 나온 후 집이 없어 반년에 한 번 꼴로 보따리를 이고 다녔어요. 매번 달라지는 시골집 중에서도 저는 반드시 마당에 한 평이라도 흙이 있는 곳을 골랐어요. 제 똥과 오줌을 모으고 씨앗을 뿌려야 해서요. 마당엔 불간을 부릴 곳과 조금의 장작을 쌓을 곳도 있어야 했어요. 숲길을 걸으며 산딸기와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울 때면, 꼭 자본주의자들은 길거리에 돈이 쏟아져있으면 이렇게 기쁠까 싶어요. 숲은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낙원이에요. 숲은 제가 누군지 알게 해줘요. 그곳에서 전 부자가 돼요. 우린 지구에 한 푼도 쥐고 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부자로 태어났음을 느껴요. 이 풍요로운 지구의 일원으로요. 마당에 모은 제 똥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자란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가 다시 제가 되고나면 제가 무슨 일을 하러 지구에 왔는지 배우게 돼요.


지리산에 홀딱 반한 건 방랑단을 하며 그를 구석구석 깊이 만난 이후였어요. 제가 본 가장 우아한 존재였거든요. 우아함이란 너그러움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닐까요? 지리산은 한없이 너그럽고 기품이 넘쳐요. 지리산은 제 전부에요. 제 전부가 지리산인 것처럼요. 이 말을 뱉고 낯간지러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지만, 역시 맞는 말이에요. 엄마이자 친구고, 치료사고, 도서관이고, 놀이터에요. 그래서 나무나 새를, 약초와 나물을 익히는 건 제게 중요해요. 다 똑같아 보이던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호명한다는 건, 엄마의 어린시절 첫사랑이나 꿈을 묻는 일이자,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친구의 숨은 근심을 읽어내는 일이자, 도서관에서 누구도 펼치지 않은 책을 집어드는 일이에요. 


휴... 간결하게 말하기는 이미 그르친 마당에 급하게라도 맺음을 해야겠군요. 일목요연은 제 재능이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빠르게 자라는 오동나무가 있는 반면, 느리게 자라는 팽나무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해요. 그리고 산달, 벌써 봄을 알아채고 봉우리를 터뜨린 매화나무가 있는 반면, 늦가을에야 꽃을 피우는 차나무도 있는 법이잖아요. 도시사람들은 차나무 같은 것 아닐까요? 많은 손짓을 놓치며 도시에서 봄을 느즈막히 알아채는 지금 산달의 시간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느껴져요. 이듬해 봄님께서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그땐 산달을 번뜩 깨울만한 손짓을 어련히 보내시겠죠? 올해는 제가 봄님의 심부름꾼으로 산달에게 봄을 전했다니 행운입니다. 봄비와 산달을 곧 만날 날을 기다리며.


메리올리버의 시로 하루를 시작한 덕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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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우드 향!

 

 

<팬티를 벗어버린 덕복희에게>

 

이번 편지도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늦게 보낸 편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 고질적인 습관인데요. 늘 할 일을 끝까지 끝까지 미루다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어서야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정신이 아득해지고는 한답니다.. 늘 그래요 늘. 게다가 복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저는 편지나 글을 날쌔게 쓰는 데는 영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또 급한 마음으로 쓴 편지를 복희에게 주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거 있죠. 래서 저는 아예 하루를 편지 쓰는 날로 잡고서 복희에게 해줄 말들을 고르기로 했답니다. 늦어도 그럴 만한더 늦지 않기로, 약속할게요. 새끼 손가락 걸고.

 

지난 번 서울에서의 짧은 만남이 복희의 기다림을 덜 지루하게 만들었길 바래요. 아, 그 날은 정말 완벽했어요! 사실 그 날의 저는 집을 떠나 떠돈지가 오래인 터라 말끔하거나 신선하다고 볼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방랑단 분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마주치니 맑은 기운이 제 묵은 마음을 싸악 씻겨주는 거 있죠. 봄을 맞은 지리산의 마음을 방랑단을 통해 엿보기라도 한걸까요? 그 순간 저는 몸이 있는 곳으로 제 마음을 불러올 수 있었어요. 준비해주신 유자청과 시금치 페스토, 수제 복숭아 잼과 짜이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동네방네 뛰다니며 남산 사람들에게 한 입씩 맛보게 해주고 싶었답니다. 그렇지 못했던 저는 아쉬운 마음에 이 편지를 보는 분들에게라도 굳이 알려보아요.

 

우리 그 날 누가 서로의 짝꿍인지 꽁꽁 감춘 채로 얼굴을 맞대었잖아요. 네 사람 중에 덕복희가 누구일까? 덕복희는 나를 알아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계속 제 마음은 짜릿하고 설레어 두근거렸어요.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로 대화와 웃음을 나누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어색했지만 고마웠어요. 말이 터져나오는 길대로, 생각이 뻗은 모양대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서로의 특별함을 오히려 온전히 느낄 수 있었거든요. 소한의 첫 편지를 주고받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되새겨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각자 짝꿍의 편지 중 나누고 싶은 문장을 낭독할 때는 정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말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는 한, 우린 언제든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 편지에 빼곡히 쓰여진 복희의 이야기들이 참 고마워요. 그 이야기들은 저로 하여금 복희와 지긋이 눈을 맞출 수 있게 해줘요. 삶을 사랑한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줘요. 앞으로 풀어놓을 순간들이 참 많겠지만, 첫 발을 잘 뗀 복희에게 고맙다고 진한 포옹을 보내주고 싶어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 서로를 궁금해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해요. 매우 반갑고, 기뻐요.

 

프랑스든 서울이든 복희가 그곳에서 잘 견뎌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때때로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가 마치 ‘잡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잡초는 실은 다 이름이 있는 풀들이잖아요. 나름대로 그들만의 생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풀들을 뽑아서 버리거나 태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대해요. 안타깝고 무심한 일이죠.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버려지고 태워지죠. 복희가 살다 온 프랑스의 뒤르켐이라는 사회학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기계적 연대가 해체된 유기적 연대의 사회라고 말했다더군요. 별로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었답니다. 누구도 종속된 채로 간 쓸개 모두 내어주는 관계를 연대라고 말하지는 않죠. 받는 쪽은 만족할 줄을 모르고, 주는 쪽은 말라 비틀어져 병들어가요.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일거에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아파 본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아픔을 겪고 있는 존재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서로의 상처를 궁금해하고, 손이 닿지 않는 환부가 있다면 연고를 발라주기도 하고, 그 모든 과정이 사랑임을 깨달아요.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고 똥이 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런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다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 상태를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픔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반대로 모두가 아프기 때문에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지 못하죠. 자식들이 제 몸에 깔려 죽어도 어찌할 수가 없는 스톨에 갇힌 어머니 돼지처럼요. 누구 하나 안 그러겠어요?

 

저는 스스로 별로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통증에 둔감해지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더라구요. 한국에서 지정성별 남성으로 태어나 자란 저는 늘 제가 ‘속해 있는’ 집단의 해로움을 물려받았을 거에요. 괴롭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죠. 저는 그런 내가 어떻게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나름대로 내린 답은, 오히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것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발 딛고 있는 남성성의 지배와 폭력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아주 익숙하고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어떻게 결점이 이렇게 많은 우리가 기후운동을 하냐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복희, 이제 우리 이렇게 대답하기로 해요.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온 건 늘 못나고 이상하고 아프고 무가치한 존재들이었다고. 추한 날것의 존재들이었다고요.

 

저는 복희가 거쳐온 삶의 궤적이 바로 그런 존재들을 직접 만나며 사랑해온 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 복희가 지리산과 함께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 길에서 복희는 아픔들을 충분히 다독일 수 있었나요? 이미 스스로를 활짝 열어놓을만큼 단단해진 복희를 느껴요. 진심으로 존경해요. 이제서야 이 말을 뱉을 수 있겠어요.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모두를 존경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요즘 알아가고 있거든요. 누군가를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 깊이만큼 들여다보고 나의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걸요. 아직 이르고 설익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만큼의 존경을 복희에게 드리고 싶어요. 우아한 복희, 팬티를 벗어버린 걸 축하해요!

 

저는 아직 머리를 채우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책도 보고, 기획안도 작성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에 대해서 세밀하게 표현해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하루하루 몸이 찌뿌둥해지는 거 있죠? 더는 일을 게을리 한 채 채우기만 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현실에 존재한다는 감각에 둔감해져버린 거죠. 그래서 요즘에는 복희가 어떤 감각들을 느끼는지 절실히 궁금해져요. 지리산과 함께라면 바랄 것 없이 온전하다는 감각, 숲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자의식, 공동체 속에서 주고 받는 온기와 용기, 똥과 오줌으로 거름을 만들고 그곳에서 난 토마토의 맛, 이런 것들이 참으로 궁금해져요. 이런, 제가 너무 질문이 많나요? 벅차게 할 의도는 아니였으니 겁먹지 말아주세요. 그저 천천히 마음에서 떠오르는 감각들을 제게도 전해주세요.

 

어느덧 우수의 편지도 가득 채워져가네요. 이 편지를 보내고 난 다음 날 저는 광주로 데모하러 갈 예정이에요. 국립공원의 날을 기념해서 광주의 증심사라는 절에서 기념 행사를 한대요. 며칠 전 설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도록 허락했으면서, 염치도 없는지! 지리산에서도 케이블카를 짓네 마네 하는 싸움이 한창인걸로 알아요. 복희가 사랑하는 지리산을 건들지 않아야 할텐데..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저도 싸우고 오려구요. 응원해줄거죠?

 

언젠가는 함께 싸울 날도 올 것입니다. 내일도 그때도 저는 늘 복희에게서 받은 용기를 한아름 안고 있을거에요. 오래 간직될 따스함이 되어주어 감사해요. 복희가 말한대로, 저 스스로가 어느 누구보다 차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온기가 있으니 올 가을에는 꽃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떤 색일지 누구에게 어떤 향으로 다가설지 기대되네요. 어련히 때가 있음을 의심치 않겠어요. 그때는 제가 복희에게 무언가를 가지고 달려가는 심부름꾼이 될게요.

 

찌뿌둥한 산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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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세상을 바꾸는 추한 날것의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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