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5(수)
 

 

화가가사랑한나무들.jpg

이 책은 그림 책이다.

화가가 그린 나무들로 가득 차 있고 화가와 그림에 대한 해설도 있다.

살아있는 나무는 살아 있어서 아름답고 죽은 건 그 쓰임 대로 멋지다.

 

죽은 나무도 쓰러지지 않고 잎과 가지는 없지만 꼿꼿이 서 있는 것들을 산에서 가끔 본다.

죽은 나무들을 덩굴 식물들이 칭칭 감고 있고 아래쪽에는 이끼와 작은 벌레들이 오몰거리고 있다.

 

나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른 생물들에게 보탬이 되고 있다.

"동면에 들거나 죽은 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다.

나무 안에는 무척추동물과 곰팡이들이 바글거리기 때문이다."

라르스뉘베리의 그림 '고독'에 대한 해설이다.

 

뉘베리의 '고독'은 산에서 가끔 본다.

 

죽어서도 꼿꼿이 서있는 나무!

 

클레어캔식의 나무 그림 제목은 "온화함은 영혼을 맑게 한다"이다.

그녀의 다른 그림 제목은 "당신은 온 세상을 발아래 두었다"이고

또 다른 것은 "예술을 위한 무단 침입"이다

 

캔식은 나무파(arborealist)로 알려진, 나무에 집중하는 미술가 그룹의 일원이라고 한다.

클로드 모네는 센 강 지류를 떠다니는 배를 작업실 삼아

비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나무의 인상을 담은 수십 점의 작품을 그렸다.

 

모네는 건초 더미와 포플러 나무를 그린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집을 샀고

그곳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도 나무 그림을 많이 그렸다.

 

생레미드프로방스 지방의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했던 고흐는 그곳의 나무를 그렸다.

"그것(사이프러스나무)는 햇살을 흠뻑 머금은 풍경의 어두운 조각이긴 하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짙은 분위기이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해."

라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또 다른 편지에서

"올리브 밭에서 나는 속삭임에는 아주 친밀한 무언가가 있어

거기에는 엄청나게 오래된 무언가가 있지."라고 했다.

 

예술가는 그저 '좋다', '멋지다'는 느낌 외에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을 구체화한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나는 왜 그림의 주제로 죽음과 무상한, 무덤을 선택했을까?"라고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의 풍경은 생기없는 색에 죽은 나무가 쓰러져 있다.

반면 이반 이바노비치 시시킨은 죽은 듯 보이는 나무에서 생명을 본다.

그의 그림 "황량한 북쪽에서"에는 아이스스톰으로 뒤덮인 절벽에

무거운 눈으로 덮여 축 늘어진 전나무가 서있다.

 

"전나무의 가지는 큰 눈이 내려 얼어붙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가지들은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고 그는 말한다.

폴 내쉬는 종군화가로 전쟁에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실전을 경험했다.

그는 불탄 후 타버린 나무같이 반이 잘린 나무의 모습으로 전쟁을 보여준다.

"숲 속에서는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안톤 체홉)

 

누구는 나무만 그리고, 누구는 나무 사진만 찍고 누구 나무로 만들고 누구는 나무를 심고 베어내고...

나무를 너무 사랑해서 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무를 보는 마음이 신을 보는 마음이다.


그림이 된 나무는 늘 같은 모양으로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종이에 새겨진 여러 색깔과 모양의 나무들 모두 하나씩 뜯어 방에 붙여 놓고 싶은 욕심은 버리자.

어렸을 적 달력 그림이 너무 좋아서 액자로 만든 적이 있다.

 

논이 있고 바지를 걷어 붙인 아이가 함지박을 이고 있는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옆에 

소가 있는 시골 풍경의 동양화였다.

지금의 시골에선 그런 풍경을 만날 수 없다. 1960년대의 풍경이니까.

 

시골에서 살 운명인가?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어린 내가 그런 그림에 꽂혔다니.

아직도 오빠 집에 그 액자가 붙어있는데 한마디로 '평화'롭다.

 

지금의 시골 풍경도 그리면 평화로울까? 내가 이미 그 속을 다 봤는데...

책의 그림 중 클림트의 <전나무 숲>을 내 폰의 배경으로 깔았다.

전화기 켤 때마다 전나무 숲에 한번씩 들어갔다 나온다.

 

숨을 들이 마시면 숲의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오는 것 같다.

그 숲을 통해 들어가면 신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람이 있고 뉴스와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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