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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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엄마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봤고, 엄마 노릇을 해본 입장에서 든 생각이다.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이다.

조건이 없을 뿐더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준다.

아버지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지만, 아버지가 되어보지 못해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만약,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보고 싶다. 애인도.

여자에게 엄청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몇년동안 소년원에 일주일에 한번씩 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냥가서 애들하고 놀며 대화하는 것이다.

그곳에 온 아이들의 다수가 한쪽 부모만 있거나 아버지만 있다.

엄마만 있는 애들은 그곳에 오지 않고, 아버지만 있는 애들이 더 많이 온다는 야그다.

아버지는 돈벌고 애들 돌보는 것 외에 할 일이 많다.

엄마는 돈벌고 애들 돌보는 것만 한다.

이런 경우를 많이 봤기에 내가 스스로 결론 지은 것이지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우리 엄마도 같은 경우였다.

암튼 고아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나의 결론의 이유다.

 

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라 세상 온갖 불쌍한 모습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

당당하고 활발하고 명량하다.

여기서 나의 결론 또 한가지.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최고의 환경과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몸 속에 뿌리박혀 있는 우울은 소리없이 자라 어느날 거대한 나무가 되어있기도 하다.

빨강머리 앤에게도 왜 우울과 슬픔의 뿌리가 없을까마는 어쨌든 우리가 아는 앤은 그런 것쯤 싹이 날때 댕강 잘라버리는 성격을 가진 애다.

빨강머리앤이 책 뿐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드라마로도 상연됐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리즈 별로 책하고는 좀 다른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볼까 말까...

어쨌든 저자는 박홍규는 책 속의 앤과 드라마의 앤을 분석하며 자기 딸 미령에게 편지를 쓴다.

박홍규는 딸 미령에게 대화하며 딸과 함께 앤을 분석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의 딸 미령은 지금 출가해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부모는 장성한 자식을 보면서도 그의 어렷을 적 모습을 같이 기억한다.

자식이 그의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너는 그 나이 때 이랬는데...라고.

내가 그렇다는 야그.

그래서 80이 되어도 자식은 아직 어리다.

 

엊그제 가수 시네이드 오커너가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직 젊은 그녀가 왜? 뉴스를 듣고 처음 드는 생각이다.

정확히는 모르나 최근 17세 아들을 잃었고 정신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자식의 상실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 박홍규가 딸 미령에게 부탁하는 말의 일부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 이 새벽에 문득 앤 그림을 그리다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한 자 적어본다.

네게 뭘 하지 마라, 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평생 노력했지만 오늘만큼은 참고 들어주었으면 좋겠구나.

무엇보다 아이를 앤처럼 자유롭게 자라게 해주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키우지 마라.

부모 찬스니 스펙 조작이니 하는 더러운 짓은 제발 상상도 하지 마.

가난한 집 아이라고 함께 놀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부모가 되지 말아라.

마릴라나 매슈처럼 딸도 아닌, 그냥 가족으로 입양한 아이인데도 지극한 사람으로 키우는 그런 어른이 되어주렴.

그들이 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당당하게 자라도록 도와준 것처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기억하는 너는 나의 앤이지.

앤과 비교할 것도 없지.

모든 부모에게 그렇듯이 세상에 둘도 없는 딸이고 아들이지.

그 유일성을 지켜주는 게 바로 부모란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집어넣어 인형처럼 만들지 마라.

앤이 인형처럼 변하는 모습은 섬찟하잖아?

그래서 나는 [빨강머리 앤]만 좋아하고 그 뒷이야기는 싫어했어.

너는 운이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고 딸이란다.

그러나 앤처럼 언제나 네 유일성을 잊지말고 살아가길 바라.

이렇게 긴 편지를 쓴 이유도 바로 그거야.

나도 편지를 쓰는 동안 '이제 여생을 나의 유일성을 찾는 시간으로 살아볼까' 생각해보았단다.

그래, 우리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지겠지?

사랑한다. 딸아. 우리, 앤처럼 살자.

자기만의 삶을 살자.

기성의 속물이 되지 말자.

나를 세우되 남을 돕자.

야만에 맞서 바르게 살자.

그래서 다시 '앤'처럼 살아보자.

앤은 못생기고 충동적이고 때로 거만해.

한마디로 문제아일지도 몰라.

그런데 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기에 펄펄 살아있어.

앤이 만약 바른생활 어린이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지.

앤은 어린 반항아이자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어린 아나키스트야.

그래, 뭔가 새로운 게 나오려며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p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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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 뿐인 빨강머리 앤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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