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지리산 이야기 (1) 빠른 길은 무너지고 있다(중산리천왕봉)

잘리고 파헤쳐진 지리산에 희망의 씨앗을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 필름 대표) (webmaster@idomin.com) 

 

행정, 지역발전 미명하 자연파괴

도로 넓히고 산악열차 사업 추진

토건 개발이 지역 미래 보장할까

지속가능한 삶 이룰 방법 찾아야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선배들의 안내에 따라 서울에 갔던 나는 그곳에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고향에 돌아와 살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리산에 와서 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의 터전이 수몰된다는 소식에 억울한 마음에 환경운동을 하게 된 것도, 지금처럼 살면 지구의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하는 데 10년 남짓 남았고 그 후에는 돌이킬 방법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3년 동안 고향인 하동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로 도시처럼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 우리가 조금 빠르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게 되는 일들은 어떤 곳에 사는 사람들과 동식물들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것, 우리가 우리 사회와 자연환경 안에서 연결감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해 갈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현실은 말하자면 앞으로 우리가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7.5년 남짓 남은 것이다. 317, 오랜만에 천왕봉 등반을 위해 중산리로 향했다. 관광객들과 물동량을 늘리려고 4차로 확장공사가 한창인 19번 국도 화개악양 구간에서는 많은 벚나무가 잘려나갔다. 남은 벚나무들에서 예년보다 2주나 빠르게 벚꽃이 터지고 있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샴푸는 왜 쓰고 디젤차는 왜 타냐'는 질문은 이제 환경운동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비판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동에서 서울까지 4시간이면 갈 수 있고, 2시간이면 지리산을 둘러볼 수 있는 지리산 산악열차를 놓겠다는 계획마저 등장했다. 교통이 빨라진 탓에 코로나19도 빠르게 번졌다. 농산물가격은 폭등하고 돈이 있어도 마트에 식료품이 없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장면이 세계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갑작스런 한파에 미국의 텍사스 지역에서는 전기공급이 끊기기에 이르렀다. 민영화된 전기공급회사가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난방설비를 폐기한 까닭이었다.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이 암에 걸려 죽어나가고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유출되어도 전기 공급은 멈출 수가 없다. 수십 년 된 벚나무가 잘려나가고 이름 모를 생명이 죽어나가도 도로 확장은 계속 되어야 하고,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비롯한 산악 개발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먹고살기 위해서다.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는 숭고하기 때문이다.

 

 

756902_442235_0206.jpg

                                                천왕봉에서 바라 본 산청군 중산리 쪽 지리산줄기. /배혜원

 

"산악열차는 이념이다, 인민군과 국방군의 차이와 같다." 지리산권 전북 남원 모 시의원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불편하지만 성찰의 지점이 있다. 국내에서 추진한 모노레일 사업은 수익성이 알려진 바 없고, 케이블카 사업 역시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바는 미미하다. 알프스하동프로젝트의 시공업체로 선정된 대림건설이 '사업성 저하로 사업추진이 불가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이념논쟁이라면 국내 산악관광 개발사업 추진은 환경문제와 경제성, 주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과 합리성이 배제된 가치관과 믿음에 대한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념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겁탈할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했던 해방공간의 지리산이 떠오른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세계 대유행(팬데믹)이 덮친 지구에 인민군과 국방군, 인간과 동물,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로 나뉜 것들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기후위기와 팬데믹조차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나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이념논쟁일까. 알프스하동프로젝트 추진위원회와 하동군수는 산악열차를 비롯한 지역의 관광산업 활성화만이 지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고, 지금이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리산권뿐 아니라 전국의 인구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지역이 소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756902_442236_0207.jpg

                               ▲ 하동군청 앞에서 '산악열차 반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시민. /배혜원

 

지역의 청년들이 사라지고 인구가 소멸하는 이유는 지역에 산업단지와 대규모 관광 랜드마크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무시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무리하게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벚나무들을 베고 도로를 확장하고, 강을 파헤쳐 돈으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고 돈으로만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돈으로 계산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대규모 토목건축사업만이 우리의 꿈과 희망이라고 우기고 있다.

 

지난 23일 지리산산악열차의 시공사로 선정됐던 대림건설은 지역갈등과 환경민원이 해소되지 않고, 사업성 저하로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기업이 사업성 저하와 지역갈등을 문제로 철수할 정도라면, 공공개발로 산악열차를 추진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 아닐까. 지역에 공항과 고속철도 같은 교통시설을 건설하는 일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지역에 관광개발을 한다고 해서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

 

관광객이 빠르게 지리산에 오갈 수 있다면 그 지역 안에서의 숙식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 청년들이 일용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시골에 살 이유가 없다. 빈집이 넘쳐나지만 도시 사람들의 세컨드하우스 개발사업으로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다. 시골에서마저 살 만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공공병원과 보육시설도 부족하다. 겉으로 청년들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첫째는 얼마, 둘째는 얼마, 셋째는 얼마라는 식으로 신생아마저 가격표를 붙여 돈을 지급하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책임하고 쓸모없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756902_442237_0207.jpg

                       ▲ 하동군 한 게시대에 걸려 있는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 /배혜원

 

10여 년 만에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천왕봉에는 덱도 많이 생기고, 지난 수해로 강돌도 많이 들여 놨다. 무엇보다 법계사 입구까지 버스도 다닌다. 지리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빨라졌다.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인다면, 지리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지구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시기도 더 빨라질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지역은 이미 자립할 수 없는 상황이고,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구의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성장이나 개발이라는 상상이 가능할까?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땅을 일군다. 자립을 꿈꾼다. 한 줌의 씨앗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다. 역부족이나마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콘크리트 바닥 갈라진 틈 사이로 싹이라도 틔우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7개월간 지리산 이야기로 글을 쓰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11편을 연재하는 제목인 '지리산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지리산 사람들이 지리산의 자연환경을 바라보고, 우리 공동체가 이곳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나가는 방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면을 할애해 주신 경남도민일보에 감사드린다.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 필름 대표)

*이 기사는 '지리산사람들' 회원들이 경남도민일보에 연재 하였던 "지리산 이야기 기획시리즈"를 재수록 하였습니다.

 

  

 

태그

전체댓글 0

  • 54497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빠른 길은 무너지고 있다(중산리∼천왕봉)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