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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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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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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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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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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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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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오늘 기사

  • [숲샘의 지리산통신] 울타리 없는 학교, 지리산
    하동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남원 산내 진달래산천, 함양 온배움터, 구례 봉서리책방, 산청 공간산아...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움을 틔우고 있는 울타리 없는 학교이자 움직이는 교실들이다. 물론 지리산 5개 시군에서 한 곳씩만 나열한 것이라 지리산 아흔아홉 골에 숨어 있는 숱한 배움터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중에 필자가 교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는 2009년 지리산학교로 출발해서 지금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로 그 이름이 바뀌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올해로 4년째 초록걸음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의 속살을 만나는 초록걸음반 말고도 산야초반, 디카시반, 와인아카데미반 등 십여 개 반이 신학기 수강생 모집을 마치고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수업이 가능한 것은 지리산 전체를 교실로 하는 움직이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 초록걸음반은 매달 첫 토요일에 총연장 295Km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지리산 둘레길을 위주로 걷긴 하지만 여름철엔 둘레길을 벗어나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길동무(수강생들을 이렇게 부름) 중에는 해마다 어린이들 한두 명이 참여하고 있다. 쉬엄쉬엄 걷기 때문에 가능하고 또 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청량한 비타민으로 길동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는데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과 함께 걸을지 기대가 자못 크다. 길동무들과 지리산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우선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고 그 동네를 굽어살피는 정자나무들 또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게다가 세계 최장 야생화길로 기네스북에 오른 지리산 둘레길은 어느 구간을 걷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들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리고 걸음을 걸으면서 필자가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리는 시와 음악은 초록걸음반 수업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구간에 어울릴 만한 시와 음악을 고르는 일은 참으로 고역임을 실토한다.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진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지리산 둘레길은 천왕봉 등정이나 화대종주, 태극종주 등으로 대표되던 지리산의 산행 문화에 큰 전환점이 된 건 분명하다. 수직으로 급하게 오르던 산행에서 사부작사부작 느릿느릿 걷는 수평의 길이 생김으로써 지리산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감히 주장한다. 결국 또 하나의 학교가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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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2-27
  • [토토의 입춘 편지] 내가 직접 지어 입는 전투복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와아, 이사 축하해요! 독립한 것도 축하합니다! 지금쯤 방 정리를 마무리하고 아늑한 가로만의 공간을 꾸몄을까요? 산달리기를 다녀왔을 날에는 따뜻한 차와 함께 몸도 녹이고 열 발가락을 쭈욱 뻗고 온전한 한 숨을 깊게 내쉴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가졌길 바래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라니.. 제가 다 기뻐요!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참 뿌듯한 일인것 같아요. 문득, 새로 이사간 곳에는 어떤 이웃생명들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새로운 주변의 환경에서도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을 눈으로, 냄새로, 분위기로.. 하나씩 잘 찾아내는 재미가 있길 바라요.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들에게 참 중요한 곳인 것 같네요. 몇년 전 도시에서 살 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과 걸어서 15분 거리에서 따로 살았어요. 따뜻한 밥, 가족들의 온기, 편안함보다 저에게 더 소중했던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땐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공감해주는 이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아.. 너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공감의 언어가 필요했는데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달까. 온전히 나로써 인정받고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나 역시도 가족들에게 그런 품을 내어주기엔 부족하기도 했구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게 산이 내게 주는 느낌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문득 높은 곳에 올라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바람 소리, 새 소리, 낙엽을 떨어뜨리는 소리로만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아 기뻤어요. “있는 그대로의 너는 참 아름다워.” 하고 말이에요. 산은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지리산으로 이사 온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그런 산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그 존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내 이웃이 된 그들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인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강아지에게 인사할땐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손 등을 내밀며 매너있게 인사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처럼, 나무 한 그루에게 다가갈 땐 가지 끝에 달린 작은 겨울눈과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불러보고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 손끝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목을 길게 뻗고 높이 올려다보기도 해요. 새롭게 알아가는 이름이 하나씩 늘고 있는데 꽤 즐거운 일이에요. 서울 회동을 곧 앞두고 입춘 편지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네요. 전투복이라니! ‘전투'라는 단어는 듣기만해도 무서운 느낌이에요. 적을 만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저는 쫄보인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날 만큼은 당당하고 싶고, 멋진 아우라를 뽐내고 싶다하는 날에 입는 옷을 생각해봤어요. 어릴 적 엄마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보여서 저도 한참 손으로 만드는 것을 배우는 걸 좋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옷만들기에요. 엄마만큼 솜씨가 좋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흉내는 내보았어요. 스웨터나 가디건을 직접 짜입기도 하고 조끼와 바지를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해요. 모자를 짠다던지 안입는 코트를 잘라서 가방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나에게 전투복이란 내가 직접 만든 옷을 꺼내입는 것인것 같아요.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날에는 내가 만든 옷들 중에서 하나를 코디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만든 옷이기도 하고, 내게 가장 편안한 감촉과 품으로 만든 옷이기에 입었을때 가장 나다운 느낌이랄까. 옷을 지어입는다는 것은 그런 것인것 같아요. 오롯이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에요. 나의 몸을 떠올려보고 나의 몸짓은 어떤지, 나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습관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를 위한 옷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요. 옷을 만드는 시간은 산만하게 움직이는 마음과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엔 손으로 옷을 만든 적이 정말 뜸했어요. 시골에 살다보니 옷도 가짓수가 많은 것은 짐만 되는 것 같아 필요없는 옷은 사지도 않고 만들지 않으려하는 것도 있어요. 취미라고 생각하고 옷을 만들었는데 가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옷을 만들어 입는 행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네요. 나에게 이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일이었구나..! 하고요. 최근엔 바늘을 잡는 시간보다는 누워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몸이 자꾸 편한 쪽으로 선택이 기울때 나를 탓하기도 하고 지금의 시간들이 불편하고 불안함을 느껴요. 가로의 문장들을 여러번 곱씹어 봐요. 나 자신을 믿고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천천히 조금씩 쉬어가는 법을 배우고 싶은 것처럼. 종종 아름답고 사랑이 깃든 존재들 곁에서도 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내 안에 두려움을 마주칠 때마다 찾아오는 습인것 같아요. 쫄보여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줄래요. 이 글을 적다보니 지금의 나를 충분히 안아주고 싶어요! 새로운 전투복을 만들어보고 싶은 느낌이 말랑 말랑 찾아오네요. 옷을 만드는 솜씨가 좋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배우는 재미가 있어서요. 편지를 쓰다보면 생각 속 저편에 있는 나를 꺼내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지가 온통 나에 대한 이야기라 부끄럽기도 하네요.. 가로의 전투복 이야기도 기다려져요! 내일은 봄을 세우는 날 ‘입춘’이네요. 가로와의 펜팔 덕에 지난 겨울은 참 포근했어요. 우리는 어떤 봄을 맞이하게 될까요? :) -토토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27
  • [입춘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다니요
    디자인.칩코 <가까운 이웃이 되어주고픈 산달에게> 반가운 산달! 이번 편지는 자중해야겠어요. 웃기다는 말에 살짝 벅차오를 뻔했는데요. 신이 나 적당한 익살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것은 하수들의 흔한 실수죠. 저는 하수라서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되겠습니다. 저는 몇 주 전에 본가에 다녀왔던 터라 설에는 구례를 지켰어요. 귀촌한 첫 해에도 설에 집에 안갔었는데요. 엄청 외롭더라고요. 시골은 명절만 되면 텅 비었던 마을 어귀의 주차장이 가득 차요. 집집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들리지 않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요. 손자들 놀러왔다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는가봐요. 벚꽃시즌 다음으로 지리산이 붐비는 때일 거예요. 첫 해는 왁자지껄한 속에 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었는데… 해가 쌓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시골인심이 좋다는데 정말이에요. 이번 설에는 이웃께서 나물과 부각을 잔뜩 챙겨주셨어요. 제가 채식하는 걸 알고 일부러 젓갈도 넣지 않으셨다면서요. 저희 집엔 냉장고도 없고 전 먹는 양도 적어서, 그 많은 반찬을 상하기 전에 해치우느라 복에 겨운 고생을 했답니다. 시골은 동지나 새해 같은 날엔 이웃끼리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가봐요. 저 같은 외지인에게도 꼭 한 솥씩 챙겨주시더라고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게는 매번 놀라운 경험이에요. 작은 방에서 혼자 일어나 외출했다가 다시 혼자 침대로 돌아온다는 산달을 그려보면서 꼭 예전의 제 모습이 겹쳐보였어요. 산달이 제 이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많은 나물 반찬을 나눠먹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동치미랑 김부각은 먹어본 중에 최고였어요. 산달, 대단한 걸 놓쳤다고요. 그렇지만 인심이 푸진 이웃 대신으로, 산달에게는 사랑과 기다림을 허락한 가족들이 곁을 지켜주었나봐요. 오랜 반려자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니 다행한 마음입니다. 산달! 이번 입춘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에요. 회동을 앞두고 서로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정하긴 했는데요. 저한테 그닥 이득이 있는 주제인지 모르겠어요. 썩 근사한 전투복은 아니거든요. 저는 계절별로 단벌인 펑퍼짐한 절복을 입고 지내요. 겨울을 제외하곤 나머지 계절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곤 해요. 색은 온통 파란색입니다. 지독한 컨셉을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실용성을 중시해요. 절복은 밭일과 환경운동, 어느 때고 편안한 옷이에요. 색이 통일 돼 있어 모든 옷을 돌려입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외출 준비가 양치질보다 빨리 끝나는 기적의 실용성! 특별한 전투복이라기엔, 딱히 골랐다고 볼 수 없는 단벌이지만… 좀 웃긴 얘기를 해보자면 본의 아니게 이게 환경운동에 먹히더라고요(?) 기자회견 같은 곳에 가면 꼭 기자들이 저를 가운데 세우려고 하세요. 외관이 독특하니까 기사사진으로 쓰기 좋다나 봐요. 그들의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그림이 된다”는 거죠. 뭐랄까… 약간 꼬질꼬질해서 사연이 있어보이고, 시골에서 보기 드문 젊은이에, 방금 밭일을 하다 나온 듯한 현장감… 이게 그림이란 걸까요? 덥수룩한 수염에 떡진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도 저와 같은 신세에요. 사진 찍을 때 어리둥절한 채로 나란히 세워지곤 합니다. 아마 회동에서도 더 멋진 옷을 고르는 덴 실패하고 똑같은 옷을 입을 텐데요. 기자회견 사진처럼 떫은 감을 먹은 표정이진 않을 거예요. 산달의 편지를 읽을 때처럼 활짝 웃고 있을 거예요. 제게도 산달의 편지는 기쁨이거든요. 산달은 한 문단마다 한 번씩은 꼭 저를 번뜩 놀래는 문장을 숨겨놔요. 싣지 못한 산달우드향이 코끝에 덥썩 매달린대도 그 문장들만큼 이목을 끌지 못할 지도 몰라요. 저는 그 문장들 앞에선 일순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다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성거려요. 그래서 두번째 산달의 편지는 꼭 여명의 숲길 같았어요. 집 뒤편에 바로 이어진 지리산둘레길이 있어요. 매일 아침, 사물의 푸르스름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재빨리 집을 나서요. 해가 다 뜨도록 게으름을 피우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요. 숲속은 동틀 무렵이 가장 분주하거든요. 아침 산책을 하며 다람쥐를, 붉은배새매를, 운이 좋으면 담비를 만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게 제 낙이랍니다. 요즘은 나무 공부에 푹 빠졌어요. 나무의 수피와 겨울눈을 요리조리 살피다 도감에서 본 나무가 딱 등장하면 그때의 환희란! 그 나무를 지나칠 때마다 덩실덩실 손을 맞잡고 아는 체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에요. 그런데도 숲길은 여전히 수수께끼에요. 저는 새들의 ‘송’과 ‘콜’을 구분하지도, 바위 위에 놓인 불그스레한 똥이 누구의 똥인지, 진흙에 찍힌 멧돼지 발자국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알고 싶은 것들 투성인데 다 알 수 없어 숲을 떠나지 못해요. 한동안 서서, 바람의 방향이나 나뭇잎이 흩어진 모양새를 골똘히 노려만 보다가 돌아온답니다. 그 수수께끼의 숲을 지나고 나면 아침 해가 다 차올라있어요. 알쏭달쏭한 공간을 헤매고 제게 남는 건 놀랍게도 고단함보단 아름다움이에요. 신비이고 눈부심이에요. 저는 궁금해요. 산달은 어느 누군가를 닮고 싶어 어떤 색으로 물들어있는지, 갸우뚱한 표정과 미지근한 미소를 짓고서도 어떻게 사랑에 대해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을 감당하기만도 벅찼던 지난 날들은 어땠는지. 저는 산달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못해,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 앞에 주춤거리는 발자국을 남기는 걸로 대신해요. 온통 동글동글한 그 문장들의 잔상을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해요. 산달의 편지가 제게 남긴 것 역시 아름다움이에요. 산달의 전부를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신비와 눈부심이 있어요. 산달의 사진을 보고 신기했어요. 어디인지 모를 그 숲이 제가 늘 걷는 숲과 꼭 닮았거든요. 저도 모르게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그 사진 속 어린 나무의 겨울눈과 낙엽 틈에 있을지 모를 고라니 똥을 찾고 있더라고요. 산달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먼 곳에서도 비슷한 풍경들을 눈에 담고 있잖아요. 산달이 작은 방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면, 저라면 이 사진을 건네겠어요. 산달이 이 사진을 찍으려 시선을 낮출 때부터, 아마 사진 속의 존재들이 산달을 따라왔을 거예요. 생강나무꽃 색의 햇살자국이 작은 방까지 비춰주지 않나요? 그럼 이만 산달, 입춘대길입니다! 김부각 혼자 다 먹은 덕복희 올림 p.s. 새벽마다 시 한 편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타로카드를 뽑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의 아무 쪽이나 펼치거든요. 오늘은 달복의 예쁜 노랫말이면 충분하겠어요. 다음에 선율을 들을 행운이 오길. <봄을 전해준 복희에게> 어느덧 입춘이군요! 복희의 편지가 제게 봄처럼 도착했어요. 많이 기뻤답니다. 복희가 올해에는 제게 봄의 전령처럼 봄의 소식을 전해주었으니까요. 저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봄이 올 때 풍기는 향긋한 내음과 걸음 소리를 놓친 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봄 속에 들어와 있을테니까요. 아,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저는 얼마나 많은 손짓들을 놓쳐왔던 걸까요? 현대인들이 무릇 그렇듯, 살아가기 위해서 도시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들을 끌어 안고 살고 있어요. 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어제 들은 이야기들을 내려놓지 않아요. 아니,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환상 덩어리일 뿐이에요. 사람을 마비시키는 환상 덩어리. 그것들 때문에 우리는 만성적인 신경과민에 시달려요. 저만 해도 덜렁거리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는걸요. 매일을 메모장에 기록하고 계획하고 신문을 읽고 새로 나온 책은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저기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키지 않지만) 지켜봐야 하고,, 놓치지 않는 정보들이 없는지 늘 긴장하게 돼요. 매일을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다보면 혀가 얼얼해지듯, 귀에 전자 음악을 늘 꽂고 살면 점점 귀가 들리지 않듯, 도시는 사람들을 무뎌지게 만들어요. 오직 어떤 의미인지도 모를 숫자들과 시곗바늘들과 정신없는 글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게끔 훈련되죠. 어떤 감각들을 잃어버렸는지도 알지 못하고 저는 오늘도 버스에 탑니다. 지리산을 넘어가는 동백처럼 붉은 태양이 어떤 시를 만들어낼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다가 복희의 편지를 받았어요. 창문을 대뜸 넘어와 피아노 위에 자리잡은 생강나무꽃 색의 햇살자국을 전해 준 복희를 읽다 보니 지리산이 제가 더듬어보던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니 조심하셔야 해요. 다만 생명이 사는 모든 곳이 그리 아름답고 연약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리산 숲길의 숨을, 그 생경한 시들을 편지에 한아름 담아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저는 이번 주 내내 무엇을 담아 보낼지 고민하다가 봄소식을 늦게 전해버리고 말았네요. 미안함을 전합니다. 그런데 복희가 김부각을 혼자 다 먹었으니 조금 덜 미안해하도록 할게요. 저는 명절을 끝내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 화순은 참 걷기 좋은 곳이에요. 집을 나서서 천변을 따라 쭈욱 내려가다 보면 마른 갈대가 우거진 습지가 있어요. 그곳에서는 늘 오리들이 떼를 지어 유유히 물장구를 치고 있기도 하고 큰 백로가 기지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을 볼 수도 있어요. 어제는 잿빛 두루미를 만나 얼마나 기뻤는데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을 지나치면 무등산자락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 전라도의 산들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함께 살고 있어 충청도나 강원도의 외로운 산들보다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대요. 따뜻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만나는 곳이라고들 하더라구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저의 하늘을 따스하게 덮어주던 나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전에는 함경도에 있는 나무나 제주도에 있는 나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러 조건들이 만나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나무님들을 내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저는 참 감사했어요. 복희가 만나는 새벽녘의 나무들은 어떤 분들일지 문득 궁금해져요. 지리산에 가게 된다면, 제게도 그 분들을 소개시켜 주세요. 복희에게도 제가 만난 나무님들을 소개시켜 줄게요. 함께 나무 앞에서 환희를 나누는 날을 상상해봐요. 복희, 적당한 익살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것이 하수들의 실수라면서요. 복희가 덥수룩한 수염의 소유자와 함께 절복을 입고 기사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다니요. 조금 더 긴장의 끈을 붙들어 매어야 되겠어요 복희. 아니, 근사하지 않다니요! 그만큼 근사한 전투복이 어디있나요? 절복과 터번을 걸치고 환경운동을 하다니. 제게도 남는 절복이 있다면 하나만 나눠 줄 수 있나요?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요. 휴, 도시에서 기후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답니다. 동물들이 저마다의 보호색으로 자신의 몸을 주변 환경에 맞추듯, 도시생활자들 또한 마찬가지거든요. 다만 자신 주변의 색을 닮아 물들어가는 것이 섭리인 두꺼비와 달리 도시에 사는 존재들은 때를 묻히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거리 어딜 가나 서로 나서 자신이 아름답다 우기는 옷들이 돌아다녀요. 가련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너도나도 가지지 못해 안달이고요. 아마 복희도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독 묻은 옷을 입고는 고통스러워 불에 뛰어 들죠.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서는 사람들이 피부가 두꺼워져서 독을 입고서도 끄떡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아요. 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독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기어코 터득한 걸까요? 흠흠 샛길로 잠깐 샜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겨울의 저는 늘 무릎부터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다닙니다. 도시인처럼 보이기 딱 좋은 옷이죠. 하지만 그 속에는 기후운동을 하는 사람다운 옷을 입고 있답니다. 많은 옷을 가지고 있지 않아 갈색 면바지와 청바지를 돌려 입구요. 몸통은 찻빛이나 하늘빛을 담은 니트를 주로 두른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양말이에요. 꽃이 수놓아진 양말을 입고 지하철을 탈 때면, 어느 때보다도 신난 상태로 기후악당들을 무찌르러 출동하는 기후운동가로 변신하곤 합니다. 그게 왜 기후운동을 하는 사람다운 복장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답은 간단하답니다. 그런 옷을 입은 제가 기후운동을 하기 때문이에요 히히. 사실 어떤 옷을 입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전투복들을 선택하니까요. 옷뿐만일까요? 우리는 각자가 가진 욕망이 허락되는 만큼 자신의 관계 방식을 만들어내요. 맨날 검은색 옷만 입는 사람도, 파란색 옷만 입는 사람도, 말을 하다가 말고 숨어버리는 사람도, 몸짓 발짓 다 해가며 온 맘 가득 표현하는 사람도, 다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이죠. 그건 선택과 의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주어지거나 휩쓸리기 쉬운 종류의 것인 것 같아요. 사랑조차도요. 운명이란 말의 존재 가치가 분명히 있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저 사람이 왜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지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너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렇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데, 우리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삶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물음 말이에요. 거기서부터 창조적인 것이 시작된다고 믿어요. 저도 궁금해요. 복희는 언제부터 절복을 입게 되었는지, 도시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왜 지리산에서 살기로 결심했는지, 나무 공부는 복희에게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지. 아침에 지리산 둘레길에 들어서면 어떤 숨들이 복희의 몸을 그렇게 벅차게 만드는지. 복희를 읽어가는 것은 참 편안하고 기분좋은 일이에요. 곧 있을 복희와의 만남을 상상해요. 이럴 것이다 쉽게 그려지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들이 또 오고 갈 지 잘 떠오르지 않기도 해요. 그치만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향한 질문을 품고 있으니, 턱끝까지 벅차오를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아요. 내일 복희가 매일 걷는 숲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영혼은 누구일까요? 새롭게 꺼내 읽을 시는 누구의 말들일까요? 그동안 또 어떤 숨들을 모아 보내올까요? 저는 그 무한한 마음을 새롭게 받아 안으며 기다릴게요. 봄이에요. 함께하는 봄이네요. 안녕. 여전히 궁금함이 많은 산달 올림 p.s. 메리 올리버의 ‘마침 거기 서 있다가’라는 시를 아나요? 내일 아침에는 이 시를 읽으면 어때요? “해바라기는 눈부시게 빛나. 어쩌면 그게 그들의 방식이겠지. 어쩌면 고양이는 곤히 잠드는지도. 아닐 수도 있고.”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16
  • [입춘 편지 : 참새와 돌] 이 계절이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디자인.칩코 <돌에게> 입춘이네요 돌. 추운 대한 무사히 보냈는지 궁금해요.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다 시피 저는 산책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지난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던 추운날씨에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나갔다가 허벅지가 시뻘개진 것을 보고는 엄청 놀라고, 가벼운 동상인가 싶어 전전긍긍했었어요. 그런데 편지를 쓰는 지금 벌써 봄기운이 살짝 내려온 것 같은 날씨에요. 벌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달까요? 매 년 왠지 모르게 설레는 감정이 제게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데 그게 참 신기해요. 겨울동안에는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있는데도 더욱 열렬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아 내가 번 아웃이 온 건가?’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괜히 불안했어요. 이렇게 영영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암울하게만 지낼까봐요. 그치만 계절처럼 제 마음도 매 순간 변하고 있었네요. 돌의 편지를 읽고, 돌에게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아졌어요. 돌이 굴러온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원래의 방식대로 살면 참 편한데 그렇게 살면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을 나도 들어보지 않았던가 떠올렸어요. 제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도 했고요. 돌이 말한 것과 꼭 같은 의미는 아닐 수 있겠지만요. 우리는 변해야 하고, 그것은 불편한 일이 될 테고, 그걸 감수하면서도 나와 함께 하겠느냐고. 그런 얘기를 들었던 저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야?’ 하면서 실망해 떠나는 시늉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늉이라고 얘기한 이유는 내가 그래서 원래의 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있나? 하면 그렇지 않고, 결국 그와 나는 따로가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마치 모든 관계가 지구와 인간의 관계 같아요. 우리가 쓴 반려고양이, 반려다육이 얘기만 보아도 질병과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중요하게 담았던 것 같아요. 그만큼 지구의 위기, 아픔, 고통이 머지않아 나의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데요. ‘불편하게 사느니 같이 살지 않겠어.’하고 지구 밖으로 날아가 버릴 궁리를 하는 사람도 꽤 많아 보여요. 지구도 떠나버릴 생각을 하는데 지구 품에 사는 우리들끼리는 또 얼마나 쉽게 자기를 고집하고, 이별을 고하며 사는가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외면하고, 뒤돌아버릴 수 있는 그 순간에 직면하고, 나의 생김새를 돌아보고, 손을 잡고, 변화의 길목에 들어서는 돌이 참 용감해요. 입춘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에요. 저는 싸우는 걸 싫어해요. 근데 또 목청껏 ‘투쟁!’하고 외칠 때나 텅 빈 넓은 차도를 뛰어다닐 때면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해서 집회 나가는 데 거부감이 없었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에 도통 가보질 못했는데요.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지리산에 내려오면서 큰 규모의 운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인 일상을 생태적으로 꾸리고, 또 누리는 데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아요. 작년 9.24 기후 행진이 참 오랜만인 대규모 환경운동 집회 현장이었죠. 여기저기서 알음알음 사귀었던 친구들이 전부 다 모이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고, 풍물패, 퍼커션, 댄서들이 흥을 올려놔서 이게 지금 집회에 온 건지 축제에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어요. 나도 모르게 두 팔과 엉덩이를 앞뒤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고 있더라고요. 홍대 클럽도 이만큼 재밌지는 않았어요. 쓰다 보니 재미보다 ‘즐거움’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네요. 집회를 나갈 때 어떻게 하면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궁리하던 때도 있었어요. 어디선가 공격이 훅 들어와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항상 긴장되어있었죠. 지금은 운동을 하러 나갔을 때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고 싶어요. ‘나는 지더라도 두 번 세 번 이 자리로 나올 거야! 왜냐하면 나는 당당하고, 즐거우니까!’라고 말하고 싶고요. 아무래도 제가 노는 걸 너무 좋아하나 봐요. 때때로 밀려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실컷 우는 만큼 또 실컷 웃을 수 있길 바라요. 락 페스티벌에 가기 전날 밤 무슨 옷을 입어야 화끈하게 놀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듯이 환경 운동하러 가기 전날 밤에도 잔뜩 설레며 옷을 고를 거예요. 봄을 기다리듯이 돌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이만! 짹짹.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많이 늦었어요. 미안하다는 말부터 전해요.. 밤낮이 바뀐 채로 지냈어요. ‘띵동! 돌에게 입춘 편지가 도착했어요:)’라는 메일이 알림창에 열흘을 떠있었는데, 매일 새벽 감기는 눈으로 바라만 봤어요. 어떤 얘기가 있을까, 나는 어떤 얘기를 이번에 담을까.. 생각하다 잠들었어요. 기다리며 지치고 실망할 마음이 걱정되는데, 그동안 제가 지나온 시간을 잘 나누면 괜찮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 편지를 열어요. (빨개진 허벅지는 잘 회복되었나요? 참새가 느꼈을 얼얼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흔적을 따라 느껴져요.) 온도가 영상에 머무는 날들을 지내며 입춘의 시간도 꽤 지나왔음을 느껴요. 저는 아직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새로움’에 진입하기 전인 것 같아요. 헐레벌떡이 일상이거든요. 활동을 제 일상의 안정보다 우선하고 있어요. 활동이 일이고 일이 곧 저와 제 관계에 구성한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우선 순위를 유지해왔어요.(참새가 물어봐준, 공동체를 의식적으로 구성하는 행위는 이런 마음을 배경해왔을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선 다음, 서로를 살릴 수 있잖아요. 연말부터 연초까지, 겨울잠처럼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이 시간’동안, 스스로 서는 법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찾고 싶었어요. 저에겐 나름 큰 깨달음이고 다짐이었답니다ㅎㅎ 그래서 먼저 해오던 것들을 잘 매듭짓고 싶은데. 끝이 따로 없나봐요. 나와 서로를 분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 두려운 마음이 섞였어요. 그렇게 헐레벌떡이 누적되고, 매듭짓기는 유예시키고 있어요. 약속들이 자꾸 지연되는 와중에 편지도 한참이 지나 열게 되었어요. 아직 새로운 시간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참새가 말한 설렘의 기운은 느껴요. 계절이 바뀌는 건 제가 지연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니까요. 계절을 따라, ‘아직 덜 된 거 같은데..!’하는 마음을 가져도 넘어가야만 하니까요. 아쉽더라도, 그 덕에 한발짝 내딛어요. 무겁고 미련도 정도 많은 ‘돌’을 굴리는 이 계절을, 참새의 편지 덕분에 감각해요. 그치, 설렘의 계절이지. 산책하기 좋지 하며 봄맞이를 준비하는 2월이 될래요. 전투복이라니! 전투라는 단어랑 친하지 않아서 바로 생각나지는 않아요. 방랑단분들이 주신 이야기를 힌트 삼아 고민해봤어요. ‘쎄보여야 할 때’라.. 저는 각진 옷을 자주 찾아요. 어깨가, 소매 끝이, 깃이 반듯한 옷을 입으면 위풍당당하게 걸을 수 있어요. 서울에 사는, 바삐 활동하는, 개인의 능력을 계속 질문받는다고 느끼는 저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런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더라고요. 나를 지키고 유지하려면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어야 해요. 저의 방이나 산 그늘, 숲, 농촌 길거리에서는 그런 반듯함이 오히려 어색하고요. 참새가 지리산에서 보낸 시간, 일상을 생태적으로 꾸리고 누리는 일을 할 때는 경계 짓기가 아닌 허물고 스며드는 방법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밭일용 바지의 엉덩이와 무릎에 든 흙빛과 내음은 어떻게 털고 빨아도 잘 안 사라지잖아요.ㅎㅎ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환경운동은 ’인디언들의 마지막 전투‘였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전투라는 단어가 조금은 이해돼요. 참새는 싸우는 걸 싫어한댔죠. 저도 그래요. 해결하고 대화를 제안하고 중간에 끼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투쟁이라! 저는 왜 싸울까요. 곁을 관계를 생명을 터전을 잃는 일이 더 두렵고 절박해서 ‘지키는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924기후행진이 즐거운 축제였다는 것, 어떤 공격을 걱정하며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정말 반갑고 감사해요. 다행이에요, 924 때 행진을 담당해 준비했거든요! 축제를 바랬어요 정말로. 해방의 순간에 우리는 이런 기분일까 하고 느낄 수 있는 틈새를, 장을 만드는 것이 행진에 담은 여러 마음 중 하나였어요. 투쟁은 뭘까, 어때야 할까 라는 고민에 머리 아팠는데 해방과 축제의 장소를 지키는 것도 투쟁의 중요한 이유라는 걸 참새 덕에 확신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또 다른 전투복은 퀴퍼 옷 같기도 해요. 즐거운 긴장을 주는 화끈함과 무지갯빛의 화려함과 편안함을 주는 옷들요. 나의 투쟁과 싸움은 해치고 짓밟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지키고 나와 너를 연결해 살리는 일이라는 걸 새기고 나니, 전투복도 자랑스러워요! 일상이 투쟁인 서울살이지만 옷장을 열 때, 긴장보다 용기를 얻겠어요. 진짜 봄맞이와 함께 다음 편지를 나누고 싶어요. 나중으로 미뤄둔 일들을, 계절의 힘을 빌려 ‘지금’으로 끌고 올래요. 오래된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이, 부분적이라도 활동을 떠나는 것 같고 충분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내 의미를 잃는 것 같아 두려웠는데요. 구르는 돌도 땅과 떨어지진 않으니까요. 더 오래 같이 걸어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새기며. 구석에 박힌 돌을 바람이 밀어주길 바라며! 참새의 설레는 산책과 축제같은 투쟁을 만드는 일에도 이 계절이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편지를 닫을게요! 데구르르~ 돌이, 2월 13일에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14
  • 산으로 둘러싸인 남원분지, 궁금해? 남원山
    산으로 둘러싸인 남원분지 궁금해? 남원山 지리산 자락 사람들이 모여서, 남원 산을 돌아보며, 산에 깃든 생명들, 역사의 흔적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만나면 좋겠네 그리고, 지리산 산악열차뿐만 아니라, 산의 모습을 잃어버린 덕음산....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들을 모아가는 답사가 되었으면 좋겠네 언제 : 홀수 달에는 두 번째 수요일에, 짝수 달에는 두 번째 토요일에 회비 : 5천 원 (회당) 물어보기 : 010-6554-5001(유지선) 010-4029-5910(신강)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02-14
  • [숲샘의 지리산통신] 수라 갯벌과 지리산
    참으로 감동적인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수라'를 함양에서 만났다. 바다의 허파가 갯벌이라면 육지의 허파는 숲과 강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수라'와 '지리산'은 닿아 있음을... 그 위태로움까지 닮았다. 함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준 황윤 감독과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상 담아준 김정근 카메라 감독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아름다운 광경을 본 죄로 새만금을 지키고 있다’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둘레길을 걷는 죄로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킬 수밖에... (2023.02.11)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2-13
  • [입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한 철만 입지 않는 전투복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입춘이네요~ 벌써 저희가 편지를 나눈지 세 절기가 지나가요. 저는 그 사이 실내 마스크가 의무로부터 해제되어 너무 반갑고 홀가분한 기분이었답니다. 지리산이었다면 큰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 수도권에는 사람이 워낙x100 많기도 하고, 늘 마스크를 껴야만 해서 지쳤거든요. 제 마스크는 직접 만든 건데, 매일 손세탁을 하다 보니 바느질이 너덜너덜해져서 별로 정이 안 가기도 했구요... 하핫 갈토의 반려 생물 이야기 잘 들었어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관심과 정성으로, 생기를 되찾는 은행목을 상상하니 덩달아 흡족하고 뭉클했어요. 쉬이 회복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꽂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저도 편지를 읽은 후 일터의 식물들과,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어떤 색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관찰했어요. 반짝 윤이 나는 초록 잎이나, 노랗게 변해버린 잎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엇을 해 주길 바랄까 신호를 읽어보려고도 했고요. 어떤 색이든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인 듯한 식물들을 보면서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갈토의 말대로 '어떤 상태든 함께 살아가주는 이 존재들이 귀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여요. 갈토가 주제 선정을 맘에 들어 해주어서 기뻤어요. 기획팀이 같이 선정하는데 이번 펜팔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 되었어요. 나의 전투복... 갈토는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고 솔직한 제 안을 들여다봐야 했어요. 환경 운동을 할 때 제가 늘 장착하는 아이템은 E유형과 상의 멋내기에요. 요즘 mbti유형 많이 찾아보잖아요. E가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 I가 자신 안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저는 E와 I가 반반인 사람이에요. 평소엔 I유형으로 살다가 환경 운동할 때 E로 갈아 끼워요. 주변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고, 큰 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환경 운동을 하러 가면, 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있어서 반갑게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해요. 하지만 정작 큰 소리를 내는 타입은 아니에요. 앞에 나서서 마이크를 쥐는 사람도 아니고, 재밌는 아이디어를 제안할 줄 아는 특기도 딱히 없지요. 그 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나도 당신들처럼 산악열차 반대하는 사람이야!'라고 어필하기 위해 제 상의를 아주 튀는 옷으로 고릅니다. 나름대로 지리산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자연섬유의 알록달록 상의를 걸치고,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으니 겉모습으로 인정 해달라 존재를 내세우는 거지요. 아, 저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 환경 운동을 하고 있어요. 첫째로 일상 생활을 뒤바꿨어요. 샴푸 대신 자투리 비누나 노푸를 해요. 미니멀 라이프로 바꾸면서 대체로 소비는 안 하지만, 옷을 사게 될 경우엔 중고나 공정무역 비건 소재를 고르기로 했어요. 식사도 비건으로 하고 휴지 같은 일회용품은 최소한만 사용하고요. 어려운 듯 보이지만 마음만 조금 바꿨다고 금방 익숙해졌답니다. 둘째로는 지리산에서 개발 사업 반대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이에요. 그런 곳을 가면 즐기는 에너지가 좋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저처럼 뒤바뀐 일상을 가진 이들과 공감을 나눌 수 있어서 자꾸 가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제 주장을 잘 해오지 않아서 그런지 단 몇 명의 앞이어도 매우 신중한 사람인양 아무 말도 안해요. 할 말은 많지만 못하는거지요. 그래서 마이크를 잡고 재밌게 어울리고 싶고, 그걸 해내는 사람이 대단해 보여요. 그들은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쓴다고 저를 좋게 봐주기도 하지만요:) 갈토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사실 이런 얘기는 처음 꺼내 봐서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제 펜팔 취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내가 나를 이해하고, 다른 활동가들에게는 온전히 기대고 싶어요. 활동가들이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각각의 목적과 실천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존중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솔직한 이야기 들어주는 갈토가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갈토도 펜팔을 하면서 좋은 치유가 되길 바라봅니다. 설레는 봄이 얼른 왔음 좋겠네요! 그럼 입춘편지 여기서 마칠게요. 다음 편지로 또 만나요! <유우야에게> 평소보다 20분 눈을 일찍 떴어요. 그래서 무엇을 했는지 아세요? 이메일을 체크했어요. ^^ 원래는 이메일 체크 안 하는데, 최근에 생긴 습관 중 하나입니다. 유우야가 이른 아침에 메일을 보내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침에 체크를 하게 돼요.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이 이 프로젝트가 저에게 주는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이번 주제는 어렵네요. 전투복이라. 저에게 생소한 단어에요. 평화주의자가 입는 전투복은 어떤 걸까. 평화롭게 싸울 수 있을까. 제가 환경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환경운동을 할 때는 초록색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는데, 초록색 옷이 별로 없어서 딱히 전투복이라고 할 만한게 없네요. 다만 다른 집회에 갈 때 입고 가는 옷이 겨울에는 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검정색 후드티인데요 “yes, im the feminist”라고 앞에 쓰여있고 뒤에는 “from the hell”이라고 적혔어요. 안감이 기모라서 따뜻하고 후드라 추울 때 모자를 쓰면 귀까지 따수워서 집회용으로 아주 좋아요. 이 후드티는 2017년 페미캠프때 입었던 옷이에요. 이 옷을 입으면 저에겐 갑옷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나는 실천하는 페미니스트이고, 오늘도 멋지고 즐겁게 다녀오자의 마음 가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지하철에서는 페미니스트가 보일랑 말랑하게 가리지만, 집회 현장에서는 친구들을 만나면 당당한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해요. 글을 쓰다 보니, 저는 전투복보다는 함께하는 친구가 더 중요한 사람 같아요. 전투복은 갑옷이라 전투에 나가기 전에 필요하지만 막상 전투 현장에서는 저의 전투복은 방한용 외에는 기능이 없어요. 제가 무지 쫄보거든요. 경찰이 불법집회 어쩌고 저쩌고 방송을 하면 바로 보도에 올라가서 구경하는 ‘선량한’ 시민인 척을 합니다. 근데 친구들이 있으면 혼자 살겠다고 보도에 올라갈 수도 없고 더 용감해져요. 그리고 친구들이 다칠까봐 그 자리를 지켜야 되는 의무감이 생기기도 하고. 전투복 이야기가 어느새 동지들,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네요. 유우야의 전투복에 대해 읽으며, 나도 유우야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는 싶은데, 입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끄러움 많아서 집회에서는 못 입을 것 같아요. 유우야의 전투복이 너무 궁금하네요. 나중에 옷을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이번 주제가 전투복이니까, 각자 옷들을 사진으로 모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각자 다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옷으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패션감각도 좀 없는 편이고, 친구들이 안 입는 옷을 주면 입는 편이다 보니, 딱히 내 스타일이라는 것도 없어요. 제가 최근에 다큐 영화 한 편을 보고, 패스트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정말 지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더라고요. 한 철만 입고 버리는 저렴한 옷들. 저는 옷을 거의 구입하지 않아서 패션 산업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안 사 입으면 뭐하나, 다른 사람들이 10벌씩 사고 버리면 지구는 의류 쓰레기장이 되는데 싶더라고요. 패스트 패션이 단지 쓰레기문제가 아닌 것도 저에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독성화학물질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불평등의 문제까지 보고 나니 이 문제를 좀 해결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사부작 뭐좀 해볼까 싶긴 한데, 아직은 시동만 걸고 있답니다. 저는 혼자는 못해요. 가끔 외향적인 리더가 되보고 싶기도 하네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ㅋㅋ 나는 왜이리 혼자일 때 작아지는가. 근데 혼자 이렇게 잘사는게 참 다행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일이 좀 많아서 바짝 긴장해야 하는 한 주가 될 것 같아요. 무사하게 한 주를 잘 보내고 다음 편지를 기다릴게요~ 봄이 슬슬 다가오는게 느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지난주보다 포근해졌어요. 그럼 잘지내세요. 갈토 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10
  • [대한 편지 : 토토와 가로] 뭐가 그렇게도 불편하고 불안했을까요?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안녕하세요.다가오는 대한을 맞이하며 가로에게 편지를 띄워요.잘 지내고 있나요? 지난 소한에는 봄이 왔나 싶을정도로 이상하리 따뜻했던 날이 계속됐는데 다행히도 다시 추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네요. 가로 덕분에 마늘들도 귀를 쫑긋 세운 초록 토끼들처럼 잘 자라고 있어요. 답장을 늦게 보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해주어 고마워요. 편지를 쓰는 일은 저에게도 여전히 낯설은 감각이라 부담이 되었을 가로의 마음이 꼭 내 마음같기도 했어요. 오늘도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쭈뼛쭈뼛 망설임이 가득해요. 부디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잘 써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적어볼게요. 편지를 받고서 가로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던 것들이 참 반가웠어요. 무 씨앗을 심으며 흙을 만지는 가로, 나물비빔밥을 입안 가득 맛있게 먹는 가로, 새하얀 겨울산을 신나게 달리는 가로, 추위를 견디며 침낭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가로의 표정들을 상상하게 되어요.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그렇지만 생명력을 응축한 단단한 씨앗의 느낌이에요. 꽁꽁 숨어있는 나를 기다려주고 아껴준다는 표현이 참 좋아요. 차가운 바람이 가로에게 묻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잘 들어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자연스레 그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저는 지리산 자락 중에서도 섬진강 가까이에 살고 있어요. 매일 강을 따라 걷는 일과로 하루를 시작해요. 제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강과 가깝게 위치해있어 몇년 전에는 수해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대요. 강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고요한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흔적들을 종종 만나기도 해요. 강변에 떠내려온 커다란 쓰레기라던가, 수해로 인해 생을 마감한 오래된 나무도 있고요. 많은 이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강이에요. 강은 지리학적으로 어떤 차원에서는 단절을 만들기도 하지만 또 많은 존재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지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같이 사는 친구와 고마운 것들을 적어보았을때, 우리는 공통적으로 섬진강을 적었어요. 신기하게도 강을 따라 걷는 산책길에서 힘들때마다 위로를 참 많이 받았더라구요. 마음이 시끄러운 날엔 산책을 나갔다가 하룻밤 사이에 하얗게 만개한 벚나무 꽃들을 보면 마치 깜짝 선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반려생물을 떠올리다보니, 섬진강 산책길에서 만나는 존재들이 떠올라 적어봐요. 어느 날엔 못보던 새가 찾아와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길래 찾아보니 말똥가리가 겨울을 보내러 남쪽으로 찾아왔더라구요.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높이 비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한참 그곳에 서있었던 적도 있어요. 황금빛 햇살이 강물에 부서지는 따뜻한 날엔 우연히 수달 두 마리도 기분이 좋았는지 배를 내밀며 사이좋게 수영하는 모습도 보았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눈으로 열심히 수달들을 쫓으며 강을 따라 걸었던 기억도 있어요. 귀촌해서 살면서 때로는 내가 살아왔던 도시, 친구들, 가족들, 편리한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가끔 친구들이 저를 자연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할때 이런 느낌이 드는데요.. 이렇게 시골에서 계속 살아도 괜찮은걸까? 하고 불안감이 올라온 적도 있었구요. 아름다운 섬진강과 경이로운 존재들을 매일 만나는 호사를 누리면서도 말이에요. 그래서 섬진강을 바라보는 시간이 저에겐 참 소중한 것 같아요. 고맙기도 하고요. 자연의 생명들은 하나같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말똥가리는 하늘을 비행하는 삶에서 행복해보여요. 물장구 치는 수달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하는 마음없이 다르게 사는 다른 생명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나다운게 무엇인지, 나답게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지.. 가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대한이 지나면 꽁꽁추위가 지나고 포근한 겨울이 온대요. 가로와 함께 마음을 나누며 추위와 겨울을 잘 지나보내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맞이하고 싶네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건강하게 잘 지내요. 끝추위 대한을 맞이하며 -토토 <토토에게> 안녕하세요 토토! 가로예요. 인사가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사실 저는 연휴동안 이사를 했어요. 이제야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나봐요. 뭐랄까 기분은 굉장히 덤덤하고, 마음이 무척 편안하네요. 자유다! 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신이나 춤바람을 부리지는 않았어요 :) 사실 저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홀로서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전혀 낯설지가 않네요. 어쩌면 그동안은 내 자신이 반려 생물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보살펴야 했던 유일한 것이었고, 참 많이 의지하고 제일 가까운 친구였어요. 반려생물하니까 생각 나는게 예전의 저는 자연의 주어진 모든 것들이 저의 반려 생물이었던 것 같아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궤적과 흔적들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마치 뭐랄까, 땅 위에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나뭇잎들도, 나무의 거친 껍데기도,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의 그림자들도, 도시의 길고양이들과 자연의 야생동물들, 심지어 어느 날은 쓰레기 더미마저 작품으로 보일 때 가 있어요. 저한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요. 하하. 그냥 저는 거짓되지도 않은, 과장되지도 않은 존재 그대로의 삶의 흔적이 참 아름다워보였나봐요. 지금도 그래요. 나한테 반려생물은 나 자신, 그리고 주변의 자연 그대로의 모든 것들이에요. 아직 방에는 가구가 없어서 제 방은 옷과 책으로 정신이 없어요. 하지만 머릿속으로 다 정리된 저만의 방을 상상하면 저만의 공간이 완전 해져요. 그 아늑하고 완전한 작은 공간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과 따듯함이에요. 저는 늘 집이라는 공간이 불편하고 불안하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거든요. 이상하죠? 나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편리한 집도 있고, 모든 게 다 있는 것 같은데도 이런 투정을 부리고 있잖아요. 나는 뭐가 그렇게도 불편하고 불안하고 무서웠을까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불편하고 불안한 것도 적응이 된다는 것, 끔찍하게 벗어나고 싶어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마침내 적응한다는 것. 문득 토토가 처음 지리산으로 떠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편지에 토토를 자연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는 걸 보면 도시생활을 했던게 맞죠? :) 집을 떠나는 참 수많은 이유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와 토토가 집을 떠나온 이유는 같지 않겠지만,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거에요. 그 이유만큼은 아무도 몰라줘도 내가 알고 있잖아요. 저처럼 꾸역꾸역 버티고 버티다 드디어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서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을 빨리 알아차려서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토토처럼.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토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토토! 우리 자신의 행복을 의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남의 행복이 부러워 보여서 내 행복을 저버려봤는데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행복도 참 다른 것 같아요. 나는 그랬어요. 그래서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안다면, 그대로 믿어줬으면 좋겠어서요. 만약 아무것도 잘 모르겠다면.. 그땐 잠깐 쉬어가요. 항상 마음이 제일 바빴잖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흠, 저는 비록 지금의 집 근처에 숲과 산과 강은 보이지 않지만, 다시 한 번 상상을 해봐요. 언젠가 눈을 뜨면 바로 아름다운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들을 매일 만나며 행복해하는 나를요. 겨울이 겨울 다워야 안심이 되는 하루를 우리는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서울은 겨울이 겨울 다워서 기뻐요. 얼어붙은 겨울에게 감사하며 그리운 봄을 기다려봐요 우리. 안녕 토토, 가로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06
  • [숲샘의 지리산통신] 경호강백리길
    수평의 길이라 더 흐뭇한 경호강백리길, 진주 대평면에서 산청 동의보감촌까지 경호강 따라 조성 중인 자전거 및 걷는 길이다. 첫 구간인 대관교에서 소남마을까지 잠시 짬을 내서 걸었다. 경호강 가로질러 진주 찍고 다시 산청으로... 걷는 내내 강의 자정 능력에 감탄하다. 하지만 그 한계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2-05
  • [대한 편지 : 덕복희와 산달] 혹시 이게 사랑일까요?
    디자인.칩코 <사랑을 탐구하는 산달에게> 산달! 답신을 고대했노라고 점잖게 전할 작정이었어요. 편지를 보자마자 홀라당 읽어내려갔다가, 눈을 감아도 문장이 아나운서의 프롬프터처럼 동동 떠다니도록 수차례 다시 보았답니다. 어찌나 기뻤는지 앞니가 다 건조해졌느니, 꼭지점댄스를 출 뻔했느니 덧붙이다가, 적다보니 글이 주접스러워 그만 체통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제 예상과는 달리 썩 고상하게 답신을 읽은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무척 기뻤다는 말이어요. 산달이 ‘Sandal wood’였다니! 신년에 친구에게 인센스를 선물 받았어요. ‘포트메리온’ 접시를 ‘포토샵’이라고 부르는 엄마와 닮은 저라면, 한번 듣고 곧장 잊어버릴 어려운 이름의 향들이었답니다. 그중 제가 딱 기억하는 것이 바로 산달우드였어요. 향을 잘 아는 친구에게 이건 어떤 향인지 설명을 구할 정도로 기억에 남았지요. 그때 왜 산달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산달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향 이름만큼이나 향 냄새도 좀체 구분하지 못하는 제가 산달우드만은 꼭 기억하게 되길 바라요. 산달의 편지는 꼭 어린시절 읽던 잡지 귀퉁이에 적힌 낱말 퀴즈 해답지 같았어요. 특히 ‘기후운동은 어쩌면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문장에서는 엉덩이를 걷어차인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어요. 마치 “인생은 왜 이리 고통스럽습니까!”하는 제자들에게 “인생은 원래 고해다!”라고 설파하는 싯다르타의 법문처럼 들렸답니다. “환경운동은 왜 이리 수신자가 없이 고독합니까!”하는 저에게 “기후운동은 원래 기다림이다!”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지구가 저를 기다려준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지금은 부족하지만 더 지구답게 살아가도록 인내해주신다고요. 자식을 천 번 만 번 가르치는 어머니처럼요. 어미늑대는 어린 자식에게 처음엔 음식을 토해서 준다고 해요. 당신이 반쯤은 소화시켜서 주는 거죠. 식사를 물어다주는 일이 천 번 반복되고 나면 이젠 사냥법을 천 번... 이토록 친절한 커리큘럼이 있을까요? 지구가 제게도 똑같이 그러고 계시겠죠? 산달의 말마따나, 제가 그 특훈을 경청하고, 수집하고, 마침내 번역할 수 있도록요. 지난 편지에서 ‘못말리는 돈벌레’를 이야기했었죠. 전 어릴 적부터 늘 벌레를 혐오했어요. 이사를 해마다 다녀서 거친 집이 많거든요. 어찌나 싫은 기억이 강렬했는지 저는 ‘불개미가 모퉁이마다 있던 집’, ‘주먹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던 집’ 등으로 집의 역사를 기억해요. 돌이켜보면 벌레는 언제나 반려자였으면서도 언제나 박멸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길가의 비둘기에게 더는 욕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어깨에 올라온 거미를 세게 밀쳐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언제부턴가 지구가 상냥함을 제게 가르쳐준 거예요. 벌레는 반려고양이랑 다를 게 없다고요. 벌레를 죽이지 말고, 지긋이 관찰해보라고요. 그들은 한밤중 별안간 불빛에 침범 당했을 때조차 고요함을 지킬 줄 알아요. 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숨죽이는 솜씨 좋은 은닉자에요. 살충제 따위로 누를 수 없는 한겨울 배추같은 생명력도 있고요. 지리산에 오니 반려벌레가 다양해졌어요. 지네, 곱등이, 콩벌레, 노래기 등등… 지은 업이 많아서인지, 지금의 제게 벌레라는 종족은 유난히 애틋해요. 물론 아직 벌레와 악수할 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제법 그들이 귀엽게 보여요. 단 지네만큼은 아직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발바닥만한 지네가 성큼 집에 들어왔을 때 꼭 지네가 제게 장풍이라도 쏜 것처럼 놀라 나자빠졌답니다. 시골에 오래 산 사람치고 지네에 안물려봤다는 사람을 못만났어요. 너무 공포스럽죠? 다행히 전 아직 지네에 안물려봤는데, 지네에 물린다면 아마 ‘성인식’처럼 ‘촌인식’을 무사히 마쳤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그땐 꼭 축하해주세요(?). 저는 지네의 깜찍함마저 발견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을게요. 아아, 산달! 혹시 이게 사랑일까요? 저는 ‘사랑은 어떤 걸까요?’하는 산달의 물음에 한동안 어름거렸어요. 매일 아침 고구마를 우물거리면서, 창밖의 쌓인 눈을 구경하면서, 고양이와 난로 앞을 지키면서, 재차 떠올렸지만 뾰족한 답을 몰랐거든요. 지금 편지를 쓰자,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돌연 답이 튀어나온 것 같아요. 천 번의 기다림 속에는, 다정함과 희망과 강인함과 상상력이 있잖아요! 저를 향한 지구의 기다림이 느껴질 적마다 명치에 성냥불 하나만한 따뜻함이 생기거든요. 제가 벌레에게 굴어온 무례를 꾹 참고 끈질기게 천 번 만 번 알려주었잖아요. 지구가 그토록 아끼시는 벌레를 우리집에 또 다시 보내주었잖아요. 그걸 사랑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지구처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다음 편지가 올 쯤이면 열흘은 흐른 후일 거예요. 그때의 산달은 “사랑의 새로운 길을 찾았어요!”하고 말을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화두에 몰두하고 있으려나요? 산달의 반려생물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다음 편지까지 꼼짝없이 저는 소한의 편지에 머물러요. ‘음…’, ‘뭔가…’라며 말을 고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입을 꾹 붙이고 선 사람을, 그런 사람이 거듭 다듬어낸 문장의 무게를 돌아봐요. 오래 손 안에 쥐어 미지근해진 조약돌 같은 온도를 떠올려요. 대한의 편지를 보채고 싶지만, 저도 산달처럼 차분하게 바로보면서 산달의 세계를 만나볼게요. 가을에 담근 밤조림을 세 달 꾹 참고 겨울에 맛보는 마음으로,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숙성되는 산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게요. 자신의 편지를 기다리느냐고 물었죠? 몹시 기다려요. 그러니 다음 편지까지 명랑한 나날들 보내세요!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난 덕복희 올림 p.s. 새파란 잠자리는 벼가 호박빛으로 물드는 초가을 논둑길에 마지막 남는 푸른빛이에요. 여름색 옷으로 경의를 표하며, 여름이 무사히 떠나도록 마차를 준비하는 기사랍니다. 지리산에선 참새만큼 흔한데, 서울에선 ‘밀잠자리’를 만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어요. 올 여름 산달이 지리산에 온다면 만날 수 있을까요? <지구처럼 기다려주는 덕복희에게> 왜 이렇게 웃기죠. 나 참, 웃기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복희의 말들은 마치 단내를 잔뜩 머금은 한라봉의 알갱이처럼 톡톡 튀어요! 향긋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복희의 말들을 잔뜩 따버릴 뻔 했어요.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을 한 번 닮아보고자 서로의 색을 문지르려는 존재들이잖아요. 저만 그런 걸까요? 복희가 아직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문장들을 조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올라와요. 그러나 매 겨울이 제각기 다르게 매섭고 매 봄이 저마다 유달리 포근하듯이, 복희가 찬찬히 재잘거릴 수 있도록 기다려야겠어요. 아, 연필이나 펜으로 편지를 쓴다면, 산달우드 향을 종이에 발라서 보낼텐데요. 그럴 수 있다면 제 서성거리는 말 대신 산달우드 향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발랄하게 인사를 할 거에요. 답답할 수도 있는 제 말들의 빈틈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복희가 혹여나 지루해하지 않게요. 엇, 혹시 제가 지금 걱정하고 있나요? 염려라는 것을 하고 있나 봐요. 제 말이 복희에게 어떻게 들릴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말이에요. 복희는 분명 제 이야기를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나면서까지 기쁘게 읽어주었는데 저는 왜 복희의 마음을 앞서서 걱정할까요? 이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인걸까요? 복희, 복희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 주었잖아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알 겨를이 없는 낯선 사람에게 첫 편지를 적는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봤어요.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산달씨와 산달님과 산달쌤 사이를 널뛰며 어색해하던 그 마음을요. 늘 수신자가 없이 독백을 일삼던 제게도 침묵은 아직 낯설고 무섭더라고요. 활동가는 늘 낯선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텐데 말이에요. 매번 하는 회의에서도,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늘 갸우뚱한 표정과 미지근한 미소를 견딜 용기를 마련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복희가 제게 뻗어준 말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어요.’ 라고 온몸으로 반기는 윙크같았어요. 복희의 격한 손짓을 따라 글씨를 적어내리다 보니 저의 단어들도 생생하게 빛나는게 느껴지는 거 있죠. 춤을 추는 복희의 모습이 어떨지 그려보기라도 했는지 제 문장들도 못 참고 리듬을 타더라고요. 그때 저는 조금이나마 알아차렸어요. 지루함이나 따분함이나 시시콜콜하거나 그런 마음들은 모두 제가 그이들의 말들을 받아들이고 제 삶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요. 저는 어쩌면 그렇게 늘 누군가의 입을 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벌레들도 늘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겠죠? 복희는 이미 그들의 조잘거림을 귀엽게 주워담고 있나 봐요! 나중에는 제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아마 시간이 걸리는 일일거에요. 곧 지네와도 반갑게 악수할 수 있길 바래요. 복희가 그랬잖아요. ‘천 번의 기다림 속에는, 다정함과 희망과 강인함과 상상력이 있다’고요. 복희가 지네를 기다려준다면 (지네가 복희를 기다려준다면) 지네의 오밀조밀한 다리 사이사이에서도 그 모든 새싹들이 자라날 거에요. 그리고 제게도 그 마음은 전염될거에요. 꼭 촌인식 때 불러주세요. 함께 자라나는 그 마음들을 환영하고 축하하기로 해요. 슬금슬금 다가오는 존재들과 눈을 맞대고 호흡을 맞추고 함께 천 번 만 번 춤을 춰요. 그리고 우리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도록 해요. 복희, 저는 안타깝게도 벌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지 않아요. 벌레도 새들도, 나무들도 온종일 옴싹달싹 못하고 끙끙 앓는 것처럼 느껴져요. 늘 내가 사는 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해요. 그렇다보니 우리 종족조차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답니다. ‘그럴리가요!’라고 되묻는 복희의 얼굴을 상상하며 대답을 하자면 삶을 함께 꾸려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달까요. 작은 방에서 혼자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침대로 돌아올 때면, 어떤 사람에게든 늘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돼요.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요. 그러다가 겨울이 되어 집에 돌아왔어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 동생,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은 아니에요. 저는 집이 마냥 편하지는 못하거든요. 늘 저 자신을 감당해내기에만도 벅찼던 날들을 보냈으니까요. 어떻게 함께 사는 서로를 이해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겠어요? 엄마와 아빠는 이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동생도 많이 차가워졌어요. 하지만 꿋꿋이 기다리려구요. 왜냐하면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저를 기다려주었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제 이야기들을 쌓아가는 동안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무심했거든요. 얼마 전에는 설 명절이였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았는데, 세뱃돈 봉투에 ‘할아버지는 너를 믿는다.’라고 적혀있는 거에요. 그 사랑 가득한 말을 보자마자 저는 눈물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들이 기꺼이 견뎌온 기다림의 무게를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멀리 떨어져 있던 서울에서 가족과의 전화가 가끔 귀찮다고 느껴질 때에도 그들은 제게 전화를 걸어 저를 사랑한다고 늘 고백해주었으니까요. 제게는 이들이 어떤 다른 존재 이전부터 저와 함께해온 반려생물들이에요. 이제는 많이 늙었고,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이지만, 이젠 제가 그들을 기다려보려고요. 전에 사랑에 대해 질문했잖아요. 누구에게나 이런 사랑과 기다림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어요. 내쳐지기를 염려하지 않고, 서로의 입을 막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돌아보면 토닥토닥 꼭 안아줄 수 있는 존재들이 모두의 곁을 이루었으면 좋겠어요. 복희의 곁에도요. 복희, 지구처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했죠. 꼭 배워서 제게도 알려줘야해요. 서로에게 그 사랑을 탐구하는 존재가 되어주기로 해요. 아, 어쩌면 우리가 지금 그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더 들여다보고 내보이고 싶어요. 복희의 안에서 자라나는 온갖 무화과와 석류와 한라봉들이 궁금하지만, 저도 차분히, 제 마음들을 모아가며 기다릴게요. 복희의 세계가 그럼에도 평온하길 바래요. 새파란 잠자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지구에게 기도하며, 복희의 열매들을 상상할게요. 과일을 좋아하는 산달 올림 P.S. 달복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만든 그 노래 중 일부를 나누어요. 그리고 제가 찍은 사진도 한 장 나누어요. “시작과 끝에서 나는 기도했지 저들의 시간을 붙잡아 달라고 흐르지 못하게 끝이 오지 않게 저들의 마음을 붙들어 매라고 뿌리를 내려주고 숨을 내뱉어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가지를 뻗어주고 열매를 내어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흙으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고 베푸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 놓지 말라고
    • 지리산 오늘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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