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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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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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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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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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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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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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오늘 기사

  • [대한 편지 : 참새와 돌] 신세지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겠어요
    디자인.칩코 <돌에게> 돌, 추운 겨울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난 주만해도 벌써 봄같은 날씨에 소한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걱정했는데 이번주는 이불밖으로 나오기가 무서울정도로 춥네요. 돌의 편지를 받고 몇번이고 읽어보았어요. 가만히 멈춰있는 돌이 아니라 데구르르 구르는 돌을 상상하니 묵직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돌의 습관은 일기군요. 저도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줄 누군가가 너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부터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필요와 요청에 ‘반응’하며 살아온, 별명마저 누구나 부르기 쉽게 정했다는 돌의 존재가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나타났다면 너무 큰 행운이었겠죠. 홀로있는 외로움을 자신과의 대화로 채워온 시간만큼 다른 이에게 기대거나, 신세지는 일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일기쓰는 시간보다 수신자가 있는 편지를 쓸 때 더 설레고 기뻐하는 저를 보니, 혼자 견고히 살아가는 법보다 더불어 신세지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겠어요. 그래서 나의 펜팔 짝꿍인 돌이 “더 적극적으로 서로 기대는 삶의 방식을 바래요.”라고 말해주어서 참 반가웠어요. 제가 돌의 이야기에 응답할 수 있는 수신인이 되어서 정말 기뻐요. 마침 이번 펜팔 주제가 나의 반려생물이네요. ‘반려’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니 ‘짝이 되는 동무’라고 합니다. 짝이 된다는 건 평생 서로에게 신세를 지고, 기댈 곳이 되는 걸까요? 반려자,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식물, 반려돌멩이까지도 들어봤어요. 반려돌멩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반려머시기들 중에 저는 저의 6년차 반려고양이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처음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저는 주중에 서빙알바를 하고, 주말에는 집회나 세미나 등을 쏘다니며 서울의 원룸에 살고 있었어요. 덜컥 고양이를 데려오기엔 너무 불안정한 삶이었는데요. 같이 서빙알바를 하던 언니가 매일같이 안타까운 유기묘 사연과 그보다 더 안타까운 고양이 학대사건을 말해줬어요. 그러면서 너는 비건이니까 고양이를 입양하면 그 누구보다 잘 키울거라며.. 지금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제대로 바람이 들어서 이 친구를 데려와버렸어요. 한 달 벌어서 겨우 다음 한 달을 버티며 살던 때였는데 각종 고양이 용품에 사료에 병원비 등등 감당하기가 벅찼던 것 같아요. 근데 또 내 새끼 좋은 거 해주고 싶다고 나도 안 쓰는 원목 용품과 유기농사료로 싹 구비했었죠. 언젠가 나갔다 들어오니 애가 뭘 잘못 주워먹었는지 눈이 띵띵 부은채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거에요. 심장이 덜컹해서 바로 케이지에 넣어 병원까지 울면서 뛰어갔어요. 동물병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흥분한 목소리로 “선생님! 애기 눈이 왜 이러죠! 어떡하죠?”하고, 케이지를 번쩍 들어 선생님 코 끝에 닿을 정도로 들이밀었어요. 그런데 “음..알레르기 같네요? 잠시 앉아계세요.”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돌아왔고, “아..네.”하고 머쓱해진 기억도 있습니다. 잠든 고양이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돌연 ‘돈 많이 벌어서 아주 호화로운 고양이로 만들어줄게.’하는 이상하리만치 낯선 열의가 타오른 적도 있습니다. 오래 집을 비워야해서 부모님께 잠시 맡기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어쩐지 무료해 보일 때면 ‘내가 부족해서 미안해.’라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속이 타는 것 같은 고통이 진짜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철이 들었다며 좋아했어요. 쉽지 않았어요 고양이의 반려인이 되는 거요. 지금도 여전히 도전중인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가진 게 없는데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니까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죠.알바를 하면서 살 때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돈을 달라고,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치며 살았어요. 현실에 맞설 힘은 점점 줄어드는데 세상의 반응은 잘 돌아오지 않고, 돈은 점점 더 커보이고, ‘가난한 삶은 참 불행구나’하고 단정지을 참이었어요.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 재정 상태를 이제 반려고양이에게도 나눠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일상은 더 좋아지더라고요. 제 반려고양이가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뭔지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를 돌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고양이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반려인들과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볼 때, 같이 놀 때는 금세 초집중 상태가 되어서 어떤 걱정과 불안도 끼어들 틈이 없어요. 작은 몸짓만으로도, 제가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웃음짓게 만들어요. 돈을 줄지만 일상은 즐거워지는 무언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지 않는 이상한 인과성을 발견하게 해준 게 제 반려고양이입니다. 어쩌면 그게 반려의 힘인지도 모르겠어요. 역시 내 새끼 자랑은 시간이 모자라요. 너무 편지가 길어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돌의 반려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이만 짹짹!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두 번째 인사네요! 겨울의 큰 추위 ‘대한’다운 날씨예요. 사실 참새의 편지가 도착하기 직전 즈음부터 말도 안되게 춥다며 호들갑 떨었는데, ‘대한’이라고 말하고 나니 그럴만 하달까, 괜찮은 것도 같아요. 별명을 지을 때의 태도랑 닮았는데요. 저는 나를 믿기보다는, ‘나를 믿는 너’를 믿어요. 그래서 ‘돌’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을 때보다, “데구르르 구르는 돌을 상상하니 묵직한 에너지가 느껴져요”라고 답해주는 참새의 말을 들으며, 정말 제가 돌이 되었다고 느껴요. 고마워요. 별명을 지을 때도 나를 정의할 때도, 누군가 저에게 기대어주기를, 그것으로 저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해준 시간이었어요. 혼자 있는 게 익숙한 참새가 다른 이에게 기대고 신세지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는 것처럼 저도 그랬어요. ‘기대는 나’는 민폐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지? 몰랐거든요. 살면서 좋은 관계 속에서 주로 지내왔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를 의식적으로 구성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익숙하고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삶과 그 의미에 대해 자주 말해왔어요. 우리의 관계로서 나라는 존재가 가능하다고요. 그런데 사실 아주 최근에서야 저는 이 말의 무게를 실감하는 것 같아요. 희망차고 이상적이고 뿜어나는 기운을 만드는 순간도 ‘관계로서 함께 하는 삶’이지만, 내가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도록 요청하는 그런 ‘관계로서 함께 하는 삶’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거든요. 근래 저는 제가 속한 어떤 관계가, “원래의 방식대로 살면 참 편한데 그렇게 살면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누군가의 용기로 또는 예민하게 받아낸 다른 친구의 감수성으로 감각되었죠. 이전의 관계들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고 이 불편함을 가지고 잘 살 수 있으려면 바뀌어야만 하는 거예요. 저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저에게, 지난 모든 관계와 기대온 방식과 익숙해지고 무감해지던 불평등-폭력의 모습들을 직면하기를 요청하고 있어요. 기후운동도 그런 모습인 것 같아요. 아픈 만큼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살아왔다면 아픈 이의 옆에 함께 서봐야겠죠. 아픔의 모습을 조금 보고나면, 아픈 건줄 몰랐던 나와 우리의 어떤 생김새가 또 보일 거예요. 그런 용기는 손잡고 있는 이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 같아요. 손을 잡고 있으면, 무서워서 내빼고 싶을 때 잡아주고, 앞으로 달려나가고 싶을 때 속도를 낮추며 따라갈 수 있게 되니까요. 저는 요즘 그런 용기를 내보며, 비로소 ‘기대어 있는 나’를 상상하고 그 의미를 감각해요. 이런 시기에 ‘반려생물’이라는 주제는 또 한 번 질문하게 해요. 제가 반려식물이라 불렀던 이는 있는데요, 이런 무게와 책임을 나누며 ‘반려(짝이 되는 동무)’가 되었나?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어서요. 식목일 행사에서 나눔 받은 것이 첫 만남이었어요. 다육식물이고요, 작은 화분이에요. 농사는 지어봤는데, 작물이 아닌 화분은 처음이었어요. 물을 많이 주어 뿌리가 썩는 바람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잎이 바짝 마를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기다리며 챙겼어요. 쪼글쪼글 얇게 줄어든 잎이, 물을 준 다음 날이면 아주 팽팽하게 단단하게 커져 기세를 보이는 게 신기했어요. 줄기의 힘보다, 늘어난 잎의 무게가 커지면서 끈으로 묶어도 줬고요. 그렇게 늦봄부터 여름, 가을을 잘 지나 이번 겨울이 왔어요. 날이 건조한데도 물을 자주 필요로 하지 않길래 또 쪼글쪼글해지는 날을 기다렸죠. 그러다 때가 되어 물을 듬뿍 줬고, 물이 잘 빠지도록 바깥에 내놨어요. 그런데 생각이 짧았어요. 저는 외투도 입고 난방되는 실내에서 지내니 기온이 5도인지 0도인지 크게 상관 없는 사람이지만, 물을 잔뜩 먹은 식물 입장에서 0도는 어는 점이었던 거예요. 얼어서 까맣게 된 줄기와 잎을 보면서 너무 속상했어요. 샤워 후에 수건으로 닦지도 않고 바깥에 내놓은 거구나. 얼었던 잎도 금방 녹이면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길래 뜨끈한 바닥에 두고 담요도 둘러줬어요. 얼어서 힘이 빠진 줄기가 다시 살아날 때 도움이 되라고, 흙에 연필을 꽂아 지지대도 마련했고요. 하지만 며칠 뒤 연필을 빼는데 아무 힘도 없이 줄기가 제 손 위로 툭, 떨궈졌어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어요. 아 정말 힘을 다 잃었구나. 세심치 못해, 몇 달 간 함께 한 이가 한 순간에 이렇게 된 게 미안했어요. 슬픈만큼 그래도 애정했던 스스로를 도닥이며 인사했어요. 다육식물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한 달을 세어보기도 했지만, 다육식물처럼 흡수하고 바람 맞는 법은 몰랐어요. ‘반려’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그 존재가 되어보는 일인가보다 어렴풋이 배웠어요. 덕분에 당위적으로 ‘생태적 존재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생명으로 연결되어 기대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느끼고 있어요. 저의 반려생물 이야기는 이렇게 일단락해보아요. 두서없이 펼쳐놓은 이야기를 담아, 약속한 날의 마지막 순간에야 편지를 부쳐요. 참 급하죠. 그렇지만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잠을 쪼개 답하고 싶은, 그런 손내밀기를 해줘서 꼬옥 충분하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다음 편지를 받을 때는 변화의 기점에 있는 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을 예정이에요. 그때는 조급함보다 제 일상의 여유를 담을 수 있기를, 그런 마음과 힘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닫을게요. 따뜻한 밤이길요, 참새! 데구르르 돌 2023.1.26.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30
  • 숲샘의 지리산통신
    역대급 강추위는 우리 동네도 예외가 아니지만 날씨야, 아무리 추워봐라~ 납매가 꽃을 안 피우나, 내가 초록걸음을 안 걷나... 산청 묵곡생태숲길을 걷다가 납매와 학이재 그리고 꽁꽁 언 경호강을 담다.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1-28
  • [대한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처음 보는 식물이 너무 예뻐서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대한을 맞이하며 두번째 편지를 보내요! 먼저, 늦었지만 갈토의 속상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고 싶을 만큼 생일 축하해요. 제가 생일 전날 편지를 보낸 건 1월 중 가장 잘 한 일이 되었어요. 뿌듯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갈토가 던져 준 '느긋하게 산다는 게 어떤건지'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던 오늘, 문득 창 밖에 내리는 눈들을 보다가 반짝 떠올랐어요.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 하고요. 그 순간이 선처럼 이어진다면 느긋하게 일상을 보낸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지리산을 떠나 본가인 인천에서 지내는 요즘엔, 주로 하늘에 뜬 것들로 자연을 만나요. 그래서 그런지 눈과 함께 현재를 느끼는 소중한 경험도 해보네요. 인천이라니, 갈토와 꽤나 가까이 살아서 놀랐지요? 설명을 드리자면, 저도 지리산에서 살고 싶은데 인연이 닿는 집이 좀체 나오질 않아요. 산내라는 마을을 통해 지리산을 만났고, '지리산방랑단'을 하면서 그 외에 다른 지역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구례에서 느꼈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구례는 읍내가 있는데 적당히 상점이 늘어진 거리와 뒤에 펼쳐진 산들이 한적하고 맘에 들었어요. 저는 어느정도 번화된 곳을 좋아해요. 도시와 시골의 중간 느낌이랄까요. 시골집에서 흔히 만나는 벌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가 유독 무서워 해요. 게다가 마을 곳곳에는 풀려 있는 개가 정말 많은데요. 개의 레이더에 걸렸다, 심지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이러면 뭐ㅎㅎ 평소 위아래로 뛰던 심장이 앞뒤로, 몸 밖으로 뛰쳐나왔다 들어갔다 해요. 지난 날 개가 공격하지 않고 겁만 주고 간 것에 감사합니다... 인간동물들은 '말'하면서 서로 의사를 확인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저와 소통 방식이 다른 생물과는 제가 그들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두려운 것 같아요. 제가 두려워하기엔 그 작은 생물들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게 아이러니지만 벌레와 닿는 촉감이 낯설어서 소스라치게 돼요. 외딴 시골일수록 자주 마주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정도 자연과 단절된(...) 읍내에서 살고 싶은가봐요. 갈토의 말처럼 '서울 중심으로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깊이 공감했어요. 서울은 또 자연과 단절된 부분이 많지요. 제 안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권력의 익숙함 또는 자연과의 단절감이 있고, 그 도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꿈틀대는 대자연을 향한 본능, 간절함이 있어요. 이 두 감각 속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지요. 아무튼 읍내에 있는 집 중에서도 아파트는 돼야 벌레나 풀린 개와의 만남을 회피할 수 있겠죠. 결국 아파트 살 돈이 없는 저는 방랑 이후 안성맞춤 보금자리를 못 구한 채 본가로 돌아왔답니다..ㅎㅎ 아쉬운 대로 지리산에는 자주 내려가는 방법으로 작년을 보냈어요. 약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식으로요. 큰 맘 먹고 여름 한동안은 구례 작은 마을의 친구 집에서 지냈는데요, 그 집엔 많은 곱등이 가족들과 애집개미 군단이 있었어요. 부러운 점이 있었어요. 그 집에는 저처럼 여름 한 철 놀러 온 개가 있었거든요. 그는 애집개미들이 우르르 있는 벽면에 철썩 기대어 잠을 자거나, 바삐 움직이는 거미 뒤에 코를 바싹 대고 따라 다녔어요. 강아지 시절부터 봐와서 저와 퍽 가까운 사인데 그땐 거리감이 살짝 들었어요. 결코 따라할 순 없었지만 벌레와 다정할 수도 있는 모습에 뭔지 모를 안도도 했어요. 풀린 개들과 벌레는 아마 오래오래 제 반려생물이 되어 줄 것 같아요. 제가 그들과 언어로 소통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겠지요. 나름대로 해마다 두려움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기에 앞으로도 기꺼이 기회로 받아 보려고요! 갈토도 궁금해요. 어떤 반려 생물이 계실지요!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되었네요. 갈토의 편지를 읽고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답변하고 싶은 충동과 앉은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쓰고 싶은 들뜬 마음이 있었어요. 갈토가 감사 일기 쓰는 멋진 습관이 부러웠구요. 저도 그 이후 열심히 써 보는 중이랍니다! 오늘은 일기를 적극 추천해준 갈토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적어 볼게요. 1. 갈토가 제 편지를 읽어주어서 고맙습니다. 2. 오늘 눈이 내려 고맙습니다. 3. 비건 꼬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고맙습니다. (어디서 파나요..?) 그럼 갈토,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조금 느긋해진 유우야 드림 <유우야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오늘은 일찍 깼어요. 꿈 속에서 엄청 헤매다가 ‘이건 꿈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잠에서 깨버렸어요. 전날 꽤 피곤해서 잘 자야했는데, 다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뒹굴뒹굴하다가 문득 이렇게 어둠속 에서 잡생각을 할 바에는 유우야에게 답장을 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부터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났거든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깬건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라는 문장이 좋아서 곱씹어 읽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이사를 했는데 그 전에는 지층에서 오년간 살았어요. 지층에 살면, 날씨가 좋고 쉬는 날이 참 귀해요. 햇볕이 좋을 때 빨래 해서 밖에 널어야 하고 현관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아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느끼곤 했거든요. 그 문장을 읽으며 그 때 느꼈던 느긋함이 기억났어요. 온전히 나의 몸이 밝은 빛과 따스함으로 연결되는 순간의 느긋함. 그 집이 그립지는 않지만, 그 순간은 그립네요. 얼른 날씨가 따뜻해져서 좀더 가벼운 옷차림으로 햇볕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저의 반려생물은 수경식물들과 은행목이에요. 내가 어떻게 이들과 살게 되었나를 생각해보니, 대단한 인연이구나 싶어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대표 취임 축하 화분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작은 화분들 말고 대형 화분들이었는데, 대표가 변경이 되면서 이전 대표가 받은 축하 화분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멀쩡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버리는게 너무 아까워서 혹시 내가 좀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행운목과 홍콩야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모두 흙에 심어져 있었는데, 제가 차도 없고 큰 화분을 둘 수가 없어서 가지를 잘라서 가져와 행운목은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홍콩야자는 흙에 키우려고 흙까지 가져와서 심었는데 잘 적응을 못하길래 수경으로 바꿨더니 잘 자라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이 흙보다는 수경식물이 잘 자란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은행목도 사연이 있는데요. 제 자리 뒷 편에 입사하신 분께 지인으로부터 입사 선물로 은행목이 배달되었어요. 저는 처음 보는 식물이고 너무 예뻐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았어요. 소비욕이 별로 없는 제가 하나 구입할까 인터넷을 검색할 정도로 참 예쁘더라고요. 선물 받으신 분은 선물을 보고 당황해 하셨는데 자신이 똥손이라 키우는 식물마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예쁜데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겨울이 되고, 은행목은 점차 잎이 하나 둘 떨어져 갔고, 나중에는 나무 가지조차 말라버렸어요. 그 분이 퇴사하시게 되었는데, 그 예쁘던 은행목 입사귀가 모두 떨어졌고 죽은 나무처럼 보였어요. 그 분이 은행목을 보시면서, 몇 달간 너무 소진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화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셨어요. 자신은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한 번 키워보겠다고 해서 은행목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 달간 은행목을 정말 정성스럽게 보살폈어요. 인터넷에서 은행목 키우는 법을 찾아보고 아침에 출근하면 햇빛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밖에 놔두고 오후에 햇볕 자리를 보고 위치를 바꿔 줬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초록빛깔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잎이 나기 시작했어요. 물론 처음 은행목을 만났을 때 만큼 풍성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살아났어요. 생명체는 신비롭고 아름다워요. 잎이 사라지고 죽은 건가 쉬는 건가 도통 알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 짜잔하고 다시 생명의 힘을 보여주잖아요. 3개의 잎이 자라고 열 개가 되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흡족해졌어요. 화분에 영양분을 줘서 더 빨리 자라게 하고 싶기도 한데, 겨우 다시 살아난 은행목이 쉬엄 쉬엄 회복하도록 천천히 시간을 주려고요. 저와 함께 첫 겨울을 맞이하였는데 아직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은행목이 초록 빛을 내기까지 저의 특별한 집중 관심을 받았지만 저는 게을러서 관리를 많이 해줘야 하는 반려 식물은 잘 못 키워요. 가끔 물을 주면 되는 다육이라던가 수경식물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저의 적절한 무관심이 이 식물들과 잘 맞아요. 하루에 한번 볼까 말까 하다가 좀 시들해보이면 물이 없어서 말라 있으면 새 물을 채워줍니다. 물을 갈아 줄 때 홍콩야자의 새끼잎사귀가 자라는 거 보면 신기하고 너무 귀여워요. 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과 지냅니다. 집에 초록이 들이 많아서 좋고 특히 수경식물이 가습 효과가 좋고 여름에 집 온도 낮추는데도 좋다고 전기도 덜 쓰게 됩니다. 반려 생물 자랑이 너무 길었네요. 하하하 반려 생물과 지내면서 생명체와 살기 위한 책임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요. 제가 너무 게을러서 물을 못 주면, 식물들은 색깔로 신호를 보내요.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을 줍니다. 저에겐 딱 이 정도의 생명체가 맞는 것 같아요. 밥을 챙겨주고, 소통도 해야하고, 놀아주기도 해야하는 동물 생명체를 키우기에는 저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고. 그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편지를 쓰며 저와 반려생물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식물구입과 동물구입이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에 식물구입보다는 식물입양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공장에서 예쁜 화분들이 만들어지고, 식물들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사람들은 이들을 키우죠. 근데 제가 만난 식물들은 그렇게 선물받은 식물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때 저와 만나게 되었잖아요. 최근 반려 식물이 유행이 되면서 관련 전자제품, 비싼 식물들로 재테크를 하고 시장이 과열되는 게 좀 우려스럽더라고요. 물론 반려 식물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다른 취미보다는 쓰레기가 덜 나오겠지만 생명체를 만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좀더 하면 좋겠어요. 저에게 반려 생물들은 혼자 사는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이네요. 나의 게으름을 참아주고 나와 함께 살아가주는 이 존재들이 참 귀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입니다. 세 번째 편지 기다릴게요~ 추가: 편지 주제는 함께 정하시는 건가요? 진짜 주제 선정 너무 좋다. 박수X 1,000 저는 대체육 별로 안 좋아하는 넥스트밀에서 나온 불구이 꼬치는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2023년 1월 19일 갈토 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26
  • [소한 편지 : 토토와 가로] 올 겨울, 잘 자라다오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안녕하세요.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날이 많은 것 같아요. 아직 햇님이 닿지 않은 지붕은 아직도 하얀 눈이 두텁게 쌓여있어요. 쉬이 녹지 않은 눈들이 여기 저기 묻어있는 겨울이에요. 얼마나 추운지 작년에는 하얀 눈 속에서도 초록 초록했던 마늘 싹들이 올해는 시들해보여요. 새싹에 보랏빛이 돌아서 걱정이에요. 지난 가을에 심었던 마늘이 이대로 괜찮을까 하며 매일 아침 살짝 들여다 봐요. 아 참, 마늘은 추위에 강한 친구래요. 가로는 알고 계셨나요? 영하 7,8도의 온도에서도 거뜬히 살아남는다고 해요. 뽀록하고 튀어나온 기다란 새싹이 하얀 눈 밭에서 숨구멍을 만든 걸 보면 참 신기하더라구요. 마늘싹 주변으로 마치 따뜻한 온기라도 있는 것처럼 눈이 녹아있는 걸 보면 살아있는 생명의 힘이 느껴져요. 마늘의 매콤하고 알싸한 그 맛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닌가봐요. 눈도 쉽게 녹지 않는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새싹을 키우는 저 집념! 모든 것이 잠들어있는듯한 이 겨울에도 초록 생명을 잃지 않는 마늘을 보면 내 안에도 생기가 돋아나는 것을 느껴요. 저는 지리산에 와서 처음 호미를 손에 잡아봤어요. 그래서인지 밭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는 이 생명들의 위대함이 참 새롭고 신비해요. 정신없이 마늘의 겨울나기 이야기를 하느라 제 소개가 늦었어요. 저는 토마토를 사랑하는 토토에요! 눈치채셨겠지만, 농사지으며 살고 있어요. 아직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한 초보 농부에요. 토마토는 제게 특별한 채소인데요, 직접 심었던 첫 작물이기도 해요. 언젠가 가로에게 토마토의 신비로운 세상도 이야기해드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가로가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하신다면 제가 만난 알록달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마토들도 소개해드릴게요. 산달리기와 계절을 통해 위로받는다고 적어준 가로의 글을 보았어요. ‘앗, 내 이야기인가...!’ 싶었지요. 속으로 반가운 마음에 가로와 꼭 펜팔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참 좋았어요. 이렇게 가로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니! 가로는 지금 어떤 겨울을 만나고 있나요? 이 겨울이 어떤 위로를 건네주고 있는지,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과 닮아있을지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요. 아주 어렸을적부터 1월 1일 새해는 가족들과 해맞이를 하러 다녔던 것이 여전히 제 삶에 의식처럼 새겨져있어요. 아마 그때 떠오르는 햇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가족들의 행복한 얼굴이, 다정한 새해 인사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해에는 한번도 빠짐없이 해맞이를 하러 어딘가로 떠났는데 올해는 금강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새해 소원을 빌며 가로와도 그 순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강과 미호천, 두 강이 만나며 자연스레 형성된 습지가 있어요. 신비스러운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모든 것의 시간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은 마법같은 곳이였어요. 나무들은 늘어뜨린 가지마다 새하얀 눈꽃이 활짝 피어있고, 하얗게 서리가 앉은 갈대들은 흔들릴때마다 반짝거렸지요. 겨울왕국에 초대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새벽 안개로 가득한 하늘에 새해 첫 햇님은 만나지 못했지만 경이로운 풍경에 충분히 축복받는 한해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올 한해는 겨울에게 받은 특별한 선물로 시작했어요. ‘가로와도 이 축복을 나누어야지’ 하고 그 모습을 저장했는데 그 사진을 함께 보내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순간에 가로가 떠오른 것, 아직 얼굴도 목소리도 만나보지 못한 이를 떠올린다는 것이 참 신기했어요. 편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것을 나누고 때론 시린 마음들도 나눌 때가 있겠죠? 비행을 하는 느낌같기도 해요. 이렇게 커다란 구름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이 그저 신기해 한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로와 펜팔을 시작하는 것은 설레고 기쁜 마음이에요. 비행기가 도착했을때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어보는 것처럼 용기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기도 해요. 편지를 쓰는일이 익숙한 일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진 것도 있거든요. 펜을 들고 끄적였던 엽서를 친구에게 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서랍에 간직한 일이 종종 있어요. 잘 쓰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게 느낀 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의 깃든 생명의 이야기를 전하고,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 가로와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펜팔의 기회를 꼭 붙잡고 싶었어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봐요. 한동안 비행기를 타본 적은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낯선 공항에서 처음으로 게이트를 걸어나와 느끼는 냄새, 공기, 온도, 풍경들이 주는 신선함 그리고 그 곳에서의 경험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그런 펜팔 여정을 떠나고 싶어요. 왠지 가로가 ‘토토 환영합니다’ 라는 팻말을 들고 나와 서있어줄 것 같아요. 처음 보는 가로를 나는 운명처럼 느낌만으로..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가는 그런 상상을 해보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다시 한번 반가워요! 2023년 1월 5일 토토가 <토토에게> 토토 안녕하세요! 저는 가로예요. ( ) 정성스러운 토토의 소중한 편지를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으면서 토토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지웠다 하며 마음의 부담을 키우다가 약속한 일자를 넘겨 편지를 보내게 되었어요...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을 토토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커요... 마음과 다르게 하루에 주어지는 개인 업무들과 숙제들은 마음의 많은 여유들을 쉽게 사라지게 하는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 받아본지가 언제인지, 편지 한 장 쓰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 줄 몰랐네요. 편지가 어려운 건지, 마음을 꺼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건지, 표현에 많이 익숙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제 마음을 잘 담고 싶은데, 숨을 고르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기 위해 노력해 볼게요. 토토처럼 정성스러운 편지가 되지 못해도 너그러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네요. 약속날짜를 넘긴 건 정말 미안해요.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그럼 진짜 토토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볼게요! 우선 저는 이번 겨울 마늘 친구들이 시들해 보여 걱정이 많았을 토토를 생각하니 토토를 잠시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토토 말대로 마늘은 영하 7,8 도에서도 거뜬히! 살아남는 강한 친구라고 하니까 씩씩하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이번 겨울 토토를 든든하게 지켜줄 마늘 친구들에게 안부인사 전해줄 수 있죠? :) 저는 농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농사를 하는 모습을 계절마다 종종 곁에서 보았던 적이 있어요. 이번 가을즈음에는 함께 무 씨앗도 심었어요 :) 아버지는 농사를 하면 하루가 한 달이 1 년이 정말 쉴 틈 없이 바쁘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직접 기른 나물들로 가득한 비빔밥을 한 그릇 뚝딱하면 어찌나 맛이 있는지, 나중에 토토의 음식들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저는 씨를 심고 기르고 거두는 모든 과정이 마음 밭을 가꾸는 일 같기도 해요. 토토가 씨앗들을 심고 싹을 틔우는 데까지 기다리는 마음을 배우고, 또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느끼며 매일 아침 섬세하게 식물들을 보살피면서 토토 자신의 마음의 밭도 다정하게 보살펴주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 과정이 모두 서툴고 때론 너무 느리고 때론 너무 급하기도 하고 그래요. 내가 바라는 하루의 모양은 토토의 하루인 것 같은데 여기는 늘 정신이 없네요. 새해에는 저도 제 마음의 밭에 소중한 다짐 씨앗들을 뿌렸어요.이 번 겨울 잘 자라주길 바라요. 그 씨앗들 중에는 잃고 싶지 않은 나도 있어요.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꽁꽁 숨어버린 나를 다시 기다려주고 그때는 정말 소중히 아껴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처음 방랑단을 보고 그런 나를 다시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토토는 혹시 마늘처럼 추위에 강한가요? 저는 추위에 무척이나 약해요. 많이들 가을을 탄다고 하는데 저는 겨울을 타는 것 같아요. 매년 추운 겨울이 되면 평소보다 체력이 많이 약해지고 계속 잠만 자고 싶고 조금은 무기력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다행히도 이번 겨울은 그런 저를 극복하고 싶어서 혹독한 추위에 밖에서 캠핑도 해보고, 산 달리기도 더 열심히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산 달리기는 정말 저에게 특별한 취미인데 다음 번에는 산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제 '가로'라는 이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요! :) 세로 가로 할 때 가로는 아니고요!( ) 괄호를 빠르게 말해서 가로예요! 저는 가로 안이 비어있는 게 참 맘에 들었어요. 언제든 가로 안에 무언가를 넣을 수도 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오랫동안 빈 가로예요. 이름은 또 다른 나를 표현해 주는 일이기도 한데, 어느 날 내가 규정한 나에 갇혀서 스스로 숨이 막힐 때가 있었어요. 그게 정답도 아닌데... 그래서 뭐랄까, 저 가로 안에 텅 비어 있는 모양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가로 안에 오늘은 토토의 따듯한 온기가 채워졌네요. 고마워요 토토,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무리할게요. 좋은 하루 보내어요! 가로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23
  • 숲샘의 지리산통신
    [숲샘의 지리산통신] 2023년, 다시 지리산이다. 올해도 눈 쌓인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고 중산리 계곡물과 대원사 계곡물이 만나 이루는 덕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천재에서 내 방식의 나 홀로 새해 시무식을 했다. 4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왕봉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산천재 앞마당의 남명매가 그 증인인 셈이다. 새해엔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내 능력 밖의 일들은 내려놓기로 했다. 닭을 보살피는 농장 일과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위해 길동무들과 함께 지리산을 걷는 초록걸음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이런저런 자리들을 내려놓았으니 2023년엔 좀 더 홀가분하게 닭과 지리산에만 집중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지도 어느새 스물세 해가 되었다. 그새 아들과 딸은 제 갈 길을 찾아 떠났고 아내도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60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아득한 세월이 쏜살처럼 흘렀지만 별 탈 없이 삶터와 일터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모두가 지리산 덕택이란 생각이다. 그러니 지리산 천왕봉은 내 삶의 나침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지리산은 긴 세월 동안 힘들고 아픈 이 땅의 민중들에게 그 품을 내주어 위로와 안식의 장소이자 피난처가 되어왔음을 역사가 증명해 왔고 코로나와 기후 위기의 재난을 겪고 있는 2023년 현재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나가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 지리산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하동에서는 형제봉에, 남원에서는 정령치에 산악열차를 놓겠다며 숲을 파헤치기 일보 직전이고 섬진강에는 온갖 중장비가 동원되어 그 고운 강모래를 마구잡이로 퍼내고 있는 게 작금의 지리산이다. 확실치도 않은 눈앞의 돈 몇 푼에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뭇 생명의 생태 그물망을 끊어 놓으려는 개발 망령들이 지리산 아흔아홉 골을 위협하고 있음에 우리 지리산 사람들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파수꾼의 역할을 자임하기로 다짐을 했다. 지난 2018년에 20여 년 동안 찬반 논쟁을 이어오며 주민 공동체를 망가뜨려 놓았던 지리산 댐 건설 계획에 종지부를 찍고 댐 건설 완전 백지화를 정부로부터 받아냈던 것처럼 현재의 지리산 산악열차 건설 시도 역시 막아낼 수가 있고 또 막아내야만 할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고 우리 지리산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동군청 앞에서, 남원 시청 앞에서 몸짓으로 노래로 시로 우리의 의지를 알리고 있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 나가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새해, 지리산의 선한 영향력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과 글로써 지리산의 참모습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겠다는 약속을 눈 쌓인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1-22
  • [소한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서로에게 익숙함을 선물할 수 있을 거예요
    디자인.칩코 <잘 보이고 싶은 산달에게> 산달! 어떻게 편지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첫문장을 쓰기까지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산달씨라고 해야 할지, 산달님이라고 해야 할지, 산달쌤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산달이라고만 적었습니다. 소리내어보면 참 어색한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으면 퍽 자연스럽게도 들린답니다. 저는 덕복희예요. 된소리로 읽는 것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필명을 짓기까지도 아주 오래 걸렸는데… 방금 속으로 좀 구리다고 생각하셨나요? 호기롭게 결정한 이름 치고는 저도 마음에 쏙 들진 않지만, 세상에 이미 있는 이름일 수도 있으니 말을 가리겠습니다. 제가 참 존경하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에게 존함을 물었을 때 ‘똥폼’이라는 별칭을 알려주셨어요. ‘똥폼’이라니…. ‘방구뿡’도 아니고… 전 그렇게 멋진 분을 제가 감히 그런 외람된 이름으로 불러도 되나, 아주 당황스러웠는데요. 다행히도 이름이란 건, 습관처럼 익숙해지니까요. 이젠 똥이 그분처럼 멋지게 보이기에 이르렀어요.(농담 아닙니다) 똥폼! 아주 멋진 이름이죠. 덕복희란 이름도 그리 되길 바라요. 산달에게도 제게도. 쪼그려 앉은 채로 글을 적고 있어요. 오래 있으면 다리에 쥐가 나는, 낮은 변기에 앉은 모양으로요. 제가 이런 꼴로 글을 종종 쓴다는 걸, 주위 사람이 ‘편하게 앉아서 해’라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잘 모르곤 합니다. 제겐 불편하지 않거든요. 내친 김에 하나 더 고백하자면, 저는 요리할 때 발꿈치를 드는 습관이 있습니다. 평생 모르고 살다가, 삼년 전 애인이 ‘그거 알아?’라면서 말해주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글쎄, 이 요상한 발동작은 뭐라하면 좋을까요? 긴장의 증거일까요? 오늘도 요리하며 어김없이 발꿈치를 들고 칼질하다가, 이젠 도리어 발꿈치를 내린 채로 요리하는 게 더 불편하다는 걸 새삼 느꼈답니다. 산달은 발꿈치를 들고 칼질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언젠가 제게 도전을 해보셔도 좋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습관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요? 습관으로 나를 설명하는 건, 늘 망설이게 됩니다. 변명할 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에요. 습관이란 익숙함을 너머 무의식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요? 코를 후비거나, 웃을 때 코를 찡긋하거나, 걸음걸이가 둥실둥실한다거나, 전화를 받을 때 순식간에 성대를 갈아끼우는 습관들. 습관을 나열하자면 그게 절대로 저라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아주 일부만을 설명할 뿐이라고 매정히 선을 긋지만, 사실은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언제나 작은 조각만을 보고 나를 이해하고, 오해하고, 그 조각이 나를 대신하고, 나 자신조차 나를 착각하고 마는 일들 투성이라고요. 올해 저와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며 활동한 친구가 있는데요. 하루는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 이젠 스스로를 환경운동가라고 하네?”라고요. 전 솔직히 ‘내가 환경운동가라고 말하길 꺼려했던가?’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했답니다. 분명 돌이켜보면 전 작정하고 환경운동가가 된 건 아니었어요. 여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어릴 적부터 재능을 갈고 닦아서 꿈을 이룬 직업은 아니란 뜻이에요. 그냥… 어느 날 그렇게 된 거죠. 마침 제가 만사를 제쳐두고 자꾸 몰두하던 일들을 다들 환경운동이라고 불렀을 뿐인 거죠. 여전히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은 무겁기는 해요. 누가 실버버튼을 주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뭐라고…’하는 위축감이 들어요. 그래도 매순간 제가 습관처럼 내린 선택이 모여 저를 이런 삶으로 이끌었다고 여겨요. 부피만 크고 구멍은 숭숭 난 뽁뽁이 포장지처럼 느껴져도 어쩔 수 없죠. 제가 발꿈치를 드는 줄도 모르고 칼질하는 것처럼, 환경운동을 하는 줄도 모르고 환경운동가가 되버린 것처럼, 제 삶은 저를 자꾸 어떤 모양으로 주물러 놓고는 해요. 저는 시시때때로 무언가를 돌보아야만 한다고, 그게 어느 새파란 잠자리 모습을 한 지구용사가 제게 심어놓은 사명이라고도 여기면서 살아요. 제 삶을 꼭 흥미로운 영화를 분석하듯이, 사사로운 일상의 모든 조명과 배우와 사건의 단서를 집요하게 주워담으려고 해요. 알쏭달쏭하게 들리지만, 한 마디로 삶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거죠. 이 근사한 말을 산달이 해주었잖아요. 산달이 이 펜팔을 신청할 적에요.“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너지는 시간 속에서 굳건히 경이로운 우리를 돌보고 싶다”고요. 익숙함은 일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듯이 보이지만…실은 익숙함이야말로 경이로움인것 같아요. 작은 물방울이 모여 커다란 바위를 쪼개고, 가벼운 눈송이가 쌓여 기어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듯이요. 삶이 습관처럼 내게 보여주는 장면들을 새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거죠. 집구석에서 돈벌레를 만나면, 혹은 두 번이나 만나면 지독한 운명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씨익 웃고는 ‘못말리는 녀석이군’하는 거죠. 마치 어린 시절 좋아하던 애와 어쩌다 눈만 마주쳐도 ‘뭐지? 나 좋아하나?’하던 양, 이마에 빗방울만 떨어져도 ‘뭐지? 계시인가?’하는 거죠. 조금 오바해버렸지만… 경이롭다는 말이예요. 저는 산달의 이 문장이 반짝 윤이 난다고 느꼈어요. 이 문장 때문에 제가 지금 쪼그린 자세로 ‘산달쌤’과 ‘산달님’과 ‘산달씨’를 썼다 지웠다 하는 거겠죠. 잘 보이고 싶어서요. 누군가가 제가 뱉은 한 마디로 저를 단단히 오해한다면 말리고 싶을 텐데, 제가 그러고 있으니 아마 산달도 부담스럽겠죠? 그래서 밑밥을 깔아둔 거예요. 언제나 결국 그렇지 않느냐고요. 작은 조각으로 한 사람을 향한 이해와 오해를 견주는 일이요. 그러나 이해도 오해도 실은 ‘바라봄’이 바탕이 되는 법이니까요. 반 년간 제게 깊이 바라볼 문장이 되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휴… 드디어 첫 편지를 채워가요. 아직은 낯선 분에게 보내는 편지가 어색해요. 그래도 환경운동을 하다보면, 꼭 군중 속에서 메가폰 없이 떠든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수신자가 없는 거죠. "아무나 들어라!!! 누가 내 말에 동의해줄진 모르겠는데 일단 떠들겠다!!!" 그래도 이 편지는 수신자가 있어 좋아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이 편지가 닿을 발끝에 서 계셔서 고맙습니다. 어색한 편지도 시나브로 편안한 습관처럼 나누게 되길 바라요. 앞으로 겨울과 봄을 지나면서, 우체통에 찾아올 산달의 문장들을 새파란 잠자리처럼 바라보기를 약속할게요. 단단히 오해한 덕복희 올림 <익숙함을 약속해준 덕복희에게> 복희! 벌써 저에게 그 이름은 아주 멋진 이름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얼굴도 목소리도 알 수 없는 편지에서 저는 오직 복희가 쓰는 단어들로 복희의 윤곽을 상상하게 되거든요. 글이란 건 사실 굉장히 솔직하기도 하죠. 평소에 그 사람이 어떤 낱말들을 수집해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복희의 말들에는 사랑을 고민해 온 흔적들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그 화석에 덕복희라는 이름표를 붙일 뿐이겠죠. 저는 한 번도 제 이름을 다른 방식으로 불러 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새 이름을 찾는 것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이름만 많아서 6가지를 펼쳐놓고 친구들에게 뭐가 좋을까 같이 고민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다가 한 친구가 정해준 이름을 골랐는데, 끝내 입에 붙지 않아서 편지를 시작하기 직전에 다른 이름으로 바꿨고, 그게 ‘산달’이라는 이름이에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제 눈 앞에 있던 트리트먼트의 향, SANDAL WOOD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향이 참 좋더라고요.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산처럼 달처럼’ 이라는 뜻도 붙여볼 수 있었어요. 그 이름이 지리산과 그곳에 사는 반달가슴곰을 연상하게 만든다는 것은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에요. 그렇게 짓고 나니 참 흡족하더군요. 가벼운 고민일지도 모르지만, 이름을 짓는다는 건 꽤 의미있는 일일지도 몰라요. 우리의 언어 세계에서 무언가로부터 이름을 가져다 쓴다는 것은 그 기표에 대해, 표상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된소리로 발음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복희의 당부를 떠올리겠죠. 복희가 이제 똥을 멋진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처럼요. 복희는 어떤 순간에 저를 떠올리게 될까요? 아무튼, 제게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휘영청 달 밝은 날 지리산에서 복희와 떡볶이를 노나 먹을 수 있기를. 이름 하나 정하는 것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네요. 어쩌면 이게 제 습관일지도 몰라요! 언어를 지나치게 세심하게 쓰려고 하는 버릇 말이에요. 저는 대화할 때 ‘음,,,’, ‘뭔가,,,’ 라는 추임새들을 자주 붙이는데, 그런 저를 세심히 지켜봐 준 한 친구는 ‘또 말들을 고르는 중이구나?’ 라고 얘기해줘요.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모르겠어.’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제 문장들이 종종 준비되지 않아 투박하고 거칠다고 느껴요. 제 안에 스며든 여러 생각의 조각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전달하는 일은 제게 아직 어려운 일이에요. 저도 누군가가 저를 오해하는 일이 정말 무섭거든요. 늘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제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툰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만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요새 저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냥 입을 닫고는 합니다. 그래서 기후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에게 나의 말이 가닿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세상에게 입을 가로막힌 생명들이 충분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차분히 듣고, 수집하고, 번역하는 거죠. 복희의 말처럼, 이해와 오해를 넘나들지만 차분히 바라보며 기다리는 거에요. 그들의 말들이 우리에게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요.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요? 복희가 또 그런 말을 했잖아요. “익숙함이야말로 경이로움”인 것 같다고요. 참으로 그래요. 무엇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에요. 낯설고 생경한 것들이 내게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것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있었다는 말이잖아요. 오늘 좀 어색했지만, 내일 다시 만나고, 모레 또 인사하고. 그렇게 하루하루에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친구가 되겠죠.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을 거에요. 우리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복희, 사랑은 어떤 걸까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을 받은 방식대로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잖아요. 저는 궁금해요. 사랑이 과연 그런 형태만 있는 것인지, 우리는 사랑이 아닌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제 고등학교 때 문학 선생님이 이런 문장을 전해주셨거든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라고요.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사랑의 새로운 길들을 찾아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이야기는 기회가 있다면 다시 제대로 하기로 해요. 복희에게 사랑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해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어느덧 우리의 말들이 소복히 쌓인다면, 복희는 제게, 저는 복희에게 그런 익숙함을 선물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요. 제가 복희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복희도 저의 이야기를 기다릴까요? 제가 복희의 글을 읽고 침대 위에서 깔깔 웃었던 것처럼 복희도 그럴까요? 궁금한게 참 많지만, 조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차분하게 바로보고 기다리면서 복희의 세계를 만나볼래요. 사랑해보려구요. 그럼 또 이야기 나눌 때까지 건강하세요. p.s. 새파란 잠자리는 어디서 날아오나요? 궁금한 게 많은 산달이.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19
  • [소한 편지 : 참새와 돌] 자기 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는 걸 배워요
    디자인. 칩코 <돌에게> 돌, 안녕하세요. 저는 지리산의 참새입니다. 저는 10년 넘도록 사용해온 별칭이 있었는데요 펜팔을 위해 처음으로 새로운 별명을 짓게 되었어요.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삶을 얻은 것 마냥 설렙니다. 겨울의 참새들이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게 너무 귀엽더라고요. 고양이들도 겨울이 되면 털을 찌워 몸집이 두 배가 되고, 저도 겨울이 되면 볼살이 포동포동해져요. 주변 사람들이 살이 찐 것 같다고 놀라면 ‘여름 되면 알아서 빠질거야!’라고 장담하며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다들 이렇게 겨울을 나고 있으니 저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 뿐이겠죠. 돌은 어떤 이유로 돌이 되었나요? 참새와 돌, 벌써부터 마음에 쏙 드는 조합이에요. 가깝고, 흔한. 그래서 슥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런 존재로 이름삼고 싶었어요. 앞으로 돌과 펜팔을 주고받으면길가의 돌을 보고 어떤 문장을 떠올리게 되겠죠. 그럼 걷는 길이 더 생생하고,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산책을 좋아해요.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건 아직 제게 너무 어려운데요.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그냥 걷다보면 걱정도 불안도 화도 슬픔은 옅어지고, 다음 한 발, 그 다음 한 발만을 떠올리는 그 상태가 너무 황홀해요. 화가 나고 답답할 때는 그 걸음이 빨라져 달리기가 될 때도 있고요. 기분이 좋고, 에너지가 넘칠 때는 산을 오릅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리산에 온 것 같아요. 더 걷기 좋아서요. 탁 트인 하늘과 논밭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요. 고요한 와중에 들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는 마음의 안정을 주고요. 둘레길을 걷다보면 달라지는 오솔길의 풍경은 재미있어요. 초록색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구나 놀랍구요. 언젠가는 산책을 하다 고라니가 제 눈 앞에서 드넓은 밭을 가로질러 껑충껑충 뛰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정말로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나는구나.. 알게되었습니다.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대사인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가 정말 딱 맞는 말같아요. 지리산은 늘 그랬듯이 자기 모습 그대로 여기 있어요. 지리산 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도 그저 자기 모습대로 살고 있어요. 관심을 받거나 말거나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는 걸 지리산에게 배워요. 위로를 받아요.저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또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래서 펜팔을 쓰게 되었어요. 사실 편지를 쓰다보니 이제야 내가 이런 마음으로 지리산에 왔고, 펜팔을 쓰게 되었구나 싶어요.ㅎㅎ 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지 너무 궁금해요. 우리가 앞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어떤 마음들을 정리하고, 발견하게 될지도요. 그럼 안녕히! 짹짹! <참새에게> 안녕하세요 참새! 저는 서울에서 지내는 ‘돌’이에요. 반가워요. 여유있게 도착한 참새의 편지에 저도 여유를 담아 답하고 싶었는데,, 편지의 도착일에도 제 상태이자 소개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네요 저의 원래 별명은 7년쯤 되었는데, 그땐 다른 이들이 편히 불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지었어요. 다시 이름을 만드려니 좀 더 고유한 저의 의미를 담고 싶더라고요. 근래 저는 흘러다니며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았어요. 주변의 필요와 요구에 잘 반응하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이름처럼요. 그런데 그것이 동시에 제 중심을 잃을 수 있고, 그래서 타자에게 더 많이 신세지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신세지는 것이 꼭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저는더 적극적으로 서로 기대는 삶의 방식을 바래요.그럼에도 제 중심 없이는 서로 기대기가 어렵겠다 싶었어요. 스스로의 힘이 더 무거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을 상상했어요. 참새의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죠. “관심을 받거나 말거나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는 걸 지리산에게 배워요” 아 너무 찾던 문장이에요.누군가는 멈춰있고 고여있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저는 무겁게 그러나 데구르르 구르는 돌을 상상하며 이름을 지었습니다. 참새와 돌. 구덩이에 쏙 빠져 혼자서는 굴러나오기 어려울 때, 참새가 발견해 꺼내주지 않을까? 참새는 돌을 보고 돌아와야 곳을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재밌는 상상도 해보네요. 제 상상 속에서는 참새와의 관계에 따라 돌의 크기도 무게도 다양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습관은 일기를 쓰는 일이에요. 상황이 어지럽고 복잡할 때, 커다란 경험을 하고 난 후 마음이 부풀 때 펜을 들어요. 일기의 형식과 분위기는 자주 바뀌어요. 정리하고 싶은 것이 저일 때도, 바깥일 때도 있기 때문이죠. 저는 주로 직접 일기장을 만들어요.공책 자체를 만들어본 적도 있지만 요즘은 여기저기에서 받은 노트 중 적당한 크기와 두께인 것을 골라, 직접 구획을 긋는 쪽이랄까요. 해가 시작하고 끝날 때 새로운 공책을 열어, 채우고 싶은 내용을 생각하며 선을 그려요. 월, 일주일, 한해 등 제목도 적고요. 그중에서도 매일 적는 ‘일기’는 주로 질문 없이 비워두려고 해요. 펜을 들면 가장 선명한 언어가 먼저 툭 튀어나오죠. 일기장은 저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아주 가볍게 사유를 촉발시켜주어요. 게워내기 위해 들었던 펜이, 정리된 후에 결국 무엇을 바랬는지까지 이끌어내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저에게 서울, 도시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꾸려가는 삶은 이렇게 편안하게 펼쳐내기보다는 부담스럽더라도그 책임에 응답하며 쌓아온 시간 같아요. 부당한 것도 많고, 그 요청들이 저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기도 해요. 단절과 효율이 우선되는 공간이니까요. 외면하고 벽 세우지 않고서는 나의 안전이 흔들리는 삶이 많은 것 같아요. 활동가로 산다는 건 이런 삶이 결코 우리를 오래도록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관계를 상상하고 실험하며 동료 시민들에게 제안하는 일 같아요. 도시에서 다시 연결을 찾아내고 만드는 일은 당연하게도 도시 바깥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요.지리산과 그 속에 사는 이들과 연결되면서 서울이 만드는 단절을 발견하고 싶어요. 회복의 계기를 찾고 싶어서, 펜팔에 함께 하게 되었구나 싶어요. 먼저 말 건네준 참새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바쁘고 지친 와중에 덕분에 회복한 이 에너지을 담아, 소한의 답장을 보냅니다. 데구르르~ 돌, 2023년 1월 12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16
  • ‘ 성삼재․정령치 도로 톺아보기’를 시작하며
    ‘<기획연재> 성삼재․정령치 도로 톺아보기’를 시작하며 작년 말,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국립공원 성삼재․정령치 일원 친환경 교통체계 개선 방안 연구’(이하 연구, 사단법인 한국환경생태학회 수행, 2021.11.1. ~ 2022.10.27.)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연구 결과가 획기적이지는 않았지만, 국립공원공단이 ‘2030 국립공원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성삼재․정령치 도로와 주차장, 휴게소 등의 변화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이니, 올해는 그 변화가 현장에서 보여지는 첫해가 될 것 같습니다. 실상 성삼재․정령치 도로는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지리산에 어울리는 도로는 아닙니다. 이 도로가 건설된 후 생태계 훼손과 탄소 발생(연간 648tCO2 : 30년생 소나무 숲 60ha의 연간 탄소흡수량), 야생동식물에게 악영향을 주는 대기질과 수질, 소음과 빛 공해, 도로변 불법 주차와 교통사고 위험성, 산사태 발생 위험 등은 반복적으로 제기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도로 폐쇄라고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로 폐쇄는 어려워 보입니다. 성삼재․정령치 도로에 접한 남원시와 구례군 주민들이 이 도로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국민도 이 도로가 있다는 전제하에 지리산국립공원 방문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삼재․정령치 도로는 ‘법정 도로’여서 도로를 폐지하려면 도로관리청인 전라북도와 구례군이 ‘노선폐지’를 하거나(도로법 제21조), ‘통행금지․제한’(도로법 제76조) 조치를 해야하는데, 두 기관 모두 이를 원치 않고있습니다. 성삼재주차장과 휴게소 (위). 정령치주차장과 휴게소 (아래)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어, 2021년 발족한 ‘성삼재․정령치도로전환연대’도 도로 폐쇄가 아니라 일반 차량은 통제하고 친환경 셔틀버스를 운행할 것과 주차장의 축소와 폐지 등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녹녹치 않습니다. 성삼재․정령치 도로변에서 숙박업이나 식당 등을 하는 주민들의 경우 일반 차량을 통제하면 손님이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성삼재․정령치 도로의 전환이 우선이라며 성삼재․정령치 주차장의 변화에 인색합니다. 주차장이 있으니 성삼재․정령치 휴게소도 필요하고, 이왕에 있는 시설이니 지금처럼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또 이 도로의 변화에 대해 남원시는 산악열차를, 구례군은 케이블카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전환의 첫해는 힘겨운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기획연재> 성삼재․정령치 도로 톺아보기’는성삼재․정령치 도로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성삼재․정령치 도로로 인한 영향을 살펴봅니다, 그간 성삼재․정령치 도로의 변화를 위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성삼재․정령치 도로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해보아요 등을 주제로 쓸 예정입니다. 저는 성삼재․정령치 도로 전환이 사람을 통해 실현될 일이라 생각되어, 객관적인 사실이나 상황만을 나열하지 않고 ‘사람의 이야기’로 써볼 작정입니다.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될지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성삼재․정령치 도로(주차장, 휴게소 등 포함)와 관련하여 만나볼 사람, 유의미한 장소, 상상하는 성삼재․정령치 도로의 모습 등이 있다면 언제든지, 뭐든지 이야기해주세요. *사진은 김인호 편집장(지리산인)이 찍었습니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01-16
  • 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운봉초등학교, 100년도 더 된 이 학교 운동장에 계시는 450세 느티나무 어르신은 아이들과 함께라서 더 정정해 보인다. 아이들과 나무 어르신, 참으로 아름다운 조합임이 분명하다.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1-14
  • [소한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일상을 느긋하게 살아간다는 것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안녕하세요, 갈토! 저는 유우야라고 해요:) 이름이 좀 낯설지요. 저도 이 이름이 낯설고 저랑 어울리는가 싶어요. 저는 늘 마음이 급하거든요. 특히 도시에서 살 땐 더더욱 그래요. 여유롭고 싶어서 충분히 일찍 외출해도 점점 걸음걸이가 빨라집니다. 그래서 갈토와 편지를 쓰는 순간만큼이라도 여유와 느긋함을 가지고 싶어서 유우야라고 했어요. 일본어를 공부중인데, 공부하다가 느긋함을 뜻하는 한자를 보고 만든 이름이랍니다!ㅎㅎ 갈토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갈색 토끼라는 이름을 듣고 참신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다가 갈색이 되었는지(?) 듣고 싶어요. 갈색은 저한테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갈토에게는 어떤가요? 그러고보니 펜팔을 하고 싶었던 이유도 같네요. 편지는 급한 마음으로는 안 써지더라구요. 받는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썼다 지웠다 하며 한참 걸려요. 어떻게 제 이야기가 전달될지도 조심스러워서 그런가봐요. 한편으론 기대도 되지만요! 어쨋든 고요한 마음을 가져야 진심이 써지더라구요. 저는 갈토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편지 쓸 때의 여유로움을 실컷 느껴보고 싶어요. 갈토와 진심을 주고 받으면서 몽글몽글 따뜻함도 나누고 싶습니다! 갈토에게 제 진심들이 잘 전해진다면 참 좋겠어요:) 갈토는 어떤 마음의 습관이 있으신가요?저는 이 조급한 마음이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나타나요. 밥 먹을때도 누가 볼세라 빨리 먹고.. 청소기를 돌릴때도 요리조리 후다닥 돌리다보니 다 돌리고 나면 팔이 아파요. 설거지할 때도 그렇네요.. 달그닥 달그닥 소리도 무섭게 나고 다하고 나면 물이 사방팔방 난리가 나 있어서 가끔은 저도 웃겨요. 이렇게까지 급할 일인가.. 하고..ㅎㅎ 샤워도 노래 한곡이 채 가기 전에 끝나요. 한 곡 안에 끝내야지 마음 먹고 하는 것은 아닌데, 샤워를 다하고 물을 끄면 노래는 아직 2절 중이에요. 줄줄 말하다 보니 조급한 순간들이 진짜 많네요! 때로는 그런 조급함이 전기나 물을 오래 켜놓는 것보다 좋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전 그 마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는 좀 더 그 습관을 관찰하고 의식해보고 싶어요. 아침에는 주로 과일을 먹는데, 과일을 먹을 때 특히 이 습관을 관찰하기 좋더라구요. 빨리 먹으려 하다가도 실패하지요. 면처럼 후루룩 목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가봐요. 조급함이 찾아 올 때 마다 관찰하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다 보면 제 일상도 점점 느긋해질 수 있을까요? 갈토도 같은 상황에서의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ㅎㅎ 제 편지는 여기까지에요.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키워드는 '습관'과 '펜팔의 동기'였답니다! 꼭 키워드를 맞출 필요는 없는 것 알지요?ㅎㅎ 그럼 갈토, 겨울은 안으로 수렴하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모든 비인간동물들이 겨울 잠을 자고 인간동물들은 명상하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겨울처럼 포근하고 고요한 나날들 되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유우야에게> 유우야! 안녕하세요. 저는 갈토입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이름이지만, 그저 갈색피부를 귀엽게 표현해서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신 별명이에요. 제가 귀여운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갈색토끼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저는 진지하고 걱정이 많은 성향이라 편지가 재미없을 것 같아 처음에 신청할 때 고민을 살짝 했습니다. ^^ 제가 편지쓰기를 하고 싶었던 건, 우선 서울 중심을 벗어난 활동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어요. 몇 년 전부터 서울 중심으로 많은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잠시 경기도 북부로 활동 영역을 옮겨보는 것도 고민했습니다. 근데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지금까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저의 여러 조건들로 비록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서울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되고 싶었고 이 프로젝트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랑 교환일기를 썼거든요. 친구가 어떤 글을 써서 줄까 기다리던 그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도 편지쓰기의 동기였어요. 지리산으로부터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안내를 받고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나를 모르는 누군가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준다는게 너무 신나더라고요. 저의 짝꿍이 어떤 분일지, 어떤 글을 보내주실지 궁금해서 편지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근데 제 생일 바로 전날 '선물'같이 첫 번째 편지가 도착한 거예요. 단조로웠던 일상에 반갑게 찾아온 선물이었어요. 더욱이, 제 생일이 참 엉망인 하루였어요. 마구 일이 꼬이는 날 중 하루였는데, 하필 그게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이다보니 마음이 좀 상하네요. 생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데도, 그저 평범한 하루가 되길 바랬을 뿐인데 말이죠. 그래서 생일을 잘 마무리 하기 위해서 답장을 쓰기로 했어요. 올해 받은 생일 선물 중 가장 반가웠던 선물에 대한 답례 인사를 하면서 이 하루를 마무리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답장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유우야, 저도 조급한 편이라 느긋해지는 방법을 알려드리기가 참 어렵네요. 하하하. 전 제가 성격이 급한게 하고 싶은게 많은 욕심쟁이라서라고 생각해요. 호기심이 많다보니, 보고 싶은 것도 많고 부지런히 이것 저것을 해요. 그래서 장점은 삶이 풍부해진 거고, 단점은 여유가 없다는 거에요. 처음에 혼자 여행을 갔을 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책을 읽던, 영화를 보던 무언가 해야될 것 같아서 쉬러 왔는데 ‘뭐하고 쉬지’라는 생각에 둘러싸여 쉬지 못하는 저를 보고 한심하고 안타깝고 화도 났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저에게 꽤 익숙해졌고, 마음에 여유를 가져보려고 애는 쓰지만, 이것도 성격인 건지 잘 안되네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포기를 했는데 올해 우유야와 함께 일상을 느긋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같이 찾아봐도 좋겠네요. 근데 일상을 느긋하게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가요? 저는 출근 할 때, 걸어서 가요. 대도로의 차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단축길이라 55분 걸리지만, 공원길로 돌아가면 75분 걸려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한 시간 반 전에 집을 나와서 공원 길로 출근하려고 해요. 날씨가 좋으면 파란 하늘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거든요. 특히 저는 소설을 귀로 들으면서 걷거든요. 그러면 귀로는 소설을 듣고, 눈으로는 경치를 보면서 걸으면 참 힐링이 돼요. 이게 느긋한 걸까요? ㅋㅋㅋㅋㅋ 쓰다보니 느긋한게 아니라 오히려 바쁜거 같네요. 쉬지 않고 빠르게 다리는 걷고, 귀는 듣고 눈은 보고. 여튼 저는 걷는 걸 무지 좋아해요.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걸 어릴때부터 좋아했어요. 처음 습관에 대해서 물어보셨을 때, 생각났던 건 ‘감사일기’였어요. 작년에 친구가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고 저에게 추천을 해줘서 작년 2월달부터 꾸준히 썼어요. 하루에 세 개씩 감사한 일을 적는 건데요. 어떤 날은 한 개 채우기도 어려운 날도 있어요. 그러면 굳이 감사한 일을 찾아내야해요. 근데 하루에 3가지는 찾을 수 있더라고요. 오늘같이 일이 꼬여버린 날에도 3가지의 감사한 일은 있어요. 예를 들면 1. 오늘 되는 일은 진짜 하나도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아서 감사합니다. 2. 비건 꼬치 구이가 너무 맛있어서 감사합니다. 3. 순두부, 두부를 10% 할인으로 구입해서 감사합니다. 4. 편지 답장을 쓰며 나의 습관을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참 별거 없죠? 가끔 감사일기를 밀려서 3-4일치를 한꺼번에 적기도 하는데요. 하루를 정리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엉망인 하루도 감사할게 한가지는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친구들에게 감사일기를 적극 추천한답니다.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안 좋아하는데요. 예전에 같이 살던 크리스티나는 겨울을 좋아했어요. 겨울의 깊고 긴 어둠의 고요함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은 안으로 수렴하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모든 비인간동물들이 겨울 잠을 자고 인간동물들은 명상하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라는 문장을 보면서 오랜만에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좋아하고 명상에 성공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지만, 이번 겨울 편지쓰기를 하며 따숩게, 고요하게 보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좋네요. 내가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고, 나의 답장을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는 게 말이죠.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출근길 사진 몇 장 보내드려요. 갈토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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