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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신 화백의 2024년 새해인사
지리산 산내 숲에 숨은 듯 드러나지 않은 한울아비 소낭구 하나 천녀의 별빛으로 우리를 깨우는 우주나무여 빛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아, 우주여 마음이여 빛이여 사랑이여 -불기 2566년(2022) 우주나무를 박두규 글 짓고 이호신 그림 지리산-인에 ‘지리산 그림순례’를 연재하고 있는 이호신화백께서 지리산 그림 두 폭을 2024년 새해인사로 전해오셨습니다. ‘이호신 화백의 지리산 그림순례’는 하동, 구례, 남원 순례를 마치고 새해에는 함양 순례를 시작합니다. 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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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섬진강 편지」 - 첫눈 어제는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가 그를 찾았는데 오늘은 어두운 산길을 더듬어 그가 나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왔다.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도 싫지 않은 그대 같은 첫눈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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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운동
지리산 운동에 대하여 ‘지리산 운동’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좀 낯설지만 지리산 권에 있는 많은 단체나 소모임,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영역의 사회 변혁적 활동과 삶들을 하나의 큰 지향으로 엮어낼 수 있는 ‘지리산 공동체’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 마디 거들까 한다. 21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은 크게는 군부독재라는 반정부 투쟁 속에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통합한 전국 단위의 조직력을 가지고 명확한 하나의 전선에 복무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몰락하는 국면 속에서 변혁운동의 중심주체들이 흔들리면서 운동의 내용과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전(반정부 투쟁 당시)의 운동은 당장 눈앞의 위중한 현실(열사들과 동지들의 죽음 등) 속에서 오로지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비민주, 반인권 반통일을 대상으로 한 투쟁의 현실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국적 상황을 보면 집단적, 지역적, 인적 구성에 따라 전선이 형성되고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운동의 폭이 좁아지고 조직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권의 많은 단체와 소모임 또는 개인적 활동까지 포함해서 ‘지리산 운동’이라고 명명해본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여타운동과 크게 두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는 넓게 보면 ‘대안적 삶 운동’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나 모임의 구성원들은 지역 주민들도 있지만 귀농, 귀촌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적인 새로운 삶을 찾아 도시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겨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심을 갖는 운동영역은 환경, 생태, 생명, 평화, 공동체, 등의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 대안문화, 대안문명 찾기라는 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크게 보아 인간 소외나 인간성 상실이라는 자본 중심적 삶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지리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활동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의식의 공통분모라고 할 것이다. 근대 500년은 모든 삶이 자본으로 집중되는 과정으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근대의 과정 속에서 추구해온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 뒤에 숨어 있던 인간의 탐욕이 근대화라는 명제 속에서 자연의 순환 질서를 깨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을 구체적 일상 속에서 일정부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심성이 피폐되고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 삶의 목표는 선과 진실로부터 멀어졌으며 현대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물질이 자리 잡게 되고 사회생활은 보다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갔다. 이렇게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사회에 만연되면서 생명경시와 함께 개인의 평화 또한 심하게 위협받게 되었다. ‘지리산 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 속에서 태동하였기 때문에 자본가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인본가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근본 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삶의 문화, 문명을 꿈꾸는 대안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리산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의 구조를 바르게 변혁하려면 ‘인간의 본래 심성을 되찾는 운동’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직이나 단체 모임들이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래 심성을 되찾는 노력을 통해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확장을 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회의 변혁은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은 사업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디가 식민지 상황에서 벌인 사탸그라하(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 그러했다. 간디는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해방은 영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도 자신으로부터 해방(절대자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사회의 변혁은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제도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이 함께 확장되어야 진정한 변혁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디는 종교를 통해 확장된 개인과 사회의 의식을 토대로 비폭력 투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운동방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는 성찰과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단군시절에도 그러했다. 그 시절의 사회적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이라는 말이 있다. 본성을 꿰뚫어 공덕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 심성을 되찾는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사회적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독이 가능하다. 성통공완이나 샤타그라하 모두가 개인의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인식하고 진행시킨 높은 의식의 사회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완성의 노력과 사회적 실천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사회적 제도를 바르게 고치고 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그만한 역량과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운동’은 지금껏 우리 변혁운동사에서 특별히 거론된 적이 없는 ‘개인의 자기완성’이라는 측면을 사회적 실천운동과 동등한 무게로 병행시키는 운동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리산 운동’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과 사회적 실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의 우리 사회운동 방식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운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문제를 자본의 관점과 방식으로 풀지 않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순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자연 중심의 사유와 철학을 바탕에 두고 풀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리산 자체가 모든 생명의 집합체인 것처럼 그래야만 개인과 전체의식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러한 토대에서의 사회적 실천이 올바른 사회변혁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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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 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에 형성된 다랑이논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여 그 어느 곳보다도 생태 보전 가치가 큰 곳이다. 골짜기 마을의 식량 자급을 위해서뿐 아니라, 소규모 댐 역할과 인공습지로서의 환경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예술적 가치, 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 등을 가진 이곳이 대규모 골프장 건설로 훼손되면 그 환경적, 예술적, 경제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지리산골프장 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다랑이논과 그 주변 숲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시급해 보여 환경부장관상을 수여했다.” 지리산골프장 건설 논란으로 위기에 놓인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는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으로 지리산골프장 건설 예정지 바로 밑에 자리하여 농약, 제초제 등 오염원으로부터 훼손 위기에 놓인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곳으로 만인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산비탈을 타고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들어진 다랑이논 논두렁의 포근한 곡선은 인위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농업문화 유산이다. 그런 까닭에 봄이면 모내기를 마친 무논에 저녁 노을빛이 내려앉는 풍경과 황금빛 일렁이는 가을 다랑이논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작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사포마을 다랑이논은 식량자급 뿐만 아니라 수달과 팔색조가 살고 있는 인공습지로서의 환경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예술적 가치, 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 역사문화경관이다. <지리산-인> 신문에서 “사포마을 다랑이논의 사계 사진전”을 계획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아쉬움을 온라인 사진전으로 대신해 본다. -섬진강 편지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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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의 겨울산사
1-구례의 겨울산사 전경 전도(66x270cm)2022년.JPG -구례의 겨울산사 전경 중 좌측 부분도 -구례의 겨울산사 전경 중 우측 부분도 2-구례 천은사의 겨울.JPG 3-구례 화엄사의 겨울.JPG 4-구례 문수사의 겨울.JPG 5-구례 연곡사의 겨울.JPG 6-천은사(137x170cm)2010년 7-화엄사(168x273cm)2010년 8-연곡사(138x170cm)2010년 ............................................................................................... <'지리산 그림순례' 이호신 화백이 드리는 새해인사> 안녕하세요, <지리산-人> 여러분. 2021년 인터넷 신문 <지리산인>창간 발행과 함께한 '지리산 그림순례'가 어느덧 하동, 구례편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하동과 구례의 사계절을 두루마리 화폭에 담아 왔지요. 부족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떠올리며 작가의 의무를 생각해야했습니다. 2023년에는 '남원의 사계'를 화폭에 담아 보려고 합니다. 새해를 맞아 인사드리며 우리 모두 새 뜻, 새 길로 나아갑시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을 통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스스로 작은 등불이 되길 기원합니다. - 2023년을 맞이하여 이호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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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그림순례를 시작하며
지리산 그림순례 - 이호신 강물처럼 시간이 흘렀다. 나이 삼십 초반에 지리산에 닿은 인연이 육십 중반에 이르렀으니 서른 해를 넘긴 나날이다. 지난 시간, 지리산은 흠모할수록 산은 깊고 높았으며 나는 갈수록 작아졌다. 하여 어머니 산자락에 살고 싶어 귀촌(2010), 산청의 남사예담촌에 둥지를 틀었다. 이에 신고식으로 지리산권역의 문화와 자연을 그린 화집 『지리산 진경』(다빈치,2012)을 내고 전시<어머니의 땅-지리산 진경순례>(서울, 아라아트센터, 2013)를 열었다. 그리고 경남도립미술관 초대로 <지리산 생활산수>(2018)전도 가졌다. 한편 지역별 초대로<남원의 숨결>(2011), <하동의 향기>(2019) 전시도 열었다. 이제 돌아본다. 당시의 열정은 지리산을 알기위한 붓길이었음을... 하지만 날이 갈수록 부끄러움이 더해진다. 지리산의 숨결이 다시 그립고 아쉬운 작업이 꿈자리를 맴도는 까닭이다. 부분적으로 그려 온 지역별 그림을 새로 그려 보고픈 마음으로. 이를테면 장편 드라마처럼 지역 특성의 자연과 문화를 ‘생활산수화’로 한껏 펼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의 숙제를 위해 5개권역의 두루마리 한지(각10m) 5벌을 마련하여 새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초심을 잃지 않되 과거가 아닌 오늘의 시각에서 계절별로 현장을 순례하려는 것이다. 이 작업을 계기로 지리산 사랑이 깊어지고 함께 나누는 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리산 하늘아래에 사는 작가는 사실 축복만이 아닌 벌이다. 그 벌의 밥값을 새삼 떠올리며. ‘지리산 그림순례’는 독자들의 공감을 위해 작업과정인 화첩 일부를 공개하고 원화를 소개한다. 참고로 원작의 규격(사이즈)을 상상하여 감상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이 작업이 언제 매듭이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강물처럼 흘러갈 저의 무딘 붓길에 동참해 주실 것을 바랄 뿐이다. 모두 삼생(三生)의 만남이요, 시절인연으로 여기고 삼가 인사 올린다. 타이틀, 23x59cm,한지에 먹글씨,202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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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 바늘 김 경 옥 쇠를 갈고 남은 몸이다 매끈한 은빛 몸매 뾰족한 침 끝, 더는 아무것도 없다 저 침에 닿을 때까지 사방 팔방 십이방 모서리 없어지고 이웃마저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제 몸을 깎아냈을까 이 악물고 덜어내어 물러설 수 없는 절벽에 이르렀을까 갈고 닦는 일의 무한함이여 깎고 덜어내는 일의 은은한 아픔이여 가는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기울이며 작은 귀 하나만 열어놓은 세월이여. ---------------------------------------------------------------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그저 지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안고 사는 존재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하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며 자란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그 답을 말하고 죽는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답일 것이니 그렇다. 다시 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살다가 죽을 뿐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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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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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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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유감
- 「섬진강 편지」 -안개 유감 2023년 10월 22일 안개, 10월 23일 안개, 10월 24일 안개, 10월 25일 안개, 10월 26일 안개, 내리 닷새 아침 안개가 점령군처럼 구례를 장악했습니다. 안개가 옅은 날은 9시쯤이면 걷히지만 독한 날은 11시가 되어서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섬진강과 서시천,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 아래마다 하나씩 있는 저수지들이 봄가을이면 구례를 안개의 마을로 만듭니다. 구례로 이사를 와서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안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구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안개의 피해를 모르고 아침마다 안개 예찬론을 펼쳤으니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요! 봄, 가을이면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 농작물들은 병에 취약하고 강마을 노인들은 기관지, 천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답니다. 오죽하면 안개를 피해 산동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자체가 유치 신청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게 된다면 구례는 그야말로 안개공화국이 되고 말겠지요. 섬진강댐보다 큰 규모의 댐이 2개나 들어선다면 1년 내내 안개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거기다가 양수발전에 부족한 물은 섬진강에서 끌어 쓰게 된다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겨우 기어가는 섬진강물은 더 마를 것이고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게 되면 섬진강 하류의 오염은 뻔하지요.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내는 때 묻지 않은 풍광들이 있어 귀촌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귀촌 인구가 감소 추세인 최근에도 705명(2022년, 구례군 자료)이 귀촌했을 정도로 구례는 3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구례지역 귀촌자들의 특성은 주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최근 우리 마을에 7명의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다들 구례의 천연 풍광에 매료되어 온 친구들입니다. 진정 애향 애민의 위정자들이라면 국비 1조 원이란 곶감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본심을 잊지 않도록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댐이 들어서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30여 년 전에 댐이 건설된 순천 주암댐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보시라! "자욱한 안개에 폐암까지"‥주암댐 주민 피해 호소 https://ysmbc.co.kr/article/d4H__7afKF797L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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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 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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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 ■ 시 겨울 산에서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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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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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법화종주
- 「섬진강 편지」 -지리산 법화종주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 덕평봉,형제봉,삼각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 2박 3일, 지리산 품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40km 지리능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수행길 절뚝이며 휘청이며 30시간을 걸으며 우리네 삶도, 사랑도 이렇게 숱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깊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폐절제 수술 3년이 지나고 망설이던 지리산 종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폐가 잘려 나간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면 손잡아 주고 가파르면 끌어주고 카메라 짐을 나누어지어 준 지리산사람들 길동무님들이 있어 힘들다는 겨울 지리산 종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진강 /김인호 *지리산 법화종주 ; 법계사에서 화엄사까지 오는 종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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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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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 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박 두 규 (시인) 삶 속에서 까르마 요가의 실천을 우선했던 인도의 성인 비노바 바베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비노바 바베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부단운동’도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배운 탁발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탁발은 단순한 구걸 행위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자들에 대한 연민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주는 선한 마음, 그 본성을 일깨워 실천하게 하는 것이니 그렇다. 비노바 바베가 했던 탁발은 먹을 것이 아닌 토지였다. 그는 사람들이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누구나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다며, 토지가 없어 고통받는 하리잔(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토지헌납 운동인 ‘부단운동’을 전개했다. 그것은 돈(토지)을 삶의 가장 중심에 두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소유욕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 실험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뿌리 그 자체를 흔들어 놓는 일이었다. 동료들에게는 이게 진짜 ‘정치’ 아니냐며 이 일에만 전념하자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전 국토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토지를 탁발했는데 만일 땅을 내놓으면서 허영된 마음이나 권력을 위해서 땅을 내놓는다는 기미가 조금만 있어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선함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선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비노바는 선한 마음의 자비롭고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는데 그것은 헌신과 소박함으로 뒷받침한 것이어서 누구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감동이 있었기에 인도의 지주들이 사람의 바탕에 있는 선한 마음을 낼 수 있었고 400만 에이커의 땅(영국의 스코틀랜드 넓이만 한 토지)을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이 사회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혁명의 첫 번째가 마음의 변화이고 다음이 개인적인 생활 습관의 변화이며 그것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으며 그 일의 방법으로 자비와 사랑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을 통해 인도 사회의 변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자비와 사랑만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비노바 바베는 브라만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한 브라만의 사회적 역할과 품성 교육에 힘썼고 스스로는 구도적 삶을 사신 분이었다. 비노바의 집에서는 항상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함께 ‘찬드라야나’ 라고 하는 단식을 하며 달을 공경하는 의식을 했는데, 음력 초하루에는 음식을 한 입만 먹고 둘째 날에 두 입을 먹으며 그렇게 보름달이 뜨면 열다섯 입을 먹는다. 그리고 달이 기울면 반대로 매일 그만큼씩 줄어든다. 그러다 달이 뜨지 않게 되면 단식을 하는 그런 의식이었다. 어머니는 이 의식을 하는 동안 매일 달을 향해 하는 ‘푸자 예배’를 드렸는데 비노바는 어머니가 매일 올리는 이 평범한 푸자 예배에서 항상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고는 흘릴 수 없는 눈물이었고, 비노바에게는 어머니의 그 눈물 자체가 큰 교육이었다. 비노바 바베의 어린 시절, 햇볕 따가운 어느 날의 일이다. 육체가 건장한 거지가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심도 없이 그에게 적선하는 걸 보며 비노바는 매우 못마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저런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게으름을 키워주는 겁니다. 바가바드기타에도 나오잖아요? 순수한 선물은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장소에서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누구나 다 존중해주고 힘이 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그녀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참 뒤 어느 날 무슨 일 끝에 비노바는 어머니께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스스로 차별하십니다. 나에게는 차갑게 식은 음식을 잘도 주시면서 집에 오는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그렇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한다. ‘그래, 나는 아직도 스스로 차별하고 있다. 나는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편애하고 있어. 왠지 아니? 나는 아직도 너를 아들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사람의 몸을 입은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너마저 그렇게 볼 수 있다면 그 차별은 없어질 거다.’ 어머니는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사랑하는 자식마저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이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머니는 배를 채울 만큼의 음식과 몸을 가릴 만한 의복이 생활에 필요한 전부이며, 생명을 가진 모두는 동등하며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노바 바베는 그렇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배우는 것의 전부라는 어머니의 교육 속에서 자란 것이다. -사진/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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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0.19 생명평화기행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10.19 생명평화기행 귀한 봄비와 함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지리산사람들이 주관한 '지리산 10.19 생명평화기행단'이 서울에서 버스 한 대로 구례로 내려오셨다. 1박2일 동안 여순사건 구례유적지를 돌아보는 답사기행이다. 첫날 일정은 구례읍 봉성산 기슭에 있는 여순사건희생자위령탑을 참배를 시작으로 간전면학살지인 간문초등학교, 지리산으로 입산한 14연대의 주둔지인 문수간이학교를 둘러보고 국립공원 지리산생태탐방원에서 주철희박사의 '여순항쟁과 민주주의' 강의로 첫날의 일정을 마쳤다. 둘째 날은 14연대와 토벌대의 전투가 있었던 산동면 시랑마을과 산동면 학살지인 누에고치판매장을 돌아보고 산동면사무소 강당에서 정지아작가의 특강을 들었다. 오후에는 산동애가 주인공인 백부전이 살았던 산동면 상관마을과 산동애가 노래비가 있는 산수유사랑공원을 둘러보고 반곡마을 홍판주 어르신으로부터 9살 소년이 겪었던 여순항쟁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으로 여순사건으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구례다. 14연대가 여수나 순천에서 머문 시간은 열흘이 채 되지 않지만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지리산입산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6년이 넘게 구례는 여순사건의 피해를 당했다. 최근 정지아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어 구례 많은 사람들이 여순사건으로 희생당한 역사가 알려지는 것 같다. 이번 기행단이 성황을 이룬 것도 정지아 작가의 특강 덕이 큰 것 같다. 비를 맞으며 지리산 자락 아픈 자리를 돌아보는 이들의 무거운 마음을 달래주듯 확 피어난 벚꽃, 아직 지지않고 기다려준 산수유꽃들아 고맙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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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번암 법종스님
- 「섬진강 편지」 - 우번암 법종스님 지리산 종석대 아래 우번암에서 40여 년을 수행하고 계신 법종스님을 찾아뵌 지 한달이 지났다. 살모사와 꿩과 함께 살았던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았지만 웃는 모습과 말투가 내가 좋아하는 시형과 딱 닮아서 이야기는 뒷전이고 법종스님과 시형이 마주 앉은 차탁 한켠에 나도 앉아있는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빙긋 웃었다. 40여 년 전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고 눈도 오지게 왔는데 이제 눈도 제대로 오지 않는 영하 십몇도의 지리산 다 베레버렸다는 스님이 너무 좋아서 간직한다는 우번암 설경사진을 보내주셨다. *법종스님 인터뷰(지리산-인) 영상 보기 http://jirisan-in.net/news/view.php?no=1063 *아래 설경은 법종스님이 보내주신 사진으로 저작권이 있습니다. #종석대 #차일봉 #노고단 #우번암 #법종스님 #성삼재 #시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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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아침
- 「섬진강 편지」 - 봄날 아침 조막만 한 참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 살구나무 꽃가지가 20초 간 떨렸다 모든 생명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봄날 아침이다 - 섬진강 / 김인호 - 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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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우번암 법종스님 이야기 2, 3부 (흐트러지면 경고하는 영험한 살모사 이야기 외)
- 지리산 우번암의 법종스님 인터뷰 2부와 3부를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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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우번암 법종스님 이야기 2, 3부 (흐트러지면 경고하는 영험한 살모사 이야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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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화 소식
- 「섬진강 편지」 - 화엄사 홍매 소식 화엄사 홍매화가 예년보다 이르게 며칠 새에 확 피었습니다. 오늘(3월 11일) 아침 모습입니다. 다음 주가 절정이겠습니다. 구층암 지나 들매화도 반쯤 피었습니다. 올해는 백일장도 열립니다. 제1회 청소년 홍매화 백일장(시) -2023.3.18(토) 13:30 ~ 16:30 아이들 손을 잡고 와보세요.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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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 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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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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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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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 ■ 시 겨울 산에서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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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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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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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정(茶情多情)
- 「섬진강 편지」 - 다정다정(茶情多情) 볕 좋아 꽃향 좋으니 꽃그늘에 앉아 차 한 잔 나누자 *천개의향나무숲 주인장 올해도 잊지 않고 전화를 주었네 多情한 마음들 둘러앉아 茶情을 나누니 나누는 말마다 꽃향이 스며들고 건너가는 웃음에서는 새소리가 들리네 매화우듬지 너머 지리산빛도 겨울외투 벗었으니 봄이란 녀석 아직 바람이 차서 못 가겠다 이런 저런 핑계 대지 못하겠네 *천개의향나무숲 : https://jkjmtree.modoo.at/?link=9qqdi7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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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정(茶情多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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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식 (지리산 화엄사 명선대종사)
- 2023.2.6. 화엄사에서 명선대종사 다비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다비식은 불교식 전통 화장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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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식 (지리산 화엄사 명선대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