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편 지

 

1

 

네가 병을 얻은 뒤로 그래도 2주일에 한번은 전주에 올라가 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이것마저도 뜻대로 안 되는구나. 그래서 못 올라가는 날이면 편지라도 쓰기로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써 보는 편지다.

몸의 느낌은 좀 어떤지 모르겠구나. 감기만 좀 심하게 걸려도 그 무기력함이 온 생을 무너뜨리는 법인데 네 중압감이야 오죽하랴. 현실의 통증으로부터 오는 깊고 텅 빈 어둠과 그 속에 홀로 놓인 극한의 두려움들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젊은 날 한때는 그 극한 상황을 일부러 찾아 떠나는 치기도 있었건만 이제 우리도 그 깊은 어둠을 생의 전면에서 관념이 아닌 현실로 만나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옛날처럼 이 현실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지만 너는 지금껏 잘 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병은 병대로 다스리되 평상심을 잃지 않고 하루를 새롭게 또 하루를 고맙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나처럼 일상에 끌려 다니는 놈이야 어찌 늘 새롭고 늘 고마운 세상을 느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너는 이전에도 나와는 달랐으니 이제 더 깊은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 모든 것을 아내의 뜻으로 이루도록 해서 함께 병을 다스리기 바란다. 이미 너와 네 아내에게는 새로운 삶이 온 것이고 그 삶이 거느리는 또 다른 의미는 당연히 너희 몫이니 그것을 스스로 일구지 않으면 결코 현실의 누추한 절망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생의 이면에서 만나는 또 다른 소중한 체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ㅇㅇ, 네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 사랑한다.

 

2

 

그제 산에 다녀왔다. 눈이 무척 많이 내려 구례까지 가는 동안에도 길가에 차들이 서너 대 박혀 있더구나. 구례에서도 화엄사만 겨우 버스가 다녀서 화엄 골짜기를 오르기로 했다. 내일은 읍내에서 정운창 선생을(‘빨치산의 딸을 쓴 정지아의 아버지)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더 가깝게 택했다.

웃자란 시누대들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활처럼 휘고 계곡은 하얗게 덮인 바위들 사이로 푸르게 시린 물줄기만 겨우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네 생각이 폭포수처럼 밀려 왔다. 넌 나보다 앞서서 사람들과 세상의 어둠을 볼 줄 알았고 늘 그것들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도 나보다 깊었지. 순백의 화엄을 오르는 동안 너로부터 얻었던 그 어둠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ㅇㅇ아, 네가 병을 얻은 이후로 스스로를 깊게 쳐들어온 생각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물처럼 흐르듯이 살아내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관념의 끝에 놓인 목숨부터 세상의 사소한 욕심까지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리라. 물론 어려운 일이고 필생의 화두로 남아 끝내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만 그것이 최선의 삶이고 사는 동안 스스로를 가장 잘 대접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내 안에는 20대의 순도 높은 어둠과 40대의 어설픈 생활합리주의가 혼재해 있어서 혼란스럽구나. 이것들이 변주해내는 내 구체적 생활을 가라앉히는 일만 해도 쉽지 않은데 어쩌랴, 언제는 내 의지대로 세상의 시간이 흘렀더냐. 어쩌면 사는 일은 주어진 생을 그대로 받아 내야만 하는 숙명적인 형벌인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스스로의 일지라도 스스로 깔끔하게 정리해낼 수 없다는 것을 요즘에야 느끼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산의 엄혹한 추위를 느끼고 싶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바람과 극한의 공포를 통해 지금의 너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안일하게 늙어가는 나의 정신에 채찍을 드는 건 그래도 겨울산의 추위보다도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병들어 쉬어버린 너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늘 주고받으며 말했던 삶과 죽음이 우리의 관념과 현실을 수시로 넘나들었을 테지만 이제 이것들은 더 이상 관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내야 할 현실이다. ㅇㅇ, 누추한 내 사랑을 보낸다.

 

3

 

오늘이 49재구나. 이제 너를 영영 보내야만 하는구나. 49일을 중음신으로 떠도는 동안 네가 사랑한 이승의 것들과 석별의 정은 잘 나누었느냐. 너는 이제 가는 자가 되었지만 세상의 이별은 늘 보내는 자의 슬픔만 있을 뿐이다. 그래, 네가 이승을 뜨며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슬픔이다. 지난 백 년 동안 진정한 비극 한 편이 창작되지 못한 것은 사람이 영악해지면서 그 슬픔도 가벼워졌기 때문이라지. 너는 내 피폐해진 영혼을 위해 마지막으로 심연의 깊은 어둠으로부터 오는 슬픔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네 육신을 사룬 한줌의 재와 함께.

하지만 나는 이 슬픔을 눈물 몇 방울로 받을 수밖에 없구나. 너의 죽음은 아직도 내 정면에 있고 나는 한 발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잘 가라 벗이여, 내 사랑한 사람이여. 너는 세상의 부귀영화, 권력과 명예를 탐하지 않았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지만 이제 됐다. 그만 되었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사무치면 한이 되거니 49일 동안 곡진하게 보내는 의식을 치러낸 아내의 등도 이제 좀 다독여주려무나.

남은 날 동안 어둠이 올 때마다 초파일의 등불처럼 너를 걸리라. 어둠에 잠긴 꽃으로 네가 늘 숨쉬고 있을 것이니 나는 그걸 느끼리라. 아름다움은 말해 무엇 하리. 네가 그곳에 있는데. 강을 건너는 나비의 꿈은 말해 또 무엇 하리. 네가 그곳에 있는데. 벗이여 잘 가라. 내 사랑했던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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