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다정한 것에 대하여

 

김 영 춘

 

 

 

산봉우리에

형제봉이니 자매봉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

살던 사람들이 있다.

행여 사이가 좋지 못할까봐

형제자매들까지 데려다 놓고는

오래오래 그렇게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전주의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늙어가면서

전봉준 김개남 이런 사람들의 눈빛을 지켜보고 있는데

무너지는 몸을 겨우 이기는 그 곁으로

열대여섯 살쯤 됐을까

싱그러운 어린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요즘 식으로 유전자를 따라가 봤더니

늙은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한다.

아비도 없이 어찌 아이만 남았을까

우금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두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사람처럼 어미와 아비를 떠올리다가

형제봉이나 자매봉을 불러보던 시간들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가 않아서

몸이 슬슬 떨려오기도 했다

 

이 나라의 슬픔으로는

아비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

어린 것이 어미 곁에 홀로 서 있는 정도는 되어야

인간사의 다정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인가

꼭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도 봄이 왔으므로

할아버지와 손자라면 더 어울릴 법한 두 은행나무가

어미와 자식으로

나란히 잎을 피운다

 

둘이서도 잘 피운다

 

다정하기가 그지 없다

 

슬픔도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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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것에 대하여.. '다정'이라는 단어가 먼저 와 닿는다. 다정이 참으로 목마른 시절이어서 그런가, 나만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 '다정함'을 느끼기가 참 어렵다. 세상이 무서운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 스스로가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 그런지, 보이지 않는 어떤 단단한 경계를 가지고들 사는 것 같다. 쉽게 가까워져서 스스로 무장한 세상벽을 헐어내는 일이 매우 어렵다. 

  이 시는 전주의 유명한 보호수 천년 은행나무의 이야기인데 그 인간사의 애정이 참으로 애잔하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다정'은 슬픔을 꼭꼭 감추고 있는 다정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프고 슬픈 다정함이 더 깊은 울림으로 온다. 왠지 더 우리네 다정함 같아서 그렇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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