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지극정성至極精誠

 

 

저희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이신 송기득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선생님은 수년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자신의 삶도 이런저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셨는지 그동안 발행해오던 잡지 신학비평을 폐간하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주변에서 제자들이며 지인들이 극구 말려서 신학비평은 끝났지만 이후 그 여운을 담아내는 부록처럼 신학비평 너머라는 제호로 전보다 규모가 작아진 책을 내며 마음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신학비평 너머원고를 청탁하시면서 말씀 뒤 끝에 이 신학비평 너머도 올해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왠지 그 말씀이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려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신학비평은 당신의 모든 일상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 같은 것이며 여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할 것인데 이를 그만둔다는 말은 예삿말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도 선생님의 판단인데 내가 이런저런 짐작을 해서도 또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어서 오늘의 행위가 내일을 결정하게 되니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해야만 운명도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신학비평 너머폐간 결정이 그러하신 것 같았습니다. 생성하는 것은 반드시 소멸이 따르는 것이라 하니 선생님께서 그 시기를 보시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학비평 너머를 더 하시라는 말도 못 꺼내고 글이나 더 열심히 써서 보내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지요.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집중하니 성이라는 글자 하나가 떠올랐지요. 선생님의 삶 자체를 이 글자 하나가 오롯이 떠받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군 때의 경전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보면 성에 대해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誠者 衷心之所發 血性之所守

(성이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에 대한 연변대학에 있던 최민자 교수의 해설을 보면

일념으로 을 다할 때 자신의 誠門이 열리면서 스스로의 신성과 마주치게 된다. 매순간 정성을 다하는 것이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요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 하나(‘삼일신고에 나오는 一神降衷의 의미)을 경배하는 것이다.”

정성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며 잊지 아니하는 것이고 쉬지 않는 것이며 지극한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라는 글들이 나옵니다.

 

내가 송기득 선생님을 자신의 일상 삶 자체를 오롯이 성으로 사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수년간의 지극한 돌봄과 그 죽음 이후 현재 삶만 보더라도 그렇고 선생님의 삶 전체를 한마디로 평한다 해도 성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듯싶습니다.

젊은 날 구도행의 시절도 성이요 학자로서 학문을 할 때도 성이요 가르침이나 모든 삶 행위도 성이요 사모님에 대한 극진한 모심도 성이었으니 그 지극정성의 삶 자체가 이미 참 본성으로 세속을 살아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책 내용에서 정성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정성이 더욱 깊어져 우리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그것이 각인되는 단계에 이르면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의 전 과정이 정성의 발현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가히 정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역사상 알려졌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은 밝은이(覺者)들이 이에 속한다. 이는 한마디로 ’(에고)를 잊고 ’(참 본성)를 잃지 않는 경지이다.” 라는 대목을 보면 더욱 선생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아파트에서 두유나 과일주스 등으로 식사를 하시며 불편한 몸으로 혼자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려보다가 시를 한편 만들었습니다.

 

새는 낮게 날아 나무의 그늘로 그늘로만 옮겨 다니며 아무런 지저귐도 없이 폭염을 견디었다. 견딘다는 것은 영역과 영역의 경계를 사는 일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외롭고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경계를 지우고 순일純一한 하늘을 보게 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오늘이겠지. 오늘이겠지. 그렇게 막연한 설렘 하나로 또 하루가 갔다.

(박두규의 시 또 하루가 갔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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