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박 두 규 (시인)

 

오래 전에 읽은 고은의 소설 ()을 보면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갈 때 해로를 통해 베트남으로 상륙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뱅골만을 벗어날 즈음에 이동 중인 수만 마리의 철새 떼들이 폭풍을 피해 달마 일행의 배로 내려앉는 일이 생긴다. 달마는 그 새떼들을 쫒거나 죽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선원들과 일행들이 그 말을 잘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 배에는 수백 마리의 새들이 죽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달마는 저 새들은 늙어서 기력이 다해 죽은 것이다.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깐 호흡을 골라야 했다. 무언가가 깊게 마음을 질러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때문에 타자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점점 무기력해지고 죽음의 그늘이 가까이 드리워진다. 이게 일반적인 일상의 늙음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은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면서 늙음에 종속되지 않는 생명과 생명을 가진 한 존재의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켜준다.

디팩 초프라가 말한 것처럼 노화란 하나의 개념일 뿐이고 실재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끝까지 발현하다가 소멸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영장류만이 유일하게 생각하는 힘이 있어 늙음이나 죽음 따위를 가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 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스스로 늙었다거나 죽을 때가 다 되었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기만 할 것이다.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생명을 발현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새들의 스스로 이상향을 향한 자유로운 날갯짓은 늙음과 무관하며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졸저 을 버티게하는 문장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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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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