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자야

 

타고난 무기력과 학습된 책임감 모두를 사랑하는, 성실한 귀차니스트. ‘슬렁슬렁 토종텃밭연재를 통해 함양에서 토종씨앗을 심고 거두는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지난겨울 내내 굴착기 5대가 땅을 파고 바위를 쪼고 돌과 모래를 트럭에 실어 나르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공사장이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소음이 일상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일정한 간격으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약한 진동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서너 번 대문 밖을 나서는 날에는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두 눈을 감지 않고서야 공사장의 살벌한 풍경과 마주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을 건너다 볼 때, 혹은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걸어 들어갈 때, 나는 더 이상 우리 동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나 설렘이 내 속에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러면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발부리에 채는 돌멩이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바야흐로 봄이다. 제법 높았던 언덕 하나가 쪼개지고 허물어진 자리에는, 이제 굴착기 5대 중 2대만 남아 조용히마무리 작업 중이다. 이로써 내가 지난 십 년간 수백 번은 족히 오르락내리락했던 언덕과 산책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동네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 뿐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고령의 어르신들, 특히 혼자 사시던 할머니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몇 분은 이미 세상을 베렸고’, 몇 분은 도시 어느 요양원으로 옮겨졌으며, 남은 분들의 바깥출입도 예전 같지는 않다. 몸 상태가 괜찮을 때도 워낙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던 분들이어서인지, 할머니들의 사라짐은 매우 뒤늦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일단 그 분들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나면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동사 앞 느티나무 아래나 좁고 고불고불한 밭고랑, 혹은 골목길 모퉁이에 주저앉아 순하게 웃고 계시던 분들이 없기에, 같은 공간이 더 이상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해가 될까?

 

오래된 기억 속 이야기를 만나다

요즘 <함양토종씨앗모임>에서는 백전면 마을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나고 있다. 목적은 그 분들이 오랜 세월 뿌리고 거두길 반복해온 토종씨앗의 종류를 파악하고 수집하는 것인데, 막상 볕 잘 드는 툇마루에 할머니와 마주앉으면 씨앗도 씨앗이지만 갈피갈피 눈물이 배어 짭짤해진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시집 올 때 지곡에서부터 백전 꼭대기에 자리한 백운마을까지 함박눈을 맞으며 하루 꼬박 걸어온 사연이며, 산에서 싸리나무를 직접 비다가마솥에 푹푹 삶아 껍질 벗겨 말려서 채반과 빗자루를 엮은 이야기며, 또 바깥양반 일찍 보내고 홀로 자식들 키우느라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건만 정작 남은 건 병들고 고독한 삶뿐이라는 한탄 같은 것들. 어느 할머니는 시집 와 한 집에서만 50년 넘게 살아온 사연을 들려주신 끝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이제 집도 나도 망가지삐렸어.”

이른 아침부터 한나절을 돌아다녀도 농사지을 기력이 남아 있는 할머니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고, 그 중 토종씨앗을 보유하고 있는 분은 더 드물다. 그래도 70세 이상 할머니라면 최소한 토종씨앗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묵은 기억들을 헤집어 손바닥 만했던 맨드라미꽃의 화사함과 시어머니 생전에 심었던 송아리 큰 서숙()’의 풍성함, 메주 쑤어 장 담그면 일품이던 토종 흰콩의 다디단 맛을 묘사할 수 있는 분들이 남아 있다는 게, 정말로 고맙지 않은가. 그래서일 것이다. 가져간 씨앗 자루는 비록 헐렁해도 가슴만은 꽉꽉 채워 돌아오게 되는 이유는.

 

내 마음에도,

제아무리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공사장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무너진 언덕과 흙길에 더 이상 정붙일 곳이 없어졌다 해도, 어느새 꽃향기는 진동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생명들은 아우성을 치며 할머니들의 더운 숨결이 사라진 자리에선 노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말하자면 살풍경한 우리 동네에까지 봄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겨우내 잔뜩 심술이 나 있던 내 마음도 조금은 말랑해진 듯하다. 언젠가는 희미해질 기억,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이야기, 이미 상당 부분 소실된 토종씨앗을 전부 제 속에 간직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는 가운데, 나는 그렇게 온기를 되찾아간다. 서서히, 조금씩, 어쩌면 나는 할머니들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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