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심영지 (함양시민연대)


모든 생명이 움트는 봄이 되면 곳곳에 피어난 색색의 봄꽃에 맘이 설레고, 갈아놓은 논밭을 보며 텃밭 구상이 시작된다. 서울 생활의 삭막함을 덜어보고자 집 앞 상자텃밭으로 시작해 매년 텃밭농사를 해온 게 어느덧 3. 첫해는 종자상에서 모종을 구입해 심었고 이듬해에는 생에 처음으로 씨앗을 땅에 심어 보았다.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이 작은 씨앗을 심어 뭐가 나겠나 싶기도 했고 여러 풀씨들과 함께 심겨서 그런지 싹이 올라올 때면 뭐가 뭔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그중에 살아남은 씨 몇 알이 힘차게 올라와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적은 수확물이었지만 정성껏 요리해 사람들과 나눠먹으면 그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키운 토마토야.”에 깃들어 있는 자부심이란. 사실 내가 키웠다기보단 하늘과 땅이 키워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 에 매료되어 자연히 씨앗까지 관심이 갔다. 매년 씨앗과 모종값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찮기도 했고 파랑, 노랑 묘~한 색깔로 도포된 씨앗이 과연 진짜씨앗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그렇게 씨앗 공부를 하다 보니 씨앗 한 알에 담긴 의미와 중요성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종 씨앗이란 뭘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는 토종 씨앗을 토착화 된 종자, 형질이 고착화되어 매년 안정적인 수확량이 나오는 것이 검증된 씨앗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원산지가 어디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심어왔는가라는 측면을 뛰어 넘어서 우리 땅과 기후에 적응해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한

씨앗을 토종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단체인 토종씨드림대표가 쓴 책 토종 농사는 이렇게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는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외래종을 토착화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몇 년 전, 20년 동안 다마금을 재배했던 농부가 다마금이 재래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씨앗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또 다른 배타적 토종주의로 흐르는 것에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종자인 다마금이 100년 동안 한국의 토양에서 적응되었다면, 당연히 토착화된 씨앗(토종 씨앗)이 아니런가? 식물의 경우 30년 정도만 지나면 토착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중략) 내가 여기서 토종을 강조하는 것은 배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식량 주권잃어버린 씨앗을 되찾기 위한 점임을 밝혀 둔다.”

 

위태로운 토종 씨앗의 자리

토종 씨앗은 올해 수확하고 이듬해 심으면 다시 싹이 트고 열매가 맺힌다. 씨앗 안에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종자회사에서 판매하는 씨앗은 불임종자가 대부분이다. 1회용 씨앗이기 때문에 농민은 이듬해 또 다시 씨앗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씨앗을 사는 것일까? 이 씨앗은 생산물의 크기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수확량 중심으로 개량된 종자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토종 작물은 농민이 선호하는 모양과 맛에 따라 선택되어 왔다. 그러기에 농가마다 가지고 있는 씨앗이 달랐고 그만큼 다양성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일부 품종은 살아남아 먹을거리 공급의 안정성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종자의 80% 이상을 다국적 기업에서 공급받고 있다. 예를 들어 청양고추는 외환위기 때 우리 청양고추 종자 로열티가 독일 바이엘에 넘어갔다. 바이엘에서 청양고추의 가격을 올리면 우리는 그 값을 치르면서 씨앗을 들어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갈수록 기업들의 독점은 더 심화되고 있고 이들이 종자가격을 올리면 현재의 소농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기업이 종자를 독점해 세계인의 생명권을 쥐고 돈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종씨앗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만큼 우리 밥상 또한 안전하지 않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 식재료의 78%는 농약과 방부제로 샤워를 한 수입 농산물이 장악하고 있고 가공식품의 원료로 gmo 품종이 유통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gmo 식품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조작생물, gmo는 과거 고엽제를 제조한 화학기업 몬산토가 최초로 개발했다. 이 곳의 과학자들은 화학물 폐기장에서 제초제에 범벅이 된 채 살아남은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이것을 유전자에 삽입해 1996년 상용화한 gmo 콩은 강력한 제초제를 흡수해도 죽지 않고 자랐다. 우리가 먹는 gmo농산물의 시작이다. gmo 작물 외에는 모든 생물을 죽일 수 있는 제초제. 이 안에 든 글리포세이트라는 물질은 작물의 세포까지 흡수되어 씻어도 사라지지 않고,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다. 사람이 섭취하면 몸에 축적되어 불임, 기형아 출산, 암 발병의 원인이 된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2015년에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지만,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연간 8억톤이 쓰인다고 한다. 또한 한국은 식용 gmo 수입 1위국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된장, 간장, 식용유, 과자 등 가공식품의 원재료를 살펴보면 70%가 수입산이고 그중 80%gmo. 하지만 우리는 gmo를 먹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gmo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gmo 완전표시제시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방관과 기업의 반대에 가로막혀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토종씨앗을 지키고 되살려온 사람들

예로부터 씨앗은 나눔을 통해 이어져 왔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고 나온 씨앗 중 좋은 것은 이웃에게 나누고 자식들을 통해 대물림되었다. 나눔의 속성을 간직한 씨앗, 하지만 이 씨앗이 팔아넘겨지면서 씨앗을 매개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독점된 씨앗은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씨앗의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 바로 농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에 세계 곳곳에서 농민들은 다시 씨앗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인식한 농민, 환경과 관련된 단체들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단체로는 토종종자모임 씨드림, 흙살림 토종 연구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꼽을 수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중심으로 한 여성 농민들은 토종종자와 생태농업을 기반으로 한 꾸러미사업언니네 장터사업을 시행했고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만원의 행복사업은 특히 토종씨앗을 지키고 활동하는 것을 지원하는데, 1만원의 기금을 내면 가정이나 텃밭에서 심을 수 있는 토종씨앗 3가지를 보내준다. '토종씨드림'2008년 단체와 개인으로 결성된 비영리 단체로 현재 토종씨앗 수집을 가장 활발히 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온라인 카페의 회원 수가 15천여 명에 이르고 41개 지역에서 지역별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남지역에서는 거창, 진주, 하동에서 씨앗 수집조사가 앞서 시행되었고, 함양은 올해 2, 백전면을 시작으로 씨앗 수집조사의 첫 발을 내딛었다.

 

씨앗은 보관만 하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계속 땅에 심어져 싹이 트고 한 생을 정직하게 살아내야 한다. 지금껏 토종 씨앗이 이어왔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씨앗을 지키고 대물려온 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농민들은 씨앗을 거둬들이는 수고스러움을 마다 않고 어떤 이유로 지금껏 토종 씨앗을 지켜왔을까? 씨앗 수집조사를 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은 대부분 이 좋아서였다. “자식들이 이 맛을 좋아해.” “시장에 파는 거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고소해.” 그러면서 이제껏 농사 지으신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고단했던 당신의 삶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신다. 씨앗과 함께 흘러온 세월이 그 분들의 굽어진 허리만큼이나 숙연하게 느껴진다. 매년 고령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토종 씨앗도 함께 사라지고 있고, 토종작물이 우리의 밥상까지 올라오기에는 많은 현실적 한계들이 있지만 한 알의 씨앗이 있으면 희망이 존재하듯 대를 이어 우리의 전통지혜가 씨앗과 함께 물려지고 되살아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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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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