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길은 아름답다                                               

신경림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답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은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눈앞에 되살아나는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기다릴 것만 같아서 

 눈앞에 되살아나는  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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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공원 벚꽃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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