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은 아름답다
신경림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답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 하동공원 벚꽃 /사진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