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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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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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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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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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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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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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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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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방랑단 기사

  • [춘분 편지 : 참새와 돌] 냄새에 무던한 편이지만
    디자인.칩코 <조금 늦은 춘분의 편지, 돌에게> 돌 이번에는 제 편지가 늦었네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깜박이는 커서를 오래 바라보았어요. 천천히 여유롭게 보내도 된다는 말을 전해듣고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돌이 늦는다 하면 저 또한 자연히 그런 마음이 들고, 그런 말을 했을텐데 막상 제 자신한테는 그런 따뜻한 말 건네지 못하고, 편지를 잘 쓰지 못할 것 같단 생각으로 침울해 하고만 있었네요. 잘 쓰지 않아도 되는데 왜 자꾸 스스로 부담을 가질까 다시 자신을 돌아보았어요. 돌의 관대함에 잠시 기대어 쉬고, 다시 가벼워진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고마워요. 돌의 경칩 편지를 보고 너무 얘기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채식에 몰두할 수록, 성공적일수록 일상에서 어떤 존재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횟수는 줄어든다.’는 문장을 보고, 때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어떤 운동이나 실천의 본질을 짚어주는 것 같았거든요. 나는 과연 잘 그러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게 된 문장이었어요. 또 돌은 어떤 어린시절을 보낸 걸까, 저항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다면 평범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호기심도 생겼고요. 부끄러워질만큼 다시 깨달은 것들도 나누어 듣게 되면 나도 부끄러워질까, 그럼 괴로우려나 싶다가도 작은 무너짐을 여러번 쌓아오면서 그것을 다시 여러번의 일으킴으로 바꾸어내는 돌의 따스한 단단함이라면 기꺼이 닮고 싶어질 것 같아요. 지리산 회동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져가요.ㅎㅎ 돌이 편지에서 말한 ‘바람은 차갑게 불어도 햇빛은 따스한’ 그 날씨, 지리산에서도 느끼고 있었지요. 꽃샘추위가 오면 매번 ‘봄은 아직인가?’ 싶다가도 분명 겨울과 달라진 햇살의 따가움을 느낄 때, 그늘진 곳과 해가 비춘 곳의 온도차이를 느끼게 될 때, 해가 온 힘을 다해 봄을 끌고 오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고마워져요. 여기 남쪽은 이제 바람도 따스하게 불어요. 우리 서울에서 만났을 때는 꽃눈을 들여다 보며 나무들을 만났는데 지금은 길 가에 낮게 피어난 풀꽃과 나무에 핀 화려한 꽃들을 보며 반갑게 이름을 불러보고 있네요. 매화꽃과 살구꽃이 어떻게 다른 지를 배우기 위해 꽃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니 꿀벌들의 붕붕 소리가 귓가에 가득 들려왔어요. 보기만 해도 예쁜 꽃, 달콤한 향과 맛까지 나는 걸까, 괜히 코를 가져다 대 보았어요. 그치만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후각에 좀 둔한 것 같아요. 옆에서 누군가가 ‘와 꽃 향기 난다!’하고 감탄할 때도 ‘잘 모르겠는데?’ 속으로 생각해요. 여름날 밤나무 꽃 향기 빼고는 봄의 은은한 꽃 향기를 알아차리는 일이 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향기로 어떤 순간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멋져보여요. 요새 대신 산책을 시켜주고 있는 이웃댁 강아지 ‘만두’는 산책줄을 매는 순간부터 코를 땅에 바짝 대고,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어요. 인간들은 모를 어떤 재밌는 소식이 그 길에 있는 걸까 궁금해요. 첫 번째 편지에 썼던 제 반려고양이 ‘다리’도 누군가 집에 들어오면 총총 걸어와 바짓단과 가방에 코를 한 번씩 갖다 대며 바깥 냄새를 맡아요. 고양이들은 특이한 냄새를 맡으면 입을 살짝 벌린 채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그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좀 웃긴데. 혹시 돌도 알까요?) 그게 냄새를 기억하기 위한 생리적인 반응이라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또 저는 가본 적 없지만 돌이 가보았다는 비질에서도 멈춘 트럭 안 돼지들이 물을 주는 사람들의 손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죠. 그들도 분명히 무언가를 감각하고, 느끼는 동물이라는 것을 손에 닿은 코의 촉감을 통해 실감하게 되어 슬펐다고 비질에 다녀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딘가를, 누군가를, 무언가를 알아가기 위해서 코의 감각에 집중하는 건 꽤 많은 동물들의 본능적인 행위인 것 같아요. 나는 왜 후각을 잘 못 쓸까? 내가 잘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그런 생각을하다가 코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저도 언젠가부터 코를 가져다대고 깊은 숨을 들이쉬게 하는 것들이 생겼다는 걸 기억해냈어요. 저는 제 고양이 ’다리’한테서 나는 입냄새를 좋아해요. 구내염을 앓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저는 그걸 참아주는 걸 넘어서 그 애의 정수리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그 향기를 찾아 맡아요. 강력한 침냄새를 맡고는 제 옆에서 꽃 향기를 먼저 알아차린 친구가 그러했던 것처럼 “으아, ‘다리’ 냄새다!”하고 경탄해요. 말 그대로 잊을 수 없는 향기이자 언젠가는 너무나 그리워질 향기죠. 저에게 있어서 두 눈을 감고 오롯이 향기를 맡는 건 곁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가장 강력한 표현같아요. 그 다음으로 깊이 들이쉬어 본 향기는 ‘비 내린 다음 날 숲’이에요. 지리산에 오고 매일 같이 둘레길을 가야하던 때가 있었어요. 도시에 살았을 땐 맑은 날을 골라서 산에 갔어요. 그치만 이제 사는 곳 자체가 산 속이기도 했고, 일 터가 둘레길을 따라 가야하는 곳이다 보니 날씨 상관없이 매일같이 숲 길을 걸어야 했죠. 비를 잔뜩 맞은 산의 향기와 색감에 완전히 감탄하며 걸었던 기억이 나요. 나무 기둥들은 검은색을 띄고, 그 기둥들 사이마다 짙은 녹색이 빼곡하게 생기를 뿜어 내고요. 그 초록 잎사귀들이 뿜어내는 촉촉한 생명력이 콧속으로 들어오면 나도 따라서 선명해지는 것 같았어요. 편지를 쓰다보니 올해 봄 가뭄이 심해서 하루 빨리 비가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비 냄새를 맡고 싶어요. 비가 많이 그리운가봐요. 돌이 사는 곳에서는 어떻게 봄을 느끼고 있을지, 돌이 감각하는 세상은 어떨지, 잊을 수 없는 향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돌도 얼마든지 천천히 여유롭게 보내어주세요. 짹짹! <춘분의 편지,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늦은 편지에 더 늦은 답장을 보내요. 지난 참새의 춘분 편지는 잘 읽었어요. 향기에 대해 곱씹으며 날들을 보냈었는데,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생동력이 바닥치는 상태가 되어있어요. 늦은 답장에 사과부터 전할게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요 며칠 답장을 쓸 수 없었어요. 향기에 대해 기쁘게 말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근데 더 미룰 수 없겠다 싶고, 무엇보다 편지에서조차 솔직할 수 없다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 펜을 잡아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사연을 나눌게요. 길어질 이야기에 앞서 양해를 구해요. 사실 3월에 들어서면서 나름대로 균형에 맞추고 있다고 생각 중이었어요. 입춘 편지였나요, 참새에게 계절의 힘으로 무거운 고민들을 넘어가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런가봐! 했어요. 시간을 쓰는 것만 보면 바빠지기는 더 바빠졌지만, 저를 구성하는 것이자 하고 싶은 것을 동시에 해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자아에 대한 불안이 진정되었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 균형을 오래 유지해가고 싶다, 기쁘게 바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밖에서 에너지를 쓰고 또 잔뜩 자극받은 채로 집에 돌아오면, 방에 들어가자마자 방바닥에 딱 붙어버렸어요.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이유없이 그렇게 1-2시간, 길어지면 3시간까지 납작 엎드려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요.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등에 올라타 있는 것 같고, 눈은 도착했을 때보다 더 감겨있죠. 좀 전까지 바깥에서 나누던 의지, 열정, 희망, 반짝이는 눈과 마음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떠밀리듯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면, 누울 수 없는 공간들에서 열심히 제 역할을 하고, 그렇게 시동이 걸린 김에 밀린 일도 슬쩍슬쩍 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자!라며 화이팅을 다진 채로 집에 도착하면 다시 또 납작. 그렇게 누워있다보면, 발 끝부터 허리와 어깨, 눈을 거쳐 정수리까지 우울감이 찐득찐득하게 묻어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제 우울과 무기력을 잘 들어주고, 몸 전체를 가득 채우면 그러도록 놔두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이유가 있겠지, 힘들었구나, 나도 나를 알아야지’ 뭐 그런 마음이었지요. 어젯밤에는 더 이상 그러면 안되겠다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른 이유보다도 그렇게 납작하게 멈춘 시간동안 제가 너무 힘들어서요.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무거운 짐이 되는 시간을 더 방치하고 싶지 않았어요. 분명 제가 힘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잘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만, 당장은 이 우울한 시간 자체를 줄이고 없애는 걸 우선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가능한 밖에 오래 있기로 한 것이 오늘의 다짐이에요. 이상한 해결책이고, 돌아돌아 간대도 우선 해볼게요. 덕분에 편지에 답장할 시간을 마련했어요. 응급 처방같은 오늘의 다짐이 무색하게, 괜히 심연의 문제를 건드리나 싶지만 참새의 편지에도 힌트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왜 잘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침울해 하기만 할까’, ‘왜 자꾸 스스로 부담을 가질까’. 지리산방랑단과 참새가 열어준, 넓은 편지지의 공백을 들여다보아요. 다들 저에게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제 삶의 일부를 나누고 함께 연결되길 바라겠지요. 저도 딱 그만큼만 스스로에게 기대할게요. 고마워요. 꽃샘추위로 확 추웠는데, 풀리자마자 금세 봄의 꽃이 만개했어요. 순식간이라 놀라기도 해요. 벌써 봄이 왔구나! 내가 몰라봤구나, 아 올해 좀 빨리 온 건가? 했어요. 오늘은 참새가 그랬다던 것처럼 꽃의 이름도 떠올려봤어요. 개나리, 목련, 벚꽃이 순서대로 활짝 폈더군요!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의 표정!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집의 건물에는 지하부터 지상으로 연결된 주차장이 있는데요, 이 주차장을 터잡고 지낸지 벌써 6년이 된 길고양이가 있어요. 밥은 옆집에서 챙겨주시고, 저는 주로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는 쪽이에요. 아는 얼굴이라는건지 제가 주차장에 들어서면 웨옹~하며 반겨주는데요, 꼭 가까이 와서 신발이든 바지 끝단이든 냄새부터 맡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가까이 가서 손부터 코 가까이에 대고 인사하게 되었어요. 사실 냄새는 잠깐 맡고 주로 부비적대느라 2-30분을 훌쩍 보내게 되는데, 그 사이사이 냄새 맡는 표정이 재밌어요. 음, 그러고보니. 저에게는 고양이의 냄새보다는 만지고 돌아오면 올라오는 알러지 반응이 더 감각적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저는 비염이 있어서 냄새를 기억하는 일 자체가 익숙치 않은 것도 같아요. 놀랍게도 인상적인 기억이 없네요. 흔히들 대표적인 향수 종류나, 향수랑 핸드크림에 자주 쓰는 향의 이름을 대면 떠올리잖아요. 저는 그런 것도 잘 몰라요.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냄새와 향에 무던한 편인 것 같아요. 그런 제 코가 예민해지는 몇 안되는 조건은 먼지예요. 먼지가 많은 곳에 들어가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다른 무엇보다 코가 제일 먼저 알아요. 간지럽고 텁텁하고 답답하고, 오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붓기도 해요. 특히 미세먼지는 냄새도 있어요. 참새도 알까요? 나무가 가득한 지리산에서는 먼지 냄새를 맡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혼자 짐작해봐요. 제 방은 며칠 청소를 안하면 먼지가 굴러다니는 게 보여요. 저는 여름만 제외하곤 털옷을 즐겨입어서, 옷에서 나온 먼지가 많아요. 그러다 이렇게 며칠 내내 세상을 돌아다니는 미세먼지를 보면 괜히 무섭기도 해요. 내 방에서만도 이렇게 매일 만들어지는데, 온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게다가 이게 다 도로 위 타이어와 매연에서, 건설현장과 공장에서, 우리가 쓰는 물건들에서 만들어졌다니. 자연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인간은 뭘 얼마나 만들어내고 있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흘러가는 사고대로 생각하기를 경계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활짝 핀 꽃 너머로 회색빛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들더라고요. 정말 도시 사람 같네요 하하. 꽃이 활짝 핀 봄에 ‘잊을 수 없는 향기’를 물었는데, 대답이 도시의 미세먼지 냄새라니. 그렇지만 익숙하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흙내음이 가득한 공간이 되고, 곁에 피어난 꽃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게 쉬워지고, 주유소의 석유 냄새보다 비료의 텁텁하고 깊은 냄새가 익숙한 감각을 나눌 날을 그려봐요. 많은 시간이 쌓여야 하지만 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만 해도 작년보다 올해 더 가까워졌는 걸요. 지리산을 마음 한 켠에 품었으니 말이죠. 벌써 3월이 끝나가요. 아픈 봄, 4월이 오고 있네요. 잘 살아내고 싶어요. 방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멈춰있지 말고, 굴러볼게요. 저는 돌이니까요. 굴러야 제 자리에서 저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곁으로 갈 수 있겠죠. 같이 살기는 곁으로 가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참새 덕분에 천천히 숨을 골랐어요. 참새에게도 긴장과 부담보다 회복과 돌아봄의 편지일 수 있길 바래요. 4월에 만나요! 데구르르 특히 더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돌이. 2023년 3월 29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4-03
  • [춘분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저는 제 땀냄새가 좋아요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잘지내셨나요? 어제까지였는데 조금 늦어서 미안해요... 기다려줬을 갈토를 생각하면서 빨리 쓰려고 애썼는데 이동이 많았던 이번주는 노트북이랑은 다르게 폰으로 적어야했어서 더 감 잡기가... 어려웠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갈토의 이야기를 듣고 초심을 만들지 않는것도 참 좋은 방법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모습을 그대로 인정해버리는 것! 저도 친구를 여럿 사귀는 걸 좋아해서 모든 관계에 애썼지만, 결국 소수의 소중한 이들만 곁에 남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엔 에너지를 많이 쏟지 않는 편이 되었어요. 그래서 진지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진지함이 있는 관계가 깊이를 만드는 것 같거든요! 저는 지금 구례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한달에 한번씩은 방랑단을 포함한 친구들이나 지리산이 보고 싶어서 내려와요. 2020년 때 처음 지리산살이를 했었는데요. 그 이후부터 이곳에 주기적으로 오지 않으면 향수병에 걸린 듯이 그립더라구요. 아무래도 도시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 때문인것 같아요. 이맘때즈음 나는 냉이향기, 쑥향기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참 설레요. 그 설렘과 지리산의 상쾌한 공기를 담아 편지 써 볼게요. 도시에서는 자동차 매연 냄새나 앞사람이 길 가면서 피는 담배 냄새, 음식점 먹거리 냄새가 주로 나서 그런지역시 자연의 냄새를 맡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심지어 도시에서 살다보면 버스를 놓칠까봐 죽어라 뛰는 날이 많았는데요. 특히 여름철에는 땀이 더 많이나서 몸이 땀범벅에 냄새까지 날까봐 스트레스를 더 받고는 했어요. 도시에서는 제 땀냄새마저 싫어지게 되나봐요. 반면 지리산에서는 땀이 좋아져요. 상쾌한 공기 냄새, 풀냄새, 흙냄새가 산책하다 보면 여기 있다는게 행복해서 방과후 신나게 집가는 아이처럼 걷게 되요. 땀이 줄줄 나도 노폐물이 빠져나가서 좋다까지 생각해요. ㅋㅋ 무엇보다 누구도 저를 더럽게(?)보지 않는 느낌을 받아요. 방랑단때도 기억나는 게, 햇볕이 쨍쨍할 때 걷다보면 1분도 못채우고 줄줄줄 땀이 나더라고요. 바로 그 근처계곡에 몸을 담그고 놉니다. 그럼 땀에게 고마워져요. 그냥 물놀이를 하는 것 보다 땀을 내고 씻을 때 훨씬 개운하고 행복해요. 그래서 제겐 땀냄새가 곧 물놀이 하는 시간으로 연결이 되어 땀냄새도 하나의 체취처럼 받아들여져요. 아무래도 도시와 시골의 인식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평상옷을 입은채보다는 운동복을 입고땀을 흘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잖아요. 도시에서는 똥오줌 더럽게 보듯이 땀도 부정적 인식이 되는 것같네요. 제 땀냄새 이야기가 길었네요... 갈토도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아님 다른 향기가 있나요? 날씨가 참 건조하니 감기 조심하시구요! 느긋한 마음으로 개화를 기다리듯이 갈토의 편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편지가 늦게 도착한지 몰랐어요. 저는 요새 일도 바빠지고, 이사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엄청 없다기 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없네요. 이렇게 바쁘게 안 살려고 한 것 같은데 고새 또 이렇게 여유가 없어지니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나는 노래도 틀어보고 있지만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소설 듣기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시간이에요. 최근에는 '지구 끝의 온실'을 다 듣고, '재능의 불시착'을 듣고 있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은 유우야도 좋아할 것 같아요.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초록이 가득한 곳에서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번 주제가 '잊을 수 없는 향기'네요. 여러 이미지가 생각이 나는데요. 우선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에게 나던 향이에요. 만날 때 가끔 나는 냄새가 좋았는데 로션 냄새라고 하더라고요. 헤어지고 나서 그 냄새가 화이트 머스크라는 걸 알았어요. 로즈향이랑 좀 비슷한 느낌인데, 이 냄새를 우연히 맡게 되면 그 사람이 생각나곤 했어요. 저는 냄새로 그 사람을 좀 기억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지금까지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네 집에 가면 항상 나는 냄새가 있었거든요. 딱 그 집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 막 좋다기 보다는 그 집에 가면 늘 편안했거든요. 친구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그 친구네 집에 가면 누워서 놀고 자고 오고. 그런 추억 때문인지 그 냄새는 편안함으로 기억돼요. 제가 예전에 박물관에서 일할 때 발굴조사에 잠시 참여한 적이 있어요. 발굴조사 초기 단계에는 산 전체가 아니라 유적이 있을 수 있는 일부 구역을 먼저 조사를 하고 무언가 발견하면 구역을 넓히는데요. 마침 제가 간 날 포크레인 작업이 있었는데 포크레인이 흙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땅에서 확 올라오는 냄새가 있어요. 땅 속의 나무와 식물 뿌리가 뒤엉켜 올라오면서 흙의 신선함과 잘려나간 뿌리들에서 나오는 냄새였어요. 그 냄새와 장면에 충격을 받았던 게 잊혀지지 않아요. 숲을 산책할 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거든요. 숲을 파헤쳐야 맡을 수 있는 생명의 냄새거든요. 발굴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무사 안녕을 기원하면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요, 그 장면을 보면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이렇게 흙을 파내는데 토지신이 노여워하지 않길 바라는 인간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 거름이 되어 땅속 생명체들에게 든든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던 땅의 기운, 에너지가 냄새와 함께 공중에 흩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위대한 흙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생태계를 만들겠지만, 한 꺼번에 거대한 양의 흙을 파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 시키면, 그 흙 속에 유기체들이 오랜 시간 자기들이 만들어 둔 공간이 한 순간 사라지는 거잖아요. 포크레인 작업이 많지는 않지만 여튼 그 때 자연이 개발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어요. 단기 알바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발굴과정은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환경에 대한 관점이 생긴 지금 그 때 일을 돌아보면 여러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나름 서울 근교의 경기도였고 한창 개발 바람이 불던 때라 여기 저기 발굴조사하고 유적지가 아니면 마구 짓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그곳은 개발되어야만 하는 곳이었을까란 생각은 그 후 한 참이 흘러 들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거대하게 뻗어나갔네요. 제가 작은 이야기도 거창하게 확장하는 재주가 있답니다. ^^ 유우야가 땀냄새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피식 웃으면서 그 부분을 읽었는데요. 왜냐면, 진짜 부끄러운데 저는 제 땀냄새가 좋아요.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엄마랑 여동생은 저의 땀냄새를 안 좋아해요. 하하하. 우선 저는 땀이 많이 나는 편이 아니고요. 자기애가 강해서 그런가 저는 저의 땀냄새가 싫지 않아요. 딱 한 번 정말 싫었던 적은 이과수 폭포를 당일로 다녀와야 해서 8시간을 내내 더위 속에 걸어서 다녔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평소의 땀냄새가 아니라 쉰내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땀에 쩔면 이런 냄새가 나에게도 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날의 땀냄새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앗, 좀 더러운 얘기였죠. ^^ 또 하나 생각났어요. 제가 청소년들 교육을 할 때, 사춘기 청소년들이 내뿜는 냄새가 있거든요. 진짜............ 그 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땀냄새와 호르몬을 뿜어 내며 나는 그 성장의 냄새. 이건 마치 전쟁같은 냄새랍니다. 나만의 냄새를 만들기 위해 한창 자신의 존재를 냄새로 드러내려는 욕망같은 분출이랄까. 청소년 그룹들 마다 풍기는 냄새가 다른데 유독 자신들의 성장을 냄새로 강렬하게 남기는 그룹들이 있어서 수업 시간 내내 숨을 골라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냄새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 한창 더 쓸 수도 있겠어요. 오늘 꽤 피곤해서 누워있다가 답장하는 건데, 글 쓰다보니 또 재미있어서 글이 길어졌어요. 유우야의 다음 편지는 새로운 공간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사는 집보다 좀더 좋은 집으로 가게 되었고 낯선 동네다 보니 긴장도 되고 설레고 마음이 아주 복잡합니다. 전세 사기 안 당하고 무사히 이사하고 새로운 터전에서 다시 일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행운을 빌어주세요. 긴 하루 유우야에게 편지를 보내며 마칩니다. 참, 오늘 출근길에 개나리가 핀 걸 봤어요. 진짜 이제 봄인 것 같아요. 그럼 이만.. 갈토 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30
  • [경칩 편지 : 토토와 가로] 이 슬픔 또한 나의 일부인 것을요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가로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때 매일 다니던 등굣길에는 개나리 꽃이 펼쳐진 언덕이 있었어요. 작고 귀여운 것들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노란 개나리 꽃이 길게 늘어뜨려진 꽃 터널을 지나 걸어내려가면 봄의 생명력이 풍성하게 느껴졌어요. 싱그러운 봄 기운이 상쾌한 아침, 이 길을 지날 때 내가 ‘아, 살아있다’는 감각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어요. 그러면 뜨거운 눈물이 차올라서 순간 그 길이 뿌옇게 흐려졌어요.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꽃망울들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몸에 닿는 포근한 햇살과 바람이 이 맘 때쯤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존재와의 추억이 떠오르게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학교에 갔어요. 중학교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어느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창가쪽 뒷줄에 앉아 교과서로 슬쩍 가린 소설책을 몰래 읽던 저를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어요. 앗, 들켰구나 하는 생각에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밖으로 따라 나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들려온 것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었어요. 그 뒤로 봄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연상시켜요. 3월, 내가 태어난 날을 함부로 축하하는 것도 어찌나 미안하던지.. 생일이면 꽁꽁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겨우내 기다렸던 봄이 반갑지 않게 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오랫동안 봄 날엔 늘 마음이 저릿저릿해요. 언제쯤 마음 놓고 이 따스함을 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이 슬픔 또한 나의 일부인 것을요! 눈물로 등교하던 내면의 아이를 매년 봄날이 되면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수밖에요. 오랜만에 읽는 가로의 편지에 마음이 복잡했어요. 궁금했던 소식에 반가운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허탈한 마음도 있었어요. 펜팔을 통해 내 안에는 상대방으로부터 배려받고 싶었던 마음,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마음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지에 적어내린 진솔한 이야기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발견과 회복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감히 가로의 마음도 나와 일치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네요. 가로가 제 마음에 ‘저도, 그렇고 말고요’ 라고 환하게 답해줄 것 같긴하지만.. 가로만의 펜팔에 대한 기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번 편지에는 조금 더 솔직한 나의 이야기로 용기를 내보고 싶었어요. 사실 가로의 편지를 읽을 때면 나와 닮은 구석을 꽤 많이 발견하곤 해요! 하나씩 나열하자면 한 문장 한 문장 저도 참 할말이 많은데요. 너무 주책맞게 하나씩 ‘저도 그래요! 저도요!’ 라고 하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공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것 같아 조금 자제하려고 해요. 누구나 저마다의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 주머니가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 상대를 훨씬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사뭇 진지한 이야기 같아서 상대가 머쓱할까봐, 행여 분위기가 가라앉을까봐 조바심 나는 마음에 그런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기 보단 유쾌한 이야기들로 산뜻한 분위기를 갖는데에만 애를 쓰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사실 펜팔을 통해서 그 주머니를 하나씩 꺼내보고 싶었는데 가로에게 잘 보이고만 싶었는지 동화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만 써내려가진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이 좋아지는 편지를 쓰고 싶다는 욕심에 행복하고 따스한 것들만 찾으려고 했던 애쓰는 마음이 있지는 않았나하고 살펴보게되었어요. 이런 마음이 혹시나 편지를 시작하는 것을 어렵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가로에게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요? 몇일 전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어요. 툭 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 방에서 나는 많이 힘들었나보더라고요. 가로의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나에겐 왜 독립이 절실했는지, 살기 위해서 왜 떠나야만했는지 하나둘씩 기억이 돌아왔어요. 누군가를 떠올리면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몰래 붉어지는 매일을 숨기면서 살았던 방안에서의 날들을 뒤로하고 살기 위해서 집을 떠나야했던 것 같아요. 울적한 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날들이요. 그 모습들이 나에겐 꺼내기에 창피한 것으로 남아있었어요. 친근한 모습으로만 비춰지길 바라는 마음에 내 안의 이런 모습은 부정하고 싶었나봐요. 요즘은 주변에 소중한 이들에게 조금씩 꺼내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이런 나를 얼마든지 사랑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가는 연습인 것 같아요. 자연에 가까이 있는 시간에 위로받았던 것도 그 이유일지 모르겠어요. 가로의 말대로 자연은 거짓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존재 그대로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니까요. 가로의 솔직한 마음들이 담긴 편지를 (여러번 곱씹으며) 읽으면 기다리며 섭섭했던 마음이 신기한 형태로 변화되는 것을 알게되요.. 새로 이사간 공간에 만족하며 지내는 것 같아서 시장이 머릿속에 그려질만큼 신나게 설명해주는 가로가 귀엽고 행복해보여서 흐뭇하기도, 혼자이지만 따뜻하고 건강한 끼니를 대접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라는 말이 마음에 쓰여 잠시 그 문장에 머무르기도 했어요.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편지에 담아주는 가로에게 고마운 마음도 느꼈어요. 마음이 무거운 날엔 몸을 움직이며 활기를 되찾는 가로가 혼자 살이 안에서도 나만의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주로 어떤 음식을 해먹나요? 가로가 채소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씨앗보물상자를 열어 가로가 심어보고 싶은 것들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어떤 채소를 좋아하나요? 초록생명들에 이름을 지어주는 가로의 모습에도 저는 피식 웃음이 났답니다. 믿지 않겠지만 저도요.. 저도 그런적이 있거든요! 든든한 동반식물들이 생겼다니 저도 기뻐요. 생명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있나봐요. 너를 살게한다는 것은 곧 나를 살게하는 일이 되고, 그 돌봄의 에너지는 우리 모두를 살게하니까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혼자서 기대하고 상처받고..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거에요.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음이 한 없이 감사한 일이다가도 어느 날은 흔적도 없이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어요. 가로의 말처럼 사랑의 방식이 누구나 다르듯이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닐지 몰라요. 혹시 식물들은 우리에게 그런 말을 속삭이고 싶은 건 아닐까요? 조금 더 자세히 서로를 바라보라고, 그리고 상대의 눈빛에 귀기울이라고. 혹시 흙이 메마른건 아닌지 보드랍게 조심히 만져보라고. 가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애정과 관심을 더 많이 보내겠어요! 펜팔 짝꿍을 매칭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먼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났던 분이 가로였거든요. 쑥스럽지만 펜팔을 시작하던 저의 초심을 고백해봅니다. 어느새 이것 저것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들이 생겨났지만, 사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시작을 되돌아보네요. 2월 회동에 가로와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펜팔친구들에게도 많은 아쉬움이었을거에요. 다음 지리산에서의 만남이 더욱 기대가 되요! 우리 그때는 꼭 만나서 뜨거운 포옹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로가 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와주면 좋겠어요. 우리가 편지로 나눈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 만난 펜팔러들과도 내적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다른 펜팔 짝꿍들과 편지 구절을 함께 읽던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가로의 쓰레기더미가 말을 건네와주었다던 구절을 골랐답니다. 있는 그대로의 흔적들을 아름답게 바라봐주는 가로의 마음이 따뜻해서요. 그리고나서는 겨울나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산책을 나섰어요. 봄에 지리산에 온다면 꽃과 나무들이 온 팔을 벌려 가로를 환영할 거에요. 저도 그렇고요. 이번 편지는 저도 많이 늦었어요. 가로가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온 마음을 담아 토토 <토토에게> 토토 저에요 가로, 오늘 제가 우연하게 만난 문장을 토토에게 선물해줘도 될까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저는 오늘 이 문장을 보면서 어쩐지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제가 기다려왔던 누군가는 어쩌면, 저렇게 다짐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아니였을까 하고요. 문장처럼 누군가를, 잃어버린 무언가를 기다리더라도 내 자신과 주변을 가지런히, 내버리지 않고 돌보면서 따듯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해 낼 수 있는 힘을 잃지 않는 나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참 쉽게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좋아하기도 하고요. 왜그럴까요. 토토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웠을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괜찮으니까 상대방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어느날 문득 어떤 불행, 어떤 행복, 어떤 특별한 감정들을 동반한 기억들은 나를 평생동안 떠나지 않고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요. 그래서 이제는 이런 요상한 나를 떠나지도 않고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구나, 참 고맙구나 하고:)는 행복도 불행도 기꺼이 반겨주기로 했어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안녕,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건내는 거에요. 그러면 먼 과거도 뻔뻔하게 그래 안녕했다고 이야기해주더라구요. ‘아휴.. 못산다 못살아, 고맙다. 고마워 또 찾아와줘서!' ㅎㅎ 징글징글하지만 결국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관계들 있잖아요. 혹시 알아요? ㅎㅎ 고운정 미운정 다든 오랜 사이들. 제 이야기가 토토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 되었어요. 요새는 진지한 사람보다 좀 모자라고 웃긴 사람들이 편하고 좋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그런 편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많이 노력중이에요. ㅎㅎ 토토는 앞으로 과거를 어떻게 만나고 싶어요? PS. 토토가 주변에서 발견하는 다정하고 따듯하고 아름다운 반짝이는 소중한 시선들을 나눠줘서 그동안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는걸 알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 그리고 토토 ! 토토의 소중한 봄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26
  • [경칩 편지 : 덕복희와 산달] 나무의 눈을 본 적이 있나요?
    디자인.칩코 <나무의 눈동자를 닮은 산달에게> 산달! 제가 만약 요절한다면 사인은 과로일 거예요. 산달의 고질적인 습관이 미루기라면, 저는 절대 미루지 못하는 강박이 있답니다. 제가 눈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 할 일 리스트’를 적는 거예요. 아니 사실 아침까지도 미루지 못해 전날 밤에 적어두고 자요. 이런 저를 보고 소름끼쳐하는 친구들의 반응이 제법 익숙해요. 새벽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을 떨다가, 초저녁이 되면 충전할 때를 놓친 핸드폰처럼 푱 하고 전원이 나가듯 잠이 듭니다. 산달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은, 성질 급한 저에게 퍽 좋은 처방처럼 느껴져요. 제가 조금 더 느긋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요. 저는 산달이 하루를 통째로 편지를 쓰며 보내는 사람이라서 좋아요. 글을 날쌔게 쓰는 재능을 가진 사람과 편지를 나누고 싶었다면 쇼미더머니에 가서 즉흥랩을 듣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히히. 그러니 새끼 손가락을 걸고 하는 약속은 ‘늦지 않기’보다는 ‘느리고 빠른 서로를 수용하기’로 해요! 산달의 편지를 받은 날도 새벽에 눈을 떴어요.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집회를 가는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내려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잠시 미루었는데요. 그 틈에 메일함을 보니 고작 한 시간쯤 전에 산달의 편지가 도착해있는 거예요! 답신을 해주느라 늦은 잠을 청했을 산달이 고맙고 안쓰러우면서도, 또 겨우 몇 시간 뒤에 무등산으로 간다니 한번 더 고맙고 안쓰러웠어요. 저는 불가피한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는데… 갔더라면 반가운 얼굴을 만났겠다 싶어 아쉬움도 크고요. 잘 다녀왔나요? 그리고 무탈히 돌아갔나요? 집에 가서 미뤄둔 잠을 푹 잤기를 바라요. 저도 2월 회동을 오랫동안 곱씹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웠거든요. 어설프게 준비한 자리였는데도 다들 따뜻하게 웃어주고, 뒷정리도 손을 보태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동네방네 남산을 뛰다니며 사람들에게 한 입씩 맛보게 해주는 산달을 상상해보니 웃음이 나네요. 전 산달을 첫눈에 딱 알아봤답니다! 꽃무늬 양말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예요. 산달의 우표 그림과 꼭 닮은 사람은 한명 뿐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산달과는 어째 눈을 마주치기가 쑥쓰럽더라고요. 그날 수상하게 자꾸 관자놀이로 산달을 흘겨보던 사람을 목격했다면 그게 저라고 여겨주세요. 산달! 새삼스럽지만, 제가 산달의 편지에 얼마나 감동하는지 말했던가요? 산달의 편지를 읽으면 꼭 산달의 머릿속을 산책한 듯해요. 사랑과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산달의 사유들이 들풀처럼 펼쳐져요. 입을 가로막힌 생명들이 충분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세벳돈 봉투에 적힌 마음에 눈물짓고, 왜 저런 옷을 입는지 이해하려고 ‘우리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추하고 날 것의 존재들이 세상을 바꿨다고 말하는… 그 문장에서 저는 ‘그름’을 ‘미움’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느껴요. 이건 제가 아침 산책마다 숲에서 배우는 마음이거든요. 특히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세심한 흔적들은 꼭 정오의 햇살 같아요. 산달에게 존경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제가 꼭 지난 편지에서 거짓말을 부려놓은 양 부끄럽기도 하고요. 한편 산달의 편지엔 꼭 산달의 아픔이 함께 있어서 뭉클해요. ‘오히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것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은 돌에 새긴 것처럼 단단하게 느껴져요. 고민을 거듭할 적마다 단단해졌을 거예요. “그래서? 그 괴로움을 넘어서 넌 어쩜 누군가의 아픔에 존경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됐어?”라는 되물음이 남아요. 저도 그 선물을 돌려주고 싶어서 그래요. 아프고 무가치한 존재들이 세상을 바꾸는 신화가 누군들 궁금하지 않겠어요? 산달이 매일 보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어떤 기획을 주로 하나요?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산달이 가장 좋아하는 하루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떤 날씨와 만남과 음식과 함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요? 전 산달이 왜 기후운동을 하게됐는지도 무척 궁금해요. 산달은 아주 어릴적부터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니면 벼락을 맞은 듯이 산달의 세상이 바뀌었던 건지도요. 이번 경칩의 주제는 ‘내가 잃은 초심’이에요. 산달이 기억하는 ‘처음’을 이야기 하다보면, 다른 질문에도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전 잃은 초심이 많은데 그게 상실로 느껴지는 게 없더라고요. 제가 볼 땐 또 다른 무언가로 초심이 채워진 느낌이에요. ‘잃은 초심’이 아니라 ‘변태한 초심’이랄까요! 제가 기억하는 처음의 저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눈을 갖고 싶어했어요. 핵발전소는 반대하고 싶은데 왜인지 잘 설명하고 싶고, 속치마를 안입고 외출했다고 밥상을 뒤엎던 아빠한테 한 마디 쏘아주고 싶고, 시골로 냅다 향한 게 왜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게 아닌지 해명하고 싶었거든요. 제 행동이 ‘옳지 않다’면 냉큼 바꾸고 싶었고요. 그런데 지금 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눈을 버리려고 애써요. 물론 내 안에 ‘저건 아니지!’하는 습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납득해요. ‘저것도 맞을지도 몰라’하고요. 하루는 제가 좋아하던 한 스님과 논둑길을 걸었어요. 스님은 띠풀을 손으로 훔치며 제게 ‘진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하고 물었어요. 저는 스님을 따라서 풀을 만지작대다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했는데요. 스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죠.’라고 하셨어요. 자연엔 정말이지 맞고 틀린 게 없어요. 우리 모꼬지 때 함께 나무를 만났잖아요. 나무는 마주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데, 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더라고요. 딱따구리는 암수가 육아를 함께 해요. 집도 같이 짓고 알도 같이 품어요. 그런데 동고비는 암수가 역할이 정확히 나뉘죠. 여자가 집짓고 알을 품는 동안, 남자는 보초를 서고 먹이를 구해다주어요. 딱따구리나 동고비 중 어느 한 쪽이 옳은 방식이라고 할 수 없어요. 각자의 방식이 있고, 방식에 따른 장단점이 있겠죠. 산달, 저는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대부분 아빠를 향한 것이었는데, 나중엔 아빠와 닮은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남자들은 죄다 미워했어요. 당시는 누가 툭 치면 꽉 깨물 준비를 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머리를 싹둑 잘랐는데 제가 너무 아빠를 닮은 거예요. 긴머리일 때는 몰랐는데 짧은 머리를 하니 아빠를 빼다 박아논 모양새였죠. 그러더니 공중 화장실에 가면 ‘여기 남자 화장실 아니에요!’하는 소릴 듣지 않나, 동네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와서 ‘여자에요 남자에요?’하고 묻기 시작했어요. 아빠를 본격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하자, 제가 아빠와 똑 닮아져버렸다니 얄궂은 아이러니죠. 남자로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남들이 저를 남자로 대하면 남자로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전 남자가 되기도 하더군요. 산달은 ‘한국에서 지정성별 남성으로 태어나 자란 저는 늘 제가 ‘속해 있는’ 집단의 해로움을 물려받았을 거에요. 괴롭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죠.’라고 말했잖아요. 저는 여성으로 태어난 제 안에도 그 해로움이 있음을 분명히 느껴요. 원래 여성과 남성이 칼로 자른 듯 나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건 해로움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옳고 그른 건 없으니까요. 나무의 눈을 본 적이 있나요? 전 나무의 형형한 눈동자가 마냥 신기했는데요. 이게 알고보니 나무가 스스로 아픈 자리를 치료한 흔적이었다고 해요. 아픔을 치유하고 나면 그곳에서 새로운 눈이 생기는 거죠. 산달의 편지가 제게 감동인 것은 아마 이런 이유일 거예요. ‘그름’을 ‘미움’으로 대하지 않듯이, 자신 안의 ‘해로움’ 앞에서 산달이 오래 서성인 흔적이 제겐 나무의 눈동자만큼 반짝거려요. 그 눈동자를 바로보고 ‘그건 해로움만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 제게 ‘옳고 그름이 없다니! 그건 분명히 존재해’라고 주장한다면, 그 말에조차 고개를 끄덕이길 바라요. ‘네 말이 맞아’라고 말하고 모두를 사랑해버리길 바라고요. 산달! 몸이 찌뿌둥할 땐 햇살을 좀 쐬면 어떤가요? 햇살의 영역은 언제나 옳고 그름을 넘어서니까요. 햇살을 오래 쐰 고양이의 몸에선 햇살 냄새가 나더군요. 다음 편지엔 햇살 냄새가 나는 산달의 하루를 담아줘도 근사하겠어요. 아, 앞서 나열한 질문 폭탄도 잊지 마시고요! 사실 어떤 내용이든 신이 날 거예요. 그럼 안녕히. 편지 하루 미뤄본 덕복희가 <목련을 닮은 복희에게> 복희! 오늘은 제 상태가 별로 좋지 않네요. 문장이 보기에 깔끔하거나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어요. 복희가 요절한다면 사인은 과로일 거라고 했죠. 그 문장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과 동지애를 동시에 느꼈어요. 전원이 나가듯 잠에 든다니요.. 저도 분에 맞지 않을 정도로 일복이 넘치거든요. 저는 왜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일을 떠안고서 괴로워하는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어요. 조금씩 일 사이에 틈을 만드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가야 하죠. 저번 편지에서도 말했다시피 저는 늘 편지를 쓰는 날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규칙이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 규칙을 어겨버렸어요. 하루 종일 신경 써야 하는 업무들과 공부, 모임 참여를 다 끝마치고서야 겨우 복희에게 줄 문장들을 고르고 있어요.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이번만은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는 점이 저를 슬프게 한답니다. 아, 그래서 이번 편지에는 봄볕을 담지 못할 것 같아요. 이틀 동안 집 안에만 있었거든요. 씻긴 씻었는데 어떤 냄새가 담길지 두렵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늘 그래왔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너무 많은 동아리에 참여하다가 동아리 축제 때 맡은 역할을 소홀히 해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었어요. 2학년 때는 학생회를 하면서 시험을 뒷전으로 하기도 했고요. 엄마 아빠와 선생님들은 늘 제게 “어느 하나에 차분히 집중할 수 있는 산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는 했지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참 고집이 센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어요. 감당하기 힘들 때가 되면 그제서야 일을 줄여나가기 시작하다가 금세 또 다른 일들을 찾아서 힘들어하는 일을 반복해요. 그런데 제가 체력은 또 좋아서 결국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내긴 해요. 그래서 습관이 바뀌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이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마음 먹었답니다. 무리하면서 몸이 상하는 것은 둘째치고, 하고싶었던 일들을 즐기면서 할 수가 없더라구요. 나름의 필요를 느끼면서 시작한 일들인데, 어느덧 임무를 수행하는 인공지능 기계장치처럼 일하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그리고 가장 절박한 이유가 있는데요.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이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처럼 무리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꼴이 되기도 하니까요. 친구들에게 진심이 담긴 사려깊은 말들이 아닌 효율적이고 차가운 말들을 건네는 저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써내려가고 있는 말들도 복희에게 고백이 아닌 일방적인 한탄이 될까 조심스러워요. 저는 제 삶의 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늘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고, 그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왔거든요. 저는 어디서나 늘 착한 아이였고, 저를 착하다고 해주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했어요. 착한데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서 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었어요. 늘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내고 하루라도 더 빨리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는데, 왜 나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지? 제 안의 공허함은 늘 배고프다고 소리쳤지만요. 결국 그런 마음이 해소되지 못한 저는 아직까지도 많은 일들을 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어요. 계속해서 더 많은 일들을 하기를 제 안의 어린아이가 바랬거든요. 이런 제 모습이 지금의 세상과 닮아 있다고도 느껴요.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생명을 갈아넣어 성장하기를 그칠줄 모르는 모습 말이에요. 누군가는 먹고 살려면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그게 어떤 희생을 대가로 치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없죠. 우리의 공동체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왜 상상하지 못하냐고 다그쳤는데, 정작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바보가 바로 여기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게 모두 하나의 과정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현실에 안주하고 적응하는 게으른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 마음은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더라구요. 세상은 잘난 어느 한 천재가 바꾸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여럿’이 바꾸니까요.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군대가 아니라 나팔이니까요. 그 마음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후운동을 할 수 있겠어요? 복희, 제가 이번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모를거에요. 복희가 하는 말들 하나하나가 제게 나무의 눈처럼 느껴졌거든요. 제게 앞으로 생겨날 나무의 눈들이 아주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리저리 떠들고 있으니까요. 마치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어요. 복희의 문장들은 제 ‘처음’을 되새기게 만들어주었거든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으로 모두를 품어야겠다는 ‘첫 마음’ 말이에요.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에요. 지치고 때묻은 저의 온 마음들이 씻겨져요. 맞아요. 저는 누가 어떤 말들을 하든, 그게 최소한 그 사람에게는 진실일 거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이의 의견도 귀하게 들으려고 했고, 그들의 진심을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여름방학에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었답니다. 그때만큼 세상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책에는 고기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끔찍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거든요. 저는 이전에는 여태껏 한 번도 내가 먹는 고기들에 대해서 질문한 적이 없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선한 마음만 가지고는 이 죽음을 멈출 수 없겠구나.” 사랑을 말하며 죽음을 외면하던 이들이 참 미웠어요. 그들이 말하는 사랑만 가지고 세상을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제가 외치는 ‘사랑’에 누락된 존재들이 없는지 강박적으로 묻기 시작했어요. 동물의 죽음에서 시작된 부정의에 대한 감각을 이내 곧 여성들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고, 장애인들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여성운동과 “모든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는 동물해방운동,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자는 없다. 단지 듣지 않으려고 해서 들리지 않게 된 존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장애운동의 구호들이 다르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차에 만난 기후운동은 그 모든 존재들이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정치적인 존재가 되기를 말하는 운동이었어요. 모두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운동이 기후운동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렇게 어쩌다보니까 저는 기후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복희. 하나만 해도 힘들어죽겠는데,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아우르려는 시도를 하니 얼마나 가랑이가 찢어졌겠어요. 가장 괴로운 것은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수많은 죽음과 부조리와 슬픔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모든 곳에 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감당해야만 했어요. 복희, 그건 하나하나의 죽음들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었어요. 하나하나의 삶들을 가슴에 새기는 일이었어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학살을 방관하는 일이었어요. 여전히 모른 채하고 부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요. 하지만 복희, 예전에는 그들이 참 미웠는데요. 이제는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맥락과 아픔들을 이제는 상상해보려고 해요. 심지어 학살을 가장 앞서서 자행하는 사람들도요.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무한 번의 선택을 앞두고 있는걸요. 그저 그들의 선택을 함께 할 수 있는 제가 되길 바래요. “그들을 바꾸기 보다는 그들의 세계를 바꾸겠다는” 다짐을 되새겨보아요. 그리고 그 방법은 복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을 사랑해버리는 것일 거에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네가 너라서 좋아”라고 말하면서 매일 천천히, 하나씩, 조금씩 말이에요. 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제 자러가야겠어요. 저부터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겠어요. 저를 사랑하는 일이 곧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요.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저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아빠의 눈빛이 마음에 걸려요. 내일은 바깥 공기도 햇살도 좀 쐬어야겠어요. 지리산엔 꽃들이 피었나요? 여기엔 벌써 목련이 활짝 피었어요! 어떤 환경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식물들이 참 경이롭고 존경스러워요.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요. 복희, 우리도 그렇게 피어난 꽃들이겠죠? 늦잠 자러 간 산달이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24
  • [경칩 편지 : 참새와 돌] 어떻게 초심을 건넜고, 무엇을 만났나요?
    디자인.칩코 <경칩편지, 돌에게> 돌, 어제까지만 해도 노란 방울같았던 산수유 꽃이 오늘은 활짝 핀 걸 봤어요. 새 계절이 오네요. 차분히 잘 나고 있나요? 우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무를 찾기 위해 가지끝만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 보았던 서울 회동이 벌써 일주일 전이네요. 여러모로 서툴었던 진행에도 서울 펜팔 친구들의 너무 따뜻하게도 함께 도와주어서 긴장되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 믿고, 의지할 수 있었어요. 참 고마워요. 돌의 편지를 보아하니 저를 아직 못찾은 것 같아서 그것도 마음이 놓이고요. 하하. 지리산에서 만나게 되는 날에는 모두가 서로의 정체를 알고, 더 속 시원하게 얘기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돌의 우수의 편지를 받고, 참 고마웠어요. 마치 돌이 제가 편지에 모아둔 문장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소중하게 어루만지는 느낌이에요. 내 말이 당신에게 닿은 덕분에 나 혼자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의미와 가치들을 더 찾아볼 수 있었어요. 제 문장들을 바라봐주어서 고마워요. 편지에서 그 바라봄의 온기가 느껴져서, 이미 돌이 자신이 말한 우아한 사람을 닮았다고 느꼈어요. 사랑과 환대, 위안을 주는 건 이런 느낌이겠구나 했지요. 돌의 글을 보면서 저도 우아함을 연습해볼게요. 그렇지만 사실, 요새 저는 조금은 조급하고, 조금은 무력함을 느껴요. 우아해지기가 쉽지 않아요.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했다는 소식, 지리산에도 정령치 산악열차 공사 시작일이 정해지고, 구례의 케이블카 사업도 손쓸 도리없이 그들만의 정치로 정해지는 듯한 모양새이고, 흑산도 공항, 제주 비자림로 등등 어디서부터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너무 많은 일들이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지고 있네요. 저는 여전히 지리산이 내어준 품 덕분에 산수유 꽃과 매화 꽃이 피어나는 걸 보고, 떼지어 날아가는 참새들이 더이상 동그랗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나도 따라 둘레길을 쏘다니다가 소나무 향기를 가득히 들이마시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섬주섬 주워와 방을 덥히는 안온한 일상을 살며 몸과 마음을 지켜가고 있어요. 다들 산과 바다에게 한 번쯤 위로받고, 고마웠던 순간이 있을텐데요. 또 고마운만큼 잘 해주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일텐데요. 도시에서도 꽃이 피면 기뻐서 구경가고, 우연히 길냥이를 마주치면 귀여움에 관심이 가잖아요. 아니면 사람들은 이제 돈에게 더 고마움을 많이 느껴서 그런걸까요? 저도 배부르고, 등 따신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돈 참 좋아하는데요. 하하. 지금 이 지경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나부터가 미워보이곤 해요. “언제까지 받기만 하고 살래?”하는 마음이죠. 활동가로 살아가는 돌은 좀 어떤가요? 활동가라는 자리와 역할은 돌을 더 가볍게 하나요 혹은 더 무겁게 하나요? ‘내가 잃어버린 초심’은 어쩌면 ‘지키고 싶었던 마음’일거에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지는 마음은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후로 펼쳐지는 일들은 주로 예상밖의 것들이라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요. 저한테는 채식이 그랬어요. 처음 공장식 축산업의 과정을 영상으로 보았을 때는 너무 적나라한 폭력장면과 공포에 떠는 소,돼지,닭들의 눈빛과 몸짓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우리 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누구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 이상 ‘절대 먹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분하고, 조급해지고, 무력했어요. 무엇과도 타협하기 싫었고, 일상이 투쟁이었어요. 돌이 언젠가 편지에 적었던 딱 그 문장이요. 지금도 저는 비건이에요. 그런데 처음과는 분명 다른 마음이에요. 무엇이, 어떻게, 왜 달라졌는지는 아직 정리가 안되었지만 처음과 달라진 지금의 나를 ‘초심을 잃었다’보다 ‘초심을 건넌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아니 건너는 중이라고요. 이 쯤에서 초심의 내가 ‘비건’을 다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주위 스승들에게 한 번 더 지혜를 구하고, 의지하고 싶네요. “어떻게 초심을 건너가고 있고, 그 길에서 당신은 무엇을 만났나요?” 그럼 나는 또 그들 덕분에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겠죠! 돌에게는 어떤 초심이 있었을지, 초심으로부터 멀어진 발걸음은 어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돌의 이야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짹짹! 2023.3.5 참새로부터 <참새에게, 경칩의 편지> 안녕하세요 참새, 돌이에요. 며칠 전까지 한껏 봄이 왔구나 하며 외투를 바꿔 입었는데요. 어제 오늘은 꽃샘추위의 시간이에요. 그렇지만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햇빛의 따스함이 봄을 알려주어요. 얼굴이 그새 좀 탄 것도 같고, 대충 걸쳐도 양달에 몸을 내밀면 따뜻해요. 참새의 초심을 들으며 저 역시 ‘고기를 먹지 않겠어’라고 다짐한 순간이 생각나요. 다큐에서 고통을 느끼는 동물들을 봤고 죄책감에 채식을 선언했어요. 학교에서는 급식이 따로 없었고 몇 달쯤 하다 그만 두었고요. 내 선택이 곧 내 정체성이라 느끼던 나이에 다시 채식을 시작했어요. 지금으로부터 일년쯤 전 비질을 다녀왔는데, 그 돼지들의 얼굴을 보고 기억한 순간부터 비건이 되었고요. 다시 돌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눈을 마주한 순간이었고, 트럭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고, 트럭이 공장 안으로 출발한 후에는 도로 너머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저는 금방 다시 상품으로만 돼지를 만날 수 있는 도시 한 중간으로 돌아왔어요. 그 잔상을 지우지 않고 곱씹었어요.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만큼 더 들으려고 했고, 그중에는 생추어리나 닭과 사는 이의 이야기도 있었고, 또 다른 이의 비질 소식들도 있었어요. 사진, 글, 말을 열심히 듣고자 했고 저에게 주어진 장소를 최대한 활용해 글을 썼어요. 동물을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사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었어요. 그와중에 저는 제 가장 주변의 관계부터 경계하고 날카로워졌고요. 그런 감각이 반복되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즈음 *“근데 채식에 몰두할수록 동물을 먹지 않으려는 노력과 시도가 성공적일수록 내 일상에서 어떤 존재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횟수는 줄어든다. ‘고기'를 동물로 인식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소비재의 변경이 곧 살아있는 존재로 동물을 마주하는 기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도 했었네요. 그런가봐요. 생명을 곁에 두고 같이 살아가야, 그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유지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아요.도시에 사는 건, 지키고 싶은 것들을 멀리서 보고 말하는 일 같거든요. 제가 잃은 초심은 이 지점에 있어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 사회를 인정하기보다 부정하고 저항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어요. 사람이 죽고, 나무가 잘리고, 돈을 이유로 대화조차 할 수 없이 팽개쳐진 현장에 찾아갔고, 그 옆을 지켰고, 목소리 높여 외치며 자랐어요. 연결과 공생, 따뜻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관계 속에 있었고 그게 당연했고, 그래서 이것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이것이 파괴되는 현장들, 부정의한 것을 보고 목소리 내는 경험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말하는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랄 게 딱히 없어요. 거대한 충격보다는 작은 무너짐을 여러 번 쌓아왔어요. 가장 따뜻하게 자라왔음에도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자본의 원리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할 법한 말이 어느새 제 안에도 들어와 있었나봐요. 그래서 폭력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그것 없이 일상의 어느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 대면할 때, 스스로가 부끄러워질만큼 다시 깨달아요. 그럴 때 제가 잃은 어떤 감각을 상기해요. 그래서 저한테 초심은, 어떤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 번 마음을 세우고, 얼굴을 마주하고, 부끄러움을 깨달으면 그 순간으로부터 얼마 간 그 초심으로 살아가요. 생명으로 살 수 있어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저의 의지박약을 탓하기보다,, 3일마다 작심해야겠다고 다짐하려고요.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해, 더 자주 다른 타자를 기꺼이 경험하고 연결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아프고 같이 건너가고 싶어요. 그래서 참새가 건네준 말들이 더 소중하고 감사해요. 무력함이 무력함을 끝나지 않게, 같이 힘내고 싶어요. 우아해지기까지는 어렵더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을 지키는 일을 같이 할게요. 멀리서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잘 듣는 일이라고 혼자 짐작해보아요. 이번 편지에서 나눠준 소식들 덕분에 저도 얼마 간 놓치고 있던 지리산 주변의, 설악산에서의, 제주와 흑산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보았어요. 어려움을 나눠주어 고마워요 참새. 더 잘 들을게요. 돌처럼 듬직하고 단단하게 여기에 있을게요, 데구르르. 경칩의 끝자락에서, 돌 씀. 202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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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1
  • [경칩 편지 : 유우야와 갈토] 그냥 나를 받아들이기로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내일이 딱 경칩이네요~ 경칩의 뜻대로 겨울잠을 깨지 않고서는 못 배길 봄날의 햇살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갈토가 우아한 당신으로 뽑아 준 ‘초록이’ 사진을 왜가리 바라볼 때처럼 한참 바라봤어요. 갈토가 교감했던 그 때가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저도 그날의 갈토가 된 기분이었어요. 사진을 뚫고 나오는 ‘멋 내지 않은 우아함’이 더 근사해 보이는 것이, 지난 회동에서 제가 본 갈토의 모습과도 비슷했답니다. 몸은 회복되었나요? 지난 편지 초입부에 적어 준 갈토의 마음들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동하고, 건강함과 단조로운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면서 겸허해져요. 저도 아팠던 때 똑같은 감정을 느낀지라 더 와닿았어요. 참, 이사는 어떻게 돼 가고 계신가요?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니 묻고 싶은 안부가 늘었네요! 갈토는 유우야가 도무지 누군지 모르겠다 하셨지만, 저는 아픈 갈토를 보면서 내 짝꿍 아파서 어쩌나 걱정도 하고, ‘유우야를 보러 왔는데 나만 들통났다’는 말에 웃겨서 내적 호들갑을 떨기도 했어요. 혼자만 웃고 싶었던 건 아닌데… 2월 회동에서는 서로 비밀인 채로 만나는 것이라고 좀 더 확실한 설명을 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어설프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ㅠㅠ 그리고 갈토가 자랑하고 싶은 만큼 좋은 짝꿍의 편지 구절에서 제가 왜 갈토의 감사 일기 문단을 선택했는지 궁금해하셨지요. 사실 자랑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너무 많았는데 고른 문단마다 한 문장씩 갈토의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게 조심스러워서, 제외하고 고르다 보니 첫 편지의 감사일기 문단이 나왔어요. 그런 구절들은 앞뒤 내용이랑 함께 읽어야 제 맛이 나서 뽑기가 주저되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그렇거든요. 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요. 제 이런저런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까지 오래 걸려요. 좋아졌지만 아직도 연습 중이랍니다. 문득 지하철에서 추억에 빠졌다가 눈물이 왈칵 해버린 날엔 숨을 곳도 없어요. 남들이 볼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느라 슬픈 추억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요,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 저를 툭 치고 가버리면 뒤를 돌아보면서까지 째려봐요. 가끔은 소리를 지를 때도 있어요. 그러면 이런 걸로 화를 낸다며 제 자신을 혐오하게 돼요. 또 다들 웃지 않을 때 혼자 웃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럼 눈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민망해져요. 그 순간, 다른 사람의 감정은 다 옳고 저만 틀린 사람이 돼요. 모두가 제 감정이 틀렸다고 말해도 제자신만큼은 저를 이해해주었다면 나만 틀린 사람이 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게 잃어버린 초심 아닐까요? 처음부터 제 감정들을 혐오하진 않았거든요. 아직도 기억나요. 다른 감정은 모르겠지만 분노의 감정만큼은 초등학생 때 느껴보고 정말 신비로웠어요. 아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부글부글 거리고 얼굴이 굳어버리는 것이 화가 난거구나, 나 지금 화가 난 게 맞다! 하고요. (왜 화가 났는지는 조금 더 나중에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아직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전에는 혐오하고 우울해지면서 상황이 끝났지만, 3년 전에 명상을 배운 후로는 창피해하는 모습을 이해해주고 있어요. 혐오하는 자신을 토닥여 주기도 하고요! 남들 진지한데 혼자 웃어버리면 난 왜 웃음이 났는가 끝까지 추궁해봐요. 그럼 저를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역시 저도 오래 살아야겠어요.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해석 능력치도 올라가게 될 것 같아요! 그럼 아마 갈토의 말을 빌려서, 갈토가 10년만에 알게 된 감정을, 다음에는 5년만에, 그 다음에는 더 빨리 알게 되지 않을까요? 갈토의 물음에 솔직한 답변을 하고 싶어서 고심하다 보면, 알게 되는 제 이야기가 많아서 고마워요. 이번에도 왜 그 글을 선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닫고 기뻤어요. 갈토에게 참 고맙습니다. 더 물어봐 달라는 뜻으로 오해는 마세요.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스스로가 치유되어 용기를 쌓아가는 느낌이에요. 편지 마칠 때가 되니 갈토의 잃어버린 초심이 점점 더 궁금해져요. 이사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지리산의 봄바람처럼 시원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준비하시길 바라요! 건강하세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유우야 안녕하세요? 저만 들통이 나서 아주아주 부끄럽고 심술이 납니다. ^^ 알고 갔으면 연기를 좀더 할 수 있었을 텐데. 몸이 아파서 정신도 없고 상황 판단이 잘 안되었습니다. 내 짝꿍을 홀로 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 몸을 이끌고 갔는데 나만 들켰어!!! ㅋㅋㅋ 전 유우야가 누굴까 추측하며 예상되는 분을 좁혔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겠거니 생각하며 글을 쓰기로 했는데, 글을 읽어보면 또 그 분이 아닌 것 같고. 사월까지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프로젝트는 놓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귀한 경험인 것 같아요. 낯선이에게 편지를 받고, 편지를 쓰는 설렘과 감동을 느끼는 소재는 영화에서도 다뤄지기도 하고. 뭐랄까 고전적 의사소통과 교감의 방법인데, 어느 순간 우리는 이러한 노력은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요. 저는 소설, 영화, 드라마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이 셋의 공통점은 ‘이야기’인데요. 저는 이야기가 좋아요. 이야기를 통해 감동받고, 나를 돌아보고, 치유되기도 하고. 근데 편지를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또 다르더라고요. 소설, 영화, 드라마보기는 수동적이잖아요. 비록 내가 시간을 내야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고 받아드리면 되는데, 편지를 주고 받는 건 내가 능동적으로 글을 쓰고 생산해내는 작업이고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의 경험을 반추해보기도 하고 정리할 수도 있어서 교감이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물론 무언가 숙제가 있다는게 부담은 되지만, 그 숙제를 끝낸 성취감과 그 보상으로 답장을 받는 것도 일상생활에 드문 소소한 행복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나를 칭찬해줘야지. ^^ 그리고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유우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누군지 모르니 말 못했어요. 유우야의 편지 무지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번 주제가 잃어버린 초심이군요. 흠, 어려운 주제네요.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기분. ^^ 초심이라고 하니, 나에게 잃어버릴 초심이란게 있나 싶습니다. 초심은 나의 모습 중 일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처음 마음인 것 같은데 성격, 가치관이란게 정말 바꾸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변화되는 나를 포기하고 그냥 나를 받아드리기로 한 것 같아요. 그냥 초심을 안 만드는 거죠. 순간을 열심히 산다, 느리게 조금씩 내가 간절히 원하면 변하겠거니, 생존본능 차원에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저는 친구를 깊이 있게 소수로 사귀는 편이거든요. 제가 예전에 해외봉사활동을 갔을 때 A가 봉사활동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저에게 마지막 인사로 “나는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 때 제가 좀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면 봉사활동하면서 참 좋은 사람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 나와 친구 될 기회를 주지 않았거든요. 나를 둘러싼 나의 감정의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가 원하는 사람만 그 안에 들어오게 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잘 다가가지 않아요. 그 때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했을 때, 그 서운함이 느껴졌어요.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라고. 그 사람도 참 좋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알아갈 기회를 내 스스로 놓치고 후회했어요. 살면서 종종 선배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런 피드백을 받았어요. 넌 친한 사람한테는 다 줄 것처럼 구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갑다고. 그 경험을 한 후 내가 친구를 선택하지 않고, 나를 친구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자고 마음 먹었어요. 근데 참 사람이 변하기 어렵더라고요.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틈을 안 주는 거에요. 그럴 때마다 좀더 친구의 폭을 넓혀보자고 스스로에게 얘기해봤지만, 어느 순간 그냥 이게 내 성향인가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바꾸기 어렵고, 나의 소수의 친구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충만한 우정, 사랑을 주고 받고 있고, 가볍게 사람을 만나는데 소질이 없어요. “넌 너무 진지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래서 기운이 좀 빠져요. 관계를 중시하고 진지하게 맺는 건 저의 큰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할 바에는 외부인으로 두고, 내 사람들을 소중히 잘 챙기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는데 무슨 친구를 더 만드나 싶고. 하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나란 생각도 들어요.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거잖아요. 어렵다. 타고난 성격이라는 핑계로 초심을 잊고 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참, 신기한 건 오랫동안 저의 친구로 옆에 머물러주는 이들이 한결같이 진지한 사람들이에요. 끼리끼리 논다고. 근데 가끔 안 진지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가끔 가볍게 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저 욕심쟁이인가요? 결론은 초심은 없고 욕심쟁이였다. 이번 주제는 어렵게 느껴져서 답장을 써두고 여러 날 붙잡고 있었어요. 다시 써야 하나, 뭘 써야하나 고민하다 처음에 적은 글을 조금 수정해서 보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더니, 다시 추워지네요. 저는 3월 말에 이사를 하게 되어서 두루 두루 바쁜 나날들을 보낼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 갈토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16
  • [우수 편지 : 토토와 가로] 우아한 손끝을 가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요?
    디자인.칩코 <ㄱㅏ로에게> 오늘따라 책상에 앉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해야할 일이 있으면 적당한 때를 꽤나 오래도록 기다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이걸 ‘미룬다’라고 말하기도하죠 ^^;ㅎㅎ) 오늘 편지는 최대한 늦게까지 때를 기다린 편이에요. 오후엔 뒷산으로 산책하러 다녀왔어요. 돌아와서 보니 13km를 걸었더라구요. 몇 시간의 산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쌓인 설거지도 들여다봤다가 마당에 늘어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괜히 거실 바닥 청소도 하고, 영 진도가 잘 안나가는 소설책도 몇 십분째 붙잡고 앉아있었어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손과 발은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머릿속은 가로에게 무어라고 편지를 적을까!! 하는 생각들로 영감을 찾고 있었던 듯해요. 굽이굽이 꼬불꼬불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책상에 앉았습니다. 벌써 네번째 편지를 적고 있네요. 오늘은 우수의 촉촉한 기운을 담아 편지를 적어보아요.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절기를 맞이할 때 항상 펼쳐드는 책이 있어요. 지난 한 해 동안 이 책의 저자를 계절별로 만나면서 네번의 수업을 들었어요. 아름답다고만 감탄만하고 지나쳤던 자연의 모습들에서 의미를 배우게 되니 햇빛, 바람, 비, 나무, 꽃, 열매, 풀과 내가 더 연결되고 대화하는 것 같아 매 시간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달콤한 느낌으로 수업을 들었어요. 책 제목은 ‘때를 알다 해를 살다'에요! 계절과 절기의 현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리듬에 맞춰 사는 삶의 흐름을 배우는 공부였어요. 우수를 맞이하여 ‘우수절기의 의미는?'이란 부분을 딱 펼쳐봤어요. 우수는 ‘겨우내 꽁꽁 굳어있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시기’라고 적혀있네요. 뭉치고 닫혀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엇으로 풀어낼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는 “사랑하는 마음, 분별과 차별 없이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넉넉한 마음,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는 하나 된 마음, 모든 생명에게 빚지고 산다는 감사의 마음"이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해주어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밖에 나갈 일이 많이 줄었었어요. 자연스레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도 줄었고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 3월이 다가오니 봄을 준비해야할 일들이 생기더라구요. 겨울눈을 뿅 터뜨리고 나오는 꽃봉오리의 이름을 배우는 것, 잠자는 씨앗을 깨우고 이웃과 나누는 것, 올 한해 함께 농사지을 동지들을 만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 모두 혼자서 하기엔 너무 외로운 일이기에 요즘은 이불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자주 만날 일이 생겨요. 오랜만에 사람과 나누는 인사가 반갑기도 하지만 쭈뼛쭈뼛 왜 이렇게 어색할까요. 우수의 의미에 적힌 문장들을 곱씹으며 굳어있던 안면 근육을 풀기위해 입꼬리를 씰룩씰룩 움직여보았어요. 새 봄을 맞이하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요. 마지막 편지에는 이사소식을 알려주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닌지 소식이 없는 한 주동안 걱정이 됐어요. 그 사이 지난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며 어딘가에 혹시 힌트가 있지는 않을까? 하며 문장들 사이로 가로의 일상을 상상해보기도 했어요. 지난 편지에서 자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함께 살아가는 반려자로서 생각하는 가로의 문장들이 좋아서 여러번 읽어보게 됐어요. 편지는 다시 곱씹을때마다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와서 좋더라구요.. 우리가 흔하게 지나치는 무심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는 가로는 우수의 의미를 더 공감하며 읽어줄 것 같기도 해요. 쓰레기더미가 말을 걸어오는 것까지 알아채는 가로의 무한한 상상력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 요즘의 당신의 괄호()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가로의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전해요. 오늘의 주제는 ‘우아한 당신'이에요. 빙빙 돌고 돌아 책상 앞에 앉기까지 ‘우아한' 것을 찾으려고 눈을 계속 똥그랗게 뜨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이 사는 옆지기는 양말 한 켤레도 구김없이 가지런히 접어 서랍 속에 발뒤꿈치 귀퉁이를 맞혀놓은 듯이 꺼내기 쉽게 나란히 정리를 해요. 서랍 속의 우아함을 탄생시켜주는 사람이에요. 그에 반해 저는 길이도 색깔도 서로 다른 양말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짝짝이로 신고 후다닥 나가곤 해요. 둔감하고 털털한 편이라서 섬세한 손끝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주저없이 감동하는 편이죠. 제가 느끼는 우아한 손길에는 다정함이 묻어있는 것 같아요. 공중목욕탕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탈의를 마치고 할머니가 다정하게 손녀가 옷부터 속옷까지 가지런히 접어 옷장에 정리하는 것을 바라보며 기다려주시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어요. 할머니에게 배워서 알고 있다는 듯이 익숙하게 뿌듯한 표정으로 옷장에 가지런히 개어진 옷을 차곡차곡 집어넣는 모습이 귀여워서 눈길이 갔어요. 여섯살정도로 보이는 작은 어린이가 서투른 손길이지만 옷을 곱게 개는 과정을 묵묵히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시는 할머니의 마음과 몸짓이 참 다정하고 우아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목욕을 마친 할머니가 주름진 손가락으로 손녀의 머리를 다정스럽게 쓰다듬으면서 젖은 머리카락을 정성껏 말려주시는 모습도 참 따뜻했어요. 우아한 것들에는 조급함이 없어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양말 귀퉁이 하나를 접는 일도 미지근한 온도로 온 마음을 담아 느긋하게, 머리카락 한올을 만지는 일에도 살랑 살랑 봄바람이 귓가에 다가와 속삭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손끝에 마치 섬세하지만 솜털같이 보드랍고 포근한 감각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맛과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키트가 아니라 뭉근하게 오래 끓이는 수프처럼 건강한 재료들로 정성을 담아낸 가정식 요리를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것처럼요. 저도 나이가 들면 우아한 손끝을 가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요? 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는 일도, 가까운 친구와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작년에 떨어진 씨앗이 새싹이 되어 뾰록 하고 튀어나온 것을 보았을 때도 그 순간에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감사한 마음을 짓는 것을 연습해야겠지요. 우아한 몸짓을 지금부터 연습하다보면 할머니가 될 즈음엔 마침내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들의 흔적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던 지난 시간들에서 가로는 어떤 우아한 존재들과의 만남이 있었을지 궁금해져요.. 다음 편지에서 다시 만나요. p.s. 서울회동에 다른 일정이 겹쳐 참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게될까! 하는 궁금증과 설레는 마음에 기대를 갖고 있었던지라 그만큼 아쉬움도 커요. 서울에 도착하면 눈을 감고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해야겠어요!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내 숨이 가로의 숨과 맞닿길 바라면서! 그 순간 가로에게 평안한 마음이 깃들었으면 좋겠어요. 바쁜 일상 속에서 건강챙기는 것 잊지 말아요- -우수에 젖은 토토로부터 _()_ <토토에게> ㅌㅌ.. ㅗㅗ 저 ㄱ ㅏ로에요! 가로가 ㄱ ㅏ로가 되었네요. 가로에 왠지 틈이 생기니까 이상하게 그 사이로 따듯한 봄바람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토토. 오늘은 지리산 방랑단에게 솔직하게 제 상황과 상태를 전했어요. 제가 먼저 상황을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었더라면 같은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토토와 모두가 마음이 편안했을텐데, 그렇지 못했는데도 그런 저를 인내하고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사실은 그런 시간들이 너무 길어지면 지레 겁이 나서 도망가고 싶어 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해해준 모두와 다정한 토토 덕분에 다시 이렇게 편지를 쓸 힘이 생겼네요. 펜팔 모꼬지 초대장 속 지리산방랑단 친구들을 보면서 다들 너무 보고싶고 많이 아쉬웠어요. 누가 토토일까? 한 명 한명 들여다보았지만 사실 누가 토토인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ㅎ 다들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누가 토토여도 좋겠다 이런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모두가 토토일까 이런 상상도 했어요 :) 토토도 제가 많이 궁금했을 텐데 혼자서 외롭진 않았을까요.. 다들 짝꿍을 만나 즐거웠을 텐데 마음 한켠이 저도 속상한 건 사실이네요.. 다음 번 지리산을 방문할 때는 꼭 기필코 다른 일정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생각보다 제 편지가 늦어져서, 먼저 요즘의 제 근황을 찬찬히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우선 저는 벌써 이사를 한지 한 달하고 8일이 지났네요. 제가 이사한 지역은 청량리 종합시장 근처예요. 역에서 나와 시장을 지나쳐 오분정도 걸으면 제가 사는 곳이 나와요! 청량리 시장은 서울에서 두번째로 큰 재래시장이라고 해요. 정말 커요. 사실 이렇게 큰 시장을 와본 적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경동시장, 수산시장, 청과물 시장 모든게 모여져 있는데 처음에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데도 청량리라는 지역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 지역에 특성상 거주하는 분들이나 유동인구 평균 나이대가 꽤나 높은 것 같다고 느껴지는데 그런 풍경도 처음에는 익숙치가 않았어요. 그런데 요새는 시장의 매력이 푸욱 빠진 것 같아요. 뭐랄까 정신없이 바쁘고 모든게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와는 다른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잠깐을 지나치더라도 모두가 생생하게 활력이 넘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 모습을 느끼며 걸어가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즐겁더라고요. 저에게 남아있던 피로감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열정을 애써 만들어내지 않아도 기분좋은 에너지가 생겨나요. 저는 시장에서 파는 과일과 야채들이 너무 싸서 좋은 것 있죠ㅎㅎ 이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과일을 사먹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상상 그이상으로 싼대도 일주일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니. 충분히 아끼면서 건강하게 만족스러운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겠다라는 기쁨이 생기더라구요:) 저는 그 전에도 배달음식이나 외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정말 간단한 수준의 찬 음식들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 공간이 생긴 이후로는 매끼니를 따듯하게 요리해서 만들어 먹고 기록하는데 시간을 제일 많이 쏟게 되었어요. 나에게 따듯하고 맛있는 식사를 정성들여 대접했을 때 내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요리하는 행복을 알게 되어서 많이 기뻐요. 그래서 요새는 정말 토토같이 농부가 된 친구들이 부럽기도 해요. 도시에서도 채소를 길러서 요리를 해먹을 수 있을까 이번년도에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하고요. 3년 전부터 불쑥불쑥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감과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나 늘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는데 그 시간들을 청소와 요리로 회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몸을 바쁘게 움직이면 빠른 시간동안 기분을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집순이지만 집에서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리고 진짜 반려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벌써 초록생명들을 벌써 다섯친구나 생겻어요. 너무 작고 소중하고 예뻐서 볼때마다 미소가 나요. 친구들 이름은요 오늘, 내일, 마음, 호야, 박쥐예요! 이 친구들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매일 저녁부터 잠들기 전까지 다정하게 말을 건네와요. 참 신기하게도 식물들에게 많이 위로받는 것 같아요. 이렇게 조금씩 나를 돌보고 다른 무언가를 돌보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지 조금 알 수 있는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어요. 저번에 너무 추운 날 토토가 가꾸던 야채들을 걱정했던 마음이 무엇인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엇어요! 집의 온도뿐만 아니라 습도, 햇빛의 양, 바람의 정도, 물을 주는 주기, 정도 이 모든게 조금만 지나치거나 부족해도 식물들이 아픈게 보이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리고 식물마다 또 성향이 달라서 다른 성향에 맞춰서 돌봐주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도 당연히 같은 방법으로 식물들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반성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이 연장되었어요. 늘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의 방법으로, 그것이 정답인 것 처럼 모든 사람들을 대하고 기대하고 혼자서 상처받고 관계를 망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구요. 이제는 모든 관계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쓰고 긴장하고 참거나 버티는 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저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리산에서 토토와 친구들을 만날 때는 제가 모든 걸 툴툴 털고 정말 멋진 모습으로 마주하길 바래요! 입춘편지와 우수편지의 주제가 나의 전투복과 우아한 당신이였네요. 토토의 글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또 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은게 많은데 왠지 글을 쓰는데,, 또 한참 걸릴 것 같아서 저의 편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 토토에게 먼저 근황소식 먼저 보낼게요! 우아한 당신에게, 가로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13
  • [우수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세상을 바꾸는 추한 날것의 존재들
    디자인.칩코 <천하무적 기후운동가 산달에게> 산달! 오늘도 꽃이 수놓인 양말을 신고 나섰나요? 전 사람들이 꽃을 닮은 옷을 입는 게 참 귀엽게 느껴져요. 철쭉과 벚꽃만 남긴 도시에서조차, 사람들은 실은 무지하게 꽃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어느 부부가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도 아이 앞에선 말을 가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꽃 앞에서만큼은 그를 닮아 사랑스러워지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산달의 기후운동용 전투복은 성능이 굉장한 셈이군요. 산달에게 나눌 절복이 생긴다면 기꺼이 주고 싶어요. 방랑단 때 ‘유니클로’라 부르던 헌옷수거함 센터가 있는데, 그곳에 함께 쇼핑가도 좋겠어요. 꽃양말이 어울릴 절복을 잘 수소문해볼게요. 지난 편지에 산달이 저와 꼭 가까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잖아요. 입춘 편지를 보니 산달이 저와 엄청 닮은 듯이 느껴져요. 산달의 모든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읽었어요. 어떤 부분이 동감이느냐 물으면, 일일이 고르기 곤란할만큼이요. 도시의 쏟아지는 정보 이야기나, 독을 입고서도 끄떡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왜 그런 옷을 입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나무님을 소개시켜달라는 이야기! 나무님이라니! 저와 말습관이 닮아서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모든 존재에 존칭하기란 남들 앞에선 영 쑥쓰러워서 숨기거든요. 나중에 산달이 소개해주는 나무님들과 정중히 상견례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절복을 칼각으로 다려입고 나갈게요. 그리고 ‘어떤 옷을 입느냐는 선택과 의지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주어지거나 휩쓸리기 쉬운 종류의 것’이라고 했죠. 사랑조차도 그렇다고요. 산달의 답신이 늦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요. 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거죠. 그러니 다음에 또 늦더라도 사과하지 않기로 해요. 왜 편지가 늦었을까 상상해보고, 조금은 아쉬워하고, 늦게나마 도착한 편지를 읽고 배로 기뻐하는 시간을 제게 선물했다고 생각해요. 저를 궁금해해주는 산달이 고마웠어요. 이번 편지에 어떤 말을 실을까 고민했어요. 특히 왜 지리산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말하자면 한 통의 편지로는 부족할 거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걸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할 재주가 없는 까닭입니다. 미욱한 설명이 저를 오해하게 만들까봐 구구절절 덧붙이고서야 마음이 놓일 테니까요. (귀촌수다회를 일박이일로 잡는다면 덜 초조할텐데, 딱 이런 자리가 저를 골몰하게 만든답니다.) 어느 시간이 넉넉한 누군가가 ‘마음껏 헤매며 말해도 좋아!’라며 저를 기다려준다면 용기가 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산달의 소한 편지에 적힌 ‘기다림’이 바로 이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편지에 씩씩하게 써보려해요. 저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공부했어요. 대학을 마칠 쯤엔 주말농장과 광화문 광장을 자주 다니는, 짧은 머리의 채식주의자가 돼있었고요. 공부가 끝난 마당에 이제 운동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어쩐지 더 대단한 머시기가 돼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아하던 프랑스문학을 좇아 프랑스로 훌쩍 떠났습니다. 몇 년은 살 작정으로요. 프랑스에서 전 정신병자가 됐던 것 같아요. 토할 듯이 폭식을 반복했고 집에 혼자 틀어박힐 땐 환청이 들렸어요. 거리에 나서면 누군가 갑자기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고, 일이 마음대로 안풀릴 땐 군중 한복판이라도 괴성을 질러야 분이 삭히곤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인종차별이었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아직 테러가 터진 적 없다는 보기 드문 도시에 있었는데, 저에겐 나날이 테러였어요. 당연히 안전하다고 느끼던 공원에서, 마트에서, 강변에서, 집안에서, 학교에서 매일 갑자기 누군가가 욕이나 성희롱을 하고 지나갔어요. 무슨 좀비영화 같았어요. 방심할 틈도 없이 돌연 누군가 총을 뻥 쏘고 가버리는 기분. 그나마 마음을 열고 지내던 친구가 문득 낄낄거리며 인종차별을 하면 순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돼버린 듯한 기시감. 저처럼 편집증을 앓던 유학생끼리 글모임을 하며 버텼어요.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날것의 글을 쓰자는 의미로 ‘팬티를 벗어버리자!’가 모임의 슬로건이었죠. 유학생 친구들에게 ‘넌 망할 프랑스에 왜 왔어?’하고 물었어요. 저마다 이유가 달랐어요. 프랑스가 와인이 최고니까, 프랑스가 철학이 최고니까. 영화가, 건축이, 음악이, 베이킹이, 패션이, 요리가, 문학이… 다 최고니까. 정말 저 많은 분야에서 다 프랑스가 최고라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매일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이 프랑스에 쏟아져요. ‘망할 프랑스놈들 너넨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욕해주고 싶은데, 왜 오만한지 알만도 하더라고요. 그제야 세상이 요지경처럼 보였어요. 서울의 대학이 최고라니까 인천에서 서울로 꾸역꾸역 올라왔던 스무살의 저처럼, 서울이 교통이든 회사든 학교든 인프라든 다 최고라니까 사람들이 마구 모이잖아요. 서울의 집과 지하철은 스툴처럼 변하고 사람들은 옆 존재를 부리로 쪼고마는 공장식 축산 닭들처럼 쉽게 짜증을 내고 인색해요. 눈이 뻑뻑하도록 유튜브를 새벽까지 보거나 배달음식을 배에 쑤셔넣는 것으로 자학해요. 프랑스가 최고라니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마구 몰려오고 결국 사정은 같아요.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해요. 무시하고 동경하고 방자하고 비참해요. 죽어가요. 일 년만에 전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불어가능자라 하면 다들 부러워하는 곳으로. 그렇지만 귀국하고 단 한 번도 불어책을 들여다본 적 없는 실패한 유학생으로요. 그리곤 공동체와 에코페미니즘과 퍼머컬쳐 책들을 체할 듯이 뒤져보았어요.귀촌할 돈을 모으려고 농민권과 관련한 일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출퇴근 지옥철 탓인지 건강이 많이 악화됐어요. 장염, 위염, 역류성식도염, 만성비염, 방광염… 온갖 잔병을 다 달고 살다가 퇴사해버렸죠. 머리를 채우는 일은 그만 충분히 한 것 같았어요. 시골엔 아주 짧은 줄에 개를 묶어두는 이웃이 많아요. 그 개들과 함께 산책하면 대부분 허겁지겁 목줄을 당기면서 안 가본 곳을 딛어보고, 처음 맡는 냄새를 맡고, 나뭇가지를 와작와작 씹어요. 올드보이처럼 당신을 오래 가둔 놈을 찾아가서 족치는 게 아니고, 그분들이 자유로울 때 하고싶은 거라곤 이런 일이죠. 저도 퇴사하고 서울에 침이나 시원하게 내뱉고 귀촌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하자센터 옥상에서 정수리가 뜨거워지도록 직조를 하다가 낮잠을 잤어요. 낮에 해를 쐬는 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이젠 몸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식민주의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으려고 교섭을 시도했대요. 위스키와 보조금을 줄 테니 산과 강을 내놓으라고 한 거죠. 교섭은 성사되지 않았어요. 인디언들은 더 바랄 게 없는 이들이었고, 식민주의자들이 가진 것 중 인디언들이 탐낼 만한 건 무엇도 없었기 때문이라고요. 도시를 떠난 후 제 마음이 딱 이래요.도시엔 제가 탐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리산 품에서 저는 더 바랄 게 없음을 매순간 느껴요. 아, 지리산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공동체가 있어 선택한 곳이에요. 공동체와 썩 나쁘게 이별하고서는 지리산도 떠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도시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지, 굳이 지리산일 필욘 없었거든요. 공동체에서 나온 후 집이 없어 반년에 한 번 꼴로 보따리를 이고 다녔어요. 매번 달라지는 시골집 중에서도 저는 반드시 마당에 한 평이라도 흙이 있는 곳을 골랐어요. 제 똥과 오줌을 모으고 씨앗을 뿌려야 해서요. 마당엔 불간을 부릴 곳과 조금의 장작을 쌓을 곳도 있어야 했어요. 숲길을 걸으며 산딸기와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울 때면, 꼭 자본주의자들은 길거리에 돈이 쏟아져있으면 이렇게 기쁠까 싶어요. 숲은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낙원이에요. 숲은 제가 누군지 알게 해줘요. 그곳에서 전 부자가 돼요. 우린 지구에 한 푼도 쥐고 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부자로 태어났음을 느껴요. 이 풍요로운 지구의 일원으로요. 마당에 모은 제 똥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자란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가 다시 제가 되고나면 제가 무슨 일을 하러 지구에 왔는지 배우게 돼요. 지리산에 홀딱 반한 건 방랑단을 하며 그를 구석구석 깊이 만난 이후였어요. 제가 본 가장 우아한 존재였거든요. 우아함이란 너그러움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닐까요? 지리산은 한없이 너그럽고 기품이 넘쳐요. 지리산은 제 전부에요. 제 전부가 지리산인 것처럼요. 이 말을 뱉고 낯간지러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지만, 역시 맞는 말이에요. 엄마이자 친구고, 치료사고, 도서관이고, 놀이터에요. 그래서 나무나 새를, 약초와 나물을 익히는 건 제게 중요해요. 다 똑같아 보이던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호명한다는 건, 엄마의 어린시절 첫사랑이나 꿈을 묻는 일이자,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친구의 숨은 근심을 읽어내는 일이자, 도서관에서 누구도 펼치지 않은 책을 집어드는 일이에요. 휴... 간결하게 말하기는 이미 그르친 마당에 급하게라도 맺음을 해야겠군요. 일목요연은 제 재능이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빠르게 자라는 오동나무가 있는 반면, 느리게 자라는 팽나무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해요. 그리고 산달, 벌써 봄을 알아채고 봉우리를 터뜨린 매화나무가 있는 반면, 늦가을에야 꽃을 피우는 차나무도 있는 법이잖아요. 도시사람들은 차나무 같은 것 아닐까요? 많은 손짓을 놓치며 도시에서 봄을 느즈막히 알아채는 지금 산달의 시간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느껴져요. 이듬해 봄님께서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그땐 산달을 번뜩 깨울만한 손짓을 어련히 보내시겠죠? 올해는 제가 봄님의 심부름꾼으로 산달에게 봄을 전했다니 행운입니다. 봄비와 산달을 곧 만날 날을 기다리며. 메리올리버의 시로 하루를 시작한 덕복희 올림 산달우드 향! <팬티를 벗어버린 덕복희에게> 이번 편지도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늦게 보낸 편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 고질적인 습관인데요. 늘 할 일을 끝까지 끝까지 미루다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어서야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정신이 아득해지고는 한답니다.. 늘 그래요 늘. 게다가 복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저는 편지나 글을 날쌔게 쓰는 데는 영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또 급한 마음으로 쓴 편지를 복희에게 주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거 있죠. 그래서 저는 아예 하루를 편지 쓰는 날로 잡고서 복희에게 해줄 말들을 고르기로 했답니다. 늦어도 그럴 만한더 늦지 않기로, 약속할게요. 새끼 손가락 걸고. 지난 번 서울에서의 짧은 만남이 복희의 기다림을 덜 지루하게 만들었길 바래요. 아, 그 날은 정말 완벽했어요! 사실 그 날의 저는 집을 떠나 떠돈지가 오래인 터라 말끔하거나 신선하다고 볼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방랑단 분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마주치니 맑은 기운이 제 묵은 마음을 싸악 씻겨주는 거 있죠. 봄을 맞은 지리산의 마음을 방랑단을 통해 엿보기라도 한걸까요? 그 순간 저는 몸이 있는 곳으로 제 마음을 불러올 수 있었어요. 준비해주신 유자청과 시금치 페스토, 수제 복숭아 잼과 짜이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동네방네 뛰다니며 남산 사람들에게 한 입씩 맛보게 해주고 싶었답니다. 그렇지 못했던 저는 아쉬운 마음에 이 편지를 보는 분들에게라도 굳이 알려보아요. 우리 그 날 누가 서로의 짝꿍인지 꽁꽁 감춘 채로 얼굴을 맞대었잖아요. 네 사람 중에 덕복희가 누구일까? 덕복희는 나를 알아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계속 제 마음은 짜릿하고 설레어 두근거렸어요.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로 대화와 웃음을 나누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어색했지만 고마웠어요. 말이 터져나오는 길대로, 생각이 뻗은 모양대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서로의 특별함을 오히려 온전히 느낄 수 있었거든요. 소한의 첫 편지를 주고받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되새겨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각자 짝꿍의 편지 중 나누고 싶은 문장을 낭독할 때는 정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말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는 한, 우린 언제든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 편지에 빼곡히 쓰여진 복희의 이야기들이 참 고마워요. 그 이야기들은 저로 하여금 복희와 지긋이 눈을 맞출 수 있게 해줘요. 삶을 사랑한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줘요. 앞으로 풀어놓을 순간들이 참 많겠지만, 첫 발을 잘 뗀 복희에게 고맙다고 진한 포옹을 보내주고 싶어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 서로를 궁금해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해요. 매우 반갑고, 기뻐요. 프랑스든 서울이든 복희가 그곳에서 잘 견뎌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때때로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가 마치 ‘잡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잡초는 실은 다 이름이 있는 풀들이잖아요. 나름대로 그들만의 생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풀들을 뽑아서 버리거나 태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대해요. 안타깝고 무심한 일이죠.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버려지고 태워지죠. 복희가 살다 온 프랑스의 뒤르켐이라는 사회학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기계적 연대가 해체된 유기적 연대의 사회라고 말했다더군요. 별로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었답니다. 누구도 종속된 채로 간 쓸개 모두 내어주는 관계를 연대라고 말하지는 않죠. 받는 쪽은 만족할 줄을 모르고, 주는 쪽은 말라 비틀어져 병들어가요.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일거에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아파 본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아픔을 겪고 있는 존재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서로의 상처를 궁금해하고, 손이 닿지 않는 환부가 있다면 연고를 발라주기도 하고, 그 모든 과정이 사랑임을 깨달아요.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고 똥이 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런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다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 상태를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픔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반대로 모두가 아프기 때문에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지 못하죠. 자식들이 제 몸에 깔려 죽어도 어찌할 수가 없는 스톨에 갇힌 어머니 돼지처럼요. 누구 하나 안 그러겠어요? 저는 스스로 별로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통증에 둔감해지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더라구요. 한국에서 지정성별 남성으로 태어나 자란 저는 늘 제가 ‘속해 있는’ 집단의 해로움을 물려받았을 거에요. 괴롭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죠. 저는 그런 내가 어떻게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나름대로 내린 답은, 오히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것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발 딛고 있는 남성성의 지배와 폭력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아주 익숙하고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어떻게 결점이 이렇게 많은 우리가 기후운동을 하냐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복희, 이제 우리 이렇게 대답하기로 해요.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온 건 늘 못나고 이상하고 아프고 무가치한 존재들이었다고. 추한 날것의 존재들이었다고요. 저는 복희가 거쳐온 삶의 궤적이 바로 그런 존재들을 직접 만나며 사랑해온 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 복희가 지리산과 함께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 길에서 복희는 아픔들을 충분히 다독일 수 있었나요? 이미 스스로를 활짝 열어놓을만큼 단단해진 복희를 느껴요. 진심으로 존경해요. 이제서야 이 말을 뱉을 수 있겠어요.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모두를 존경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요즘 알아가고 있거든요. 누군가를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 깊이만큼 들여다보고 나의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걸요. 아직 이르고 설익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만큼의 존경을 복희에게 드리고 싶어요. 우아한 복희, 팬티를 벗어버린 걸 축하해요! 저는 아직 머리를 채우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책도 보고, 기획안도 작성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에 대해서 세밀하게 표현해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하루하루 몸이 찌뿌둥해지는 거 있죠? 더는 일을 게을리 한 채 채우기만 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현실에 존재한다는 감각에 둔감해져버린 거죠. 그래서 요즘에는 복희가 어떤 감각들을 느끼는지 절실히 궁금해져요. 지리산과 함께라면 바랄 것 없이 온전하다는 감각, 숲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자의식, 공동체 속에서 주고 받는 온기와 용기, 똥과 오줌으로 거름을 만들고 그곳에서 난 토마토의 맛, 이런 것들이 참으로 궁금해져요. 이런, 제가 너무 질문이 많나요? 벅차게 할 의도는 아니였으니 겁먹지 말아주세요. 그저 천천히 마음에서 떠오르는 감각들을 제게도 전해주세요. 어느덧 우수의 편지도 가득 채워져가네요. 이 편지를 보내고 난 다음 날 저는 광주로 데모하러 갈 예정이에요. 국립공원의 날을 기념해서 광주의 증심사라는 절에서 기념 행사를 한대요. 며칠 전 설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도록 허락했으면서, 염치도 없는지! 지리산에서도 케이블카를 짓네 마네 하는 싸움이 한창인걸로 알아요. 복희가 사랑하는 지리산을 건들지 않아야 할텐데..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저도 싸우고 오려구요. 응원해줄거죠? 언젠가는 함께 싸울 날도 올 것입니다. 내일도 그때도 저는 늘 복희에게서 받은 용기를 한아름 안고 있을거에요. 오래 간직될 따스함이 되어주어 감사해요. 복희가 말한대로, 저 스스로가 어느 누구보다 차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온기가 있으니 올 가을에는 꽃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떤 색일지 누구에게 어떤 향으로 다가설지 기대되네요. 어련히 때가 있음을 의심치 않겠어요. 그때는 제가 복희에게 무언가를 가지고 달려가는 심부름꾼이 될게요. 찌뿌둥한 산달 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09
  • [우수 편지 : 참새와 돌]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을까요?
    디자인.칩코 <우수의 편지, 돌에게> 그간 잘 지냈냐고 편지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밤낮이 바뀐 채 지냈다니 안쓰러운 마음으로 돌의 안부를 묻고 싶네요.(빨개진 허벅지는 다행히 금방 가라앉았어요!ㅎ) 저는 돌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지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돌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고, 그걸 편지에 담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편지가 조금 늦은 걸로 너무 염려마세요. 헐레벌떡인 일상을 살아가는 돌에게 이 펜팔마저 부담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저도 펜팔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돌의 편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뜨면 설레고,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포근해지지만 이제 내가 글을 쓸 차례라고 생각하면 긴장되고, 떨려요. 내가 가진 이야기와 문장들이 돌에게 들려주기엔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편지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겨우 키보드 앞에 앉았어요. 너무 솔직한가요? 하하. 저부터가 이런 사람이라 때로는 너무 무거워서 느려질 때가 있다는 걸 알아요. 활동을 자신의 일상보다 우선하면서 지낸다는 얘기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활동과 일상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활동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건 무엇이고, 일상에서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일까요. 돌의 말처럼 나와 서로를 분리하고 싶지 않으니 너의 고통이 곧장 나의 것으로 느껴져요. 일상과 활동 속에서 피어오른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뒤섞이고요. 어디부터가 시작이고, 끝인지, 뭐가 맞고, 틀린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 그 무엇도 놓치지 않고, 꼿꼿이 중심을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가요. 그러니 반듯한 선으로 만들어진 경계가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되어요. 저는 서울에서 활동가로 살면서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어요. 사실 여러 번 무너졌었겠지만, 그걸 인정한 건 처음이었죠. 소용돌이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그래 지금이 기회야.’라고 생각하며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었어요. 열정을 다했던 일들과 진심이었던 관계들을 다 내려놓고, 채우고, 채워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나와 일상을 이번엔 반대로 완전히 비워보았어요 그런 다음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어요. 아마 저도 그 때 스스로 서는 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이 돌의 깨달음이자 다짐이었다는 말이 정말 와 닿아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별로라고 생각했던 문구였는데 갈대에 숨겨진 비밀을 친구가 알려주었어요. 바람 불면 사정없이 휘날리고, 흔들리는 갈대들은 사실 땅 밑에서 뿌리로 서로를 붙잡아주고 있대요. 사람들 눈엔 그저 쉽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잘 모르는 소리죠.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을까요? 똑바로 서기위해서는 힘이, 넘어지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겠어요. 저는 ‘계절이 바뀌는 건 제가 지연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니까요.’라는 돌의 말에서 올 것은 오고, 떠날 것은 떠나리라는 받아들임의 용기를 얻었어요. 홀로 온전히 서는 법을 같이 흔들리며 찾아가 봐요. 돌은 우아한 당신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저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라 그런지 처음에는 화면 속 인물들만 떠올랐어요. 혹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보셨나요? 저는 그 드라마에서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고애신’ 캐릭터의 대사들을 너무 사랑해요. 사람들이 고애신을 ‘곱게 자란 양반집 딸’내지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여인’으로 대할 때, 그래서 그가 가려는 길을 가로막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짓밟을 때 그는 기품 있는 말과 당당한 움직임으로 그들이 무엇을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주거든요. 누군가 나를 침범해 올 때, 큰 소리로 화내지도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고, 숨어버리지도 않는 모습이 우아해요. 또 이와 비슷한 화면 속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김혜수 배우에요. 어느 날 우연히 김혜수 배우가 17살 때 한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요. 그 때 리포터가 ‘어떤 면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세요? 김혜수 양의 외모 중에요.’라는 질문을 해요. 여성 배우들은 본인들이 펼친 연기에 대한 질문보다 외모에 대한 질문을 더 먼저, 더 많이 받는다는 게 참 환장할 노릇이죠. 거기서 김혜수 배우가 이렇게 답해요. “글쎄요. 저는 외모 중에 특출한데가 없기 때문에요. 연기할 적에 그 연기에 푹 빠져서 진실 되게 연기하려고 많이 노력하거든요. 근데 다른 분들이 저를 보실 때 친근감이 드신대요.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우문현답이지 않겠어요? 저는 여전히 주변의 시선을 살피느라 때로는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을 애써 연기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억지로 친절한 척을 하고 나면 반작용으로 안에선 화가 끓어오르죠. 그래서 진심을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이 되었을 때 썩 우아하지 못해요. 목소리부터 파르르 떨리거든요. 우아함은 정직하지 않고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부드러움 같아요. 초등학생 때 마을에서 가끔 마주치던 할머니가 계셨는데요. 몸도 왜소하시고, 옷도 평범하게 입으시고, 나이도 지긋해서 등도 굽은 그 할머니 얼굴 주름이 잊히지 않아요. 사람의 주름살은 나무의 나이테 같은 거라는데 정말 나이테마냥 온 얼굴 가득히 둥그런 주름이 길고 깊게 패였는데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예, 안녕하세요.’하고 받아주실 때 그 주름 모양이 더 둥글게 휘어졌어요. 그 때 ‘아 저 모양대로 주름이 진거구나.’ 알게 되었죠. 저런 얼굴로 늙어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직해지려면 자꾸 목소리가 떨리고, 부드러워지려면 입꼬리에 경련이 나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어요. 부드럽고, 단단해지는 두 가지를 다 얻으려다 또 몇 차례 무너지기를 반복할 각오를 하며 우수의 편지는 여기서 이만 마칠게요. 돌이 일상이 보다 안녕해졌기를 바라며 짹짹! <우수,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어제는 잘 돌아갔나요? 서울 회동에서 만났지요, 우리! 여러 펜팔 짝꿍들 사이에서 참새는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눈을 도록도록 굴렸어요ㅎㅎ 참새는 저를 찾으셨나요? 다른 짝꿍들이 그동안 주고 받은 이야기도 들었고요. 같이 모인 이들과 주고 받은 웃음과 친절 속에서, 누가 내 짝꿍이어도 좋겠다 했어요. 누구더라도 펜팔을 주고 받으며 참새에게 받은 힘, 저에 대해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고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겨울이 되면 행복하게 포동포동해지는 참새를 만나 반가웠어요:) 속상한 소식일까 싶지만, 아직 다 지나보내지는 못했어요. 매듭짓고자 했던 ‘우리’의 일들요. 사실 지나보내고 싶은 건 아녜요. 매듭을 지어도 이어지는 줄처럼, 끝보다는 쉼표가 필요한 마음 같아요. 줄이 이어지는 와중에 저를 세우는 연습을 천천히 시도하고 있어요. 마음이 조금 더 차분해요! 그래서 많이 속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참새의 이야기는 또 새로워요.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들을 지켜보다니.. 가만히 내버려둘 그 용기가 가늠이 안 되어요. 비우고 출발한 여행길에서 새롭게 나를 채우게 될 것들이 다시 두렵지는 않았을까, 비어있는 마음이 허전하지는 않았을까, 중력 없이 붕 떠버릴까 무섭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다 비우고 또 채운 참새에게 저의 말이 와닿았다니 위안이 되어요.이번 겨울 내내 묵혀온 저의 깨달음과 고민이 부질없지 않다고 응답받은 기분이에요. 조금 미뤄지긴 했어도, 곧 마주할 매듭짓기의 순간을 긴장보다는 기대로 기다려볼게요. 참새가 찾은 스스로 서는 법을 저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볼게요.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을까요?’ 참새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 쿵 하고 속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날짜를 두고 여러 번 읽어도 그렇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하고 잠시 글자들을 응시했어요. 그러니, 물음표가 달린 참새의 질문 가장 아래에, 우리에게도 뿌리가 있다는 강한 믿음이 느껴져요. 우리 존재의 본질이 생명임을 천명하는 저 덤덤한 문장이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뿌리와 곁이 있음을 가끔은 잊고 사는, 그래서 혼자 두려워하는 일이 익숙한 저를 깨달으며 한 번 철렁. 용기를 내라고 등을 밀어주는 듯한 그 힘에 또 철렁. 그런 이유에서 ‘쿵’ 소리가 났나봐요. 사실은 알고 있었겠죠. 흔들리지 않고는 나에게 뿌리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튼튼한 뿌리를 갖기 위한 연습도 없다는 걸요. 옆 친구에게 살짝 기대어볼 일도 없다는 걸요. 새 계절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구르는 돌 옆에, 날다가 걷다가 하는 참새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목소리가 떨리고 입꼬리에 경련이 나도, 결국 ‘큰 소리로 화 내지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고 숨어버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가는 참새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우아함이 뭔지 느껴요. 친절을 거짓으로 지어내고 난 후 차오르는 화는, 참새가 스스로를 지키고자 기른 강한 생명력 같아요. 존재한다는 건 바람과 비와 눈, 강한 햇빛, 가끔은 커다란 지진과 해일 속에서도 수없이 흔들리며 나를 유지하는 일이잖아요. 먹고 소화하고 내보내고, 힘을 쓰고 다시 자는 일, 사랑하고 상처받고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는 살아있을 수 없어요. 떨림과 경련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호흡하고 있다는 걸, 애쓰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는 걸 수없이 반복해 알려주어요. 말하는 일이, 호흡하는 일이, 존재하는 일이 능숙해지면 여유가 생기겠지요? 그 여유 속에서 온화해지고 이해의 그릇이 커질 때 조금 더 우아해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능숙하지 않아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손이 떨리더라도 온화함을 잃지 않고자 하는 눈을 마주하면 저는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 이완의 순간이지요! 긴장만큼 이완할 수 있는 장소가, 관계가, 이야기가,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우아해질 수 있을까요?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많다면, 사랑과 환대와 위안을 주고 받는 순간이 쌓여 관계가 되면 우리 모두는 우아해질 수 있을까요? 다음 편지는 조금 더 일찍 시작해야 겠어요. 두번이나 늦은 답장을 보낸 미안한 마음이기도 하지만,, 제 일상 속 펜팔의 시간을 더 길게 늘이고 싶어서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며 천천히 흐르는 펜팔의 시간도 우아함을 연습하는 시간일 거라 생각해요. 어제 봤는데 벌써 보고 싶어요 참새! 우수의 편지도 고마웠어요. 고마움, 반가움, 기쁨, 설렘, 위안을 잔뜩 담아 답장을 보내고 싶었어요. 날씨가 풀리고 봄기운이 돋는 우수의 시간이, 지리산에서는 어떻게 마무리되어가고 있을지 궁금해요. 새 절기에 만나요! 저도 따라 굴러갈게요, 데구르르~! 돌이, 우수의 끝자락 2023년 2월 26일에.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06
  • [우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우아한 당신과의 교감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안녕하셨나요? 갈토에게 편지를 보낼 때가 되면, 늘 절기가 바뀌는 때라는 걸 실감해요. 곧 우수가 다가오니 흐린 하늘을 보는 날이 많네요. 저는 새롭게 뻗어내는 나무가지들과 매화의 꽃봉우리, 가지각색 겨울눈을 구경을 하면서 입춘을 보냈어요. 아침에 이메일 체크를 한다는 갈토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숨겨 놓았던 제 모습이 들킨 양 재밌었어요.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느긋하게 앉아서 갈토에게 편지를 쓰는데, 다 써 놓고 그대로 잠을 자요.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더 읽어봐야 하거든요. 갈토의 답장이 빠른 편이라 저도 빨리 써서 보내고 싶지만 꼭 다시 한번 읽고 보내야 아차 싶지 않더라구요.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 느낀 갈토의 감정이 또렷하게 와 닿았어요.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갈토를 위로하고 싶어요. 몸 다친 데는 없었나요? 당일 이태원에 없었는데도 참사 이후 압력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사방이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타게 되면 미세한 압박이더라도 그 날이 떠올라요. 희생자들의 당시 두려움의 크기를 저는 헤아릴 수 없겠지요. 그런데 추모하는 자리마저 대치를 해야 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갈토도 그랬을 것 같아요. 내 앞의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밀고 있을까. 어떤 신념으로 무엇을 지키고 싶을까 알 수 없어 슬퍼져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에요. 지리산 산악열차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 10월, 남원에서 산악열차 시범사업 동의안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시의회에서 농성을 했어요. 건물 안 좁은 계단에서, 시의원과 이야기하고자 올라가려는 우리들과 그 앞을 막는 공무원들이 땀을 뻘뻘 내며 위태롭게 엉켜서 몇시간을 있었어요. 화를 내는 공무원, 허공을 바라보며 초점이 나간 공무원을 바라보면서 더 밀치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들은 어떤 명령을 받은 걸까요? 어떤 결단으로 그 곳에 있던 걸까요. 그럼에도 갈토가 또 다른 정의를 향해 사부작 하려는 모습이 멋져요. 이번에도 패스트 패션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실상을 알게 되는 만큼 마음이 힘들 수 있잖아요. 갈토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듯하면서도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사는 분 같아요. 관심 있는 주제의 다큐를 챙겨 보거나, 집회에 참여하거나, 조금 더 걸리더라도 자연을 만나는 출근길을 다니시고요. 지인이 준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것도, 친구들이 다칠까 봐 더 용감해지는 것도요. 제가 갈토 주변에 있는 친구라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겠어요. 더 이상까지 말하면 서로 부끄러우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이번 주제는 ‘우아한 당신’이에요. 우아하다는 말을 찾아보니 근사한 말이더라구요. 고상하고 기품있는데 아름답기까지! 이런 존재를 단숨에 떠올렸어요. 제가 살던 곳 근처에 큰 호수 공원이 있었는데, 휴일에 자주 그 곳으로 산책을 갔어요. 햇빛이 내리쬐는 호수 위에 하얀 왜가리가 있었어요. 홀로 깃털을 정리하는데 그 순간 발걸음과 시선을 빼앗겨 버렸지요. 왜가리에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한참을 쳐다보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서야 아쉬움을 남긴 채 발을 돌렸어요. 그토록 홀려 버린 이유는 정말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감동이었어요. 세상살이에 휩쓸리고, 이런 저런 감정에 휩쓸리다가 문득 본질을 깨달은 느낌! 왜가리의 순수한 힘이 절 붙잡았나 봐요. 아마 잔잔하게 반짝이던 호수가 왜가리의 자태를 더욱 우아해질 수 있게 한몫 더했겠지만, 구름 잔뜩 낀 하늘아래의 호수라도 왜가리에게 같은 것을 느꼈을 거에요. 그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어우러져 한 장면이 되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우리 사람동물들도 왜가리처럼 지구를 누리며 살 날이 올까요? 모습 그대로의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리는 거에요. 산악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충분히 멋진 삶일 텐데요. 깊숙히 숨겨둔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내면 대치 상황들 속에서 더 우아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갈토를 곧 보네요. 오신 분들 중 누가 갈토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신이 나요. 건강히 지내다가 만나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이번 답장이 많이 늦어졌죠? 저는 최근 감기로 심하게 아팠고 지금도 컨디션이 좋지 못해요. 오랜만에 몸이 아프다는 감각을 느껴봤네요. 몸이 아프고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건강함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통에 시달리고 잠을 못 자게 되니, 잠에 빠져드는 밤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고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너무 바쁘게 내 몸을 돌보지 않은 나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아파야 되나 보다 싶기도 합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 아프지 않은 일상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삶에 대한 태도가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일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너무 그리워집니다. 제가 출근길을 걸어서 갔는데, 아프니까 그것도 못하게 되네요. 편지를 쓰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머리가 아파서 생산적인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쓰다가 마무리 못하고 미루게 되네요. 예전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득합니다. 평소보다 편지가 짧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우선 답장을 읽으며 경찰과 대치하며 느꼈던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서 아주 큰 위로가 되었어요. 아주 복잡한 마음이잖아요. 그걸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거든요. 근데 그걸 딱, 이해받은 느낌이었어요. 감사해요. 이번 편지의 주제가 ‘우아한 당신’인데, 진짜 한참 고민했어요. 평소 우아하다는 표현도 잘 안 쓰고, 우아한 당신을 만난 적이 있나. 생각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유우야가 왜가리를 이야기 하시는데, 아 맞다 생각이 들면서 저도 작년 겨울에 청계천을 걸었는데 그 때 봤던 새들이 생각났어요. 날씨가 추운데도 물에 긴 다리를 넣고 고고하게 서있는 이름 모를 새들이 위풍당당해 보였거든요. 어떤 새는 바위처럼 꼼짝 않고 서 있어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물소리, 사람 소리, 차 소리로 혼란함 속에서 홀로 자기만의 세계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았어요. 멋진 새에 대해서는 유우야가 이미 말했고, 저는 제 인생에서 우아함은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봤습니다. 문득 이 사진이 기억나서 사진첩을 오랜만에 뒤졌어요. 십년 전, 제가 여행중일 때였는데 여행 온 김에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밥먹는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아침에 일찍 나가서 식빵봉지 들고 다니며 돌아다니고 밤에 숙소에 들어왔어요. 여행 막바지기도 했고 체류비도 비싼 곳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어요. 그 날도 서둘러 아침 일찍 미술관 오픈 시간에 맞춰 나와서 걸어가는데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없고 한적했어요. 아마 주말 오전이었던 것 같아요. 길가에 핀 초록이들을 만났어요. 아침 이슬을 맞았는지 물이 맺혀있었는데 그 모습에 매료되어 길에 서서 이들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미술관의 전시실에 걸린 유명한 작품들을 보려고 바빴는데, 그 그림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게 했죠. 단순히 신선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살아있는 생명체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빛깔이라고나 할까요. 나뭇잎을 둘러싼 초록색 테두리와 나뭇잎사귀가 그려내는 추상적 선들, 도로롱 맺힌 맑은 물방울이 생명체의 힘을 뽐내는 것 같았어요. 바삐 돌아다니던 여행자인 저에게 “어이, 당신 왜 그리 바빠, 나 좀 보고가. 좀 천천히 다니라고. 중요한 걸 놓치지마”라고 말하는 대자연의 목소리로 저를 잡아 당기는 순간이었어요. 우아한 당신이라는 주제를 듣고 이 사진이 왜 기억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저에게 우아함은 만들어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과 힘을 갖고 있을 때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에게서는 찾기가 좀 어려웠겠다 싶어요. 인간은 멋내기를 좋아하잖아요. ^^ 저에게 우아한 당신은 멋내지 않음에서 오는 당당함과 생명력의 힘, 통찰력을 주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 날 제가 만난 초록이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는 것, 내 안의 고요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우아한 당신이었습니다. 이 주제 덕분에 내가 왜 이 사진을 좋아했는지, 왜 내가 그 순간 길가에 서서 한참 초록이들을 봤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을 잘 해석하지 못했거든요. 다만 내가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이건 뭔가 잘못됐어라고 느꼈고 초록색이 참 아름답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우아한 당신과 나의 교감이 만들어 낸 순간이었어요. 십 년 후에야 그 때의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오래 살아야겠어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의 경험을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십 년이 필요할 테니 말 입니다. ^^ 먼 십년의 일은 둘째 치고 우선 당장의 건강부터 회복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저는 잠을 못 이루고 있답니다. 아파서 저녁부터 잤는데 자정 전에 깨고 아직 잠들지 못했답니다. 저는 오늘 무사히 유우야님을 만날 수 있겠죠. 너무너무 기다리던 날인데, 이런 날 아프다니 속상합니다. 아침이 지나면 싹 나을 거에요. 곧 만나요. 갈토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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