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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지리산 편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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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흰 꽃의 계절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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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 승부를 거는 흰 꽃들의 계절 5월,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서당마을 이팝나무 어르신도 꽃을 활짝 피우셨다. 해마다 입하 무렵이면 고봉의 쌀밥으로 서당마을 들녘을 굽어살피시면서 400년 세월을 저 자리 지키고 계신다. 때마침 할머니와 아들 부부에 손자 손녀들까지 3대가 한 프레임에 들어온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필자도 괜히 흐뭇해지는 장면이다. 올해 벼농사도 대풍이겠다.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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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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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을 위한 간이역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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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을 위한 간이역 콘서트
‘율촌역’이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폐쇄된 율촌역은 전국의 12개 역사(驛舍)와 함께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다. 1930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만들어졌고 폐쇄되기 직전에는 열차가 하루에 2번 쉬었던 곳, 하루 열차 이용자가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했다는 초라한 간이역, 폐쇄일이 통보된 그날 그곳 역 마당에서 시노래 콘서트가 있었다. 그것은 지역의 이름 없는 가수와 시인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하는 하나의 기도 같은 거였다. 작고 초라하고 소멸되어가는 것들을 위한 기도를 시와 노래로 하는 콘서트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노을이 지는 주위의 편안한 시골 풍경과 잘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이 콘서트는 근대가 형성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소멸되어 온 것들에 대한 레퀴엠에 다름 아니었다. 과학의 축적과 함께 근대가 진행되면서, 사과가 떨어지거나 강물이 흐르는 모든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내고, 그 계산을 통해 자연을 착취하는 가운데 꾸준히 도태되어온 것들, 작고 힘없고 화폐가치로 환산이 안 되는 것들, 첨성산의 도롱뇽 같은 것들, 이 간이역처럼 끝내는 사라져야 할 것들, 그리고 또 그것들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까지, 이 소외되고 소멸되는 것들을 위한 콘서트는 간이역 너머의 노을빛만큼이나 아름답고 슬펐다. 나는 이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가 삶 속에서 꾸준히 잃어온 ‘가여워하는 마음’을 생각했다. 누군가, 무엇인가 그 대상과의 관계라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상대방의 ‘가여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몸의 어느 구석에 힘겹게 숨 쉬며 남아있을 사랑의 마음, 자비의 마음이 바로 그 ‘가여워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나는 내게서 버려진 안쓰러운 나를 가까스로 돌아볼 수 있었다.
콘서트의 막바지에 붉은 노을이 지고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율촌역에 드디어 하루에 두 번 쉰다는 그 두 번째 기차가 잠깐 멈추고 떠났다. 그리고 그 열차에서 단 한 명의 손님인 작고 꼬부라진 할머니가 내리더니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느릿느릿 역사(驛舍)를 빠져 나왔다. 우리는 그 단 한 명의 소중한 관객을 위해 시를 읽고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 한 명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는 열차, 할머니 한 명을 위해서 열차가 멈추는 간이역, 그리고 할머니 한 명을 위해서 노래할 수 있는 콘서트를 위해서, 근대 이후 줄곧 잃어온 그 ‘가여워하는 마음’을 위하여, 우리는 혼신을 다해 노래했다.
"......세상의 작고 가여운 것들의 어머니/ 서로 욕하고 싸우며 스스로 절망하는 것들의 어머니/ 어머니,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놓고 애타게 우리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노을 속으로 흩어집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따뜻한 목소리에 화답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나는 강남의 아파트가 부러워 보이고/ 누군가가 앞서 나가면 질투를 하고/ 내 자식만큼은 서울대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가진 자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없는 자 앞에서는 우쭐대는/ 그러한 마음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는 분노하면서도/ 나의 불의와 나의 폭력에는 한없이 너그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머지않아 세상의 모든 생명들 / 그리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고마움의 절을 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충분히 가난해졌을 때/ 그 때 어머니의 부름에 대답하겠습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지어놓고/ 제가 먼저 어머니를 부르겠습니다./ 저녁노을 붉은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부르겠습니다./ 어머니."
(박두규 시「어머니, 때죽나무꽃이 피었습니다」부분)
-때죽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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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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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산청 간디고 아이들의 4.19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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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 19일이면 둔철산 자락을 달리는 간디고 4.19마라톤 대회,
올해 슬로건을 'Let it be 지리산'으로 정하고는
다양한 몸자보를 만들어 가슴에 붙이고 달리다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으로 그 기록을 남기면서
늙수그레한 동네 아저씨는 다시금 '지리산을 그대로'를 가슴에 새겼다.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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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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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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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는 그 말
아내의 투병은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그리고 11월, 12월 두 달 동안 두텁나루숲에 아내가 들어설 자리를 만들었고 해를 넘기기 전에 아내를 데려와 두텁나루숲에서 갑진년 새해를 함께 맞았다. 그리고 2024년 올해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인생의 변화는 주로 내가 아닌 세상의 무엇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변주하는 것은 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 속의 사건은 운명처럼 나에게 오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오로지 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내를 간병하는 두 달 동안 나는 그동안 그려온 그림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이며 강의나 행사, 그리고 회의며 집회 등 그동안 밖에서 했던 일들을 거의 다 줄이고 최소한의 끈들만 남겨두었다.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오르던 물고기가 수족관으로 잡혀 온 것이다. 처음엔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점차 답답해하다가 수족관도 또 하나의 세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고기로서는 혼자서 수족관을 벗어날 수도 없거니와, 새로운 삶의 시작은 이전의 나를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였다. 세상의 변화는 커다란 순환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 그리고 소멸과 파괴의 신 시바, 말하지면 창조, 유지, 파괴 이런 커다란 리사이클 속에 우주 만물과 나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순환의 과정에서 한순간을 반짝이는 것이다. 그래, 인생에서 또 한 번 무언가를 버리거나 잃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맞서지 말고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변주해야지. 봄이 온다는 말은 내가 그만큼 무엇인가를 버리거나 잃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시작되는 나의 봄을 어떻게 꾸려나갈까를 생각했다. 우선 변화된 일상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명상을 통해 멘탈을 더 강화했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배려해야 했다. 아침 식탁을 꾸며내는 것은 일단 성공한 것 같았다. 호두, 아몬드, 볶은 검은콩 등의 적당한 견과류와 바나나, 사과, 당근, 양배추 등을 담은 한 접시의 과일과 야채, 그리고 삶은 달걀 1개와 누룽지 반 공기를 차리는 것이 아침 식사로 굳어졌다. 치료에서 섭생은 운동과 함께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는 것인데 아내의 병은 비위를 상하게 해서 먹는 것을 매우 가렸다. 억지로 먹으면 구토를 하게 되니 그 입맛에 맞춰 잘 먹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아침 식단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내에게 큰 거부감 없이 환자식으로 적절하게 꾸려진 것이 되었다. 이렇듯 나의 현실은 구체적 일상의 손끝에까지 내려와 미시적 세계의 울창한 숲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 숱한 미로를 더듬으며 하루를 꾸려나가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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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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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걸음을 시작한 지리산 초록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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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 쉼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시작한 지리산 초록걸음,
지리산을 두 발로 걷기 시작한지도 어느새 13년째로 접어들었다. 121차 초록걸음은 벽송사에서 용유담 거쳐 와룡대까지 엄천강 따라 걸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만나다. 올해도 변함없이 매달 셋째 토요일 지리산을 아끼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동무들과 함께 둘레길을 걷는다. 지리산 초록걸음은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다.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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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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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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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나
“인간을 속박하는 것도, 해방시키는 것도 마음(Mind)이다. 왜 마음이 속박과 해방을 일으키는가? 왜냐하면 인간보다 덜 발달된 존재들은 독립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은 타고난 본능에 의해 이끌린다. 그러나 인간은 독립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속박이나 해방으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다.
마음은 언제나 어떤 대상을 가지고 있다. 여러 경전에서, 대상을 “아보거(ábhoga)”라고 한다. 아보거는 마음에 음식을 주는 대상, 즉 정신적 양식을 의미한다. 만약 이 양식이 제한적이라면 마음 또한 제한된다. 만약 이 양식이 무한하다면, 그 무한한 양식을 얻기 위해 애씀으로써 마음도 무한해진다. 제한적이든 무한하든 어떤 양식을 마음의 대상으로 삼을지는 오로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 인간이 위대해질지 평범해질지는 온전히 그가 무엇를 바라는가에 달려있다.”
슈리슈리 아난다무르띠의 『아난다 바차나므리땀』에서
위는 인도의 ‘아난다 마르가 요가 명상 수행공동체’의 창시자 아난다무르띠(P.R. 사카르)의 말씀이다. 위 내용이 실려있는 『아난다 바차나므리땀』이라는 책은 아난다무르띠가 매일 방문하는 대중들을 친견할 때 했던 짧은 말들을 책으로 묶은 것으로 30여 권 출간되었으며 그중 제1권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위에서 말한 인간을 속박하는 것도 해방 시키는 것도 마음이라고 하는 그 마음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마음이라고 한다. 이 독립적인 마음은 동물에게는 없으며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에고(ego)’에 다름 아니다. 동물에게는 에고가 없다. 그래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의지’라는 것도 없고 ‘자존심’ 따위도 없다. 그저 본능만이 있어서 먹고 자며 생명을 지키고 번식시키는 것만이 삶의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독립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개체의식이라고나 할 수 있는 이 ‘에고’는 ‘나’라는 존재 의식을 갖게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사람은 존재의 한계를 갖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속박이고 개체가 존재적 사고를 하는 범주이고 한계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에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그 속박 속에서 살다가 그것이 속박인지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렇다고 에고를 버려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에고는 우리를 ‘나’라는 감옥에 갇히게 하는 속박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에고로부터 개체의 의식을 확장 시키는 수행을 통해 해방, 대자유의 길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내 안의 신성을 발견하고 지고의 의식과 합일에 이르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반드시 어떤 대상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이 돈이든 이성이든 어떤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마음이 나온다. 그 대상을 “아보거(ábhoga)”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면 그 마음의 대상, 마음이 취하는 먹이, 정신적 음식이 아보거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 생각을 이 순간 물들이고 있는 대상인 것이다. 우리 육체가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 마음도 늘 음식이 필요하고 그 음식을 끊임없이 취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생각의 대상이고 마음의 대상이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 방금 사라지거나 때론 길게 머물기도 하는 그 모든 마음의 대상, 그것이 바로 아보거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아보거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 마음의 양식이 제한적이라면 마음 또한 제한되며 이 양식이 무한하다면 그 무한한 양식을 얻기 위해 애씀으로써 마음도 무한해진다. 제한적이든 무한하든 어떤 양식을 마음의 대상으로 삼을지는 오로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은 대부분 물질적인 대상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궁극의 기쁨을 주지 못하고 순간적인 즐거움만을 줄 뿐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데 이처럼 유한한 대상에 집중하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 영원한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을 영원한 대상에 집중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명상의 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궁극의 기쁨을 원하면서도 무한한 지고의식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대상에 집중하는 모순에 빠져 살고 있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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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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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주민 스스로 열어가는 산청 목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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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41번째 산청 목화장터,
오늘은 산청의 자랑 '큰들' 식구들까지 함께해서 더 흥겨웠던 장터였다. 관의 간섭 일절 받지 않고 지역 주민들 스스로 꾸려가고 있어 더 의미 있는 장터로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 오후 산청 신안면 원지 소공원에서 왁자지껄하게 열린다. 필자는 그 장터의 사람들을 폰카로 남기고 있는데 이 사진 속 한 사람 한 사람이 산청의 역사란 생각이다.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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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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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 둘레길 안녕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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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주년 삼일절에 진행된 지리산 둘레길 안녕기원제,
필자는 행사에 합류하기 전 둘레길이 지나는 곳에 계신 산청 평화의 소녀상에 먼저 인사 올리고는 길동무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산청 성심원을 출발해서 선녀탕과 내리 저수지 지나 다시 성심원으로 돌아오는 12Km 남짓한 웅석봉 자락 둘레길을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과 그 길에서 만났던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긴다. 비록 강풍주의보가 내리긴 했지만 산&청이란 이름에 걸맞게 맑고 푸르렀던 하늘은 지리산의 선물임이 분명했다. 아무튼 올 한해도 지리산 둘레길이 생명과 평화의 길로 아픈 대한민국을 어루만져주길 간절히 빈다.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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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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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환한 꽃등불을 켠 히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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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2월의 끝날에
올해 첫인사를 나눈 지리산 깃대종 히어리,
성심원 둘레길 길섶에서 그 자리 잘 지키고 있었다는...
널리 퍼져 멸종위기종에서 벗어났기에 더 기특하다.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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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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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우수에 꽃을 피운 남명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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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雨水,
산천재 앞마당의 남명매도 드디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450년 넘도록 단 한 해도 거르지 않은 그 의식을...
하지만 오늘에서야 알았다.
지리산의 정신 남명을 지켜오고 있는 이들이 누군지를...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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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