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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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마가지나무꽃
    「섬진강 편지」 - 길마가지나무꽃 올해 첫 꽃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해마다 얼음새꽃(복수초), 변산바람꽃을 보고 나서 길마가지나무꽃을 만났었는데 올해는 얼음새꽃이 애를 태우는 사이에 길마가지나무꽃이 먼저 피었습니다. 연기암 가는 산길에 길마가지나무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2023년 1월 7일, 구례들꽃사진반 벗들과 함께 찾아가보니 믿기지 않게 몇 송이가 피었습니다. 먼저 피었던 몇 송이가 시든 걸로 보아 처음 꽃 핀 것은 4~5일 전이었던 것 같네요. 엄동설한에 이리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릴 불러주니 좋긴 하지만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이 다시 몰아칠 칼바람을 어찌 견뎌낼지요. 향이 진해 가는 길을 막는다는 꽃인데 채 몇 송이 피지 않아 향은 아직입니다. 길마가지나무는 높이 2~3m까지 자라는 인동과의 낙엽성 관목으로 이름의 어원은 소나 말의 등 위에 얹어 짐을 싣는 안장을 길마라고 하는데 길마가지나무 열매의 모양(사진)이 길마를 만드는 길마가지와 똑같습니다. - 섬진강 / 김인호 -길마가지나무 열매 모양이 길마를 닮았다 (천리포수목원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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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01-14
  • 오리 날다
    오리 날다. 1월의 목동반은 남원의 신선자락길로 들었다. 신선자락길은 뱀사골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산내면 원천마을로 이어지는 옛길이다. 이 길은 계곡 가까이 붙어 있어 사람의 흔적이 적은 길로 오소리와 담비 등 야생이 살아있으며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이 길은 나무와 얽히고설킨 덩굴식물이 엄청난 크기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오리나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오리나무가 숲에서 보이지 않는다. 숲에는 물오리나무만 있고, 사람의 손때가 묻은 곳에는 사방오리나무만이 자란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오리나무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물에 잠기는 땅을 가장 좋아하는 오리나무는 버드나무, 참느릅나무처럼 물을 떠나서는 살기 힘들다. 만나기 힘든 오리나무, 앞에 두고서도 알아보기 어려운 오리나무가 이번 목동반의 주제이다. 오리나무의 겨울눈. 성냥개비를 닮았다. 오리나무의 어원은 오리마다 심어서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은 우스개 소리로나 하는 말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오리마다 심었으면 지금도 오리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리마다 심었다는 것은 국책 사업일진대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오리마다 심었다는 말은 나무 이름에 유래를 끼워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오리나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아는 오리는 집에서 기르는 집오리를 말한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와서 물에서 자맥질하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다가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새들, 즉 물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사는 새들을 통칭 오리라고 불렀다. 이들 오리 종류의 새를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원앙 등으로 구분 지어 부르지만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오리라고 간단하게 부른다.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어버린 새가 있다. 딱따구리 종류 중에서 가장 큰 새인 크낙새는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체수가 늘어나서 아주 흔하게 되면 해제된다. 다른 하나는 멸종이 되면 해제된다. 가슴 아프게도 크낙새는 후자인 경우이다. 크낙새는 크기가 45cm에 달하는 새다. 이 새가 둥지를 틀려면 100년 이상 살아온 서어나무나 오리나무처럼 물을 가까이 있으면서 오래 사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제의 산림수탈, 6.25전쟁, 무절제한 산림훼손을 거치면서 우리의 숲은 오래된 커다란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것은 나무의 크기만 사라진 것이 아니고, 큰 나무가 있어야 살아가는 크낙새의 보금자리가 사라진 결과로 이어졌다. 크낙새가 사라진 지금 크낙새가 둥지를 틀고 난 뒤 그 둥지를 이용하는 오리는 이제는 둥지 틀 고목이 없어서 아파트의 보일러실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오리나무에 둥지를 트는 오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오리나무와 함께 잊혀 갔다. 하지만 오리나무에는 오리가 새끼를 낳아 길렀었다. 물가 주변에서 살아가는 나무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을 보고 ‘오리가 사는 나무‘라는 의미의 ’오리나무‘라 이름지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의 유래는 오리나무의 열매다. 이는 ‘수달아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최상두샘이 해준 말이다. 오리나무는 겨울에도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열매를 늦은 봄까지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열매가 오리의 똥을 닮아있어 오리나무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한다. 정말 오리의 똥을 보면 오리나무 열매와 많이 닮아있다. 오리마다 심었다는 말보다는 훨씬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오리나무. 겨울이라 나무를 식별하긴 어렵다. 가지끝에 달린 열매가 보인다. 오리는 솟대 위에도 앉아있다. 물론 진짜 오리는 아니고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가 솟대 위에 앉아있다. 솟대 위의 오리는 삶이 고단했던 민초들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 물에서 살다가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오리를 보면서 옛날 사람들은 오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로 여겼었나 보다. 그래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오리에 사람들은 작은 소망을 기원하여 그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느 시대나 삶이 퍽퍽하면 어떤 강한 존재에 의지하게 되듯이 현실의 고단함이 내일에는 미래의 자식들의 삶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놓은 것이 오리이기에 오리가 힘차게 날아 하늘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같이 해본다. 오리나무의 특징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물을 좋아한다. 물은 식물도 좋아하지만, 동물도 좋아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만들고 밭과 논은 만든다. 그리고 길을 만들고 수로를 만든다. 사람과 같은 공간을 두고 경쟁하는 것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커다란 위험이다. 버드나무처럼 어마어마한 번식력과 생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람과의 경쟁에서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오리나무는 목재가 좋아 목기, 탈(하회탈의 재료), 나막신 등 생활 도구로 사용되었고, 몸에 이롭다는 보신 문화가 더해지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오리나무의 다른 특징은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이다. 뿌리혹박테리아의 위대함은 질소고정이다. 공기 중에 78%나 존재하는 질소는 모든 생명이 성장에 필요 요소이다. 하지만 과자봉지 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는 질소를 그 작은 세균이 식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프리츠 하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질소 이야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가 빠질 수 없다.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으로 지금의 80억 인류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공기로 빵을 만든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은 멜서스의 트랩을 멋지게 깨뜨려버렸다. 하지만 그 위대함을 상쇄시킬 만큼의 죄악을 인류에 끼치기도 했다.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를 있게 한 독가스를 제조했다. 자신도 유대인이면서 자신의 사촌을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과 집시들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가스를 제조한 것이다. 그리고 독가스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농약이 되고 많은 지역의 봄을 침묵시켰다. 20세기의 성배인 질소를 멋지게 만들어냈지만 최악의 과학자로 이름을 남긴 프리츠 하버는 오리나무와 질소 앞에 항상 생각나는 이름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솟대가 떠오른다. 실상사의 돌도 만든 솟대 솟대. 우리 지리산을 지키는 사람들도 솟대이고 솟대 위의 오리가 아닐까 한다. 하늘과 민초들의 삶을 이어주던 오리처럼 사람과 자연, 사람과 지리산 사이에서 솟대와 오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 중심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는 것. 우리가 소중한 만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자연의 고마움을 아는 것. 인간의 볼 권리가 자연의 생명을 우선하지 않는 것. 인간의 편리함에는 항상 자연의 희생이 동반된다는 것 등 무수한 파괴의 현장을 알리고 무심코 뽑아 쓰는 휴지 한 장, 종이컵 하나에도 생명이 들어 있음을 알고 이어주는 오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2년. 오리야 날자. 다시 한번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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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2-10
  • 한신으로 들다
    한신으로 들다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한다. 지리산에서 나무를 만나고 싶다던 누군가가 지난여름에 뜬금없이 ‘목동반’을 만들자고 한다. ‘목요일은 나무 동무’를 줄여서 ‘목동’이란다. 이름이 귀엽다. 매주 목요일마다 숲으로 깃들면 좋으련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만 들기로 했다. 2021년 9월 구례를 시작으로 하동, 산청, 함양, 남원 방향으로 매월 지리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12월은 함양 한신계곡으로 들었다. 한신은 깊고 넓은 계곡으로 인해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이란다. 겨울 숲의 나무는 잎이 없어 여간해서는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겨울에 나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뭇잎이 없는 나무는 일단 눈높이에서 보이는 줄기로 시선이 간다(줄기가 벗겨지는지, 갈라지는지, 모양, 색깔, 상처에 흐른 수액의 색깔, 껍질눈의 모양 등을 봐야 한다). 그리고는 시선을 올려 잔가지(나무초리)를 본다. 나무초리가 마주나는지 어긋나는지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지난가을의 열매가 있는지 찾아본다. 겨울눈도 들여다봐야 한다.(겨울눈과 나무초리에 털이 있는지, 맨눈인지 비늘로 쌓여있는지, 비늘 조각은 몇 쌍인지, 모양과 크기, 색깔도 살펴야 한다.)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나무를 볼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위아래로 훑어보면 기분 나빠하는데, 나무는 위아래로 훑어봐야 한다”라고 항상 강조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나무마다 찬찬히 훑어보고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다. 고로쇠나무, 고욤나무, 산뽕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을 읽어본다. 걸음이 느리다. 그러다 보니 한신계곡 입구에서 벌써 간식을 풀었다. 마침 지나가는 등산객이 웃는다. 시작부터 먹고 가는 모습이 재밌어 보이기도 보인듯하다. 느리게 나아가다 보니 해가 들지 않는 계곡은 더욱 춥다. 손과 발이 시리다. 속도를 내어 걸어본다. 재촉하는 걸음에도 계속 나무는 눈에 들어온다. 층층나무와 곰의말채나무를 비교해본다. 가로로 껍질눈을 가진 산벚나무와 개회나무도 비교해본다. 지각변동을 하듯 껍질이 벗겨지는 박달나무, 아주 얇게 그물 모양으로 껍질이 벗겨지는 피나무를 본다. 그리고 한신계곡에서 가장 많은 나무인 서어나무를 만난다. 서어나무의 이름은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자로 서목(西木)이라 하여 ‘서쪽 나무’라는 의미란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다른 유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시선을 남원시 운봉읍 행정마을의 마을 숲으로 서 있는 서어나무숲에 머문다. 우리나라의 마을숲은 풍수지리학으로 보통 설명이 된다. ‘마을을 보호하는 숲’이란 뜻의 비보림(裨補林)은 마을의 액과 재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부림(魚付林), 마을의 기운을 담아주는 역할을 하는 수구막이 등이 있다. 이중 행정마을의 서어나무 마을숲은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만든 숲이다. 키가 20~30m에 달하는 서어나무는 밝은 색의 껍질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위용의 서어나무는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쉬이 막아낼 듯싶다. 서어나무는 우리 문화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곳이 없다. 불땀이 없어 장작으로는 매력이 없고 껍질이 얇아서 표고목으로 활용도가 높지 않다. 줄기가 곧지 않아 목재나 가구를 만드는 용도로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마을의 마을숲처럼 마을의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 모습으로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냥 서 있으면 된다. ‘서 있으면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서나무’가 되고 지금은 ‘서어나무’라 불리는 듯싶다. 목재나 가구재로도 사용이 안 되는 이유는 울퉁불퉁한 줄기가 한몫을 한다. 그 줄기가 아주 특이해서 사람들은 ‘근육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왜 이런 줄기를 가지고 있을까? 줄기의 굴곡은 양분이 모여서 생긴 것이다. 양분은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은 힘을 준 모양을 말해준다. 커다란 나무의 줄기가 굴곡이 생기려면 어린 나무 시절부터 울퉁불퉁하게 힘을 주던 것이 누적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어나무는 숲이 변해가는 천이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들어오는 나무이다. 서어나무가 우점한 숲은 안정된 숲이라는 말이다. 서어나무는 숲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00년의 천수를 누린다. 그러나 숲의 주인으로 위풍당당한 서어나무는 사실 겁쟁이 나무였다. 다른 나무에는 별거 아닌 바람에도 어린 서어나무는 두려워서 반응을 했다. 이리저리 불어오는 바람마다 에너지를 쓰면서 줄기의 굴곡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위풍당당한 모습에는 두려움에 떨던 어린 시절이 숨어있었다. 이제 2022년 임인년이 시작되었다. 지난해처럼 우리는 한 해를 보낼 것이다. 2021년이 그랬듯이 어떤 상황은 나를 힘들게 할 것이고, 또 어떤 관계는 나에게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 관계, 상황들이 삶의 근육을 만들어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날들을 지나왔지만 또 어떤 바람에 흔들릴지도 모르는 시간을 살아갈 터이다. 수 십 년을 버텨 근육이 가득한 서어나무는 이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까? 두렵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내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삶일 것이다. 서어나무와 다르지 않은 나의 삶.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별에도, 서어나무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1-07

실시간 지리산 생태 이야기 기사

  • 수달은 도시에 왜 모여들까?
    도시에 수달이 모여드는 이유는? 관심은 보는 눈이 많아야 한다 도시의 수달은 관심의 대상이고 시골의 수달은 무관심의 대상이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1-12-23
  • 나비를 만나다
    지리산자락으로 귀촌하게 되면서 ‘자연’이 마음으로 흘러들어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풀이름 하나, 나무이름 하나씩 배우다보니 숲해설이라는 일을 하며 약 십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4살 유아부터 8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숲’이라는 공감대로 만났다. 나무를 이야기하고, 풀을 이야기하고 그 숲에 깃들어 사는 곤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귀하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배움 없이 다양한 자연의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시간들에 방전되어 가는 나를 보며 그만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멈췄다. ‘잠시 멈춤’의 시간에 전북자연환경연수원에서 하는 『나비생태학교』에 참여하게 되면서 내가 멈춘 자연에 대한 마음이 다시 일렁였다. 약 7개월간 나비를 만나러 가깝게는 지리산둘레길 구간, 뱀사골 계곡, 약수암 가는 길, 교룡산성 둘레길을, 멀리로는 무주와 의성, 오대산과 평창 등을 다니며 나비와 조우하는 행복한 시간에 빠져 보냈던 2021년이었다. 1년동안 153종의 나비를 만났고 37종의 나비를 키워 보았다.(우리나라 나비는 토착종기준 220여종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나비는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 그리고 성충의 단계를 거친다. 성충인 나비는 애벌레들이 좋아하는 식물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좋아하는 먹이식물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초보 나비관찰자가 식물에 있는 알을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번데기는 어딘가 사라져 번데기를 트는 통에 찾기가 쉽지 않고, 성충인 나비는 가만히 내 눈앞에 ‘그대로 멈춰’있는 게 아닌데다 고기능의 카메라가 없는 나에게,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은 대부분 애벌레인 경우가 많았다. 하여 도감을 들고 길을 걸으며 알만한 나무의 잎을 뒤지고 살피며 애벌레 찾기가 시작되었다. 장항리에 있는 팽나무에서 홍점알락나비 애벌레와 수노랑나비 애벌레, 뿔나비 애벌레를 찾았다. 동네 길 옆 돌담에서 자라는 인동덩굴에서 제이줄나비 애벌레를 찾았다. 회덕에서 개미정지로 가는 길에서 청띠신선나비 애벌레를, 동강 길에서 제일줄나비의 산란장면을 목격하고 알을 데려왔다. 삼신암 가는 길에서 큰멋쟁이나비 애벌레를 인월센터 근처 탱자나무에서 호랑나비 애벌레를 찾았다. 또한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나러 의성으로 왕나비를 만나러 평창으로 새벽12:30에 일어나 다녀오기도 했다. 노고단에 올라가 조흰뱀눈나비를 만났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나비를 만나는 일은 연애 때처럼 가슴 설레는 매일이었다. 아마 자연을 알게 된 후 이렇게 멀리, 다양한 장소로 관찰을 하러 다닌 적이 없을게다. 그래서 더 행복했다. 먼 곳으로 가서는 도감에서만 보던 귀한 나비를 만났다면, 인근에서는 일상적으로 만나는 다양한 나비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집 입구의 돌담에서 자라던 제이줄나비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제이줄나비 애벌레는 인동을 먹이식물로 한다. 볕 잘드는 돌담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아가던 인동에게 제이줄나비가 찾아와 알을 낳았다. 오가가는 길에서 인동 잎을 보니 애벌레의 식흔이 보였고 그것으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몇 마리는 집에서 관찰하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관찰하며 지켜보던 어느 날, 집 앞의 도로확장공사가 있음을 마을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도 충분히 통행 가능한 길인데도 마을에선 더 넓고 편안한 길을 원했던 것 같다(마을의 숙원사업이었다고 함). 도로공사는 이미 확정이 되어 결정된 사항이라 되돌릴 수 없었다. 길이 확장되면 돌담은 사라질 것이라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애벌레가 보이는 대로 집의 관찰통으로 옮겼다. 인동에는 제일줄나비, 제이줄나비, 검정황나꼬리박각시가 산다. 아는게 그것뿐이지만 그 외에 더불어 살아가는 개체들이 더 있을게다. 집으로 데리고 온 애벌레만 10여마리가 넘었다. (다행히 구조한 애벌레들은 무사히 나비로 우화해 날아갔다) 계획대로 돌담은 부서지고 나무는 뽑히고 찍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찰나였다. 나비는 날개라도 달려서 날아간다지만 몇 센티 안되는 애벌레들이 거대한 기계로 인한 파괴의 움직임 앞에 어떻게 빨리 이동할 수 있을까! 인간의 편리에 대한 욕망에 너무 쉽게 희생되는 순간이었다. 어디 나비만 그러할까. 인동을 먹이로 하는 검정황나꼬리박각시는 번데기시절을 땅속에서 보낸다. 흙이 필요한 이 나방에게 나무가 있다 해도 사방이 시멘트로 덮여 있다면 제대로 된 성충으로 우화할 수 없을게다. ↑ 제이줄나비 종령 애벌레 ↑ 제이줄나비 알 ↑ 제이줄나비 동물은 말이 없다. 조용히 도태되고, 조용히 희생되고, 조용히 사라져 갈 뿐이다.(우동걸, ‘숲에서 태어나 길 위에 서다’.) 크고 작은 건설과 개발에 의해 땅이 파헤쳐지고 건물이 들어서며 나비가 사라지는 일도 있지만 예초기에 의해 식물이 잘려지며 순간 사라지는 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나비는 꽃꿀을 찾지만(물론 나무의 진이나 똥에서 미네랄도 섭취한다) 애벌레는 먹이식물이 필요하다. 배추흰나비는 십자화과 식물을, 호랑나비는 운향과 식물을, 암끝검은표범나비는 제비꽃을, 네발나비는 환삼을..... 즉 식물과의 관계성 속에서 살아간다. 식물이 사라지면 나비도 사라지는 관계다. 사향제비나비와 꼬리명주나비를 키울 때의 이야기다. 사향제비나비애벌레와 꼬리명주나비애벌레를 분양받았다. 쥐방울덩굴을 식초로 하는 나비들이다. 주위를 수소문하여 쥐방울 덩굴을 찾는다. 입석리 어디 고사리 밭에 쥐방울 덩굴이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씩 구해 와서 먹이로 주었다. 내가 사는 주위엔 잘 자라지 않아 내년에는 “꼭” 집 뜰 안에다 쥐방울 덩굴을 심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애벌레를 키워 나비로 날려주면서도 살짝 걱정이 된다. 짝을 찾는 것도, 알을 낳을 식초를 찾는 것도.... 장수의 아는 선생님은 어느 댐 주위에서 쥐방울덩굴 군락을 찾았다고 했다. 먹이걱정도 짝을 찾고 알을 낳을 장소도 걱정 없다고 했다. 부러웠다. 그러나 몇 주 뒤에 들은 소식은 슬펐다. 애벌레 먹이를 찾아갔던 그 자리는 깨끗했다고 했다. 예초를 하여 쥐방울덩굴은 남김없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예초질에 거기서 살아가던 애벌레들은 작별을 고했다. 우동걸 박사는 ‘숲에서 태어나 길 위에 서다’란 글에서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알아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생태연구는 자연을 보는 해상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000과 000의 삶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넓히기를, 바람과 새와 꽃의 은밀한 신호를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나비를 배우며 ‘그저 아름다운 개체다’란 생각에서 사랑하는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내가 나비를 사랑하게 되면서 더 찾아보게 되고 더 곁에 머물게 되는 것 같다. 나비를 곁에 더 다가오게 만들고 싶어 내년 집 안 뜰에 심을 꽃과 나무도 구상하게 된다.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팽나무를 심으면 왕오색나비, 홍점알락나비와 흑백알락나비, 수노랑나비, 뿔나비를 만날 수 있다. 제비꽃이 있으면 암끝검은 표범나비, 암검은 표범나비 등 다양한 표범나비들을 만날 수 있다. 십자화과 식물이 있다면 흰나비 종류를, 콩과의 아까시나무에는 애기세줄나비를...그리고 식초가 아니라도 다양한 꽃들이 많으면 꽃꿀을 먹으러 다양한 나비들이 날아올 것이다. 마당의 풀을 뽑을 때도 누군가의 먹이로 조금은 남겨두자. 농약과 제초제는 치지말자.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히 의견을 내본다. 더불어 사는 길이 결국 우리가 잘 사는 일이니까. *토리는 어쩌다 살게 된 지리산자락. 그곳에서 만난 자연을 늦틔게 품으며 눈맞춤하고 배우고 있다. 숲해설가 시절,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이야기하며 씨앗하나 심는 마음으로 도토리의 토리라 이름지어 불리고 있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1-12-08
  • 물까치의 육추
    물까치의 육추 영상입니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1-08-25
  • 목동반에 함께 할 분을 모십니다
    목동반에 함께 할 분을 모십니다 목동반은 매주 목요일 나무와 풀을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왜 목동이냐? 이건, 알아서 해석하세요.^^ 목동반은 매주 목요일, 각자가 위치한 그곳에서 나무와 풀을 공부합니다. 목요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나무, 풀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자는 의미입니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봅니다. 누구에게? 못난이와 할미꽃에게^^ 목동반은 한달 한번, 목요일에 만나 현장에서 공부합니다. 몇 번째 목요일에 만날지는 목동반에 모인 분들과 의논합니다. 우리가 만날 현장은 지리산국립공원 계곡입니다. 남원을 시작으로 함양, 산청, 하동, 구례.. 이렇게 5개 시군에 있는 계곡을 순환하는 것입니다. 남원 뱀사골, 함양 한신, 산청 거림, 하동 대성골, 구례 피아골.. 이렇게 한 바퀴 돌고, 그 다음엔 남원 구룡, 함양 칠선, 산청 대원사, 하동 의신, 구례 화엄.. 이렇게 한 바퀴 돕니다. 어떤 계곡을 갈지도 목동반에 모인 분들과 의논합니다. 그리고 계곡을 다니며, 주변에 조릿대 상황도 기록해볼까 합니다. 목동반에 함께할 분, 8월 26일까지 연락주세요. 못난이 010-2693-4595 / 윤주옥 010-4686-6547
    • 지리산사람들
    2021-08-16
  • 가뭄을 좋아하는 감나무
    못난이 (자연해설사) 봄이 가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세상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간다. 한낮의 따스한 태양 빛이 저녁이 되어 붉게 물들듯이 가을은 노을을 닮았다. 노을을 닮은 가을!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풍이다. 그리고 단풍만큼이나 가을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은 가을의 대표 과일인 ‘감’이다. 기억의 저편에 있는 어린 날의 기억을 끄집어내 주고,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가지 끝에 빨갛게 달려있는 모습만으로도 넉넉함을 주는 감은 깊어가는 가을의 주인공이다. 붉은 노을빛을 닮은 가을의 과일이어서 ‘감’이라 불렸을까? 달고 맛있어서 ‘감’이라 불렸을까? ‘감’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2017년 봄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지독한 봄 가뭄을 겪었다. 도시의 가로수는 말라서 죽어갔고, 농작물도 비상이었다. 그런데 그 해 가을 감농사는 풍년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토요일마다 토요걷기 프로그램이 있다. 토요걷기는 항상 걷는 분들이 몇 분 계시고, 그 분들께서는 자원봉사도 하신다. 자원봉사는 행렬의 맨 뒤에서 뒤쳐지는 분들을 챙기기도 하고, 의약품을 담당하기도 한다. 가무단장도 있다. 가무단장은 산청에 사시는 이선생님이신데 노래와 흥을 좋아하는 것만큼 다방면에서 척척박사셨다. 2017년 어느 가을날의 토요일이었다. 길을 걷다 잠시 쉬는데 이학근선생님께서 감나무를 보더니 ‘올해는 감이 풍년이야. 봄에 감꽃이 필 때 가물어서 그래.’ 하시는 것이다. 나무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는 내가 이 이야기를 그냥 흘려보낼 리가 없다. 바로 무슨 말인지 설명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감꽃이 필 때 비가 많으면 꽃이 수정이 잘 안 될뿐더러 많이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감농사가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아! 그러면 감은 가물어야 풍년이 드는구나.’ 느낌이 딱 왔다. 감나무의 뜻이 ‘가뭄을 좋아하는 나무’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았다. ‘‘가뭄나무, 가뭄나무’하다가 ‘감나무’라 불리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감나무는 뿌리도 습기를 싫어한다. 땅이 습하면 감이 잘 열리지 않는다. 열려도 감이 익기 전에 다 떨어져 버린다.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이 물을 버릴라치면 ‘감나무에 찌끄리지(버리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렇게 감나무에 한 발 다가설 수 있었다. 내 어린 날의 감은 단감도 아니었고, 홍시도 아닌 그냥 먹기 힘든 떫은 감만 있었다. 어머니는 그 떫은 감을 대야에 으깨고 빻아서 갈옷을 만드셨다. 그럴 때면 옆에 앉아 으깨진 감 사이에서 나온 씨앗을 주워 먹곤 했다. 작은 형은 작은 항아리에서 소금물로 떫은 맛을 우려내어 맛있는 감을 먹게 해주었다. 누나들과는 감꽃을 따먹으며 늦은 봄을 보냈다. 어린 날에는 감나무를 고욤에 접붙이기로 만드는 것을 몰랐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나무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감나무를 아련한 추억만으로 머무르게 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무에게 미안했다. 지금부터 나무에게 미안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감나무가 씨앗으로 번식시키지 않고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접붙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설령 모르는 사람도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감에 대한 나무 이야기를 잠시만 찾아보면 어렵사리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감나무는 왜 접붙이기로 번식을 시킬까? 그 이유는 씨앗으로 번식시킬 경우 감의 형질이 떨어지기 때문(감나무를 씨앗으로 번식시키다 보면 감나무가 고욤나무가 된다고 한다)이다. 우리가 먹는 크고 맛있는 감이 씨앗으로 발아한 감나무에서는 크기가 작아질 수도 있고, 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씨앗으로 감나무를 번식시키지 않는다. 그럼 감나무는 씨앗으로 번식하면 왜 형질이 퇴화하는 것일까? 많은 식물은 힘들게 딴꽃가루받이를 하여 환경에 다양한 적응력을 가진 질 좋은 유전자를 남기려 하고, 동물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쟁을 하면서 더욱 우수한 유전자를 후대에 전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감나무는 씨앗을 이용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방법으로 번식하면 왜 크기와 맛이 떨어지는 형질로 변하는 것일까? 우리가 아는 감나무 종류는 대봉감, 단감, 먹감 등 여러 가지이다. 다양한 품종을 가지고 있지만 야생에서는 유전적으로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 나무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약한 나무인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 보이는 감나무의 자연적 번식방법은 많은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유전적 성질과는 상관이 없고,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아니다. 그것은 허무하게도 사람의 입으로, 사람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감나무가 씨앗으로 번식할 경우 고욤으로 변해가는 것은 자연상태의 환경에서 감나무보다는 고욤이 더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최고의 유전적 형질을 지닌 자손을 남기고 그 후손들이 환경에 적응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래서 감나무가 씨앗으로 번식할 경우 고욤이 되고자 한다면 그건 고욤나무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감나무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말이다. 감나무의 더 나은 유전자를 남기려는 노력이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히고 있다. 반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고욤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더욱 커다란 곶감을 만들 수 있으며, 더욱 커다란 감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상품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상품과 자본, 그리고 인간의 눈과 입으로 보면 고욤은 감과 비교하여 형편없이 떨어지는 과일이다. 감이 고욤으로 변해버리면 그 감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엄청난 손해가 날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커다란 손해가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감이 고욤으로 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나무의 변화를 퇴화라고 부르며 그렇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것이다. 후대에 지금보다 건강하고 훌륭한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남기려는 감나무의 노력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좌절되고 있다. <사진2의 캠션 : 고욤나무에 접을 붙인 감나무 밑동이다. 진한 부분은 고욤나무이고, 조금 연한 그 윗부분이 감나무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1-06-01
  • 진딧물과의 상생을 꿈꾸며
    하정옥 (야동을 좋아하는 벌레하는 잡놈) 다음은 어떤 수의 조합일까요? 1, 1 ,2, 3, 5, 8, 13, 21, 34... 꽃잎의 개수나, 잎이 햇빛을 받기 위해 돌려나는 황금비율인 피보나치수열이라고 들어 보셨을 거예요. 알려주지 않아도 식물이나 동물 모두 알아서 잘 쓰고 있다니 이를 발견한 피보나치라는 양반은 참으로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네요. 그렇다면 다음 숫자들의 조합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짐작이 되는가요? 1, 2, 4, 6, 7, 10, 11, 12, 13, 28. 이리저리 조합을 해도 답이 안 나오지 싶어요. 애홍점박이무당벌레,두점무당벌레, 네점가슴무당벌레, 노랑육점박이무당벌레, 칠성무당벌레, 열점무당벌레, 십일점박이무당벌레, 십이흰점무당벌레, 열석점긴다리무당벌레,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 이렇듯 등딱지에 찍힌 점의 개수로 붙여진 무당벌레들의 이름입니다. 이 외에도 노랑무당벌레, 긴점무당벌레, 곱추무당벌레, 중국무당벌레, 꼬마남생이무당벌레, 다리무당벌레, 방패무당벌레, 유럽무당벌레, 달무리무당벌레, 홍테무당벌레 등, 무당벌레를 부르는 이름은 70여종이 넘는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 중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칠성무당벌레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들 생소한 이름들입니다. 식물에 진딧물이 생기면 농약을 하는 대신에 무당벌레를 풀어주면 생물학적 방제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성충인 무당벌레 한 마리가 먹는 진딧물은 물론이고, 애벌레가 먹는 진딧물도 하루에 최소 100마리를 넘는다는 얘기도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그렇다면 모든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고 살까요? 거의가 그렇지만 식물의 잎을 먹고 사는 친구도 있어요. 우리가 기르는 감자의 잎에 이쁘게 그림을 그리면서 먹는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가 바로 그런 친군데, 감자밭에 가면 알, 애벌레, 번데기에 어른벌레까지 한살이를 모두 볼 수도 있습니다, 까마중이나 가지과 식물의 잎에 남아있는 식흔(먹이흔적)을 들여다보자면 예술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감자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는 그리 곱게 보이진 않을 것이나, 굼벵이처럼 직접 땅속 감자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기에 그 존재 여부 자체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이듬해 텃밭을 하게 되었고 김장배추를 심었어요. 대개의 귀농⋅귀촌인들이 그렇듯, 약을 안 하고 갓 심어놓은 배추 앞에 앉아 아침마다 벌레를 잡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하얀 가루약 한번 뿌리면 간단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거기에 필자는 카메라까지 들이대요. 배추에 오는 벌레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거지요. 다는 기억을 못 해도 몇 가지 적어보자면 우리가 청벌레라 부르는, 애벌레 시기엔 농부에게 미움을 받지만 어른벌레가 되면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입니다. 청벌레 외에도 꾸물꾸물 기어 다니던 검은 애벌레는 커서 무잎벌이 되고, 낮엔 뿌리근처 땅으로 내려가 쉬다가밤에 먹이활동을 하는 담배거세미나방도 있습니다. 청벌레 다음으로 개체수가 많은 파란색의 배추좀나방 애벌레도 그렇고 이름도 찾기 힘든 나방류의 애벌레까지 나비 한 종과 나방 너댓 종, 그리고 잎벌 애벌레까지 배추가 먹여 살리는 애벌레들은 많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도 먹여 살리지만 많은 벌레들도 먹여 살리는 거지요. 그 외에도 어른벌레로 잎을 먹는 섬서구메뚜기와 큰실베짱이가 있고, 딱정벌레로는 벼룩잎벌레와 주둥무늬차색풍뎅이가 있어요. 거기에다 곤충은 아니지만 민달팽이도 어마무시하게 배추를 먹어치우는지라 솎아내는 젓가락의 주고객으로 애벌레들과 민달팽이가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개체수로 따지자면 가장 우점종인 진딧물들. 어떻게 배추 안쪽에 그렇게 깃들어 사는지 모를 일입니다. 처음엔 진딧물이 붙어있는 잎들을 하나하나 벗겼는데 안쪽까지 진딧물 투성이라 난감했던 기억이 있네요. 나중엔 이렇게 벗기다간 우리 먹을 게 안 남아나겠다 싶어 씻는 데까지는 씻고 나머진 모른척하고 그냥 먹는 방법을 택했어요. 모르긴 해도 이 진딧물들은 무당벌레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을 찾아 배추의 속으로 속으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무당벌레를 피했으니 진딧물에게는 안전이 보장된 것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크기인 1~2mm정도의 몸으로 진딧물에 붙어 몸에 산란을 하는 진디벌이 버티고 있습니다. 진딧물의 몸 속에서 알이 부화해서 내장을 먹으면서 진딧물과 함께 성장합니다. 나중에는 진딧물이 머미(미라처럼 진딧물이 죽고 굳어져 안에서는 진디벌의 번데기가 된다)로 변하게 되고, 거기에서는 진디벌이 나오게 되는 천적관계가 형성됩니다. 정치판에서 시쳇말로 언급되는 ‘영원한 우방은 없다’가 이쪽에선 ‘천적관계는 어디에서나 형성된다’가 되는 것이지요. 어쨌든 간에 배추가 아닌 다른 초본류의 진딧물들에는 꼭 무당벌레들이 주변에 산란을 하기 마련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먹이 걱정 없이 진딧물들을 포식하며 자랄 수 있게 배려한 것입니다. 거기에 무당벌레가 아닌 파리목의 꽃등에 애벌레도 진딧물을 주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듯, 배추나 식물이 진딧물을 먹여 살리고, 이를 먹이로 하는 무당벌레가 모입니다. 무당벌레에게 진딧물은 주요 먹이가 되니 필요한데, 여기에 개미라는 불청객이 끼어듭니다. 개미는 진딧물의 똥꼬에서 나오는 단물을 얻기 위해 진딧물을 관리합니다. 무당벌레의 애벌레나 어른벌레가 진딧물을 먹으려고 할 때 개미가 이를 막아준다고 알고 있으나, 몇 번의 관찰 결과 거기엔 개입을 하지 않고 다만 진딧물의 감로만 탐할 뿐이더라구요(한마디로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듯). 이렇듯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진딧물과 무당벌레, 그리고 개미의 삼각관계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가 개입을 한다고 칩시다. 농부에게 있어 진딧물은 농작물을 흡즙(빨대같은 주둥이를 식물에 꽂고 수액을 먹는데, 필요한 영양분만 취하고 나머지는 바로바로 몸 밖으로 배출)해서 피해를 주니 없어졌으면 좋겠으나 제일 많은 개체수로 번창을 합니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으니 좋은데, 거기에 개미가 진딧물의 뒤를 봐주니 개미가 싫은 걸까요? 농부에게는 오로지 무당벌레만 반갑고 나머지 둘은 보기도 싫은, 없어져야 할 존재일까요? 진딧물의 존재야 어쩔 수 없다 치고, 개미가 진딧물의 단물을 먹지 않는다면 그게 식물의 잎에 떨어지면 그을음병이 생길 수도 있기에 개미의 존재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농부만의 관점이 아닌 진딧물, 무당벌레, 개미 모두에게는 서로 보이진 않지만 연결고리가 있는 셈입니다. 마치 필자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시작된 ‘인드라망’ 운동이나 어느 멋진 출판사 이름인 ‘그물코’ 역시 생태계의 순환을 얘기하고 있듯이.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1-06-01
  • 천덕꾸러기 고라니
    하정옥 (야동을 좋아하는 벌레하는 잡놈) 우리나라에서 검정콩을 닮은 똥을 누는 동물 몇 종이 있다. 집 나간 사슴, 섬에서 멋모르고 키우다 하층식생을 초토화시켜 버리는 흑염소, 뿔이 달리고 꼬리가 없는 노루, 특이하게도 송곳니를 발달시킨 고라니가 그 주인공들이다. 사슴과 흑염소는 구분한다 해도, 똥으로 고라니와 노루를 구분한다는 건 많은 무리수가 따른다. 하천을 비롯한 습지나 논, 밭 등의 경작지를 선호하는 고라니에 비해 노루는 해발이 어느 정도 되는 위쪽을 선택해 서로의 동선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심심찮게 겹치는 경우도 많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동물이 멧돼지와 고라니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시골 어르신들이 고라니와 노루를 구분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웬만한 것들은 노루로 퉁치기 일쑤다. 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장항마을이라는 마을 이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노루목이라는 의미를 지닌 ‘장항’이라는 지명이 어디 한두 군데겠는가? 모르긴 해도 수십 개는 될 것이다. 가까운 지리산 반야봉 아래 삼거리가 노루목인데, 여기는 노루목이라 불러도 괜찮을 성싶다. 생태적으로 고라니가 살기엔 좀 높은 곳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고라니가 못 산다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노루의 서식 조건에 맞다는 얘기다. 노루와 고라니의 생태적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노루는 수컷에게 뿔이 있다. 뿔의 가지도 일년생은 하나, 이년생은 둘, 삼년생은 세 개로 갈라지며 사년생도 세 개다. 해마다 겨울에 뿔이 떨어지고 새로 나오는 뿔갈이를 하는데, 뿔을 이용해 나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노루궁뎅이 버섯처럼 궁뎅이가 하얗다. 사는 곳도 고라니에 비해 숲의 안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제주도에는 고라니가 없으니 거기서 보이는 작고 검은 콩들은 다 노루의 똥이다. 고라니는 수컷에게 엄니(위쪽 송곳니)가 발달해서 번식기에 암컷을 두고 짝짓기 경쟁을 할 때 사용한다. 가끔은 나무에 이를 갈아 흔적을 남기기도 하나, 쉽게 찾기는 힘들다. 논이나 밭을 비롯한 경작지나 하천, 수로와 비슷한 낮은 평야지대에 살며, 사람과 영역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해조수로 낙인찍혀 수렵대상에 포함이 되지만, 멧돼지나 노루에 비해 선호하지 않는 것 또한 고라니다.로드킬 사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유해조수로 포획되기도 하지만 개체수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은 강원도의 화천이나 비무장지대에 소수만 남아있는 사향노루는 어떤가? 수컷이 가진 사향이라는 몹쓸(?) 주머니 때문에 수도 없이 남획을 당해 지금은 러시아에서나 볼 수 있을만큼 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고라니지만,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보자면 중국의 양쯔강 일대와 우리나라에만 사는 아주 귀한 존재이다. 중국에서는 국가보호동물 2급으로 지정할 정도이고,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도 적색목록의 취약종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마디로 그만큼 귀하다는 얘기다. 그 귀하다는 고라니가 유해조수로 포획되고, 로드킬로 죽으면서도 아직까지 별다른 개체수의 변화를 느끼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배에 새끼를 서너 마리 낳을 정도의 높은 번식률도 한 몫 하겠지만, 자연계에서 오소리가 아닌 너구리와 같은 존재여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오소리처럼 쓸개가 귀한 것도, 고기가 맛있는 것도, 지방이 화상에 좋은 것도 아닌, 너구리는 그저 생태계에서 최고의 청소동물을 자처하는 것 말고는 내세울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에게 쓰임새가 없어서다. 고라니 입장에서는 다행이랄 수밖에. 어제도 시골에 조사를 왔다가 감자 순이 어느 정도 올라온 산과의 경계인 밭 입구에 와이어로 설치해둔 올무가 보였다. 끝에는 가로수의 지지대로 쓰는 2미터 가까이 되는 나무 두 개를 묶어둔 올무였다. 올무에 걸리며 그 긴 나무를 끌고 다니며 기운을 빼다가 어느 나무에 걸려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올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원래의 야생동물이 살던 땅을 경작해 밭을 만들었으니, 삶의 터전을 빼앗은 사람의 탓만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짐승들이 내려와 농작물을 해치니 잡아내야 할까? 딜레마에 빠진다. 올무는 제거를 해야 맞지만, 무작정 동물의 편에만 설 것인가? 밭을 일구어 살아가는 사람은 계속 피해만 봐야 옳은 것인가? 엽사를 불러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도, 전기울타리를 설치하는 방법도 다 의미가 있다. 그래도 무분별한 개발로 숲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이 제일 문제인 것은 맞다. 이쯤 되면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들 마무리 하지만 거기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본 경험들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어디에든 모범답안은 쉽게 나오지만 그것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유해조수인 멧돼지나 고라니가 생태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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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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