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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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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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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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실시간 이야기 기사

  • 당신의 옷장은 안녕하신가요?
    지난 7월에 옷을 정리하다 보니 옷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거의 사지 않는데도 옷장 가득 옷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옷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1년 6개월이 지났고 그 동안 옷을 구매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게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은 옷을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KBS 환경스페셜 캡쳐 우리가 의류 수거함에 버린 옷의 5%만 국내에서 소비되고 남은 95%는 해외로 수출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5위에 헌 옷 수출국이다. 그렇게 수출된 옷의 40%는 가난한 나라 어느 사막과 땅 그리고 강과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흰색 면 티셔츠 1개를 만드는 데 드는 물은 2,700ℓ로, 한 사람이 3년 간 마시는 양과 맞먹는다. 청바지 하나를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는 33kg 정도이고 이는 자동차 한 대가 111km 달릴 때 배출하는 탄소양과 같다. 국내의 경우 새 옷도 23% 정도는 팔리지 않아 헌 옷으로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새 옷을 버리지 못하는 법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그런 법이 없다. 무작정 만들고 팔리지 않으면 헌 옷으로 버려진다. 옷을 만들 때 버려지는 폐수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엄청난 양이 해양으로 버려진다. 쉽게 구입하고 유행이 뒤진다는 이유로 멀쩡한 옷을 두고 새 옷을 구입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옷은 죄가 없다. 멋지게 보이고 싶다면 옷을 구입하지 말고 헌 옷을 구입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난 토지 초등학교 나눔 마당에서 헌 옷을 두 개 구입했다. 두 벌에 2천 원이었다. 잘 입고 있다. KBS 환경스페셜 캡쳐 새 옷을 구입할 돈으로 운동을 하면 어떨까? 나는 중 3때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 때 옷을 입어도 잘 맞는다. 운동복도 대회에 나가면 주는 옷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옷이 없다면 헌 옷을 구입하고 그것도 안 되면 새 옷을 구매하면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렇게 하면 3-4년에 한 벌 정도만 구매해도 될 것 같다. KBS 환경스페셜 캡쳐 [78억 명이 사는 지구에서 한 해 생산되는 옷은 1,000억 벌. 이 중 330억 벌은 같은 해 버려진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주기는 더 빨라진다. 신상품을 내놓는 주기가 일주일까지 줄어든 '울트라 패스트 패션'의 시대. "저렴한 가격에 고민 없이 산 뒤 한철 입고 버린 옷, 그 편리함의 대가는 누가 치르고 있을까." 지난 1일 방송된 KBS '환경스페셜'의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카메라는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거대한 '옷 무덤'을 비춘다. 인구 3,000만 명인 이 나라에는 매주 1,500만 벌의 헌옷이 수입된다. 처치 곤란인 헌옷이 집 앞을 채우고도 넘쳐 강을 이루는 장면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kbs-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8
  • 그럴수 있어
    양희은의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 그녀의 노래 소리는 단단하고 힘차고 직선적이고 너무 여성적이지 않아서 좋다. 나는 노래 부를 기회도 없고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아는 노래가 별로 없지만 양희은의 노래는 좀 알고 있다. 그녀의 노래는 데모가가 되었고 금지곡이 되었었다. 양희은은 나보다 한살 많다. 그러니까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녀 왠지 모를 친근감이 있고 저절로 그녀의 노래는 귓가에 들려왔다. 대학시절 벌써 그녀의 데뷰곡 '아침이슬'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녀는 가수가 되자 바로 스타가 된 것이다. 계속 히트곡을 냈고 그녀의 히트곡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상록수), '한계령'은 우리들의 18번이 되었다. 그녀는 가장 노릇하느라 힘든 청춘을 보냈지만 사랑도 했고 이별도 했고 큰병도 얻어 시한부로 살았었고 외국에 살며 노래도 중단했었다. 유명한 가수로 성공했지만 사생활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어느날 티비에서 그녀가 노래하는걸 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머리는 너무 짧고 안경을 썼고 입은 좀 삐뚤어졌고 뚱뚱했다.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던 나는 그 시절 70년대의 그녀의 모습만 머리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목소리 만은 여전했다. 흠, 누군가 나를 보면 아마도 내가 그녀를 보고 놀랐듯 나를 보고 놀랄 것이다. 오랫만에 만난 후배는 나에게 이렇게도 말했다. "요한형은 알겠는데 누나는 전혀 모르겠어!" 겉모습이 변한 것 만큼 그녀는 책에 줄줄이 쓸 말이 많다. 이 책을 보면 현재는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방송을 24년째 하고 있고 노래도 다시 불러 젊은 가수와 콜라보도 많이 하고 신곡도 많이 발표했고 공연도 많이 한다. 이 에세이가 첫번째 책이 아니고 여기저기 글도 기고 한다. 시한부였으나 지금은 자신의 건강 뿐 아니라 남편과 엄마의 건강까지 책임지며 누구보다 씩씩하게 사는 것 같다. 이렇게만 나열하여도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고 얼마나 할 말이 많을지 짐작이 간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바람도 피웠고 요절했다. 그녀가 부른 '군인의 노래'를 나는 노래방에 가면 가끔 불렀었다. 한번도 불러보지 않아도 쉽게 부를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도 금지곡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글을 쓰며 자신의 금기 사항을 모두 드러내고 아펐던 상처를 치유했을 것 같다. 그녀는 목에 결절이 있지만 수술을 할 수 없기에 관리를 잘 하며 산다고 한다. 또 여러가지 역할이 있지만 가수로서 사는게 가장 힘든 것 처럼 얘기하며 정기적으로 혼자 여행도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노상 즐겁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힘들기에 그 만큼 보람이 있고 그러기에 즐겁고, 즐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직 즐겁지 않다면 덜 힘들기 때문이다. 70이 넘으면 이제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럴수 있어"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철이 덜 들었거나 너무 편히 살았거나 지독한 이기주의자 일 것이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7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다. 내 친구 중에는 많이 마셔도 얼굴도 빨개지지 않고 취하지도 않는 사람이 꽤 많ㄷ다. 살다보니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은 아주 적고 대부분의 사람이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가 좋아하는 술이 있다. 오래전 신부님과 봉성체를 갔을 때 영감님은 이미 곡기를 끊은 상태였다. 마나님은 곡기를 입에 대지 못하는 영감님께 막걸리를 드린다고 했다. 다른 건 입에 안대도 막걸리는 마신다며 하루하루를 막걸리로 연명하고 계셨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 마다 한마디 하시는 말씀은 막걸리는 곧 밥이라는 것이다. 어떤이는 술마실 때 아예 밥은 손도 안대고 막걸리만 마신다. 알콜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나지만 그래도 맛을 보지 않은 술은 없다! 고 장담까지는 못해도 큰소리는 칠 수 있다. 알콜이 들어있던 '활명수'를 마시고 얼굴이 빨개져 교정 잔디밭이 누워있던 나를 보고 놀란 친구 현숙이는 술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에게 나의 알콜 수준에 대해 떠들어댄다.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대학을 나왔어도 학창시절 막걸리는 입에도 댄 적이 없다. 그래도 술자리는 꼭 빠지지 않고 3차까지 챙기기 때문에 정지아가 거론하는 그 술 이름은 나도 다 알고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우실업 기획조정실 5부에 취직된 나는 (당시 같이 근무한 누구라도 이글을 본다면 ...하는 바램, 그들이 그립다)회식에 참 많이 갔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세로 치솟았으며 '대우'는 문어발식 성장을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 불을 밝혔고 덕분에 회식이 잦았다. 샥스핀을 비롯한 비싼 중국음식과 비싼 요정의 안주까지 이 때 다 먹어봤다. 내 앞에 있는 술잔을 피 할 수 없었던 나는 모두 술잔을 높이 들고 들이킬때 마시는 척 입만 대고 술을 상밑의 빈 잔에 붓는 일을 계속했다. 사람들은 의외로 남이 다 마시는지 어쩐지에 큰 관심이 없다. 보면 내 잔이 비어있고 볼 때마다 비어있는 내잔을 본 사람들은 나를 주당 취급했다. 얼굴은 말짱한데 술잔은 비었고...그래도 설마 계속 입이 아니라 숨겨논 큰 잔에 술을 붓고 있다고는 생각은 못 한 것이다. 당시 맛본 술 중에 최고는 꼬냑이다. 목줄이 타는 듯 맛은 강한데 코 끝에 맴도는 향에 취한다. 신기하게도 뒤끝이 깔끔하다. 그래서 좋아한다. 한남자가 좋아하는 50도가 넘는 중국 술 역시 향과 맛이 강하지만 뒤끝이 없다. 가장 많이 접하는 맥주는 맛도 여러가지지만 늘 머리가 아프다. 권하는 모든 술의 맛을 보지만 단 한모금 뿐이다. 한모금이면 족하다.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한남자는 술자리에 늘 나를 대동한다. 운전수가 있으니 본인은 실컷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 소리로 떠든다. 한여자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알콜 프라이머리 티텍터라고. 그말에 심통이 날 때면 '에이 확 마셔버려'라고 혼자 객기를 부리지만 그래봐야 나만 괴로울 뿐이라는 것도 안다. 정지아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장님과 마셨다는 가장 비싼 술 '맥켈란 1926'도 맛은 봤다. 뒤에 숫자 1926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좌우간 '맥켈란'이다. 미국에서 의사는 거의 다 부자다. 물론 한국도 의사는 무조건 부자지만 나라의 경제급만큼 부자의 급도 다르다. 한인의사가 어느 모임에서 내논 술이 맥켈란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취향은 시가와 함께다. 그 비싼 시가를 안 피운 것이 지금까지 후회다. 책 한권을 술과 술에 따라 오는 친구의 이야기로 채운 정지아 작가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는 34편의 술이야기와 더불어 각종 술이 다 나온다. 술을 잘 먹으면 이렇듯 이야기거리도 많을 것이다. 술이 술을 부르듯 술은 이야기를 부르기 때문이다. 물론 술과 그 술에 따른 사람과의 관계를 맛깔스럽게 쓴 저자의 능력이 우선이지만서도 술야그라면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고 싶어 할 것이다. 대전에서 주일학교를 할 때 선생 한 분은 너무 생긴것도 고상하고 말씀도 없으셨다. 이분이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완전 다른 사람이 됐는데 난 이런경우를 말로만 들었지 실제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정말 경이스러웠다고나 할까! 다른 사람이 되는데 그야말로 '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귀여운 익살쟁이라고나 할까! 틈만 나면 술을 멕여보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모습이 들통나서인지 얼마 안돼 그만두었다. 주일학교 야그가 나왔으니 술 얘기는 또 한 보따리지만 다른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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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6
  • 한 말씀만 하소서
    어떤 사람은 특수한 상황에서 뭔가를 기록하거나 행동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깊은 심연으로 침잠한다.잠을 자거나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거나, 영원한 잠을 위해 극한의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생긴대로 꼴리는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상황이라면 단 한자도 기록하거나 느낌을 적지 못한다. 그저 잠을 자다 영원히 자기만 바랐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상황을, 뭣이든 기록을 한다. 박완서 같이. 참척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이렇게 명료하게 쓸 수가 있을까? 그녀에게 신이 있었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나에게도 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안다. 때로 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대견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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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6
  • 인간의 시간
    엊그제는 영화보고 울고 오늘은 책보며 운다. 여인숙 달방에 사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마음 쓰는 작가 이강산 때문에 눈물난다. 이 사람은 아마도 천사의 변신 아니면 분신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인가. 모두가 한순간만이라도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이틀 내내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내게 던지면서 그 답변을 궁구하는데 몰입했다." p116 "마른 수세미처럼 생이 고갈된 자신을 살리는 이유는 죽이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p123 겨울 방에 물이 어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이사람에게 눈물이 난다. 그이 다큐 사진 여인숙 펀딩에 참여해 책을 받았지만 사실 보지 않았다. 보나마나 음울하고 우울한 인간의 삶이 흑백으로 찍혀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다보니 그 사진책이 궁금해 펼쳐본다. " 행복, 희망, 자유, 평화, 인권.인간의 근원적 특성을 포괄하는 추상어들.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담긴 낱말이다. 이것을 달방 가족들이 여인숙에서 살아가는 동안 입에 담을 기회가 올까. 그것은 언제일까.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전 내내 이 화두에 집착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일이 좀더 명확해지는 듯해서 마음이 고무되었다.p102 "나는 휴먼다큐 기획 의도를 소리내어 읽었다. 사회적 소외와 외면의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환기하고 공존과 상생, 인권과 평화를 도모함"p195 이런 사람의 마누라의 심정을 헤아려보고 또 자기 마누라의 심정을 헤아리는 그를 보며 그러기에 부부로 살아가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한때 존경했던 분은 고 제정구씨였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나의 생활 터전을 버리고 그들의 열악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제정구가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 이강산이 그런 사람이다. "몇번을 생각해 보았으나 휴먼다큐 여인숙 촬영이 먼저가 아니었다. 나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사람을 우선 살리고, 그들이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 먼저였다. 그들은 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아니라 내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는게 옳다는 판단이었다."p159 내가 한때 같이 놀아줬던 소년원의 아이들과 공주치료감호소의 환자들과 카토릭워커하우스에 밥 먹으러 오던 미국인들 생각이 난다. 이들도 국가에서 주는 생활비를 받아 살아갔지만 와서 먹는 점심은 풍성했다. 또 저녁까지 가져 갈 수 있었다. 나라가 부자니 가난도 질이 다르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술과 담배가 문제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최악으로 치닫는다. "인철 아우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 휘청거리며 역전 쪽으로 난 여인숙 골목을 빠져나갔다. 우두커니 지켜보는 인철 아우의 뒷모습에 언뜻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짐승이 오보랩되엇다. 푹설로 양식과 길을 잃은 숲속의 짐승. 가슴속 어딘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 겨울, 나는 지금 어는 숲에 서 있는지, 나는 짐승인지, 인간인지,"p155 "승기 형은 운동을 핑계 삼아 여인숙 골목을 걸을 때 외에는 종일 방에 누워 지낸다. 어쩌다 맥주를 마시는 일도 잇으나 대개는 매월 생계급여 받는 날, 하루뿐이다. 맥주를 두 번 마시는 순간, 그 금액만큼의 밥을 굶어야 한다. 형이 자신을 유폐시킨것처럼 방에 누워 지내는 까닭을 나는 여실히 안다. 허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형을 비롯해 많은 달방 가족들이 외출이나 실내 운동 따위의 움직임을 최소로 줄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p238 "형이 다리가 불편한 탓에 주차장 바닥에 앉혀두고 내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흘려주는 식으로 한 시간 남짓 닦앗다. 발톱은 싯누런 무좀 기운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손톱깍기로 해결이 되지 않아서 다음주에 철사를 자르는 니퍼를 준비해주겠다고 했다. 발등부터 발바닥까지 덕지덕지 쌓인 때를 벗기는 일은 하루로 부족했다. 당장은 냄새를 지우는 정도로 끝냈으나 며칠 더 닦기로 약속했다. "p303 "진실한 인간관계는 시간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p264 "진실이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며 최대의 프로파간다."p269 사람은 다 인간이라 불리지만 그 시간은 다 다르게 흘러간다. 인간다운 시간이란 어떤 시간인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2
  • 한 사람의 마을
    작가 류량청은 1962년 신장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십여 년간 농기계 관리인으로 일하며 시를 썼다. '시골 철학자' '이시대의 도연명' '20세기 중국의 마지막 수필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2013년 신장 텐산 비탈에 자리한 차이쯔거우 마을에 예술가 마을을 조성하고 무레이서원을 설립하여 버려진 마을을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잃어버린 고향 마을 대신 이곳에 정착해 10년째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 2023년 6월 차이쯔거우 예술가 마을에 류량청문학관이 설립되었다. 류량청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치 내 마음, 내가 살고 싶어하는 삶을 그가 대신 적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음의 움직임이나 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하나도 놓치지 않은 것 같은 글이다. 나도 이곳 시골에 들어 올때 이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나는 어떤가? 그의 글은 처음 먹은 마음 그대로 변치 않고 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듯하다. 아무데나 펼쳐 읽다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대지가 온통 캄캄할 때, 한 사람의 마음속 하늘이 가만히 밝아온다. 그는 일어나서 농기구를 들고 사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울리는 마을을 가로질러 밭으로 간다. 그리고 남몰래 한가지 일을 시작한다. 유난히 밝은 그의 마음 덕에 햇빛도 달빛도 등불도 필요 없이 할 일이 앞에 또렷이 놓여 있다. 평생의 업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언제나 뭇 사람을 뒤덮은 어둠 속에서 홀로 움직인다. p104 어느 해엔가 네가 돌아와 벽돌을 치워보면 비가 내릴 때마다 흠뻑 젖어 열쇠는 잔뜩 녹슬어 있겠지. 그걸 보면서 너는 집을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는지 퍼뜩 깨닫겠지. 또, 어느 해에는 벽돌 밑이 텅 비어 있을지도. 그러면 너는 대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겠지. 그때 마을에 남은 집은 이미 얼마 없다. 곳곳이 빈집이고 곳곳이 경작할 사람 없는 황무지다. 너는 외부인처럼 담장에 기어올라 우리가 오랫동안 살았던 낡은 마당을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겠지.p165 바깥에서 일하던 사람이 자기 집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모습을 보면, 자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느낌이 절로 일어난다. 밥 짓는 연기는 집의 뿌리다. 대지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연기에 의지해 아득하고 낯선 바깥세상과 어떤 신비로운 연결을 유지한다. p174 내 어머니 고향이여, 내가 삶의 저편로 사라질 때 나는 달리 갈곳이 없다. 그저 그곳, 너에게로 돌아갈 뿐이다. 나에게는 천국이 없다. 오직 고향이 있을 뿐. p351 무언가 하나라도 나를 맞으로 나와야 하는데. 닭 한 마리, 나귀 한 라리라도.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저 흙먼지만 천천히 떨어져 내릴 뿐이다. 마을 밖 황야로 떨어지는 해는 멀리 타향으로 떠나는 것처럼 얼굴을 홱 돌린다. 그에게 왜면당한 나는 좀 서글퍼진다. 이런 황혼 속으로 한 사람이 돌아온 것은 먼지 한 톨이 떨어지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p353 나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다. 천국이 있을 뿐. 내가 사는 이곳이 고향이고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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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2
  • 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요양병원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헤르만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체코인이 아니고 유대인이었다. 독일 국민은 아니었지만, 독일어를 사용했다. 태어나서부터 병약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카프카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되기 직전까지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는 힘든 외판원을 하며 가족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벌레가 되어 버리자 가족은효용이 사라진 그레고르 잠자를 처음에 보살피지만 결국 냉대하고 사라지기를 원한다. 결국엔 그는 벌레로 죽는다. 고레고르가 죽자 가족은 평안함을 느끼고 산책하러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친절한 소설이 아니고 읽고 나서도 개운한 소설도 아닌 데다가 쉽게 해석되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오히려 카프가의 소설보다는 무라까미 하루끼가 쓴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 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은 15살의 남자아이다. 그는 15살이 되자 본인의 이름을 카프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은 네 탓이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예언 탓도 아니고, 저주 탓도 아니지. DNA탓도 아니고, 부조리 탓도 아니고, 구조주의 탓도 아니고, 제 3차 산업혁명 탓도 아니야. 우리들이 모두 멸망하고 상실되어 가는 것은, 세계의 구조 자체가 멸망과 상실의 터전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원리의 그림자놀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 바람은 불지. 미친 듯이 불어대는 강한 바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있어. 그러나 모든 바람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져. 바람은 물체가 아니야. 그것은 이동하는 공기의 총칭에 지나지 않아. 너는 귀를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는 거야." -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함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가 자신의 효용이 다하는 날이 온다. 즉 인간 존재에 대한 상실하는 순간 말이다. 그것이 언제인가? 그레고르 잠자는 더 이상 가장으로 돈을 벌지 못하자 효용이 다한다. 효용이 다하자 그동안 사업에 실패하고 무기력했던 아버지는 다시 직장을 나간다. 어머니는 하숙을 한다. 활력이 없던 가족은 가장역할을 하던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어 버리자 다시 활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그레고리는 하기 싫던 억지로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사무실 주변엔 구례 병원 요양병원이 있는데 가끔 병원에 갈 때 요양병원 안 병실을 보게 된다. 한 방에 4~6명의 누워 있는 사람들 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이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 누군가 죽어 나가면 빈 침대엔 새로운 인간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카프카가 이 병실을 보았다면 침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말한 변신한 그레고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대부분 가족은 요양병원에 가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가족에서 돌보기 어려우므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처음에 자주 찾아가지만, 점점 방문이 줄어든다. 주말엔 항상 일이 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개월에서 수년을 요양병원에 있게 되면 슬슬 이제 죽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있는 가족이 죽게 되면 홀가분한 생각을 하게 되고 밀어둔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효용을 가지고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효용이 없는 인간은 잉여 인간이 되고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다. 폐기 처분 되지 않는 방법은 병들지 않아야 하며 돈을 벌거나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노인들은 공공 근로를 신청하기 위해 바쁘다. 자신이 아직은 효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장들이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평생 하기도 싫은 일에 매달린다.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어쩌면 폭력에 가까운 압박에 의해 어쩔 수없이 지친 하루하루를 숙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가 벌레가 되어 버리면 폐기 처리가 될 운명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레고르의 시체를 확인한 어머니는, 비로소 그의 몸이 납작하게 말라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누이동생은 이따금 아버지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가족 테이블에 앉아, 세 통의 결근계를 작성했다. 오늘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여러 달 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 소풍을 떠났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11
  • 사흘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탄한 지리산 제일의 전망대
    12월 중순인데도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였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 금대산(金臺山, 851.5m)으로 오르는 산길 길섶에는 쑥부쟁이의 연보라색 꽃이 반갑게 남아 있었다. 함양 마천면은 예로부터 지리산 가는 으뜸 관문이었으며, 지리산을 조망하는 이름난 전망대가 많았다. 오도재 위의 삼봉산과 마천의 임천(瀶川)을 내려다보는 금대산 등, 이 지역은 지리산 주능선의 북쪽에서 지리산을 전망하기 좋은 지형이다. 함양 금대암 금대 너럭바위 위 전망(사진 이완우)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은 임천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어서 산줄기로는 지리산 주능선에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금대산에 있는 금대암과 안국사 등의 사찰을 지리산 절집으로 기록했다. 임천강 물줄기의 근원을 지리산의 만복대 반야봉과 노고단 등의 지리산 주능선으로 보았고, 지리산의 개념을 산줄기와 물줄기를 통합하여 이해한 것이다. 함양 금대암 금대 너럭바위(사진 이완우) 함양 금대산은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로 알려져 왔다. 지리산에서 이곳 금대산 또는 금대암이 으뜸가는 전망대라는 의미이다. 부처가 앉는 자리인 연화대를 금대라고 하는데,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 정토에서 공덕이 으뜸인 자에게 앉게 하는 자리를 금대라고도 한다. 마천면의 임천 옆 도로에서 건너편 도마 마을의 그림처럼 펼쳐진 다랑논 논배미를 보며 금대암까지 2.5km의 임도를 올라갔다. 이 임도의 중간 지점에 안국사로 향가는 갈림길이 있다. 금대암 가는 임도는 경사도가 만만치 않으며 산줄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금대암에 이르면 암자 앞에 높이 40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고 수령이라는 전나무가 눈에 띈다. 이 전나무가 지리산의 기상을 표상하는 듯하다. 나한전 옆에 집채만 하게 우람한 너럭바위 윗면은 천연 좌대(坐臺)로서 이곳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장엄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함양 마천면을 중심으로 활처럼 휘어져 생동감 넘치는 전망이 펼쳐졌다. 함양 금대암 앞 전망(사진 이완우) 금대암에는 도선 국사의 일화(逸話)가 전해온다. 그가 지리산 여러 곳을 돌아보며 수행하면서 이곳 금대암 너럭바위에 이르러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을 보았다. 그는 사흘 동안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도선 국사는 이곳에 머물러서 이 바위 옆에 나한전을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 관리나 선비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는 함양에서 지리산의 유산(遊山)을 출발하는 사례가 많았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 유산은 심성 수양의 실천과 탐구의 과정이었다.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두류기행록'에 의하면 그가 이곳 금대암을 방문(1489년 4월 16일)하여 승려들의 범패 수련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 승려가 물을 긷고 있었다. 뜰에는 모란 몇 그루가 있어 반쯤 시들었어도 매우 붉었다. 승려 20여 명이 뒤따르며 범패를 하고 있었는데 속도가 매우 빨랐다. 금대암이 범패의 정진 도량이라고 한다. 그 법이 정일하여 잡됨이 없고, 나아가되 물러섬이 없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매진한다고 했다. 함양 금대산 능선길 암괴 천연 방장(사진 이완우) 함양 금대산 지역은 신라의 정치 세력과 관련이 깊다. 태종 무열왕 때인 656년에 이 산에 안국사와 금대암을 함께 창건하였다. 이곳 금대암에서 임천 건너 내려다보이는 군자리에 있었던 군자사(君子寺)는 태종 무열왕의 외조부인 진평왕이 어린 시절 3년간 머물렀던 잠저 터이다. 군자사는 천년 사찰로 조선 시대 중기까지 건재하였고, 금대암과 군자사는 지리산 유람을 시작하는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에 선비나 관리들은 금대산 금대암에서 지리산을 조망하고, 금대산을 내려가 군자사에 며칠씩 머물기도 하였다. 유서 깊은 천년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군사사터를 금대암에서 가늠해 본다.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의 '유두류산기'에 그가 지리산을 유산하며 군자사에 머물렀던 기록을 남겼다. 대전(大展)과 방옥(房屋)이 모두 매우 크고 화려하다. 절 서편에는 새로 지은 별전이 하나 있는데 금빛과 푸른빛으로 화려하게 단청하였고 '삼영당(三影堂)'이라 한다. 이 당 안에는 청허(淸虛), 사명(四溟)과 청매(靑梅) 세 대사의 진영(眞影)이 있다. 금대산 정상 금대 암릉(사진 이완우) 금대산 정상은 금대암에서 0.7km 능선 길을 올라가야 한다. 함양 마천면 지역은 노출된 바위와 기반암이 검은색이 짙은 석질이 좋은 마천석 화강암이다. 산 능선에 돌출한 검은색 화강암 바위들은 품격이 출중하다. 산 능선 산길 양쪽에 집채만 한 바위가 비스듬히 맞대 산길이 천연 방장을 이루고 있다. 비바람을 피하며 머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되겠다. 금대산 산마루에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앉아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가깝게 등구 마을이 보이고, 오도재가 보였다. 휴천면으로 흐르는 임천강이 보이고, 천왕봉 아래 칠선 계곡이 보였다. 지리산 천왕봉, 중봉, 제석봉에서 노고단까지 생동감 넘치는 기상으로 주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금대산 정상에서 백운산(白雲山, 903m)으로 향하는 1km의 능선 길은 돌출된 바위와 울창한 숲을 지난다. 백운산 정상은 나무들이 무성하여 지리산 조망이 쉽지 않았다. 지리산은 청산으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데, 백운산은 흰 구름이 오고 가고 있으며 한가로웠다. 금대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마루 구간은 지리산의 동부능선에서 서북능선까지 잘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힌다. 금대산 정상 지리산 조망(사진 이완우) 백운산에서 손에 잡힐 듯한 풍경으로 오도재와 삼봉산을 조망하고, 금대산으로 되돌아왔다. 금대산에서 안국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지름길은 조릿대 군락 사이로 오솔길이 선명했다. 조릿대 잎이 숲속 바람에 흔들리는데, 습기 머금은 오솔길의 황토색 토양은 먼지 없이 깨끗하였다. 금대산을 내려오면서 내내 생각해 보았다. 금대산이 지리산의 드높고 맑은 기상을 품고 싶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염원이 서린 산이 아니었을까? 금대산과 금대암의 시대를 초월하여 금빛으로 빛나는 '금대(金臺)'에서 속세의 인연으로는 태종 무열왕의 사위가 되는 원효 대사의 정토 사상이 연꽃 향기처럼 피어나고 있는 듯했다. 지리산 여느 산줄기의 등산은 수려한 지리산 자연의 풍광에 더하여 역사와 설화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인문학적 유산(遊山)으로서 의미가 가치가 새롭다. 임천강변의 우람한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의 표지석은 지리산 제일 전망대로 여겨지는 금대산 탐방의 설레는 시점이며 뿌듯한 종점이었다. 지리방장 제일금대 표지석(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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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2-11
  • [12월 22일,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밤이 가장 긴 날, 동지를 지나면 음에서 양으로 흐름이 바뀌고 태양이 다시 살아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시기, 지리산 이웃들 함께 붉은 팥죽 쑤어 먹으며 세상 악귀 몰아내요. 어려운 일은 나누고 서로 등을 도닥여주어요. 길가의 풀들도 숲속의 고라니도 새해를 준비하는 때, 우리들의 새 마음을 이야기해요. 2023년 12월 22일(금) 동짓날 11:30~15:30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11시30분동지팥죽 나누어 먹어요 12시30분지리산권 5개시군 현안 공유 / 「나의 지리산 선언」 갈무리 / 2024년 나와 지리산 물어보기 010-9996-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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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2-06
  • 지리산 작은 사찰에서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하였다니
    절기로는 대설(大雪)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아침은 늦가을 같았다. 함양 마천면의 임천(瀶川)강 옆 도로에서 지리산 안국사로 올라가는 1.3km의 산길은 맑은 바람의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강 건너 도마 마을의 다랑논이 아침 안개 어린 풍경 속에 그윽하게 보였다. 지리산 임천 풍경[사진 이완우]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851.5m) 자락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는 지리산을 가깝게 바라보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시대 태종 무열왕(603~661) 때인 656년에 창건되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안정된 통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함양 안국사는 그 이름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무열왕의 의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지리산 안국사[사진 이완우] 함양 안국사는 조선 시대 후기에 어린이의 병을 고치기 위한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保幼新編) 편찬하여 민간에 널리 보급한 의미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작은 사찰에 전해오는 이 소중한 역사와 이야기를 찾아보는 탐방을 하였다. 보유신편은 1843년에 성주 독용산성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에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이곳 함양 안국사의 승려 정훈(正訓)이 1844년에 이 초간본 보유신편을 가져와서 이 지역 함양의 유학자인 노광리(盧光履, 1775~1856)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책을 세상의 의자(醫者)들이 실속 없는 책으로 보니 오래 지나면 없어질까 염려됩니다. 이에 재산을 털어 이 책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자 합니다. 선생은 한마디 말씀을 적어주시어 책머리에 올리게 해 주십시오. 집집이 이 책을 소장하고 활용한다면, 어린이는 병을 고쳐서 자비의 배를 타고 장수(長壽)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곳 함양 안국사에서 1845년 칠석날에 노광리의 서문을 붙인 소아과 목판본 의서 보유신편(保幼新編)을 중간(重刊)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그런데 이 보유신편 책자는 성주와 함양의 안국사 두 사찰에서 간행되기 200년 전에 대전에서 신만(申曼, 1620~1669)이 써서 전해오던 책이었다. 논문 '주촌 신만의 보유신편 편찬과 주촌신방'(양승률, 2012)에 보유신편의 저자인 신만과 이 책이 써진 과정이 잘 밝혀져 있다. 대전 지역에는 고려말부터 그 지역의 한 유력 가문에 의해 미륵원이 건립되어 여행자들의 숙식과 의료를 제공하였었다. 이런 적선 활동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서 백성을 위해 약방문과 우리말 약초 이름을 정리하고 복용법 등을 쉽게 제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 전경[사진 이완우] 신만은 병자호란 후 송시열 문하에서 학업 하였는데, 외아들이 천연두에 감염 사망하였다. 그는 향촌민의 질병과 고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실용적인 의약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신만은 미륵원의 적선 전통이 의국(醫局)으로 운영되며 전해오는 대전 지역의 진잠 주촌(현 대전시 유성구 용계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직접 약초 재배와 임상 등을 연구하고 소아의 질병 대처 방안을 많이 처방하여 보유신편을 저술했다. 이렇게 17세기 중반에 쓰인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을 200년 후인 19세기 중반에 상주의 안국사에서 간행하였고, 사찰 이름이 같은 함양의 안국사에서 지방의 유림과 사찰이 서로 소통하고 협조하여 백성들에게 필요한 의서를 간행하여 향촌에 유포하였다. 지리산 안국사 풍경[사진 이완우] 어른 열 명은 고칠지언정 소아 한 명은 고치기 어렵다. 소아는 오장 육부가 취약하고 기혈이 안정되지 않았다. 경락, 혈맥과 숨결이 가는 실과 같아서 허하기도 하며 실하기도 쉽고, 냉했다가 실해지기도 한다. 소아는 증상을 말하지도 못하고, 손으로 아픈 곳을 가리키지도 못한다. 이러한 동기로 17세기 후반에 신만이 보유신편을 집필하고, 19세기 중반에 상주 안국사와 함양 안국사에서 이 책자를 간행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소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우리나라에 안국사(寺)라는 이름의 유서 깊은 사찰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들 사찰은 이름부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염원을 담고 있는데, 나라 국(國)은 왕조 시대에는 임금만을 의미하기도 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발간한 함양 안국사에서는 백성을 위한 진정한 안국(安國)의 마음을 실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는 새롭게 전각을 건립하고 도량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찰 입구에 있는 고색창연한 4기의 부도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홍시가 매달린 낙엽 진 감나무와 색다른 대조를 이루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한 소중한 역사가 전해오고 있는 함양의 안국사는 지리산의 산줄기에 잘 어울리는 마음이 넉넉한 사찰이었다. 지리산 안국사 감나무[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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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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