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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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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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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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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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실시간 이야기 기사

  • 시골 빵집이야기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원 금지면에 우유와 달걀을 쓰지 않고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간 것 같다. 지금은 우리밀 빵을 만드는 곳이 꽤 많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구례에는 우리밀 빵집이 수입밀을 사용하는 빵집보다 많다. 아마도 우리밀 재배를 많이 하고, 가까운 곳에 우리밀 가공공장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15-6년 전에는 우리밀 빵집을 보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우유와 달걀을 넣지 않고 통밀로만 빵을 만드는 곳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고집에 끌려서 인연이 되었을 것 같다. 건강한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밀 통밀빵을 만든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하고 계셨다. 어느 날 빵 공장에 갔더니 꼬맹이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누구예요? 우리 딸들이에요. 예쁘죠! 네…. 딸이 있었나요? 네. 이상하게 생각하자 모두 입양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집에 아들만 두 명이었고 이미 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교에 다녀오면 빵 공장에서 숙제를 하고 빵을 간식으로 먹고 있던 꼬맹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청년이 되었다. 어제 오랜만에 빵공장을 찾았다. “사장님.. 아이들은 이제 다 컸죠. 이제 대학생 고등학생쯤 되었겠네요.” 했더니 초등생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사이 한 명을 더 입양했다고 한다. 아이가 ADHD에 지적장애가 있어 오랫동안 입양이 안 되고 있어서 입양했다고 한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래도 아이가 다른 사람들은 자기에게 자꾸 화를 내고 뭐라고 하는데 엄마는 나를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할 때마다 힘이 난다고 하셨다 발달장애나 지적장애 또는 ADHD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일반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 10배 이상 힘이 들 것 같다.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아이와 실랑이하다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가 농사일도 잘하고 너무 귀엽고 예쁘다고 한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맘이 아파서 이미 세 명을 입양 했는데 또 입양한 분들이라니…. 아이들이 많다 보니 빵만 만들어서는 키우기 힘들어 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직접 키운 밀로만 빵을 만들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포도 농사와 사과 대추 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과일 농사를 하니 아이들이 포도와 대추도 맘껏 먹어 좋다고 한다. 착한 소비라는 말이 있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생각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착한 소비일 것이다. 구매는 일종의 투표 행위와 같다. 이분들의 만드는 빵이야말로 좋은 투표라는 생각이 든다.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11-25
  • 꿘투
    꿘투 관장님께 권투는 권투가 아니라 꿘투다 20년 전과 바뀐 것 하나 없는 도장처럼 발음도 80년대 그대로다 가르침에도 변함이 없다 꿘투는 훅도 어퍼컷도 아니라 쨉이란다 관중의 함성을 한데 모으는 KO도 쨉 때문이란다 훅이나 어퍼컷을 맞고 쓰러진 것 같으냐 그 전에 이미 무수한 쨉을 맞고 허물어진 상태다 쨉을 무시하고 큰 것 한 방만 노리면 큰 선수가 되지 못한다며 왼손을 쭉쭉 뻗는다 월세 내기에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20년 넘게 아침마다 도장 문을 여는 것도 그가 생에 던지는 쨉이다 멋없고 시시하게 툭툭 생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도장 벽을 삥 둘러싼 챔피언 사진들 그의 손을 거쳐 간 큰 선수들의 포즈도 하나같이 쨉 던지기에 좋은 자세다 (이장근의 시「꿘투」전문) 요즘 TV중계 속에서 공공연하게 돈벌이 혈투를 벌이는 종합격투기에 밀려 사양길에 오른 꿘투는 묘한 향수를 불러온다. 당시 헝그리 복서들은 그래도 뭐랄까 일정부분 순정적인 면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의 깡패와 요즘 조폭의 차이라고나 할까. 폭력의 상품화라는 관점으로 보면 20년 전의 복싱이나 요즘 격투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만 그래도 영혼들까지 자본에 팔아넘기는 요즘 세태와 비교해보면 꿘투에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서러운 살림살이의 애환이라는 스토리를 함유하고 있기도 해서 왠지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시 속의 권투 도장 관장님도 20여 년 동안 돈벌이도 되지 않는 도장을 고집스럽게 운영하면서 권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꿘투 철학은 ‘꿘투는 훅도 어퍼컷도 아니라 쨉이다.’ 라는 것이다. 권투의 핵심은 쨉이라는 그의 생각은 ‘일상성의 철학’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사는 하루의 삶을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누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직장에서 늘 하는 업무도 보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도 보고 잔다. 특별한 사건 없이 보내는 하루 일상은 대개가 이렇다. 이게 ‘쨉’이다. 사는 동안 어떤 특별한 큰 사건들을 만나는 것이 훅이나 어퍼컷일 것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봐도 일생의 팔구십 프로가 쨉이다. 다시 말하면 허접한 일상의 시간들이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의 시간들이 바로 삶의 과정이다. 많은 식자들은 삶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목표를 중시하는 삶은 결과주의적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다거나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 자체보다는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라는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간다는 것은 방황이다. 그래서 목표는 필요하지만 결과주의적 삶을 살지는 말자는 것이다. 지리산의 어느 깊은 숲에서 홀로 피고 진 꽃은 실패한 꽃이고, 화려한 도심의 전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칭찬받으며 전시되어 있는 꽃은 성공한 꽃일까. 날아가는 나비들에도 성공한 나비가 있고 실패한 나비가 있을 것인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본질에서 보면 생명들의 삶에는 실패나 성공은 없는 것이다. 다만 치열하게 그 생명을 발화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일상성의 철학’은 이러한 일상적 삶의 의미성을 중심에 놓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하게 되는 삶의 자질구레한 행위들을 자질구레하다고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링 위에서 수없이 날리는 쨉이 결국은 경기 자체를 결정하듯 허접한 우리 일상이 결국에 가서는 우리의 인생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매일 세끼 밥 먹는 일 같은 그 허접한(?) 일상을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내느냐는 이야기다. 우리가 무수히 ‘쨉’을 날리며 사는 일상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쨉’은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생각 없이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깨어있으려는 치열함에 닿아있는 ‘평범함’이지 않겠는가. -빗점골 가을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2-11-15
  • 외규장각 의궤와 귀환
    예전 KBS에서 보여준 정조의 화성 축성, 그리고 화성행차를 다룬 다큐를 보고 의궤의 정밀함과 세련됨 알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런 아름다움과 세련된 아름다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빛나는 유산이라 생각했죠. 박흥신의 '반환 교섭 막전 막후,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과 유복렬의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무도한 제국주의 프랑스 군대의 방화와 노략질에 잃었던 의궤들의 귀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두권의 책은 재미있고, 잘 읽히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책이죠. 의궤 반환 실무자였던 참사관 유복렬과 현장 최고 책임자였던 프랑스 대사 박흥신의 동일 시점, 동일 주제 다룬 이책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고구마 몽땅 먹은 듯 답답하기도 합니다. 현장 책임자와 실무자의 글을 함께 읽으니 당시 현장과 협상 과정이 확실히 파악됩니다. 거의 틀림없을 겁니다. 물론 책들은 같은 듯 서로 다릅니다. 재미는 유복렬의 손을 들지만, 박흥신의 책도 또다른 정보와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읽어야 전체 과정이 완전히 손에 잡힙니다. 읽으며 생각이 많았습니다. 천주교 박해에 의해 처형당한 9명의 신부와 그에 따른 정당화 논리, 사냥개 처럼 논의에 풀어놓은(고의로 풀어 놓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상송사무장, 뻔뻔한 '문화재 불가양 원칙'. 과연 문화와 영토 문제는 이성만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문화'는 아름답고 고귀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것 만큼 '차별과 배제 그리고 우열'를 손쉽게, 편리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개념도 없습니다. 문화는 종교와 함께 제국주의의 첨병이기도 했습니다. 반환이 끝난 마당에 많이 주제넘는 생각이지만, '대여' 형식으로 그 귀중한 의궤를 국내에 들여 놓는것이 과연 실용적인 판단이었는지 계속 머리에 맴돕니다. 차라리 거부하고 경제나 외교협상에서 계속 프랑스 압박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오히려 우리 정부와 협상 담당자들이 서두르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의궤 반환을 자존심 회복으로 여긴 국민 정서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너무나 소중한 책이지만, 오히려 너무 소중해서 무엇이 명분이고 무엇이 실리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권해봅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임시 사서로 근무하던 1975년, 국립도서관 별관창고에서 '조선의 의궤'들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신 고 박병선 선생을 기억합니다. 전문가가 아닌 지식인이셨습니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2-11-04
  • 단풍이야기
    <국립공원의 가로수가 산의 경치를 가로막고 있다.> 계절은 봄에 꽃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새순과 더불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계절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나뭇잎과 동무하여 내려오고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연분홍의 수줍음으로 산을 오르더니 내려올 때는 빨갛고, 노랗게 잔뜩 상기되어 내려오고 있다. 단풍이 든 것이다. 단풍이란 무슨 말일까? 노란 은행잎을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붉은 단풍나무를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갈색으로 변한 잎들을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단풍은 어떤 색일까? 사람들은 단풍이라 하면 붉은색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단풍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붉은 색을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풍은 붉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란색을 포함하여 나뭇잎이 변해가는 여러 가지 색들이 있다. 그럼에도 붉은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붉은 것은 열정적이고, 뜨거운 색이어서 뇌리에 깊게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단풍(丹楓)은 붉은 ‘단(丹)’에 단풍나무 ‘풍(楓)’ 자이다. 단풍나무 ‘풍’은 나무 ‘목’에 바람 ‘풍’ 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단풍은 붉은 바람이 나무에 드는 것이다. “나무에 붉은 바람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감상적인 의미가 들어 있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단풍이다. 붉은 빛을 강조한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도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색깔 중에서 유독 붉은 빛이 기억에 남았었나 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유독 가슴을 설레게 한다. 봄에 피는 꽃이 그러하며, 겨울에 내리는 눈이 그러하고, 가을날의 단풍이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러나 단풍으로 인해 설레는 것은 봄의 흥분과는 다르고, 겨울의 편안함과는 다르다. 가을의 설레임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설레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가을 낙엽이 주는 멋은 역시 고독한 설레임이고 외로운 가슴이 뛰는 것이다. 가을에 지는 낙엽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부터 뜨거운 여름을 지나 보내고, 결실을 맺는 가을을 갈무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을의 멋을 만나기 위해 산을 찾는다. 내가 사는 주변인 지리산 뱀사골에도 아주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그리고 길에서 단풍을 뒤로하고 멋지게 인증 샷을 찍는다. 사람들이 예쁘게 사진을 찍는 데 불편하다. 삼삼오오 모여서도 찍고, 혼자 멋을 내며 사진을 찍는 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가로수로 심어진 단풍나무 때문이다. 그냥 단풍나무가 아니라 새순 때부터 붉은 잎을 달고 나오는 ‘홍단풍(노무라단풍)’이어서 불편하다. 우리의 산에, 아름다운 국립공원에 단풍을 구경을 와서 홍단풍 앞에서 멋있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국립공원은 생태계를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국립공원 내에서는 나뭇잎 하나를 따서도 안 되며, 가을이 되어 말라버린 억새를 하나 꺾어도 안 된다. 2010년 어느 가을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단풍을 보러 성삼재에 올랐다. 시암재 방향으로 도로를 걷다 눈앞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니 씨앗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민들레 씨앗을 날리던 생각이 나면서 억새를 하나 꺾었다. 아들 앞에서 민들레 씨앗을 후하고 불어 날리듯이 입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보았다. 억새는 민들레처럼 날리지 않았다. 이 광경을 누군가 보고 있었다. 공단 직원이 소리치며 달려와서는 혼을 낸다. 국립공원에서는 풀하나 나뭇잎 하나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을 모르냐고 아주 강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들 앞에서 많이 머쓱해졌다. 그렇지만 잘못한 것은 맞기에 미안하다고 했다. 잠시 지난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국립공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 왜 일본단풍나무와 그것을 개량한 노무라 단풍을 심었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이 그냥 단풍인 줄 알고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가 일본산이란 것을 알면 쓴웃음을 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비단 일본산 나무를 심은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립공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그곳에 살고 있는 나무와 풀이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가로수가 모두 막아버린다. 가로수는 삭막한 도시의 녹색을 담기위해 심는다. 도시의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심는다. 바쁜 도시의 생활에서 잠시 시선을 풀꽃에서 쉬어가라고 심는 것이다. 이런 가로수를 깊은 산의 골짜기마다 심는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무계획적이고, 무조건적인 가로수 심기는 정말 재고되어야 한다. 이야기하는 김에 한두 가지를 더 보태려 한다. 뱀사골에서 성삼재로 가는 길에 심어진 만첩빈도리(겹꽃일본말발도리)와 영산홍(일본철쭉을 개량해서 만든 것)도 정리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립공원이 진짜로 우리의 산이 되고, 인간의 간섭이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사람들은 산의 아름다움을 만나고자 모여들고 있다. 산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계절을 내려 보내고 있다. 먼 산의 능선에서 시작한 단풍은 이미 사람의 마을 가로수에까지 내려와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낙엽이 흩날린다. 어린 날 책갈피에 꽂아두던 은행잎이 생각난다. 그래 은행잎 하나를 주워야겠다.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심어진 홍단풍으로 인해 사람들은 일본단풍나무가 지리산 자생종인줄 안고 단풍예찬비까지 세웠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10-26
  • 가난한 시인의 사회
    가난한 시인의 사회 -박두규 시인 오래전, 한 시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시인들은 ‘한 시대의 퇴장’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상징성이 있는 시인이었다. 1980년대 벽두에 처음으로 노동자 문학이라는 영역을 일궈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문단에서 비중 있는 중견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성과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이념적이고 정치사회적인 시만을 쓰며 투사적 삶을 산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서정성 짙은 본류의 문학을 했고 그런 성과를 이룬 많은 시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랬대서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말한 것은 순전히 그의 일상적 삶이 가졌던 상징성 때문이다. 그는 부안군 변산 출신이며 전주고 1년을 마치고 중퇴한 ‘박영근’이라는 시인인데 그의 일상은 여느 현대인의 일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한마디로 대책 없는 사람이었고 그를 이해하는 시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 시대의 형벌을 대속하는 자와도 같았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형벌이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도 아니고 바로 가난이다. 현대의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굴욕적인 것이며 비속해지는 것이며 비굴해지는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난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인들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와 일상의 삶이 그렇게 구조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 박영근은 그 가난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자본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현대라는 괴물에 저항하며 온몸으로 싸우던 전사였다. 무슨 사상과 조직을 가지고 기획된 싸움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의 일상생활이 그랬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돈에 구속되어 있지 않았고 어쩌면 자유로웠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가난은 두려움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나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밖에서 행사를 하고 술 한 잔 후에 집에 12시를 넘겨 들어갔었다. 그런데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급히 출두해달라는 것이었다. 박영근이라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이 한밤중에 순천의 파출소에 있는 것일까. 나는 급히 파출소로 갔다. 그는 술 한 잔을 하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내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그는 나의 고등학교 2년 후배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길로 바로 택시를 타고 전남 순천까지 왔던 것이다. 물론 그의 주머니에는 최근에 받은 몇 푼의 원고료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 사는 그로서는 한 달도 더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겠지만 택시비로도 모자란 돈이어서 택시 기사가 파출소에 데려갔던 것이다. 덕분에 나도 그와 밤새워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출근도 하지 못하고 내 일상의 견고한 틀을 한 번 깰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일을 나만 겪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그에 있어서 이러한 사건은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 자본에 길들여져 가는, 그리고 돈 앞에 무릎 꿇기 시작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억지를 썼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니 그건 분명 억지가 아니라 온몸으로 저항했던 거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이 사회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가 새벽 2시건 3시건 거는 전화도 우리의 일상을 깨는 그의 일상이었으며 우리의 일상을 반대하고 이 세상에 저항하는 이 시대 마지막 순정한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제 그처럼 살아낼 사람도, 그런 저항을 수용해줄 사람도 없는, 참으로 고적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쓴 졸시 하나를 소개한다. 늦도록 술에 젖다가/ 전화를 거는 시인이 있다./ 새벽 3시가 넘어 전화를 받은 나는/ 갑자기 이부자리 속 남편에서/ 생뚱맞은 시인이 된다.// 창밖의 희붐한 빛살을 타고/ 취한 시인의 목소리가 건너 왔다./ 20여 년 서울 생활에/ 지금도 갈 곳이 없다는 시인의 말이/예전엔 은유로 들렸던 그 말이/ 이젠 그대로 슬픔으로 온다./ 슬픔의 그림자까지 그대로 따라 온다.// 하지만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이젠 눈물도 아름다운 나이가 되어/ 새벽안개에 젖은 시인의 취한 목소리도/ 아무런 저항 없이 내 잠자리에 들어와 눕는다./ 달랑 목숨 하나 걸어 놓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서글픈 것들도/ 이제는 차라리 아름다움으로 온다.// (졸시「시인의 전화」전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2-10-25
  • 구례 사람은 두 배 더 재밌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그것도 가능하면 지역성이 강한 소설을 더 좋아한다. 소설 속의 배경을 이해하고 읽는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과는재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 고향을 배경으로 쓴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이 그랬다. 옆 동네 내촌마을과 죽산, 하시모토 농장 등 내가 이미알고 있는 동네가 나오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마냥 소설 속의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구례에 19년을 살았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 대부분을 알고 가본 곳들이다. 소설속의 주요 배경인 아버지를 떠나보낸 산림조합 장례식장은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고작 400m도 떨어지지 않았다.오거리도 반내골도 가려고 하면 5분 20분이면 가는 곳이다. 반내골은 2008년에 처음 가봤다. 그때 내가 일하던 사무실은 간전면 양동마을에 있었다. 오래된 한옥이었다. 딱 이맘때 볕 좋은 오후에 반내골에 살던 손종안씨에게 전화가 왔다. 토종꿀을 좀 팔아달라는 이야기였다. 문척면 반내골과 간전 양동마을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 지척이다. 별일 없던 나는 그날 오후에 그와 함께 반내골에 갔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이제 막 오산에 가려져 가고 있었다. 골짜기 깊은 곳에 마을이 이었는데여기저기 밤과 감나무가 많았다. 그 사이에 산속에서 그는 벌을 키우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 애써 챙겨준 간식거리를 먹고 대충 이야기를 끝냈다. 마을을 떠나오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돌아봤다. 여기구나…. 1990년 초에 나는 정지아 작가의 빨치산의 딸을 읽었다. 정지아 작가가 반내골에서 살았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걸어서 문척 다리까지 가려면 두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문척면 반내골에 살던 손종안씨는 작년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장은 구례 산림조합 장례식장이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장례식장과 같은 곳이다. 나는 구례에 산지 꽤 오래되었다. 정지아 작가를 만난 본 기억이 없다. 만난 기억이 있는 것도 같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생각해 보니 모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소설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장례식을 치르면서 문상을 오는 사람들과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이웃 친척, 아버지의 혁명동지와 동네 술친구들과 얼키고 얽힌 전후 현대사 만큼 복잡하고 슬픈 늙은 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이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중년의 딸 자신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끝난 나의 해방일지의 손석구는 매일 술을 마신다. 그것도 매일 소주를 마신다. 작가의 아버지도 매일 소주를 마신다. 지천에 술친구들이 많다. 나는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20대에는 소주를 잔뜩 마시고 취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한 번도 취하도록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나의 치열한 삶이 끝났기 때문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영원한 사회주의자로 세상을 떠났다. 혁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소주를 취할 때까지 마셔도 될 것 같다. 혁명가의 삶은 치열하고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술 말고는 위안이 되어줄 것이 없다. 내 아버지도 병이 깊어지기 전에는 항상 술을 마셨다.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울분을 삭이고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술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진 돈이 작고 술은 늘가까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죽어서야 작가는 아버지와 진심으로 화해하고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드디어 자신이 세상과 화해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은 무척이 재밌었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엔 빠친코 만큼 재밌었다. 더구나 내가 다 아는 동네 이야기지금 사무실에 나가서 오거리에 나가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이니 더 재미가 있었다. 가끔 눈물이 났고 실실 웃고 나니 소설은 끝나 있었다. 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소설은 오랜 만이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2-10-24
  • 20년 묵은 앵두는 어떤 맛일까?
    이미지 써클이 찍힌 사진이 없어서 본문 사진은 보리수 열매 입니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10-13
  • 20년전에 딱 한번 만난 꽃 패모
    저는 1998년 DJ 취임 초 진주교도소에 국가보안법으로 2년 6월을 선고 받고 복역 중 815 특사로 가석방되어 고향인 운봉고원 샛터마을과 남원시내에서 2022년까지 살고 있는 김태윤입니다. 교도소 복역 중 '작은 것이 아름답다' 와 최재성님의 부패에 관한 책을 교도소 독방에서 접한 후 출소를하면 우리 들꽃을 키우는 농부로 살기로 결심하며 지내던 중.. 유가협 후배의 도움으로 똑딱이 디카를 구입해서 20여년이상 내 방식의 들꽃 사진만 찍고 있는 바보 촌놈입니다. 그때는 이론교육도 디지털에 대한 지식도 없이 막 샷을 날리며 사는 촌놈였습니다. 첫 들꽃사진은 어떨 결에 인월에 사는 사회 친구 토종꿀벌 농장에서 찍었습니다.. 촛점도 노출도 엉터리로 찍었는데.... 우연히 잘 나온 사진이 패모였습니다. 이 꽃에 대한 정보도 몰라서 전북대 교수님에게 문의하여 알게 된 이름이 "패모" 였습니다. 지난 20년 간 지리산 권에서 특히 남원 권에서 찍은 사진을 시간이 나는 되로 사진으로 소통할까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10-11
  • 철우씨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울대 출신 건축가에서 버섯 농부가 된 정철우씨 안녕하세요. 네 오랜 만입니다. 저 예요. 아... 네. 퇴근 길에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구례에서 버섯을 키우는 농부가 있는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오미리 들판에 넋이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네. 알겠어요” 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문자가 와있었다. 그 농부의 연락처였다. 다음 날 출근해서 농부에게 연락을 했다. 농장은 사무실에서 차로 2-3분 거리에 있었다.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 직접 지은 버섯농장 > 농장은 구례 서시천변에 있었다 2년 전 수해로 이 지역은 지붕까지 잠긴 곳이었다. 5-6년 전에 귀농 했다는 이야기를 어제 들었으니 수해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버섯은 실내에서 키운다. 자본 집약적 농업이다.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균사체다 균사체라는 것은 균의 덩어리라는 뜻에 가깝다. 버섯은 균의 몸덩어리 근육에 가까운 것이다. 균은 동물에 가깝고 그것도 민감한 동물이다 그는 농장에 있었다. 정철우라고 했다.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이력이 궁금하다. 어쩌다가 귀농을 했나? 건축관련 일하다가 어느 날 영화를 봤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였다. 거기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삶은 현실이 된다, 당신이 망설이고 있는 그 순간 해본 것 없음 가본 곳 없음 특별한일 없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는 이영화를 보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구례에 정착하게 되었다. 내려오자 마자 한 눈 팔지 않고 바로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농사를 시작했어요. 처음 1년은 호박 농사를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 다음엔 표고 버섯 농사를 했습니다. 이 건물을 지어서 농사를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2020년 8월에 수해로 모든 것을 잃었다." 암담했다. 섬진강댐을 방류한다는 문자를 받은 다음날 아침 마을 앞이 이미 잠기기 시작했다. “서둘러 농장으로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이미 냉천 사거리가 잠기고 있었어요. 경찰이 통제를 했어요, 그래서 산업 도로로 차를 몰았죠, 농장은 지붕만 보였어요.” 그 날 그는 6억을 투자해서 만든 농장이 물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을 상상했을까? 만약 월터라면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흘러 넘치는 물을 다시 섬진강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아니면 버섯을 키우는 땅을 하늘로 들고 날아올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장은 물에 잠겼고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의지가 사라졌을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는 수해대책본부에서 일했다. 결국 구례군 수해대책위는 수자원 공사에게 48%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빚이 남았다. 그는 지금 참송이 버섯을 키우고 있다. 참송이는 어떤 버섯이죠? “표과와 송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버섯입니다. 유전적으로 보면 표고와 가깝죠. 표고에 60% 송이의 40% 정도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가 준 참송이의 향기를 맡아 보니 얼마전 먹어본 송이 향이 느껴졌다. “진짜 송이 향이 나네요” “네.. 그쵸.” 그는 반갑게 웃었다. 참송이 버섯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표고는 사실 규모의 싸움에 가깝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수확 생산이 가능 한 가에서 승부가 나요. 그러다 보니 일이 많고 너무 힘들어요. 시간이 없죠” “수해를 입지 않았으면 계속 했을 텐데 수해를 입다 보니 1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죠. 다시 건물을 보수하면서 참송이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송이 버섯> 참송이 재배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키우는 것은 표과와 다를 것이 없어요. 하지만 관리와 판매가 어려워요 표고는 재배만 하면 수요가 많기 때문에 가격만 낮추면 처리가 되는데 참송이는 경매가 없기 때문에 개인이 판매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재배 관리가 어렵고 판매가 어려워서 힘들죠” 제 참송이 재배사가 25평씩 8개 총 200평인데 지금은 판매가 가능한 정도만 키우고 있습니다. 판매가 늘면 더 키워 야지만 지금은 제가 혼자서 가능한 양만 재배하고 있어요. 구례에 내려와서 시작한 농사가 수해로 모두 망가졌잖아요? 후회 안 하시나요? “구례는 어쩌다가 내렸 왔지만 참 예쁜 곳입니다. 처음에 내려왔을 때 상사 마을에 살았는데 아침마다 30분씩 멍 때리고 바라봤어요. 너무 예뻐 서요. 물론 농사만 본다면 구례는 추천할 만한 곳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만” ㅎㅎ 그와 한 시간 정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를 다시 봤다. 라이프지에서 일하던 월터는 매일 같을 일을 반복하는 16년된 포토 에디터였다. 라이프지가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마지막 호에 사용할 25번째 사진이 사라지자 사진의 단서를 찾기 위해 베일에 쌓인 사진 작가 숀 오코넬을 직접 찾기 위해 그는 사무실에서 나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뛰어든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반복되는 일상은 어느 날 일탈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바이던의 시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고개만 돌리면 다른 세상…. 그는 매일 같은 출근 길을 가다가 고개를 돌리고 다른 세상으로 진입했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 것이다.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10-05
  • 탄소로운 식탁
    지극히 평범한 서점아저씨에게 굶주리는 북극곰, 플라스틱 빨대, 고통받는 거북이, 툰베리의 외침, 기후협약 그리고 친환경 자동차 등은 강렬한 통증이다. 다만 이 통증에 공통점은 '평등을 말하지 않는다' 이다. 야생동물이든 외침이든 친환경 신기술이든 환경과 기후위기 극복에 필요한 것은 평등이라 생각한다. '위험하니 다같이 노력하여 극복하자' ‘기후위기 책임과 그린워싱 기만은 여기에 있다’이런 말은 별로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윤리/도덕적인 접근은 권위의 다른 모습이라 여긴다. 기술로 극복이 아닌 과학으로 우리가 속한 이곳에서 만들어낸 기후 온난화 문제를 정확히 손에 쥐고 함께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탄소를 누가 배출하도록 허용할지, 누구는 너무 많이 배출했으니 다른 이가 배출을 늘이는 만큼 더 극적으로 줄여야 할지 말이다. 평등해야 한다. 최소한 먹는 문제만큼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풍성한 탄소로운 식탁위에 있는지 감이 잡힌다. 윤지로 기자의 책 '탄소로운 식탁' 덕분이다. 육식, 양식, 비료, 농약 등 문제점들을 지금까지 풍성하게 듣고 읽어왔지만, 손에 잡히는게 없었다. 문제들은 들었는데, 도덕/윤리적 안타까움과 호소를 들었지 "우리가 놓친 먹거리속 기후 문제"에 정확히 접근하지 못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들었지 현실과 사실의 문제는 외면하고 놓친 것이다. 아니면 알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자의 책은 일단 과학/기후 책들 중 몇 안될 정도로 잘 읽혔다. 내용이 자세하다. 저자가 과학을 모르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밑으로 내려온다. 내용도 그래프도 우리 삶 매일매일 식탁에 오르내리는 식품들의 온난화와 에너지 문제들이다. 특히 축산뿐만 아니라 농작물 재배에서 나오는 탄소와 온실가스들은 충격적이었다. 다 손에 잡힌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비옷입고 샤워하는' 느낌이 전혀 없다. 요즘 기후위기에 평등과 정의가 거론되어 기쁘고 반갑다. '탄소로운 식탁'은 먹는 문제에 있어서 나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불평등하게 허용하고 눈감고 있는지 고스란히 알려준다. 육식과 채식과 같은 윤리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에서 정의롭게 줄이고, 인내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제대로 된 출발점이다. 앞으로 험난하겠지만, 알아야 결단 할 수 있다. 집중해서 읽었고 얻은 것이 많은 과학/기후 책이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막연히 옳다고 느낀 것일 수 있다. 이 책에서 배웠다. 이런 좋은 책 몇 권 더 읽어 서로 교차 비교할 수 있다면 내가 먹는 밥 한 끼가 지구 온도 1도를 낮추도록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도 행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문가가 아니라 기자가 쓴 책이다.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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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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