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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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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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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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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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달궁계곡 옛길 되살리고, 성삼재 도로는 셔틀버스 전용으로 해야
    [달궁 계곡 : 사진 류요선 (1995년)] 지리산 정령치에서 백두대간의 연봉을 시야에 담고, 내리막길 도로로 4km 아래에 이르면 달궁삼거리이다. 추석 연휴인 10월 초순의 지리산 얼음골 농장은 가을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성삼재로 향하는 지방도로의 자동차 소리와 달궁계곡 물소리가 함께 들렸다. 달궁 계곡은 남원 산내면의 뱀사골로 물길이 이어지는 낙동강 수계로 행정구역이 백두대간을 넘어 구례 산동면에 속한다. 구례 산동에서 백두대간 묘봉치를 넘어 달궁 심원으로 오는 것이 남원 산내에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 거리가 가깝다. 구례 산동면은 한 개의 면이 낙동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를 함께 거느리고 있는 특별한 지형인 셈이다. 달궁 계곡길은 예로부터 지리산 유람 길이었고,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민초들의 애환 어린 삶의 현장이었다. 남원 산내면에서 구례 산동면으로 보부상들과 주민들이 오가던 장길이었다. 달궁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심원마을에서 만복대와 고리봉 사이의 묘봉치를 넘어 구례 산동으로 8km를 이어가는 지리산 역사의 한쪽이었다. 지리산에서 30년 동안 풍경과 야생화를 사진에 담은 류요선(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 씨는 달궁 계곡 용소 바위에 칠선대(七仙臺)라는 암각서, 산동 칠선(山東 七仙) 글귀와 7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류요선 씨는 달궁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쟁기소, 쟁반소, 두꺼비소, 마당소와 용소의 굽이굽이 절경을 지나 반야봉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 상선암 눈썹바위 : 사진 이완우] 달궁 계곡의 심원마을은 2017년에 철거되었다. 지리산 생태계를 복원하여 반달곰 등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보호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달궁계곡으로의 옛길은 비법정탐방로가 되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예로부터 하동군 의신마을을 거치는 벽소령길, 남원시 구룡폭포 육모정길, 구례군 달궁 계곡의 산동길을 지리산의 3대 옛길로 손꼽는다. 류요선 씨는 달궁 계곡 탐방로가 허용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유서 깊은 옛길은 보전해야 한다고 했다. 통행 금지된 달궁 계곡을 바라보며 어름골 농장에서 달궁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성삼재를 향한 도로를 자동차로 올라갔다. 성삼재에서 상당히 먼 곳의 도로변까지 자동차들이 주차했고, 관광객들은 줄지어서 성삼재로 걸어 올라간다. 성삼재 주차장이 성수기 관광객들의 차량을 충분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성삼재를 중심으로 남원 산내면 쪽과 구례 산동면 쪽의 도로가 길게 이어진 갓길 주차장이 되었고, 지리산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성삼재 주차장을 없애고, 남원 산내면과 구례 산동면의 지리산 아래쪽에 넓은 주차장을 두 곳을 마련하고, 친환경 셔틀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운행한다면, 지리산의 대기 오염이나 소음을 줄이고 챠량 정체도 해소하는 효율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상선암 구절초 : 사진 이완우] 성삼재에서 천은사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시암재 휴게소를 지나고 상선암과 수도암을 찾았다. 상선암(上禪庵) 가는 길은 화강암 너덜지대이다. 둥글둥글 마모가 잘 된 바위가 소나무와 잘 어울린 오솔길도 있다. 소나무 줄기 밑동 가까이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있는데, 사찰에서 예전에 등화(燈火) 재료로 송진을 썼던 흔적이라고 한다. 전나무가 높이 30미터 이상이고 가슴높이 둘레가 2미터가 넘는 나무가 여러 그루 기세 좋게 성장하고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같은 지역에서 경쟁하면 전나무가 우점종이라고 한다. 상선암 암자의 편액은 명필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라고 한다. 상선암의 8미터 높이의 커다란 눈썹바위는 처마바위라고도 하는데 기울기 20도 정도로 서 있는 암반이 빗물을 막는 지붕 역할을 한다. 이 바위 아래 석간수가 고이는 맑은 샘이 있어서 암자가 자리 잡은 터전이 되었다. 암자 마당에 핀 구절초 너머로 멀리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하늘과 맞닿았다. 광주 무등산(1,187m)이 원경의 오른쪽에 솟았고, 화순 모후산(919m)이 중앙에 보인다. 상선암은 고려 말의 나옹 화상, 조선 중기의 서산 대사가 한 때 수도했던 곳이라고 한다. 가람 규모가 소박하고 단출한 이 암자에 신라 시대의 우번(牛飜) 스님 전설이 전해온다. 스님은 젊은 시절에 이 암자에서 수도 중이었다. [수도암 구름 : 사진 이완우] 어느 날 아리따운 여인이 이 암자에 나타났다. 스님은 여인에게 정감이 생겨 선방을 차고 나섰다. 사뿐히 산속으로 올라가는 여인을 따라가던 스님은 어느덧 높은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홀연 여인은 간 곳이 없고, 산봉우리가 찬란히 빛나고 관세음보살이 서 있었다. 스님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털썩 무릎을 꿇고 참회하였다. 스님은 산봉우리 바위 아래에 암굴을 파고 들어앉아 수도에만 전념하였고 세월이 흘러 스님이 득도하였다. 스님이 득도하는 순간 암굴 위의 바위에서 종소리가 났다. 그래서 이 산봉우리를 종석대라 한다. 산봉우리 모양이 차일을 친 형상이라고 차일봉, 관음보살의 현신이 있었다고 관음대, 우번 스님이 득도한 곳이라서 우번대라고도 한다. 우번 스님의 이름 글자인 소 우(牛)와 뒤칠 번(飜)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농부의 밭에서 조 이삭 알맹이를 몰래 먹고, 소가 되어 3년 동안 농부의 밭에서 일을 한 후에 소의 너울을 벗고 깨달음을 얻은 문수보살의 길상 동자 우화가 있다. 우번 스님의 일화에서 이 길상 동자의 우화가 연상된다. 우번 스님이 여인을 따라 간 미혹한 상태는 스님이 소가 된 것이고, 스님이 바위 암굴에서 수도 정진함은 동자가 3년 동안 소가 되어 밭에서 쟁기를 끈 것과 대응하고, 스님이 깨달음을 얻음은 소의 허물을 벗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천은사 천은저수지 : 사진 이완우] 수도암(修道庵)은 승용차로 도량 주차장까지 도달한다. 큼직한 바위로 성벽처럼 쌓아 가람의 터전을 닦았다. 상선암이 소나무와 너덜 바위의 오솔길을 걸어 찾아가는 운치가 있는 가람이라면, 수도암은 수도선원 건물이 웅장하고 대웅보전 금당의 위용이 당당한 가람이다. 수도암 도량 앞 하늘의 구름 풍경이 기대 이상의 선물이었다. 맑은 가을 햇살이 내리는 숲 너머로 멀리 원산이 펼쳐지고 층운이 가볍게 하늘에서 내려와 앉았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가볍게 떠가고 있는 여유로운 장면이었다. 천은사(泉隱寺)는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원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다. 임진왜란 때 감로사가 불타서 1610년에 중창하고, 1679년에 천은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천은사 일주문 앞에 섰다. 智異山 泉隱寺, 일주문의 '지리산 천은사' 글씨는 추사 김정희(1786~1856)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명필 이광사(1705~1777)가 썼다. 이 글씨와 관련하여 천은사에는 사찰 유래 전설이 전해온다. 감로사를 중창할 때 사찰의 우물에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서 누군가가 구렁이를 죽였다고 한다. 그 후로 우물의 물이 말라버렸으며 사찰에 화재가 빈번하였다. 이광사가 물 흐르듯 한 글씨체로 사찰 이름을 써서 편액으로 일주문을 세웠다. 이후로 사찰에 화재가 잦아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주문에서 조용히 들으면 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천은사 일주문 : 사진 이완우] 이 천은사 설화를 들으며 언뜻 수긍되지 않는 면이 있다. 지리산의 큰 계곡에는 항상 물이 흐르기 마련인데, 계곡에 자리 잡은 샘이 마를 리는 없다. 설화는 비유이고 상징이 풍부하니,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 생각해 보았다. 서산 대사(1520~1604)는 젊은 시절에 지리산에서 수도하였다. 지리산 동서남북 서산대사의 일화가 곳곳에 전해온다. 구례는 서산 대사의 오도송이 전해오는 의미 있는 지역이다. 서산 대사가 이곳 구례 감로사 가까운 곳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을 수 있다. 서산대사가 지리산 산청의 단속사(斷俗寺)에서 삼가귀감(三家龜鑑)을 편찬하여 선가귀감, 도가귀감과 유가귀감의 순서로 출판했다. 남명 조식(1501~1572)의 문하 선비인 성여신(1546~1632)이 유가귀감이 삼가귀감 출판에서 마지막 순서인 것을 문제 삼아서 사찰에 이 판본을 불태우라고 하였다. 승려들이 따르지 않자, 성여신은 1568년에 단속사에서 삼가귀감을 새긴 목판과 사찰의 사천왕상을 불태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유교와 선비들에 의한 불교 탄압의 한 단면이다. [천은사 돌담 : 사진 이완우] 1610년(광해군 2)에 감로사를 중창했는데, 서산대사가 입적한 지 6년 후이다. 감로는 달콤한 샘물을 의미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이나 진리를 감로라고도 한다. 천은사의 샘 천(泉)을 감로가 솟아나는 원천으로 이해한다면, 천은사는 부처님의 지혜와 깨달음이 고요히 머문 곳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감로사를 중창할 때 서산 대사에 대한 추모의 정과 유림에 의해 사찰이 쉽게 불타버릴 수도 있었던 시대 상황이 후대에 이 사찰의 이름이 천은사로 바뀔 때 반영되었고, 이러한 구렁이 설화가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구렁이가 죽어서 샘이 말라버린 절이라는 사찰 연기 설화보다는, 지리산에서 서산 대사가 깨우친 진리와 지혜가 고요히 머문 절이라는 천은사 이야기가 더 개연성이 있다. 구례 천은사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이라고 한다.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인 서산 대사는 구례에서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지었다. 상선암(上禪庵)을 말사로 거느린 천은사(泉隱寺)에서 서산 대사의 행적을 진하게 느껴 보았다. 천은사 옆의 울창한 소나무 숲 아래 야생차밭에는 차꽃이 은은하게 피어 있었다. [천은사 차나무 꽃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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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6
  •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대를 위하여"
    내 몸 아프지 않은 습관 "근육통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대를 위하여" 오래전 전에 읽은 책인데 정형외과 의사가 쓴 책이다. 의사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 의사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정형외과 질환의 많은 부분이 근육의 뭉침에서 온 다는 것이고 정형외과의 처방전 대부분이 근육 이완제와 진통제라는 것이다. 이 의사가 하는 말이 자기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환자에게 처방을 할 때 이것 이외에는 처방할 수 있는 약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같은 약을 처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회전근개 파열은 오십견과는 다른 병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 어깨 통증의 제일 흔한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파열 여부를 확인하는 비싼 검사나 적극적인 수술 치료도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파열이라니?’ 하고 깜짝 놀라게 마련입니다. 뭔지는 몰라도 파열되어서 수술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면, 겁부터 먹고 당장에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의사의 말을 믿을 수밖 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릎 반월상연골판의 경우도 그렇지만, ‘파열’이라는 표현은 환자들을 우선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뭔가가 파열되어 있다는 설명을 듣고 침착하게 “아, 그래요.” 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환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전근개 이상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멀쩡하게 있던 것이 한순간에 폭발하듯 파열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퇴행성 변화처럼 부드러움이 없어지는 변화가 오랫동안 진행되는 노화현상이 어깨 관절 속 회전근개에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회전근개가 파열된다기보다는 조금씩 탄력을 잃으면서 싱싱하게 매끈했던 회전근개의 부분들이 너덜너덜해져가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p.256" 독자 여러분은 허리 디스크가 어떤 병이라고 알고 계신가요? ‘허리 척추 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추간판)가 탈출해서 척추신경을 눌러 허리, 엉덩이, 다리 뒤쪽이 당기는 통증을 유발하는 것.’ 이것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해부학적, 신경학적 견지에서 봤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자, 보십시다. 만약 척추신경이 무언가에 심각하게 눌려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어떤 증세를 일으킨다면, 신경이 하는 여러 기능 중에서 유독 ‘통증’이라는 증세만 생겨나게 하기란 기술적으로 매우 힘든 일로 보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척추신경 같은 ‘중추신경’은 말초신경들보다는 더 복합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중추신경이 심각하게 눌려서 어떤 증세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근육 마비, 이상감각, 무감각 같은 특징적인 증세를 동반해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p.167 나 역시 달리기를 오래 하다 보니 다양한 근육통에 시달렸고 다치기도 해서 정형외과에 많이 가봤는데 약은 모두 같았다. 근육 이완제 소화제 진통제 물론 아주 아플 때는 약이 도움이 된다. 나이 오십이 오기 전에 찾아온 오십 견과 테니스엘보 그리고 골프엘보 등등 아주 오래가는 통증을 벗어나기 위해 방편으로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 저 책도 구매한 것 같다. 저 책에서 하는 대로 해서 좋아졌나? 라고 묻는 다면 "글쎄"라고 하겠지만 저 책을 읽고 나서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고 오래 걸렸지만 일단 수술을 하지 않고 현재는 모두 좋아졌다. 그 책의 내용은 핵심은 이 것이다. 근육이 아프다면 근육이 오래 사용되면서 딱딱 해지고 뭉치 것이므로 마른 명태를 두들겨서 연하게 만들듯 돌이나 막대기를 이용해서 딱딱 해지고 뭉친 근육을 두들겨 말랑말랑하게 만들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실재로 대부분의 통증은 마사지로도 해결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도 상당수는 귀 주변의 근육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귀 주변의 근육을 이완시켜 주면 줄어 든다고 하는데 이 것 정말 나의 경우 가끔 귀에서 소리가 날 때 귀 주변을 주물러 주면 소리가 줄거나 사라졌다. 요즘 아이들 어른이든 스마트폰을 많이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가 있다. 두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의 경험을 보면 눈이 피로에서 오는 두통이 많았다. 눈 주변의 근육과 눈동자를 살살 주물러서 풀어주면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은 그 책에는 없다. 눈 마사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책에서 본 것인데 그 후로도 자주 해주고 있다. 내 눈이 아직도 2.0인 이유가 이것 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어디든 한 곳은 근육이 불편한 점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구입해서 한 번 읽어 보면 도움일 될 것 같다. 지금도 가끔 허리가 아픈 경우가 있는데 마사지 볼로 마사지를 해주면 바로 좋아진다. 병원에 가기 전에 한 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뭉치기 전에 풀어주는 것이 좋고 뭉치면 적극적으로 뭉친 곳과 주변의 근육을 풀어주면 좋다는 것이다. 읽은 지 몇 년 지났기에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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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5
  • 말없는 지리산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
    말없는 지리산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 환갑이 넘도록 지리산 천왕봉은 딱 한 번밖에 오르지 못했다. 팔팔한 20대 중반, 1980년대 중반이었으니 벌써 약 40년 전이었다. 처음 출발한 우리 일행은 완전 초보 4명이었는데, 중간에 또 다른 초보들 2명씩 두 팀이 합류, 모두 8명이 같이 움직였다.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지만, 여럿이 같이 가니 두려움도 확실히 줄었다. 당시 우리는 반선으로 들어가 뱀사골 초입 와운마을에서 꿀벌을 키우는 부부 댁에서 민박을 하고 뱀사골을 따라 올랐다. 반야봉이나 노고단, 피아골 쪽에서 오르는 이들에 비하면 ‘거저먹는’ 길이라 했다. 그러나 난생 처음 오르는 지리산, 내겐 정말 ‘지리한’ 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2박 3일 코스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막상 내겐 4박 5일도 짧고 급했다. 알고 보니, 나는 1915미터 지리산을 마치 ‘동네 뒷산 가는’ 기분으로 올랐던 것! 이틀째인가 사흘째 되던 날, 정말 힘들다며 능선을 투덜투덜 걷는데,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몇 지나며 “이 더운데 뭐 할라꼬 사서 고생일꼬? 그냥 집에서 세숫대야에 발이나 담글 걸.”하는 푸념을 했다. 마치 내게 들으라며 한 말처럼! 그런데 지금까지 그 말이 내 기억에 있는 걸 보면 정말 와 닿았던가 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뱀사골을 따라 남쪽 화개재까지 올라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동북으로 토끼봉, 명선봉, 연하천대피소(삼각고지)까지, 다시 동쪽으로 형제봉, 벽소령을 거쳐 또 세석산장까지, 또 동북으로 연하봉,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으로 가는 코스였다. 내려오는 길은 중산리 가파른 길을 택했는데, 사람들은 가장 ‘빠른 길’이라 했지만 내게는 아무리 빠르다 해도 역시 ‘지루한’ 길이었다. 지금까지 또렷이 가진 또 다른 기억은, 중산리 가파른 길을 내려오고 또 내려와도 마을이 보이지 않다가 (망바위인지 칼바위인지 그 인근일 텐데) 마침내 저 멀리 아득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야호~, 다 내려왔다!”라며 탄성을 질러댔다. 바로 그 때, 중산리 초입에서부터 그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오던 사람들이 “뭐라꼬예? 이 정도면 거의 다 올라온 줄 알았는데, 이게 다 내려온 거라꼬예?”라며 한숨을 짓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숨차게 올라오는 사람들의 마음도 모르고 나는 내 생각만 하며 “다 내려왔다!”며 크게 환호했던 것! -지리산 천왕봉 @ 지리산-인 등산과 입산 여하간 그렇게 4박 5일 동안 ‘사서 고생한’ 덕분인지 나는 그 뒤로 지리산 천왕봉 등반이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바로 그 마음을 아는 듯, 어느 스님이 ‘등산’과 ‘입산’을 구별하는 걸 보고 무릎을 쳤다. 등산(climbing)이란 개념은 산을 타고 오르는 것이니, 정복의 이미지가 있다는 얘기다. 대체로 등산을 하면 최고봉에 올라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거나 반드시 ‘깃발’을 꼽고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친한 친구 중에도 등산 중독자가 있어, 가능한 한 주말마다 ‘묻지 마, 등산’을 하는데, 자기 목표는 1년 52주 중 최소한 50개 주말마다 산 정상에 올라 1년에 50개의 산을 정복하는 것이라 했다. 반면, 입산(entering)이란 산의 품속으로 살며시 깃드는 것인데, 자연스레 어머니 이미지가 떠오른다. 등산 개념에서는 온갖 장빗발이 중요하지만, 입산 개념에서는 마치 ‘동네 뒷산 가듯’ 편한 차림이다. 정복자 이미지와 달리 꼬맹이들처럼 엄마 품에 포근하게 안기는 기분으로 산에 가는 것! 나는 그 스님의 구분법에 맞장구를 쳤다. 결국 나와 일행은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등산길을 입산길로 착각했다! 그런 내가 엉터리 종주라도 하고 살아 오다니! 등산 아닌 입산! 바로 이거였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고향 마산의 무학산에서부터 창원의 천주산, 관악산 연주대, 설악산 대청봉, 속리산 문장대, 계룡산 천황봉, 한라산 백록담 등으로 제법 많은 등산을 했고, 정상까지 올라 사진도 꽤 찍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비록 엉터리였지만) 지리산 첫 종주 경험은 내가 ‘등산 개념과 거리두기’를 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설사 그 뒤로 등산을 하더라도 나는 ‘입산’ 개념으로 느긋하게 즐기며 산의 품에 깃들었다. 그러던 중 반갑고도 반가운 올레길(2007년 제주)과 둘레길(2008년 지리산)이 생겼다. -지리산 중봉 @ 지리산-인 입산으로서의 지리산 둘레길 유럽엔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는 약 800킬로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어 많은 세계인이 몰린다. 그 길을 다녀온 당시 언론인 서명숙 씨가 제주에도 그런 길을 만들자고 제안, 2007년부터 올레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리산에서도 둘레길이 2008년부터 열렸다. 수직적인 등산 문화를 수평적인 입산 문화로 바꾸는 계기였다. 나 역시 간디학교 동기 학부모들(2004년 입학생 자녀 기준)과 함께 2008년 가을에 지리산 둘레길을 알차게 걸었다. 2008년 4월 처음 열린 지리산 둘레길(순례길)은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시작,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을 거쳐 휴천면 세동마을로 간다. 산세가 매화처럼 예쁜 매동마을 전 이장님과 당시 부녀회장님은 “아침밥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서시라”면서도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마을공동체를 지키느라 몇 해 전 막개발 바람에 대항해 4년 동안 목숨 걸고 싸웠다고 자랑했다. 두 주민이 옥살이를 하면서도 끝까지 싸워 이겨, 그 뒤에 녹색 체험마을까지 만들었다 했다. 우리 일행 모두 뜨거운 박수를 쳤다. 고불고불 아름다운 다랑이 논을 지나 거북이 등같이 생긴 등구재를 쉬엄쉬엄 올랐다. 고갯길 한참 아래 옹달샘 곁엔 원두막 모양의 쉼터가 있었다. 칠십 노부부가 마치 자식들 맞이하듯 반갑게 웃으셨다. 점심도 못 먹은 우리에게 ‘식은 밥’을 내놓으며 “이걸로 밥이 되것누!”라며 챙겨주셨다. 할배는 “얼렁 싱싱한 고추 좀 따 와야제” 하시고, 우리가 “고추는 여기도 많은데요…”라며 농을 걸자 할매는 “그런 맛없는 고추 말고…” 하시며 한바탕 웃겼다. 돈 받고 파는 막걸리와 라면이지만, 아직도 사람 냄새 풀풀 났다. 당시엔 광우병 쇠고기와 멜라민 소동이 세상을 뒤흔들었지만 지리산 그 곳엔 풋풋한 삶이 살아 있었다. 한참 걸어 멋진 당산나무 아랫녘 창원마을로 들어서니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에 노인 몇 분이 나락을 말리느라 고무래질로 바빴다. “올해 농사 잘 됐나요?”라며 인사로 여쭈니, “예, 잘 됐어예!”라며 넉넉하고 환한 답이 돌아왔다. 노인의 얼굴도 수수밭과 조밭의 옹골찬 알곡처럼 풍요로워 보였다. 굽은 허리에 손수레를 밀고 가는 할머니를 도와 옆에서 뒤에서 같이 밀고 가는데 (한 해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런지) 목이 메고 눈매가 촉촉해졌다. 그렇게 지리산 높이는 2킬로도 안 되지만 둘레길은 300킬로나 되니, ‘지리산 순례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곳곳에 걸친 옛길·숲길·고갯길·강변길·논둑길·마을길·농삿길 등을 서로 이어 한 바퀴 도는 길이니, 산도 만나도 사람도 만나고 강도 만나고 장승도, 마을도 만난다. 이렇게 둘레길은 뭇 생명을 하나로 잇는다. 2000년에 ‘지리산마음으로 세상을 배우자’며 시작된 공부모임이 2004년부터 제안, 마침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완성한 지리산 둘레길! 2008년의 ‘지리산 숲길 공동협약서’에는 “사회는 진화합니다. 이념의 전장, 지역 갈등의 현장, 계급과 젠더, 우리를 둘러싼 모순이 지리산에 그대로 있습니다. 민관 협치, 지역 통합, 지리산둘레길 사업에 녹이려 했습니다. 주민과 행정이 분리되고, 전라도와 경상도, 좌익과 우익이 있는 지리산의 그늘을 하나의 길, 하나의 공동사회로 묶는 고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분열과 갈등을 넘어 ‘하나로 이어짐’을 향하는 둘레길, 등산이 아닌 입산(入山)의 깊은 뜻이 바로 이 길을 통해 완성된다. -지리산 주능선 @ 지리산-인 남명 조식의 지리산과 지금 우리의 지리산 봉건주의 조선시대를 살다 간 재야학자 남명 조식 선생(1501~1572)은 환갑 이후에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청 덕산에 집(산천재)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당시 선생은 맑은 개울 옆에 정자를 짓고 한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다. 請看千石鐘(청간천석종): 천 석들이 큰 종을 보게나 非大叩無聲(비대고무성):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네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 어떻게 하면 지리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선생은 지리산의 변함없음, 믿음직스러움에 깊이 매료된 것 같다. 그러기에 지리산의 품속에 깃드는 입산을 모두 12차례나 했다고 한다. 선생이 남긴 <유두류록>(1558)에는 선생이 지리산에 깃들며 단순히 자연만 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보았다는 흔적이 소상히 남아 있다. 남명 사후 20년만에 벌어진 임진왜란(1592~1598) 당시 3대 의병장은 물론 총 57명의 의병장이 남명의 직계 제자였다. 또 그 제자들의 제자나 후배가 길러낸 의병들까지 합하면 모두 1만 명에 이르는 의병들이 남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된다. 이는 아무래도 선생의 경의(敬義)사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敬)은 삼가기와 받들기를, 의(義)는 이해득실보다 정의로움을, 말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남명 선생 이후 수백 년 세월이 흘러 봉건제 사회가 자본제 사회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미군정으로 인한 분단을 경험했다. 미군정과 한국전쟁은 지리산을 ‘좌우 이념 대결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막연히 “좌우 이념 대결의 현장”이라고만 하면 안 될 듯하다. 엄밀히 보면, 재빨리 ‘강자 동일시’를 통해 출세와 재물을 추구한 매판 지주계급과 “해방이 되면 우리 땅 몇 마지기 갖고 농사짓는 게 소원이요.”라던 평범한 민중계급 사이의 싸움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이런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 <빨치산의 딸>에서 정지아 작가는 “오십 평생 남의집살이만 했다는 (빨치산) 김 영감의 손”에 대해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지고 갈쿠리처럼 휘어 흉측”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자기 땅에서 자기 힘으로 농사지어 알콩달콩 살고 싶은 소원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 소박한 소원조차도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 저 순박한 김 영감을 혁명의 물결로 밀어 넣은 것”이라 보는 작가는 “오십 평생 노동으로 지문이 닳아 없어진 김 영감이 자기 땅 한마지기 가지고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라는 화두까지 던진다. 그러나 1950년대의 이승만 독재, 1960년대~1970년대의 박정희 독재, 1980년대의 전두환, 노태우 독재 시절이 끝나고 1990년대 김영삼 문민정부와 김대중 국민의 정부를 거쳐 노무현 참여정부, (2008년 이명박 정부, 2013년 박근혜 정부를 지나) 그리고 2017년 이후 문재인 촛불정부까지 거쳤건만 여전히 지리산은 아프고도 쓰라리다. 그것은 전통적인 계급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은 평범한 민중조차 다수가 자본의 자기증식 논리에 불과한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를 뼛속 깊이 내면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거의 정상까지 자동차가 올라가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도 모자라 여러 개의 지리산댐(섬진강 구례양수댐, 곡성양수댐 포함)을 만들려는 계획,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구상, 산악열차, 짚 라인, 출렁다리를 놓겠다는 발상 등등 자본을 위한 ‘창조적 파괴’의 아이디어들이 쉬지도 않고 쏟아진다. 자본이 증식을 위해 악을 쓰며 발버둥치는 것은 어쩌면 자본의 본질상 당연한지 모른다. 하지만, 파괴와 위험을 예방해야 할 국가(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가 주민들 투표를 통해 권력을 대리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동일한 논리와 태도로 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사막화하는 꼴이다. -골프장 건설을 위해 파헤쳐진 구례 산동 지리산 자락 @ 지리산-인 지리산의 속삭임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사천 물물천(事事天 物物天)” 사상처럼, 매사가 하늘이고 만물이 하늘이기에 우리는 “땅도 함부로 밟을 수 없다”(조성환, “한국의 생명평화사상과 지리산운동”, <지리산의 마음> 중).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서로 생명을 주고받는 ‘생명네트워크’라고 본다면, 개개의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어 돌멩이 하나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모두, 공감과 대화의 주체다. 생각건대, 46억년 지구 역사 중 인류의 역사는 400만 년 정도다. 또, 지금처럼 농사짓고 사는 시대는 불과 1만 년 전부터다. 그 중에서도 지금 같은 자본주의 시대는 길어도 400년! 자본과 인간이 공모해 만든 (특히 최근 100년간 굳어진) ‘집단자살체제’가 곧 코로나19와 기후위기, 6차 대멸종 위기다. 바로 이 총체적 위기에 인류가 세상 만물을 모두 조심스레 잘 받들며 살아도 모자랄 판!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지리산의 품에 고요히 깃들면서, 둘레길을 걸으면서 모두 깊이 고뇌해야 할 화두다. “걸어가면서 묻는다.”는 멕시코 사빠띠스따 농민군들의 결기가 새삼 새롭다. 그러면서 백무산 시인의, “숲속을 거닐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기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이 발견되는 것을 느낀다... 그 시선은 나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깬다.”는 말이 귀를 때린다(“인간성 중독과 머나먼 시선”, <녹색평론> 183호, 2023 가을). 지리산댐백지화 기념사업회(준)가 엮은 지리산운동 백서 <지리산의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지리산의 눈으로, 지리산의 가르침으로, 지리산의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생명평화운동”은 “늘 현재 진행형”이라고! 사업가 김철호(1922~1995) 선생이 1990년, 많은 재물을 사회 환원하며 “뼈에는 색깔이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리산 곳곳에 흩어진 좌익과 우익의 모든 영혼을 달래달라는, 사실상 유언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모든 상흔을 딛고 생명평화와 공생공락의 가치로 거듭나야 한다.’ 말 없는 지리산이 수천, 수백 년에 걸쳐 (남명 선생의 감탄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으며” 묵묵히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바로 이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가치를 낳는 가치’인 자본과 자본주의를 제대로 공부해야 될 성싶다. -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지리산 일출 @ 지리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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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저기 민들레
    2023-10-05
  • 사이버리아드, 스타니스와프렘, SF
    띠이잉~~~ 머어엉~~~~ 등장인물 이름을 외우기는 커녕 매번 읽기도 힘들다. 트루룰과 클라파우치우시, 나올 때마다 한자 한자 다시 읽어야 한다. 트.루. 룰. 클.라.파.우.치.우.시. 주인공이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이 책을 건네준 사람을 생각한다. 2+2=7 이라고 내게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이 '그'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는 내가 바로 2+2=7이라고 우긴다고 할 지 모른다. 그가 사는 세상을 내가 모르며 내가 사는 세상을 그가 모른다. 살면 살수록 2+2= 정답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나는 이책이 하나도 웃기지도 않으며 재미있지도 않다. 그는 이 책의 저자 스타니스와프 렘이 쓰고 타르콥스키가 만든 영화 "솔라리스"가 어쩌구 하지만 난 오래전 봤는지 조차 한조각도 생각이 안난다. 이해해야 하는 책이라면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웃기는 책이라면 한번도 웃지 못했고, 한마디로 뭔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동화나 우화, SF, 특히 코믹버전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아니면 머리가 엄청 딸리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이 증명해 줬다. "대규모로는 아주 드물고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원자 기체 속에서는 내내 일어나고 있어. 그 안에서는 10만 분의 1초마다 1조 번씩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있어. 어떤 기체는 아주 적은 양 속에서 원자들이 흔들리고 부딪치면서 정말 심원한 진실과 교화의 격언을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진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전자보다 후자가 수천 배는 많다는 거지. 그러면 바로 지금 여기 너의 톱 같은 코 앞에 있는 1밀리그램의 공기 속에, 1초를 무수히 나눈 시간의 조각 안에 실존의 모든 수수께끼와 존재의 신비에 대한 해답을 포함한 놀랍고 풍부한 진실과 더불어 앞으로 100만년 동안 탄생할 모든 서사시의 모든 시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여전히 그 정보를 분리해낼 방법이 없는 것이야. 특히 원자가 서로 머리를 부딪쳐 무엇인가를 형성하지마자 원자는 산산이 흩어지고 형성되었던 것은 영원히 사라질 테니까 더욱 그렇지. 그러므로 비결은 혼란스럽게 쇄도하는 원자의 배영 속에서 오직 의미를 가진 것만 선택하는 선별자를 만드는데 있다. 이것이 바로 제 2종 악마 뒤에 깔린 아이디어인 것이지. 거대하고 끔찍한자여.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가? 우리에게는 원자의 춤에서 진실한 정보만을 추출할 악마가 필요해. 그 정보는 수학적 정리나 패션잡지, 청사진, 역사적 연대기 혹은 이온 크럼펫(핫케이크)요리법, 석면 옷을 빨고 다림질하는 법, 시, 과학적 조언, 책력, 달력, 비밀문서, 우주의 모든 신문에 나왔던 모든 것, 미래의 전화번호부....." "됐어, 됐어!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퍼그가 외쳤다. p250-251 난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알겠고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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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0-03
  • 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첫째 마당]
    [사진 류요선 : 양귀비꽃]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의 봄날이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운봉읍에서 인원면으로 이어지는 화수리 소석마을 앞의 24번 도로에서 버스를 내렸다. 바래봉을 목표로 소석마을을 경유하여 덕두산 정상으로 올라 산 능선 줄기를 타고 바래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잡았다. 소석마을의 어느 집 낮은 돌담 아래 화단에 양귀비가 몇 그루 꽃 피어 있었다. 그 당시 소석마을 집들은 대부분 돌담이었다. 양귀비꽃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집에 사는 할머니가 나와서 박카스를 한 병 건네주었다. 그 집 할아버지는 매우 편찮았다고 한다. 몇 년 후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그 집은 비어 있었다. [사진 류요선 : 뚝새풀] 1990년대 후반에는 지리산 운봉목장과 초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래봉의 철쭉꽃을 감상하려고 찾아온 관광객들은 24번 도로변에 정차한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운봉목장의 정문을 통과하고, 목장과 초원을 가로질러 바래봉으로 올라갔다. 이때 운봉목장은 면양들이 떠났고 이후에 가축 유전자 시험장이 되었다. 목장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고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왼쪽은 소석마을 쪽인데 철조망이 허술한 곳이 있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운봉목장의 초원에서 독새기풀이라고도 부르는 뚝새풀을 운봉목장 초원의 풍경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 류요선 :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 이 시기에 지리산의 한 산장에 머물던 사진작가 한 분이 선태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는 사진 작품 공모전에 선태류라고 출품하기도 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겨울에 바래봉 능선을 걷다가 눈밭에서 선태류라고 하는 이 돌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곳은 양떼가 다니던 길의 옆 비탈에 산사태가 조금 생겼고 그곳의 흙 표면에 이 돌꽃들이 있어서 오전에 사진을 찍었다. 능선 반대편에도 이런 꽃들이 있어서 그쪽은 오후에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에 사진작가들은 이것을 선태류로서 이끼 종류로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붉은색의 자실체가 끝에 달린 지의류의 한 종류로서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이다. [사진 류요선 : 붓꽃] 류요선 사진작가는 지리산둘레길이 생기기 10여 년 전부터, 훗날 지리산둘레길이 될 산길을 혼자 걸었다. 어느 봄날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출발하여 등구재 고개를 찾아가며 상황마을을 지나 산길을 걸을 때였다. 그늘진 산기슭의 한 무덤 벌안에 붓꽃이 피어있었다. 그 무덤은 후손이 없는지 또는 관리를 안 하는지 봉분에도 풀이 무성하였다. 해 질 무렵 무덤가에 무리지어 핀 아름다운 붓꽃을 사진에 담으며 마음은 쓸쓸하기도 하였다. 경남 함양군 삼정산의 삼불주암을 찾아가는 산길은 이웃하는 여러 암자를 차례로 답사할 수 있는 지리산 암자 순례길 코스에 속한다. 이 삼정산 자락의 한 골짜기는 견성골이라고 하는데, 까마귀나 까치도 불경을 외우며 날아간다고 한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에서부터 걸어서 삼불주암을 찾아갔다. 삼불주암은 산 아래 마을에서 2시간은 걸어야 도착할 거리의 산속에 있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다. 이 사찰 뜨락을 지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 금낭화 군락을 사진에 담은 지 20여 년 후 이 사찰은 비구의 도량이 되었다. 지금도 금낭화가 봄날에 피어나는지 삼불주암을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사진 류요선 :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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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1
  •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제목에 끌려 뽑아 온 책이다. 형식도 특이하다. 황선우와 김혼비라는 사람이 주고 받는 편지다. 황선우와 김혼비 둘다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난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름으로 보아 성별도 잘 구별되지 않는다. 글을 읽으며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일까 유추했지만 처음부터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첫부분 그러니까 첫번째로 주고 받은 편지를 읽다 덮어버렸다. 잘 안 읽혔다. 게다 '제주도우다'도 같이 빌려온 터라 제주도우다를 읽기 시작하니 잘 읽혔다. '제주도우다'를 다 읽었는데 우울했다. 옆에 뒹구러져 있는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지난번 읽은 다음부터 읽는데 잘 읽힌다.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며 웃음이 픽픽 나온다. 참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하마터면 나에게 웃음을 주는 이 책을 그냥 반납할 뻔했다. 어떻게 이렇게 살까? 그런데 나도 한 때는 이렇게 산 적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렇게 산다. '이렇게'라는 것은 잠 잘 시간도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다행히 '성내과'라는 곳의 좋은 의사를 만나 피난처를 찾았었다. 극도의 피로로 죽을 것 같을 때 피 할 곳도 방법도 없을 때 그녀는 피로가 싹 가시는 주사를 주었다. 이것이 바로 마약이다. 물론 내가 맞은게 마약은 아니지만 진짜 마약의 효능을 짐작한다. 자꾸 맞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의사에게 창피한 느낌으로 자제했지만 나를 육체적으로 구원해 준 것만은 사실이다. 사실 나는 자주 가는게 창피해 자제했지만 의사는 자주 오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멈출 수 있다면 다행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멈춰야 하는데 이 두사람의 편지는 재미있고 유익한 방법으로 멈출 수 있게 해준다. 알고보니 둘다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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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9-25
  • 제주도우다2,3
    2권과 3권을 힘들게 다 읽었다. 처참하게 이어지는 처절한 이야기 끝 단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인간이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최악의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의 천사도 될 수 있다. 그 상황을 선택 할 수도 있지만, 혹은 선택한다고 했지만 알고보면 선택이 아니었다. 많은 경우 어쩌다 보니 그 상황에 놓여져있다. 선택되어 태어나지 않았고 부모도 형제도 지역도 종교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거기에 우리가 놓여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것을 말해준다. 모든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다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누구든 어떤 환경에 놓여져도 인간답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투쟁하고 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조금씩 전진한다고 믿는다. 그 틈새에서 많은 희생이 없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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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3
  • [10월13일~14일]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치유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지리산으로 떠나는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0년 세월 숨죽여 지낸 유족들의 사무친 한을 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성찰과 사색의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진실을 이해하고 상생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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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8
  • 지리산에서 50년. 지리산 삼일암 종설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지리산에서 50년. 지리산 삼일암 종설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유튜브 체널에서 뒷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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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5
  • 제주도우다
    '제주도우다'? 제주도가 도와? 제주도의 우다? 제주도가 울어? 책의 내용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궁금했다. '제주도다', 혹은 '제주도이다'의 제주도 말이 '제주도우다'이다.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제주도다!" 과연 제주도는 제주도다! 제주도 말이 많이 나오지만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경상도나 전라도 말같이 어미가 다르다. 그러고보면 모든 지방의 어미는 다르다. 1권만 읽었는데 3권까지 읽으면 제주도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 민요나 노동요도 많이 나오는데 참 정겹고 마음이 아리다. "이여싸 이여싸나 요 파도야 뭘 먹고 둥듯둥긋 살쩠느냐 바람통 먹었느냐, 구르몽 먹었느냐 뭉클뭉클 잘도 올라온다 이여싸나 넘고 가자 이여싸나" 1930년대 오사카의 이주조동자는 제주출신이 오만명이었다고 한다. 짧은 노래가락이 조선인의 형편을 그대로 알려준다. "조선 사람 가엽구나, ,싸움 지고 나라 잃고 지진 탓에 집 무너져 납작궁 납작궁 조선 사람 가엽구나, 넝마 주워 하루 5전 밥 모자라 배때기가 호올쪽 호올쪽"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할 때 '스텐카라진'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 강물 위에 스텐카 라진 배 위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페르시아의 영화의 꿈 다시 찾는 공주의 웃음 땐 그 입술에 노랫소리 드높다 돈 코사크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 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다시 못 올 그 옛날의 볼가강은 흐리고 꿈을 깨는 스텐카 라진 장하도다 그 모습" 낯선 외국의 독특한 고유명사가 나오는 이런 노래를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노래는 누가 만들었을까?? 나와 띠 동갑이신 현기영 작가님은 이런 노래를 다 기억하실까? 우리 때도 고무줄 놀이는 많이 했다. 나는 변방에서 엄청난 기술로 검은 고무줄을 마치 무용수 같이 늘이고 줄이며 노래하는 아이들을 구경만 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나는 외톨였거나 운동신경이 젬병이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는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라든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그리고 "대통령 우리 대통령 이승만" 어쩌구~~ 모든 제주의 조천리 사람들은 "새콧알할망"이 하느님이다. 지리산의 '마고 할미' 같은 분이시다. 모든이가 간절한 마음으로 두손모아 새콧알할망에게 빌고 또 빈다. 처음 이사와 이 시골동네에서 내가 참석했던 당산제는 내 안에 있던 담벼락을 다 부숴놓았다. '새콧알할망'이나 '마고할미'같은 이름이 이제는 참으로 정겹다. 3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권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의 제주 조천리 마을의 이야기다. "영미야, 창근아, 그 시절엔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고, 선배를 잘 따랐주. 반일 투쟁했던 선배들의 정신을 본 받으려고 했어. 그분들이 대부분 좌익이었고, 그래서 후배들은 유식하면 유식한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좌익이 된거라. 그땐 다 그랬쥬."p343 해방이 되었는대도 어이없게도 '맥아더 포고령'이라는 것이 내려졌다. 이것은 미군이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할 것이며, 일본군은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 삼팔선 이남에서 조선의 치안을 유지하는 동시에 행정기관을 존치할 것과, 경찰관, 면서기 등은 별도 명령이 없는 한 종래의 직무에 종사할 것을 명하는 것이었다. 말이 해방이지 해방이 아닌 것이다. 듣고 또 들어도 괘씸한 일본의 만행과 우리 조상이 당한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한 삶과 죽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으면 안된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지금 아주 적절할 때 발간 된 것이다. 나라는 잃었어도 남녀는 사랑을 하고 친구는 우정을 쌓는다. 여기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없다. 다만 소설 속의 창세, 만옥, 행필 같은 사람들 만이 살아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고 가족이며 나 자신인 것이다. 모든 기억과 역사를 동원해 죽은 이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작가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다.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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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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