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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늘
    바늘 김 경 옥 쇠를 갈고 남은 몸이다 매끈한 은빛 몸매 뾰족한 침 끝, 더는 아무것도 없다 저 침에 닿을 때까지 사방 팔방 십이방 모서리 없어지고 이웃마저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제 몸을 깎아냈을까 이 악물고 덜어내어 물러설 수 없는 절벽에 이르렀을까 갈고 닦는 일의 무한함이여 깎고 덜어내는 일의 은은한 아픔이여 가는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기울이며 작은 귀 하나만 열어놓은 세월이여. ---------------------------------------------------------------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그저 지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안고 사는 존재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하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며 자란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그 답을 말하고 죽는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답일 것이니 그렇다. 다시 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살다가 죽을 뿐이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11-13
  • 안개 유감
    「섬진강 편지」 -안개 유감 2023년 10월 22일 안개, 10월 23일 안개, 10월 24일 안개, 10월 25일 안개, 10월 26일 안개, 내리 닷새 아침 안개가 점령군처럼 구례를 장악했습니다. 안개가 옅은 날은 9시쯤이면 걷히지만 독한 날은 11시가 되어서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섬진강과 서시천,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 아래마다 하나씩 있는 저수지들이 봄가을이면 구례를 안개의 마을로 만듭니다. 구례로 이사를 와서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안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구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안개의 피해를 모르고 아침마다 안개 예찬론을 펼쳤으니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요! 봄, 가을이면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 농작물들은 병에 취약하고 강마을 노인들은 기관지, 천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답니다. 오죽하면 안개를 피해 산동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자체가 유치 신청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게 된다면 구례는 그야말로 안개공화국이 되고 말겠지요. 섬진강댐보다 큰 규모의 댐이 2개나 들어선다면 1년 내내 안개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거기다가 양수발전에 부족한 물은 섬진강에서 끌어 쓰게 된다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겨우 기어가는 섬진강물은 더 마를 것이고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게 되면 섬진강 하류의 오염은 뻔하지요.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내는 때 묻지 않은 풍광들이 있어 귀촌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귀촌 인구가 감소 추세인 최근에도 705명(2022년, 구례군 자료)이 귀촌했을 정도로 구례는 3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구례지역 귀촌자들의 특성은 주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최근 우리 마을에 7명의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다들 구례의 천연 풍광에 매료되어 온 친구들입니다. 진정 애향 애민의 위정자들이라면 국비 1조 원이란 곶감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본심을 잊지 않도록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댐이 들어서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30여 년 전에 댐이 건설된 순천 주암댐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보시라! "자욱한 안개에 폐암까지"‥주암댐 주민 피해 호소 https://ysmbc.co.kr/article/d4H__7afKF797La-l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0-27
  • 몸 가르침 한 수
    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3-03-08
  • 겨울 산에서
    ■ 시 겨울 산에서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02-26
  • 지리산 법화종주
    「섬진강 편지」 -지리산 법화종주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 덕평봉,형제봉,삼각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 2박 3일, 지리산 품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40km 지리능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수행길 절뚝이며 휘청이며 30시간을 걸으며 우리네 삶도, 사랑도 이렇게 숱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깊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폐절제 수술 3년이 지나고 망설이던 지리산 종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폐가 잘려 나간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면 손잡아 주고 가파르면 끌어주고 카메라 짐을 나누어지어 준 지리산사람들 길동무님들이 있어 힘들다는 겨울 지리산 종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진강 /김인호 *지리산 법화종주 ; 법계사에서 화엄사까지 오는 종주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1-26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12-16

실시간 지리산문화 기사

  • 대답해 보아라
    대답해 보아라 관옥 사람이 없어도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없으면 사람은 숨도 못 쉰다 그래도 사람이 나무보다 크냐? 사람이 없어도 강은 유유히 흐른다 강물이 없으면 사람은 목 말라 죽는다 그래도 사람이 강보다 크냐?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06-10
  • 후투티 첫나래짓
    「섬진강 편지」 -후투티 첫나래짓 이원규시인과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후투티 새끼새의 처녀비행을 지켜봤습니다. 구례 화엄사 부근의 반야원 카페에서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무려 7시간을 나무 아래 앉아 후투티 식구들을 지켜봤습니다. 모처럼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했지요. 물어온 먹이를 주지 않고 새끼를 불러내는 어미새의 응원을 받고 둥지를 나와 한 번, 두 번, 세 번, 가까운 나뭇가지로 짧은 비행을 하더니 마침내 힘찬 나래짓으로 지리산을 향해 날아오르는 어린 후투티를 지켜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대지의 만물들이 첫 나래짓에 힘찬 응원을 보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후투티는 코뿔새목 후투티과의 조류로 한국 중부 이북에서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여름 철새인데 요즈음은 거의 텃새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외래어인 줄 알았던 이름이 순우리말이란다. 기존에는 뽕나무숲에서 잘 보인다고 오디새라고 불렀으나, '훗 훗'하면서 우니까 '후투티'라는 명칭을 1950년 발간된 한국조류명휘에서 제시한 뒤로 그대로 정착한 듯하다. (두산백과 참조) *후투티 첫나래짓을 축하해주기 위해 달려와 준 안준철, 이민숙시인도 만나 반가웠습니다. *반야원 플라타나스 카페 주소 : 전남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41-2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6-05
  • 오월, 지리산의 꽃들
    「섬진강 편지」 -오월, 지리산의 꽃들 노고단 일출을 보려 새벽길 나섰지만 어제부터 지독했던 황사끼가 심원계곡을 따라 산정까지 밀고 올라오고 구름이 가득하다. 틈이 없는 촘촘한 구름이라 여명도 없었고 먼바다 태풍소식에 노고단은 추웠고 바람도 심했다. 산철쭉은 딱 제 때였다. 노고단 삼거리에서 주능선길을 따라 가며 꽃들과 인사를 나눈다. 처녀치마는 씨방을 맺었고 오리 주둥이를 닮아 오리난초란 별칭을 얻은 '나도제비란', 주근깨가 매력인 '금강애기나리' 씩씩한 '큰앵초' 올 해 찾아낸 몇 송이 '백작약' 몇년 째 잘 살아내고 있는 외로운 '복주머니란' 노루가 좋아한다는 '노루삼' 뿌리가 감자를 닮았다는 '감자난초' 이제 꽃봉오리를 맺은 함박꽃은 다음 주쯤이면 자태를 보여줄 것 같다. -노고단 가는길 -제 때인 산철쭉 -지독한 황사가 주능선까지 올라온다 -노고단 길 -반야봉 -복주머니란 -금강애기나리 -나도제비란 -덩굴개별꽃 -금강애기나리 -큰앵초 -나도제비란(오리난초) -금강애기나리 -복주머니란 -노루삼 -백작약 -감자난초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5-25
  • 구례 사람들의 자부심, 지리산
    「섬진강 편지」 - 구례 사람들의 자부심, 지리산 구례사람들은 보릿고개 시절이었던 1963년, 집집마다 좀도리쌀을 모아 경비를 마련하고 전 군민이 5년 여 온 힘을 모아 1967년 12월 마침내 지리산을 제1호 국립공원으로 만들었다 '어리석은 자도 지혜로워지는 신령스러운 큰산' 지리산이 625 동란과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거기다가 전후의 사회적 혼란을 틈탄 탐욕적인 산림남벌과 불법적 도벌로 황폐화 되고 있었다. 눈만 뜨면 지리산을 바라보며 사는 구례사람들은 더 이상 지리산의 아픔을 방관할 수 없어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운동으로 지리산을 제1호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지리산 원시생태계를 보호하게 된 것이다 '자연으로가는길, 구례' 구례의 이 슬로건에 큰산 아래 큰 사람들, 구례사람들의 자부심이 묻어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 쌀을 아껴 지리산을 살려낸 구례사람들의 지리산 사랑 정신은 닥쳐오는 기후위기 시대를 이겨내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5-20
  • 남원 바래봉
    1-남원 바래봉 (66x270cm) 한지에 수묵채색, 2023년.JPG 부분도1 부분도2 2-바래봉 팔랑치 고개에서(스케치,) 3-남원 바래봉 (스케치) 4-팔랑치에서 바라 본 지리산맥(스케치) 5-2011년 바래봉 팔랑치에서의 그린스케치
    • 지리산문화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
    2023-05-19
  • 지리산에 들어가면
    지리산에 들어가면 고 은 지리산에 들어가면 살 수 있습니다 운봉 구례 하동 대원사 달려와 지리산에 가면 살 수 있습니다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거기 가면 살 수 있습니다 총 쏘아 그 총소리 수십 개 메아리로 다할 수 없는 산 지리산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지리산에 들어오면 싸울 수 있습니다 시대와 맞서 고려 강토의 젊은이 철철이 모여들어 이제 바람치는데 원수를 향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천치 백치일지라도 여기 오면 동토 싸우는 사람 아니고는 안됩니다 목숨 바쳐 온통 핏방울 튀는 사람입니다 널린 꽃과 잎이여 여기가 온통 무덤입니다 그리하여 지리산에 들어가면 몇천 년 내내 세우려 했던 그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9만 리 하늘 가득히 아침햇살 퍼지는데 저 천지개벽의 골짜기마다 능선마다 아침 안개 잠겨 그 아래로 수많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바로 그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화엄골/김인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04-09
  • 꽃지는 마을에서
    오래된 시 한편 들고 지는 꽃을 보러 강으로 갑니다. 「섬진강 편지」 -꽃 지는 마을에서 꽃 피면 달려가마 약속한 사람 소식조차 없는데 섬진 마을 매화 지고 쌍계사 십리 길 벚꽃 지고 산에도 강에도 하얗게 새하얗게 온통 꽃이 지네 하지만, 그대 꽃 다 져버렸느냐 물어오신다면 아니, 아니요. 아직 한창이라고 답하렵니다 이 가슴에 피어난 꽃 아직 지지 않았으니 아니, 아직 피워내야 할 生 의 수많은 꽃 남아있으니 -김인호 시집 <섬진강 편지> 중에서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4-05
  • 남원의 봄
    -황산대첩비지와 국악의 성지(66x270cm , 한지에 수묵채색, 2023년 봄) -황산대첩비지(부분) -송흥록과 박초월 생가 (부분) -국악의 성지(부분) -송흥록과 박초월 명창 생가에서 -국악의 성지 스케치 -황산대첩비지와 국악의 성지 (화첩, 2010년)
    • 지리산문화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
    2023-04-05
  • 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박 두 규 (시인) 삶 속에서 까르마 요가의 실천을 우선했던 인도의 성인 비노바 바베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비노바 바베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부단운동’도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배운 탁발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탁발은 단순한 구걸 행위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자들에 대한 연민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주는 선한 마음, 그 본성을 일깨워 실천하게 하는 것이니 그렇다. 비노바 바베가 했던 탁발은 먹을 것이 아닌 토지였다. 그는 사람들이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누구나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다며, 토지가 없어 고통받는 하리잔(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토지헌납 운동인 ‘부단운동’을 전개했다. 그것은 돈(토지)을 삶의 가장 중심에 두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소유욕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 실험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뿌리 그 자체를 흔들어 놓는 일이었다. 동료들에게는 이게 진짜 ‘정치’ 아니냐며 이 일에만 전념하자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전 국토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토지를 탁발했는데 만일 땅을 내놓으면서 허영된 마음이나 권력을 위해서 땅을 내놓는다는 기미가 조금만 있어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선함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선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비노바는 선한 마음의 자비롭고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는데 그것은 헌신과 소박함으로 뒷받침한 것이어서 누구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감동이 있었기에 인도의 지주들이 사람의 바탕에 있는 선한 마음을 낼 수 있었고 400만 에이커의 땅(영국의 스코틀랜드 넓이만 한 토지)을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이 사회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혁명의 첫 번째가 마음의 변화이고 다음이 개인적인 생활 습관의 변화이며 그것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으며 그 일의 방법으로 자비와 사랑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을 통해 인도 사회의 변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자비와 사랑만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비노바 바베는 브라만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한 브라만의 사회적 역할과 품성 교육에 힘썼고 스스로는 구도적 삶을 사신 분이었다. 비노바의 집에서는 항상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함께 ‘찬드라야나’ 라고 하는 단식을 하며 달을 공경하는 의식을 했는데, 음력 초하루에는 음식을 한 입만 먹고 둘째 날에 두 입을 먹으며 그렇게 보름달이 뜨면 열다섯 입을 먹는다. 그리고 달이 기울면 반대로 매일 그만큼씩 줄어든다. 그러다 달이 뜨지 않게 되면 단식을 하는 그런 의식이었다. 어머니는 이 의식을 하는 동안 매일 달을 향해 하는 ‘푸자 예배’를 드렸는데 비노바는 어머니가 매일 올리는 이 평범한 푸자 예배에서 항상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고는 흘릴 수 없는 눈물이었고, 비노바에게는 어머니의 그 눈물 자체가 큰 교육이었다. 비노바 바베의 어린 시절, 햇볕 따가운 어느 날의 일이다. 육체가 건장한 거지가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심도 없이 그에게 적선하는 걸 보며 비노바는 매우 못마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저런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게으름을 키워주는 겁니다. 바가바드기타에도 나오잖아요? 순수한 선물은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장소에서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누구나 다 존중해주고 힘이 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그녀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참 뒤 어느 날 무슨 일 끝에 비노바는 어머니께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스스로 차별하십니다. 나에게는 차갑게 식은 음식을 잘도 주시면서 집에 오는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그렇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한다. ‘그래, 나는 아직도 스스로 차별하고 있다. 나는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편애하고 있어. 왠지 아니? 나는 아직도 너를 아들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사람의 몸을 입은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너마저 그렇게 볼 수 있다면 그 차별은 없어질 거다.’ 어머니는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사랑하는 자식마저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이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머니는 배를 채울 만큼의 음식과 몸을 가릴 만한 의복이 생활에 필요한 전부이며, 생명을 가진 모두는 동등하며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노바 바베는 그렇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배우는 것의 전부라는 어머니의 교육 속에서 자란 것이다. -사진/김인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3-04-02
  • 지리산 10.19 생명평화기행
    「섬진강 편지」 - 지리산 10.19 생명평화기행 귀한 봄비와 함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지리산사람들이 주관한 '지리산 10.19 생명평화기행단'이 서울에서 버스 한 대로 구례로 내려오셨다. 1박2일 동안 여순사건 구례유적지를 돌아보는 답사기행이다. 첫날 일정은 구례읍 봉성산 기슭에 있는 여순사건희생자위령탑을 참배를 시작으로 간전면학살지인 간문초등학교, 지리산으로 입산한 14연대의 주둔지인 문수간이학교를 둘러보고 국립공원 지리산생태탐방원에서 주철희박사의 '여순항쟁과 민주주의' 강의로 첫날의 일정을 마쳤다. 둘째 날은 14연대와 토벌대의 전투가 있었던 산동면 시랑마을과 산동면 학살지인 누에고치판매장을 돌아보고 산동면사무소 강당에서 정지아작가의 특강을 들었다. 오후에는 산동애가 주인공인 백부전이 살았던 산동면 상관마을과 산동애가 노래비가 있는 산수유사랑공원을 둘러보고 반곡마을 홍판주 어르신으로부터 9살 소년이 겪었던 여순항쟁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으로 여순사건으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구례다. 14연대가 여수나 순천에서 머문 시간은 열흘이 채 되지 않지만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지리산입산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6년이 넘게 구례는 여순사건의 피해를 당했다. 최근 정지아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어 구례 많은 사람들이 여순사건으로 희생당한 역사가 알려지는 것 같다. 이번 기행단이 성황을 이룬 것도 정지아 작가의 특강 덕이 큰 것 같다. 비를 맞으며 지리산 자락 아픈 자리를 돌아보는 이들의 무거운 마음을 달래주듯 확 피어난 벚꽃, 아직 지지않고 기다려준 산수유꽃들아 고맙다.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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