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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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주능선, 진안고원 백마산(내동산)에서 조망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주능선을 진안고원의 백마산 정상에서 겹겹이 산줄기 너머로 조망하였다. 지리산 주능선은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은' 우리 역사 시공간의 시원(始原)을 펼쳤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시공간인 이 광야를 힘차게 누비며 달리라. [사진: 이완우 기자]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4-02-14
  • 처방전 없음
    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일찍 어떤 사람은 아주 늦게 또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에....다양하다. 일찍 자기의 길을 발견하고 소신껏 사는 사람을 나는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싶다.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나와 같지 않은 훌륭한 사람을 나는 가끔 만난다. 실제 삶에서 만나고 역사에서 만나고 책에서도 만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단어 '聖人'을 떠 올렸다. 나는 병원에 거의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그렇다고 내가 건강체질이거나 지금 건강해서가 아니다. 나는 이미 큰 병을 많이 앓았고 지금도 소소하게 아프다. 알아서 나를 살핀다. 뭔가 조짐이 있을 때 더 심해지지 않도록. 가끔 산에 가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한계를 넘는 일에 모험을 거는 각오가 필요하다. 이제 한계를 넘을 때마다 후유증이 심해 한계를 넘는 일은 줄일까한다. 사실 건강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기에 엄청 건강한 사람도 늘 자기는 아프고 그래서 이 일을 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 '건강 염려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 살 때 한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죽을 만큼 아파도 견뎠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으로 버텼고 아직 죽지 않았다. 한국에 오니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고 센타에서 전화와 문자가 쉴새없이 온다. 건진 받으러 병원가면 멀쩡히 환자가 된 기분이다. 네델란드에서 살때 둘째인 딸이 오른쪽이 마비돼 병원에 오래 입원했었다. 아이가 어려 곁에서 자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간호사가 아이 잘 때까지 책도 읽어주고 하나에서 열까지 보살폈다. 보호자가 정말 자고 싶으면 다른 방에서 자야했다. 방은 맑은 공기로 늘 청결했고 외부인은 없었다. 의사는 약을 주거나 진료가 끝난후 이약은 어떤 약이고 무엇에 도움이 되고 왜 먹어야 하는지 묻지도 않는데 자세히 설명했다. 진료가 끝난 후 상태가 어떤지 상세히 설명하고 안심시켜 주었다. 4살. 유치원에 결석이 길어져도 상관없는 나이라고 부모인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유치원에서 선생이 병원에 방문해 아이와 함께 수업을 해주고 가곤했다. 이 아이는 지금 40살이 되었고 일찍 독립했다. 내가 한국에 와 병원에 갔을 때 만난 의사는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나를 상품 취급했다. 뭘 물어볼 새도 없이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하고 오분 안에 진료를 마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조건 주사와 엄청난 양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주사를 거부했고 처방전은 버렸다. 신뢰감이나 안도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앞으로도 병원엔 가능한 가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 이루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다. 네델란드총리 부부의 안락사! 나의 소신과 딱 맞는 의사를 만나 기쁘다. 병원에 가고 싶지 않지만 이 의사가 내 주치의라면 거부하지 않겠다.^^ "상품으로서의 삶을 거부하는것. 때로 아무것도 되지 않아 보는 것. 눈에 뜨지 않고 사회의 관심에서 동 떨어져 있는 이들을 찾아 친구가 되는것. 거래되지 않는 관계를 통해 자신의 외연을 넓혀가는 것." p211 의료산업을 통한 수익창출은 자본주의 착취의 '끝판왕'이다. 의료의 공적 역할이 부재한 상황에서 바이오헬스산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선의는 쉽게 의료기관의 수익 창출로 이어진다. 이런 방향성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의료기술이 난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그 일례로, 2019년 전국을 들 끓게 만들었단 '인보사 사태'를 들수 있다. p270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 아닌 사람이 없다. 신체 투시가 가능한 현대의 의료기술은 모든 인간을 환자로 만들어내고 있다. 더 건강하게 만든다? 건강을 만들어낸다 무슨 말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더 건강해져야 한다고 외치는 '건강 강박'은 자본의 이익 창출에 대한 요구다. 이런 요구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워낙 노골적이다. 이것이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기조차 쉽지 않다. p271 늘 이상했던 것이 있다. 왜 오래 살아야 하는지, 왜 암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272 정책적 대안도 중요하지만 대항 품행을 만들어 나가는 운동이 필요하다. 대안적 삶이 있어야 한다. 엉뚱한 생각을 해 복 필요가 있다. 건강관리를 전혀 안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암을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면(암 환자인 할머니가 세계 여행 다니는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다)?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 없다. 적절한 자기 배려와 용기로 죽음에 맞서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p273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13
  • 지켜야 할 세계
    지켜야 할 세계는 장편 소설이다. 별 특별 할 것 없을 것 같은 교사의 일상과 학교 생활을 적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중간에 읽는 걸 멈출 수 없는 추진력이 있다. 한동안 학교 폭력, 일진, 왕따, 성적비관, 자살등 주로 학생 주도로 발생되는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학생 체벌 금지가 어느 정도 지켜지는지 학생 인권 조례는 과연 만들었는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집에 학생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뉴스라는게 지속적이기 보다는 이슈 위주의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순간 부터는 문제가 선생님에게로 옮겨가 선생님의 인권이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크게 훼손되는 뉴스가 많이 등장했다. 서이초 선생님의 자살로 학부모 갑질 사례가 잇달아 보도되기도 했다. 오래전 '학교'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우리 집에 학생은 없었지만 요즘 아이들의 학교는 어떤지 궁금했다. 우리 때와 또 우리 아이들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겠지만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실에서 와글 와글 떠드는 아이들 소리도 듣기 좋았고 그저 아이들을 보는 것만도 좋다고도 생각했다. 주로 문제아를 다루고 있었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부터 학교 환경이나 문화등 과연 모든 것이 다른 세계였다. 이후 '학교'시리즈로 아마 3까지 계속 나왔는데 나는 2까지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당시 학교 드라마가 인기였는지 그 드라마에 나왔던 신인 모두 지금 일류 배우가 되었다. 인간의 생애 주기 중 가장 다듬어지지 않고 가장 혈기 넘치는 시절의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 학교다. 그러니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곳이 학교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야 하는 곳이 학교다. 선생님 한 사람이 상대 할 수 있는 학생 수가 많을 수록 문제는 감춰지고 심각해 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지금의 다섯 여섯배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었다. 문제 속에 있으니 문제를 몰랐을 수도 있고 아이의 인권은 무시되는 시대 였으니 알 수 없었는지 모른다. 아니 체벌은 정말 무서웠다. 눈 앞에서 자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를 때리는 선생을 보는 것은 문자 그대로 공포였다. 모든 시대적 환경적 문화적 교육적 환경이 달라졌으니 그에 따라 문제도 그 양상도 달라졌다. 인성교육이라는 것은 언제 부터 무시되고 오로지 진학, 그것도 일류대 진학을 향하게 되면서 부터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본다. 교사,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한가지 돈 때문이라면. 의사는 환자를 돈으로 본다면. 변호사와 검사는 언어의 유희와 법만이 통하는 법의 해석으로 억울한 사람을 만든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면. 자기가 지킬 것이 모두 다 똑같이 돈이라면. 모든 사람은 각자 다 다른 자기의 세계가 있다. 자기의 세계를 지키지 못하면 세상은 아수라. 자기의 세계를 지킬 때 인간은 인간 다워지고 지구는 지구다워질 것이다. 그 시작은 교육이다. 사랑으로 돌보는 인성교육! 주인공 윤옥은 교사로서의 자기 세계를 끝까지 지켜낸다. 지켜내는 일은 어렵다. 지켜내기 위해서는 유혹을 뿌리쳐야 하고 생명을 끌어안아야한다. 유혹의 얼굴은 이브같이 아름답고 사과같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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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12
  • 애도의 방식
    저자 안보윤의 글 단편 두개는 모두 학교와 관련된 것이다. '애도의 방식'은 학생 관련이고 '너머의 세계'는 교사 관련 글이다. 애도의 방식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다 결국 자기의 실수로 죽고 또 죽은 아이의 엄마가 찾아와 괴롭힌다. 너머의 세계는 학생이 저보다 키가 작고 여린 선생을 놀리고 괴롭힌다. 당하는 모습은 언제나 답답하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에 따라 대처 방법은 다 다르다.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학교를 때려치고 알바를 전전하지만 어는 곳에서도 삶은 녹록치 않다. 학교는 배움의 장소가 아니라 문제의 터전이 된지는 얼마나 되었나.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데 안으로는 썩고 있는 건 아닌가? 영화 '다음 소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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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12
  • 절기와 농사, 선인들의 통찰
    절기와 농사, 선인들의 통찰 이선재 사마천 『사기』 첫 대목인 <오제본기>에 요임금이 절기를 정한 내용이 나온다. 간추리면 이렇다. 요는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시기를 가르쳐주게 했다. 희중을 욱이에 머물게 하고 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봄 농사를 알려주도록 했으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조성(鳥星)이 정남쪽 하늘에 위치한 시각을 파악하여 춘분을 정하게 했다. 희숙을 남교에 살게 하여 낮이 가장 긴 날 화성(火星)이 정남쪽 하늘에 걸친 시각을 판단하여 하지를 정하게 했다. 화중을 매곡이라는 서토에 머물게 하여 허성(虛星)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으로 추분을 정하게 했다. 화숙을 유도라는 북방에 살게 하고 묘성(昴星)이 정남쪽 하늘에 자리한 시각을 관찰하여 동지를 정하게 했다. 이로써 24절기의 네 기둥인 이분이지(二分二至/춘분, 추분, 동지, 하지)가 확립되었다. 이것이 요임금을 성군으로 칭송한 핵심적인 업적이다. 요임금이 치세하던 시대는 기원전 2300년경으로 아직 고고학적으로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다만 사마천의 많은 기록이 현대의 학술적 연구로 그 사실성이 입증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신뢰성이 대단히 높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서 그 시대 절기에 대한 이해가 통치자들과 민중 모두에게 절실하고 현실적인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농사는 태양과 땅, 바람과 물이 짓는 까닭이다. 농사꾼은 자연의 곁에서 돕는 자일 뿐이다. 이분이지가 확립된 이후 다시 사립(四立/입춘, 입추, 입하, 입동)을 정한다. 사립은 태양의 움직임에 대해서 땅이 반응한 결과로 조성된 자연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는 태양을 기준으로 보면 가장 더운 날이지만 실제로 극심한 무더위는 이때로부터 한 달 정도 후에 온다. 태양의 기운을 땅이 받아 데워지고 이 지열이 우리를 더위에 가둔다. 태양이 가장 짧은 동지가 지난 후에야 역시 심한 추위가 시작되고 한 달 보름 정도 이후인 입춘이 되어야 봄이 움을 튼다. 절기는 이와 같이 태양의 움직임이 갖는 규칙성을 중심으로 땅의 반응을 함께 정리한 ‘태양력’이다. 역법에 대한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음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중들은 음력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달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음력이 어로 활동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지만 농사의 경우에는 음력의 쓸모가 많지 않다. 그리하여 음력을 기반으로 하되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이를 보완한 ‘태음태양력’이 우리 조상들이 쓴 달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확한 태양력을 세우는 일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태양과 달, 별을 정확하게 관측하는 일은 민중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력을 민중들에게 배포하고 때에 맞춰 농사를 짓게 하는 일이 통치자들의 연례적인 임무였다. 농가월령(가)을 배포하고 민중들이 이를 숙지하도록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절기를 잘 아는 것은 농사꾼의 기본적인 자질이다. 철을 모르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다. 그렇다고 24절기만이 철을 아는 방법인 것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벌레 소리로 계절을 판별했다. 어떤 이들은 산과 들에 피어나는 나무와 풀의 잎사귀와 꽃의 변화를 보면서 농사철을 알아낸다. ‘조팝꽃이 피면 모내기를 시작한다’와 같이 자연의 변화에서 때를 알 수 있는 징조들은 많다. 자연을 가깝게 느낄수록, 그리하여 시시각각 그 변화가 피부에 와 닿으면 농사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오늘날에는 철모르는 농사가 대세다. 땅이 꽁꽁 언 한겨울 비닐 하우스에 난방을 넣고 여름에나 먹을 수 있는 오이나 딸기를 재배한다. 딸기같은 경우는 오히려 제철에는 먹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사실 석유를 먹고 사는 셈이다. 그 결과 땅은 황폐해지고 기후위기가 심화된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대안적 농법,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해마다 풍년을 이룰 수 있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다시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짜와야 한다. 다시 또 하늘과 땅의 변화를 깊이 관찰하고 선인들의 통찰로부터 가르침을 얻어야 할 일이다.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4-02-10
  • [구인광고] 지리산을 닮은 천년의 숲, 함께 만들어요.
    <구인 광고> 지리산을 닮은 천년의 숲 함께 만들어요. 지난 가을, 지리산골프장 벌목지 주변에서 씨앗을 채종하였어요. 올봄에는 삽목도 할 거고요. 지리산사람들은 골프장으로 헐벗은 벌목지가 숲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나무 씨앗을 뿌리고, 살펴보고, 기르는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함께할 분을 찾습니다. 활동장소 : 지리산골프장 벌목지(채종, 삽목), 한겨레 숲(파종, 모니터링, 기르기) 활동시간 : 일단 화요일로(모인 분들과 상의해서 조정 가능해요.) 모집기간 : 2월 29일까지 물어보기 : 밤구 010-2281-2310
    • 지리산 오늘
    • 씨앗 숲
    2024-02-10
  • [강좌] 천년의 숲, 그 시작은 씨앗에서
    [강좌] '천년의 숲, 그 시작은 씨앗에서' 강좌신청 : https://forms.gle/A6Tecp9Q7ayLZq7u8 구례 사포마을엔 지리산 골프장 불법, 탈법 벌목지가 있습니다. 벌목된 나무들 주변에서 씨앗을 채종해왔습니다. 한겨례숲에서 그 씨앗이 나무가 되는 과정을 함께해보려합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며 나무와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한 강좌를 엽니다. 나무를 잘 알고 나무와 친해지고 싶으신 분들, 파종, 삽목을 배워 나무를 잘 기르고 싶으신 분들, 씨앗에서 나무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함께하실 분들, 모두 환영해요:) ???? 천년의 숲, 그 시작은 씨앗에서 ???? 씨앗에서 나무로, 어떻게 하면 잘 자랄 수 있을까요? 집을 빼앗긴 나무들, 얼마나 될까요, 누구일까요? - 1강 씨앗에서 나무로 3월 2일 (토) 낮 1시 ~ 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 아침꽃 농원에서 안내자 : 고신애 / 오구균 / 이채수 - 2강 집에서 쫓겨난 나무들 3월 9일 (토) 낮 1시 ~ 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 지리산골프장 벌목지에서 안내자 : 못난이 / 정태준 *수강료 : 회차 당 5,000원 물어보기 : 밤구 010-2281-2310
    • 지리산 오늘
    • 씨앗 숲
    2024-02-10
  • 지극정성至極精誠
    지극정성至極精誠 저희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이신 송기득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선생님은 수년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자신의 삶도 이런저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셨는지 그동안 발행해오던 잡지 『신학비평』을 폐간하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주변에서 제자들이며 지인들이 극구 말려서 『신학비평』은 끝났지만 이후 그 여운을 담아내는 부록처럼 『신학비평 너머』라는 제호로 전보다 규모가 작아진 책을 내며 마음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신학비평 너머』 원고를 청탁하시면서 말씀 뒤 끝에 이 『신학비평 너머』도 올해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왠지 그 말씀이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려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신학비평』은 당신의 모든 일상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 같은 것이며 여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할 것인데 이를 그만둔다는 말은 예삿말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도 선생님의 판단인데 내가 이런저런 짐작을 해서도 또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어서 오늘의 행위가 내일을 결정하게 되니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해야만 운명도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신학비평 너머』 폐간 결정이 그러하신 것 같았습니다. 생성하는 것은 반드시 소멸이 따르는 것이라 하니 선생님께서 그 시기를 보시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학비평 너머』를 더 하시라는 말도 못 꺼내고 글이나 더 열심히 써서 보내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지요.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집중하니 성誠이라는 글자 하나가 떠올랐지요. 선생님의 삶 자체를 이 글자 하나가 오롯이 떠받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군 때의 경전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보면 성誠에 대해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誠者 衷心之所發 血性之所守 (성이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誠에 대한 연변대학에 있던 최민자 교수의 해설을 보면 “일념으로 誠을 다할 때 자신의 誠門이 열리면서 스스로의 신성과 마주치게 된다. 매순간 정성을 다하는 것이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요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 ‘하나’님(‘삼일신고’에 나오는 一神降衷의 의미)을 경배하는 것이다.” “정성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며 잊지 아니하는 것이고 쉬지 않는 것이며 지극한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라는 글들이 나옵니다. 내가 송기득 선생님을 자신의 일상 삶 자체를 오롯이 성誠으로 사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수년간의 지극한 돌봄과 그 죽음 이후 현재 삶만 보더라도 그렇고 선생님의 삶 전체를 한마디로 평한다 해도 성誠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듯싶습니다. 젊은 날 구도행의 시절도 성誠이요 학자로서 학문을 할 때도 성誠이요 가르침이나 모든 삶 행위도 성誠이요 사모님에 대한 극진한 모심도 성誠이었으니 그 지극정성의 삶 자체가 이미 참 본성으로 세속을 살아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책 내용에서 “정성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정성이 더욱 깊어져 우리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그것이 각인되는 단계에 이르면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의 전 과정이 정성의 발현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가히 정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역사상 알려졌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은 밝은이(覺者)들이 이에 속한다. 이는 한마디로 ‘나’(에고)를 잊고 ‘나’(참 본성)를 잃지 않는 경지이다.” 라는 대목을 보면 더욱 선생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아파트에서 두유나 과일주스 등으로 식사를 하시며 불편한 몸으로 혼자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려보다가 시를 한편 만들었습니다. 새는 낮게 날아 나무의 그늘로 그늘로만 옮겨 다니며 아무런 지저귐도 없이 폭염을 견디었다. 견딘다는 것은 영역과 영역의 경계를 사는 일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외롭고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경계를 지우고 순일純一한 하늘을 보게 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오늘이겠지. 오늘이겠지. 그렇게 막연한 설렘 하나로 또 하루가 갔다. (박두규의 시 「또 하루가 갔다」 전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02-09
  • 파랑 또는 파란
    파랑 또는 파란 송태웅 뒤뜰을 바다로 깔았다 하여 내 뒤뜰로는 파랑도 끼룩거리는 철새처럼 밀려오는 것인데 나의 배후가 짙푸르게 물들어 끊임없이 출렁인다 해도 당신은 그 어느 피안에서 흰 주단을 덮고 눕길 바란다 생은 한 필지의 주민등록지 위에 내리는 폭우와 싸워나가는 것 내 영혼이 노쇠한 낙타처럼 더 이상은 어디로도 갈 수가 없을 때 비로소 생은 신생 교회의 거대한 십자 네온사인 같은 헛된 경전을 집어던지고 겨우 허름해질 수 있는 것 생애 처음으로 내게 온 남루여 뒤뜰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고요히 내려앉은 파란이여 --------------------------------------------- 지리산 자락에 들어온 송태웅 시인의 삶의 또는 의식의 현주소가 변하는 과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시다.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고 있는 엄정한 현실 속에서 그는 가식과 위선의 헛된 지난 세월을 집어 던지고 허름한 마음으로 현실의 가난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자 그 신산스럽던 가난도 파란만장한 인생도 토란잎의 물방울처럼 고요히 내려 앉아 영롱하다. 그는 달라진 자신의 현실을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 가난이 비로소 ‘삶의 실재’를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오는 빛나는 각성과 성찰이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의 삶의 배후에는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파랑’이 있다고 말한다. 자본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도 아닌 가난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난은 무능함이고 비천함이며 장애라고 말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런 가난에 휘둘리지 않고 가난을 보듬어낼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배후에는 ‘파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 파랑은 바닥을 치고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파랑’은 뒤뜰의 작물들이든 자연이든 농사든 시골이든 무엇이든 어쨌든 생명의 근원에 닿아있는 무엇일 것이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4-02-09
  • 지리산 화엄사 사하촌 황전마을 남보살님. 남덕순 어르신의 화엄사 이야기
    00:00 인트로 00:15 한 식구 맨키로 지낸 화엄사 03:17 화엄사 산내암자에 대한 기억 08:20 화엄사와 함께한 황전마을 09:03 도광스님 이야기 10:42 터만 남은 자리에 새로 지어진 암자들 00:00 화엄사 차 이야 02:23 논농사 짓던 화엄사 스님들 04:41 연기암 종원스님과의 인연 07:29 차가 다니는 연기암 길이 만들어진 사연 08:39 남보살님이 서원하는 화엄사
    • 지리산사람들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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