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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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극정성至極精誠
    지극정성至極精誠 저희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이신 송기득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선생님은 수년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자신의 삶도 이런저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셨는지 그동안 발행해오던 잡지 『신학비평』을 폐간하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주변에서 제자들이며 지인들이 극구 말려서 『신학비평』은 끝났지만 이후 그 여운을 담아내는 부록처럼 『신학비평 너머』라는 제호로 전보다 규모가 작아진 책을 내며 마음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신학비평 너머』 원고를 청탁하시면서 말씀 뒤 끝에 이 『신학비평 너머』도 올해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왠지 그 말씀이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려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신학비평』은 당신의 모든 일상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 같은 것이며 여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할 것인데 이를 그만둔다는 말은 예삿말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도 선생님의 판단인데 내가 이런저런 짐작을 해서도 또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어서 오늘의 행위가 내일을 결정하게 되니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해야만 운명도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신학비평 너머』 폐간 결정이 그러하신 것 같았습니다. 생성하는 것은 반드시 소멸이 따르는 것이라 하니 선생님께서 그 시기를 보시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학비평 너머』를 더 하시라는 말도 못 꺼내고 글이나 더 열심히 써서 보내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지요.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집중하니 성誠이라는 글자 하나가 떠올랐지요. 선생님의 삶 자체를 이 글자 하나가 오롯이 떠받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군 때의 경전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보면 성誠에 대해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誠者 衷心之所發 血性之所守 (성이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誠에 대한 연변대학에 있던 최민자 교수의 해설을 보면 “일념으로 誠을 다할 때 자신의 誠門이 열리면서 스스로의 신성과 마주치게 된다. 매순간 정성을 다하는 것이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요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 ‘하나’님(‘삼일신고’에 나오는 一神降衷의 의미)을 경배하는 것이다.” “정성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며 잊지 아니하는 것이고 쉬지 않는 것이며 지극한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라는 글들이 나옵니다. 내가 송기득 선생님을 자신의 일상 삶 자체를 오롯이 성誠으로 사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수년간의 지극한 돌봄과 그 죽음 이후 현재 삶만 보더라도 그렇고 선생님의 삶 전체를 한마디로 평한다 해도 성誠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듯싶습니다. 젊은 날 구도행의 시절도 성誠이요 학자로서 학문을 할 때도 성誠이요 가르침이나 모든 삶 행위도 성誠이요 사모님에 대한 극진한 모심도 성誠이었으니 그 지극정성의 삶 자체가 이미 참 본성으로 세속을 살아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책 내용에서 “정성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정성이 더욱 깊어져 우리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그것이 각인되는 단계에 이르면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의 전 과정이 정성의 발현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가히 정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역사상 알려졌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은 밝은이(覺者)들이 이에 속한다. 이는 한마디로 ‘나’(에고)를 잊고 ‘나’(참 본성)를 잃지 않는 경지이다.” 라는 대목을 보면 더욱 선생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아파트에서 두유나 과일주스 등으로 식사를 하시며 불편한 몸으로 혼자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려보다가 시를 한편 만들었습니다. 새는 낮게 날아 나무의 그늘로 그늘로만 옮겨 다니며 아무런 지저귐도 없이 폭염을 견디었다. 견딘다는 것은 영역과 영역의 경계를 사는 일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외롭고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경계를 지우고 순일純一한 하늘을 보게 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오늘이겠지. 오늘이겠지. 그렇게 막연한 설렘 하나로 또 하루가 갔다. (박두규의 시 「또 하루가 갔다」 전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02-09
  • 파랑 또는 파란
    파랑 또는 파란 송태웅 뒤뜰을 바다로 깔았다 하여 내 뒤뜰로는 파랑도 끼룩거리는 철새처럼 밀려오는 것인데 나의 배후가 짙푸르게 물들어 끊임없이 출렁인다 해도 당신은 그 어느 피안에서 흰 주단을 덮고 눕길 바란다 생은 한 필지의 주민등록지 위에 내리는 폭우와 싸워나가는 것 내 영혼이 노쇠한 낙타처럼 더 이상은 어디로도 갈 수가 없을 때 비로소 생은 신생 교회의 거대한 십자 네온사인 같은 헛된 경전을 집어던지고 겨우 허름해질 수 있는 것 생애 처음으로 내게 온 남루여 뒤뜰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고요히 내려앉은 파란이여 --------------------------------------------- 지리산 자락에 들어온 송태웅 시인의 삶의 또는 의식의 현주소가 변하는 과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시다.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고 있는 엄정한 현실 속에서 그는 가식과 위선의 헛된 지난 세월을 집어 던지고 허름한 마음으로 현실의 가난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자 그 신산스럽던 가난도 파란만장한 인생도 토란잎의 물방울처럼 고요히 내려 앉아 영롱하다. 그는 달라진 자신의 현실을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 가난이 비로소 ‘삶의 실재’를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오는 빛나는 각성과 성찰이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의 삶의 배후에는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파랑’이 있다고 말한다. 자본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도 아닌 가난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난은 무능함이고 비천함이며 장애라고 말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런 가난에 휘둘리지 않고 가난을 보듬어낼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배후에는 ‘파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 파랑은 바닥을 치고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파랑’은 뒤뜰의 작물들이든 자연이든 농사든 시골이든 무엇이든 어쨌든 생명의 근원에 닿아있는 무엇일 것이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4-02-09
  • 지리산 화엄사 사하촌 황전마을 남보살님. 남덕순 어르신의 화엄사 이야기
    00:00 인트로 00:15 한 식구 맨키로 지낸 화엄사 03:17 화엄사 산내암자에 대한 기억 08:20 화엄사와 함께한 황전마을 09:03 도광스님 이야기 10:42 터만 남은 자리에 새로 지어진 암자들 00:00 화엄사 차 이야 02:23 논농사 짓던 화엄사 스님들 04:41 연기암 종원스님과의 인연 07:29 차가 다니는 연기암 길이 만들어진 사연 08:39 남보살님이 서원하는 화엄사
    • 지리산사람들
    2024-02-09
  • 2023년 지리산사람들 활동보고와 결산안 공유합니다
    지리산사람들 활동을 응원하고 참여해주신 회원님께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지리산사람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회비와 후원금은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2023년 지리산사람들 활동보고안과 결산안’으로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 첨부파일 확인)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061-783-6547, jirisanpp@daum.net 공유한 활동보고와 결산안은 2월 24일 아침9시, 지리산리조트(함양)에서 진행되는 회원총회에서 심의할 예정입니다. 총회를 포함한 회원모두모임은 2월 23일 ~ 24일(1박2일), 산청과 함양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참석을 요청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사람들 총회준비위원회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회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4-02-06
  • 입춘첩
    「섬진강 편지」 -입춘첩 뒷산은 밤새 흰 눈으로 쓴 입춘첩을 성삼재 이어지는 만복대 능선에 내걸었고 앞산은 얼음새꽃빛으로 쓰고 노루귀꽃빛으로도 쓰고 바람꽃빛으로 쓴 삼색 입춘첩을 골짜기에 내걸었다 온 목숨들 立春大吉 하고 建陽多慶 하시라고 .............................................................................................. 밤사이 지리산에 눈이 내려 입춘 설경을 보러 시암재에 올랐습니다. 만복대 능선길은 하얗게 눈이 쌓였지만 성삼재 넘는 바람은 입춘임을 아는 듯 보드랍기만합니다. 마을로 내려서는 밤재에는 솜털 보송한 노루귀가 분홍꽃빛을 터트리고 있고 골짜기 개울가에는 황금잔처럼 빛나는 얼음새꽃, 변산바람꽃이 피어 움츠렸던 숲을 깨웁니다. 마을 앞 쌍산재 매화도 몇 송이 꽃봉오리를 터트려 놓고 나를 부르는 입춘입니다. 그대도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깨워 어여 봄을 맞이하시기를!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02-06
  •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4명의 작가가 집에 대한 글을 썼다. 집은 집인데 위험한 집!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번득들어 이 책을 집었다. 가장 소설같은, 즉 허구스러운 글은 " 누군가 살았던 집" 전건우 가장 현실같은 소설은 "그렇게 살아간다" 정혜연 가장 소설같은 흥미를 주는 글은 " 반송사유" 정보라 가장 흥미 떨어지는 글은 "죽은 집"정명섭 우리는 누군가 살았던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새로 집을 짓는다해도 그 땅에는 누군가 살았을 것이다. 내 앞의 누군가가 그 집에서 무슨짓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아주 해괴한 일을 했고 그 여파가 도배로 싸 발랐다해도 남았을 수 있다. 내가 사는 집의 역사는 대충 알고 있다. 내 이전에 살았던 집 주인과의 짧았던 동거를 떠 올리면 이 집 역시 참 위험한 곳!이다. 또 집 내부의 환경 또한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아무도 내부 진입 금지!(흐흐) 정보라의 이멜 형식을 취한 글도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산 속에 산다는 것이 그렇다. 더 구체적인 야그는 생략한다. '죽은집'은 이미 읽은 김완의 '죽은자의 집청소'에 대해 아는 바라 흥미가 떨어졌다. 무엇을 읽더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글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 읽기 뿐이겠는가, 뭐든 그렇겠지만. 그런 면에서 나의 평가가 다른이에게는 영향이 없기를... 우짰든 독후감이란것 극히 주관적이다. 특히 나의 독후감이 그렇다는 것은 아는 분은 다 아실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소설이라기엔 너무 현실적. 인간의 이중성 혹은 다중성. 아니면 인간 내면의 선과악. 무엇이라 부르던 공감할 수 있다. 공감하는 인간, 나! 내가 무섭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03
  •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대략 '공부'라는 것은 고딩이나 대학까지를 말한다. 그후 학위를 위해 평생 공부한 사람도 있지만. 그 '공부'하던 시절에 외웠던 것들은 평생을 써 먹는다. 최근 뭐를 해도 저장이 되지 않고 그 옛날 공부하던 시절 것만 튀어나온다. 그 시절 엎드려 자지만 말고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왜 하는걸까? 벌써 여기저기서 여러차례 듣고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도서관같은 '한남자'나 작은 책꽂이 같은 '한여자'가 무너질 때가 됐으니 이런 회한 만큼 쓸모 없는 일도 없다. 들으면 알고 돌아서면 모르는 세계사 책을 읽은 소감이다. 인류의 대멸망이나 소멸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한나라 한가족의 멸망이 그러하듯. 지구는 5번의 멸망이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후다. 화산폭발이나 지진, 홍수나 가뭄같은 기후적 요인이 가장 큰 것이다. 5번의 대멸망이 자연 발생적이었다면 예고되고 있는 인류세의 멸망은 인간이 불러온 재앙이다. 결국 인간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버린 쓰레기가 기후위기를 불러오고 인간의 멸망을 부를 것이라는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의 완성이 멀지 않았다는 예고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소수다. 이 책은 인간 역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국가의 수립과 몰락 그리고 그나라의 흥망성쇠를 기후 측면에서 바라본다. 자연 이변 앞에 꼼짝도 못하는 인간이 이제 그 자연을 뒤 흔들다가 함께 멸망하려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남 탓만 하고 있다. 가장 영특하면서도 미련하고 이기적이다. 불과 한세기 100년을 살까말까 하면서 영원을 지배하려한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겠지만 있다면 그건 욕심과 욕망을 버리는 일이다. 가능하지 않다. 인류세는 종말을 맞겠지만 그 때가 그렇게 멀지는 않을지 모른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욕심때문에. 저만 잘 살겠다고. 수많은 지구종말 영화들이 생각난다. 기후나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잘 하자!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4-02-03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 '한겨레평화의숲‘과 김철호선생
    「섬진강 편지」 -'한겨레평화의숲‘과 김철호선생 구례 ‘한겨레평화의숲’에서 박소산 동래학춤 명인의 학춤과 김평부대금 명인의 공연을 가졌다. 새해를 맞아 가까운 이들이 서로의 안부도 전하고 모든 생명의 평화를 기원하는 조촐한 자리였지만 대자연 속에서 펼쳐진 공연은 살아 숨쉬는 감동의 무대였다. 특히 공연 무대가 된 ‘한겨레 평화의 숲'은 김철호선생의 치유와 화해, 생명과 평화의 정신이 깃든 숲이어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한겨레평화의 숲’과 김철호선생 생전에 지리산을 좋아했던 김철호(1923~1995) 선생은 6.25 전쟁 전후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들이 버러 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유골에 좌.우익이 어디 있겠냐'. '뼈의 색깔은 희다'라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60대 중반의 나이로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구례읍 봉서리 산기슭에 움막을 짓고 억울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평화의 숲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기암 진단으로 현금 5억 원과 공원 조성부지 1만 2천 평을 치유와 화해, 생명과 평화의 정신을 드높이는데 써달라며 1995년, 한겨레 신문에 기탁하여 1996년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발족의 주춧돌이 되었다. 김철호 선생은 1923년 화성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섬유·화학약품 제조업체를 경영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원공채를 실시하는 등 기업문화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1983년에 노동자들의 휴양소로 써달라며 기증한 3만여 평의 땅은 현재 경기산재요양병원의 모태가 됐다. 김철호선생은 1995년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하였으며 경기산재요양병원 내 화성소망교회에는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생전 김철호 선생이 살던 움막터에 지은 김철호의 집 -김도경 낙동국악원장과 박소산 동래학춤명인의 액막이 공연 -김평부 대금명인 동학의 함성 공연 - 동래학춤 명인 박소산의 학춤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02-01
  • 토종씨드림 일손 돕고 온 칩코의 방구일기
    나의 집과 집주인댁은 바로 옆집이다. 집주인댁은 농사를 많이 지으신다. 노부부 두 분께서 다 드시지도 못하고 썩혀버릴 만한 양이다. 평생 이웃을 돌보며 사신 노부부는 나더러 당신네 창고에 쌓인 채소를 양껏 먹으라셨다. 펄쩍 뛸 만큼 좋긴 한데 하나 문제가 있다. 소농은 기가 죽는 것이다. 나도 작년에 작물을 심긴 했는데 사실 집주인댁 채소만 먹어도 될 정도라 내가 굳이 농사를 지어야 하나 아리송해진다. 작년에도 토종씨드림에서 씨앗을 보내주셨다. 깨 씨앗을 애지중지 길렀는데, 아뿔싸. 집주인댁은 들기름을 자급할 만큼 깨를 심으신다. 우리 집 마당에도 그 씨앗이 솔솔 날아와 들깨가 개망초인양 자라는데, 나중엔 뭐가 토종깨고, 뭐가 집주인댁 깨인지 구분하기를 포기했다. 어쨌거나 깻잎은 실컷 따먹는 데다, 또 굳이 채종을 안해도 내년에도 어련히 잘 자라니, 내 농사꾼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게다. 토종씨드림을 안 건, 도시에서 여성농민권 관련된 일을 하면서다. 귀촌한 후 토종씨드림 밭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토종씨드림 대표님은 곡성 산골짜기에 직접 집을 지어 사신다. 집을 둘러싼 드넓은 밭은 대표님 자급용이자 전국의 토종씨앗을 보전하는 채종포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개 두 명이 우릴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 넓은 밭을 쌩쌩 쏘다녔다. 대표님은 나와 같이 방문한 손님들에게 샴푸나 치약 따위를 사용할 생각은 말라고 호령을 내리셨다. 그 집의 모든 하수는 마당 뒤쪽 연못을 거쳐 토종벼를 기르는 논밭으로 흘러가는 까닭이었다. 집 뒤편엔 농막 형태의 생태화장실이 있었다. 오줌은 양동이에 모았다가 바로 밭에 뿌려주고, 똥은 살짝 건조했다가 향처럼 천천히 태우며 재로 만들었다. 무거운 오줌통을 나르거나 똥퇴비 무덤을 삽질할 필요도 없으니, 대표님은 당신 같은 나이든 여농에게 제격이라셨다. 밭을 말하자면, 난 살면서 그토록 잘 정리된 밭을 본 적이 없었다(맨뒷사진3장). 물론 마을 할머니들 밭도 풀 한 포기 없긴 하다만, 그건 한 종자만 주르륵 심고 비닐 멀칭을 한 경우가 아닌가. 토종씨드림은 한 두둑마다 종자가 다를 정도로 다양하게 심었고, 종자명과 번호를 두둑마다 표기해두었는데, 어찌나 일목요연한지! 두둑은 비닐 없이 볏집으로 싸여있는데, 그건 또 어찌나 단정한지! 나는 이상한 구석에서 정리 강박이 있는데 단숨에 완치될 지경이었다. 그날 토종씨드림에 간 건, 채종을 돕기 위해서였다. 토종씨드림 활동가인 수연님의 지시를 따라 비닐하우스에 옹기종기 앉아 씨를 털었다. 씨는 잘 말려서 유리병 등에 보관했다. 유리병들이 이름표를 달고 열과 횡을 맞춰 나열된 꼴을 보면, 마치 청소업체가 다녀간 창틀을 보는 양 탄성이 나왔다. 하필 수연님 글씨체는 폰트로 팔아도 될 만큼 단아했다. 내가 정리 강박이 있어서 과장하는 것도 맞지만, 토종씨드림 활동가들은 틀림없이 주부들이 모두 환호할만한 정리의 달인이셨다. 토종씨드림 방문은 감동 그 자체였다. 자급자족하시는 삶의 솜씨며, 그 많은 종자를 돌보는 부지런함, 보살핌의 손길이 드러나는 싱그러운 텃밭까지. 이날 채종에 손을 쬐끔 보탠 인연으로, 수연님은 그해 가을 씨앗을 잔뜩 보내주셨다. 원래 토종씨드림에서 씨앗을 받으면 1.2배 이상 돌려드려야 하는데, 나는 채종을 해본 적도 없는 초보 농부인 데다, 봄에 배추 채종을 하기도 전에 땅이 없어 이주해야만 하는 신세였다. 씨앗을 못 돌려드렸다는 말이렸다. 그런데도 그 이듬해 씨앗을 또 보내주셨다. 내가 구례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토종씨를 심어보려 한다니까, 좋은 일에 나눠주고 싶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또 변명하자면 초보 농부인 나와 초등학생 농부들의 콜라보로 그 해에도 또 채종에 실패했다. 양심이 있어 그나마 긁어모은 씨앗들을 조금 보내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런데 지난 초봄에 또! 수연님은 새해 인사와 함께 깨를 비롯한 여러 씨앗을 잔뜩 보내주신 것이다. 수연님이 씨앗을 생색 한번 없이 선물해주셔서, 나는 씨앗 보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하마터면 모를 뻔했다. 매해 두 번, 토종씨드림은 무척 바빠진다고 한다. 회원들에게 토종씨앗을 보내는 시기다. 이번 겨울, 토종씨드림 씨앗을 소분하고 동봉하는 일에 손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곡성, 구례 등 인근 지역에서 모인 친구들이 수연님 댁으로 오순도순 모였다. 서울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다님이 토종씨드림 활동가로 있어 더욱 반가웠다. 난 대농 집주인댁에게 의문의 K.O를 당한 뒤 농사를 향한 열정이 살짝 식은 채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날 하루종일 씨앗을 데굴데굴 주무르다 보니 무척 농사가 짓고 싶어지는 거였다. 파란 콩국물을 먹을 수 있다는 파란 콩을 한 줌 챙기고, 디자인하느라 혹사당하는 시력에 좋다는 결명자도 한 줌 챙기고, 다님이 맛있다고 호언장담한 먹골참외도 챙겨넣었다. 다님은 농사가 너무 재밌다고 했다. 올해는 숲밭을 만드려고 감밭을 크게 구매했다고 했다. 여기저기 농부들이 모이는 장터도 찾아다닌단다. 나는 씨앗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다님이 왜 그렇게 농사가 재밌어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수연님과 다님은 일손을 도와주러온 나와 일행이 고마운지, 자꾸 이것저것 먹을거리나 씨앗을 챙겨주셨다. 나는 그들의 넉넉한 인심이 이 동글동글한 씨앗들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씨앗을 다이소에서도 살 수 있지만, 예부터 씨앗은 거래가 아니라 나눔해왔다. 나누어 퍼진 씨앗들은 (나 같은 농부를 만나는 비극을 피한다면) 이듬해 기필코 증식한다. 이번에 작업한 씨앗들은 대부분 토종씨드림에서 키웠는데, 다른 농부들이 키운 것도 적지 않았다. 그 농부님들은 아마 토종씨드림에서 씨앗을 받고, 몇 배씩이나 양을 불려서 다시 후원하신 것일 테다. 이렇게 대량으로 씨앗을 나누는 분들 덕분에, 더 많은 분들에게 더 많은 양의 씨앗을 나눠드릴 수 있다. 매해 씨앗을 못 돌려드릴 적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성실하게 씨앗을 돌려드리겠지’하고 생각하긴 했다. 그 농부님들의 이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무수한 씨앗을 봉투에 직접 동봉하자니 감사함이 선명히 와닿았다. 소분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음이 부풀었다. 챙겨온 씨앗들이 가방에서 굴러다녔다. 올해는 꼭 씨앗을 잔뜩 채종해서 돌려드려야지. 이웃집 창고 덕에 내가 심으나 마나 먹을거리가 넘치긴 하지만, 딱 이 씨앗을 지켜야하는 이유가 생긴 건 또 다른 의미니까. ‘어차피 똑같은 깻잎이다’하고 입에 털어 넣던 것도, 이젠 헷갈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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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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