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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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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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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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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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실시간 이야기 기사

  • 나의 주인은 나
    문미랑 (경상남도환경교육원) 언제부턴가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대신 명사의 강의나, 읽어 주는 라디오 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멜로디를 통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고독을 즐기기도 하고 고민의 답을 찾아내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것들이 스트레스로 느껴져서 명사가 ‘이렇게 해라’, ‘저것은 틀렸다’ 하는 가르침을 받는 편이 편해져 버렸다. 예전처럼 음악을 삶에 담고 있지 않는 것이 나이듦의 시작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지만 이제부터는 마음도 몸도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구례에 사는 김동관씨를 만났다. 그와는 조금의 친분이 있는 사이이다. 그는 집짓는 목수, 철학을 논하는 명상가이다. 나는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아는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온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김동관씨는 무척 말라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덩치가 꽤 크고 노래를 잘불렀던 사람이었는데 왜소한 그를 만나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1991년에 지리산살이를 시작한 그는 구례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 중 하나는 목수 일이다. 나도 그가 지은 집과 집주인을 몇 분 아는데 그가 지은 집은 대부분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지은 집을 보고 느껴지는 것들의 공통점은 집이 사람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시인의 집은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고 외로운 홀아비의 집은 사랑을 찾는 이의 쓸쓸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속의 일부인 듯한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그가 공정에 참여한 집들이 갖는 공통점이었다. 그와 ‘명상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솔직히 나는 간간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그가 몽상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한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음악듣는 것을 즐기지 않게 된 후에는 생각의 늪에 사로잡히는 것이 귀찮은 나였는데 그와 대화를 이어 갈수록 나는 내 속의 질문과 고민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나온 로드킬 이야기를 하면서는 로드킬의 공포로 밤길 운전이 두려워 밤에 활동하지 않는 나의 문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똑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자. 나는 어디에서든지 명상을 한다. 일상 속에서도 명상을 하고 지금처럼 대화를 하면서도 명상을 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요. 생명의 본질을 깨닫고 매 순간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아가면 그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면 스트레스는 자연히 없어집니다. 자신의 껍데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아요. 육체는 노예처럼, 감정은 하인처럼, 생각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살아 가다 보면 내 자신의 주인은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아이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은 다섯 가지입니다. 무해(無害), 남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마라. 진실(眞實), 진실로 상대방을 대하라. 성실(誠實),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라. 매순간 내 인생에 충실해야 후회가 없다. 절제(節制), 지나치지 말고 절제하라. 성찰(省察), 자신을 돌아 보고 반성하며 살아라.” 명상을 하든 일을 하거나 음악을 듣든, 로드킬이 염려되는 길을 운전해가든지 우리는 껍데기를 위해 살지 말고 내 자신의 주인으로 나를 사랑하고 살면 필요없는 염려를 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힘주어 강조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강 옆에 있는 시골길을 운전해 가면서 나는 음악을 틀었다. 12월 U2공연이 서울에서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것이 기억나서 U2의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너무 고민하지 않았고 운전을 하며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천천히 조심스레 운전했다. 더 이상 음악은 스트레스가 아니었고 시골길 로드킬에 대한 공포도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 지리산 마루금처럼 고운 자연주의자
    문미랑 (경남환경교육원) 내가 일하는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은 지리산 중산리 산 속에 위치해 있다. 퇴근을 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 길가에 노란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 있다. 무슨 야생화일까 궁금하여 잠시 차를 세울까 고민하다가 피나물이겠지 하고 지나쳤다. 산청 중산리 버스주차장에서 계곡의 다리를 건너 최문옥님네 집으로 갔다. 숲길을 가다가 우연히 쉬어가고 싶은 아늑한 집을 만난 듯한 느낌의 집에서 그녀가 나왔다. 그녀의 집은 모든 소품이 이쁘고 특색 있고 아름다운 조명과 자연을 담은 창이 집과 조화를 이루어 숲속 카페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문옥님은 2001년 지리산 산청 고향마을에 32세의 나이에 남편과 함께 귀촌해서 지리산에 정착했다. 그녀와 남편의 집은 중산리 계곡 옆에 위치해 있는데 귀촌했을 당시 부부의 집만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한다.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차도 마시고 정답게 쉬어 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한 부부는 ‘나무와 집’이라는 유명한 건축 회사에 가진 돈 전부를 들고 가서 본인들이 생각하는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한다. ‘나무와 집’에서는 그 돈으로는 집을 지을 수가 없으니 돈을 더 벌어오라고 했지만, 부부는 모두가 찾고 여행오고 싶어 하는 지리산에 작품같은 집을 지으면 도시 뿐만 아니라 지리산권에도 홍보가 되어 회사의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회사를 설득해 집을 지었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부부가 눈을 반짝이며 열정을 뿜어내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지리산국립공원의 자원활동가다. 19년째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며 식물, 곤충, 기후모니터링, 해설활동까지 하는 다재다능한 시민과학자이기도 하다. 2014년에 지리산국립공원의 시민대학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로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공식 프로젝트를 인정받았다. 이는 지리산권의 마을과 주민을 대상으로 생태, 환경, 인문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마을주민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아울러 환경인식 변화, 자연훼손 방지 및 복원사업 등의 성과를 낳게 된 것도 시민대학의 힘이었다. 12년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자원봉사활동과 시민대학의 중심에 그녀가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국립공원 직원과 탐방로를 가는데 분뇨 냄새가 나니까 직원 왈, 사람들이 산에 와서 화장실이 급하니 아무데서나 볼일을 본다고 말하길래, “아니에요. 이 냄새는 금마타리라는 식물에서 나는 냄새예요. 그래서 패장이라고도 해요.”라고 알려줘서 지역의 신문에 특색 있는 식물 소개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한다. “‘꿩의 바람’이라는 꽃을 아세요? 중태마을에만 있는 식물인데요. 봄에 꿩이 울 때 핀다고 이름을 ‘꿩의 바람’이라고 부른데요.” 둘레길에 도로공사를 한다고 중태마을에만 있는 ‘꿩의 바람꽃’이 없어질 위기에 놓여서 그녀가 ‘숲길’에 소식을 전해 다른 곳에 옮겨 복원중이라고 전한다. 식물을 전공한 나지만 그녀 앞에서 식물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리고 좀 전에 산을 내려 올 때도 노란 군락의 꽃을 보며 짐작만 하고 지나쳐 온 내가 아니었던가. 자연생태사업과 환경교육이 본업인 내가 그녀의 열정 앞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귀촌해서 지금까지 자연이 소통의 장이었고 취미생활이었으며 가장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지리산 사랑은 끝이 없다.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그녀가 생각하는 자연 사랑이 너무도 대단하여 만난 후 질문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체 대화가 이어져 나갔다. “식물 공부를 하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숨은 인재들을 만나고 국립공원과 마을 주민들을 만나서 인연을 쌓아가고 소통해 가며 살아갈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아요. 제가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고맙고 도움받은 일들이 외려 많아요.” 라고 말하는 그녀. 내면이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몇 달 동안 일에 치여 개인생활도 없이 살았던 나의 현실에 위로와 힐링이 되었다. 인터뷰도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저 다음에 또 놀러 와도 될까요?” 하고 사적인 질문을 했다. 그녀는 본인이 없으면 뒷마당에서 책이라도 읽고 가라고 고운 미소로 웃어 준다. “해설을 처음 시작할 때는 식물 공부에 너무 심취해서 식물 위주로 했는데 요즘은 자연과 삶의 소통을 가져올 수 있는 쪽으로 하고 있어요. 지리산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치유해주고 모든 것을 받아주잖아요. 산 중의 어른산이 지리산이잖아요. 이런 지리산이 삶의 공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따뜻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녀를 보니 마치 지리산의 능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바쁜 일상으로 모나고 각졌던 내가 그녀로 하여금 오늘은 잠시나마 부드러워지게 되었다.
    •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 꽃 피는 봄이 오면
    박두규 (시인) 예전에는 봄이 오면 꽃들이 그래도 순리대로 피었다고 할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피었다. 매화가 피면 산수유 꽃이 따라서 피었고 이어서 벚꽃이 길가에 가득 피어나면 개나리가 그리고 자두꽃 살구꽃이 피고 복숭아꽃이나 사과꽃 배꽃이 이어서 피어나면 산 위에선 산벚이 가로등처럼 꽃을 달고 군데군데 피어났다. 그렇게 2월이 지나며 피기 시작한 꽃이 3월과 4월에 걸쳐 절정을 이루고 5월까지 그 모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봄은 꽃들이 온 동네를 감싸니 가히 꽃대궐이라고 노래할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한꺼번에 꽃들이 피어난다. 산벚꽃 마저도 산 아래 꽃들과 함께 피니 간극의 차이로 피던 꽃들의 질서가 문란해졌다. 기후위기라는 것도 그렇지만 흡사 도리가 무너진 인간세상의 무질서를 따라오는 듯하여 마음이 그냥 즐겁지만은 않다. 몇 년 전의 이야기다. 벚꽃이 흐드러져 절정에 이른 어느 봄날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는데 뱃속에서 나와 지금껏 꽃 구렁의 세상을 두리번거렸을 것이니 꽃돌이라 이름 지었다. 사실 나는 개를 기른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지인의 개가 새끼를 8마리 낳았는데 한 마리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는 사람처럼 강한 에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웬만한 일에 섭섭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것도 팔자려니 하며 개 닭 보듯 그냥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넘겨받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이 너무 나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는데 목줄을 안 했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냥 혼자 놀았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안에 있을 때면 문 앞에서 낑낑대고 나가면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비가 와서 땅이 젖은 날에도 그렇게 달려드니 옷이 엉망이 되곤 했다. 툇마루도 그 녀석 차지가 되어 온통 더럽혀져 있어서 그곳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던 즐거움도 잃게 되었다. 게다가 텃밭 일을 하면 따라다니며 밭의 작물을 온통 짓밟고 다니니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갔다. 그렇다고 목줄을 매자니 저도 한 생명인데 2~3m 정도로 행동반경을 좁혀 감옥생활을 시키는 것은 할 짓이 못되었다. 그러다보니 꽃돌이 때문에 내가 몇 년 동안 공들여 얻어낸 일상의 평화가 깨지게 되었다. 아내의 지청구를 들어가며 고집을 부려 이 집을 지었고 본가를 오가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두텁나루 숲’의 공간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꽃돌이 녀석 때문에 이 집에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하지만 개를 넘겨받는 순간 모든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꽃돌이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 녀석은 그 녀석대로 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 이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아이든 아내든 친구든 손님이든 강아지든 함께 한다는 것은 한 생명을 모시는 일이기도 해서 스스로를 그만큼 내려놓지 않고서는 도대체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처럼 벚꽃이 절정에 이르러 꽃터널을 이루는 화사한 봄이 오면 그래도 정이 들었었는지 수년 전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 꽃돌이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지.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진정으로 주고받았다면 그것도 사랑인지. 멀지도 않은 그 옛날, 담장 너머로 주고받던 눈빛 하나, 손을 마주잡던 한 순간의 기억으로 한 생을 버티기도 했을 사람들. 그 순정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는 생각도 한번 해보는 것이다. 꽃돌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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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다시 새해
    김석봉 자문위원 밀레니엄의 종소리가 귓가에 생생한데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도시의 거리에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던 그날이 새삼 떠오른다. 무엇인가 커다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설렘과 기대에 부풀었던 날들이었다.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은 예감이 가득 찬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 해 두해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느새 스무 해를 꽉 채웠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나를 확인하곤 했다. 해마다 그랬듯 결과는 절망이었다. 우리네 삶의 문명은 언제나 더 높은 곳을 지향했고, 더 많은 것을 탐해 왔다. 지리산도 내내 몸살을 앓았다. 곳곳에서 케이블카를 놓겠다며 덤벼드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한 물 간 양수발전소 건설계획이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성삼재까지 고속버스가 운행하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 현실이 됐다. 태풍과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하여 주민들 삶의 터전을 할퀴는 사이 정부는 산등성을 파헤치는 산악열차 관광사업 프로젝트를 툭 던져놓았다. 주민들이 갈라서고 공동체가 너덜너덜해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발을 뺐고, 끝내 주민들만 멍든 상처를 안고 견뎌야 했다. 우리네 삶의 문명이 대개 이랬다. 이런 문명의 한복판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휘젓고 있다. 벌써 한 해가 다 되었다. 점포는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집으로 숨어들었다. 직장동료라는 이유로 한 번 만나보지도 않은 그이의 어버이 문상을 한답시고 밤 새워 달려갔고, 친척이라는 이유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몇 촌 조카 결혼식장 찾아 다녔다. 그렇게 경조사 챙기고 상부상조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다. 그렇게 만나 축하하고 달래는 것이 사람 사는 정이라고 여겼다. 그런 일에 빠지면 눈 밖에 났고, 외톨이로 지낼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기 지리산 구석구석도 많이 달라졌다. 명절마다 자동차로 가득 찼던 마을공터엔 추석인데도 썰렁했다. 일가친척들 다 모이던 선산벌초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음력 시월 묘사를 지내는 곳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 사는 아들딸들 김치 통 들고 줄줄이 모여들던 김장철 풍경도 사라졌다. 자식들은 그저 오붓하게 온 듯 만 듯 다녀갔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 둘 귀향의 보따리를 싸들고 동구 밖을 기웃거린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며 대대로 내려온 다랑이논에 삽질하는 낯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경 음식점을 하다 망했거나 실직한 아들에게 자신의 삶터를 물려주고 낙향한 중늙은이들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다. 인류에 기생하며 함께 진화해온 이 바이러스를 어쩌겠는가. 피해 갈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하고 아픈 만큼 새로운 무엇을 창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강요했다. 그동안 우리가 향유해온 소비중심적인 우리네 삶의 양식에 경종을 울렸다. 마천루로 상징되는 21세기 삶의 문명, 삼천 포인트를 향해 질주하는 주가지수와 황새가랑이도 찢어놓을 듯 치솟는 집값에 매달려온 허접한 삶의 문명을 내려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동안 만나고 모이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왔다. 올해는 그 많던 동창회도 송년회도 열리지 않았다.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동안 경조사를 온라인으로 챙기다보니 굳이 만나야하냐는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친숙해진 많은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앞만 보며 빠른 속도로 짓쳐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발걸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에 온정을 쏟고 정성의 손길을 보낼 줄 아는 삶. 저 덤불 속 작은 새와 풀숲의 꽃들과 돌담 위에 오두마니 자리 잡은 길고양이와 그 담 너머 늙은 이웃들이 다 나와 같다고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그런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올해는 바이러스를 넘어 그 길을 나서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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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단순 소박한 삶을 위하여
    박두규 (시인) 가을이 왔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 반갑다. 지난 여름이 너무 혹독해서 그럴 것이다. 유래 없는 홍수로 섬진강이 범람하고 구례는 물속에 잠겼다. 그 피해와 슬픔, 복구와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가을은 왔고 머잖아 또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일상은 계속 될 것이다. 문제는 이번 재해는 구례의 재해만이 아니라 지구의 재앙이었다는 것이다. 초록별 지구는 자본주의 문명의 극점을 찍고 급격하게 그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구의 재앙을 염려하고 정치권에 호소했고 그 심각성을 인지해 교토의정서(1997)며 파리 기후변화 협약(2020) 등을 채결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소홀히 하고 탄소배출량이 두 번째로 많은 미국(트럼프)은 미국경제에 해가 된다고 탈퇴를 선언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여 지구의 온도를 2℃ 이상 상승하지 못하게 하자는 세계의 약속이 깨지고 이대로 방치되면 2100년에는 4~5℃ 이상으로 오르게 될 거라는 것이 정설이다. 4℃ 이상 오르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하며 인구 1000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들은 2050년에 잠긴다고 한다.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눈도 70%가 녹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며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고 남부유럽은 영구적 가뭄에 시달리며 라틴아메리카에서만 뎅기열이 800만 건 이상 증가하고 전 세계의 식량 위기가 매년 닥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자원전쟁 등 곳곳에서 전쟁까지 늘어나게 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80년이면 사실 코앞에 온 현실이며 내 자식과 손자들의 시대다. 이번 여름 구례의 수해처럼 곳곳에서 일어나는 역대 급 재난들을 지구의 재앙과 연결해서 봐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국가 모두가 눈앞의 이익만을 계산하고 살 수는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와 재앙이 구체적으로 먼저 오는 곳은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부터이며 부자들과 부자나라들이 저지른 죄가를 목숨으로 막아주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공존 공멸하는 세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21세기에 전 지구적으로 기후에 대한 총체적 대응을 시작하지 않으면 인류의 멸망은 천년 안에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 불행의 씨앗은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이데올로기화 한 자본주의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우리는 이 자본의 욕망과 그 구체적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시작해야 한다. 그 방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의 방식을 개인과 국가들이 과학적으로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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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아이고, 고만 잊어버렸구만이라....
    언재 한성수 자문위원 아이고 노고단아! 외마디 부르짖음과 더불어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장탄식을 토한다. 지리산인 구례 계간지에서 부탁한 짧은 글 하나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쉽게 대답하고 나서 그만 잊어버리기만 3차례, 13일 마감을 약속하면셔 윤주옥님의 전화에 아주 미안하게 또 헛 약속을 날렸고, 오늘 17일 오후에 문득 다시 생각이 떠올라서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글이 이번 호 지리산인에 실리지 못해도 좋으나 일단 자신을 살피는 신세타령이라도 써 놓고 볼 일이다. 미국에서 나그네로 떠돈 30년 세월을 뒤로하고, 구례에 온 지 16년 반이란 세월이 지났고, 사람들이 나의 말투가 좀 다르다고 항상 되묻는 말, “고향이 어디세요?”에 똑같은 대답 “충청북도 제천요!” 여러 번 반복하다가 5년 전엔가 그만 구례로 호적을 옮겨버렸다. 이젠 여기서 살다가 전라도 사람으로 죽어갈 심산이었다. 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부산에서 고등학교, 서울에서 대학교,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허망한 세월을 따라 노상 이사를 다녔다. 마지막 이삿짐은 지리산에서 풀게 되겠지.... 문제는 그 좋다는 한국의 명산 지리산 자락, 산 높고 물 맑은 구례에 살아온 어즈버 지난 16년이란 세월이 내 육신을 서서히 무너뜨려온 징조가 해마다 새롭게 목록을 더해간다는 점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60대엔 매년이 다르고 70대엔 매달이 다르고, 80대엔 매일이 다르다나? 그 말이 대충 맞는다고 맞장구를 치게 생겼다. 처음 구례에 정착했을 때 너무도 흥분해서 매년 그 좋은 지리산 종주를 6차례나 거듭했고, 매 주일 거의 한 차례씩 구례 화엄 계곡을 허덕이면서도 기어올라 노고단에 가서 노고 할망구에게 절도 많이 했는데, 어느 세월에 무릎이 시큰거리더니, 등산 금지령을 내리는 의사의 입술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그런데 요즘 새로 생긴 증상이 아주 고약하다. 뭔가를 자꾸 잊어버린다. 가까이 지내는 벗님이 여수에 계신데, 그 양반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전화를 받고, 곧 안타까운 마음에 문병을 가겠노라고 다짐을 하고는, 마이동풍! 그만 귀로 씹어버렸고, 두뇌 속에서 말끔히 청소를 해버렸다. 어떻게 구차한 변명을 한다? 뭔가 새로운 세월이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는 발소리가 흉측하고 음산하게 들린다. 알츠하이머? 치매 전조? 아이고, 노고단아! 산 높고 물 맑고 바람 시원한 구례에 사는데, 웬 이상한 풍경 소리?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사람들 대하기가 미상불 조심스럽다 못해 끔찍스러운 짓도 거듭하고, 그러다 보면, “그 양반도 이제 그만 삭아가시네. 쯧쯧,” 하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 누구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공연히 아는 척하고 수학계의 최고 난제로 여기는 리이만 가설(Riemann)을 설명하면서, 리이만이란 이름이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아 엉뚱한 사람 이름을 대면서 썰을 풀었겠다. 집에 와서 생각이 나는데, 아이고 왜 즉시 손 전화(요즘 손전화는 컴퓨터 축소판)에라도 조회를 하지, 어물쩡 저물쩡 떠들어제끼기는.... 뒤늦게 다시 전화를 걸어 온갖 변명을 해대는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정말 치매(Alzheimer's disease) 가 온거여? 아이고 노고단아! 나 이제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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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나의 우리, 우리 속의 나
    박두규 (시인) 현재(6월3일)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환자는 11,590명 사망자는 273명이다. 그리고 현재(6월2일) 세계의 확진자 누적 인원수는 6,330,848명이고 사망자는 376,008명이다. 그리고 국가별 사망자를 보면 미국 106,195명 영국 38,489명 이탈리아 33,415명 브라질 29,314명 프랑스 2,8802명 스페인 27,127명 중국 4,634명 일본 891명 한국 270명이다. 이 수치는 이 글을 읽게 될 즈음이면 훨씬 더 올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코로나 국면은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진화된 또다른 바이러스의 유사상황을 예고하는 시작일 뿐이며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사피엔스라는 종의 멸종을 예감하는 전조현상으로까지 말하는 미래학자도 있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며 지구인들의 삶은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아니 변화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한 단계 확장된 의식을 토대로 한 도덕적 과학기술과 정신문명으로의 새로운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의 지구상황을 예견하고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국면에서 한국의 위상과 기대치는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자본의 논리, 물질적 가치로만 삶의 모든 것을 판단하다가 코로나19를 맞아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와 정신적 가치로 삶의 문제를 판단하게 되면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서구의 선진국들은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그 의식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동안 그들을 선망하게 했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가치가 이런 생명존재라는 근본적 문제에 있어서는 단순히 사피엔스라는 종의 욕망, 욕심, 탐욕이라는 이기적 범주 속에 있는 통속적인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서구 석학들의 반성적 성찰은 그래서 동양의 유교적 전통과 사상, 특히 한국의 이번 코로나 대응 국면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 국면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다행히 이 국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주적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수평적 개인주의, 공동체적 자유주의 등 코로나 방역 성공의 필수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식민지와 전쟁, 군부독재 등 일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축적된 것이며 많은 피를 흘리며 얻어낸 값진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랑스혁명보다 더 진화된 촛불혁명이라는 인류사적 의식의 확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고 그 확장된 선진의식이 코로나 국면 속에서 발휘되면서 한국이 코로나 대응의 모범적인 극복모델로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내면을 돌아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시사IN과 KBS가 공동기획한 대규모 웹 조사 중 하나로 한눈에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하는 재미있는 결과가 있다. 그것은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 신뢰도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질병관리본부(+75) 의료기관(+72) 가족(+67) 대한민국(+53) 친척(+41) 청와대(+29) 정부(+27) 한국국민(+21) 이웃 사람(+11) 지방 정부(+3) 민주당(-3) 국회(-33) 낯선 사람(-36) 언론(-45) 종교기관(-46) 미래통합당(-56)’ 이 신뢰도 결과는 단순히 신뢰만이 아닌 코로나 국면을 맞아 드러난 현재 한국사회의 삶 자체의 여러 단면을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코로나 국면에서 보여준 서구의 사회의식보다 앞선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시민의식을 잘 보여주었다. 격동의 근현대사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과 사회의 내면에 축적되어졌던 ‘나의 우리, 우리의 나’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국면에서 나타난 의료진들의 헌신성과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성, 진정으로 국민을 우선했던 정부의 모습 등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과 직접 비교되어 서양 우월주의를 탈피하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이 세계의 표준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높은 시민의식, 민주주의 정신을 이미 세계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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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박 두 규 (시인) 오래 전에 읽은 고은의 소설 『선(禪)』을 보면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갈 때 해로를 통해 베트남으로 상륙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뱅골만을 벗어날 즈음에 이동 중인 수만 마리의 철새 떼들이 폭풍을 피해 달마 일행의 배로 내려앉는 일이 생긴다. 달마는 그 새떼들을 쫒거나 죽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선원들과 일행들이 그 말을 잘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 배에는 수백 마리의 새들이 죽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달마는 “저 새들은 늙어서 기력이 다해 죽은 것이다.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깐 호흡을 골라야 했다. 무언가가 깊게 마음을 질러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때문에 타자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점점 무기력해지고 죽음의 그늘이 가까이 드리워진다. 이게 일반적인 일상의 ‘늙음’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은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면서 늙음에 종속되지 않는 생명과 생명을 가진 한 존재의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켜준다. 디팩 초프라가 말한 것처럼 ‘노화’란 하나의 개념일 뿐이고 실재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끝까지 발현하다가 소멸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영장류만이 유일하게 생각하는 힘이 있어 늙음이나 죽음 따위를 가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 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스스로 늙었다거나 죽을 때가 다 되었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기만 할 것이다.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생명을 발현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새들의 스스로 이상향을 향한 자유로운 날갯짓은 늙음과 무관하며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졸저 『生을 버티게하는 문장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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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문정리(文正里)의 죽음들
    성염 자문위원 필자가 지리산 서북자락 문정리에 ‘휴천재(休川齋)’라는 누옥을 지은 것이 25년 전이고 주민등록을 옮겨 주민으로 살아온 것이 10여년 되는 사이 문하마을 남정네들은 대부분 세상을 떴다. ‘조합장’, ‘부면장’, ‘노인회장’ 등 직함으로 불리던 노인들도, ‘동호양반’, ‘거문골양반’, ‘용산양반’ 등 부인의 택호로 불리던 사람들도, 또 혼자 사는 아짐들의 상머슴 노릇을 해주던 맘씨 좋은 ‘인국이 아재’처럼 수줍던 사람도 세상을 등졌다. 내 또래 서넛이 아직 살아 있을 뿐. 아낙들은 열댓 남았지만 남편의 마지막 몇 해를 치매병간으로 보내다 떠나보내고 나면 ‘안방 아랫목에 누웠으나 앞산 양지에 옮겨 누우나 매한가지’라는 초연한 얼굴을 하고서, 서까래 내려앉는 집에 혼자들 살면서 대처로 살러 나간 아들, 손주 소식으로 연명한다. 대개 산비탈에 묻히지만 손수 쟁기질하던 밭에 묻히기도 하여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는 구절처럼 되기도 하고. 휘영청 보름달이 아스라한 밤중에 잠을 깨면 필자는 하봉쪽 문장대를 창밖으로 올려다보면서 “다람쥐처럼 / 사랑 때문에 / 산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생진 “행복한 사람”에서)을 그려본다. 우리 민족이 거쳤던 아픔 중에서도 사상과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느 편에 섰든 존경이 가는 까닭에, 저 능선에서 어둑한 골골에서 봉분 없이 스러진 이들이 긴긴 행렬로 만가(挽歌)를 부르는 듯한 환청도 들린다. 내가 사는 문정리 앞을 휴천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는 송문교 옆에는 문장대 일대 산허리를 안내한다면서 ‘빨치산 루트’라고 기록한 간판이 여러 해 서 있었기 때문이리라. 작년 8월이던가? 견불동 사는 조감독이 잠시 들러 냉수나 한 잔 마시고 가겠다고 전화하더니 시간이 되니까 ‘토벌대를 피해 도주하는 산사람들' 행색을 한 일행 열두 명이 나타나서 삽시간에 휴천재를 접수했다. 우리 분단의 역사를 현장답사로 배우는 젊은이들이란다. 무리를 인솔하던 분은 한 때 우리 부부와 친분을 나눴던 김인서(본명 김국홍) 노인을 직접 알고 있었다. 우리 동네 문정리가 1950년 말 남로당 유격대가 조직되고 출정한 곳이라는 연구발표가 있어 그 장소를 확인하러 다닌다 했다. 심심산골에 문정리(文正里)라는 지명도 귀에 설지만, 우리 집에서 100미터가 안 되는 거리에 고려조 이억년 선생의 묘소가 있고, 그가 문정리에 도정정사(道正精舍)를 짓고 사람을 가르친 내력이 ‘도정마을’이라는 이름에 남아 있다. 도정마을에는 일제하에서도 한지공장이 있어 그 자제들이 배우고 깨우친 민족주의자들이었는데 보도연맹으로 싸잡혀 희생당했다는 소문도 있어 그들의 추정도 제법 신빙성 있어 보인다. 거창과 함양-산청 양민학살을 자행한 11사단 최덕신의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가 1951년 2월 8일 아침 9시에 개시된 마을이 이 곳 문정리였다는 점도 시사점이 있다. ‘시국강연’을 한다면서 논으로 끌려나온 주민 200여명이 국군의 기관총에 학살당할 찰나에 강경한 항의와 설득으로 사람들을 살려낸 당시 이장 김길동(金吉童)의 송덕비가 문하마을 초입에 서 있다. 필자가 이 동네로 살러 와서 장례를 치른 노인들은 저 운명의 날 10대의 소년들이었지만 필자에게 그 날 얘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바로 그 이튿날 첫 아이를 해산했다는 90대 여인의 눈초리에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군경에 대한 깊은 공포가 서려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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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저기 민들레
    2021-06-01
  • 어찌할 수 없는 몸의 고통에도 평화를!
    임봉재 자문위원 황금돼지의 기운으로 2019년은 하늘 땅 사이의 모든 생명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건강하고 웃으며 살 수 있는 행복한 일들이 많이많이 있으면 좋겠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은 오랜 분단과 대립으로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평화의 싹을 보여주었다. 이제 남북이 반목과 대립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이 모여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또한 오랫동안 몸살을 앓게 하던 지리산댐 건설문제가 다행히도 지난해 9월 백지화 되면서 지리산에 평화가 찾아왔다. 지리산 평화는 곧 지리산 주변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니, 생명평화결사의 가르침이다. 나는 이 말을 내 남은 생의 화두로 삼고 산다. 2018년, 개인적으로 나에게 참 힘든 한 해였다. 40년 가까이 병원과 약물을 외면하고 살아오며 감기약 한 번 안 먹고 견뎌 왔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감기 기운이 들더니 호흡곤란이 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제 갈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하며 죽는 순간까지 편안한 맘으로 기쁘게 살리라 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다 숨이 막혀 밤새도록 버둥대다 아침을 맞았다. 밤이 두려웠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러기를 한 달 넘게 하다가 결국엔 한의원을 찾았고 차츰 차츰 나아진 적이 있다. 아직은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과 보속이 남아있어 하느님이 데려가지 않으시나 보다 생각하며 매일매일 주어지는 시간을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크게 드러나지 않는 속이 안 좋은 것은 견딜 만한데, 목 위의 기관에 이상이 생기니 견딘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초부터 나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말이 잘 들리지 않아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눈에 이상이 생겨 안과를 드나들며 약물치료 중이다, 치아가 저절로 부러지거나 아파 치과를 드나들고... 결국은 쓸 수 없는 치아를 뽑고 씌우고 하다가 의치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70년 넘게 썼으니 탈이 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들면 대충 보고, 대충 듣고, 대충 먹고 이 세상 사는 날까지 그렇게 살면 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었건만 대충 보고, 듣고...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산다는 것 자체가 혼자 사는 게 아니어서 잠자는 시간 외에는 만나는 상대방에게 폐가 되고 불편을 주게 마련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치과 진료실에서 짧아야 한 시간씩 입 벌리고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는 기분으로 반년을 넘겼다. 죽기보다 싫은 게 이를 뽑거나 신경치료 할 때 하는 마취였다. 그래서일까! 삶에 의욕이 없어지며 게을러지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특히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졌다. 책에서 글 한 줄 읽는 것조차 쉽지 않다. 컴퓨터 작업도 쉽지 않고... 이전부터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고백하건대 이번 지리산人에 실을 원고가 늦어진 것도 온전히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되었다. 해야지 하고 자리 잡고 앉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뭘 써야 할지... 머리가 멍한 상태로... 뭔가는 써서 보내드려야 하는데... 제 때에 보내드리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결국은 하찮은 내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게 되어 담당 선생님께도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하다. 나 하나 때문에 계간지로 나가는 지리산人이 제 때에 인쇄도 배포도 못하고 얼마나 애를 태우고 계실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에 더더욱 면목없고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이다. 지리산人 모든 분들께 건강과 평화가 넘치는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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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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