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지리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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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늘
    바늘 김 경 옥 쇠를 갈고 남은 몸이다 매끈한 은빛 몸매 뾰족한 침 끝, 더는 아무것도 없다 저 침에 닿을 때까지 사방 팔방 십이방 모서리 없어지고 이웃마저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제 몸을 깎아냈을까 이 악물고 덜어내어 물러설 수 없는 절벽에 이르렀을까 갈고 닦는 일의 무한함이여 깎고 덜어내는 일의 은은한 아픔이여 가는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기울이며 작은 귀 하나만 열어놓은 세월이여. ---------------------------------------------------------------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그저 지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안고 사는 존재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하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며 자란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그 답을 말하고 죽는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답일 것이니 그렇다. 다시 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살다가 죽을 뿐이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11-13
  • 안개 유감
    「섬진강 편지」 -안개 유감 2023년 10월 22일 안개, 10월 23일 안개, 10월 24일 안개, 10월 25일 안개, 10월 26일 안개, 내리 닷새 아침 안개가 점령군처럼 구례를 장악했습니다. 안개가 옅은 날은 9시쯤이면 걷히지만 독한 날은 11시가 되어서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섬진강과 서시천,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 아래마다 하나씩 있는 저수지들이 봄가을이면 구례를 안개의 마을로 만듭니다. 구례로 이사를 와서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안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구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안개의 피해를 모르고 아침마다 안개 예찬론을 펼쳤으니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요! 봄, 가을이면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 농작물들은 병에 취약하고 강마을 노인들은 기관지, 천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답니다. 오죽하면 안개를 피해 산동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자체가 유치 신청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게 된다면 구례는 그야말로 안개공화국이 되고 말겠지요. 섬진강댐보다 큰 규모의 댐이 2개나 들어선다면 1년 내내 안개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거기다가 양수발전에 부족한 물은 섬진강에서 끌어 쓰게 된다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겨우 기어가는 섬진강물은 더 마를 것이고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게 되면 섬진강 하류의 오염은 뻔하지요.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내는 때 묻지 않은 풍광들이 있어 귀촌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귀촌 인구가 감소 추세인 최근에도 705명(2022년, 구례군 자료)이 귀촌했을 정도로 구례는 3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구례지역 귀촌자들의 특성은 주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최근 우리 마을에 7명의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다들 구례의 천연 풍광에 매료되어 온 친구들입니다. 진정 애향 애민의 위정자들이라면 국비 1조 원이란 곶감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본심을 잊지 않도록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댐이 들어서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30여 년 전에 댐이 건설된 순천 주암댐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보시라! "자욱한 안개에 폐암까지"‥주암댐 주민 피해 호소 https://ysmbc.co.kr/article/d4H__7afKF797La-l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0-27
  • 몸 가르침 한 수
    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3-03-08
  • 겨울 산에서
    ■ 시 겨울 산에서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02-26
  • 지리산 법화종주
    「섬진강 편지」 -지리산 법화종주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 덕평봉,형제봉,삼각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 2박 3일, 지리산 품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40km 지리능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수행길 절뚝이며 휘청이며 30시간을 걸으며 우리네 삶도, 사랑도 이렇게 숱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깊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폐절제 수술 3년이 지나고 망설이던 지리산 종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폐가 잘려 나간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면 손잡아 주고 가파르면 끌어주고 카메라 짐을 나누어지어 준 지리산사람들 길동무님들이 있어 힘들다는 겨울 지리산 종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진강 /김인호 *지리산 법화종주 ; 법계사에서 화엄사까지 오는 종주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1-26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12-16

실시간 지리산문화 기사

  • 지리산 화엄사 구시
    지리산 화엄사에는 구시가 있습니다. 전쟁통에 식사 보급을 빠르게 하기 위해 이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용도 말고도 종이를 만들기 위한 통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염라대왕이 물어본다는 화엄사 구시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도 있습니다. 00:00 인트로 00:10 구시가 뭔가요? 00:37 구시는 전시의 대용량 식량 배급 통 00:49 전시에 이런 것을 새로 만들 여유가 있었을까? 01:42 구시는 종이를 만드는데 쓰이는 통이기도 했다 02:00종이를 만들던 용도, 전시 식량 배급 통으로의 용도 02:14 호국사찰 화엄사 02:53 민간이 아닌 사찰에서 종이를 만들던 이유 03:58 종이 생산으로 고달팠던 사찰들 04:37 상소로 종이 부역을 감면받은 통도사 이야기 05:01 아주 오래된 종이 문화재 05:59 남쪽 지방에 구시가 많은 이유 06:53 화엄사 구시를 보면서 생각할 것들 07:27 화엄사 구시와 염라대왕 설화
    • 지리산문화
    2023-10-24
  • 부부라는 게 그랬다
    부부라는 게 그랬다 어쩌다 보니 이번 여름은 두텁나루숲을 살지 못했다. 먼 여행을 다녀왔고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부부라는 게 그랬다. 좋은 날과 나쁜 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오르락내리락 이 나이토록 같이 걸어온 거 아닌가. 지상의 나무 한 그루 자라듯 어떤 의도도 없이 평생 서로 영향을 미치고 사는 것이 부부이니 그 이승의 인연이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을 확인하는 일상을 산다 해도 그렇게 사랑이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본디 잡거나 잡히는 것도 아니고 깊은 산 속 샘물처럼 그냥 홀로 늘 솟아나는 무엇일 텐데, 보통은 물 한 모금 입술에 적시는 찰나에 묶여 사니 그렇다. 어찌 부부만이 그럴까. 일상의 욕망을 일깨우는 새로움은 찰나를 스쳐 갈 뿐이고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향해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새로움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느 깊은 숲을 사니.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3-10-09
  • 다정한 것에 대하여
    다정한 것에 대하여 김 영 춘 산봉우리에 형제봉이니 자매봉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 살던 사람들이 있다. 행여 사이가 좋지 못할까봐 형제자매들까지 데려다 놓고는 오래오래 그렇게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전주의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늙어가면서 전봉준 김개남 이런 사람들의 눈빛을 지켜보고 있는데 무너지는 몸을 겨우 이기는 그 곁으로 열대여섯 살쯤 됐을까 싱그러운 어린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요즘 식으로 유전자를 따라가 봤더니 늙은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한다. 아비도 없이 어찌 아이만 남았을까 우금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두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사람처럼 어미와 아비를 떠올리다가 형제봉이나 자매봉을 불러보던 시간들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가 않아서 몸이 슬슬 떨려오기도 했다 이 나라의 슬픔으로는 아비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 어린 것이 어미 곁에 홀로 서 있는 정도는 되어야 인간사의 다정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인가 꼭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도 봄이 왔으므로 할아버지와 손자라면 더 어울릴 법한 두 은행나무가 어미와 자식으로 나란히 잎을 피운다 둘이서도 잘 피운다 다정하기가 그지 없다 슬픔도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 다정한 것에 대하여.. '다정'이라는 단어가 먼저 와 닿는다. 다정이 참으로 목마른 시절이어서 그런가, 나만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 '다정함'을 느끼기가 참 어렵다. 세상이 무서운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 스스로가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 그런지, 보이지 않는 어떤 단단한 경계를 가지고들 사는 것 같다. 쉽게 가까워져서 스스로 무장한 세상벽을 헐어내는 일이 매우 어렵다. 이 시는 전주의 유명한 보호수 천년 은행나무의 이야기인데 그 인간사의 애정이 참으로 애잔하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다정'은 슬픔을 꼭꼭 감추고 있는 다정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프고 슬픈 다정함이 더 깊은 울림으로 온다. 왠지 더 우리네 다정함 같아서 그렇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10-09
  •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 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에 형성된 다랑이논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여 그 어느 곳보다도 생태 보전 가치가 큰 곳이다. 골짜기 마을의 식량 자급을 위해서뿐 아니라, 소규모 댐 역할과 인공습지로서의 환경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예술적 가치, 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 등을 가진 이곳이 대규모 골프장 건설로 훼손되면 그 환경적, 예술적, 경제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지리산골프장 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다랑이논과 그 주변 숲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시급해 보여 환경부장관상을 수여했다.” 지리산골프장 건설 논란으로 위기에 놓인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는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으로 지리산골프장 건설 예정지 바로 밑에 자리하여 농약, 제초제 등 오염원으로부터 훼손 위기에 놓인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곳으로 만인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산비탈을 타고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들어진 다랑이논 논두렁의 포근한 곡선은 인위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농업문화 유산이다. 그런 까닭에 봄이면 모내기를 마친 무논에 저녁 노을빛이 내려앉는 풍경과 황금빛 일렁이는 가을 다랑이논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작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사포마을 다랑이논은 식량자급 뿐만 아니라 수달과 팔색조가 살고 있는 인공습지로서의 환경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예술적 가치, 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 역사문화경관이다. <지리산-인> 신문에서 “사포마을 다랑이논의 사계 사진전”을 계획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아쉬움을 온라인 사진전으로 대신해 본다. -섬진강 편지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0-09
  • 남원의 가을
    삼산리 솔숲과 행정리 서어나무숲 66x270cm, 한지에 수묵채색,2023년 가을 -삼산리 솔숲 부분 - 행정리 서어나무숲 부분 -행정마을 서어나무숲1(90x60cm.,2011년).jpg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2 (60x46cm,2016년).jpg -운봉 삼산마을 솔밭의 겨울138x383cm,2011년.jpg -서어나무숲(화첩).jpg -솔숲(화첩).jpg -솔숲과 서어나무숲(화첩).jpg
    • 지리산문화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
    2023-10-06
  • 기후위기시계 설치
    지구의 평균온도가 임계점(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까지 상승)을 넘는 시간, 오늘 현재 남은 시간은 5년 298일 기후위기 시계 보기 클릭 -> https://www.climateclock.world/clocks 이에 세계각국 정상들과 전문가들은 2015년 파리협적을 통해 이를 '임계점'(tipping point)으로 두고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는 데 노력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기후위기 시계 보기 클릭 -> https://www.mcc-berlin.net/en/research/co2-budget.html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9-27
  • 경술국치날
    「섬진강 편지」 -경술국치날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날이다.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이 발표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인구 1,500만이 넘는 인구와 518년이란 역사를 이어온 왕조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없이 조약에 의해 주권을 양도하여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 없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10년 8월 29일 순종황제는 병합과 관련하여 기가 막힌 조칙을 발표했다. “너희들 높고 낮은 관리들과 백성들은 나라의 형세와 현재 조건을 깊이 살펴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자기 직업에 안착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도록 하라. 오늘의 조치는 너희들 민중을 잊어서가 아니라 민중을 구원하려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관리와 백성들은 나의 뜻을 몸으로 느낄 것이다” 113년이 흐른 오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괴담 선동가로 몰아가는 현 정부를 바라봐야 하는 마음은 괴롭다. 수산물에 방사능 검사를 하니 안심하라지만 백년천년 하세월 검사를 하고 왜 우리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하는지 일본은 인류역사상 전례가 없고 미래의 재앙을 예측하기 힘든 핵요염수 해양 방류를 중단하고 자국 내에 보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23년 8월 29일, 섬진강에 지리산에 무겁디 무거운 비가 내린다. *사진은 밀려오는 파도 모양인 박고지(여물기 전의 박을 따서 속을 파낸 후에 길게 썰어 말린 반찬거리)를 말리는 구례 용두리 풍경입니다.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8-29
  • 여름, 지리산
    「섬진강 편지」 - 여름,지리산 폭우 폭염에 지리산정의 꽃들조차 예전의 꽃빛을 잃은 여름입니다. 지리터리풀과 동자꽃은 폭우에 꽃빛이 녹아내렸고 원추리꽃 산오이풀 꽃빛도 어쩐지 시들합니다. 그래도 큰 산이 우뚝하여 우리들은 늘 마음 기대어 삽니다. 이런저런 심란한 일로 8월에는 길 나서지 못했는데 고단한 마음 추스려 새벽 노고단길 나서야겠습니다. 원추리 -여름, 지리산 무엇을 잊기에 지리산만치 좋은 곳 있을까 산수국물봉선비비추지리터리원추리 구름에 낯을 씻는 꽃천지 노고단에 올라 설핏 눈물자국 비치는 섬진강을 저기 저기 좀 보란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아라 지척도 아득한 마음일 때 지리산만치 좋을 곳 있을까 - 김인호 시집 「꽃 앞에 무릎을 꿇다」에서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8-21
  •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
    「섬진강 편지」 -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 슬픔이란 녀석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마음 뜨락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몇 날 며칠 머물다 간 자리 겨자 씨앗 한 톨 떨어져 있다 한마디 말 없던 슬픔이 씨앗 한 톨 슬픔 너머 희망이란 겨자 씨앗을 남겨두고 갔다 슬픔은 혼자 다니지 않는구나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8-14
  • 화엄숲
    「섬진강 편지」 - 화엄숲 5일 간의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첫걸음으로 화엄숲에 들었습니다 슬플 때는 슬픔으로 아플 때는 아픔으로 기쁠 때는 기쁨으로 맞아주는 화엄숲 마을은 폭염인데 화엄계곡은 거짓말처럼 안개가 가득하고 비가 내립니다. 불어난 물소리, 어깨에 떨어지는 빗방울, 반짝이는 푸른이끼들, 살랑이는 물안개, 그리고 작은 폭포를 배경으로 참나리꽃 몇 송이 피워놓고 잠깐 와보라고 불러세우는 이 신비로운 숲은 또 이만큼 나를 살립니다. -섬진강 / 김인호 -연기암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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